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
- 감독
- 김유한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이주호, 김설희, 최준호
[사진] <성벽의 뚫고>(한형모, 1949)에 출연한 이집길 이집길(李集吉)은 한림, 최은희와 간발의 차이로 1947년 <그들이 가는 길>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무성영화시대 나운규의 <아리랑>(1926)과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1932)에 마부와 건축기사로 나왔던 단역배우 임운학이 처음 만든 감독 진출작이었다. 세트장치 없이 뚝섬 근처의 절에서 야외 촬영한 이 16밀리 영화는 부친(정민)이 역적으로 몰려 죽은 친구의 아들을 데려다 길러 평양감사가 되도록 만들었으나 키운 보람도 없이 외면당하자 암행어사가 된 그의 아들(임운학)이 배은망덕한 평양감사를 응징한다는 얘기다. 권선징악적 요소가 강한 이 이조(李朝) 야사의 악역인 평양감사에 이집길이 발탁된 것이다. 엑스트라가 모자라 경동중학 연극부 학생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임운학 「예(藝)에 살다(16) 영화배우 55년」 일간스포츠, 1979.8.11) 일본대학 산업경영과를 다닌 한림과 마찬가지로, 일본국제음악학교에서 공부한 해외 유학파인 이집길이 영화배우가 된 것은 당시로선 매우 드문 일이었다. 아무튼 그는 이듬해 이만흥 감독의 <끊어진 항로>(1948)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밀수범으로 변신한다. 성실히 살아가는 직장인인 친구(이강천)는 바르게 살자고 설득하지만 이집길은 정부(유계선)와 공모하여 밀수품을 실어놓은 배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끈질긴 친구의 노력으로 생각을 바꿔 당국에 자수한다. 그의 친구 역할과 함께 미술을 담당한 이강천은 5년 후 <아리랑>으로 감독의 길을 걷게 된다. 이집길은 1년 후 <자유만세>를 찍은 촬영기사 한형모의 감독 데뷔작 <성벽을 뚫고>(1949)의 출연을 계기로 연기에 열정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이 가는 길>이나 <끊어진 항로>가 16밀리 무성영화인데다 반응이 좋지 않았던 반면 이 영화는 이미 검증 받은 한 감독의 35밀리 영화였기 때문이다. 1948년 남한 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로당에 의해 촉발된 제주 4,3사건과 10월 19일 여수·순천 반란사건을 계기로 일기 시작한 공산주의 배격의 흐름은 결국 <성벽을 뚫고>와 같은 반공영화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공산주의자인 매부(권영팔)는 육군 소위인 처남(이집길)을 매수하려 하고 또 처남은 처남대로 매부를 설득하려 들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서로 총을 겨누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이 영화에 이어 그는 이만흥 감독의 <애정산맥>, <청춘>(이상 1953), <탁류>(1954) 등 3편과 홍성기 감독의 <출격명령>(1954), <열애>(1955) 등 2편에 출연하여 편수는 많지 않으나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걸었다. <애정산맥>은 전투 경찰과 공비로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친구의 이야기로 <성벽을 뚫고>와 같은 유형에 속한다. 다만 그들 사이에 마을 처녀와의 삼각관계가 설정되고 그의 배역이 육군 장교에서 전투경찰관으로 바뀌었을 정도의 차이다. <청춘>에서는 음악교사인 여선생을 둘러싸고 영어교사(황남)와 사랑싸움을 벌이는 체육교사로, <탁류>에서는 공비들에게 공급할 무기를 들여오려던 간첩단을 일망타진케 하는 방첩대원으로, <출국명령>에서는 적탄에 맞아 떨어진 라이벌인 조종사(전택이)를 죽음을 무릅쓰고 구출해내는 공군 조종사로 등장한다. <출격명령>(홍성기, 1954)에 출연한 이집길, 왼쪽은 배우 전택이 그의 마지막 출연작이 되어버린 <열애>에서는 나병을 앓으면서도 한 여인(염매리)을 포기하지 못했던 화가 박혁의 불우한 삶을 온몸을 사르다시피 연기했다. 그는 간장염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 그의 아버지 박혁 목사 역을 맡은 나운규 시대의 배우 이금룡도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그 역시 같은 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술에 젖은 말년의 삶 이집길은 1923년 서울 혜화동에서 태어났다. 일설에는 고향이 전라북도 군산이라는 말도 있다.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제국음악학교 성악과를 다니다가 일본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데뷔 당시에는 ‘교양을 갖춘 침착하고도 겸양한 인품, 근대인으로서의 지성과 샤프한 신경, 무엇보다도 천성적으로 타고난 굴곡 있는 입체적인 선 등이 조화된 한국영화계의 호프’로 기대를 모았다 .(한국일보, 「금주의 스타, 이집길」 1954, 11,29) 그러나 그는 배우로서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키가 작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단점을 메우기 위해 열심히 연기에 임했고 구두 뒤축을 두 개나 달고 다닐 정도로 키에 신경을 썼다. 말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젖어 지내다시피 했다. 이즈음 시골에 있던 아내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상경하여 병간호를 했다. 그러나 <열애>를 유작으로 11월 11일 오후 2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운명하였다. 한창 활동할 나이인 32세였다. 원인은 간장염이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아내의 손을 잡고 과거의 무절제한 생활과 과오에 대해 사죄했다고 한다 .(한재수, 「배우로 본 한국영화 광복 50년」 『월간 영화』 1975년 3월호. 78쪽) 유작이 된 <열애>(홍성기, 1955)의 한 장면(아래쪽이 이집길) 뒷날 감독이 된 영화평론가 유두연은 그의 죽음에 대해 “영화인들이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겨우 장만한 소나무판 관을 메고 가서 해골 같이 말라버린 시체를 끌어안고 ‘영원의 출연’을 위한 메이크업을 시켜주고 있는 뼈 저리는 마음을 알고 있기에 이 붓을 들었다‘며 다음과 같이 추도문을 마무리했다. -그 몸뚱이와 넋을 원통 필름에 발라버렸다. 그가 생전에 출연했던 영화를 더듬어 보면 그 얼마나 대중들의 마음이 그가 움직이는 그림자 속에 뭉쳐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성벽을 뚫고>에서의 이집길은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정신의 심벌이었다. 지리산 암벽에서 공비로 화한 친우와 대결하는 국군 소위의 검은 눈동자는 우정도 감상도 범할 수 없는 정의에 번쩍이고 있었다. <출격명령>의 항공 대위는 그 두꺼운 가슴팍에 자유를 갈구하는 민족의 마음을 안고 적진에 포탄을 퍼붓다가 드디어 산화하고 말았다. <열애>의 이집길은 파멸하여가는 육신을 이끌고 인간성의 존엄을 긍정하기 위하여 마지막까지 생을 찾는 문둥병 환자였다. 모두가 다 절실한 환경의 인간이기는 하지만 그 얼마나 성실하게 대중들의 마음이 반영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이렇던 이집길도 가버렸다. - 「젊은 배우의 죽음 , 곡(哭) 이집길의 사(死)」 조선일보, 1955.11.15-
<집 없는 천사>: 팬톰 시네마의 귀환 이 영화는 세 번의 삶을 살게 된다. 1941년 무렵 첫 상영 시기의 < 집 없는 천사 >( 최인규 , 1941), 필름이 망실된 이후 망령, 유령, 환상적 “팬톰 시네마”로서의 삶, 그리고 영상자료원으로 귀환 뒤 2005년 이후의 삶 . 이 세 번의 삶 속에서 <집 없는 천사>는 비평의 집들을 축조해냈다. 이 프레임들은 조선, 한국 영화사 비평 기반을 조성한다. 친일 영화인가 아닌가에 대한 이념적 논의 , 흥행 영화라는 산업적 접근, 법제도에 관한 논쟁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엔딩 부분, 아이들이 황국신민 서사를 낭독하는 장면이 문제적이다. 이 부분은 『한국 영화 전사, 이영일 저』에서 <집 없는 천사>를 한국 영화사의 눈부신 리얼리즘의 궤적에 소재시킨 것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기존 논의들에 대한 참조를 권하면서, 두 개의 토픽을 도입하고자 한다. 아동의 문제와 토폴로지다. 특히 고아 소년, 소녀와 일본 내지, 조선이라는 외지의 장소성과 경계이다. 이 영화에서 시네마틱한 정교함이 특히 드러나는 장면은 방성빈( 김일해 )이 고아들을 데리고 향란원을 세워나가는 과정을 실화에 근거, 재현한 고아 아이들의 노동과 일상 장면이다. 목가적 풍경 위로 해가 뜨면 기상나팔, 행진곡 풍 음악이 장쾌하게 이어진다. 땅을 파고, 함께 국수를 뽑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신나게 일한다. 고아원 향린원은 이들의 노동으로 일본 제국의 식민지, 일본 내지와 조선 외지라는 지정학적 장소성을 비껴나는 헤테로토피아로 보인다. 또한 내지도 외지도 아닌 불확정 지대(zones of indetermination)로 나타난다. 소년, 소녀에 관한 이렇게 쾌활하기 그지없는 재현은 아래 표현과 그리 멀지 않다. “아동은 친화성, 방산적(放散的)사고, 유머, 뇌의 가소성(可塑性), 낙천성 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관계적인 면에서는 어른들에 비해 높은 감수성과 유연성, 관계의 탄력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호기심, 모방, 탐색적 사고, 실험정신, 상상력이 높다.” 1938년 7월 내무성 경보국도서과의 내부자료 제 32호「유소년소녀잡지에 관한 답신안(幼少年少女 雑誌に関する答申案)」에 나온 글이다. 일본에선 아동의 문제가 대중적인 호응을 얻게 된 것은 만주사변 전후의 긴박한 시기였다고 한다. 일본의 <소년클럽>과 조선의 <소년>잡지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인기를 누렸는데, “외지 조선의 소년들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일본, 조선, 만주, 타이완, 사할린, 브라질 등)에서도 자신과 동일한 생각과 이상을 품으며 생활하는 동년배가 있다는 잡지의 ‘전시’ 효과는 기울어가는 전쟁 상황 속에서도 일본의 소년독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는 심리적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1) 최인규 감독의 다른 작품 < 수업료 >(1940)와 <집 없는 천사>와 비교되는 <미가헤리의 탑>(시미즈 히로시, 1941) 등이 조선과 일본의 대표적인 아동 영화들로 위 소년클럽의 시대적 무드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로 훈련된 이러한 고아들은 이후 징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1942년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방성빈의 실제 인물 방수원은 향린원 원아들을 징병하려는 일제를 피해 제주도에 남진소년개척단을 꾸리기도 했다. ( 이효인, 「집없는 천사와 미가헤리의탑의 비교연구」, 영화연구 44 , 2010, 254쪽). 이렇게 방수원이 맞닥뜨린 실제 상황에서처럼 징병을 피해볼 수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미성년으로서의 아이들은 불확정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방수원의 활동은 제국 군대의 기제를 슬쩍 돌려놓는 것이다. 전쟁 동원령 시기, 일본 외지, 반도의 조선인으로서 행하는 사회적 실천은 독립운동을 제외한다면 필연적 아포리아에 빠진다. 재생산을 위한 긍정적 실천자체가 일본 제국에 가세하는 형세를 띄기 때문이다. 감독 최인규는 방성빈(방수원)의 아이들이 종국엔 제국의 황국신민 서사를 읊조려야 하는 과정을 영화 실천과 포개어놓았는지도 모른다. 흥행, 친일, 반일의 동요 속에서 영화 속 아이들의 신체는 어떤 불확정 지대인 장소를 생산하고, 지리적 장소인 향린원은 이것을 미학화 한다. 고아들의 집을 다룬 영화의 토폴로지다. 1)서기재, 「소년클럽의 독자 생성과 외지조선의 소년」, 일본문화연구 68,2018. 10. 210쪽 주 5에서 재인용. > > 집 없는 천사 VOD 보러가기 <<
최근 개봉한 몇몇 한국영화에서는 전에 없던 주인공들이 발견된다. 이제껏 영화가 비극을 소재로 삼는 경우, 자주 인물은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로 분류되었는데, 범죄 사건을 다루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추적하고 처벌하여 정의질서를 확립하거나 혹은 가부장적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이 영화의 골격을 이뤘다. 그에 비하면 피해자는 구원자의 대활약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에 가까워서, 무력하고 무고해서 더 가엾은 인물로 묘사되며 관객들의 동정과 연민을 샀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재해나 전쟁과 같은 특수 상황이 배경이 될 때에는 고통에 시달리던 피해자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용기 내자고 독려한다. 결국 시간이 약이다, 그만 울고 어서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서자, 라는 식의 서사는 고통과 상처의 기억을 서둘러 과거의 미담으로 얼버무렸고, 그 와중에 절망과 우울을 극복하지 못한 소수의 인물들은 도태되기 일쑤였다. 가해자가 되었건 피해자가 되었건 비현실적으로 강렬한 의지와 낙천성을 가진 주체적 인간들이 약하고 여린 인물들을 내치고 내내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던 셈이다. 그동안 사건의 1인칭 당사자가 아닌 주변 인물들 혹은 상실과 애도를 견뎌내야 하는 물리적 시간은 자주 이야기의 외부로 밀려나거나 아예 삭제되곤 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영화는 서사의 바깥에서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그들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들의 시간을 담기 시작한 것 같다. <생일>, <살아남은 아이>, <봄은 가고> 그리고 박근영 감독의 < 한강에게 >(2018)는 이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한 몸이 된 죄책감을 품은 채, 상실감의 고통으로 얼룩진 현재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조심스럽게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슬픔에 공감하려는 시도는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 혹은 한국영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대와 공명하려는 방식일 것이다. 진아에게는 10년을 사귄 연인 길우가 있고, 그는 알 수 없는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놓여있다. 이별의 순간은 유보되고 있지만 피할 수 없는 비극은 이미 진행중이다. 진아의 얕은 꿈에는 길우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들이 끊임없이 출몰하고, 현실은 괜찮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괜찮다고 대답을 반복하며, 내내 길우의 빈자리와 침묵을 마주해야 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시인인 진아는 일상의 무게와 속도를 핑계로 현실을 외면하는 대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관찰하고,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공들여 단어를 골라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몫이 된 죄책감과 상실의 고통을 온몸으로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그녀에게 예전에 썼던 시들은 이제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길우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진아에게 한강은 그 물결의 반짝임이 ‘간질간질하여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었지만, 길우의 사고를 경계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존재는 진아의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고, 한강에서 연상되는 생생한 고통과 슬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진아는 자기 연민을 토로하거나, 소리내 통곡하지 않는다. 차마 시를 쓸 수 없는 그녀의 무기력, 걸핏하면 잠에 빠져드는 일상이 실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담담한 애도의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한강에게>에는 감독이 직접 연출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장면들이 섞여 있다. 광화문 거리에서, 시 낭독회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서 숨쉬고 있는 배우의 얼굴이다. 시나리오의 대사를 외우는 대신, 본인의 이름을 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즉흥적인 대사에는 온기와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전고운 , 이요섭 감독 부부가 등장하는 장면에는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을 진실로, 진심으로 믿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영화의 말미, 마침내 진아는 ‘한강에게’ 라는 제목의 시를 완성한다. 자신의 죄책감과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말을 건네는 셈이다. 한강 혹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시를 쓴다는 것은 기억과 감정이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포박하는 결연하고 적극적인 행위다. 흘러가는 것들은 이내 엷어 지겠지만, 상실의 슬픔과 고통 같은 묵직한 감정은 아마도 강물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을 것이다. <한강에게>는 수면에 뜬 작지만 선명한 부표처럼, 드러나지 않는 감정들이 흘러가지 않은 채 여전히 여기 있다고, 버티는 삶에 대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