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의 전성시대
- 감독
- 김사겸
- 제작년도
- 1975
- 출연
- 송재호, 염복순, 최불암, 이순재, 도금봉, 윤영, 최지혜, 지계순, 이영미, 송미림, 이승열, 추봉, 임성포, 김기범, 이예성, 김진태, 이정애, 권일정, 김애라, 석인수, 김신명, 김경란, 장길수, 손전, 박광진, 김승남, 임생출, 김지영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도시 공간은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여 온 시간의 레이어가 중첩된 결과물이다. 어떤 곳은 레이어의 층위가 그다지 많지 않아 과거의 모습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반면, 어떤 곳은 너무 많은 층위가 겹쳐 불과 수년, 수십 년 전 모습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도시 중에서 사회·문화·정치·경제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서울의 도시 공간은 아마도 대부분 후자에 속할 것이다. 특히 서울 도심부는 불과 1세기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일제강점기, 광복, 6·25 동란, 군사정변과 산업화라는 역사의 격랑을 거치며 무수히 많은 시간의 레이어가 촘촘히 덧씌워져 왔다. 이러한 서울의 역사적 조건은 미시적인 변화상(예를 들면 1960년대 서울은 1950년대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가)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각각의 레이어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 주도로 제작된 <대한뉴스> 및 각 관청에서 촬영한 행정 기록용 사진들은 여전히 상당수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 기록은 ‘국가의 시선’에서 취사 선택되었다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대한뉴스>의 제작 목적은 국가 정책 홍보와 대국민 계몽이었으며, 관청 사진들 또한 행정 결과 보고라는 목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면 민간(시민)의 시선에서 날 것 그대로의 도시 공간에 가장 근접한 기록은 무엇일까? 당대 시민의 생활상을 담아낸 영화 작품이야말로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영화 < 마부 >(강대진, 1961)는 서울에 거주하는 서민 가정의 가장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그린 작품이다. 김승호 가 분한 가장 춘삼은 1960년대 서울에서 이미 전근대적 운송업으로 취급받기 시작한 ‘마부’이며, 그의 자식들은 당시 서울 시민 대다수를 차지했던 서민 가정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모든 등장인물이 서울 시내 각지를 방황하는 이야기 전개상 4.19 혁명 직후 서울 시내 곳곳의 모습이 명확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흑백 영화라는 시대적 한계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거리의 모습 때문에 첫눈에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춘삼네 식구들의 희로애락이 투영된 장소가 지금도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서울 시내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60년 전 서울의 어느 서민 가정을 매개체로 하여 95분의 러닝타임 속에 담긴 60년 전 서울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옥인길에서 촬영된 세련된 오프닝 시퀀스 <마부>의 오프닝 시퀀스는 춘삼의 작은아들 대업( 김진 )이 훔친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내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업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그 형태, 그리고 1960년 10월에 치러진 보궐선거(서울시의원 종로 제1선거구) 벽보와 배경의 산세로 보아 지금의 누상동·누하동의 옥인길로 추정된다. 시퀀스로 미루어 춘삼네 집은 옥인길 초입에서 5분가량 걸어올 라가면 나오는 옥인동 47번지 일대의 비탈진 곳에 위치했으리라 짐작된다. 지금은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으로 인해 한옥과 판잣집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영세한 필지만큼은 춘삼네 가족이 머무르던 시절을 담고 있다. 장충동에서의 근대-전근대의 교차 다음으로 주목할 장면은 작은딸 옥희( 엄앵란 )가 남성과 자동차를 타고 가다 마차를 끄는 아버지 춘삼과 길에서 마주치는 씬이다. 숭정문이 저 멀리 내다보이는 가운데, 장충동의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근대의 문물(자동차)과 전근대의 문물(마차)이 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도로를 지배하는 교통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옮겨간 시대적 배경에서, 이는 춘삼이 겪는 가난이 사회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드러내는 씬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영동 성남극장 극중에서 춘삼과 수원댁( 황정순 )이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는 곳은 남영동의 성남극장이다. 1918년 세워진 ‘경룡관(京龍館)’을 전신으로 하는 성남극장은 서울의 수많은 초창기 영화관이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극장 건물이 남아있는 드문 사례다. 한강로를 건너는 춘삼과 수원댁의 배경에는 서울전차의 원효로 분기선이, 교차로에는 221호 전차와 1950년대 후반 출시된 미제 닷지 트럭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우마차의 시대가 이미 종결을 고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은 트럭과 전차의 출연은 당시 서울의 교통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물류의 중심지, 서울역 마차를 끄는 춘삼과 수업( 신영균 ), 그리고 ‘서울소화물’이라 적힌 화물 오토바이를 모는 창수( 황해 )는 당시 서울역 북서쪽에 위치한 화물 취급소를 자주 찾는다. 트럭 운송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대부분의 장거리 화물은 기차로 서울에 옮겨졌고, 이를 시내 각지로 운반하는 영세 운송업자들은 자연스레 서울역 서쪽으로 모여들었다. 맞은편 북쪽에는 서울수산시장(1975년 노량진으로 이전, 現 서소문역사공원)이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물류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찻길 옆 시가지, 청파동 춘삼은 기찻길 옆 돌다리 위에서 수원댁과 만나 담소를 나눈다. 오른쪽으로 기차가 지나가고, 개천이 흐르며, 왼쪽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점에서 이곳이 옛 만초천을 복개한 청파로 부근임을 알 수 있다. 이 일대가 서울역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임을 감안하면, 화물 취급소로 향하던 춘삼이 자연스레 수원댁을 만났다는 공간적 개연성이 확보된다. 수원댁과 헤어진 춘삼 너머로 보이는 높은 굴뚝은 1930년대부터 존재했던 철공소(청파동1가 183번지)의 것으로, 오랜 세월 청파동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마부> 촬영 이후에도 60년 가까이 살아남았으나 2019년에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왼편에 철공소 굴뚝이 보인다. 해당 철공소 건물(1938년 12월 준공, 2019년 철거. 사진: 필자 제공) 불안한 해피엔딩, 중앙청 앞 율곡로 <마부>의 결말은 오프닝과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오프닝의 카메라는 누하동의 굽이진 골목길을 어지럽게 쫓아가지만, 결말의 카메라는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 춘삼네 가족이 중앙청 청사와 옛 경기도청 사이의 율곡로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큰아들 수업의 성공으로 춘삼네 가족이 더 이상 서울역 화물 취급소, 누하동 비탈길, 장충동 교차로를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간적 단절을 의미하는 듯하다. 다만, 과연 춘삼네 가족에게 그런 미래가 찾아왔을까? 현실의 서울에서는 수업의 성공으로부터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5.16 군사정변이 발발했고, 독재정권이 도시계획을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서울 도시 공간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춘삼네 가족과 그들의 삶이 투영된 서울 또한, 결말의 줌 아웃을 끝으로 그 이전과 단절된 셈이다. <마부>는 95분의 러닝타임 동안 미처 글에 담지 못한 장소들(노들섬 한강대교, 문배동 오리온 제과공장, 충무로 대한극장 앞)을 포함해 서울 시내 십여 곳에서 직접 촬영을 진행하고, 이를 ‘어딘가에 존재했을 법한’ 서울 사람의 생활 동선으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부>가 첫 개봉으로부터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당대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으로 다시금 조명받는 데는 이러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 속 서울의 모습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작품 수에 관객 수를 곱한 것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읽어내야 할 과거 서울의 모습이 무궁무진할 뿐 아니라,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서울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여왔음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시선과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 속 서울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도가 이어지길 바란다. 김영준 연구원이 들려주는, <마부> 속 서울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국영화X공간] 영화 "마부", '1961년 서울의 삶' 클릭!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2010년대 한국 영화에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여성 서사일 것이다. 어쩌면 애초에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남성 서사에 경도되어 영화를 하리라 마음먹었을지 모르는 나조차 이런 생각을 마땅히 한다. 지금 여성 서사는 우리가 마주한 시대정신이다. 2000년대 이른바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도래하기 이전의 옛날 옛적 20세기에,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 방화(邦畫)를 주로 지배한 장르는 ‘에로’였다. 90년대만 해도 나는 한국 영화란 아무 맥락 없이 여자 옷이나 벗기려고 애쓰는 덧없는 이야기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 한국형 착취 장르의 기원에는 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있었고, 그 대중적 효시가 된 한 작품을 오랫동안 원흉으로 생각했다. 나의 이런 편견과 오해가 깨진 것은 미니홈피가 아직 유행하던 시절의 어느 날 밤 EBS에서였다. 영화란 직접 보기 전에 규정하고 떠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 70년대의 밤, 아기 업은 엄마를 조용히 뒤따르는 아이의 뒷모습과 연탄 쌓인 여인숙 골목길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김밥을 파는 행상의 구성진 목소리가 주술같이 들리고, 봉고를 두들기는 재즈 퍼커션 사운드트랙이 깔리면, 어느 여인이 골목에 숨어있다 갑자기 나타나 허연 눈과 이빨과 손톱을 번뜩이며 귀신처럼 화면에 달려든다. 그리곤 경찰들이 어둔 골목의 여성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끌고 간다. 윤락행위 단속에 걸려 속옷 차림으로 팔다리를 바동거리는 여인들 중에 우리의 주인공이 있다. 볏짚 거적 뒤에 숨었다가 들켜선 “난 잘못한 게 없다”는 그녀에게 경찰은 외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숨어?” 새빨간 비닐 재킷을 입고 경찰을 향해 관객을 향해 세상을 향해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손을 뻗는 그녀의 얼굴 위로 주인공의 이름을 담은 빨간색 제목이 뜬다. ‘이젠 그만 가야지, 이젠 정말 가야지, 날이 새기 전에, 미련 없이, 돌아보지 말고 가야지’ 하는 노래와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흘러가는 이 영화가 바로 < 영자의 전성시대 >( 김호선 , 1975)다. 영자, 영자, 영자.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이름이 한동안 가슴에 사무친다. 월남 파병을 갔다 온 청년 창수( 송재호 )는 간밤의 일제 단속에 걸려 파출소에 갇힌 영자( 염복순 )와 3년 만에 재회한다. 창수는 친오빠인 척 영자를 철창에서 꺼내주고, 영자는 창수에게 혀를 메롱 내밀며 살짝 깨무는 시그니처 표정을 지어준다. 헤어지기 전에 창수는 철공소 노동자 막내였고, 영자는 사장 집에 갓 상경한 어린 식모였다. 현재 시점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둘의 과거 속, 순진무구했던 영자는 비록 식모살이 처지라도 자존감과 자기 주관이 뚜렷한 소녀였다. 반말로 “넌 뭐니? 이름은 뭐니? 고향이 어디니?” 짹짹 물어대는 창수에게 영자는 “서울사람들은 아무한테나 반말하나요?” 하고 받아친다. 창수가 먼저 자기 이름을 밝히고 “나도 시골 놈이야” 고백하고 나서야 영자는 창수 얼굴에 고추장이나 묻혀주며 약간 마음을 연다. 영자가 좋아진 창수는 매번 자기만 꿍해서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묻지만 영자는 창수가 그냥 귀찮다. 입대를 앞두고 3년만 기다려 달라고 매달리며 낑낑 우는 창수에게 영자는 “나는 서울에 돈 벌려 왔지 연애하러 온 게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이도저도 안되면 억지로라도 안아보겠다고 달려드는 창수지만 적어도 영자가 싫다고 하면 곧바로 멈출 줄은 알았다. 그러나 피고용인 여자애가 NO라고 한들 멈출 줄도 모르고 멈출 필요도 없는 사장 아들이 영자를 겁탈하고, 이 일로 되레 영자만 쫓겨나면서 영자의 팔자는 기구한 쪽으로 향한다. 영자의 꿈은 돈을 버는 것, “기술을 배워서 평생 혼자 사는 것”이었다.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엄혹한 시대에 자신만의 기술을 가지려던 영자의 꿈은 이미 진취적이고 주체적이었다. 문제는 기술을 배우려면 우선 돈이 들고, 아직 세상은 기술을 갖고자 하는 여성의 의지를 비하할 뿐이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아는 언니조차 “여자가 기술 가져봐야 팔자만 드셀 뿐, 그저 제일 좋은 기술은 그럴듯한 놈팡이 하나 골라잡는 것”이라며 영자의 꿈을 무시한다. 봉제공장 일용직으로 밤새도록 미싱을 돌리며 매일이 고단한 영자는 언니가 집에 남자를 데려오는 날이면 근처 여인숙에 가서 몇 푼을 내고 주인아주머니네 방구석에서 쪽잠을 자야한다. 온종일 재봉틀을 돌려 번 월급은 외상값을 제하고 나자 동전 몇 푼만 달랑 남는다. 정직한 노동의 대가는 황당하리만큼 적었지만, 이때만 해도 영자는 절망하기보단 깔깔 웃었다. 택시를 모는 여성 기사를 보고 운전을 배우리라 마음먹은 영자는 언니를 따라 홀에 나가지만 곧 그만둔다. 언니 말대로 아무리 “돈이 문제”라지만, 아버지뻘 남자들이 추근거리면서 운전 공부를 한다고 하니 집에 가서 밥이나 지으라고 비웃는 곳에 있기 싫다. 그래서 영자는 버스 안내양이 되지만, 매일 콩나물시루 같이 승객들을 미어터지도록 태운 버스에 위태롭게 매달리다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왼팔을 잃고 만다. 나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잊히질 않는다. 그녀의 팔은 말 그대로 슝―하고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70년대 일본의 ‘도에이 핑키 바이올런스’ 영화 따위나 찾아보며 낄낄거렸던 나는 이 한국영화의 표현주의 앞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영자의 전성시대>의 이 씬보다 더 잔인무도한 신체 절단 장면을 알지 못한다. 기술을 배우려던 젊은 여자에게 세상은 팔을 앗아간 값으로 달랑 30만원 보상금을 내어주며 “너무 비관 말고 용기 있게 살아가라”는 헛소리나 지껄인다. “고맙습니다” 말하고 돌아서는 그녀에게 언니는 이 돈으로 미장원을 차리자고 바람을 넣지만 영자는 그 돈을 모두 고향의 늙은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보낸다. 자살 시도에 어이없이 실패하고 돌아와서, 없는 팔이 쑤시고 아파 약을 소주에 타 마시는 영자. 그녀가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온 최소한의 자존과 존엄을 내려놓는 때는, 고통과 슬픔에 지친 나머지 그가 누구든 사람 품에 따뜻하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다. 여인숙 주인의 은밀한 제안에 결국 응한 영자는 이 가난하고 더러운 골목에서 ‘밀로의 비너스’로 거듭난다. 도시괴담에 나오던 팔 없는 매춘부. 그녀가 바로 영자였다. 전역 후 목욕탕 보일러실 구석에서 숙식하며 세신사로 일하는 창수는 다시 만난 영자를 이렇게 내버려둘 수 없다. 김씨 아저씨(최불암)는 네 장래나 걱정하라지만, 창수는 영자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영자의 성병 치료비를 내고 병이 나을 때까지 손님을 안 받고 술도 못 마시도록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그녀를 찾는다. 영자 말대로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이다. 김씨 아저씨의 군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창수는 영자와 같이 살 생각이다. 살림 차릴 최소한의 조건인 전세방 구할 돈은 아직 없지만 창수는 손수 의수를 만들어 영자의 빈 팔에 달아준다. 한쪽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숭고하지만, 받는 쪽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의리 때문이라도 이 사랑을 마냥 받기만 할 순 없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관계도 있지만, 하나 빼기 하나가 0이 되는 관계도 있다”는 김씨 아저씨의 말에 영자는 “마이너스 1”이 아니라 “보태기 1”이 되겠다고 나름대로 발버둥 친다. “두 사람 간신히 같이 끓여먹고 잠 잘 수 있는 방”만이라도 창수 손을 안 빌리고 자기 힘으로 마련하고 싶다. 영자에게 팔 병신 운운하는 녀석에게 주먹을 날린 창수가 구치소에 갇히고,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나기로 한 날. 꼭 오겠다고 한 영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창수도 영자가 왜 안 나타나는지 알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 둘이 다시 헤어지기 전에 영화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 있다. 창수가 한밤중 문 열기 전의 목욕탕에 몰래 영자를 불러 씻기고 때를 밀어주는 장면이다. 창수는 “이 때 좀 봐” 하며 영자의 등을 밀고, 창수에게 몸을 내맡긴 영자는 새삼스레 ‘창피함’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항상 당당하고 창피한 건 없었던 영자는 창수를 만난 이후 이상하게 모든 게 걸핏하면 창피하다. 창수는 영자에게 또 묻는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영자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답하고, 창수는 바라는 대답이 아니라 조금 실망한다. 나는 이 장면을 다시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한 어떤 예의를 발견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저 내가 욕망하는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깨닫는 순간이 있다. 내 옆에서 고단한 숨을 내뱉으며 자는 이 사람이 여자나 남자 따위가 아니라 이 세계를 역시 힘겹게 살아가는 같은 존재일 뿐이라고 깨닫는 순간이다. 그이와 내가 잠시나마 서로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얼마나 기적인가. 조선작의 원작 소설에서 영자는 불에 타죽지만, 김승옥이 각색한 시나리오는 영자를 위한 영화 나름의 다른 결말을 마련했다. 비록 그 시절의 한계가 있는 결말이지만 영화적 진실로서 더할 나위가 없고, 나는 영화가 끝날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내가 이 작품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누군가를 향해 마냥 영화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뿐이지만, 결말만큼은 쓰지 않겠다.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맞잡고 하고픈 말들은 너무 많아요’ 마지막 삽입곡의 이 가사처럼, 어떤 이야기는 말이나 글로 전하기엔 한계가 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인간을, 여성을 착취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여성 주인공을 통해 자본주의가 파괴하고 소외시킨 인간성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후 이 작품의 대중적 성공을 따라 복제, 재생산하며 유행하기 시작한 호스티스 영화들은 에로 장르로 급속히 변화하면서 도중에 인간과 여성에 대한 예의를 대놓고 빼먹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 장르의 영화 속에서도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몇몇 작품들이 오늘날 따로 불리어지기를 바란다. 여성 서사의 기준과 범위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이 적극적으로 포용될 수 있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영자 역할을 한 염복순 배우의 얼굴이 개인적으로 현대 여성의 외모처럼 느껴져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새롭다. 그의 얼굴은 (우리가 백치미라고 왜곡하는) 죄가 없는 순백의 표정에서 세상을 향한 환멸까지 변화무쌍하지만, 내내 자신만의 고고함을 잃지 않는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영자의 전성시대>는 한 시대의 중요한 작품으로 한국 영화에 남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한국 영화 속 여성 서사의 역사에 ‘영자’의 이름이 오래 남아 빛나길 바란다. 그리고 2020년대에는 새로운 여성 화자(들)의 진정한 ‘전성시대’가 도래하길. >> 영자의 전성시대 VOD 보러가기 <<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작진은 종종 스스로 만든 것이건 혹은 피사체의 삶과 환경에 의한 것이건 함정에 빠지곤 한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중심이 상상에 의해 건설된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있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바라보며 서로를 해석해오던 관계와 삶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공동정범 >의 김일란 , 이혁상 감독도 어쩌면 이 함정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가 그들 작품의 첫 번째 미션이었을지 모르겠다. 전작 < 두 개의 문 >은 그 탁월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시퀀스가 빠져있다. 바로 그때 망루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그 당사자들이 석방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 공동정범 >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비극의 시간들을 함께 “기록”해낼 수 없었다. 각자의 기억은 이어지지 않는 파편들로 가득했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상태였고, 서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여기서 김일란 , 이혁상 의 훌륭한 “함정 빠져나오기”의 선택이 이뤄진다. 두 감독은 파편화된 기억을 억지로 조합하여 봉합하지 않는다. “도시 재개발의 야만적 폭력”과 “공권력의 남용”이라는 깃발 같은 화두를 앞세워 이 상황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들은 바로 지금의 상태에서 더 작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제 투덜거리며 누군가를 원망하는 사람 (천주석), 죄의식에 스스로와 주위를 괴롭히며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 (김주환), 자신의 기억과 객관적인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 (지석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와 지금을 연결시켜 읽어보려 애쓰는 사람 (김창수), 그리고 모든 것을 봉합하며 깃발만을 바라보자고 말하는 사람 (이충연)과 함께 두 감독은 엔딩을 알 수 없는 깊은 대화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대화가 놀랍도록 기이하다. 보통의 경우, 제작진이 카메라를 들고 그들 곁으로 가서 이야기를 꺼내도록 독려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의 주체는 실은 피사체가 아니라 그것을 주워 담는 제작진이다. 그러나 < 공동정범 >은 다르다. 마치 카메라는 대나무 숲처럼 그들 곁에 부유하고, 그들은 세상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거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귓속말하듯 카메라에 속삭이기 시작한다. <공동정범>을 독해하고자 할 때 너무나 다층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메라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그 자발적이고 폐쇄적인 웅얼거림을 듣고 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난 감옥에 있을 때 < 두 개의 문 > 이야기를 들었어. 니들은 내 편인 것 같아. 저 카메라는 실은 내 일기장이 될 것이야”라고 주장하는 다섯 명의 생존자들이 카메라에 부탁을 하는 형국이다. “나는 좀 힘든데, 네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전해주겠니?” 그래서 <공동정범>은 영화의 대부분이 주관적이며 복합적이다. 카메라는 옵저버가 아니라 메신저이거나 대나무 숲의 바람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곁들에게 조심스레 전한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 이충연이 눈물을 흘릴 때 관객은 긴장한다. 누군가는 눈물이 흐를 것을 예견하며 제발 카메라가 그때까지 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예견했음에도 눈물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그 눈물은 결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이충연도 카메라를 자신의 메신저로 여기게 된 시작으로 느껴졌다. 바꿔 말하면 <공동정범>의 마지막은 봉합이 아니라 이제 겨우 스스로의 상처 밖으로 조심스레 나와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그들의 결심인 것이다. <공동정범>에 표현주의적인 자유로운 이미지들이 오히려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카메라가 결국 옵져버의 태도로 돌아왔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갖게 되는 어떤 아쉬움은 어쩌면 메신저로서의 카메라 그 너머의 바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가 완성된 후,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영화를 본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천주석은 이충연이 망루에서 제일 먼저 나간 것이 자신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살길을 먼저 보여준 것이고 그래서 결국 그로 인해 우리가 살아남은 것 아닐까하는 이야기를 했다. 난 영화가 세상에 복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역할 중에서 이보다 더 찬란하고 고마운 역할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 공동정범 >은 나에게 이제 세상의 상처받은 모든 피해자들에게 그 상처 너머의 대화를 시작해보자고 넌지시 독려하는 친절하고 상냥한 쪽지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