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해
- 감독
- 김수현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김효진, 김꽃비, 김상현, 서현진, 최민용, 우승민, 김중기, 민석, 김선혁, 이은정, 김봉훈, 염기정, 한재훈, 노기주, 노익현, 김남준, 황영희, 강윤서, 신동민
<여고괴담> 연작은 한국영화사의 독보적인 공포영화 프랜차이즈다(이하 <여고괴담> 프랜차이즈는 ‘여고괴담’으로 기입). 1998년 < 여고괴담 >(박기형)의 예기치 못한 흥행(서울관객 약 65만 추정)에 힘입어 시작된 이 프랜차이즈는 <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 >(이미영, 2021)까지 24년에 걸쳐 총 6편이 제작되었다. ‘여고괴담’은 여고라는 장소, 자살로 추정되는 학생의 죽음,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원혼, 여학생들 사이의 다채로운 감정을 반복한다. 제작사 씨네2000은 프렌차이즈를 유지시키며 여고 공포영화라는 서브장르를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큰 흥행을 하지 못할 때조차 프랜차이즈의 브랜드 파워로 주목 받으며 신인 여성 배우와 감독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해당 프랜차이즈를 론칭한 작품은 1편이지만, 그 정체성을 구축한 것은 2편인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이다. 특히 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을 억압적 기제로만 한정하지 않고 여학생들 간의 그리고 교사와 학생 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상업영화로서는 다소 실험적인 연출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시청각적인 연출뿐 아니라 서사구성에서도 흥미롭다. 영화는 효신(박혜진)이 학교 옥상에서 자살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그린다. 그날 아침 민아(김민선)는 수돗가에서 우연히 효신과 시은(이영진)의 교환일기를 줍고 그들의 관계에 깊이 빠져든다. 교환일기에는 효신과 시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갈등을 빚게 된 과정에 대한 각자의 내밀한 목소리가 적혀 있다. 민아가 읽어 내려가는 페이지는 주로 효신이 쓴 일기로 민아는 효신에 동일시하며 중성적인 외모와 태도를 가진 시은에게 서서히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민아는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게임의 아이템을 먹는 것처럼 효신이 시은을 위해 넣어 둔 별사탕을 먹는다. 효신에 따르면 그 사탕은 독약이다. 효신의 일기는 시은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면 죽게 될 것이라 말한다. 민아는 강렬한 호기심과 불길함을 동시에 느낀다. 영화는 효신과 시은의 사랑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민아의 눈, 동일시 과정, 상상력을 통해 액자형 구조로 구성한다. 민아의 다양한 강도의 몰입은 영화보기, 등장인물을 깊게 이해하기, 2차 창작이라는 관객 행위로 연결해 볼 수 있다. 민아의 친구이자 효신을 향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는 연안(김재인)과 지원(공효진)을 비롯한 학생들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반응과 담론을 은유한다. 효신이 자살한 뒤 학생들은 효신의 죽음으로 휴교령이 내려지면 좋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냉소를 보이거나 효신을 위한 추모 공연을 준비하는 식의 갑작스러운 동정을 보이며 양분된다. 그 어느 쪽도 효신이 왜 자살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거리를 두고 외면하고 혐오하거나 알 수 없는 죄책감에 그를 동정할 뿐이다. 민아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영화에 감응하는 능력을 가진 관객이다. 몰입을 통해 효신과 시은을 이해하게 된 관객으로서 민아는 교육적 역할을 수행한다. 적극적으로 둘의 관계를 탐사하고 자신이 효신의 처지에 있다면 어떠했을 지를 상상하며 심지어는 그 감정을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효신은 스스로를 교육할 뿐 아니라 친구들의 태도도 바꿔보려 노력한다. 효신과 시은의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효신이 자살한 당일에 지속적으로 침투하지만 그것이 교환일기를 읽는 민아의 상상인지, 효신이나 시은의 주관적인 회상인지, 아니면 전지적인 카메라의 과거 시간의 묘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영화에의 몰입과 동일시는 자아와 타자, 등장인물과 관객, 텍스트와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몰입과 동일시의 감각은 효신, 시은, 민아가 서로 텔레파시를 통해 소통하는 것처럼 ‘다르게’ 보고 듣는 방법을 일깨운다. 효신이 신체검사 하는 날 자살을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수치와 규격 속에 고유한 신체와 욕망을 맞추며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방식을 효신은 견디지 못한다. 영화는 시청각적 이미지를 통해서도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한다. 청각적인 측면에서 보면, 난청인 시은에게 효신은 ‘들을 수 있다/들을 수 없다’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깨며 시은이 다르게 들을 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시은만이 효신이 줄을 끊어낸 피아노 건반의 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 주파수의 채널이 다를 뿐이다. 한편, 민아는 신체검사에서 청력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시은을 기지개를 펴는 제스처로 도우며 함께 듣기라는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시각적 연출은 보기와 기록하기의 다채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효신은 시은과 교환일기를 쓰자고 제안한 첫 만남에서 눈부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효신은 주체의 눈동자에 비친 타자의 이미지를 눈부처라고 한다고 말한다. 타자(의 이미지를) 눈에 담는다. 무언가를 본다는 행위는 문자 그대로 타자의 이미지를 자신의 신체에 각인하고 포괄하는 실천이다. 비록 그것이 찰나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영화는 카메라의 시점과 영사되는 스크린을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끊임없이 옮긴다. 연안이 학교에 가져온 비디오카메라는 연안에게서 지원으로, 지원에게서 자신의 수업을 감시한다고 생각해 카메라를 빼앗은 교사에게로, 교무실에서 카메라를 훔친 효신에게 그리고 마지막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제 3자에게로 이동한다. 연안과 지원의 카메라가 비난하고 고발하는 카메라라면, 효신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순간까지 함께 했던 카메라는 소수자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기록하는 카메라이다. 관객을 대표해 서사적 시점의 상당부분을 점유하는 민아는 텍스트를 통해 효신과 시은을 이해할 수 있는 적극적인 매개자의 역할을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스크린이 곧 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둘은 상호영향력을 갖지만 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효신의 자살 후 교사와 아이들은 이상한 현상을 겪고 학교에 갇힌다. 이것이 그저 공포와 죄책감이 전염된 단체 패닉에 의한 주관적 현상인지, 아니면 정말로 효신의 유령이 그들을 학교에 가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관객들은 강당에서 효신과 시은을 환영하고 그들의 관계를 축하해주는 학생들의 모습을 본다. 효신에 대한 혐오를 가장 크게 드러냈던 연안이 케이크를 든 모습을 보며 민아는 안도한다. 그러나 곧 이어 연안은 케이크를 효신의 얼굴에 던지고 이것이 모두 민아의 환상이었음이 드러난다. 텍스트의 주인공에게 동일시하며 스스로 변화를 경험한 관객은 자신과 함께 현실도 변화했을 거라 기대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텍스트로 안전하게 소비되는 동성애, 여학교라는 한정된 장소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폐쇄된 동성애라는 영화 스스로의 한계를 지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아의 바람 혹은 환상이 깨지고 난 뒤 스크린은 다시 눈부처가 각인된 눈동자, 유리천장, 천창 밖으로 보이는 효신-유령의 거대 얼굴로 이동한다. 학교에 갇힌 아이들은 패닉에 빠지고 혼란 속에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친다. 민아는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에 밀려 넘어지고 학교의 유리 천창에 각인된 거대한 효신의 얼굴을 본다. 유리 천창은 눈동자가 되고, 효신의 거대 얼굴은 눈부처가 된다. 효신은 상대방의 신체가 포용하는 눈부처가 되길 원했지만, 아이들로부터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시은으로부터 끝내 거부당한다. 마지막 안식처였던 시은마저 자신을 창피해하면서 등을 돌리자 효신은 자신을 담을 스크린을 잃는다. 클로즈업은 카메라와 대상의 거리가 가까운 쇼트이다. 그 거리는 또한 눈부처를 볼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의 거리이다. 시은을 포함해 다른 아이들이 다가서지 않으며 혐오의 거리를 만들자, 효신은 스스로 거대해지며 그들에게 다가가 눈부처가 된다. 효신은 이해를 원하지만, 그의 클로즈업은 비율이 맞지 않아 낯설고 기이하기만 하다. 그래서 스스로 감응하는 거대 얼굴이 된다. 효신은 자살을 통해 학교를 탈출하고, 학교도 외부도 아닌 옥상에서 시은과의 즐거웠던 한 때로 돌아간다. 둘을 기록하는 제 3자의 시점은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약간의 흔들림과 비디오카메라의 질감을 유지하며 친밀성을 표현한다. 민아, 연안, 효신 그 누구의 시점도 아니다.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그저 기록하려는 태도는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도 둘의 감정과 세계를 지지하고자 하는 영화 그 자체의 시점이다.
2004년 | 튜브픽쳐스 감독, 각본: 김수현 | 각색: 김소정 김봉훈 | 제작: 황우현 황재우 | 촬영: 김철주 | 미술: 박혜성 | 음악: 이병훈 CAST 순이: 예지원 | 963: 김석훈 | 뭐시기: 정재영 | 개코: 박선우 | 장수로: 장선우 | 막내: 박희순 사연은 이렇습니다. 박수무당인 장수로(장선우)는 자신을 찾아온 여인네들에게 씨를 퍼트렸고, 그래서 배다른 형제들이 탄생합니다. 퀵서비스맨 963(김석훈), 레카차 드라이버 개코(박선우), 그리고 조폭인 뭐시기(정재영). 여기에 순이(예지원)이 가세하며 가족을 이룹니다. 순이는 길에서 뻥튀기를 팔다가 우연히 개코를 만나 가족이 되었고, 장수로는 젊은 순이에게 연정을 품죠. 이처럼 < 귀여워 >는 어느 콩가루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현장 공개는 실외와 실내 모두 이뤄졌습니다. 실외는 2002년 11월, 실내는 2003년 1월이었는데요, 영화 개봉이 2004년 11월이었던 걸 감안하면 꽤 간격이 큽니다. 원래는 2003년 5월 개봉이었는데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죠. 공개된 장면은 뭐시기가 아버지 장수로를 찾아온 신입니다. 동네 평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데요, 딱 봐도 건달기가 줄줄 흐릅니다. 역할을 위해 실제 건달과 합숙하면서 연기를 준비했는데 단 며칠 만에 완벽하게 ‘조폭화’되었다고 하더군요. 뭐시기를 바라보는 장수로 역의 장선우입니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파와 콩나물 봉지를 들고 있죠. 사실 <귀여워>의 가장 놀라운 캐스팅은 장선우입니다. 김수현 감독은 장선우 감독의 < 너에게 나를 보낸다 >(1994) < 꽃잎 >(1996) < 나쁜 영화 >(1997) 연출부 출신인데요, 자신의 데뷔작에서 스승을 배우로 모셔온 셈이죠. 원래는 한진희 씨가 맡을 예정이었는데 일정이 지연되면서 무산되었고, 이때 튜브픽쳐스의 황우현 대표가 ‘장선우 캐스팅’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의외로 주변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역할 제안을 하게 되었으며, 처음엔 난처해하던 장선우 감독은 농담처럼 “한번 망해보자”며 승락했다고 합니다. 뭐시기가 앉아 있는 평상 근처의 풍경입니다. 황학동 철거촌 주변 아파트죠. 김수현 감독은 말합니다. “철거는 서울의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죠. 황학동 아파트는 60년대 후반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부의 상징이었는데 10년도 못 가 철거가 거론됐어요. 서울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성격인데요, 끊임없이 변화가 이뤄지지만 실상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어요. 세우고 부수기만 반복할 뿐이죠.” <귀여워>는 지금은 사라진 폐허의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서울에 대한 기록의 측면에서도 가치를 지닙니다. <나쁜 영화> 연출부를 끝내고 일란성 세쌍둥이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던 김수현 감독은, 장수로와 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이야기가 쉽게 풀렸고 그 결과물은 <귀여워>가 됐습니다. 963의 퀵서비스나 개코의 레카차 운전사는 모두 감독이 직접 경험했던 직업이라고 하는데요, 생계를 위해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자연히 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야생적 느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시기 예지원은 < 생활의 발견 >( 홍상수 , 2002) 이후 독보적인 아우라를 지니게 된 배우였죠. 그녀에게 ‘순이’는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안성맞춤 캐릭터였습니다. 좁은 아파트 복도에서 촬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 실내 장면은 양수리 세트에서 촬영되었습니다. 2003년 1월에 개봉된 세트 촬영 현장입니다. 밖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둘째 개코가 발톱을 깎으면서 맞이합니다. 이 역할을 맡은 배우가 왠지 낯익다고 느껴지신다면… 맞습니다. ‘하얀 겨울’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남성 듀오 ‘미스터 투’의 멤버 박선우입니다. 김수현 감독의 동국대학교 영화과 후배인데요, 파격 캐스팅을 통해 이 영화로 데뷔해 신인답지 않는 노련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박선우는 영화음악을 맡기는 줄 알고 연락을 받자마자 김수현 감독에게 달려왔다고 하는데요, 기다리는 건 ‘개코’라는 캐릭터였습니다. 이날 963은 오토바이에 순이를 태우고 질주하다가 함께 집에 들어오는데요, 순이를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하는 장수로는, 아들에게 순이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며 아들의 뒷통수를 갈깁니다. 약간은 비뚤어지고 냉소적이면서 내성적인 963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연기하기 가장 까다로운 역할일 텐데요, 김석훈은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역할을 해냈습니다. 집안 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구조가 매우 특이합니다. 철거촌에 있는 집인데. 집 안도 철거되어 있는 셈이죠. 좁은 세트 안에서 앵글을 만들어내기 위해 구조를 조금씩 바꿔가며 촬영을 했습니다. 당시 예지원의 매니저는 지금은 고인이 된 하용수 였습니다. <귀여워> 시나리오를 읽고 “혹시 예지원이라는 배우를 잘 알고 쓴 시나리오냐?”고 물을 정도로 적역이었다고 하네요. 배우 역시 순이와 자신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준비 과정부터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었고 현장에서 감독에게 가장 힘이 되어 준 배우였다고 합니다. 당시 정재영은 < 킬러들의 수다 >( 장진 , 2001) < 피도 눈물도 없이 >( 류승완 , 2002)로 조금씩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하며 거친 마초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말끝마다 “뭐시기”라는 말을 붙이는 뭐시기는 철거반을 이끄는 건달인데요, 정재영은 거의 완벽하게 역할을 해냅니다. 장수로의 부스스한 헤어스타일도 섬세한 작업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장선우의 연기에 대해 현장 스태프들은 “연기와 연기 아닌 것의 경계에 서 있는 묘한 느낌의 연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김수현 감독은 매우 꼼꼼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감독은 <귀여워>가 결국은 “네 남자가 순이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 영화”라며, 남자들의 그 귀여운 모습이 <귀여워>라는 제목의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감독은 < 창피해 >(2011) < 우리 손자 베스트 >(2017) 등을 내놓았습니다. 김수현 감독은 말합니다. “남자들은 무엇인가 계속 이뤄내려고 하죠. 세상이든 자신이든 끊임없이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정작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반면에 순이는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가벼운 사람인 것 같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요. 그녀는 변화를 주도하지 않고, 상대에 반응하면서 변화를 이끌어내죠. 남자들이 뭔가 이루려고 아등바등해서 세상이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자연에 동조하며,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대안을 보여주는 모델이 순이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국가와 국민,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일까?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아니 역사의 현장에 살고 있는 지금도 늘 되묻는 질문이다. 종종 국가와 국민은 상생이라는 이름하에 국가를 위해 국민을 희생시켜왔다. 국가의 이름으로 권력을 손에 쥔 집단이 프레임을 만들고, 그로인해 가장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본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과 부담을 전담시키는 이 잔인한 구조는 피해자들로 하여금 차마 말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상처와 부끄러움으로 치부되면서 이중으로 고통과 책임을 전가한다. < 서산개척단 >은 박정희 정권 직후 혁명정신을 내세워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거리의 부랑아를 강제로 개척단에 동원한 사건을 다룬다. 사회정화와 국토개발을 전면에 내세운 채 사회적 약자들을 강제 노역시키고 약속한 땅조차 배분하지 않은 국가폭력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피해자는 사회적 상처를 개인의 상처로 간주하며 긴 시간 침묵하며 살아왔다. <서산개척단>은 은폐된 과거 사건을 고발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서산개척단에 동원된 사람들의 상처를 사회적 상처로 인지하게 한다. 산 자에게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죽은 자에게는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서산개척단>을 세 층위로 풀어본다면, 고발과 각성 그리고 애도가 아닐까. 1. 고발 영화는 박정희 정권이 구축한 개발 신화의 허상을 일깨운다. 서산개척단 사건은 마치 부패한 대한민국의 축소판처럼, 국토 개발과 경제발전의 신화 이면에 도사린 착취와 음모, 부정부패를 파헤쳐내고 있다. 사회적 대재난인 6·25로 인해 부모를 잃거나 가정을 잃은 청년들을 부랑아로 몰고, 이들을 개척단에 강제 수용하여 ‘아버지 사랑, 어머니 사랑매’로 일궈낸 땅이 서산개척단이다. 개척단 구성의 이면 때문일까? 영화 속에 감독이 개척단 생존자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인터뷰하는 순간, 감정이 복잡해진다. 부모 잃은 이들에게 부모 역을 해준다며 부모 사랑의 매로 폭행을 가하는 국가와 영화 속에서 대상에게 다가가는 감독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아버지’라는 호명은 영화가 품고 있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양가성을 일깨워낸다. 이처럼 영화는 은폐된 역사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건을 감각해 통증을 유발하는 힘을 갖는다. 2. 각성 영화는 피해자들이 사건을 ‘사회적 상처’로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부끄러움과 믿음에서 시작한다. “(인터뷰) 다 안 한다잖아... 창피해서 안 한다잖아.” “박근혜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그래도 혹시 아버지가 저질러 놓은 일이기 때문에 마무리 좀 해주려나 하는 기대를 걸고 인터뷰하는 거야.” 개인의 일로 치부해 숨기고 말하지 못한 시간, 그런 동시에 국가를 여전히 믿고 바로잡아주기를 기대하는 그 어떤 지점에 피해자들은 놓여있다. 이같은 태도는 영화가 진행되는 속에서도 계속된다. 국가기록원에서 땅 배분 문서를 보고도, 다른 지역 개척단을 만나보고도 “관계자들이 이런 것을 못 봤을 거란 말이지.”라며 국가를 믿는다. 이어 그는 국가를 향해 호소문을 쓴다. 평생 국가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송구함과 미안함을 전제로 국가에게 글을 쓴다. 영화는 사회적 상처를 개인화하고 침묵하고 국가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믿는 피해자의 위치를 포착하고 이를 풀어내는 통로 역할을 한다. 마침내 영화는 피해자들이 은폐된 경험을 사회적 상처로 인지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모아 발화한다. 58년 만에 국회 앞에서 집회하는 서산 주민의 모습이 인상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애도 영화는 산 자의 억울함 뿐 아니라 존재감 없이 사라진 죽은 자도 함께 한다. 영화는 하늘에서 서산개척지를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언뜻 보면, 서산개척지의 지형을 보여주는 장면 같지만 영화는 소리를 통해 그게 다가 아님을 감지하게 한다. 서산개척지를 내려다보는 시선의 주체가 마치 서산을 맴도는 혼령 같기 때문이다. 이는 타이틀 장면 이후 바로 이어지는 제사 장면으로 보다 명료해진다. 위태롭게 맴도는 서산 개척지 위 시선들은 이상범의 울음 장면 이후 안정을 찾아간다. 서산에서 죽음을 부인하던 이상범은 차마 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이어지는 울음을 통해 몸으로 진실을 말한다. 죽음이 인정된 후, 영화는 존재감 없이 사라진 이들의 존재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산평화공원묘지로 보여준다. 묘지에 담배로 재를 올리고, 마침내 영화는 “이름없이 죽어간 개척단원들에게 바칩니다”로 마무리한다. <서산개척단>은 직접적인 제목처럼, 은폐된 서산개척단 사건을 고발하지만, 이와 동시에 산 자의 억울함을, 죽은 자를 향한 애도를 담아낸 작품이다. 사건의 고발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만을 강조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건을 알리되 통증과 애도를 감각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되묻게 한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해서,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할까?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할까? 후자의 국가를 꿈꾸는 게 꿈이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