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노리스 vs 코뮤니즘
- 감독
- 이린카 칼루가레누
- 제작년도
- 2015
1. 올해 내가 꼽은 열한 편의 리스트를 살펴보니 한국영화가 1편, 아시아 영화 3편, 남미영화 1편, 유럽영화가 6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영화가 많은 반면 북미 영화는 단 한편도 포함되지 않았다. 유럽영화 중에서는 < 아페림! Aferim! > <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 Chuck Norris vs Communism > 등 루마니아 영화가 2편이나 포함되었다. 지극히 사사로운 방식으로 리스트에 올린 3편의 아시아 거장들의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영화의 관계를 해석하고 풀어가는데 유독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깊은 공감을 느낀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거나 친숙하다고 말할 수 없는 무협영화에서조차 그러한 감정을 느꼈으니 거기에는 아마도 단순히 개별 감독과 작품과의 교감을 넘어선 ‘아시아’라는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과 경험치들이 어떤 식으로든 녹아있기 때문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 택시 >는 20년간 일체의 영화촬영과 인터뷰, 해외출국을 금지당한, 말하자면 예술인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거장의 영화적 열정과 혼이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영화이다.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무릎을 꺾을 만한 상황에서도 파나히 감독은 쉽사리 성마른 분노와 좌절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라고 왜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내면의 분노를 자신의 나라, 사람들을 향한 깊이를 측량하기 어려운 애정과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사랑하는 자의 분노란 이런 것이라는 것. <택시>를 보면서 이란 당국이 제아무리 거장의 입에 재갈을 채우고 예술혼을 꺾으려 해도 그들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한 경외감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협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장르적 쾌감을 모조리 제거해버린 이 정적이고 불친절한 무협영화에서 관객이 따라가야 하는 것은 활극의 동적인 쾌감이 아니라 주인공 섭은낭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내적 고뇌이다. 4:3 화면은 일찌감치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감을 접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몸속에 쌓여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나게 된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거장의 영화적 고집에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젖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매우 부드럽고 달콤하며 쉬운 영화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에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전작들에서부터 영화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감독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깊이 전이되어 왔던 관객으로서, 한층 경쾌해진 그녀의 이번 고백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 자개단추 Pearl Button >는 2010년 작품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Nostalgia for the Light >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의 전반부를 보면서 구즈만 감독도 늙었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쇠꼬챙이처럼 꼿꼿한 자세로 불의에 맞서고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던 감독들이 나이가 들어 둥글둥글하고 원만해진 태도로 세상과의 화해를 설파할 때, 세상은 이런 영화들에 대해 종종 ‘노인의 지혜’ ‘현자의 깨달음’이라는 두루뭉술한 헌사를 바치곤 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의 초반부에 카메라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천체를 관측할 때, 이 감독도 우주의 법칙 운운하며 역사와 인생의 포용을 이야기하려는구나, 라고 속단했다. 그러나 완전히 틀렸다. 그의 시선이 우주와 자연을 경유해 인간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극대에서 극소로, 우주의 역사와 땅의 역사를 연결하며 결국은 훨씬 깊고 넓어진 시야로 아물지 않은 인간과 역사의 고통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영화의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에서 우주를 향하던 시선은 <자개단추>에서는 생명의 기원인 물, 바다로 향한다. 칠레의 땅과 바다, 원시 부족의 삶과 물방울 속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밟으며 우리는 다시 유구한 역사를 거쳐 현재로 돌아온다. 개인적으로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에 비해 <자개단추>의 성취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멈추지 않는 거장의 거대한 조망의 노력과 시야의 확보, 영화적 성취에 경의를 표한다. 이번 리스트에 올린 유럽의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가운데 지적인 발견의 즐거움까지 주는 영화들이다. 45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아온 노부부의 신뢰와 애정이 우연한 계기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가는 과정을 잔인하도록 섬세하고 냉랭하게 보여주는 심리극 < 45년 후 45 Years >를 제외하면 < 코베인: 몽타주 오브 헥 Cobain: Montage of Heck > <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 > < 수메 - 혁명의 사운드 Sume - The Sound of a Revolution > < 아페림! >은 매끄러운 영화적 만듦새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미지의 영역에 접근해 다양한 층위에 대한 발견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들이었다. <수메, 혁명의 사운드>는 그린란드에 대해서라면 기껏해야 < 북극의 나누크 >가 알려준 것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나의 일천함을 비웃으며, 그린란드 최초의 록밴드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현재, 음악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알려주었고,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와 <아페림!> < 의미의 창조 The Creation of Meaning > 역시 유사한 체험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기도 해서 기회가 된다면 일견을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이 글에서는 201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각본상) 수상작인 라드 주드 감독의 <아페림!>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2. < 아페림! >은 루마니아 지방 귀족의 아내와 정사를 벌이고 도망간 집시 노예를 잡아오라는 영주의 명령을 받고 노예를 찾아 나선 순사 코스탄틴과 그의 아들 이오니타의 여정을 다룬 로드무비이자 루마니아 판 수정주의 웨스턴이다. 영화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집시 노예제도는 14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 중엽 폐지된 제도라 하는데, 공산당 집권 시기에 이 제도에 관한 기록은 루마니아의 공식 역사에서 삭제된다. 수백 년 지속된 인종차별제도의 유산이 현재에도 루마니아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중요한 사건이 공식 역사에서 사라짐으로써 현대 루마니아인들은 대안적인 역사 연구나 아카이브 등의 제한된 정보를 통해서만 근근이 사라진 과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감독은 시끌벅적한 하이브리드 장르의 외피를 빌어 사라진 과거의 이미지를 희미하게나마 복원하고자 한다. 엔딩 자막에 나와 있듯이 이 영화의 몇몇 내레이션과 대사는 역사적 기록에 기반하고 있다. 사라진 역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감독 자신이 19세기와 친숙해질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 감독은 영화 내내 수없이 인용되는 민간전승 문화와 루마니아, 외국 작가들의 문학을 선택한다.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멘탈리티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는 최대한 그 시대의 언어에 가깝게 다가가 익숙해지고자 했고 그 결과를 영화 속에 녹여낸다. 그러나 감독은 과거를 재현하는 어떠한 시도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영화를 35mm 흑백 와이드로 촬영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 영화가 역사에 대한 주관적이고 인공적인 재연물(re-enactment)”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그가 재연(re-enactment)한 역사 역시 그의 역사적 관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순사 코스탄틴은 감독의 비전을 대행하는 페르소나이자 관찰자이다. 1835년 루마니아 남부 지역 왈라키아를 출발해서 중부 유럽 카르파티아 산맥 등 루마니아의 수려한 자연을 통과하면서 코스탄틴 부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종차별주의, 노예제, 계급차별, 여성의 열악한 지위 등 당대 루마니아의 여러 문제들과 조우한다. 코스탄틴은 구시대와 근대 사회의 문지방에 위치한 인물이다. 한편으로 그는 스스로 구시대의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자신 역시 한 발을 구시대에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뱉어내는 말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격적인 슬랭들이다. 이러한 언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인종차별주의적 편견을 드러낸다. 한편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낡은 지식을 비웃고, ‘법의 준수’를 강조하며 잡혀 온 노예에 대해 잘못한 만큼만 처벌해달라고 영주에게 부탁할 만큼 근대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이다. 패트릭 갬블러는 이러한 코스탄틴 캐릭터에 대해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와 돈키호테 사이”의 인물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코스탄틴 부자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는 루마니아에 만연한 인종차별주의의 기원을 희극적이면서도 날카롭게 탐구해 나간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모든 민족, 인종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그들에 대한 편견을 쉼 없이 나열하는 신부의 모습일 것이다. 각 민족에 대한 그의 장광설은 집시에서 유대인까지 모든 민족과 종교를 총망라하는 백과사전적 편견의 보고라 할 만하다. 모든 인종이 다 모인 유럽의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결과적으로 코스탄틴 부자의 여행은 구시대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코스탄틴의 정체성의 위기를 야기한다. 코스탄틴은 몸의 절반을 구시대에 담가온 인물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죄 없는 노예를 풀어주자는 아들의 부탁에 영주에게 죽음 아닌 다른 적절한 처벌을 부탁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무색하게도 귀족의 복수는 경악스러울 만큼 살벌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다. 그의 폭정은 노예뿐 아니라 마을의 주민들, 심지어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잔인한 처벌 후에 영주의 성을 나서는 코스탄틴의 풀 죽은 모습은 어딘가 측은하다. 변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힘내. 신은 벌레 하나도 돌보시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아. 우리는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대로 사는 거야.” 그것은 변명 같기도 하고 체념 같기도 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선인장이 흔들리는 루마니아의 광활하고 텅 빈 평원으로 들어왔던 처음 모습처럼, 이제 두 사람은 임무를 마치고 공동체를 떠나는 황야의 사나이처럼 석양을 향해 사라져 간다. 영웅의 소명을 마치고 퇴장하는 웨스턴의 주인공들처럼 그들 역시 무대를 떠나지만 무대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영화의 제목인 ‘아페림’은 ‘브라보’라는 뜻의 루마니아어이다. 코스탄틴이 노예를 잡아왔을 때 영주는 ‘아페림!’이라고 외친다. 코스탄틴 부자의 여행은 구체제의 질서가 얼마나 완고하게 지속되는지, 진보와 변화는 얼마나 느리게 진행되는지 보여주었다. ‘아페림’이라는 감탄사는 과거를 향한 아이러니한 수사일 뿐 아니라 그 과거의 영향 아래 있는 현재 루마니아 사회에 대한 역설적 논평이기도 할 것이다.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이 영화가 미래를 향해 어느 정도 문을 열어놓았는지, 코스탄틴 부자는 어디를 향해 떠나갔는지는 관객이 직접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장 클로드 반담은 추억의 이름이다. 그 옛날 <투혼>으로 처음 만나 < 어벤저 >로 스타덤에 올랐다. 뭐 요즘에야 < 옹박 >부터 < 레이드 >에 이르기까지 온갖 리얼 액션들이 난무하는 영화계지만 <투혼>과 <어벤저>가 등장했던 당시 그런 순도 높은 리얼 액션은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 아직 시네마테크니 예술영화전용관이니 그런 건 꿈도 못 꾸던 시절 거실에 보통 하나 있는 VHS 비디오데크로 각종 필터링 안 된 영화들을 잡탕으로 구경하던 당시 영화광들은 장 클로드 반담을 비디오로 먼저 만났다는 것에 자부심은 커녕 비디오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B급 히어로’ 정도로만 인식했다. 주로 우리가 ‘반담이형’이라고 부르던 장 클로드 반담의 필모그래피는 그야말로 저렴했다. < 지옥의 반담 >이나 < 더블 반담 > 등 그의 이름이 영화 제목에 등장했지만 그것은 워낙에 반담이형이 액션 광들에게 인기가 많아 수입사에서 억지로 붙인 제목이었다. 그렇게 반담이형은 블록버스터 < 유니버설 솔져 >로 도약하나 했더니 역시 ‘1류’가 되지는 못하고 이후 < 페이스 오프 >를 성공시킨 오우삼의 빈약한 할리우드 데뷔작 < 하드 타겟 >이나 한동안 숀 코네리 주연의 <아웃랜드>니 <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의 공식 속편 < 2010 >같은 영화들로 잘 나갔던 피터 하이암스가 커리어 하이에서 내려온 뒤의 작품 < 타임캅 >과 <서든 데스> 등 ‘괜찮은 감독의 B급 영화’로 연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21세기가 오자 반담이형은 급격히 잊혀졌다. 척 노리스로부터 스티븐 시갈 등 생각이 없이 액션만 달리던 ‘추억의 동작 영웅’ 중의 한 명으로 농담에나 등장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해마다 작품을 하며 <세컨드 인 코맨드>니 < 언틸 데스 >니 하는 제목들로 무의미하게 필모그래피만 늘여가고 있던 중, 2008년 드디어 ‘장 클로드 반담’이라는 그의 이름이 공식 제목으로 사용된 영화를 찍게 된다. 영화 제목이 < 장 클로드 반담 JCVD >다. 이 영화 < 장 클로드 반담 >에서 장 클로드 반담은 장 클로드 반담 역을 맡았다. 자전적인 전기 영화냐고? 아니다. 영화 속의 장 클로드 반담은 앞서 설명한 ‘한물 간 왕년의 스타 장 클로드 반담’ 역으로 등장한다. 2008년 그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연기한다. 대체 무슨 영화길래 설정이 이런 것일까. 영화가 시작되면 누가 봐도 뻔한 액션영화에서 롱 테이크로 각종 권격 액션 연기를 하는 반담을 만나게 된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던 반담은 컷을 외치는 감독에게 다가간다. 마흔일곱의 나이로 커트를 나누지 않고 통으로 찍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항의하는 반담에게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건방지고 어린 감독은 ‘오우삼을 할리우드에 데려간 배우라고 내 영화를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들면 안 되지’라고 시큰둥하게 말하며 무시할 뿐이다. 와중에 감독은 할리우드를 증오하는 듯 할리우드 간판 사진에 다트 핀을 날리고 있다. 그렇게 옛날의 영광은 물론 직업적으로도 ‘찌그러져’있는 반담은 법정으로 출두한다. 바로 딸에 대한 양육권 재판이다. 상대 변호사는 반담의 과거 영화들을 열거하며 그가 영화 속에서 폭력에 몰두했다고 몰아세운다. 반담이 출연했던 영화의 DVD들을 한 장 한 장 집어 던지면서 “차로 뭉개고, 사람 목을 조르고, 칼로 찌르고, 사타구니를 발로 차고...” 그가 행했던 연기들을 열거하며 딸을 양육할 자격이 없음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클로드 반담은 아직도 나이 먹은 관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그냥 길을 걷는 중에 만난 남자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 알아보기만 하지 아무도 그의 현재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영화 < 버드맨 >의 리건 톰슨 같다고나 할까. 돈도 명예도 없는 장 클로드 반담은 은행 업무를 하는 우체국에 들르는데, 갑자기 그곳에서 총성이 울린다. 지나던 경찰이 우체국 안을 보자 장 클로드 반담의 모습이 스친다. 그리고 자신을 겨누는 총구를 발견한다. 경찰은 반사적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장 클로드 반담이 우체국을 털고 있다!” 중계차들이 날아와 이 흥미로운 사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경찰은 인질을 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 클로드 반담과 협상을 벌인다. 와중에 이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 구경꾼들은 무슨 이유인지 장 클로드 반담을 응원한다. 분명히 ‘한물 간 스타가 돈이 없어 은행을 터는’ 모습에 동정심 섞인 재미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반담은 은행 안에서 인질들과 함께 뭔가 어정쩡한 상태로 머물면서 예상을 뒤엎는 스토리가 진행된다. 영화 < JCVD >는 탐라 데이비스 감독의 1990년대 은행 인질 영화 < 베스트 맨 >이나 알 파치노의 < 뜨거운 오후 >를 연상시키는 대치극으로 정체되지 않는다. 법정에서 딸이 ‘아빠가 TV에 나오면 친구가 놀린다’며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거나 시시한 영화에나 출연해야 하는 반담의 현실, 알아보는 사람을 피곤해하면 바로 잘난 척을 한다며 공격받는 피로한 상황 등을 병치하며 흘러간다. 나를 포함해서 세상에서 제일 흔해빠진 ‘한정 공간 영화로 저예산을 극복하고 스토리텔링 기술을 어필하려는 데뷔 감독’의 전형적인 영화처럼 보이던 작품은 예상외로 깊은 감정들을 담아낸다. ‘퇴물 스타가 소동에 빠지는’ 영화는 앞서 말했던 <버드맨>을 비롯해 여러 차례 만들어진 아이템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 버드맨 >보다 7년이나 먼저 만들어졌다. 하지만 < JCVD >는 퇴물 스타가 징징대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장르영화적인 재미는 당연히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퇴물이 되어버린 왕년의 스타가 부르짖는 인생의 소회를 그린다. 도대체 이 희한하게 재미난 작품을 만든 감독은 2015년 현재 어디에 있을까. 2005년 <버질 Virgil>로 장편 데뷔한 감독 마브룩 엘 메크리는 고몽 영화사에서 만든 이 작품 < JCVD >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할리우드로 실려 간 엘 메크리 감독은 어느 한국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할 기회를 얻게 됐다. 야심 차게 각본을 완성하고 제출한 엘 메크리 감독은 스튜디오로부터 의외의 반응을 맞이한다. ‘대본이 너무 좋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당신이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 급의 거장이 연출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여기서 교훈은 ‘할리우드에서 데뷔하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지나치게 잘 쓰면 곤란하다’일까. 그렇게 해당 프로젝트의 감독직으로부터 억울하게도 하차하게 된 엘 메크리 감독은 우연하게도 ‘역시 이미 한물간’ 왕년의 대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하는 액션 영화를 연출하게 된다. 바로 헨리 카빌, 시고니 위버 등이 함께 출연한 < 콜드 라잇 오브 데이 >였다. 흥행에서 대실패를 하고 평가 역시 비참했다. 여기서 우리는 할리우드 밖에서 주목받아 할리우드로 입성해 첫 작품에서 망해버린 여러 감독의 이름이 떠오른다. 장 클로드 반담과 함께 했으며 바로 오늘의 이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기도 했던 오우삼의 이름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다. 2012년 이후 단 한 작품도 연출하지 못하고 있는 엘 메크리 감독은 지금쯤 어떤 각본을 쓰고 있을까. 오우삼 이 결국 < 페이스 오프 >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와신상담의 날이 올 것일까. < JCVD >를 보고 있으면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PS. 참고로 예의 엘 메크리 감독이 감독직에서 하차했던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판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1990년에 나온 < 캡틴 아메리카 >는 마블이 직접 그리고 제일 처음 손 댄 극영화였다. 사실 그보다 앞서 몇 차례 실사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1979년에 나온 건 TV용 영화였고, 1989년에 모습을 드러낸 돌프 룬드그렌 주연의 < 응징자 >엔 정작 마블 딱지가 붙어있지 않았다. 따라 <사이보그>로 이름을 알린 알버트 파이언이 감독하고, 스탠 리가 처음 제작자 크레딧에 오른 이 작품이 실질적인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극영화 데뷔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조악한 완성도와 낮은 배우 인지도로 인해 극장 개봉은 하지 못한 채 비디오로 직행됐다. < 슈퍼맨 >이나 < 배트맨 >으로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린 DC 코믹스와 달리 마블에게는 영화적인 노하우가 부족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제작한 21세기 픽쳐스에 문제가 있었다. 영화화 판권을 산 매너햄 골란은 < 아메리칸 닌자 > 시리즈나 < 델타포스 >, <대특명>과 같은 척 노리스의 B급 액션 영화로 돈을 모은 이스라엘 출신의 제작자 겸 감독이었는데, 이 영화에 앞서 < 슈퍼맨 4-최강의 적 >을 제작해 슈퍼맨 시리즈에 종말을 고한 기념비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날아다니는 방패에 악당 레드 스컬까지 나름 원작 설정에 충실히 만들어졌지만, 예산 부족이란 약점을 커버하지 못한 채 눈 뜨고는 봐줄 수 없는 희대의 망작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두 번 다시 캡틴 아메리카를 큰 스크린에서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캡틴 아메리카(들) 반등은 마블이 영화 제작에 전면에 뛰어들면서 부터였다. 자신의 품을 떠난 < 엑스맨 >과 < 스파이더 맨 >이 놀랄만한 흥행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걸 보자 마블은 단순한 판권 장사나 공동 제공이란 한정된 크레딧에 만족할 수 없었다. 마블 영화에 깊게 개입된 프로듀서 케빈 파이기를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으로 앉히고, 2008년 < 아이언 맨 >을 필두로 < 아이언 맨 2 >, < 인크레더블 헐크 >, < 토르 >를 차례대로 선보이며 성공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화려한 은막 복귀작인 <퍼스트 어벤져> 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퍼스트’라는 제목과 달리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지만 과거와 현재, 인간과 영웅, 신화를 아우르는 <어벤져스> 의 사전 포석으론 비교적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1990년 흑역사 이후 무려 21년만의 성공적인 부활이었다. 재미있게도 감독의 중책을 맡은 이는 조 조스톤으로, 그는 비슷한 시기인 1991년 역시나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만화 원작의 히어로 < 인간 로켓티어 >를 만들어 호평을 받은 바 있었다. 그는 고색창연한 전쟁 영웅을 현대로 데려와 미 패권주의와 내쇼널리즘이란 묵은 때를 벗겨내고, 보다 근본적인 자유와 평화에 몰두하는 진지한 성인군자 코스프레로 제목에 비친 선동적인 시각이나 오해를 피하려 노력했다. 이는 알란 실베스트리가 맡은 고전적이고 영웅적인 스코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DC코믹스와 마블의 영화화 <퍼스트 어벤져>는 바로 전에 개봉한 <토르>처럼 베테랑 작곡가의 힘을 믿었다. 신화적인 묵직함과 고대 비극을 연상케 하는 인물 간의 설정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세익스피어 극에 능통한 (캐네스 브래너 감독과) 패트릭 도일을 등용했듯, 전쟁영화의 외피를 두른 블록버스터 액션물의 진수를 전달하기 위해 밀리터리 사운드와 액션스릴러에 최적화된 작곡가 알란 실베스트리를 선택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B급 영화와 TV시리즈에서 주로 활동을 한 그는 국내에선 ‘기동순찰대’로 알려진 < Chips >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로맨싱 스톤 >에서 템프 트랙 작곡가로 고용되었으나 이 음악이 맘에 든 로버트 저멕키스가 그를 정식 작곡가로 고용하며 메이저 데뷔를 치뤘다. 이후 < 백 투 더 퓨쳐 > 삼부작과 < 포레스트 검프 >, < 콘택트 >와 < 캐스트 어웨이 >, < 폴라 익스프레스 > 등 30년간 저멕키스의 모든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스필버그-윌리엄스나 버튼-엘프만 조합처럼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했다. 또한 코미디나 액션, 스릴러, 공포와 SF, 애니메이션과 서부극 등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활동했으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진취적이고 활력 있는 팝스 오케스트라로 보편화된 미국적인 사운드를 잡아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유행처럼 번진 리모트 컨트롤 류의 사운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작법을 오롯이 영상에 대입, 투영할 수 있는 음악 장인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알란 실버스트리 <퍼스트 어벤져>의 음악은 매혹적이다. 지난 몇 년간 반복해온 자신의 지루한 틀을 깨고 실베스트리는 과거 8-90년대 중반 최전성기 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할 만큼 최상급의 사운드를 완성해냈다. 최근 남발되어온 여느 슈퍼히어로 음악의 전형적이고 피로한 형태에서 벗어나 고전적이고 애국적인 진군가를 갖추며, 캡틴 아메리카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열망과 진지함을 그럴듯하게 꾸며주었다. 자칫 이 영웅적인 찬가가 유치하게 들리거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발현으로 오인 받을 수도 있지만, 선동적이고 노골적인 수식은 최소화한 채 다양한 액션 큐들과 드라마에 적절히 메인 테마를 혼용하며 밸런스를 맞추었다. 실베스트리는 유난히 밀리터리 사운드에 특화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앞서 잠깐 언급된 매네햄 골란의 <델타포스>를 필두로 < 프레데터 >, 아카데미 단편상을 수상한 <투 솔져>, 코미디 < 말뚝상사 빌코 >와 , < A-특공대 >등 다양한 작품에서 발현한 군악대 행진곡 스타일을 여기서도 매끄럽게 녹여내며 특유의 활력을 부여했다. 그런 부분들이 2차 대전이라는 배경과 레드 스컬로 대표되는 흑막의 잔재를 암시하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곡조와 상충되며 묘한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슈퍼히어로’와 과거 ‘전쟁’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과 장르가 뒤섞여 발생되는 하이브리드한 쾌감은 그 어떤 블록버스터 음악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질감과 음영을 남긴다. 전자음을 배제한 대규모 심포닉 사운드의 위력은 사운드트랙 전반에 걸쳐 곳곳에서 드러낸다. 존 윌리엄스나 브루스 브루턴, 제임스 호너를 연상케 하는 장엄하고 영웅적인 메인테마가 바로 그 정점으로, 7-80년대 한참 유행하던 블록버스터 테마를 떠오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할리우드 황금기에 활약했던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나 알프레드 뉴먼, 미클로스 로자 등의 선율까지도 환기시키게 만든다. 하지만 실베스트리는 영화상 최대한 이 테마를 숨겨놓았다가 엔딩 크레딧에 이러서야 행진곡 형태로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낡은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차용한 멋진 타이틀 화면과 함께 어우러지며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안타깝게도 ‘Captain America March’는 디지털 음원에만 포함되어 있고 CD에는 삽입되지 않았다.) 그 외 액션 큐들도 환상적이다. 금관악기를 위주로 스트링과 타악기가 보조적으로 받쳐주며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실베스트리만의 스피드하면서 박력 넘치는 액션 스코어는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나 <프레데터>에서 활용되었던 이래 변함없이 장점으로 발휘됐던 스타일로 아드레날린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든다. ‘VitaRays’나 ‘Kruger Chase’, ‘Motorcycle Mayhem’과 ‘Hydra Train’ 등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가 전쟁 선전에 이용되며 코러스와 같이 채권을 팔 때 흐르던 노래 ‘Star Spangled Man’도 잊을 수 없는 트랙. 전시 어빙 벌린이 만든 곡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디즈니 전담 작곡가로 유명했던 알란 멘켄이 데이비드 지펠과 손잡고 만든 노래로, 그 때 그 분위기가 물씬 살아 숨 쉬며 묘한 기시감을 전달한다. 알란 실버스트리의 OST 음악적인 완성도와 호평으로 인해 알란 실베스트리는 바로 다음해 마블 캐릭터들이 모인 <어벤져스>의 음악을 연달아 맡게 된다. 그는 두 개 이상의 마블 작품을 담당한 첫번째 작곡가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 속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선 떠오르는 신예 작곡가 헨리 잭맨에게 바톤을 넘겨줬지만, 그의 팡파르가 여전히 등장하며 살짝 여운을 남겨두었다.(흥미로운 건 알란 실베스트리가 하차한 <지.아이.조>의 속편 음악도 헨리 잭맨이 넘겨받았다는 사실!) 하지만 언젠가 알란 실베스트리가 마블 영화에 다시 컴백할지 모른다. 70년 뒤에 깨어난 스티브 로저스처럼. 21년 뒤에 성공한 캡틴 아메리카처럼 말이다. ‘Captain America March’ Track List 1. Captain America Main Titles 2. Frozen Wasteland 3. Schmidt's Treasure 4. Farewell to Bucky 5. Hydra Lab 6. Training the Supersoldier 7. Schmidt's Story 8. VitaRays 9. Captain America "We Did It" 10. Kruger Chase 11. Hostage on the Pier 12. General's Resign 13. Unauthorized Night Flight 14. Troop Liberation 15. Factory Inferno 16. Triumphant Return 17. Invader's Montage 18. Hydra Train 19. Rain Fire Upon Them 20. Motorcycle Mayhem 21. Invasion 22. Fight on the Flight Deck 23. This is My Choice 24. Passage of Time 25. Captain America 26. Star Spangled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