차승재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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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영화판
- 감독
- 허철, 정지영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윤진서, 정지영, 임권택, 이창동, 이춘연, 안성기, 박찬욱, 봉준호, 정윤철, 이경미, 임상수, 박중훈, 배종옥, 한지승, 정일성, 배창호, 강수연, 이명세, 윤제균, 임순례, 변영주, 박찬옥, 유지나, 방은진, 김혜수, 이장호, 문소리, 김지미, 김아중, 강제규, 김용화,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김수용, 이두용, 장선우, 박종원, 김종원, 이충렬, 최진욱, 달시 파켓, 변인식, 김민웅, 오동진, 김영진, 신성일, 조준형, 김홍준, 신철, 박건섭, 허문영, 김소영, 정성일, 강우석, 조희문, 황지우, 차승재, 심재명, 이은, 이준익, 이진훈, 최동훈, 김지운, 한석규, 김일권, 홍형숙, 윤성호, 이송희일, 양해훈, 변성찬, 박혁권, 양익준, 김동원, 신영균, 박광수, 곽경택, 이상용, 권미정, 심광현, 이현승, 전수일, 하주택, 김명준, 이용관, 허진호, 김동호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의 뿌리를 찾아서
- 감독
- 홍효숙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김소영, 왕호, 박행철, 오승욱, 차승재, 로우 카, 신상옥, 윌리엄 파이퍼, 임원식, Sam Ho, 이형표, 이효인, 안수현, 진봉진, 웡 아인 링, 이용관, 조영정, 홍효숙
차승재
- 참여 작품
- 인 드림즈 (2022), 의리적 구토 그 후, 100년의 구투 (2020), 그녀의 비밀정원 (2019), 유쾌한 영배씨 (2014), 패션왕 (2014), 닥터 (2013), 노크 (2012), 수목장 (2012), 바비 (2012), 자칼이 온다 (2012), 천국의 아이들 (2012), 영화판 (2011), 초대 (2011), 도시의 연애담 (2011), ●REC (2009), 스토리 오브 와인 (2008), 길 (2008), 1724 기방난동사건 (2008), 트럭 (2008), 라듸오 데이즈 (2008), 어깨너머의 연인 (2007), 7월 32일 (2007), 이장과 군수 (2007), 죽어도 해피엔딩 (2007), 용의주도 미스신 (2007), 사랑따윈 필요없어 (2006), 비열한 거리 (2006), 각설탕 (2006), 국경의 남쪽 (2006), 올드미스 다이어리 (2006), Mr. 로빈 꼬시기 (2006), 무도리 (2006), 뚝방전설 (2006), 열혈남아 (2006), 천하장사 마돈나 (2006), 호로비츠를 위하여 (2006), 타짜 (2006), 달콤, 살벌한 연인 (2006), 슈퍼 따릉이 (2005), 연애의 목적 (2005), 천군 (2005), 소년, 천국에가다 (2005),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의 뿌리를 찾아서 (2004), 내 머리속의 지우개 (2004), 슈퍼스타 감사용 (2004), 남극일기 (2004), 말죽거리 잔혹사 (2004), 범죄의 재구성 (2004), 연애(연애는 미친짓이다) (2004), 역도산(力道山) (2004), 늑대의 유혹 (2004), 싱글즈 (2003), 지구를 지켜라! (2003), 살인의 추억 (2003), 결혼은, 미친짓이다 (2002), 정글쥬스 (2002), 로드무비 (2002), 봄날은 간다 (2001), 고양이를 부탁해 (2001), 썸머타임 (2001), 인디안 썸머 (2001), 화산고 (2001), 와니와 준하 (2001), 마리이야기 (2001), 디지털 삼인삼색 2001 (2001),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2000), 사월의 끝 (2000), 킬리만자로 (2000), 무사 (2000), 청춘 (2000), 시월애 (2000), 플란다스의 개 (2000), 그렇게 김순임은 강두식을 만났다 (1999), 행복한 장의사 (1999), 유령 (1999), 아름다운 인간 유영길 (1998),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8),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태양은 없다 (1998), 비트 (1997), 모텔 선인장 (1997), 깡패수업 (1996), 돈을 갖고 튀어라 (1995),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1994), 너에게 나를 보낸다 (1994), 101번째 프로포즈 (1993), 걸어서 하늘까지 (1992), 미스터 맘마 (1992), 청춘
수집자료
한홍합작영화 인터뷰- 차승재 촬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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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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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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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1인 시위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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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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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 Ari The Korean C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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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재 인터뷰 녹취풀이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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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재 대표, 아직 몸 덜 풀렸나…'자칼이 온다' '수목장' 등 흥행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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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인터뷰 녹취풀이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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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100년]봉준호의 <괴물>(2006) 현대 한국영화의 정점을 만들다
현서를 찾으려는 강두 가족의 사투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산업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분 산업의 활기는 2006년 정점을 찍었다. 2003년부터 80편대를 기록하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6년을 기점으로 100편을 넘어섰다. 2001년 50%를 넘어 2004년부터 60%대에 육박하던 한국영화 점유율도 급기야 2006년 63.8%를 기록했다. 현재(2018년 기준 50.9%)까지도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된 비율이다. 이처럼 2006년이 한국 영화 산업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보여준 해였다면, 2007년 이후는 위기 혹은 조정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2006년 7월 긴 논란 끝에 결국 스크린쿼터 즉 한국영화 의무 상영제도가 73일로 축소되었고, 때마침 버팀목이라도 무너진 듯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거세졌으며, 한국영화 관객은 감소했고 수익률과 수출 실적 또한 하락했다. 2007년 50%로 내려선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8년 42.1%까지 떨어졌다. 2007년부터 시작된 산업의 하락세가 불과 2년 만에 극복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2009년 시장과 관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하더니, 2011년부터는 극장 관객과 매출액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영화도 4년 만에 다시 시장점유율 50%대를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2012년을 기점으로 한국영화산업은 관객 수, 매출액, 수익성 면에서 도약하며 불황의 그늘을 완전히 떨쳐냈다. 한국영화 점유율도 다시 60%대에 육박하게 된다. 2013년 영화산업은 다시 호황을 맞이한다. ‘천만 영화’가 말해주는 것들 2004년 < 실미도 >(강우석, 2003)와 <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2004)로 시작된 천만 관객 영화가 한국 영화 산업의 상승 국면과 연동되어 등장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2005년 < 왕의 남자 >(이준익)가 1,200만, 2006년 < 괴물 >(봉준호)이 1,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2000년대 중반 영화 산업의 활력을 대변했다. 그리고 2년간의 체질 개선을 거친 2009년 < 해운대 >(윤제균)가 천만 영화 대열에 다시 합류했다. 따져보면 천만 영화가 등장한 것은 산업이 회복됐다는 신호가 강해진 시기다. 이후에도 2012년 < 도둑들 >(최동훈) <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 2013년 < 7번방의 선물 >(이환경) < 변호인 >(양우석), 2014년 < 명량 >(김한민) < 국제시장 >(윤제균), 2015년 < 암살 >(최동훈) < 베테랑 >(류승완) 등 매년 2편씩의 천만 영화가 잇달아 등장하며, 한국영화산업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한국영화의 천만 관객 동원은 무엇보다 영화산업의 양적 규모를 확대해나가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큰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천만 영화는 제작사의 역량이나 투자배급사의 물량 공세만으로 달성되기는 힘들다. 넓은 층위의 관객들에게 일정한 공감을 얻어야 하는 동시에 개봉 시점 한국 사회의 분위기나 관심사와도 들어맞아야 한다. 어쩌면 천만이라는 숫자는,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넘어선 일종의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의 장르나 경향으로 일별하기 힘든, 각기 당대의 복잡한 맥락이 새겨져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괴물>은 대형 배급사가 150억 원의 총 제작비를 투여하고 스크린 독과점 이슈까지 발생시킨 영화였지만, 영화적으로는 다른 천만 영화들이 목표로 한 대중적 화법에서 가장 벗어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봉준호라는 특별한 감독이 산업과 행복하게 결합한 덕분이었다. 봉준호 감독 영화광 출신의 감독, 글로벌 영화로 나아가다 한국의 ‘영화청년’은 어떻게 감독이 될 수 있을까. 봉준호 는 한국에서 감독이 되려는 영화청년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된 감독이다. 영화광으로 출발한 그가 개척한 길은, 현재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인상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그의 구체적인 행보뿐만 아니라 독특한 감각의 영화 세계, 양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1969년생인 봉준호는 대학에서는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로 입학해 영화를 공부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첫 단편영화 < 백색인 >(1994)을 만들었고, 영화아카데미에서는 < 프레임 속의 기억 >(1994)과 졸업 작품으로 < 지리멸렬 >(1994)을 연출했다. 이후 충무로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김유진·장현수·정지영·박철수·박종원·장길수·강우석, 1996)에서 각색과 연출부를 경험했고, < 모텔 선인장 >(박기용, 1997)에서 각본과 조감독을 맡았고, < 유령 >(민병천, 1999)의 각본도 썼다. 많은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6년가량 그저 버텨보는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감독 데뷔의 기회는 후자의 두 작품을 제작한 차승재의 우노필름에서 얻었다. 한 대학 시간강사가 일으킨 소동을 통해 한국 사회를 빗대 보는 < 플란다스의 개 >(2000)는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인상적인 데뷔작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작품이다. 특히 봉준호 영화 세계의 원형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꼭 다시 확인해야 할 영화이기도 하다. 2003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1980년대의 시대상을 투영해 풀어낸 < 살인의 추억 >이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하며 연출 역량을 인정받았고, 2006년 세 번째 장편 <괴물> 역시 국내를 넘어선 흥행과 비평적 지지를 받으며 봉준호는 21세기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의 반열에 오른다. 2009년 네 번째 장편 < 마더 >는 모성을 미스터리의 소재로 삼아 한국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며 국내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2013년 450억 규모의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글로벌 영화 신에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2017년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제작한 < 옥자 >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처음 진출하기도 했다. 봉준호는 이제 한국영화를 넘어, 그의 이름 자체가 영화 브랜드가 된 국제적인 감독이 되었다. 현서가 갇혀 있는 하수구 공간 미학으로 승화된 스타일, 한국사회에 대해 발언하다 영화 <괴물>이 탁월한 지점은, ‘괴수영화’라는 장르적 표면(환상)과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발언(리얼리티)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아낸 것이다. 이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정교하게 설계된다. 첫 장면은 2000년 시점의 미8군 용산기지 영안실, 감독은 수평 구도의 미장센과 인물의 어깨너머 쇼트를 활용해 관객을 영화 속으로 이끈다. 2000년 실제 발생한 사건인 주한 미군의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을 직접 인용한 영화는, 바로 2002년 한강에서 낚시하던 사람들이 돌연변이 물고기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2006년 한 중소기업 사장이 한강으로 떨어져 자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극 중 동료/관객에게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 잘 살아들”이라는 말을 남기고 한강 밑으로 빠져든다. 우리 소시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둔하게 살고 있는가. 빗물이 떨어지는 수직 구도의 한강을 배경으로 ‘괴물’의 타이틀이 나오고, 영화는 한강변 매점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노란 염색 머리의 남성 강두(송강호)를 보여준다. 아버지 희봉(변희봉)이 운영하는 매점에서 딸 현서(고아성)와 같이 사는 그는 한눈에 봐도 좀 모자란 사람이다. 하지만 강두는 딸에 대해서만은 절대적인 애정을 보이는 인물로, 이후 영화가 진행하면서 현서와 관련된 일이라면 순간적으로 똑똑해지고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희봉과 현서가 매점 안에서 고모 남주(배두나)의 양궁 대회 중계를 보고 있는 동안 한강변에 괴생물체가 나타난다. 한강을 찾은 시민들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낀 강두는 그들과 같이 괴물에게 먹을 것을 던지는 등 장난을 친다. 우매한 대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평 구도가 인상적인 장면이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괴물이 지상으로 올라와 공격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한다. 백주 대낮 살육의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영화는 한강 다리 위 버스 속 할머니의 시점으로 그 전경을 보여주며 현실감을 놓치지 않는다. 강두는 현서의 손을 잡고 도망가다 놓치고, 현서를 꼬리에 감은 괴물은 한강 속으로 사라진다. 희생자들 가족이 집결한 단체 장례식장, 희봉의 말대로 현서 덕에 남주와 남동생 남일(박해일)까지 모든 가족이 모이게 된다. 죽을 힘을 다해 현서를 찾는 이들은 국가가 아닌 강두의 가족이다. 2014년 4월 전 국민의 비극이 된 사고처럼, 국가 시스템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국민의 생존을 방해할 뿐이다. 시민들 역시 행동은 고사하고 감정적으로도 다른 이의 불행에 연대하지 못한 채, 강두 가족의 사투를 방관한다. 어쩌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는 전광판의 TV 뉴스를 보며 횡단보도에 서 있는 퇴근길 직장인들의 모습에서 압축적으로 묘사된다. 역시 수평 구도를 활용한 이 장면에서 사람들은 실체도 없는 바이러스 보도에 이목을 빼앗겨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할 뿐이다. 과연 영화 속 괴물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국가주의 혹은 미국이라는 패권국에 대한 비판일까. 아니면 자각하지 못하는 대중, 개인의 이기심 나아가 휴머니즘의 상실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의 복합체가 괴물일 것이다. 권력 피라미드의 하층부에서 수평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민중은, 괴물에 잡히는 순간 수직 구도의 하수구로 떨어져 살아 나오지 못한다.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한강으로 떨어져 자살한 남성이 경고했듯이, 우리 소시민들은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자신만 챙기다가 계급 구도의 가장 밑바닥으로 하강해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앞둔 순간, 괴물은 현서와 남자아이를 삼킨 채 다시 땅으로 올라온다. 결국 괴물을 물리친 것은 현서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진한 강두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들은 현서의 시신을 찾는다. 끝내 감독은 해피 엔딩을 선택하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은 눈이 내리는 한강변의 매점이다. 이제 강두는 현서가 돌보던 남자아이와 단둘이 산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을 지키는 이는 여전히 총을 놓을 수 없는 검은 머리의 강두다. 에필로그 현재 한국영화는 150억 원 이상의 고예산을 투여하는 대작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2006년 <괴물>이 만들어낸 정점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지점은 바로 한국사회에 대한 발언과 작가주의적 연출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으면서도 천만 이상의 관객으로부터 응답받은 것, 즉 작품성과 흥행성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는 의미의 성취다. 감독의 발언은 선동이라기보다 세련된 우화에 가까웠고, 섬세한 연출 스타일은 미학으로 승화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대중 상업영화의 오랜 경계까지 무너뜨렸다. 지금 ‘천만 영화’라는 욕망을 품고 선보이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과연 <괴물>이 도달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가? 흥행 성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주목받지 못하는 고예산 영화들이 반복되는 현재야말로, 산업의 양적 성장을 질적 수준으로 전환시킨 13년 전의 <괴물>을 복기해볼 시점일 것이다. 2016년 7월호부터 시작한 ‘한국영화사 100년’의 연재를 예정했던 20회보다 빠른 18회로 마치게 되었다. 한국영화 제작이 처음 운을 뗀 김도산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1919)부터 2000년대 박찬욱과 봉준호의 작품까지, 이 연재는 각 5년의 시기마다 주목해야 할 감독과 그 영화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예술영화보다는 대중영화라는 장에서, 작가주의를 견지하면서도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을 선정했고, 대체로 그 작품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업영화로 기록된 경우였다. 2010년대를 대표하는 두 감독과 영화를 선정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재 초기부터 고민을 멈추지 못한 2010년대 이후의 두 감독을 선정하는 작업을 일단 유보해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물론 필자 역시 여러분이 떠올릴 몇몇 감독을 생각했고 그들이 훌륭한 작품을 선보였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박찬욱, 봉준호처럼 대중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를 지워낸 감독이 등장했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 힘들 것 같다. 남겨진 숙제는 다른 지면에서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그동안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월간스크린]무림 학원 전설: <화산고> (김태균, 2001)
2001년 | 싸이더스 감독: 김태균 | 원작: 서동헌 | 각본: 서동헌 정안철 허균 박헌수 김태균 | 제작: 차승재 | 촬영: 최영택 | 미술: 장근영 김경희 | 음악: 박영 | 특수효과: 정도안 | 무술감독: 이응준 | 시각효과: 장성호 CAST 김경수: 장혁 | 유채이: 신민아 | 장량: 김수로 | 송학림: 권상우 | 소요선: 공효진 | 마방진: 허준호 | 교감: 변희봉 | 요마: 차시은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화두 중 하나는 컴퓨터 그래픽이었습니다. 그 역사는 채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적잖은 기술적 축적이 있었고, 테크놀로지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콘텐츠만 만나면 폭발력을 지닐 듯했습니다. < 화산고 >(2001, 김태균)는 그 첫 시도입니다. 이후 < 해운대 >(2009, 윤제균 )이나 최근 < 신과 함께 > 시리즈(2018~2019, 김용화 ) 등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블록버스터의 시작은 <화산고>였던 셈이죠. 무협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을 결합한 이 영화는 어쩌면 반 걸음 정도는 앞서 간 실험이었는데요, 개봉 당시엔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월드 마켓에서 마니아 층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현장 공개는 6월 말, 어느 여름 밤에 이뤄졌습니다. 장소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도양’이라는 곳이었는데요, 지금은 도로 사정이 나아져서 서울에서 5시간 정도 걸리지만 당시엔 장장 7시간을 가야 했던 곳입니다. 소록도로 가는 배가 떠나는 부두 근처에 있는 어느 폐교에 세워진 야외 세트는 장관이었는데요, 전국을 뒤지며 1,000개에 달하는 폐교를 둘러본 끝에 헌팅한 장소입니다. 운동장 양 끝엔 거대한 조명탑이 있고, 그곳엔 ‘火山’ ‘武’ 같은 한자가 새겨진 붉은 휘장이 걸려 있습니다. 살수차는 지하수를 끌어 올려 폭우를 만들어내고, 카메라는 크레인에 올라가 있었으며, 무술 팀은 끊임없이 와이어를 잡아당기던 분주한 밤 현장이었습니다. 이날 촬영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수학 교사 마방진(허준호)과 주인공 경수(장혁)의 대결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와이어 액션이었는데요, 마방진의 가격에 경수가 하늘로 치솟는 장면 때문이었죠. 허리에 와이어를 매단 경수의 몸이 한 순간에 갑자기 솟구치는 장면을 위해, 카메라 밖에선 무술 팀(이른바 ‘땡김이’)이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와이어를 잡아 당깁니다. 10번 넘는 테이크 만에 OK 사인이 났는데요, 카메라 앵글을 바꿔서 그 장면을 반복합니다. 그때마다 장혁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져야 했고요.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 같습니다. 12개의 살수구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면 ‘우중 액션’이 시작됩니다. 어릴 적 우연하게 뇌전벽력을 맞아 극강투기를 가지게 된 경수. 그는 여덟 번 퇴학을 맞고 아홉 번째 전학으로 화산고에 옵니다. 영화 < 짱 >(1998, 양윤호 ), 드라마 <학교>(1999)로 고등학생 이미지가 강했던 장혁에게 <화산고>는 어쩌면 운명적인 캐릭터였을지도 모릅니다. 마방진 역의 허준호. ‘빌런’ 캐릭터로 허준호만큼 다크 포스를 내뿜는 배우도 많지 않을 겁니다. <화산고>에서도 경수를 압도하는 엄청난 힘을 보여줍니다. 장혁은 경수를 “바보스럽지만 바보는 아닌” 캐릭터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느낌을 만들어내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11개월 동안 이어진 촬영은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신인급 배우에게 결코 쉽지 않았는데요, 촬영이 끝났을 땐 마치 학교를 졸업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화산고> 현장에서 와이어는 장혁에겐 마치 신체의 일부와도 같았습니다. 거의 항상 몸에 달려 있었으니까요. 거친 액션을 소화하느라 온몸에 멍이 들었고, 일곱 번 기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엔 너무 익숙해져서, 와이어에 매달린 상태에서 자장면을 먹을 정도가 되었다네요. 1997년 어느 공모전에 출품된 시나리오가 하나 있었습니다. <화산고>였죠. 당선되진 않았지만 그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었던 김태균 감독은 원작자 서동헌에게 영화화 제안을 했는데요, 처음엔 직접 연출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이후 < 키스할까요? >(1998)을 마친 후 불현듯 <화산고> 시나리오가 떠올라 친구인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에게 제안했고, 2년에 걸쳐 <화산고>를 만들게 됩니다. 촬영에 11개월, 후반작업에 6개월. 당시 한국영화로선 파격적인 제작 일정이었죠. <화산고>의 클라이맥스 액션 신은 마치 서부극을 연상시킵니다. 김태균 감독은 이 대목에 대해 “총과 총의 대결이 아니라 물 싸움으로 변형”시켰다고 설명합니다. <화산고>는 제작 노하우에서 그 어떤 참고 자료도 없었던 영화입니다. 의도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와이어 액션을 위해 홍콩 액션 팀을 불러올 수도 있었지만, 컴퓨터 그래픽을 해외 업체에 맡길 수도 있었지만, 모두 국내 인력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그래야 뭔가 쌓인다는 판단 때문이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제작비와 일정이 늘어났죠. “아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영화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지막지한 괴로움을 겪었어요. 과연 이 영화를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했죠.” 김태균 감독의 말입니다. 김태균 감독은 <화산고>를 “근사함과 망가짐이 공존하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주 촌스러운 구석도 있고, 만화적인 톤도 있지만, 근사한 비주얼과 스펙터클이 결합된 영화. 그런 면에서 <화산고>는 거대하면서도 무모하고 한편으론 용기 있는 시도였습니다.
[월간스크린]사랑이… 변한다: <봄날은 간다>(허진호, 2001)
2001년 | 싸이더스 감독: 허진호 | 각본: 류장하 이숙연 신준호 허진호 | 제작: 차승재 진가신 히데시 미야지마 | 촬영: 김형구 | 미술: 박일현 | 음악: 조성우 CAST 상우: 유지태 | 은수: 이영애 | 할머니: 백성희 | 아버지: 박인환 | 고모: 신신애 허진호 감독의 < 봄날은 간다 >(2001)는 그의 데뷔작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과 함께 한국의 멜로, 로맨스 장르를 이야기할 때 영원히 언급될 작품입니다. “사랑이 변하니…” “라면 먹고 갈래요?” 같은 대사들의 일상적 울림과 함께, 이 영화는 ‘연애’라는 관계에 깃들어 있는 씁쓸한 감정들을 리얼하게 드러냅니다. 현장 공개는 2001년 여름에 있었습니다. 상우(유지태)가 은수(이영애)에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하는 바로 그 장면이었죠. 묵호시 삼본아파트 앞, 해안도로와 바다가 함께 하는 그곳. 버스에서 내린 은수는 상우에게 다가가 이별의 말을 전합니다. 현장은 너무나 조용했는데요, 가끔 새 소리나 동네 아낙들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습니다. “우리 헤어지자.” “내가 잘할게.” “헤어져.” “너 나 사랑하니? (침묵) 사랑이 변하니… (침묵) 헤어지자…” 연인이 이별하는 일반적인 장면이지만, 그 감정을 영화에서 제대로 표현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허진호 감독은 ‘숏-리버스 숏’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테이크를 사용합니다. “두 사람의 시간이 실시간으로 한 번에 진행될 때와, 시간을 잘라서 붙여 놓았을 때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에요. 난 전자의 느낌이 더 좋았어요.” 이 영화의 카메라는 김형구 촬영감독(맨 오른쪽)이 잡았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작인데요, 김형구 촬영감독은 유 감독님의 촬영부 출신이었죠. 허진호 감독은 현장에서 스스로를 “헤매는 스타일”이라고 말하는데요, “설명도 안 하고, OK 사인도 잘 안 주고 그러는데, 스태프들이 많이 이해해주었다”고 고마움을 전합니다. 은수는 사랑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어쩌면 사랑을 믿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영애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독님은 물론 배우와 스태프를 통틀어서 아무도 은수에 대해 똑 부러지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뭐라고 한마디로 말하기가 참 어려운 인물이에요. 하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버스 안 현장 모습입니다. 모자를 쓴 허진호 감독 뒤로 류장하 조감독이 보입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는데요, <8월의 크리스마스> 조감독이기도 했죠. 2004년엔 < 꽃피는 봄이 오면 >으로 감독 데뷔했고 < 순정만화 >(2008) < 더 펜션 >(2018)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9년 2월 3일에 5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한번 감독님의 명복을 빕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허진호 감독이 미소 지으며 보고 있네요. 이영애는 자신과 유지태와 허진호 감독의 성격이 비슷했고, 그래서 현장에서 잘 맞았다고 하네요. 한편 허진호 감독은 “과연 사랑은 변할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변하는 것 같아요. 그게 나쁜 것도 아닌 것 같고. 사람 자체가 변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모습을 지키려는 것도 좋지만, 변해가는 것에 대해 집착하고 붙잡으려 한다면 행복해지는 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허진호 감독은 은수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은수도 혼자 있을 때는 힘들어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는 활발하고 자기중심적이 되는 여자예요. 그래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우는 사랑을 처음 해보는 거니까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은수는 사랑이 없어지면 사랑했다는 사실조차 부정해버릴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에요.”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가 자신에게 “일종의 실험”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스럽게’ 채워나가는 느낌의 연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자연스러움’을 경계해야 했고요.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의 감정 연기가 조금은 달랐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진짜 감정을 다루니까요.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다고 정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고 슬퍼하진 않잖아요. 실제로는 직장에 나가 일도 하고 그러죠. 영화 속에서 상우가 은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는 신이 있는데, 속으로는 슬프고 힘들지만 둘 다 겉으로는 슬퍼하지 않아요. 그런 내재된 슬픔이 보는 사람에게 전이될 수 있는 영화가 <봄날은 간다>라고 생각해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영애는 “슬펐다”며, 그래도 좋았던 건 ‘소리’였다고 합니다. “평소 자연의 소리에 민감한 편이었고 관심도 많았기에 소리를 채집하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한편 유지태는 “멜로 영화 같지 않다”는 게 첫인상이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슬픔을 다룬 영화거든요. 누구나 슬픔이 있잖아요. 사랑하고, 헤어지고, 잊혀지는 슬픔.” “이 신에선 상우가 화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은수가 나가니까 좀 이상한데.”(허진호)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닐까요?”(이영애) “그럼 이번엔 제가 나가는 걸로 한 번 해볼게요.”(유지태) 세 사람은 하나의 테이크가 끝나면 마치 오누이들처럼 소곤소곤 모니터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다음 테이크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이별 장면은 쉴 새 없이 변했는데요, 은수가 상우에게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상우가 그 손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대사를 빼기도 하고, 은수와 상우가 번갈아 가며 화면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10번이 넘는 테이크가 이어졌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봄날은 간다>에서 되도록이면 설정하지 않고, 콘티도 만들지 않고, 상황만 던져준 채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각자 포커스를 달리한 두 배우의 투 숏입니다. 허진호 감독은 유지태의 첫인상을 ‘맑다’라는 형용사로 표현하는데요, 촬영 전에 상우는 어떤 사람일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영애는 첫 만남부터 조금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하네요. < 선물 >( 오기환 , 2001) 현장에서 바로 올라왔는데, 공항인가 역 화장실에서 막 세수를 한 맨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허진호 감독은 유지태에서 “물이 안 채워진 유리잔처럼 배우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빈 잔에 물이 조금씩 채워져서 찰랑찰랑 넘칠 때쯤 영화가 개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백지상태에서 함께 조금씩 그림을 그려나가길 바라셨던 거죠.” <봄날은 간다>는 한국의 싸이더스의 홍콩의 어플라우즈 픽쳐스와 일본의 쇼치쿠가 공동 제작한 영화입니다. 제작 발표회에서 각국 제작진과 배우, 감독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맨 오른쪽에 홍콩의 제작자인 진가신 감독이 보이네요. <봄날은 간다>는 “소리를 채집하는 사운드 엔지니어의 이야기”라는 설정에서 발전한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작가들과 영화사 기획실 사람들의 연애담들이 하나둘씩 보태졌고, 그렇게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8월의 크리스마스>에 비하면 <봄날은 간다>는 훨씬 더 거칠고 현실적이며 기복이 큰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