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문
- 감독
- 마이클 치미노
- 제작년도
- 1980
- 출연
-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이자벨 위페르, 크리스토퍼 월킨, 존 허트, 샘 워터스론, 브래드 도리프, 조셉 코튼
어쩌면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질문할지 모르겠다. 할리우드 영화사에 거대한 영화사들이 그렇게 차례로 설립되었을 때는 눈길도 주지 않다가 왜 갑자기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에는 관심을 기울이는 건가요, 혹시 유명한 스타들과 감독이 여기에 참여했기 때문인가요. 위대한 이름들, D. W. 그리피스. 찰리 채플린, ‘미국인들의 스위트 하트’ 메리 픽포드. ‘남자 중의 남자’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만일 그렇게 질문했다면 당신께서는 오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 오해가 영화사의 순간들 중의 이 순간의 핵심이기도 하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짧은 우회를 해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가 대중들과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벌어진 일은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빨라도 너무 빠르게 전개되었다.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의 손을 떠나자마자 자본으로 전화하였다. 단순하게 돈을 내고 영화를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화는 시장에서 유통과정을 통해 가치를 구현하는 상품에서 출발하였다. 이 상품이 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유리했던 것은 여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을 자유로운 예술가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고할 필요도 없는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엄청난 주급(週給)을 받는 몇 명의 스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일용직 비정규 노동자들이었다. 영화에서 이윤은 대부분 초과 잉여가치를 바탕으로 발생시켰으며 심지어 이 착취과정은 오늘날까지 일반화되었다. 1917년, 미국 영화산업이 전국적인 규모가 되었을 때 26개의 독립적인 체인을 운영하고 있던 극장주들이 모여 합병 형태의 퍼스트 내쇼널 배급체인(First National Exhibitors Circuit)을 만들었다. 그들은 개봉작과 재개봉작으로 이원화된 극장 배급 시스템에서 개봉일정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고 했다. 영향력은 엄청나게 커졌으며 채플린의 야심작이었던 <개 같은 삶>과 <어깨 총!>의 흥행을 좌지우지하자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를 준비하면서 이들을 <키드>의 촬영현장에 초대하여 이 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설득시켜 상영 일수를 확보하려고 애썼다. 실제로 퍼스트 내쇼널은 미국 영화사에서 메리 픽포드와 채플린 영화를 내세워서 첫 번째 백만 불 흥행수입을 올리기도 하였다. 아직 용어가 등장하진 않았지만 최초의 블록버스터를 독점적 배급체인의 기반 위에서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규모를 확장시켰고 1919년 전국 5,000개 극장을 체인화 시켰다. 물론 이 과정을 이미 할리우드를 장악한 제작사들은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파라마운드 영화사의 아돌프 주커는 공격적인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여기서 자본의 회전속도는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합병과정과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대응 과정에서 복잡한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은 그것만으로 영화라는 자본은 어떻게 자기 축적의 과정을 형성하였나, 라는 셀 수 없는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희생자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계약서 바깥에 놓여있던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들과 출연하는 배우들은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당시의 계약 관례에 따라 영화사와 5년 단위의 주급 계약을 맺었고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면 아무 가치도 없을 계약서를 그들의 동의 없이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영화사를 만들어서 영화를 제작하자는 이야기를 처음 나눈 사람은 찰리 채플린과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그리고 메리 픽포드였다. 여기에 데이빗 W 그리피스와 서부극 영화의 스타 윌리엄 S 하트가 가세하였다. 이들이 모여 영화사를 세운다는 것은 할리우드 전체가 긴장할만한 사건이 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돈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스튜디오에서 안전하게 주급을 받으면서 영화를 연출하고 출연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간단했다. 영화 프로젝트를 그들 자신의 뜻에 따라 거절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이제까지 할리우드는 감독과 배우에게 그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계약은 숫자로 이루어졌고 작품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제작자와 배급업자의 판단에 따라야만 했다. 그들이 영화사 이름을 ‘(하나로) 맺어진, 뭉친, 결합한, (다소 과장해서) 단결한 예술가들(United Artists)’라고 지은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모든 것이 하나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서명 직전에 윌리엄 S 하트는 파라마운트가 편당 20만 불로 인상하면서 여기서 빠졌다. 그때 윌리엄 S 하트는 일 년에 평균 여섯 편의 영화를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 픽포드와 찰리 채플린은 퍼스트 내쇼널 배급체인과 아직 계약이 남아있었다. 그리피스는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서의 자기 지분을 높이기 위해서 퍼스트 내쇼널과 별도로 세 편의 계약을 했다. 단지 더글라스 페어뱅크스만이 아무 계약조건의 단서 없이 자유롭게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 함께 사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다음 아름다운 이야기만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는 영화사의 순간들, 의 다음 순간이 될 것이다) 이것은 돈의 문제이다. 하지만 돈의 이해관계로만 움직이던 할리우드에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는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할리우드에서 이 정신을 이어받은 것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조에트로프 영화사를 차릴 때였다. 스필버그도 자신의 영화사를 가지기를 원했다. 그렇게 뉴 시네마 이후 감독들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몰두하기 위해서 하나 둘씩 영화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자본의 순환 안에서도 누군가는 영화가 예술가의 선택의 문제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 가지 후일담은 덧붙여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마이클 치미노의 어마어마한 야심에 찬 서부극 <천국의 문>의 박스 오피스에서의 재난으로 1981년 MGM에 매각되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거기서 시작했고 거기서 끝났다. 60년에 걸친 역사. 하지만 이 영화의 예술적 야심을 그리피스, 채플린, 메리 픽포드, 더글라스 페어뱅크스는 탓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영화에서 오마주(homage)라는 말은 누벨바그 세대와 함께 도착했다. 그들은 파리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학습’했고, 그런 다음 자신들이 경배하는 위대한 거장들의 영화에 대한 존경을 자신의 영화에 담기를 원했다.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첫 장면, 미셀과 그의 애인이 파리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로셀리니의 < 이탈리아 여행 >의 첫 장면이다. 영화 장면 안에 등장한 오마주는 영화사에 시네필 세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누벨바그 세대가 존경을 바쳤던 대부분의 거장들이 영화가 태어난 1895년과 거의 동시에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들은 문법을 만들었고, 개념을 발명했으며, 과학이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하나의 역사, 하나의 전통, 임권택 을 시네필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신에게 아마도 가장 낯설게 들리는 표현일 것이다. 우리들이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를 보기 위해 거리를 떠돌 때 임권택은 영화를 찍으면서 길거리와 세트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임권택은 취미에서 시작한 영화감독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직업감독이었다. 하지만 임권택의 1960년대 영화들에서 불규칙하지만 반복해서 마주치는 이상한 명단이 있다. 오마주를 바치는 것만 같은 영화들. 리메이크라고 하기에는 원작이 너무 희미하고, 그저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하기에는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흔적을 남겨놓은 영화들. < 남자는 안 팔려 >와 빌리 와일더의 < 뜨거운 것이 좋아 >. < 바람같은 사나이 >와 존 스타제스의 <황야의 칠형제>.(그때 임권택은 <황야의 칠형제>의 원본인 <칠인의 사무라이>를 아직 보지 못했다) < 30년만의 대결 >과 존 포드의 < 아일랜드의 연풍 >. 게다가 그 영화들과 원작을 연결시켜 질문할 때마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셨다. “그때 그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본 거에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나는 그 대답을 하시는 순간의 표정에서 기쁨의 시간을 읽는다. 그 대답에서 임권택 감독님은 자신의 영화를 뒤로 밀어버리고 그 바탕에 있는 밑그림으로서의 영화, 아마도 기억 안의 원(原)텍스트라고 불러야 할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기원에로 거슬러 올라갔다. 영화를 본다는 경험, 임권택은 영화를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벨바그 세대는 앙드레 바쟁의 지도를 받았고, 앙리 랑그루아의 프로그램으로 고전을 보았으며, 서점에서 수많은 영화서적을 구할 수 있었다. 임권택은 첫 영화를 1962년에 찍었다. 그때까지 그는 단 한 권의 영화책도 읽을 수 없었다. 영화를 만드는 법을 배움. 배운다는 문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배울 것인가. 학교 바깥에서 영화를 배운다는 문제. 혼자서 스스로 영화를 배운다는 문제 앞에 서야 했을 때 임권택은 (고전이 아니라) 개봉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다. 그가 좋아한 영화들, 자기가 감탄한 장면들. 하지만 제한적인 목록. 임권택은 그때 한국전쟁이 막 끝난 다음 폐허와 다름없는 서울에 있었다. 한 가지 사실을 환기시켜 주겠다. 그때 아직 남한에는 텔레비전이 도착하지 않았다. 아무도 임권택에게 영화에서의 미학적 문제에 대한 질문의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때 임권택은 무엇이 영화에서 가치 있는가, 에 관한 질문을 정식화시킬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정반대의 자리에 있던 하이데거와 아도르노는 거의 동시에 예술에서의 진리, 라는 질문을 서로 다른 빙식으로 제기하였다. 누벨바그 세대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지도자 앙드레 바쟁이 귀도 아리스타르코와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은 주제인가 형식인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사회적 내용과 주제에 우선하는 미학적 형식의 기준. 영화에서의 질문의 위계질서. 이 논쟁은 아마도 하나의 강령이 되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임권택은 새로운 영화의 시작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었다. 그 안에 들어왔지만 수수께끼와 같은 질서들. 쇼트의 접속. 왜 어느 순간에는 기적 같은 경험을 안겨주는데 어느 자리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문제가 단순하게 시나리오나 대사, 연기의 결함이나 부족에서 멈추지 않고 영화의 내재적 시청각 기호들의 오작동으로 귀결될 때 이 예술은 세계의 무질서에 대해 항상 자기의 질서, 세계와의 사이에서 가져보는 자기의 규칙, 세계와 영화를 연결하는 순간 사이의 연결의 미학에로 이어지는 질문에 이끌렸을 것이다. 임권택의 질문. 그때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을 찾았다. 왜 어떤 영화는 나를 즐겁게 만들고 어떤 영화는 그렇지 않은가. 그 즐거움은 무엇인가. 즐거움의 즐거움, 즐거움의 정체. 정체의 이면. 이면의 질서. 질서의 규칙들, 그 즐거움은 어떻게 이루어져있는가. 심지어 임권택은 그런 영화중의 한 편을 프린트를 구해서 그 즐거움의 순간을 프레임 단위로 들여다보았다. 그때는 영화를 손 안에 넣을 기회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텔레비전이 도착하지 않았다. 아마도 편집실에서 릴을 걸어놓고 보았을 것이다. 그런 영화중의 한 편이 조지 스티븐스의 웨스턴 <세인>이었다. 임권택은 이 영화에서 맛 본 즐거움의 체험을 몇 번이고 말했다. 1956년 11월 2일에 서울에 개봉한 영화. (그때는 대도시에 먼저 개봉한 다음 프린트가 지방 소도시로 배급되었다) 임권택이 정창화 의 연출부를 할 때였다. 1953년 파라마운트가 테크니컬러로 제작한 < 셰인 >은 웨스턴의 영화사에서 < 하이 눈 >과 함께 고전 웨스턴의 시대를 끝내고 이 장르를 변덕스럽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셰인>에게 찬사를 바쳤고(미국 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는 웨스턴사상 베스트 10에 선정했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 탄식을 했다. 앙드레 바쟁은 이 영화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는 <셰인>을 ‘쉬르 웨스턴(Sur-western, 이 정의를 휴 그레이는 영어로 옮기면서 ‘Super western’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이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박상규는 이 표현을 ‘초(超)웨스턴’으로 옮겼다. 쉬르레알리슴(超現實主義)에서 가져온 접두어일 텐데 또 다른 오해의 여지가 있다. 여기서는 ‘발음’으로 옮겼다)’이라고 불렀다. 바쟁은 이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쉬르 웨스턴’들은 고전 웨스턴들과 달리 자신이 웨스턴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이 장르 바깥에서, 이를테면 사회적이거나 도덕적인, 그리고 심리적이거나 정치적인, 혹은 다른 미학적이거나 에로틱한 무언가. 말하자면 이 장르 바깥으로부터 무언가를 가져와 자신의 수치를 정당화시키고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라고 공격하였다. (‘웨스턴의 진화’) 여기서는 <셰인>을 공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반대로 바쟁은 <셰인>을 공격하면서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매혹에 대해서 어떤 찬사의 글보다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다. 먼저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셰인>은 1889년 존슨 카운티 전쟁, 혹은 와이오밍 평원 전쟁으로 알려진 개척민과 토지 소유주들 사이에서 벌어진 유혈참극에서 느슨하게 가져온 이야기이다. <셰인>보다 본격적으로 이 소재를 다룬 영화는 마이클 치미노의 < 천국의 문 >이다. 가난한 개척민 마을에 허름한 차림에 점잖고 예의바른 총잡이 한명이 찾아든다. 셰인이라는 이름의 남자. 아무도 이 사람을 알지 못하고 그 자신도 과거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 낯선 남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이 마을의 조 스타렛이다 그는 가난하지만 정숙한 아내 마리안과 어린 아들 조이와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의 걱정은 토지 소유주 라이커와 그 일당이 계속해서 이들이 힘들게 개척한 땅에서 쫓아내려는 것이다. 라이커와 그의 일당이 폭력을 행사할 때 과묵하고 조용한 셰인은 숨겨져 있던 그의 솜씨를 보여준다. 조이는 그 모습을 보고 셰인을 영웅처럼 존경하고 조의 아내 마리안도 자신도 모르게 이 남자에게 이끌린다. 그걸 셰인도 알지만 모른 척 한다. 라이커는 개척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쌍권총 총잡이 잭 윌슨을 고용한다. 검은 옷을 입은 이 사내는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을 해치운다. 라이커는 조 스타렛에게 대결을 하자고 제안하지만 셰인이 대신 그 자리에 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총을 뽑아 잭 윌슨과 라이커를 해치운다. 셰인은 거기까지 쫓아온 조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와이오밍 평원 저편으로 떠난다. 어린 소년 조이가 멀어져가는 셰인을 향해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대사 중의 하나를 외친다. “돌아와요, 셰인” 평원의 메아리. 바쟁은 <셰인>이 신화 그 자체라고 설명한다. (바쟁에게 웨스턴은 비극의 윤리학이었다) 이 영화에서 셰인은 성배를 찾는 (아서왕의 원탁의 기사 중의 한명인) 것처럼 보이며, 게다가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그저 신비로운 복장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웃듯이 말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셰인>을 매혹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놓쳤다. 신화와 비극의 거리. 신비로운 주인공. 나는 거기에 이 주인공의 특징을 한 가지 더하고 싶다. 아무런 목표가 없는 주인공. 바쟁의 표현을 빌린다면 불가능한 목표에 이르기 위한 무한정한 방랑. 대지를 떠돌아야 하는 ‘나그네’(‘Wanderer’는 '산책자‘가 아니다)의 멜랑코리. 그래서 이 주인공은 무엇보다 우울하다. 이 우울한 주인공은 목표가 없기 때문에 종종 우유부단하게 보인다. 그 우울한 우유부단이 보는 쪽을 매혹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안고 있는 슬픔. 왜 세계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라고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한 고난의 슬픔에 머물 때, 거기서 발생하는 세계와 나 사이의 불화. 그 불화하는 세계가 역사에 기대어 있을 때 그 역사의 무게 아래에 눌려 찌그러지지 않기 위해 거기서 물러났을 때, 그래서 그 불화에 들어서지 않기 위해 그 입구를 스스로 차단했을 때, 나는 역사의 시간 안에서 삭제되는 것이다. 그때 경험하는 우울한 우유부단은 세상 안에 있으면서 역사 바깥에 놓여있는 자리, 이것도 아니면서 저것도 아닌 (아감벤이 쓰는 표현을 빌리면) 시시한 자리에 가는 행위의 제스처이다. 임권택에게 <셰인>과 (펠리니의) <길>은 보는 쪽의 자리에서만 말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같은 영화이다. 어쩌면 둘 중 한 쪽, <셰인>과 < 풍운의 검객 > 중 어느 한 편만을 보았다면, 그래서 다른 한 쪽을 줄거리만으로 알고 있다면 다른 한 편이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두 편의 영화는 멀리서 쳐다보는 서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들여다보는 장면의 디테일에서 서로 겹친다. 한 가지 사실을 더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임권택은 처음부터 조선시대 사극을 자신의 영화적 무대로 삼았다. 이미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에서 사도세자와 그의 아내 혜경궁 홍씨, 그리고 정조의 이야기를 궁궐 안을 무대로 실타래처럼 얽은 이야기를 풀어헤치고 묶으면서 고유한 유형의 매듭으로 고유한 장소를 만들어냈다. 분명히 임권택은 조선시대 사극의 대가인 신상옥 으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임권택은 늘 겸손하게 그건 내가 연출부를 했던 정창화 감독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리고 그건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모든 인물들을 감싸 안는 정념의 연쇄고리들은 전적으로 임권택의 것이다. 하지만 <풍운의 검객>은 이상하게도 <망부석> 혹은 < 십년세도 >에서 보여주었던 조선시대 사극의 사료적 근거가 반사하는 것만 같은 장소의 질서, 인물들 사이의 위계질서. 질서가 빚어내는 운명, 그 안에서의 복종과 같은 역사와 서사 사이의 유사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둘 사이의 친화성이 희미해졌다. 그 유사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조선시대는 기괴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워졌고 그 대신 거의 절대적이었던 질서의 체제, 그래서 숨 막힐 것처럼 촘촘하게 그 곁에 연이어 이어 붙여놓았던 제도의 고유한 거리들의 일부가 사러지거나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대신 여기에 들어선 것은 조선시대 바깥에서 온 것 같은 인물의 등장이다. 이따금 전시하는 거의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는 무술. 왜 여기에 왔는지 설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화 안에서도 설명하지 않)는 인물. 길을 잃지 않기 위한 가이드로서의 줄거리. 하지만 <풍운의 검객>은 줄거리의 독후감과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감상의 디테일 사이의 간극이 이상할 정도로 큰 영화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 바란다.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왕은 병석에 누워있고 간신들이 날뛰고 있는 시절. 왕을 측근에서 모시는 최괄은 희빈 문소이와 함께 왕이 별세하면 문소이가 낳은 아들 달지를 왕위에 옹립하기 위해 자객들을 보내서 왕자들을 차례로 제거한다. 어느 날 밤 어린 왕자를 해하려는 순간 복면을 쓴 검객이 나타나 그들을 물리친다. 그 무렵 한양 주막가에 자신을 방갓이라 칭하는 나그네가 한 명 나타나 뛰어난 무술 솜씨를 보여준다. 그의 무술을 높이 평가한 달지는 그를 자신의 수하에 둔다. 그런 방갓을 보고 달지가 관심을 기울이는 기생 연화가 연모하는 마음을 품는다. 방갓은 최괄의 집에 매달린 초롱에 화재를 일으킨 다음 몰래 빠져나가 옥에 갇힌 영의정 김종성의 딸 난실을 구한다. 그때 우연히 그걸 달지의 집을 방문한 연화가 보게 된다. 난실은 자신을 구해준 방갓에게 감사의 뜻으로 자신의 노리개를 건네주면서 연모하는 마음을 품는다. (기이한 우연과 사건이 겹친 다음) 달지는 방갓이 자신을 방해하려는 목적을 지녔음을 알고 그를 제거하려고 한다. 최괄은 방갓이 무술이 뛰어남을 알고 또 다른 무술의 고수인 백운선생을 부른다. 한편 연화는 방갓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난실에게 끌린다고 오해하고 그가 난실과 은거하고 있는 산 속의 암자를 달지에게 알려준다. 달지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백운선생이 방갓을 찾아냈을 때 알게 되는 것은 방갓이 백운선생의 제자라는 사실이다. 백운선생은 방갓이 살생을 일삼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꾸짖는다. 스승의 부름 앞에 제자는 저항하지 않고 항복한 다음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해였음을 연화가 백운선생에게 알리고, 백운선생은 감옥에 갇힌 방갓을 구한다. 백운선생은 상소문을 올려 최괄과 문소이가 역적모의를 했음을 알리고 다시 떠나지만 달지에게 죽음을 당한다. 방갓은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여기고 연화와 난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막아선 달지를 물리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방갓을 지켜보던 소년은 떠나가는 방갓의 등 뒤에서 큰 소리로 부른다. “아저씨” 하지만 그 소리는 바람소리에 묻힌다. 방갓은 뒤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분명히 <풍운의 검객>은 <망부석> 혹은 <십년세도>로부터 멀어졌다. 아쉽게도 나는 그 사이에 놓인 < 영화마마 >, < 왕과 상노 >, < 닐니리 >, < 청사초롱 >을 (네가 프린트가 사라져서) 보지 못했다. 네 편의 영화. 나는 그 영화들을 건너뛰면서 상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단절이라고 할 만한 정도의 태도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명해도 <풍운의 검객>은 조선시대에 머물고 있다. 장르로서 반복 안의 차이. 그리고 디테일에서의 차이 안의 반복. 그 안에서 일부 인물들은 그들 자신이 놓여있는 시대에 복종하고 있지만 일부 인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이 부정은 저항이 아니라 억압된 것을 인정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의 어떤 결과가 자유를 얻게 된다, 라는 프로이트의 설명을 고스란히 따라 가보고 싶게 만든다. 나는 여기서 앙드레 바쟁의 웨스턴에 대한 견해를 뒤집어 다시 세우고 싶다. 왜 그럴 필요가 있는가. 바쟁은 쉬르-웨스턴의 영화들을 공격하면서 이 영화들이 자기가 놓여진 시대로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냉전시대의 매카시 ‘레드 페이퍼’를 알리바이로 삼는 것으로부터 이 장르를 구해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나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과도하게 뒤집어 쓴 알리바이. 하지만 영화가 자기의 책임, 모순, 법적인 제도, 복잡한 층위에서 요구하는 정치적인 상황, 경제적인 관계, 그 안에서 하나의 통일을 부여하려는 예술의 전투 혹은 타협, 그 전투 혹은 타협의 주관적인 결정과 객관적인 한계, 그 모든 것의 결정으로서의 역사를 형식의 일시적인 진공상태로 정지시키는 것에 대해서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제 자리로 돌아간 영화. 나는 재빨리 원래의 자리에 돌아오고 싶다. <풍운의 검객> 안의 새로운 인물들, 가까스로 세워놓은 배경을 어지럽히는 행동들, 이 행동이 만들어내는 사건. 그것들은 임권택이 이제까지 복종했던 조선시대 사극에 대한 하나의 시험이다. 어떤 시험? 임권택에게 할리우드 영화들, 그 중에서도 웨스턴 영화들, 그 중에서도 (바쟁의 분류에 따르면) 쉬르-웨스턴들은 이상적인 유토피아 모델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사극 모델 안에서 웨스턴 영화를, 쉬르-웨스턴을, <셰인>을 진행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라는 하나의 시험. 그 둘은 겹쳐놓아도 괜찮은 것일까. 그 둘은 서로 공존 가능한 것일까. 그 둘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러나 어딘가에서 닮은 것을 찾아낼 수는 없을까. 모방은 탐색이다. 무엇에 대한? 유사한 기호들. 그걸 찾아내기만 하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라는 시험. 하지만 이건 위험한 시험이다. 왜냐하면 서로 완전히 다른 배경의 무대는 그것이 작동되기 시작할 때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때려 부술 지도 모른다. 이 폭력적인 접근의 교집합. 이때 교집합의 자리에 놓인 주인공은 이유 없는 자신의 고난 앞에서 아무 것도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우유부단해지고 그 공허한 행위 속에서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여러 관점에서 다시 정의내릴 수 있는 <풍운의 검객>은 이 수수께끼의 검객 방갓을 주인공으로 한 영웅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연성을 놓고 질문을 하면 의문이 떠오른다. 방갓은 왜 한양 한 복판에 나타난 것일까. 그는 왜 어린 왕자와 옥에 갇힌 난실을 구하는 것일까. 왕자도, 난실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그는 왜 목숨을 걸고 최괄과 희빈 문소이의 음모를 방해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시나리오에는 있다. 방갓은 수문장 손호관의 아들 손용운으로 그의 가족이 최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어린 나이에 혼자 살아남은 다음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왔다. 방갓의 모든 행위를 이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로 옮기면서 방갓의 사연, 차라리 손용운이라는 인물 자체를 삭제시켜 버렸다. 우리는 끝까지 방갓의 사연을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추론은 그 스스로 내내 쓰고 다니면서 자신을 ‘방갓’이라고 부르는 모자를 통해 희미하게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삿갓과 달리 방갓은 부모의 상(喪)을 당한 상제가 외출을 할 때 쓰는 모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누구도 방갓에게 부모의 상을 당한 슬픔에 대해서 위로하거나 질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모자는 내용 없는 기호로 그와 함께 내내 머문다. <풍운의 검객>에는 대사가 없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이를테면 최괄의 하인들, 달지의 부하들. 장안의 오가는 백성들. 하지만 방갓을 쓴 사람은 방갓뿐이다. 그럼으로써 방갓은 그 모두로부터 방갓을 분리해내는 기호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두 번째 특별한 점. 방갓은 자기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 약속은 살생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살인에 대해서는 불교, 유교, 그리고 기독교, 같은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었다. 여기서 방갓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살인의 위협을 가하는 경우에도 그를 물리치거나 무력화시킬 뿐 거기서 멈추는 그 자신과의 약속에 있다. 그 약속이 스승 백운도사와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한참 뒤에 방갓을 에워싼 달지의 수많은 부하들의 칼과 맞서야 할 때, 그래서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칼등 대신 칼날을 휘둘러야 했을 때, 그때 그 자리에 나타난 백운도사의 입을 통해서이다. 이 약속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영웅의 조건. 단지 뛰어난 무술과 빼어난 지략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서 방갓에게 선과 덕을 요구한다고 말하면 그건 요점을 놓친 것이다. 영웅이 영웅이 되는 순간은 그가 시련이라는 시험을 통과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임권택은 이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에 틀림없다. 그의 주인공들은 종종 이 시련을 통과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신체의 일부를 상실하거나 부서졌다. 그 시련은 점점 혹독해졌으며 임권택의 ‘다찌마와리’ 액션 장르영화 시기에는 잔혹함을 넘어서서 (상황에서) 기괴하고 (감정적으로) 굴욕적이며 차라리 거기서 멈춰 서서 그 과정 자체에서 어떤 기쁨을 누리는 것만 같은 도착으로까지 밀고 나아갔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 과정은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심지어 1970년대 새마을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은 운동의 지도자로 거듭 나기 위해서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아마도 이 과정의 가장 복잡하고 기이한 정식화는 이청준의 원작 소설을 빌려 한(恨)을 품어야만 더 높은 예술의 경지에 이룰 수 있다는 판소리 예술가들에 관한 두 편의 영화 < 서편제 >와 < 천년학 >일 것이다. 나는 이미 반복해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이 질문 앞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밀고 나아갈 것이다. <풍운의 검객>에서 임권택은 이 질문을 아직 정식화시키지 않았다. 대신 주인공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조선시대 안에 어떤 틈을 만들어내고 있다. 차라리 주인공을 조선시대로부터 소외시키면서 장르와의 사이를 분리시키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 방갓이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영웅이 되면서 그 자신에게 충만하면 할수록 조선시대는 점점 공허해진다는 것이다. <풍운의 검객>은 (바쟁의 정리에 의지해서 말하자면) <셰인>이 웨스턴에서 한 것을 조선시대에 대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임권택은 자기가 시작했던 무대를 자기의 방법으로 부정하는 중이다. 방갓은 이 공허한 무대에서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기호들 사이를 오가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걸고 무언가를 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그걸 왜 하는 지 끝내 알지 못한다. 무언가, 라는 행위와 왜, 라는 이유, 사이의 간극에서 방갓은 영웅의 시련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지만 그 시련의 대가는 그에게 무의미한 조선시대로부터 거의 우주적인 텅 빈 영화 바깥의 세계에로 어떤 선택의 여지없이 다시 떠나야한다는 운명적인 결론이다. 그때 이 우주는 어둠 속으로 무엇이든지 집어삼켜버린 다음 소멸시켜버리는 심연에 다름 아니다. 임권택은 영웅적인 죽음대신 차라리 여기서 영웅적인 소멸을 선택한다. 죽음과 소멸 사이의 간극. 이 절망적인 매혹, 나는 아무 것도 세상에 남기지 않고 사라버리고 싶습니다. 세상이 내게 부여한 임무가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그걸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호의 밤. <풍운의 검객>에서 영웅적인 과정은 사실상 소멸 앞에서의 잠시 동안의 머뭇거림이다. 하지만 세 번째 특별한 점에 비교하면 두 번째 특징은 아무 것도 아니다. <셰인>에서 셰인은 마리안이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리안과의 로맨스를 외면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호의를 베풀어준 그녀의 남편 조 스타렛과의 우정 때문이다. 물론 마리안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제스처를 노출시킬 뿐이다. 좀 더 복잡한 설명도 있다. 셰인은 이 마을에 머물 생각이 없기 때문에. 단지 이 마을뿐만 아니라 어떤 공동체에도 머물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마리안이 아닌 누구와의 로맨스도 거절했을 것이다, 라는 가설이다. 왜 웨스턴의 주인공이 광야(wildness)에서 공동체에 왔다가 다시 광야로 떠나가는지에 관한 긴 이론이 있다. 하지만 그 이론은 우리의 논점과 아무 상관이 없다. 단지 세 번 밖에 총을 뽑지 않는 <셰인>은 셰인과 마리안과의 감정적 긴장에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웨스턴이라기보다는 로맨스 멜로드라마에 더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풍운의 검객>도 로맨스에 더 가까운 (일종의) 기사도 서사이다. 처음에는 방갓이 달지의 아흔 아홉 칸 대궐 같은 저택에서 벌이는 신출귀몰하는 지략과 음모의 모험극처럼 시작하지만 이 서사 안으로 연화와 난실이 들어오자 갑자기 두 여자가 방갓에게 보내는 정념의 로맨스로 바뀐다. 연화는 방갓을 보자마자 그가 이 서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달지가 그녀에게 보내는 관심을 외면한다. 난실은 방갓이 그녀를 옥에서 구하자마자 처음 보는 그에게 자신이 품고 있던 노리개를 건네주면서 (연인들 사이에 나누는) 정표로 삼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방갓을 사이에 두고 난실과 연화는 사랑, 질투, 분노, 원망, 하여튼 그녀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서로 경쟁적인 로맨스의 감정을 조금도 숨길 생각 없이 드러내놓고 신호를 보낸다. 이때 방갓은 둘 사이의 선택에서 어떤 고민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둘 중 누구도 선택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방갓은 그녀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추면서 항상 친절한 태도로 대하지만 어떤 장면에서도 로맨스의 신호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는 둘 중 누군가에게 실망을 시킬까 두려워 거짓 거절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을 거절하는 척 하는 사랑. 우리들이 로맨스 소설에서 이미 읽은 냉담한 실패를 목표로 한 사랑의 거짓 제스처. 거절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의 변주들). 방갓이 이 로맨스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서사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서사 바깥에서 누군가 (이를테면 집에서 기다리는 그의 아내) 방갓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며. (그래서 어딘가를 가야하는 도중에 벌어진 일에 말려든 것이 아니며) 거기에 또 다른 계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알고 보니 이 일은 왕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임무였다, 라는 이중 플롯) 아무 것도 숨기지 않은 두 여자의 속마음. 무조건적인 정념. 오히려 삼각관계에 놓여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일관되고 단조롭게 설명할 수 없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진행되는 방갓의 거절은 오히려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걸 먼저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때 어떤 로맨스도 받아들이지 않는 방갓의 선택은 그의 적들에게 살생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약속과 결합하면서 그가 ‘나그네’라기보다는 불가에 입문한 승려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풍운의 검객>에서 불교의 어떤 기호도 발견할 수 없으며, 또한 그런 가르침을 내린 방갓의 스승 백운도사도 스님이 아니다. 이때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두 여자, 난실과 연화의 대조적인 사회적 신분이다. <풍운의 검객>의 무대가 조선시대라는 것을 환기시키겠다. 난실은 영의정 김종성의 무남독녀 영애이다. 조선시대에 시기별로 그 지위가 변하였으나 (<풍운의 검객>은 정확한 연대를 표기하지 않았다) 한때 의정부 최고의 자리였으며 그 아래 좌의정과 우의정을 두고 조선의 국사를 결정하던 자리. 그 지위의 근대적인 번역은 갑오개혁에 이르러 고종의 명에 따라 영의정을 총리대신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봉건제 왕권국가에서 임금 바로 아래의 관직.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딸. 연화는 그녀가 아무리 호사스러운 장안의 기방(妓房) 여주인이라 할지라도 유교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기생의 신분이다. 우리는 ‘춘향전’에서 서예와 가무에 능한 성춘향은 어머니가 기생이지만 그녀는 엄연히 기방에 등록하지 않은 여염집 규수인데도 기생의 딸이라는 이유로 남원 사또 변학도에게 술시중을 들지 않는다고 불려가 고초를 당하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방갓이 두 여자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는 선택은 그 둘이 반대의 자리가 아니라 비대칭의 위치에 있다. 여기서 조선시대는 임권택의 영화 안으로 이상한 우회를 거쳐 회귀한다. 내면화된 조선. 오른 쪽에는 난실이 있다. 영의정 김종성의 가문이 지금은 최괄과 희빈 문송이의 음모로 화(禍)를 당하고 난실이 한양 바깥으로 쫓겨나 그녀의 몸종처럼 데리고 다니는 어린 소년과 지내고 있지만 그 음모를 밝히고 가문의 명예를 되찾으면 난실은 다시 명문가의 자리에로 되돌아갈 것이다. 지금 바로 그것을 하기 위해 방갓은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게 <풍운의 검객> 서사의 전부이다. 이때 이 서사의 무대로서의 역사는 감정의 세계가 아니라 왕조차 복종해야하는 질서에 지배받고 있는 국가이다. 무대는 배경에서 멈추지 않고 그 서사의 토대라는 더도 덜도 아닌 근거의 지평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가 끝난 다음, 그러니까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의 첫 번째 장면을 떠올려보자. 지금 한양 바깥 산속 암자에서 지내는 처지이지만 난실이 다시 복권하고 원래의 자리에 갔을 때 방갓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없다. 난실은 지금이 예외의 상태이지만 방갓에게 원래의 자리라는 것은 없다. 나그네의 자리. 일시적인 잉여의 위치. 조선시대는 신분사회였고, 양반은 사회의 기득권을 소유하고 있는 계층이었으며 그들을 천민들과 분리하였다. 난실은 그 중에서도 최고위층의 사대부 집안, (한 번 더) 그 중에서도 영의정의 자식이다. 난실이 방갓을 허락한다 할지라도 그녀의 (어쩌면 남아있는) 가족, 가족의 친척들, 그녀가 되돌아온 사대부, 그들을 둘러싼 선비들, 그 모두를 구성하는 신분사회인 조선은 방갓이 그들 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관한 사극영화의 멜로드라마 서사들. 양반집 따님, 혹은 남편을 잃은 과부가 하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맞이하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들. <풍운의 검객>은 방갓이 난실의 로맨스 제안을 받아들이면 마지막 장면 디음 장면은 정확하게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멜로드라마 영화를 반복하는 비극의 첫 장면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왼 쪽을 볼 차례이다. 이때 연화는 난실의 반대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옆이 아니라 위와 아래의 자리에 완강하게, 거의 불변의 위치에서, 사회적 조건 아래, 고정된 상태로 머물 것이다. 조선시대에 기생은 신분 중에서도 가장 낮은 천민에 해당했다. 물론 기생들 사이에서도 다섯으로 나뉜 등급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 으뜸인 일패기생(一牌妓生)은 임금 앞에서만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달지를 상대하는 연화는 문무백관만을 상대하는 이패기생(二牌妓生)이었을 것이며, 이패기생 중에는 가무와 서예로 한양 장안에서도 그 명성이 드높은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신분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은 유교의 원리가 가치였던 사회였다. 남녀유별, 남녀칠세부동석, 의 가치아래 남자들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권하는 여자들은 유교라는 텍스트를 난잡하게 만들고 올바른 도덕적 삶에 대한 타락의 사례가 되었다. 도덕은 유교에서 명령이다. 나는 똑같은 가정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방갓은 난실대신 연화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이상한 장면. 방갓은 난실의 노리개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연화의 기방을 찾는다. (그런데 이게 위험을 무릅쓸만한 일인가) 연화는 그때 자기를 보고 싶어 찾아온 것으로 오해하고 방갓에게 안겨 자기의 속마음을 고백한다. 이때 방갓은 매장하게도 난실의 노리개를 찾으러 왔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방갓의 태도에 관한 질문, 이 방문을 통해서 방갓은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표면적인 진정한 목표는 (이 이중적인 표현을 주의 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노리개가 아니라 연화를 실망시킴으로써 그녀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론. 가장 단순하게 그 행위가 다른 남은 선택인 난실을 위한 것이라면, 혹은 반대로 연화를 실망시킴으로써 자신에 대한 감정을 바꿔놓기 위해서라면, 어느 쪽을 향하건 사랑의 퍼포먼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방갓은 어느 쪽도 선택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이 공허한 방문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이때 방갓을 둘로 찢어서 생각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방갓은 자시니 난실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실적인 연화에게도 향한다. 방갓은 정말 연화를 받아들일 마음으로 자신의 진정한 상대는 연화라는 대상에게 일시적인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래서 난실의 노리개는 핑계이며 연화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 여기에 왔(을 수 있)다. 그런데 마치 방갓의 속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연화는 흠모하는 자기 마음을 고백한다. 만일 그런 마음으로 여기에 왔다면 방갓은 왜 그 고백을 거절하는가. 여기에 도착하는 전까지 방갓에게 연화는 어떤 대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도착하여 고백을 듣는 순간 어떤 대상이 연화가 되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서로 완전히 다른 자리라는 것이다. 도착하기 전까지 연화는 대상이긴 하지만 방갓이 알 수 없는 어떤 존재였다. 그러므로 연화는 방갓에게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연화가 자신을 방갓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이라는 대상으로 고정시키는 순간 연화는 즉시 단순하게 사랑의 감정에 고정된 존재로 축소된다. 그러므로 질문은 단순해진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왜 여기서 질문은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가 아니라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라고 옮겨진 것일까. 로맨스 서사의 무대가 조선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다시 번역하면 당신은 기생인 나를, 천민인 나를, 유교의 가치 아래 세상 사람들이 경멸하는 나를, 그런 나의 연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로 옮겨질 수 있다. 방갓이 거절하는 것은 연화가 아니라 연화가 놓인 사회적 위치이다.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나그네인 방갓이 그걸 거절할만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지금 당신이 이 선택의 남은 절반을 잠깐 잊은 것이다. 신분사회의 로맨스. 난실과의 일시적지만 이 맹목적인 로맨스는 방갓을 상상할 수 있는 (하지만 임금을 제외한) 가장 높은 지위에 올려놓는다. 방갓은 영의정 김종성의 딸 난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방갓은 두 개의 선택 사이에서 (셰인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 태도에서는 별 차이 없이) 우유부단해진다. 어떤 우유부단? 난실의 사랑을 받을 때 방갓은 그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뒤로 물러나고, 연화의 사랑을 받을 때 방갓은 자신이 난실의 사랑을 받는 자리로부터 내려갈 생각이 없기 때문에 뒤로 물러난다. 이때 이 두 개의 뒤로 물러남이 비대칭의 이유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방갓이 어떤 계산도 없이 로맨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은 요점을 놓친 것이다. 방갓은 조선시대 안에서 계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계산의 비대칭이 방갓을 우유부단한 슬픔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이 방갓의 선택할 수 없는 것과 선택하지 않는 것 사이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선택 이후의 선택은 방갓이 조선시대로부터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다. 임권택은 퇴각의 마지막 자리에 <셰인>과 마찬가지로 클라이맥스를 배치하였다. 셰인은 마지막 시퀀스에서 전문적인 해결사인 총잡이 잭 윌슨과 대결을 벌인다. <셰인>에 매혹된 관객은 누구나 이 마지막 대결 장면을 언급한다. <풍운의 검객>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은 방갓과 달지 사이의 단 한 번의 마지막 대결 씬이다. 이미 최괄과 희빈 문소이는 백운도사가 올린 상소문으로 연화석상에서 나라의 명을 받고 대역 죄인으로 포도청 금부(禁府)에 의해 구금되었으며. 방갓은 난실과 연화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길을 떠나던 중이었다. 떠나가는 방갓을 따라온 건 난실을 모시던 어린 소년 시종과 그 자리에서 구금을 피해 달아난 달지뿐이다. 물론 시종 소년의 역할은 영화 내내 거의 존재감이 없다가 이 마지막 장면에서 방갓과 달지의 대결을 바라보는 증인의 시선으로서의 역할, 말하자면 <셰인>에서 셰인과 잭 윌슨의 대결을 바라보는 증인의 존재이자 신화를 완성시키는 임무를 가진 마리안의 어린 아들 조의 자리이며, 그런 다음 떠나가는 방갓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의 존재로서 거기 있는 것이다. 총에서 칼로 바뀐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대결, 웨스턴 영화의 마을 중심에 자리한 술집 바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 들판에로의 이동.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단지 산등성이 언덕 풀밭을 흔드는 정도를 넘어서서 들판 전체를 흔드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바람과 함께 어디에선가 안개가 몰려온다. 화면은 일부가 정도로 짙은 안개. 바람결에 그 안개가 사방을 덮는다. 안개를 제외하면 이상할 정도로 이 장면은 구로사와 아키라가 1943년에 만든 첫 영화 < 스가타 산슈로(姿三四郞) >의 마지막 대결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 마디로 굉장한 시퀀스. 물론 임권택은 그때 이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영화는 1998년 10월 20일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에 따른 허가까지 한국에 수입이 금지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1967년은 극장이 아니면 영화를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고, 임권택은 해외에 1978년에 처음 나가보았다. 하지만 단지 들판에서 바람이 분다는 설정에서 멈추지 않고 방갓과 달지가 서로 마주보는 장면의 구도 일부는,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심지어 본 적도 없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첫 영화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씬의 디테일은 임권택 스타일의 특별한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 씬이 <풍운의 검객> 전체로부터 마치 떨어져 나온 다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오직 여기서만 씬 전체에서 장소의 위와 아래, 그 장소와 관계하는 기후의 변화와 그것이 서사에 관여하여 만들어내는 미장센의 효과, 그 안에서의 동선의 이동과 그 동선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으로 이루어지는 몇 겹의 배치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단조롭던 이 영화의 동선과 장소의 배치는 오로지 이 장면만을 위해서 마치 숨겨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마도 방갓이 달지와 마주치는 장면은 소년의 시선의 위치 때문에 산등성이 언덕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달지는 떠나는 방갓을 멈춰 세운다. “이봐, 결판을 내야지” “싫다” “그건 네 생각이고, 어차피 너와 나는 끝장을 봐야하는 입장이다” “싫다,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웃기지마라” 그리고 달지가 칼을 뽑아든다. 방갓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갓을 벗는다. 그런데 그런 다음 그 둘은 그 자리에서 갑자기 산 비탈길 아래로 위치를 옮긴다. 마치 위에서 소년이 내려다보기에 좋은 위치로 옮겨야한다는 듯이 그렇게 이동한다. 이때 화면을 채우는 것은 갑작스러운 바람소리이다. 조금 전까지 평화롭던 이 산등성이에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단지 장르의 약속 이상으로 그 바람이 너무 세고 큰 규모로 불기 시작하기 때문에 기이하고 심지어 초현실적인 감흥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때 이 대결장면은 임권택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어떤 스타일? 이 대결 장면이 2분 40초에 이르는데도 임권택은 서로를 마주보는 방갓과 달지 사이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찍은 쇼트를 마주보게 만든 다음(shot_reverse shot) 둘 사이만을 번갈아 오갈 뿐이다. 이 대결에서 달지가 칼을 휘두르는 찰나의 순간은 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방갓은 마지막 순간 단 한 번 칼을 휘두를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방갓은 그 한 번으로 달지의 양쪽 무릎을 베어 그를 땅에 무릎 꿇게 만든다. 임권택은 이 씬에서 액션의 디테일 대신 서로 마주보는 시선의 교환, 그때마다 위치를 옮겨 찍은 카메라의 위치와 구도, 무엇보다도 바람소리와 화면을 덮치는 것만 같은 안개로 진행한다. 최소의 액션. 이때 씬의 진행에서 위계질서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디테일들 사이의 위계질서. 이때 임권택이 거기서 찾은 디테일은 서사의 안쪽으로부터 말 그대로 표면, 영화라는 표면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영화의 표면, 영화라는 표면. 표면의 광경. 광경의 디테일에 관한 방법론. 나는 거의 멈춰 서다시피 이 마지막 씬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임권택은 분명히 거기서 무언가 새로운 기쁨을 발견했다. 마치 마지막 씬의 기쁨을 위해서 이미 만든 영화의 전부를 바꿔도 상관없다는 것만 같은 태도. 임권택의 1960년대 영화를 설명할 때 대부분 고통의 감정으로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본 것은 분명히 기쁨의 정념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고통 안에 숨어있던 기쁨을 끌어내려고 애쓸 것이다. 물론 기쁨이 비가시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매번의 쇼트라는 양태 안에 담겨있는 속성의 표현이라면, 그래서 그 표현이 영화를 견디게 해주는 실존적인 상태라면,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서 정념의 형상에 관한 설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실패를 무릅쓰고 이 형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거듭 되돌아올 것이다. 그걸 해낼 수 있다면 임권택 영화에서 거의 다루어진 적이 없는 디테일을 경유하여 정념의 형상에 관한 표현의 순간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정성일 _ 작년 부산영화제 회고전에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한 이유는 심금을 울렸습니다. 아직도 첫사랑을 생각하다니!! (웃음) 봉준호 _ 첫사랑은 아니고 두 번째 여자죠. 석 달 만나고 헤어진,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 뭘 하려나.(웃음) 정성일 _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떠올리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입니까? < 아제아제 바라아제 > 봉준호 _ 두 개가 있어요. 강수연 선배가 (비구니가 되었다가 환속하면서 머물던 산사를 떠나서 속세로 향하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산을 향해 우는 장면과 한지일 선배와 처음 섹스 할 때 (아직 삭발한 채로 드러나는 머리를 가리기 위해 쓴 모자가 떨어지려고 하자 그) 모자 쓰려고 할 때 카메라가 올라가는 장면. 저걸 어떻게 찍었을까. 강수연 선배님과 술을 한잔 하면서 물어볼 수 있어 영광이었는데 한 테이크 만에 찍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수평에서 시작해서 직부감까지 올라가는. 그 두 개가 생각이 나네요. 정성일 _ 그 장면이 왜 그렇게 자신을 잡아 끈 거 같으세요? 이를테면 두 번째 장면은 여러 가지 기술적 효과나 강수연 씨의 연기도 있기 때문에 많은 비평가들이 주목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첫 번째 예로 든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기술적으로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본 사람들 중에서도 그 장면을 기억해내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봉준호 _ 보면서 되게 울컥 하더라구요. < 러브레터 >를 보면 산을 향해, 오겡끼데스까? 라고 부르는 데, 그거랑 많이 다르죠.(웃음) 정성일 _ 임 감독님을 지지하는 비평가들을 만나면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최고(Best)가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favorite) 영화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떤 장면이 즉각적으로 떠오릅니까.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한 사람은 토니 레인즈였는데 뒤이은 질문에 바로 그 장면을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임 감독님의 모든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씬일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다, 고 말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토니 레인즈는 한국 영화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서방세계 비평가이지 않습니까. < 아제아제 바라아제 > 봉준호 _ 저는 감성적으로 울컥했을 뿐더러 제가 울컥했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어요. 강수연 언니 얼굴이 안 나오고 음악도 안 나오고, 카메라가 다가가지도 않아요. 탁 주저앉고 산이 있는데 그걸 길게 끌지도 않으셨을 거예요. 저는 슬프기도 하면서 찌릿했어요. 그리고 대처로 나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부산에서 다시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걸 89년에 서울에서 봤을 때와 24년 만에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보면서, 그 사이 24년 동안 저한테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두 번째 여자 친구는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영화감독도 되었고 결혼도 했고 애도 낳았는데. 같은 장면인데 다른 감정이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저 장면을 찍었다면 어땠을까. 카메라를 강수연 선배 앞으로 갖고 가고 싶어 하는 유혹을 끝내 못 이겨내지 않았을까. 그게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던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서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선선함, 감정이 침전되는 그런 예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봤을 때는 굉장히 찌릿했었어요. < 길소뜸 >에서 한지일 선생께서 죽은 개를 들고 가는 장면도 강렬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강렬하게 잔상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그리고 저는 뒷모습이 많이 생각이 나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강수연 언니가 걸어가는... 전형적인 라스트 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과 속세에 대해 끌고 왔던 그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가 있는 탓도 있겠지만 사람들 틈으로 가는 강수연 씨의 남다른 뒷모습의 느낌이 있었다는 거 같아요. 뒷모습을 잘 찍는 다는 게 뭘까. 내가 영화에서 봤던 가장 인상작인 뒷모습이 뭘까, 가끔 생각해봐요 정성일 _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의) 에드워드 양도 뒷모습을 잘 찍는 감독입니다. < 태양은 없다 > 봉준호 _ < 태양은 없다 >에서도 정우성 씨의 뒷모습을 굉장히 잘 찍었습니다. 거기서 굉장히 외로워 보였습니다. 정성일 _ 정우성 씨를 카메라 앞에 세우면 다들 앞을 찍고 싶어 하죠. 봉준호 _ 저는 김성수 감독님 영화중에는 < 태양은 없다 >를 제일 좋아해요 정성일 _ 부산에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102편이나 되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중에서 딱 한 장만 티켓을 준다면 어떤 영화를 선택하시겠어요? 만약 저라면 봉준호 감독의 한 편은 < 괴물 >을 선택할 것입니다. < 살인의 추억 >으로 미워졌던 제 마음을 호의로 돌아서게 해준 작품이니까요. (웃음) 봉준호 _ 중간에 한 단계를 거치면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요? < 짝코 >, < 티켓 >, < 아제아제 바라아제 >일 거 같아요. <티켓>은 제게 잔상이 많은 영화였어요. < 길소뜸 >도 물론 아름다웠고, < 개벽 >도 있었고, (잠시 생각) < 축제 >는, ... < 창 >은, ... 아마 그 세 편인 거 같습니다. 간발의 차로 <길소뜸>. (웃음) 정성일 _ 바보 같은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봉준호 감독님께 좋은 영화란 무엇입니까? 봉준호 _ 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정성일 _ 똑같은 질문을 저 자신도 대중강의 때 많이 받았습니다. 수차례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영화에 시네마틱한 모멘트가 있으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고 대답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주제와 아무리 감동적인 얘기를 한다고 해도 좋은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으로 봉준호 감독께 이 순간이 오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그런 게 있습니까? < 설국열차 > 봉준호 _ 좋은 영화가 뭔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런 의견에는 100퍼센트 공감합니다. 저도 그런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 영화를 만들거든요. 영화든 만화든. 소설에는 불가능한. 여지껏 본적이 없는 영화적인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 저도 영화를 하는 거 같아요. 그걸 아편삼아 영화를 하는 거 같아요. < 마더 > 때는 허벅지에 침을 놓고 태양을 (향해서) 일어섰을 때가 그런 거였고, 그것을 아편 삼아 영화를 찍었고, < 설국열차 >에는 기차가 암흑 속에 빠졌을 때 기차 맨 뒤의 꼬마가 성냥불을 켜서 올림픽 성화 봉송처럼 그걸 들고 뛰어갈 때, 착각이고 환상인데 그걸 아편삼아 버텨나가는 거 같아요. 사실 그게 참 힘들잖아요, 이미 영화감독이 되셨는데, 게다가 3시간 대작을 찍으셨는데 정인선 양이 햄버거를 먹는 강렬한 긴 롱 테이크로 시작하는, (그런 선택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화일이 굉장히 힘들잖아요. 일 년에 한 편 씩 찍는 우디 앨런도 그렇게 말할 거예요. 데이빗 린치도 정신적으로 단련한다,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개기고 버티는 게 그런 모멘트 인거 같아요. 사람들이 비난하면 비난 들어야 하고 돈을 투자한 사람한테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되게 이상한 직업이지만 그래도 계속 버티고 하고 싶은 거는 그런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서, 이건 이제까지 아무도 한 적이 없어, 그걸 아편삼아 영화를 하는 거 같아요. 그런 모멘트가 있으니 이건 좋은 영화다, 라고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이유를 들이밀면서 우기지는 못하겠지만 이번 영화는 완전히 망했고 트위터에 사람들이 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면은 죽여, 그렇게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런 자기만족을 얻으면서 버티는 거 같아요. 근데 임 감독님 영화에는 항상 그런 게 있다는 거죠. 정성일 _ 평론가 입장에선 그런 순간이 있으면 영화를 필사적으로 방어해주고 싶어져요. 봉준호 _ 임 감독님 영화에는 그런 게 항상 있었던 거 같아요. 히치콕도 그렇고 이마무라 쇼헤이도 그렇고, 김기영 감독님 영화는 그런 게 되게 많은 거 같아요. 편애!! (웃음)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저는 항상 그 영화를 끄는 힘에 대해 항상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힘으로 난 끌고 갈 거야, 하는 그런 힘. 연출자로써 임권택 감독님영화를 보면서 가장 강렬한 힘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아까 매직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전 그게 있는 영화만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모든 걸 포기해도 좋으니 이것은 놓칠 수 없다 는 느낌. 그래서 이 힘을 모으려고 모든 것을 버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에서의 매직은 저에게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입니다. 저는 그걸 같은 연출자로서 봉준호 감독이 임 감독님의 영화를 바라보면서 보는 특별한 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봉준호 _ 시네마틱하거나 유니크한 대답은 못되겠지만 저는 임권택 감독님이 주인공이건 다른 사람이건 되게 가여워하시는 거 같아요. 오늘 본 < 짝코 >에서도 김희라 씨나 최윤석 씨를 가여워하시는 것 같고. 그렇다고 신파로 관객들을 눈물바다로 만든 적은 거의 없지만 < 티켓 >에서는 김지미 여사를, < 아제아제 바라아제 >에서는 강수연 뿐 아니라 (산사에서 머물면서 반대의 자리에 서서 강수연의 행동에 비판적이었던) 진영미 조차도, (그리고) < 서편제 >에서는 오정해 뿐만 아니라 눈을 멀게 한 김명곤조차도 가여워하시는 것을 우리도 약간씩 느끼는 거 같아요. 안됐다, 불쌍하다, 이런 마음의 기둥이 이렇게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매혹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방금 들었어요. 어떤 시대건 인물이건 특히 주인공을 가여워하신다. 거기 본인의 처지가 투사되실 수도 있겠죠. 어쨌든 가여워하시는 거 같아요. 그 느낌이 계속 유지되니까 영화가 추동되어 나가는 거 같고. 정성일 _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서 영화 편수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만 봉준호 감독도 이제 연출 경력에서 올해로 14년이 되는 프로페셔널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 ,여기서 나와 임권택 감독님이 갈라지는구나, 우리는 서로 다른 연출자구나, 이런 걸 느껴본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이건 존경하는 것과 다른 차원이죠. 충분히 훌륭하지만 당신과 나는 이 지점에서 갈라지는 구나하는 지점이랄까. 봉준호 _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동경의 대상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그런 뜻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비슷하다가, 그래서 같은 줄 알았다가 결국에는 다르구나, 해야 갈라진다고 느낄 텐데, 처음부터 임 감독님은 강 건너편에 계신 분, 강 건너 아주 아름다운 배경으로 계시고, 저는 반대편 둑(embankment)에 있는 거죠. 어느 편이 좋고 나쁘고 가 아니라 강 건너편에 계신 데, 물살을 거슬러 도달할 수 없는, 세월의 두께를 표현한다거나 선선한 느낌 같은 거는 도저히 제가 흉내 낼 수 없는, 항상 제 뚝방의 영화만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건너편이라고 해서 꼭 차갑고 낯선 거리를 느끼는 건 아니잖아요. 정성일 _ 국적을 불문하고 이 사람은 나랑 영화적 피가 똑같다는 사람은 누군가요?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봉준호 _ 똑같다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똑같고 싶다, 똑같다면 좋지 않을까 혈액형이. 그런 감독은 많이 있죠. 기요시. 대착각으로(웃음) 말한다면 히치콕. 넓은 의미에서 히치코키안. 물론 히치콕의 발톱의 때만도 못하지만 넓은 의미의 히치코키안이 되고 싶어요. < 설국열차 > 때 존 허트 할아버지와 술 먹다가 그 분이 마이클 치미노, 리들리 스콧, 데이빗 린치랑도 찍었고, 엄청나잖아요. 술 먹으면서 우리 영화 얘기를 해야 하는데, 가끔 눈치를 보면서 < 천국의 문 > 때 현장에서 어땠어요, 그런 질문을 하고 싶잖아요. 저도 씨네필이니까. (웃음) 그런 얘기를 하다가 존 허트 할아버지가 미스터 봉! 너는 히치코키언 인거 같애. 너의 스토리보드와 찍는 방식을 보면 그런 거 같애, 그러면 되게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오! 녹음할 걸! 조잡한 조잡심이 발동하면서, 그런 대화가 즐겁고 이분이 찍었던 감독들 리스트에 내가 끼었다는 게 기쁘고. (웃음) 하지만 냉정해야지. 영화를 찍어야 하니까. 거대한 히치코키언의 혈통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거기에 샤브롤도 있고 드 팔마도 있는 거잖아요. 드 팔마는 대놓고 내가 외아들이야 서자들 다 꺼져, 너무 그러니까 안쓰럽기도 한데, 샤브롤 님은 저 위에서 웃고 계시고, 나도 그 혈통에 끼면 좋지 않을까. 원래 형제들끼리 많이 싸우잖아요. 조상님만 보는 거죠. 임권택 감독님의 < 족보 >도 있는데, 영화는 시원찮고 체형만 닮아가고 있죠. 안타깝습니다. (웃음) 정성일 _ 뚝방의 이쪽으로 와 보지요. (웃음)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는 제작을 한 < 해무 >까지를 포함해서 연극이나 만화에는 이끌렸지만 문학에 이끌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종종 문학적 대사에 대한 경멸을 느껴봅니다. 봉준호 _ 경멸까지는 아니지만 문어체 대사가 정말 싫습니다. 정성일 _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문학의 무언가가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에 끼어드는 걸 불편하게 여긴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문학을 가능한 한 영화에서 밀쳐내는 것이 영화를 영화답게 만든다고 생각 한달까요, 이 지점이 서로 갈라서는 지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임 감독님은 끊임없이 긴 시간동안 문학을 영화에 끌어오고 아예 나중에는 이청준 작가님을 영화 현장에 모셔 옆에 앉혀놓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대사를 물어보곤 하셨죠. 이번 새 영화 < 화장 >도 김훈 작가의 소설입니다만, 김훈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찍고 싶어하는 마음은 아주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봉준호 _ 문학을 적대적으로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고 문학적인 뭔가가 침투되어 온다고 해서 이건 시네마틱 하지 않아, 라고 경계심과 적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고 그럴 계제도 못됩니다. 제가 문학을 잘 모릅니다. 형도 영문학을 전공하셨고, 외할아버지도 소설가셨는데, (외할아버지는 몽보(夢甫) 박태원 작가이다) 아직 외할아버지 소설도 다 읽지 못했습니다. 책보다는 DVD에 가까운 인간형이다 보니, 문학을 많이 접하지 못한 게 부끄러운데. 소설을 영화화한 적도 없었고, < 살인의 추억 >은 실제 사건과 김광림 선생의 「날 보러 와요」 희곡작품으로 했고, < 설국열차 >는 그래픽 노블이구요, < 괴물 >, < 마더 >, < 플란다스의 개 >는 저의 오리지널 스토리고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는 모르겠는데, 소설 원작을 제안 받아본 적은 많이 있어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도 「모방범」을 일본에서 이미 영화화되기는 했었지만 꼭 영화화 해달라고 제안을 하셔서 오래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테드 창의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라고 작년에 700억 규모의 세트 영화로 제안을 받았어요. (이 소설은 한국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고 번역된 단편집 안에 세 번째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로 번역되어 있다) 스토리가 굉장히 아름답고 좋더라구요. 언어학적이라 골치가 아프긴 한데,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를 이미 각색한 걸로 저에게 제안을 했어요. 근데 테드 창의 원작이 저는 훨씬 좋았어요.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좋은 소설인데 각색은 조디 포스터의 < 콘택트 >처럼 하향평준화 해놨어요. 저는 원작 단편이 훨씬 좋았습니다.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원작 소설을 내가 다시 각색하고 싶다고 했더니, 각색한 분이 또 프로듀서 중의 한 분이고 이미 그것을 기다리는 배우가 있고 그래서 결렬되었어요. 미안하다 디렉터 봉. 네가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다고 믿는데 우리가 스튜디오랑 스케줄이 있다. 저게 첫 번째 문학 텍스트였을 뻔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저걸 < 프리즈너스 >와 < 그을린 사랑 >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하게 되었더라구요. 제가 문학 원작을 의도적으로 배척할 경지는 못되었고 사건이나 인물이 흥미로우면 저는 본능적으로 끌렸습니다. 하지만 대신 문예영화에는 경계가 있었어요. 문예영화라는 딱지를 붙었을 때 대종상을 더 받을 수 있는 영화고 점잖고 아름다운 영화. 소설을 바탕으로 한 문예영화가 아니면 그것을 장르영화로 폄하하는 카운터 관계로서 자리매김하는 건 너무 싫거든요. 장르라는 건 더 아름답고 영화적이다. 저는 장르는 존경받아야 한다. 저나 김지운 감독의 마음속에는. 김지운 감독도 굉장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장르를 선포하시잖아요. 이번에는 만주 웨스턴이요. 호러요. 저는 그런 건 좋은 관점 내지 태도라고 존중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장르를 폄하하지 말라는 뜻에서 문예영화라는 타이틀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던 거지, 문학이나 소설을 제가 딱히 경계할 위치는 못되었고 많이 읽지 못한 것을 개인적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죠. 정성일 _ 비평 커뮤니티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다섯 편을 연출하면서 문학과의 거리를 계속 유지하는 건 외할아버지와의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 자체가 워낙 큰 작가이고 그런 것이 자기 세계에 얽혀 들어가는 것과 긴장을 유지한다고 할까. 봉준호 _ 처음 생각해보는 부분인 거 같습니다. 외할아버지를 포함해서 문학 전체에 대해 경계심을 갖지 못했던 거 같구요. 독서량이나 독서 습관이 잘 형성이 안 되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려서 만화와 TV를 너무 끼고 살아서(웃음) 장편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지구력과 맷집의 부족, 대학 때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영화화하고 싶어서 배우를 대입시켜서 생각해본 적은 있는데, 염상진은 이 사람이야, 하대치는 허벅지가 굵어야해. (웃음) 이미 임권택 감독님이 영화를 만드셨고. 문학에 대한 자의식과 디스턴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송길한 , 송능한 형제님들이 있는데 영화를 찍고 있을 때 < 넘버 3 >의 시나리오를 구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굉장히 쇼킹한 적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사람이 이렇게 잘 쓸 수 있구나. 정말 훌륭하다. 이창동 감독님의 시나리오도 영화화되기 전에 구해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아름답고 잘 쓰시고. 임상수 감독님도 참 대사도 잘 쓰시고 그렇지만 송능한 감독님의 시나리오 <넘버 3>를 봤을 때는 진짜 훌륭했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안 하시지만 그분의 형님이신 송길한 선생님이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 하신 작품들을 보면 < 짝코 >, < 길소뜸 >, < 만다라 >, < 티켓 >, 많네요. 소설 원작이 있었다고 해도 송길한 선생님은 제가 좋아하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많이 하셨고, 송길한 선생님의 시나리오는 문학의 영역같이 느껴져요. 신춘문예 당선작의 희곡과 시나리오를 보는 것처럼. 영화를 안 본 상태에서 송길한 선생님의 시나리오만 읽어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송길한 선생님 같은 경우는 정말 대단한 분이 아니신가. 문학과 영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 분은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정말 위대한 문학가이지 않으신가. 정성일 _ 봉준호 감독님은 콘티를 정말 잘 그리는 걸로 충무로 넘버원이잖아요.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콘티 작업도 직접 하는데 끝난 콘티하고 완성된 영화하고 오차 범위가 얼마나 되세요? 봉준호 _ 상당히 비슷합니다. 정성일 _ 이를테면 박찬욱 감독은 거의 콘티대로 찍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봉준호 _ 저도 콘티대로 찍고 편집에서 약간 응용하거나 변화를 많이 주기도 하지만, 저는 샷 컨스트럭션 하는 게 감독의 가장 큰 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당일 날 아침에는 콘티를 복사해서 나눠주고, 콘티 배열대로 찍습니다. 다만 배우에게 있어서는 방금 물에서 잡은 물고기처럼 라이브하게 가야하니까, 현장에서만 시도해볼 수 있는 거라든가 숨통을 트일 수 있는 뭐가 있는 지 막 얘기하고 하는데 그렇게 찍는 장면도 설계된 카메라였구요, 그게 감독의 일이고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흔히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가 좋았어, 라고 생각하는 것도 시나리오를 인쇄해서 극장에서 나눠주는 게 아니잖아요. 영화 속에 배열된 장면을 보고 거기서 추출 되서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오게 되는 건데, 물론 시나리오도 제가 직접 씁니다만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 시나리오는 증발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장면과 사운드가 남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2시간 동안 연이어 보여지는 커트 수가 1,000개 이하거든요. < 설국열차 >때 처음 1,000개를 넘어갔는데, < 괴물 >도 약 800컷, < 마더 >도 약 600컷. 장면들의 연속이 물질적으로 영화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설계하는 게 감독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성일 _ 현장에서의 우연이라는 건 배우 이외에는 허용하지 않나요? 봉준호 _ 우연을 줄이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콘티 자체가 로케이션 헌팅을 하고 공간을 확정지은 후에 콘티를 수정하거나 만듭니다. 또는 세트의 설계도가 나온 후에 다시 수정하거나 합니다. 쇼트를 컨스트럭션 해야 하니까요. 반대로 쇼트를 설계하면서 공간도 설계하게 되니까, 이런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미술 감독에게 주문하죠. 취조실이 보일러실이고 이 창에서 김상경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이런 계단을 해주시오. 이 계단의 폭은 매우 좁아야합니다. 그 주문에 맞춰 류성희 미술감독이 세트를 만들어 줍니다. 만들어진 세트를 보고 또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다시 공간을 설계하고 그렇게 가면 큰 문제가 없이 그대로 찍게 됩니다. 미친 듯이 준비하고 오차를 없애려고 하고.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불안한 게 많아서 그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겁이 나니까. 엑스트라 50명 왔는데 못 찍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해서 콘티를 그리고 카피해서 나눠줍니다. 몇 달 전에 나오는 콘티도 있고, 그전 날 나눠주는 콘티도 있고 당일 날 나눠주는 콘티도 있지만. 콘티 없이 현장에 스태프가 모이는 일은 없었어요. 이렇게 하면 마음이 놓이니까 그렇게 하죠. 그렇게 콘티를 스태프들이 다 쥐고 있으면 그때부터는 청개구리 심리가 발동하죠. 콘티대로 하면 찍을 수는 있으니까 일단은 기본적인 안심은 됐고, 내가 만든 콘티지만 어떻게 반항할까, 거역할까. 어떤 걸 뭘 더 추가할까. 저 배우가 저 표정이 재밌으니까 옆에서 한번 찍어볼까. 현장에 몰랐는데 알고 보니 누가 버려둔 자전거가 있더라. < 흔들리는 도쿄 >때는 그걸 확 잡아 빼는 장면을 넣기도 했고. 그게 저를 흥분시키거나 현장에 나가고 싶게 만드는 요소죠. 하지만 그건 다 준비한 후구요. 콘티 없이 현장에 나가는 게 싫습니다. 정성일 _ 어떤 점에서는 시나리오가 끝났을 때 이미 영화가 머릿속에서 끝난 거네요. 봉준호 _ 다는 아닌데 시나리오를 쓸 때 이미 사운드랑 이미지로 생각했는데 그걸 그려 주기에는 (시나리오라는 것이) 낯선 단계이기 때문에 그걸 지문이랑 대사로 전환시켜서 인더스트리에서는 시나리오를 필요로 하잖아요. 그걸 가지고 스태프들을 구성하고 하니까. 구청에 갈 때는 민원서류를 들고 가듯이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서류를 통해서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인 것처럼 영화 일을 위해 시나리오를 쓴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많은 감독님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사운드와 이미지가 먼저 있는 거고 그래서 제가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를 받아서 연출하는 걸 잘 못하는 거 같아요. 결국 제가 쓰게 되잖아요. 미국 영화 시스템에서는 에이전시에서 뿌리는 시나리오들. 시나리오와 감독과 배우가 짝짓기 하잖아요. 한국 같은 경우는 연애 결혼하는 거잖아요. 미국은 시스템 자체가 중매결혼 하고. 중매쟁이가 에이젠트들이죠. 미국에서도 타란티노같은 감독들은 연애 결혼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영화 사이의) 텀이 3, 4년 정도 걸리고. 직업적으로 더 많은 영화를 만들려면 때로 중매 결혼해야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은 거 같아요.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렇게 준비를 해서 현장 진행을 할 때 실용적 관점에서 찍으세요, 아니면 영화를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으세요? 봉준호 _ 순서대로 찍은 적은 없고요,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으려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요. 켄 로치가 < 랜드 앤드 프리덤 >을 찍을 때 그렇게 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한 효과가 클라이맥스에서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이크 리는 연극 공연처럼 접근한다고 들었어요. 몇 달간 모여서 연습하고 크랭크 인하는 시점이 대학로 무대 공연 올리는 시점처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그 양반들의 접근법이다, 라고 생각하고 저는 물리적입니다. < 설국열차 >도 첫날 라스트 씬을 찍었구요, 촬영 조건 때문에. 고아성 과 그 흑인 아이가 기차 밖으로 나가서, (그 설경 장면이) 실제 오스트리아의 산악지대에서 찍은 것이거든요. 이 라스트 씬 만큼은 실제 눈이어야 하지 않나. 두 시간 동안 기차 세트 안에서 찍고 창밖은 (스튜디오 안에서) 내내 그린 스크린인데, 이제 마침내 기차를 벗어나 이게 메시지인데, 그래서 마침내 기차 바깥을 나와서 차가운 실제 공기를 마시고 실제 곰이 있는 건데 이것까지 그린 스크린을 해야 되냐. 미국 라인 피디가 엄청 반대하는데 저랑 홍경표 촬영 감독이 우겨서 찍었어요. 영화를 4월, 5월, 6월에 찍은 건데 눈 녹기 전에 그 라스트 씬만 (먼저) 찍고 온 거죠. 3월이 지나면 눈이 녹으니까 스태프들이 모여서 영화 라스트 씬부터 찍은 거죠. 우리는 프로잖아?! 이러면서 찍은 거죠. 고아성 양이 감독님 어떻게 해야 되요? (현장 표정을 지으면서) 많은 일을 겪었잖아, 시나리오 읽었잖아? 이러면서 찍었죠. (웃음) 와 너무 좋아, 좋아, 잘했어!! 불안해하지 마! 이러고 찍었죠. < 살인의 추억 >에서도 라스트 씬에서 송강호 씨가 황금벌판 보는 장면을 촬영 초에 찍었어요. 벼가 누렇게 익어서 출렁출렁할 때 찍어야하니까. <살인의 추억> 크랭크 인이 전남 장성에서 2002년 8월 21일, 8월 말이었는데 황금벌판, 추수 직전에 찍고 싶었어요. 그게 논 주인들과 다 협상하고 얘기를 한 건데 벼 베기 직전에 우리에게 알려 달라, 논마다 벼 베는 시점이 다 달라요. 벼 베는 시점을 제작부장이 미리 다 체크를 하고 벼 베기 직전에 그것을 찍었기 때문에 전체 영화의 25퍼센트 지점에 (찍었어요). 그건 프로로써 당연히... (잠시 생각) 감독이나 배우로써 난감할 수 잇겠지만, 세트 가면 세트로 몰아서 찍는 거구요. 특히 <설국열차>에선 정말 촬영순서가 복잡했는데 왜냐면, 설명을 하자면, ABCD 이렇게 4개의 세트를 짓고 해체하면서 돌아가면서 찍는 거거든요. 식물 칸에서 찍고 있을 때 꼬리 칸을 한 쪽에서 만들고 있고, 완성되면 넘어가고. 이쪽에서는 또 해체하고, 뼈대만 남기고, 뼈대 가격이 정말 비쌌기 때문에, 전체 스케줄을 지배하는 게 미술팀인거에요. 기차 세트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건데 기차도 실제 크기이고. 총 26개 서로 다른 기차 칸을 짓는데 기차 예산을 가장 ‘코스트 이펙티브’ 하게 짓고 해체하는 데에 맞춰서 배우와 스태프 전체가 움직이는 거예요. 미술팀이 스케줄을 지배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했으니 간신히 400억에 만든 거예요. 그렇게 뒤죽박죽해서 찍는 와중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더 계획해야하고 스토리보드 대로 찍어야 하는 거죠. 정성일 _ 이건 비평가라기보다는 씨네필로서의 관심인데, 완전히 반대로 찍는 사람은 홍상수 감독이잖아요. 두 분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항상 재밌게 본다는 이야기를 여러 인터뷰에서 읽었습니다. 완전히 다르게 찍는 이 감독의 영화에서 무엇이 재미있으세요? 봉준호 _ 다 요, 매직.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도 매직이 많지만,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도 매직이 정말 많은 거 같아요. 정성일 _ 그 매직이 가장 많은 영화는 어떤 영화였나요? < 북촌방향 > 봉준호 _ < 북촌방향 >. 최근에 흑백영화였죠. 술 먹고 아침에 길에 나와서 택시 잡는데 모여서, 그 장면이 정말 압권인거 같아요. 홍상수 감독님과 술을 몇 차례 먹어본 적은 있고, 섹시하시고 (웃음) 촬영현장에 가본 거는 딱 한 번뿐이에요. 김형구 감독님이 촬영하셨던 < 극장전 > 현장에 제가 갔었더랬어요. < 살인의 추억 >을 찍은 직후였고 김상경 도 볼 겸. 그 씬은 영화에서 편집 때 결국 잘려나갔는데 김상경이 술자리에서 여자들과 술 마시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세세하게 디렉팅하시더라구요. 여기 소주잔을 이렇게 잡고, 소주잔을 깨물어서 이렇게 하란 말이야! 단역배우에게도 굉장히 엄격하고 세세하게 얘기하더라구요. 존 카사베츠 스타일과 아주 다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전히 가장 매혹적인 영화를 만드시는 거 같아요. < 밤과 낮 >도 미국판 DVD를 얼마 전에 아마존에서 구했기 때문에 빼고는 다 갖고 있는데 모든 DVD를 늘어놓고 보면 몇 개씩 건너뛰어서 연결하면 한 영화 같기도 하고 이번 주 < 자유의 언덕 >도 보지만. 포스터를 보면 문소리가 비굴하게 해맑은 얼굴로 카세 료에게 수작을 걸잖아요. (웃음) 카세 료는 왜 이렇게 말랐을까, 감독님이 주문을 했나. 포스터부터 매혹됩니다. 정성일 _ 원래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2000년부터 < 플란다스의 개 >로 시작을 해서 영화 작업 기간이 14년이나 겹치는데 봉준호 감독과 임 감독님의 배우가 서로 안 겹칩니다. 한국영화는 의외로 매우 좁기 때문에 서로 배우를 피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배우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을 제외하면 감독이 배우와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긴데, 이를테면 많은 감독들이 다른 감독 영화를 볼 때 그 감독이 배우를 어떻게 다룰까 유심히 보는 거 같습니다. 봉준호 _ 드디어 겹쳤습니다. 김호정 씨. 저의 첫 작품과 임 감독님이 최근 작품이! (웃음) 그런데 정말 안 겹치나요? 정성일 _ 양쪽 모두 자기에게 탑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겹치지 않았어요. 그렇게 사랑하는 강수연 씨도 안 쓰셨잖아요? (웃음) 말하자면 배우가 아니라 그 배우가 만들어내는 인물과의 친화성이랄까, 연출이란 결국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멀어지면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게 된다고 느껴집니다. 연기지도라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도 매우 특별한 자기 방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바라보면서 이것이 임권택 연기 디렉션 메소드라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요? < 마더 > 봉준호 _ 많은 명배우들이 나오셨잖아요, 임 감독님 영화에. 그래서 약간 외람되지만, 예를 들어 김갑수 , 강수연 선배님처럼 그런 명배우 말고 우리가 흔히 명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 배우를 보면 임 감독님의 메소드가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한지일 씨. 제가 연출부에서 그분을 잠시 모신 적이 있어요. <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 >에서 슬레이트를 치고 첫 연출부를 했었는데( 박종원 감독의 연출부를 했다) 거기에 한지일 선배님이 나오시죠. 그때도 물어 봤죠 < 아제아제 바라아제 >랑 < 길소뜸 >에서 어떻게 하셨나. 그 분이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보면 소주병을 들고 (같이 자기와 살지 않으면) 자기가 죽으려고 한다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비구니인) 강수연에게 이상한 대사들을 하는데, 그때 영화 아카데미에서 친한 누나인 김명화 선배가 임권택 감독님 연출부를 몇 작품 하셨는데 한지일 선배님이 영화를 찍을 때 상황을 얘기 하시더라구요. 밤 새워 뭔가를 찍는 장면이 있었는데 계속 그 대사를 틀리셔서 결국에는 한지일 선배를 제외한 모든 스태프들이 그 대사를 외웠다는. (웃음) 임 감독님이 그것을 다 인내하시고 참아내시면서 결국 오케이를 하신다. 아까 말한 제 얕은 추측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을, (잠시 생각) 시대를 가여워 하시는 거 같습니다. 배우들에게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춘향뎐 > 예고편을 보면 배우들을 다그치고 윽박지르는 것도 나오지만 그런 건 표면적 메소드가 아닐까 합니다. 배우들을 되게 아끼고 좋아하지 않으실까, 가여워하지 않으실까. 그런 마음이 있을 때 감독이 사실은 기다릴 수 있게 되거든요. 그 분이 이 인터뷰를 읽지 않을 거라는 추측에 이런 말을 하는데요. 김진구 할머니라는 분이 계세요. < 플란다스의 개 >에서 침 뱉는 할머니, 치와와 주인. < 마더 >에서 죽은 여고생 쌀떡 소녀의 할머니, 맨날 막걸리 드시는. 이창동 감독님 영화에도 몇 번 나오시고.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배우신데. 여균동 의 < 죽이는 이야기 >에도 나오시고. 저는 김진구 여사님 되게 좋아하거든요. <마더>에서 김혜자 선생님과 연기 대결하는 순간이 있어요. 김혜자 선생님이 플래시 들고 갔을 때 쌀통 속에서 핸드폰을 좌악 꺼내며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대사를 빅 클로즈업에 하는 장면이 있어요. 나정이 핸드폰 여기 있어요? 그러니까, (김진구 여사가) 벌써 술 바꿔 먹었는데~~ 이러는 이상한 괴연(怪演)을 하는 게 있는데 그걸 제가 35 테이크 까지 갔어요. 그걸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컨셉이 있었는데. 고걸 제가 (그 앞에서 직접) 여러 번 해드렸어요. (그런데) 막상 하면 자꾸 딴 걸 하세요. 그 분이 정신이 약간 오락가락하세요. 나중에는 옆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지치셔서, 아유 이렇게 찍으면 벙어리도 입이 열리겠네, 그러시는 거예요. (웃음) 그래도 제가 그 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었거든요. 홍경표 감독님이 핸드 헬드니 얼마나 어깨가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다 기다려주시고. 임 감독님이 때로는 되게 배우들에게 무섭게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영화처럼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을 가여워하신다고 추측해요. < 취화선 > 때 현장에 되게 오래 계셨잖아요? 정성일 _ < 취화선 > 때 손예진 양이 죽다 살아났죠. 똑같이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 영화도 필름으로 찍었는데 장승업이 손을 다치자 어쩌나, 그 귀한 손을, 하는 장면을 17 테이크를 갔죠. 약간 동선이 복잡해서 오후 내내 찍었어요. (웃음)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에서도 배우들의 앙상블이 종종 모든 걸 거는 장면들과 만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저는 < 살인의 추억 >에서 한꺼번에 룸살롱에 형사들이 몰려가서 얘기하는 장면의 앙상블이 정말 좋아요. 그게 희생자가 발견된 논두렁을 오가는 송강호 를 따라 롱 테이크로 쫓아가는 그 유명한 장면보다 훨씬 좋았어요. 봉준호 _ 거의 안무죠. 정성일 _ 정말 앙상블의 안무죠. 저로서는 < 플란다스의 개 >가 사랑스럽긴 하지만 여기서 이 사람이 연출자로 확 커져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건 그런 장면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좁은 공간으로 밀어 넣었는데 < 설국열차 >에는 왜 그런 순간이 없을까 아쉬웠어요. 좀 밋밋하게 느껴졌달까, 오히려 폐쇄 공간에 모든 배우들을 집어넣고 나면 저는 그런 순간이 계속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봉준호 _ 미세한 연기적 뉘앙스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세밀한 터치를 하기가 < 설국열차 > 때 그게 쉽지가 않았어요.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적으로 2개월 4주 만에 그걸 다 찍는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찍는 분량이 제가 보통 찍는 분량보다 훨씬 많았죠. < 살인의 추억 >이 한 5개월 찍었고, < 괴물 >도 6개월, < 마더 >는 4개월. 제가 찍었던 영화 중 <설국열차>가 테이크 수가 제일 적었어요. 투박하고 거친 느낌으로 계속 밀어붙이지 않으면 제 일정 안에 끝내기 힘들,. 그런 계산이 첫 주 둘째 주부터 들더라구요. 그런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 때 자주 쓰시는 말 중 하나가 상상력입니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님 영화를 보면 상상력의 어떤 순간들이 진행되는 이야기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 괴물 >에 괴물이 나왔다는 차원이 아니라, < 살인의 추억 >의 경우 실제 사건을 쫓아가는 중에 어떤 장면을 연출할 때 사실을 과잉해버린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장식 과잉이 아니라 어떤 순간으로 밀어붙여 버린달까? 구태여 보일러실로 갈 필요가 없었는데 상식적으로 경찰서로 가면 되는데 보일러실로 내려가서 사실 공간으로부터 상상력의 공간으로 끌고 간달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봉준호 터치야, 라고 말하는. 구태여 시체를 전시한 < 마더 >의 장면에서도 그렇고, 봉준호 감독님의 대답을 흉내 내자면 빨래처럼 시체를 걸어놔야만 한다는 어떤 변태적인 증후들. (웃음) 이건 명백히 이야기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순조롭게 가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연출자가 그 상상력의 흔적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순간들이 있달까요. <괴물>의 경우에도 그 출발이 서울 시민 2천만이 다 보는 한강에 괴물을 구태여 끌어내서 실재와의 불가능성을 동거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그 과잉하는 상상력.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백주 대낮의 한강에서 마주쳐야만 하는 괴물. 이 괴물은 처음부터 은밀하게 나타날 생각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상상력의 허구 안에서 필사적으로 리얼리티를 끌어내려고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상상력의 허구 안에서 필사적으로 리얼리티를 부여하려는,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과 리얼리티의 긴장, 공존의 긴장. < 살인의 추억 > 봉준호 _ 말씀하신 대로인거 같아요. 그런 걸 할 때 가장 즐겁습니다. 최대한 뻔뻔스러워지려고 하고.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중요한 흥분이라고 느껴져요. 말이 안 되는 건데 괴물이라는 생명체가 맨날 왔다 갔다 하는 한강 고수 부지 백주대낮에 가는 거잖아요. 그거에 대한 송강호 의 리액션은 또 너무나 사실적이잖아요. 분위기도 리얼하고 SF적인 포장이 전혀 없고. 거기서 오는 생경하면서 어색하기도 한, 표피가 리얼하면 보는 사람은 믿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는데 믿을 수밖에 없도록 표피를 만들고. 그런 상황이 저는 되게 좋아요 재밌고. 실제로 2001년인가 태국 무슨 서커스단이 한국에 와서 코끼리 다섯 마리가 장안동 광진구 쪽 일대를 돌아다니는 뉴스 클립이 유튜브에 있어요. MBC 뉴스데스크에 나오는데, 어떤 식당에 코끼리가 들어가서 가게 주인이 망연자실하게 보는데 코끼리가 김치 통을 까고 있고, (웃음) 실제로 뉴스 클립인데 초현실적이거든요. 그런 느낌을 좋아하니까 < 괴물 >같은 걸 한 거고, <괴물>처럼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어도, < 살인의 추억 >에서도 보일러실 얘기를 하셨지만 최소한의 저 자신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핑계거리만 있다면 밀어붙이려고 하거든요. 실제 화성연쇄 사건 기록을 봐도 미국처럼 근사한 취조실이 없어요. 라이트가 쫙 들어오고 밖에서만 안이 보이고, 80년대는 그런 게 절대 없어요. 취조를 근처 여관방에서 하고 그래요. 여인숙에 데려가서 앞에 순경 세워놓고 안에서 쥐어박으면서. 그런 증언이나 기록이 되게 많아요. <살인의 추억> 전체적으로 보면 야매에 대한 맥락이 있어요. 나이키와 나이스. 전미선 씨가 야매 주사를 놓고 경찰 자체가 FBI와 시골형사로 나눠놓고 증거자료가 오가고. 취조실도 제대로 된 취조실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보일러실 취조, 그래 좋다. 뻔뻔스럽게 스태프들을 먼저 설득을 하고요. (모두 모아놓고) 실제 이랬어요, 그러는 거죠. 김뢰하 씨가 워커 군화를 신고 용의자를 구타할 때 거기에 덧버선을 씌웠습니다. 사실 이건 제 머릿속에서 나왔는데 스태프에게는 항상 테스트 삼아 거짓말을 해봐요. 이건 내가 형사 인터뷰에서 들은 거라고, 그럼 다들 아, 진짜 리얼하네요, (웃음) 그래요. 보여주면, 설득하면 믿는 거 같아요. 항상 스태프가 첫 번째 관객이라고 생각하는데,그래서 (스태프들에게) 실제 형사를 취재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디테일이에요, (라고 시침 뚝 떼고) 말하는 거죠. 그냥 시나리오 쓰면서 생각한 거거든요. 그런 게 점점 심해지면 <괴물>까지 나오는 거예요. 점점 뻔뻔스러워지죠. < 마더 >도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허벅지 어디다 침을 놓으면 기억을 상실하고, (그런데도) 동의보감에 그런 게 있다는 둥, (웃음) 우리가 보면 말이 안 되지만 동의보감이나 실제 고증해보면 있다. 이런 게.(웃음) 진정한 망각까지는 안 되겠지만 여기다 침을 놓으면 몸이 풀리면서 좋아진다고 해요. 그러면 김혜자 선생님도, 어. 그렇군요, 그러시죠. 누구를 속이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기본이 아닌가요. < 화니와 알렉산더 >에서도 나오지만 남자애가 거짓말을 하잖아요. 그게 사실 창작의 근원처럼 영화가 설명되고 있는데. 신부의 집에서 애가 모진 일들을 겪으면서, 마지막에 할머니가 재우면서 읽어주는 시도 그렇고 창작의 거미줄을 짓는 것. 그런 것을 상상력이라고 표현해주셨는데,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 이거 취재에서 나온 건데? 그렇게 믿게 만드는 거. 그럴수록 재밌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정성일 _ 한국영화의 가장 큰 짐 중 하나는 리얼리즘이라는 말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인과관계로 다가오고, 누군가에게 사실주의로 다가오는 데, 이 사회가 끊임없이 예술가들에게 요구를 하고 있는 것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리얼리즘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마법적 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봉준호 감독에게 리얼리즘이란 무엇입니까? 봉준호 _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저는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이 없고 리스펙트도 없어요, 만화를 좋아하고 그리면서 컸기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정성일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있으면 디테일적인 리얼리즘이랄까요. 보는 쪽에서는 강박적일만큼. < 괴물 > 봉준호 _ 그런 걸 집착하고 즐기는데 모든 게 연출이라는 걸 다 알잖아요. 특히 < 괴물 >에서 간호사 다리만 나오는 뉴스 인터뷰 장면에서 TV 뉴스 따라한 거 저 정말 좋아하거든요. 진짜 최일구 앵커 나오고 자막도 뉴스 자막처럼 들어가고 실제 공중파 앵커들을 데려다가 한강에서 괴물이 나왔다고 찍는 게, 다 큰 어른들이 그러는 게 얼마나 한심하고 웃긴 상황이에요. 찍으면서도 너무 웃기죠. 그걸 뻔뻔스럽게 찍는 건데 말투부터 토씨까지 앵커처럼 바꿔서. 그게 강박적으로 리얼한 거 같지만 이 사건과 영화 전체가 너무나 황당한 거잖아요. 한강에서 포름알데히드를 부었다는 이유로 괴물이 나왔다. 과학자가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초반 13분에 그냥 다 나와 버리니까. 괴물이 나올수록 오히려 저는 더 리얼하고 싶은 거예요. < 설국열차 >는 기차 안에 다 우겨넣으면서 오롯이 더 SF적인 세계인 건데, 이질적인 건데 다 뻔뻔스럽게 한 프레임에 우겨넣어버리거나 도저히 리얼할 수 없는 건데 그걸 기를 쓰고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이 부질없어 하면서도 재밌는 거죠. <괴물> 때 그게 극대화되었던 건데. 그게 영화 전체가 아니라 신이나 쇼트에서, 적은 단위에서도 그런 짓을 하는 걸 좋아하고,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경계가 없어지는 게 즐거워요. < 마더 > 개봉하고 실제 4개월 후에 대구에서 어떤 여고생이 살해되었는데 나무에 여고생을 걸어놨었어요. 그런 사건도 실제 벌어지거든요. 실제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 영화를 압도할 때가 있잖아요. 논픽션이 픽션을 압도하는 경우. 너무 기괴하고 이상해서 기구한. 마치 < 매그놀리아 > 도입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혀 개연성이 없는 일인데 실제로 벌어진. 실제 다큐멘터리라고 하니까 더 믿을 수밖에 없는. 제 영화에서 가장 이상하고 괴상한 것을 반복해 놓은 게 <괴물>이었는데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과 연결시켜서 정리해놓은 게 있더라구요. 실제에서도 오히려 경계가 없지 않나 생각해요. 정성일 _ 디테일의 리얼리즘이 보는 쪽에게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님 영화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잖아요. 근데 그걸 굉장히 냉소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거죠. 정치적 연상도 일으키고 한편에서는 아까 쓴 표현을 빌리자면 서늘한 거죠. 왜냐하면 내가 사는 세상을 향해 웃고 있는 거니까. 냉소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게 한편으로는 봉준호 감독님께서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한 건가요? 봉준호 _ 제 성격이 좀 그런 거 같아요. 임 감독님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특유의 선선함이나 가여워하는 것. 저도 그런 마음이 있거든요. 아무리 영화 속 악인이라도 가엽고, < 살인의 추억 >의 범인도 그렇겠지만. 가여움에 대한 관점이 있는데, 다만 성격적으로 제가 단일한 하나의 감정에 편하게 몰입을 못하는 성격이라. 사람들이랑 즐겁게 술을 먹다가도, 실제 생활에도 그런 면이 있어요. 제가 끼면 아마 사람들이 불편할 거예요. 정성일 _ < 마더 >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금기처럼 방어선을 쳐 놓은 모성이라는 안전한 세계를 광기처럼 만들어놓았습니다. 이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 시 >와 같은 해에 개봉했는데, 감독 자신은 전혀 원치 않겠지만, 마치 <마더>는 우연히도 <시>에 대한 메타 비평처럼 보입니다. 둘 다 결국은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잖습니까. <시>는 모성이 자식의 죄에 대해 가져야 할 도덕적 태도가 무엇인지 물어본 다음 전체의 질서 안으로 다시 편입시킵니다. <마더>는 그 사랑의 선택을 윤리적으로 바라본 다음 광기에로 밀어 넣습니다. 저는 여기서 모성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마더>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의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마치 보호해야할 무언가를 지키려는 듯한 암묵적인 전제에 대해 훨씬 성숙한 질문과 마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건 한국 사회에서 거의 절대적으로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시종일관 산산조각 내버리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이었어요. 봉준호 _ < 시 >가 개봉했을 때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과 정확히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평을 블로그에서 본 적이 있어요. < 마더 >에서는 모든 것을 덮고 종팔이라는 다운증후군 애가 감방에 남고 원빈 을 끌고 나오는 내용인데, <시>에서는 할머니가 아이를 형사에게 보내잖아요. <시>가 더 성숙한 영화고, 봉준호 의 <마더>에 대한 이창동 감독의 응답이다. <시>가 더 윤리적으로 성숙하고 올바른 영화가 아니겠는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잠시 생각) 저는 그렇게 엄중하게 생각을 못했고 그게 영화의 출발이었어요. 왜냐면 김혜자 선생님과 일하고 싶어서 기획한 거니까요. 그 시나리오를 써놓고 배우를 선택한 게 아니었어요. 나는 김혜자 선생님이 정말 싸이코 같아, 미친 여자야, 나쁘게 말하면 미친년이야, 광고에서, 그래 이 맛이야, 하는 걸 볼 때마다 국민 엄마지만 저분은 무슨 광기가 있다, 무슨 토크쇼에서 제가 그것을 봤거든요. 연기표현이 아니라 어, 미친 분인 가봐. 그런 느낌을 받아가지고, 그게 출발이란 말이에요. 위대한 배우지만 동시에 국민엄마 아이콘이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미친 사람이고, 그 분을 영화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야겠는데 엄마가 미친년이다, 그렇게 해서 쓴 스토리였습니다. 김혜자 선생님이 거절하면 그 영화를 엎었을 거예요. 김혜자 선생님이 안 하신다고 하면 나문희 선생님, 고두심 , 윤여정 , 이렇게 (주연을 바꿔가면서 제안을 할 수 있는) 그게 아니었어요. 우리나라는 특히 모성을 숭배하잖아요. 우정의 무대에도 엄마가 커튼 뒤에 서 있으면 엄마, 하고 울고, 사실 엄마와 관계가 안 좋은 아들들도 엄청 많은데, 그런데 그건 다 무시되잖아요. 엄마 하면 무조건 울어야 된다고 우리나라는 강요되는데, 그런 엄마의 아이콘이 김혜자 선생님이었고, 출발이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김혜자 선생님이랑 하는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영화였습니다. 다행히 김혜자 선생님께 시나리오 드렸을 때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아, 좋아요. 나도 이런 거 하고 싶어요. 봉 감독, (아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걸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피 좀 더 뿌려주세요. 머리를 깰까요? 그동안 수십 년간 MBC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 전원일기 >를 하면서) 최불암 님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렇게 분출했을 수도 있어서 저도 좋았죠. (웃음) 사람들은 불편한 면이 있었겠죠. 그런데 마케팅 팀에서는 그것도 극한의 모성이다. 그것조차도 큰 사랑의 범위 내에 우겨넣으려고 한 거고. 저도 그게 이해되기도 하고. (웃음) < 마더 > 정성일 _ 한국영화에서는 쎈 척 하는 영화가 많아도 일단 상업영화라고 부르는 경계 안으로 넘어오면 절대 못 넘는 금기가 몇 개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 마더 >는 그 중 하나를 돌파해버려서, 참 이것을 다시 넘어서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 설국열차 >는 영어권 배우들과 함께 찍으면서 <마더>를 순화시키는 해독제 같은 느낌이 있어요. 만약에 <마더> 다음에 한국영화를 바로 찍었으면 어떤 얘기를 갖다 붙여도 힘이 없어지는 느낌? 봉준호 _ 그 반대도 성립하고요. < 괴물 >과 <설국 열차> 사이에 < 마더 >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정성일 _ < 괴물 >도 선을 넘었죠. 딸을 죽인 거니까. 봉준호 _ 그거 같은 거는 저는 딜레마가 없었어요. 저는 시나리오부터 그렇게 쓴 거니까 아무 고민이 없었어요. 딸은 죽었고 다른 아이가 온다, 가 전제로 출발한 거여서. 일본사람들은 딸이 죽는 거에 대해 되게 당황하더라구요. < 괴물 >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구요. < 마더 >와 < 살인의 추억 >을 좋아하고. 정성일 _ < 괴물 >에서는 두 번 당황했는데, 하나는 괴물 장르의 영화가 갖는 규칙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놓여 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이는 데 한 시간, 그래서 힘을 합해 괴물과 싸우는 데 한 시간의 법칙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다 모여 있던 사람들을 55분이 되었을 때 갑자기 다 찢어놓았습니다.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미친 거 아니야? 이렇게 되면 영화가 도리 없이 이 사람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동분서주해야 하는데, 그런데 정말 그러면서 그냥 계속 가더라구요. (웃음) 그러다가 하여튼 한 자리에 모으더니 괴물과 싸워 물리치긴 하지만 이번에는 딸이 죽더라구요. 다시 한 번 중얼거렸죠. 그럼 이제까지 이 사람들이 뭐한 거야? (웃음) 봉준호 _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제가 그런 개념이 없어요. 아버지가 죽었으니 애들이 다 찢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정성일 _ 우리가 장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여기서 보는 것은 단지 이야기를 찢고 주인공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법칙을 찢고 컨벤션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그 안에서 리얼리티가 갑자기 귀환하면서 그 안에서 냉소적인 이성이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봉준호 _ 제가 존경할만한 리얼리즘의 형태는 아니죠. 표피적인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보이는 순간을 믿도록 관객이 강요당하는 거죠. 사실은 한 발 짝 더 다가가서 그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완전 말이 안 되는 거죠. 애가 그렇게 죽었건, 허벅지에 침을 놓건, 말이 안 되는 건데, 표면적으로 그걸 믿게 만들고 심지어 디테일하다, 리얼하다고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정성일 _ 그건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자신의 영화에서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설명하는 바로 그 불가능성을 성립시키는 게 봉준호 감독 영화의 매직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성립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성립시키는 순간을 보면 그때 영화가 반짝반짝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들이 힘이 되는 거죠. 봉준호 _ 일부러 그런 것을 계산해서 포석을 까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성격상 불안해서 준비를 많이 하지만 포석을 잘 까는 타입은 아닙니다. 큐브릭은 항상 배우들과 현장에서 체스를 두잖아요. 하지만 저는 체스를 잘 못 두고, 바둑은 너무 어려워서 못 배웠어요. 성립되게 하는 것에 있어서도 약간의 뻔뻔함과 약간 곁다리로 빠지면서 오히려 그런 게 더 많은 거 같아요. 예를 들면 그런 거죠. < 괴물 >에서 박해일 이 이통사에서 근무하는 선배 임필성 을 찾아가잖아요. 알고 보면 형사들이 그 옆방에 숨어 있잖아요. 거기서 임필성이 갑자기 쓸데없는 얘기를 하거든요. 이 수배 현상금 세금이 어떻게 됩니까? 그건 비과세 기타 소득이기 때문에 그건 세금을 안 때린다! 그걸 세무사들이 들으면 웃는 장면인데 (웃음) 사실은 리얼리즘은커녕 리얼리티와도 안 맞는 장면인데, 그때 그 상황 자체가 약간 의도적으로 너저분해지면서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현실이 원래 너저분하잖아요. 일목요연하게 진행이 안 돼 있고, 우리가 택시 기사와 싸울 때도 그렇고, 그런 걸 제가 막 깊게 계산해서 놓는 건 아니에요. 임필성은 결국 돈을 노린 거다. 왜냐? 카드빚이 많다 잖아? (웃음) 저는 굉장히 단순한 논리로 쓰는 거거든요. 거기 뭐, 후배를 꼰지르는 존재론적 고뇌를 하고 그런 거 전혀 없잖아요. 사실 우리가 살면서 고뇌를 그렇게 많이 하나요? 아주 작고 너저분한 것에 유혹되어서 많은 결정을 하잖아요. 정성일 _ < 해무 >를 보면, 심성보 감독이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를 했었으니까, 이게 스승으로부터 전염되었구나, 뭐랄까 봉준호의 터치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어요. 한예리 가 배 안에서 숨어서 뭔가 뒤집어쓰고 있는데 박유천 과 이야기를 나누다말고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슬그머니 오른쪽으로 돌아앉으면서 이희준이 그것을 벗길 때였어요. 제가 봉준호의 터치라고 느낀 순간은 영화를 보아온 이제까지의 관습으로는 여기서 커트를 나눠야 하는데 이 쇼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한 쇼트에 해결을 해야만 해, 아니 차라리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은데 한 쇼트에 우겨 넣어야 해, 하는 장면이었어요. 이게 무리하다는 판단이 되는 지점에서조차 밀고 나아가서 성립될 때 그게 유머로 전환되죠. 그때 여기에는 무언가 쇼트를 나누지 말고 하나의 쇼트로 성립을 시켜야한다는 터치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님에게 쇼트는 무엇입니까? 봉준호 _ 정확히 짚어주신 것 같은데.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도 항상 매혹되는 순간은 쇼트를 나누지 않았을 때, 너무나 자연스러운 미장센 속에서도 누군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교차하고 퇴장하고, 연극적인 스테이징은 아니지만, < 짝코 >에서도 카메라가 공간 밖에 있는데 마치 안에서 찍는 것처럼 보여졌을 때도, 이 인물이 나와서 골목으로 꺾어져도 마치 물 흐르는 것처럼 찍은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지만, 제 자신의 영화를 찍을 때도 본능적으로 어떡하면 쇼트를 덜 쪼갤 수 있을까, 전체 영화의 커트 수가 어떻게 하면 더 적어질 수 있을까 본능적으로 그걸 느껴요. 그렇지만 타르코프스키가 촛불 들고 온천 이동하는 그런 데는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분할되지 않고 이어졌을 때 오는 이상한 쾌감. 이어짐으로 오는 어색함으로 오는 웃김. 저는 그런 게 되게 좋죠. 분할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흥분되는 감독님들도 많이 있는 거 같구요. 김성수 감독님도 그렇고. 저는 쪼갤 수 있는데 쪼개지 않거나 쪼개야 마땅한데 그것을 억지로 거스르는 게 재미있는 거 같아요. 정성일 _ 반대로 질문하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임 감독님 영화를 보다가 이건 임권택 터치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이 어떤 것인가요? 봉준호 _ 단역배우나 엑스트라가 되게 뻔뻔스럽게 뭔가를 설명할 때. (웃음) “아니 그래 저 놈이 누구 대감댁 둘째 아들인데 누구 애를 배게 해가지고 곤장을 맞았다지 뭐야?” 전혀 중요한 인물이 아닌데 거침없이 설명을 해버리잖아요. 그건 임 감독님 영화뿐 아니라 옛날 충무로 영화에는 그런 게 많았어요. “어 그런 게 말이야. 그래서 결국은 사또가 뭔가 했는데 결국 그게 둘째 딸이지 아마” (웃음) 저는 그게 굉장히 흥겹거든요. < 서편제 >에서도 김명곤 이 창할 때도 누군가 막 얘기하는데 후시녹음으로 생경한 앰비언스와 전혀 분리된 센 대사로 막 오잖아요. 거창하게 미학적으로 뭘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판소리로 치면 창을 하는 중에 얘기하잖아요. 서양식 연극에서도,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 하듯이, 무대 뒤에서 진행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그걸 그냥 잠깐 나오는 보조 출연자가 등장해서 굉장히 중요한 세팅 같은 걸 거침없이 얘기해버리고 하는 거 보면 반가워요, 흥겹고.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느닷없이 등장하는 수평 트래킹에 페티시즘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웃음) 그런 특별한 카메라 운동에 대해 영화적 흥분이 있으세요? 봉준호 _ < 살인의 추억 >도 그렇고, < 설국열차 >도 기차 자체가 트랙이죠. < 마더 >도 버스 자체가 트래킹이라고 할 수 있죠. 인물을 향해 다가가거나 멀어질 때도 있지만 수평 트래킹을 하면서 줌이 결합된다거나 그런 걸 제가 봐도 매우 좋아하는 거 같아요. 원인은 모르겠지만. 정성일 _ 거기서 진행하던 이야기나 혹은 인물로부터 갑자기 어떤 특별한 거리(distance)를 만들고 싶은 그런 게 있나요? 봉준호 _ (잠시 생각) 글쎄 모르겠어요. 저 스스로 미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모르겠지만 쾌감이 있는 거 같아요. 다른 사람의 영화를 봤을 때, <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의 도입부에 보면 그 여자애가 합창단이고 비 맞고 뛰어갈 때, 수평 트래킹하면서 그 여자의 종아리로 줌 할 때 이상한 흥분을 느꼈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 마더 >에서 그걸 시도해본 장면이 있어요. 찍을 때 의식이 되더라구요. 진구 가 김혜자 선생님께 돈 받고 본드 먹은 고등학생을 발로 까는 장면이 있어요. 돈을 받고 애들을 깔 때까지가 한 테이크인데, 먼저 돈의 두께를 보죠. 그걸 가슴에 넣고 아이들을 까러 가는 장면을 트래킹하면서 발로 줌이 들어가요. 발에 줌이 들어가면서 속도가 확 붙어요. 달리(dolly)는 그대로지만 줌이 들어가서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보이죠. 그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장면이 생각났어요. 그런 장면을 찍을 때 흥분되는 거 같아요. 수평 트래킹뿐 아니라 트래킹 할 때 굉장히 흥분되는 거 같아요. 영화에서만 가능하고. 연극은 객석의 한 의자에 그냥 앉아 있는 거잖아요. 연극, 사진, 만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얘기고. 정성일 _ 영화적인 테크닉에 대해서 좀 더 질문하고 싶습니다. 남들도 다 사용하는 것이 봉준호 영화 안으로 들어오면 참 희한하구나, 라는 순간들을 만들고 내고 계시니까요. (웃음) 슬로 모션에 대해 몹시 특별한 견해가 있는 거 같아요. 영화에서 대부분의 슬로 모션을 볼 때, 그건 어떤 쾌감의 운동인데, 봉준호 감독이 슬로 모션을 쓰면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게 있어요. 이를 테면 (< 괴물 >에서) 현서가 괴물로부터 빨리 도망가야 되는데, 구태여 속도를 늦게 만들어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거나, < 설국열차 >에서 예카테리나 브리지를 지나 터널로 빠져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밸러 클로버를 뒤집어쓴 용병들의 도끼와 싸울 때 갑작스러운 슬로 모션은 뭔가 싸운다기보다 이들을 허우적거리는 몸짓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이 순간 결정적인 삑사리의 장면이 등장하죠. (웃음) 표준적인 판본으로 만나는 슬로 모션과 다른 감각의 슬로 모션의 감각을 원하는 것 같아요. 봉준호 _ 말씀하신 걸 들어보니 정말 대부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상황을 슬로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게) 삐뚤어진 성격 때문인 거 같아요(웃음) < 설국열차 >에서도 크리스 에반스가 얼마나 이 싸움이 지치고 고독하고 외로울까. 기차가 좁으니까 어디 숨을 데도 없는데. 피하고 싶은 상황들이잖아요. < 살인의 추억 >의 논에서 가장 망신스럽고 ‘카오스’스러운 것도 현장 검증할 때잖아요. 오우삼 감독님 슬로 모션 하는 거랑 너무 다르니까. 슬로 모션을 쓰지 않았던 영화가 < 마더 >였던 거 같아요. 유일하게 비가 안 나왔던 게 < 설국열차 >였고, 슬로 모션 없는 게 <마더>다운 거 같아요. 그래서 더 잔인한 면이 있는 거 같고. 아, < 플란다스의 개 >도 있었구나. 저의 시그너처, 인장(印章)이라 할 만한 영역은 아닌 거 같아요. 샘 폐킨파의 뭐, 웨스 앤더슨의 뭐, 이렇게 부를만한 게 저는 없는 거 같아요. 약간의 습성들은 있습니다만 스타일이다, 시그너처다, 라고 말할 건 일, 이십 년 뒤에야 가능한 거 같습니다. 정성일 _ 그런데 영화에서의 상황은 말씀과 정반대이지요. 시그너처가 없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 괴물 >부터 새로운 봉준호 서사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건 터치와도 또 다른데, 가족이 부서져야 얘기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괴물>에서 딸이 죽었을 때는 무심코 그런가, 했는데 < 마더 >와 < 설국열차 >를 보고 났을 때, <마더>는 완전히 파괴죠. 가족을 부수기 전에는 이야기를 안 끝낸다, 라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마더>가 영화 한편으로 한국영화가 결계처럼 쳐 놓은 금기중의 하나를 벗어난 건데, 이를테면 근친상간을 하고 똑같이 기억을 잃어도 < 올드 보이 >는 필사적으로 복원에 대한 갈망을 얘기하잖아요. 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끝장내면서도 가족을 복원하려는 안간힘이 있어요. 그게 가엽죠. 유일하게 한국에서 단 한 명, 봉준호 감독에게서 가족을 끝장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맹렬한 전투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가족주의라고 부르는, 말 그대로 혈연을 넘어서서 감정적인 공동체에 대한 이 냉소적인 이성이라는 것. 사실상 가족주의가 점점 확대되고 상상적으로 비유의 프레임을 만들어내서 환상의 형식으로 거짓 공동체를 발명해내서 결속시킬 때 그것이 한국 사회의 지나친 파토스의 시작이기도 하잖습니까. 이 파토스 안에서 보면 가족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이성 안에서 보면 정말 이상한 거니까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는 제 설명 바깥에 있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가족이라는 파토스에 대한 어떤 혐오와 마주하게 됩니다. 봉준호 _ 저는 표면상 큰 문제없는 가족에서 자랐고. 저도 95년에 장가를 가서 20년 정도 가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웃음) < 괴물 >, < 마더 >, < 설국열차 >, 지금 보니 그런 식의 파국을 맞은 건 사실인데, 지금 쓰고 있는 여섯 번째 영화에서도 가족이 있긴 있는데 그다지 파괴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직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했으니까 말씀드릴 건 아니지만, 일곱 번째 영화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아주 강력하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곱 번째 영화를 개봉시키려면 사, 오년이 더 있어야겠지만. (잠시 생각) 섣불리 경망스럽게 얘기할 주제는 아직 못되는 거 같고 가족을 박살내야겠다고 의식해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사실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는 누구나 다 있지 않을까요. 월트 디즈니 영화를 봤을 때 치밀어오는 짜증 같은 것. (웃음) 이만희 정성일 _ 산만하게 진행한다고 했으니 다시 원래의 우리 컨셉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웃음) 김기영 감독님과 임권택 감독님 얘기를 나눴습니다만, 봉준호 감독에게서 한 번도 듣지 못한 얘기는 이만희 감독입니다. 이만희 감독님의 영화는 봉준호 감독에게 어떻습니까? 봉준호 _ 일단 작품을 많이 못 봤습니다. EBS에서 <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을 봤고, < 마의 계단 >도 재미있었고, 영상자료원에서 나온 스릴러 비슷한 < 암살자 >도 봤고, (잠시 생각) 사실 그렇게 많이 못 봤습니다. 엄청난 명성은 많이 들었지만. 정성일 _ 이토록 열심인 씨네필이 많이 보지 못했다는 건 끌리지 못했다는 이야기인 것이기도 하네요. (웃음) 봉준호 _ 아니, 보고 싶어요. 쿠엔틴 타란티노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리만희”를 꼭 보고 싶다고 작년 부산에서 지랄을 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제가 한국영상자료원에 부탁해서 DVD를 보내줬어요. 한국의 장르마스터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보고 싶다고. 그 보답으로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 게리슨 유격대 >라고 그게 희귀작인데 보내줬어요. 저는 박스 세트를 보냈는데 정작 그 박스 세트의 영화를 (저는) 다 못 본 거 같아요. 흥미로운 거는 최근에 자주 뵈는 이장호 감독님이 저를 항상 이만희 감독님과 연결시켜서 말씀하세요. 봉, 너는 이만희 감독과 비슷해. 나는 (너를) 이만희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저 스스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장르영화에 대한 관점이 있어서 이장호 감독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꾸 이만희 감독님을 얘기 하시더라구요. 김기영 감독님 얘기는 안 하시고. (웃음) 정성일 _ 혹시 이만희 감독님의 < 검은 머리 >를 보셨어요? 아주 좋아하실 거 같은데, 오히려 세간에 알려진 < 쇠사슬을 끊어라 > 이런 영화는 안 좋아할 거 같지만... 봉준호 _ 현존하는 < 삼포 가는 길 >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만희 감독님 영화라기보다는 한국영화에서 시골에서 눈밭을 (걸어)가는 그런 장면들을 매우 좋아해요. 어렸을 때 MBC 베스트셀러나 KBS TV 문학관에 그런 장면들이 꼭 나와요. 겨울에 한 남자가 적막한 눈밭 속을 가다가 거기 주막이 있고 거기에 또 딸이 있어요. 거기서 겁탈이 일어나기도 하고, 남자가 가면 딸이 보따리를 들고 따라오기도 하고 그러다 바닷가에 가잖아요. 속초에 가기도 하고 대관령도 가고. 그것의 본령. 원조 같은 느낌. 정성일 _ 봉준호 감독 자신은 전혀 원치 않겠지만, 원컨 원치 않건, 봉준호의 영화를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읽으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죠. < 플란다스의 개 >만이 중산층을 다루었고 그런 다음 갑자기 방향전환을 해서 사회적 약자, 밑바닥 계급으로 내려왔습니다. 봉준호 감독처럼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를 찍는 감독도 없죠, 한국영화에서. 그러면서 < 괴물 >의 첫 장면에서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를 읽을 수밖에 없고, < 마더 >도 정치적 함의를 끌어내게 싶게 만들고, <설국 열차>도 계급으로 단순화시키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해석을 단순화시키면 안심이 되니까. < 설국열차 >는 너무 단순해져서 한편으로 여기서는 봉준호 감독이 거는 게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절반은 게임이고 절반은 의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게임과 의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다는 거죠. 정치,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이라는 것, 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봉준호 _ 게임을 걸만큼의 성격이나 지적인 승부를 걸 깜냥은 안 되구요.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제가 그렇게 느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떤 정치적인 맥락이나 정치적인 서브 플롯이건, 서브 텍스트건, 상징이건, 뭐건 간에 보는 이를 교란시키기 위해서 떡밥, 밑밥을 던진 적은 없어요. 보여지는 것만큼 정말 저도 그렇게 느껴서. (주한미군 영안소 부책임자인 민간부 군무원 앨버트 L) 맥팔랜드가 실제 독극물을 방뇨했고, 실제 2000년도에 그랬죠. 미국이 한국에서 어떤 정치적 맥락인지 이 사건만큼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도 없구요. 그게 또 되게 SF 영화의 도입부 같잖아요. 이걸로 해서 보는 사람들이 호도되거나 게임을 걸고, 그렇게 해볼까? 그런 건 아니고 미국이 정말 우리나라에서 그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군대가 있어. 실제 이런 걸 방뇨해. 이걸 한국 공무원에게 시키는 게 더 재밌는 지점이야. 고도의 게임을 걸거나, 클로드 샤브롤은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구요. 자신도 평론을 했었기 때문에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평론가처럼 보고, 이런 식으로 자극하면 재밌지. 저는 그런 건 아니구요. 정말 그렇게 느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 설국열차 >나 < 괴물 >은 특히 직설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저의 정치적인 관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영화구요. < 살인의 추억 >은 실제 80년대, 제가 살았던 시대, 개별 살인 사건보다 더 어두운 시대라는 80년대에 대한 제 관점을 정리한 영화구요. < 마더 >만 약간 달라요. 어찌 보면 정치적 맥락에서 분석되지 않는 데까지 다가가 보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본 사진첩처럼 김혜자 의 눈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어요. <마더>는 하층계급 사람들끼리 서로 할퀴는 그런 이야기잖아요. 상층 계급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괴물>처럼 하층 계급끼리 연대하는 것도 아니고, ‘로어 뎁스(lower depth, 밑바닥보다 더 밑바닥)에서 그쪽에 처박혀 있는 애들끼리 원빈을 빼내고 다운 증후군 아이를 거기에 밀어 넣는 굉장히 끔찍한 얘기죠. 정성일 _ 그런데 < 괴물 >에서 정치적 학습을 한 다음 < 마더 >를 보게 되면 골프장이 그런 효과를 만들어 내는 거죠. 한국에서 골프장이라는 장소의 도상적 이데올로기라고나 할까요. 할 일 없는 부르주아들의 판타지의 공간에서 뭔가 벌어진 다음에 프롤레타리아의 정치학으로 옮겨오지만 가난한 자들의 세계가 상대적으로 건강하기는커녕 더 음습해지고 음산하고 무시무시해질 때 어둠이 더 어두워진다고 할까요. 그때 그 안에서 괴상한 방식으로 냉소적인 이성이 더 빛나게 보이는 거죠. 거기까지 오면 이제 견디는 것은 미치는 거야, 라는 결론에로 이끌릴 때는 보는 쪽도 미치는 지경이 되는 거죠. 봉준호 _ 냉소적 이성이라고 이름 붙여 주시면 저는 감사한데, < 마더 >는 < 괴물 >의 반대말로써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또 밑바닥 사람들이 연대하는 영화고, <마더>는 서로 할퀴는 영화고 아빠에 관한 영화, 또 이거는 순도 100퍼센트 엄마에 대한 영화고, 모든 면에서 반작용이었습니다.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씨네마틱 모멘트로서의 인서트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생각하는 장면은, 그게 아마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두 장면입니다. 하나는 < 괴물 >에서 처음 괴물이 나타났을 때, 한강에 놀러온 사람들을 괴물이 쫓아가고 있는데, 그때 서강대교를 지나가는 버스에서, 그저 책을 읽던 할머니가 무심하고 한가롭게 내려다보는 장면입니다. 마치 영화의 동선과 세계의 동선, 두 개가 이상한 방식으로 공존할 때의 느낌이랄까. 다른 하나는 김혜자 씨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냥 무심하게 나무를 쳐다보는데, 거기 어떤 감정도 없는데, 그 나무의 쇼트가 굉장히 아름답고 시적이 있었어요. 차라리 시선이 아름답다고 할까요. 그때 문득 든 생각은 문득 봉준호 영화에는 가끔 영화를 멈춰 세우고 이미지에 우선권을 준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이미지에 우선권을 준다는 것은 공백의 인서트, 약간 재미없게 말하면 잉여의 이미지를 이야기의 동선 안으로 밀어 넣는 건데, 그게 어떤 시적인 이미지의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를테면 바람이나 햇빛은 우연의 산물일 수 있지만, 편집은 절대 우연이 아니지 않습니까? 봉준호 _ 말씀하신 것에 정확히 부합하는 게 (< 마더 >에서의) 그 나무 인서트였던 거 같습니다. (< 괴물 >에서의) 버스 시퀀스는 좀 다릅니다. 그 씬 자체를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시점으로 의도적으로 분산시키고 싶었어요. (그 장면 전에 한 소녀가) 손톱 밑의 때를 빼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데 괴물이 확 낚아채고, 서강대교에서 57분 교통정보가 깔리면서, < 이어도 >에 출연하신 할머니가 그것을 보고 있는 건데 시퀀스 맥락에 철저히 부합되는 거였습니다. 되게 산만하게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현서도 맥주 캔을 발로 뻥 찼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낚아채고, 그것은 시퀀스 내의 패턴이었던 거 같습니다. 되게 일상적인데 낯선 느낌. <마더>의 나무 같은 게 말씀하신데 철저히 더 부합하는 장면입니다. 그건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디테일인데 운이 좋았어요. 거기가 장흥 교도소 주변인데, <마더>는 특히 로케이션을 되게 열심히 다녔어요. 저랑 홍경표 감독님이랑 스태프들이 미니버스를 대여해서 다 같이 타고 장소 헌팅을 다녔어요. 장흥 교도소를 시찰하고, 다음 장소 이동하는데 점심을 먹고 나서 다들 졸았어요. 운전기사만 운전하고 저만 깼어요. 그때 촬영한 나무를 봤어요. 주변에 숲이나 나무가 없잖아요. 길이 원형 트래킹 하듯이 그렇게 되었어요. 실제 영화의 김혜자 선생님 같은 시점으로 그 나무를 봤는데 굉장히 아름답더라구요. 프리 프로덕션 중에 이걸 봤기 때문에 이걸 꼭 어딘가 넣고 싶다. 그럼 어디에 넣으면 좋을까. 저 나무가 김혜자만큼 참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묘하게 찍을 수 있는 조건도 되고, 영화 중후반에 엄마가 나한테 다섯 살 때 농약 먹였잖아, 약(藥이 든)박카스. 김혜자 선생님이 경기(驚氣) 일으키고 울고, 그리고 나올 때 그 나무를 보게 되거든요. 거기서 나무를 넣으면 엄마의 감정이나 그런 게 논리적으로 설명은 안 되지만, 왠지 거기다! 거기 밖에 없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홍경표 감독님도 그 제안을 좋아하셨고 또 거기에 깔리는 스트링 음악이 있어요. 이병우 감독님도 그 모멘트를 좋아하셔서 특별히 신경 쓰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정성일 _ 콘티와 시나리오를 정확히 짜내서 진행하는 봉준호 감독 영화에 이제 시적인 우연의 장면들이 끼어드는 징조를 뭐라고 봐야 할까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아요. < 살인의 추억 >에도 날아가는 새의 인서트 장면이 나왔지만 < 마더 >의 김혜자 씨 정도의 장면은 아니었어요. 이건 대화를 건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한 가지 더 질문하자면 봉준호 감독이 즐기는 것 중의 하나가 엔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엔딩을 볼 때마다 엔딩 다음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엔딩을 살짝 지나쳐가는 듯한 느낌. 이를테면 그런 다음에 이제까지 내가 봐온 영화가 이제 그 영화를 보는 나를 본다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나 노골적인 <살인의 추억>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는 극장 안과 영화의 화면 자체가 동일해질 때,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버스 안의 미친 엄마를 봤을 때, 혹은 < 설국열차 >의 마지막 장면의 북극곰이 고아성을 본다기보다 우리를 본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시선도 차라리 고아성을 본다기보다는 우리를 보는 위치에 가 있었어요. 엔딩에 대해 이건 매우 특별한 감각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봉준호 _ 편수가 많지 않아서 어떻게 일반화해서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잠시 생각)< 설국열차 >와 < 마더 >는 명확한 끝점이 있었구요. (<설국열차>에서)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와 컨택하는 곰이다, <마더>도 2004년 처음 스토리 구성할 때부터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버스 안 춤추는 엄마들로 끝낼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 괴물 >은 달랐어요. 시나리오 드래프트들 마다 달랐어요. TV를 발로 끄는 것까지는 똑같았는데 매점 벽에 걸린 멧돼지 대가리에서 남자아이의 생일 선물을 꺼내는 장면도 있었고. 몇 가지 버전이 있었어요. 갈팡질팡하다가 얼굴이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이들 세계가 얼마나 작은가. 그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어둠 속에선 뭐가 나올지 모르고, 그건 찍을 때 임박해서 결정했습니다. 멧돼지 대가리에서 생일 선물 꺼내는 장면도 찍었고, 그 장면은 DVD 부록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보면 되게 이상해요 (웃음) 뻘쭘 하고. 찍고 편집하며 결정하고 뺀 장면이에요. < 살인의 추억 >에서도 송강호 가 카메라를 보고 끝났는데 원래 한 장면이 더 있었습니다. 연쇄살인범으로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의 뒤통수가 명동의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뒤통수가 보여지면서 현대의 2003년 서울 거리를 보여주는, 김형구 감독님과 실제 명동에 나가서 찍었어요. 송강호가 카메라 보면서 끝내는 게 적합하다, 하면서도 그걸 찍으러 나가면서, 그래서 찍으면서도 긴가민가, 했어요, 왠지 안 쓰게 될 거 같은데, 저는 그걸 DOA 쇼트라고 부르는데, (웃음) 도착 즉시 사망(Dead on Arrival). 이미 찍고 있는데 안 쓰게 될 걸 아는 장면. 그걸 (이미 촬영현장에 나왔기 때문에) 차마 스태프들에게 말은 못하고, 오히려 실례니까. 그런 걸 개인적으로 DOA 쇼트라고 해요. 하여튼 끝까지 고민되는 부분인 거 같아요. <마더>는 너무나 확고했어요. 오히려 그 앞의 두 시간이 그 마지막 고속버스 춤추는 장면에 가기 위한 과정처럼 생각될 만큼 확고했고, 2004년부터 개봉할 때까지 한 번도 생각이 바뀌어본 적이 없어요. <설국열차>도 기차를 나와서 곰과 마주본다는 설정은 맞는데 제가 생각한 각도와 사이즈는 아니었어요. 실제 곰을 오스트리아에 갖고 가서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곰은 CG가 아니에요. ‘내셔널 지오그래피’ 라이브러리에서 실제 곰 HD 영상을 찾아서 가져와 갖다 붙였어요. 곰의 CG를 만들기에는 예산이 없었고, 조악하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제가 진정 원하는 각도와 사이즈는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 프로모션 때 여러 번 질문을 받고 느낀 건데.. 그게 곰이 아니라 사슴이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자꾸 곰한테 잡아먹힐 거라는 얘기를 들어서. 아, 왜 곰이었지? 사슴이 탁 나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웃음) 정성일 _ 개인 소장 라이브러리가 궁금합니다. 영화사 속에서 존경받는 감독이긴 하지만 이 감독에게는 정말 동의가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존경하는 만큼 동의가 안 되는 감독은 누군가요? 이를테면 훌륭한 감독이라는 것도 알고 충분히 존경도 하지만 이상하게 제가 보지 않게 되는 건 펠리니의 영화들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그렇습니다. 훌륭한데 마음이 동하지 않고 안 보게 되는 명단이랄까. 봉준호 _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면서) 안토니오니. 세계영화사 어느 챕터를 차지한다는 걸 납득은 가는데 그 분의 DVD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요.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네요. 취향이니까. 어렸을 때 EBS에서 세계의 명화에서 연달아 상영도 했고, < 블로우 업 >은 재밌게 봤어요. 그거는 공원에서 촤악, 나뭇잎 흩날리면서 뼛속까지 스산해지는 느낌과, 그런데 그 외는 많이들 존경하겠죠, 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정성일 _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러니 바보 같은 가정, 바보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만약 연못에서 산신령이 나타나셔서 봉준호 감독! 임권택 감독님에게 아무거나 하나 가져가도 되니까 그거 하나 가져가게! 한다면 어떤 재능을 훔쳐가고 싶은 가요? 봉준호 _ (다시 한 번,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메라 여기다 놔. 여기, 여기 놔” 촬영 감독님과 상의를 할 수도 있고 먼저 촬영 감독님이 제안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정성일 _ 아아, 무슨 말씀인지 느낌이 정말 꽂히듯이 오네요. 감사합니다. 여섯 번째 영화를 열심히 기다리겠습니다. (註)_ 인터뷰 중의 대화는 가능하면 오가던 이야기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일부 어휘들이 영어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에도 옮기지 않고 그냥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그 까닭은 의미는 옮길 수 있으나 대화의 문맥에서 그 단어가 가지는 ‘뉘앙스’를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중의 일부가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 충분히 다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마치 점프 컷처럼 진행될 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를 치고 보충설명을 덧붙였다. 일부독자들에게는 필요치 않을 수 있지만 이 점 이해를 바란다. 또한 서로에게 약간의 어색한 표현들도 대화의 ‘라이브’한 무드를 돕기 위해 수정하지 않았다. 2014년 8월 28일, 날씨 하루 전날 큰 비가 온 뒤에 몹시 화창하고 무더웠음. 진행_ 장광헌, 유성관 녹취, 사진_ 이지영 장소_ 카페 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