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몽
- 감독
- 박희준
- 제작년도
- 2001
- 출연
- 여명, 박은혜, 윤태영, 이나영, 김지무, 박영록, 진봉진, 윤주상, 장두이, 안석환, 강현미, 노지심, 김양우, 이종우, 한대호, 이영광, 홍원배, 김주복, 서찬호, 조영호, 염선미, 장대윤, 최원희, 김진형, 고대승, 이성훈, 전흥준, 이경훈, 박주리, 김지영, 허남일, 정예원, 박은주 아나운서, 엄태국
2002년 | 디엔딩닷컴 감독: 최호 | 원안: 강수현 | 각본: 김은정 오현리 최호 | 제작: 심보경 조동원 | 촬영: 박현철 | 미술: 이경진 오상만 | 음악: 방준석 서준호 CAST 지형태: 조승우 | 서인주: 이나영 | 김남훈: 이장원 | 최보영: 조은지 1997년 < 접속 >( 장윤현 )은 ‘PC 통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뭇 다른 로맨스의 결을 만들어냅니다. 익명의 남녀가 가상의 공간에서 채팅을 통해 소통하는 관계는, 캐릭터의 내면을 반영한 OST와 함께 어우러지며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샀죠. 5년 후에 나온 < 후아유 >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입니다. <접속>의 제작사인 명필름은 공동제작으로 참여했죠. 여기서 <후아유>는 <접속>에서 연령대를 낮추고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합니다. 채팅 게임 사이트 ‘후아유’. 상대방에게 누구냐고 묻는 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2001년 12월 추운 밤, <후아유>의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한강 둔치. 더욱 추운 곳이었죠. 주요 인물 네 명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었죠. 친구 사이인 형태(조승우)와 남훈(이장원), 인주(이나영)와 보영(조은지)은 우연히 노래방에서 만납니다. 형태는 인주와 아는 사이였고, 그렇게 네 사람은 함께 어울리다가 한강 둔치까지 오게 된 거죠. 술에 취한 인주는 나무를 올려다 보며 소리 칩니다. “야! 나무, 너…” 이나영 특유의 어떤 엉뚱한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장면입니다. 한쪽에선 형태와 남훈과 보영이 있습니다. 연애사 때문에 힘든 보영은 울고 있고 남훈은 다독이고 있는 상황, 형태는 소리 칩니다. “인생 끝났냐? 뭐야 질질 짜고! 우는 여자 진짜 재수 없어!” 이 소리를 듣고 다가온 인주는 다소 격앙된 톤으로 형태에게 따지듯 말합니다. “넌 안 울어? 기분 더러울 때 안 울어?” 그리고 형태를 밀어버리죠. 갑작스러운 인주의 일격에 쓰러진 형태입니다. <후아유>는 단지 인주와 형태의 로맨스가 아닌, 당시 청춘들의 삶에 대한 일면이 담긴 드라마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남훈과 보영이라는 캐릭터 덕이었죠. 남훈 역의 이장원은 지금은 성우로 유명하지만, 연기의 시작은 영화였고 < 세친구 >( 임순례 , 1996)의 삼겹으로 데뷔했습니다. <후아유>에선 형태의 동료로,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에 갈등합니다. 인주의 친구인 보영은 여행사 가이드입니다. 조은지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요, < 눈물 >( 임상수 , 2000)로 데뷔한 그녀의 세 번째 영화입니다. 난방기구 앞에 네 배우가 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배우들은 카메라 앞을 벗어나면 곧장 두꺼운 점퍼를 입고 몸을 녹여야 했습니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닙니다. 중간 야식 시간에 스낵카 안의 이나영과 조승우인데요, 마치 자연스러운 연인 연기를 하는 것처럼 잘 어울립니다. 모니터링 중인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최호 감독입니다. < 바이준 >(1998)로 데뷔한 최호 감독은 두 번째 영화인 <후아유>에서도 청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요, “사랑을 게임처럼 즐기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찾고 싶어하는 2000년대 젊은이들의 이중적인 사랑관과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이후 최호 감독은 < 고고70 >(2008)에서 조승우와 재회하기도 합니다. CF 모델로 시작해 연기로 영역을 넓힌 이나영에게 <후아유>는 세 번째 영화입니다. 일본 영화 < 에이지 >(구로츠치 미츠오, 1999)와 판타지 액션 < 천사몽 >( 박희준 , 2000)이 있었죠. 하지만 이나영은 <후아유>가 첫 영화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는 느낌이 드는 영화이기 때문. 한편 인주는 ‘이나영 캐릭터’의 시작으로, 이후 그녀는 내면의 아픔을 누르며 살아가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인주랑 비슷하느냐는 질문 많이 들었어요.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그냥 ‘닮았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인주를 닮은 것이 아니라, 인주가 저를 닮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주라는 인물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20대 여자라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지닌 인물인 거죠.” 조승우에게도 <후아유>는 세 번째 영화였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 춘향뎐 >(2000)으로 데뷔한 후 < 와니와 준하 >( 김용균 , 2001)를 거쳐 <후아유>의 형태 역을 맡게 된 거죠. 그는 게임 개발자이며 ‘멜로’라는 아이디로 인주의 아바타인 ‘별이’를 만나게 됩니다. “형태는 일에 찌들어 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죠. 그는 일 이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냉소적이며 꾀죄죄한 사람이에요. 형태와 제가 닮은 점이 있다면, 저도 일 외의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에요. 내 일이 아니다 싶은 것에는 관심이 가질 않아요. 그렇지만 형태처럼 차가운 성격은 아니에요.” 한강 둔치 촬영에 이어 형태와 인주가 도심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의 엔딩 부분에 해당하는 장면 촬영도 있었습니다. 촬영 사이에 두 배우가 포즈를 취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건너는, <후아유>의 마지막 장면 촬영 현장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에선 사이버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후아유> 제작발표회의 이나영과 조승우입니다. 이나영은 인주라는 캐릭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연기가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멜로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살리는 것이 힘들었어요. 촬영이 진행될수록 힘들었죠. 그렇지만 저에게 오기가 있거든요. 나중에는 제가 우겨서 다시 찍기도 했어요.” 조승우는 이나영과의 호흡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우리 둘 다 조금은 폐쇄적인 성격이고 말도 느려요. 촬영 현장에서 우린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렸어요. 애늙은이처럼 군다고 스태프들이 붙여준 별명이었죠. 그런 비슷한 구석 때문인지 호흡이 잘 맞았어요.”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얼마 전 배우 이영진 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영화 한 편이 있었다. <데우스 마키나>라는 영화다. 배우 이영진이 2000년대 중반엔 몸이 얼마나 지금보다 더 유연했던가, 액션 배우를 했다면 우마 서먼이 < 킬 빌 >에서 보여줬던 것 같은 뭔가를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 도중에 나온 제목이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데우스 마키나>가 대체 무슨 영화인가 싶을 거다. 물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어를 전 국민의 지적 유행어로 만든 진중권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아, 사실 진중권이 연출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영화가 나온다면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서울이 일베와 깨시의 전쟁으로 불타오르는 가운데 홀연히 연기를 뚫고 청와대 앞뜰에 착륙한 경비행기 한대. 거기서 진중권이 한 손에 고양이를 안고 라파엘로 그림 속 천사처럼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리고, 갑자기 신서울시에 출몰한 사도와 대결을 펼치는데…. < 천사몽 >(2001)과 < 성냥팔이 소녀 >(2002) 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만, 여하튼. <데우스 마키나>는 지난 2002년 기획에 들어가서 영화의 절반을 촬영해 놓고 갑자기 중단된 미완의 영화다. 이 영화를 ‘삐용삐용B무비’의 마지막에 꺼내놓는 이유? 완성됐더라면 < 천사몽 >이나 < 성냥팔이 소녀 >를 뛰어넘는 한국 B급 SF영화의 계보를 훌륭하게 완성했을 거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이어지는 그 무시무시한 SF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종종 그립다. 그 시기는 그러니까, 충무로로 쏟아져 들어오던 대기업의 엄청난 눈먼 돈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장렬하게 산화하겠노라는 이글이글한 야심이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하던 시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였고,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만듦새였으며, 하나같이 장르의 기본이 하나도 안 된 영화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대가 그리운 이유는 정말이지 모두가 영화를 막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시나리오 한줄 한줄 빨간 펜으로 검사하던 시절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괴작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도 모르는 영화적 에너지의 시대였다. 맞다. 바로 그 시기 때문에 지금 한국 영화계가 이렇게 된 거다. 그런데도 그 시기가 그립다니 이거 참 사람이 경망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하여간 다시 <데우스 마키나>로 돌아가자면 이야기는 이렇다. 무대는 2003년이다. 서울의 한 고층빌딩을 과격한 테러 단체가 점거하는데, 한국 최대의 정보 통신 기업은 이걸 진화하기 위해 비밀 인간병기 조직을 투입한다. 작전을 완료하고 돌아가던 인간병기 조직의 미녀( 김정화 )는 헬기 추락으로 부상당하고, 이를 오토바이 광인 미남( 권상우 )이 집으로 데려가고, 미남과 미녀는 사랑에 빠지고, 그러나 인간병기인 미녀를 되찾기 위해 정보 통신 기업이 찾아오고, 그들을 질기게 쫓는 인간 최종병기는 배우 이영진 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 영화가 끝까지 만들어졌다면 그랬을 거라는 소리다. <데우스 마키나>를 만들다가 무릎을 꿇고 결국 사라진 감독은 이현하 다. 당시 영화잡지의 인터뷰들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유학파고, 구로사와 아키라에 관한 석사논문을 쓴 적이 있고, 프랑스영화자유학교(CLCF)에서 영화 실무를 공부했다. 나로서는 그의 경력으로는 도무지 이 영화를 가늠할 수 없다. 다만 몇몇 인터뷰들을 통해 대충 <데우스 마키나>가 어떤 영화가 됐을지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 총몽 >, < 공각기동대 >, < 아키라 > 등을 적극 차용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건 사실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나온 SF영화 중에서 이 세 작품을 적극 차용하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으니까. 형식적인 면에서 이 감독은 “< 와호장룡 >이나 < 매트릭스 >와는 달리 원심력과 중력이 느껴지며, 움직임과 기하성을 조화시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건 더더욱 모르겠다. 흠. 아마도 원화평의 안무와는 다른 안무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아니다. 나는 지금 <데우스 마키나>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꿈을 능욕하려는 게 아니다. 정말로 나는 중간에 엎어져서 영원히 스크린에 걸릴 기회를 박탈당한, 만약 만들어졌다면 정말이지 끝내주게 삐용삐용한 B무비가 됐을 이 영화의 운명을 슬퍼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거의 100억대의 제작비를 투여한 <데우스 마키나>의 시나리오에는 민병천 의 < 내츄럴 시티 >를 연상시킬 만큼 순결한 나이브함이 깃들어 있으며, 만약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내츄럴 시티>와 함께 ‘한국 영화가 가장 도전적이었던 시절’을 기념하는 유물로 남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잊혀진 <데우스 마키나>의 이야기를 꺼낸 김에, 나는 몇 편의, 여러분에게 보여질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사라진 몇 편의 장편과 단편을 거론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도살자>( 김진원 , 2007) 먼저 김진원 감독의 2007년 작인 <도살자>다.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한 뒤 사라진 이 장편 고문 호러영화는 돼지머리를 가진 괴물을 주인공으로 스너프영화를 찍는 도살업자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 영화에서는 익히 볼 수 없었던 피와 배설물, 내장의 스펙터클이 카메라 바깥으로 진동을 한다. 돼지 발정제를 먹은 (가히 < 텍사스 전기톱 대살륙 >의 악마를 닮은) 괴물이 남자 희생자를 강간하는 장면에서 당신이 만약 B급 고어영화의 팬이라면 흐뭇해 했을 지도 모른다. 동시에 김진원 감독은 스산한 서울 교외의 배경을 통해 어떤 서정성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도 성공한다. 나는 김진원 감독이 꼭 다시 호러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 < 편대단편 >( 지민호 , 2005) 또 언급할 영화는 지민호 감독의 2005년 작 < 편대단편 >이다. 350만 원으로 10년에 걸쳐 완성된 이 영화는 당시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꽤 화제를 모았다. 혼자 연출, 제작, 각본, 편집, CG를 다 해내는 지민호 감독의 이 보기 드문 SF 단편은 일종의 ‘안티 < 스타워즈 >’로, 강제로 군에 징집된 뒤 기억을 삭제당한 식민지 행성의 젊은이들 이야기다. 물론이다. <편대단편>은 꽤나 허술하고, 종종 (이 분야의 오덕들이 만드는 영화가 대게 그렇듯이) 지나치게 진지하다. 하지만 지민호 감독이 좀 더 많은 투자를 받아 장편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생각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 불청객 >( 이응일 , 2010)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영화는 2010년에 나온 초저예산 SF영화 < 불청객 >이다. 만년 고시생과 백수들이 택배 상자에서 튀어나온 외계인을 만나는데, 알고 보니 이 외계인은 루저들의 생명을 적립해 늙은 거부들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일종의 고리대금업자로, 주인공들이 계약을 거부하자 자취방이 통째로 우주로 날아가버린다. 이건 한마디로 말하자면 ‘88만원 세대의 SF 어드벤처’로, <이나중 탁구부> 시절 후루야 미노루를 연상시키는 정말 기가 막히게 엇나가는 풍자 코미디로 가득하다. 아니, 나는 <불청객>보다 더 웃기는 영화를 2010년 이후로 한국 영화계에서 본 적이 없다. <불청객>이 소규모 개봉관에서 약간의 화제를 모은 뒤 이응일 감독은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 지구를 지켜라 !> 이후 가장 발칙한 데뷔작이었던 <불청객>의 감독이 아직도 메가폰을 잡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슬플 따름이다. 자, ‘삐용삐용B무비’를 마치며 내가 바라는 소원은 두 가지다. <데우스 마키나>의 묻혀있는 필름만이라도 다시 발굴해서 단관에서라도 상영을 하는 것, 그리고 이응일 , 김진원 , 지민호 에게 어떤 독지가나 어떤 진취적인 제작자라도 나타나서 제작비를 좀 지원해주는 것. 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한국 B무비의 역사가 바뀔….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기념할 만한 B무비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