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 공룡 수호대
- 감독
- 이동욱
- 제작년도
- 2009
유튜브에 ‘< 시실리 2km > 명장면’이란 검색어를 넣어보자. 임창정 과 우현 이 ‘나이’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임창정이 연기한 양이가 우현이 맡은 조직의 막내 해주에게 나이를 묻는다. 해주는 ‘개띠’라고만 말한다. 양이는 그를 1982년생, 1970년생으로 추측하다가 둘 다 아니라는 말에 “앞으로 나에게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화를 낸다. 해주는 “왜요?”라고 묻는데, 이때 양이는 “그럼 니가 94냐?”라며 신경질을 부린다. 흘리듯 들리는 이 대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현의 얼굴 때문에 꽤 웃기다. '성숙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나이’를 연결 짓는 이런 유머는 <시실리 2km>를 연출했던 신정원 감독의 신작 <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에서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이번에도 ‘94년생’이 언급된다.) 이 장면에서 피식 웃고 나서야 새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이 꽤 오랜만에 보는 신정원 감독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제목부터가 신정원 감독의 전작들을 포괄하고 있었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죽어도 죽지 않는다’란 설정은 기괴한 긴장감과 웃음을 터트린다.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외계인이 그런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인간도 그런다. 언뜻 별 특이할 게 없어 보이는 설정이다. 그런데 신정원 감독의 영화에서는 죽여도 죽지 않는 인간이 딱히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가 왜 죽지 않았는가를 아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특별한 설정이 된다. <시실리 2km>에서 권오중 이 연기한 석태가 겪는 ‘죽음의 연대기’를 돌이켜보자. 변기에 뒤통수를 부딪혀 쓰러진 그를 모두가 죽은 줄 안다. 그런데 안 죽어서 삽으로 쳤더니 쓰러졌길래 또 죽은 줄 알았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그는 애타게 구조신호를 보내는데, 하필 머리에 못이 박혀서 또 죽은 줄 알았다. 이번에는 땅에 묻었는데, 그래도 그는 살아난다. 어디에도 그가 왜 죽지 않았는 가란 설명은 없고, 관객도 그걸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지 석태의 끈질긴 생명력과 그보다 더 끈질긴 불운이 <시실리 2km>의 웃음을 이끄는 리듬이었을 뿐이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죽지 않는 인간의 불운은 인공지능 스피커와 스타일러 덕분에 더 밀도 높은 긴장감과 웃음을 주고 있다. 신정원 감독의 영화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관객의 예상과 상관없이 ‘불쑥’ 등장하는 순간들이다. <시실리 2km>에서 귀신이 된 송이( 임은경 )가 나뭇가지를 톱으로 자르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서트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는 < 차우 >에서는 포수 천일만( 장항선 )이 가른 멧돼지의 배에서 커피믹스 봉지가 나오는 장면을 최고로 꼽는다. 백만배( 윤제문 )가 자신의 개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또 백만배가 변수련( 정유미 )과 우유와 연양갱 등을 나눠 먹는 장면 등이 모두 딱히 이야기의 흐름과는 상관없지만, 키득거리게 되는 장면이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도 이런 순간은 곳곳에 있다. 죽은 연인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모래시계> 혜린의 테마’, 주인공 남편의 쉬지 않는 여성 편력을 설명하다가 등장하는 ‘3만 원어치의 경유를 마시는 장면’, 잠시 기억을 잃은 인물이 반복하는 ‘초등학교 어디 나왔어요?’란 대사. 정교한 계산으로는 배치할 수 없는, 그저 ‘어쩌다 하필 그 자리에 놓여 있다’고만 말할 수 있는 그런 장면이 신정원 감독이 영화가 가진 개성이다. 종합하자면, 신정원 감독의 영화는 너무 뻔뻔해서 뻔뻔하다고 지적할 생각조차 나지 않는 뻔뻔함의 영화다. <시실리 2km>에 나온 마을 주민들의 캐릭터와 흡사하다고 할까?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치기’ 위해 일부러 라면 국물을 들이켰던 그들의 모습처럼 신정원 감독의 영화에서는 가장 뻔뻔한 순간에 가장 크게 웃을 수 있다. 그래서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의 아쉬운 부분 또한 ‘뻔뻔하지 못한’ 순간들이다. 외계인의 존재 이유와 그들의 목적을 설명하는 ‘지구 외 생명체 검역 관리소’ 같은 설정이 꼭 필요했을까? 왜 굳이 그들을 등장시켜 외계인과의 한 판 액션을 벌이게 했을까? <차우>에서 ‘백백교’ 교주의 죽음을 멧돼지와 연결시켰던 것처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도 더 뻔뻔하게 외계인을 이용했다면 어땠을지. 그랬다면 <시실리 2km>와 <차우>를 보았던 그때처럼 웃었을 것 같다.
폴리아티스트란 영화에 나오는 목소리와 음악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진짜처럼 재창조하며 그 소리에 감정까지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엔지니어’가 아닌 ‘아티스트’라고 불린다. 2008년 처음 폴리아티스트란 일을 시작했으니 내년이면 딱 10년째다. 처음엔 이 직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나 군대에서 TV를 보다가 우연히 폴리아티스트란 직종을 처음 접했고, 그 후로 막연히 이 일을 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사운드 후반 작업은 크게 대사, 폴리, 이펙트, 앰비언스로 나뉜다. 그중의 한 파트가 바로 내가 담당하는 폴리(Foley) 파트이다. 군 제대 후 학교에 복학하고 주위 선배, 친구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운 좋게도 학교 선배 중 한 분이 폴리아티스트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락처를 받아내고 여러 번의 연락을 거쳐 어렵게 선배가 일하는 장소로 구경을 가게 되었다. 첫눈에 난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폴리아티스트란 직업의 매료되어 버렸고, 무조건 폴리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건하게 다졌다. 그 이후로도 선배에게 계속 연락하며 선배가 일하는 회사에 자주 놀러갔었는데 그때 회사에서 작업하던 작품이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었다. 그때 선배가 “한번 녹음해볼래?” 해서 엉겁결에 폴리 부스에 들어가 쇠사슬 소리와 자물쇠 소리를 녹음을 했고, 그것이 바로 내 인생 최초의 폴리 녹음이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마다 선배 회사에 놀러 가게 되었고 운 좋게 학생 인턴에 뽑혀 한 달간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 미쓰 홍당무 >를 할 때였는데, 선배들이 녹음하는 걸 한 달간 지켜보면서 더욱더 이 일에 대한 애정이 깊어만 갔다. 한 달 학생 인턴이 끝나고 선배 회사에서 아티스트를 뽑는다는 연락을 받았고, 대망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8월부터 회사에 출근하라는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회사에 폴리아티스트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선배가 폴리 녹음하는 현장을 구경하고 선배가 작업한 폴리세션으로 에디팅 하며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느낌이 들어 회사에서 작업했던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입사하고 약 한 달간 40~50편의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주위 환경 때문에 폴리녹음을 밤 10시부터 시작했는데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폴리 녹음을 구경하는 시간이 계속 반복되었다. 선배가 녹음을 하지 않는 시간이나 쉬는 날에 혼자 나와서 걷는 발, 뛰는 발 등등 발 연습을 했고, 길을 걸으면서도 앞에 지나가는 사람의 걸음을 따라 하는 연습을 가장 많이 했었다. 그래도 혈기왕성했던 신입 시절, 뭔가 아쉬웠는지 당시 회사가 대치동에 있었는데 퇴근하고 삼성 코엑스에서 심야 영화로 영화를 항상 챙겨보고 했었다. 회사에서 그때 진행 중이던 작품은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 < 쌍화점 > < 핸드폰 >이었는데 선배가 작업하는 걸 보면서 녹음하는 방식이나 걷는 방법, 소리 내는 방식을 배우려 부단히 노력하며 똑같이 따라 했지만 나에겐 전혀 그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또 좋은 소리도 아니었다. 사람의 몸은 모두 달라 단순히 따라 한다고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결국 내 방식을 찾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러던 중,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 마더 >였다. 본격 폴리아티스트로 투입된 첫 작품인 만큼, 내가 이 영화의 폴리를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것에 굉장히 부담스럽고 떨리며 긴장되었지만 한편으론 폴리아티스트로서 제대로 작업을 하게 되어 기쁜 마음도 컸다. 편집본을 받고 그림을 보며 제작부에게 폴리도구를 요청을 했고, 그래서 약재, 약재 자르는 칼, 문아정( 문희라 )의 마네킹, 도준 모( 김혜자 )의 신발, 침 상자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이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도준 모의 신발, 즉 도준 모의 발소리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발들로는 그림과 어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 해서 도준 모의 신발을 요청하여 받았지만 김혜자 배우의 발이 무척 작아 신을 수조차 없었다. 지금이야 여러 경험을 통해 신발 소리는 충분히 낼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엔 엄청나게 고민이 많았다. 시장에 있는 신발 가게, 백화점 신발 코너 등을 전전하며 비슷한 소리가 나는 신발을 구매하였으나 여전히 그림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결국 영화에 사용된 도준 모의 신발을 억지로 신고 발소리를 녹음하게 되었다. 처음 작업하는 거라 익숙지 않아서인지 선배가 하면 두 번의 녹음으로 끝낼 것을 당시에 난 10번, 20번, 30번을 해야 하나의 소리가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간 연습을 했지만 실제 녹음에 들어가니 그림과 싱크 맞추랴 느낌 맞추랴 강약 맞추랴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녹음을 들어가기 전에 그림을 외운다곤 했지만 정작 들어가면 싱크 맞추는 데 급급했다. 영화 속 인물이 열 발자국을 걸으면 처음에 녹음했던 발 두 개의 소리, 두 번째로 녹음했던 발 두 개의 소리, 세 번째에 녹음했던 발 두 개의 소리... 이런 식으로 열 개의 걸음이더라도 최소 5~10번 정도의 녹음을 해서 하나의 발소리를 완성시켜야했다. 이렇게 작업을 하니 하루 종일 녹음했는데도 약 10분 정도의 분량이 나올 뿐이었다. 그러니 녹음하다 동이 트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작업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 마더 >에서 도준( 원빈 )이 벽에 소변을 보는데 도준 모가 쫓아와 도준에게 약을 주는 장면이 있다. 스파팅 때 봉준호 감독은 도준이 오줌 누는 줄기가 굉장히 세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걸 녹음하려고 정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녹음을 시도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폴리룸이 물바다가 될 정도로 물을 뿌리기도 하고 물총에 넣어 쏴 보기도 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생각처럼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진짜로 소변을 극한으로 참았다가 싸는 소리를 실제로 녹음하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새벽에 녹음기 들고 밖으로 나가 소변 소리를 녹음했고(녹음 후 청소는 깨끗이 했다...) 결국 영화에 실제로 쓰인 소리는 나와 폴리 레코딩 한 선배의 소리, 그러니까 두 명이 소변보는 소리가 쓰인 것이다. 이후 과정은 무사히 끝냈고, 그렇게 나는 폴리아티스트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 폴리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고 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면 정말 소리를 쉽고 편하게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고민은 끝이 없다. < 차우 >의 멧돼지 발소리, < 해운대 >의 물소리, < 설국열차 >의 각 칸마다 들리는 발소리, < 최종병기 활 >의 속도감이 느껴지는 발소리 등등 매 작품마다 다르고 어렵고 그래서 고민하며 여러 에피소드가 불쑥불쑥 생기지만 그중 가장 어려운 건 각 캐릭터마다 소리를 다르게 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캐릭터의 성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건 늘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술을 한잔 걸치고 집으로 향하는 발소리, 상대방에게 복수하고 돌아가는 발소리, 슬프지만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즐거운 척 하는 발소리... 발소리 말고도 장례식장에는 담배를 꺼내 피는 소리, 양아치가 씹는 껌 소리 등. 영화에 나오는 여러 장면, 여러 감정들을 소리로 표현해 내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다양하게 녹음하여 그림과 딱 맞는 소리를 찾는 건 정말 인내심이 많이 요구된다. 1 더하기 1은 2. 이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며, 그냥 듣는 내 귀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는 거니까. 100%의 정답도 없고 100%의 오답도 없는 그런 분야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운드의 최종 목적은 딱 하나다. 너무 당연하고 간단한 것 같지만 ‘진짜 같은 소리’를 만드는 것. 관객들이 듣는 소리는 진짜 리얼 사운드는 아니지만 그게 마치 리얼하게 느껴지고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며 폴리아티스트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면 난 성공한 거로 생각한다. 10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최종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또 노력하겠다.
1. 올해 내가 꼽은 열한 편의 리스트를 살펴보니 한국영화가 1편, 아시아 영화 3편, 남미영화 1편, 유럽영화가 6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영화가 많은 반면 북미 영화는 단 한편도 포함되지 않았다. 유럽영화 중에서는 < 아페림! Aferim! > <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 Chuck Norris vs Communism > 등 루마니아 영화가 2편이나 포함되었다. 지극히 사사로운 방식으로 리스트에 올린 3편의 아시아 거장들의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영화의 관계를 해석하고 풀어가는데 유독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깊은 공감을 느낀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거나 친숙하다고 말할 수 없는 무협영화에서조차 그러한 감정을 느꼈으니 거기에는 아마도 단순히 개별 감독과 작품과의 교감을 넘어선 ‘아시아’라는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과 경험치들이 어떤 식으로든 녹아있기 때문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 택시 >는 20년간 일체의 영화촬영과 인터뷰, 해외출국을 금지당한, 말하자면 예술인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거장의 영화적 열정과 혼이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영화이다.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무릎을 꺾을 만한 상황에서도 파나히 감독은 쉽사리 성마른 분노와 좌절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라고 왜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내면의 분노를 자신의 나라, 사람들을 향한 깊이를 측량하기 어려운 애정과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사랑하는 자의 분노란 이런 것이라는 것. <택시>를 보면서 이란 당국이 제아무리 거장의 입에 재갈을 채우고 예술혼을 꺾으려 해도 그들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한 경외감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협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장르적 쾌감을 모조리 제거해버린 이 정적이고 불친절한 무협영화에서 관객이 따라가야 하는 것은 활극의 동적인 쾌감이 아니라 주인공 섭은낭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내적 고뇌이다. 4:3 화면은 일찌감치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감을 접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몸속에 쌓여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나게 된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거장의 영화적 고집에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젖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매우 부드럽고 달콤하며 쉬운 영화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에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전작들에서부터 영화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감독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깊이 전이되어 왔던 관객으로서, 한층 경쾌해진 그녀의 이번 고백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 자개단추 Pearl Button >는 2010년 작품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Nostalgia for the Light >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의 전반부를 보면서 구즈만 감독도 늙었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쇠꼬챙이처럼 꼿꼿한 자세로 불의에 맞서고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던 감독들이 나이가 들어 둥글둥글하고 원만해진 태도로 세상과의 화해를 설파할 때, 세상은 이런 영화들에 대해 종종 ‘노인의 지혜’ ‘현자의 깨달음’이라는 두루뭉술한 헌사를 바치곤 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의 초반부에 카메라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천체를 관측할 때, 이 감독도 우주의 법칙 운운하며 역사와 인생의 포용을 이야기하려는구나, 라고 속단했다. 그러나 완전히 틀렸다. 그의 시선이 우주와 자연을 경유해 인간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극대에서 극소로, 우주의 역사와 땅의 역사를 연결하며 결국은 훨씬 깊고 넓어진 시야로 아물지 않은 인간과 역사의 고통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영화의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에서 우주를 향하던 시선은 <자개단추>에서는 생명의 기원인 물, 바다로 향한다. 칠레의 땅과 바다, 원시 부족의 삶과 물방울 속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밟으며 우리는 다시 유구한 역사를 거쳐 현재로 돌아온다. 개인적으로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에 비해 <자개단추>의 성취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멈추지 않는 거장의 거대한 조망의 노력과 시야의 확보, 영화적 성취에 경의를 표한다. 이번 리스트에 올린 유럽의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가운데 지적인 발견의 즐거움까지 주는 영화들이다. 45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아온 노부부의 신뢰와 애정이 우연한 계기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가는 과정을 잔인하도록 섬세하고 냉랭하게 보여주는 심리극 < 45년 후 45 Years >를 제외하면 < 코베인: 몽타주 오브 헥 Cobain: Montage of Heck > <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 > < 수메 - 혁명의 사운드 Sume - The Sound of a Revolution > < 아페림! >은 매끄러운 영화적 만듦새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미지의 영역에 접근해 다양한 층위에 대한 발견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들이었다. <수메, 혁명의 사운드>는 그린란드에 대해서라면 기껏해야 < 북극의 나누크 >가 알려준 것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나의 일천함을 비웃으며, 그린란드 최초의 록밴드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현재, 음악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알려주었고,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와 <아페림!> < 의미의 창조 The Creation of Meaning > 역시 유사한 체험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기도 해서 기회가 된다면 일견을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이 글에서는 201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각본상) 수상작인 라드 주드 감독의 <아페림!>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2. < 아페림! >은 루마니아 지방 귀족의 아내와 정사를 벌이고 도망간 집시 노예를 잡아오라는 영주의 명령을 받고 노예를 찾아 나선 순사 코스탄틴과 그의 아들 이오니타의 여정을 다룬 로드무비이자 루마니아 판 수정주의 웨스턴이다. 영화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집시 노예제도는 14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 중엽 폐지된 제도라 하는데, 공산당 집권 시기에 이 제도에 관한 기록은 루마니아의 공식 역사에서 삭제된다. 수백 년 지속된 인종차별제도의 유산이 현재에도 루마니아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중요한 사건이 공식 역사에서 사라짐으로써 현대 루마니아인들은 대안적인 역사 연구나 아카이브 등의 제한된 정보를 통해서만 근근이 사라진 과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감독은 시끌벅적한 하이브리드 장르의 외피를 빌어 사라진 과거의 이미지를 희미하게나마 복원하고자 한다. 엔딩 자막에 나와 있듯이 이 영화의 몇몇 내레이션과 대사는 역사적 기록에 기반하고 있다. 사라진 역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감독 자신이 19세기와 친숙해질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 감독은 영화 내내 수없이 인용되는 민간전승 문화와 루마니아, 외국 작가들의 문학을 선택한다.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멘탈리티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는 최대한 그 시대의 언어에 가깝게 다가가 익숙해지고자 했고 그 결과를 영화 속에 녹여낸다. 그러나 감독은 과거를 재현하는 어떠한 시도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영화를 35mm 흑백 와이드로 촬영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 영화가 역사에 대한 주관적이고 인공적인 재연물(re-enactment)”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그가 재연(re-enactment)한 역사 역시 그의 역사적 관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순사 코스탄틴은 감독의 비전을 대행하는 페르소나이자 관찰자이다. 1835년 루마니아 남부 지역 왈라키아를 출발해서 중부 유럽 카르파티아 산맥 등 루마니아의 수려한 자연을 통과하면서 코스탄틴 부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종차별주의, 노예제, 계급차별, 여성의 열악한 지위 등 당대 루마니아의 여러 문제들과 조우한다. 코스탄틴은 구시대와 근대 사회의 문지방에 위치한 인물이다. 한편으로 그는 스스로 구시대의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자신 역시 한 발을 구시대에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뱉어내는 말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격적인 슬랭들이다. 이러한 언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인종차별주의적 편견을 드러낸다. 한편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낡은 지식을 비웃고, ‘법의 준수’를 강조하며 잡혀 온 노예에 대해 잘못한 만큼만 처벌해달라고 영주에게 부탁할 만큼 근대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이다. 패트릭 갬블러는 이러한 코스탄틴 캐릭터에 대해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와 돈키호테 사이”의 인물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코스탄틴 부자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는 루마니아에 만연한 인종차별주의의 기원을 희극적이면서도 날카롭게 탐구해 나간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모든 민족, 인종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그들에 대한 편견을 쉼 없이 나열하는 신부의 모습일 것이다. 각 민족에 대한 그의 장광설은 집시에서 유대인까지 모든 민족과 종교를 총망라하는 백과사전적 편견의 보고라 할 만하다. 모든 인종이 다 모인 유럽의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결과적으로 코스탄틴 부자의 여행은 구시대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코스탄틴의 정체성의 위기를 야기한다. 코스탄틴은 몸의 절반을 구시대에 담가온 인물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죄 없는 노예를 풀어주자는 아들의 부탁에 영주에게 죽음 아닌 다른 적절한 처벌을 부탁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무색하게도 귀족의 복수는 경악스러울 만큼 살벌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다. 그의 폭정은 노예뿐 아니라 마을의 주민들, 심지어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잔인한 처벌 후에 영주의 성을 나서는 코스탄틴의 풀 죽은 모습은 어딘가 측은하다. 변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힘내. 신은 벌레 하나도 돌보시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아. 우리는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대로 사는 거야.” 그것은 변명 같기도 하고 체념 같기도 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선인장이 흔들리는 루마니아의 광활하고 텅 빈 평원으로 들어왔던 처음 모습처럼, 이제 두 사람은 임무를 마치고 공동체를 떠나는 황야의 사나이처럼 석양을 향해 사라져 간다. 영웅의 소명을 마치고 퇴장하는 웨스턴의 주인공들처럼 그들 역시 무대를 떠나지만 무대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영화의 제목인 ‘아페림’은 ‘브라보’라는 뜻의 루마니아어이다. 코스탄틴이 노예를 잡아왔을 때 영주는 ‘아페림!’이라고 외친다. 코스탄틴 부자의 여행은 구체제의 질서가 얼마나 완고하게 지속되는지, 진보와 변화는 얼마나 느리게 진행되는지 보여주었다. ‘아페림’이라는 감탄사는 과거를 향한 아이러니한 수사일 뿐 아니라 그 과거의 영향 아래 있는 현재 루마니아 사회에 대한 역설적 논평이기도 할 것이다.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이 영화가 미래를 향해 어느 정도 문을 열어놓았는지, 코스탄틴 부자는 어디를 향해 떠나갔는지는 관객이 직접 판단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