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가족
- 감독
- 김동원
- 제작년도
- 2001
<그저 사고였을 뿐> 중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 Les Films Pelleas) 몇 해 전 한 시네필 커뮤니티에서 “영화, 어디까지 봤니(소위 ‘시네필력’ 테스트)”의 끝판왕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권역을 담당하는 프로그래머로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민망함이 스쳤다. 같은 아시아 대륙에 속해 있지만, 우리에게 동남아시아나 서아시아 영화들은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으로도 멀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 소개되는 편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은 앞다퉈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들에 주목하고 있다. 이곳이 지금 가장 역동적인 작가군이 형성되고 있는 흥미로운 화수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해 주요 영화제 수상작 리스트에는 이 지역 감독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산업적인 지형도 바뀌고 있다. 필리핀과 태국이라는 전통적인 영화 강국 외에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신흥국들이 자국 상업영화로 박스오피스를 주도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탄탄해진 산업적 기반 위에서 작가주의 영화들이 칸, 베를린, 로테르담 등 서구권 영화제를 휩쓰는 현상은 이제 하나의 경향으로 굳어졌다. 한편, 검열이나 전쟁으로 억눌려 있던 서아시아권의 목소리 또한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망명지에서 혹은 비공식적인 루트로 영화를 만들던 이들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도하를 중심으로 한 공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그들의 언어로 동시대의 서사를 드러내고 있다. 비슷한 역사적 상흔과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우리로서는 이 흐름을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 그 거대한 파도의 맨 앞자리에 선 젊은 작가들의 데뷔작들을 통해 아시아 영화의 현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쓸모 있는 귀신>: 눈을 뜨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 Best Friend Forever 불교 국가이자 뿌리 깊은 민간신앙의 전통을 가진 태국은 동남아의 오랜 영화 강국이다. 하지만 강력한 검열 탓에 근현대사나 사회적 이슈를 직설적으로 다루기는 어려웠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들이 몽환적인 숲과 은유로 점철된 것은 이러한 억압에 대한 미학적 응답이었을 것이다. 반면 < 쓸모 있는 귀신 >(랏차뿜 분번차초케, 2025)은 태국 주류 장르인 호러 코미디에 SF와 퀴어 코드를 뒤섞으며 노골적으로 장르를 융합하고 파괴하는 혁신적인 태도를 취한다. 진공청소기에 빙의한 귀신이 다른 귀신을 퇴마하고 살아있는 남편은 혼령의 기억을 붙들려 애쓴다는 설정은 자칫 난해하거나 신인 감독의 객기 어린 실험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놀라운 지점은, 그 황당한 설정 속에 태국 사회, 더 넓게는 국가 폭력의 은폐와 트라우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심어놓았다는 데 있다. 영화는 기억을 저장하는 타임캡슐로서 매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교육 제도와 레거시 미디어가 철저히 은폐하려 했던 태국 민주화 과정의 잔혹한 상흔을 이토록 대담하고 환상적인 화법으로 직시한 영화가 또 있었던가. <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 나비가 되기 위한 인고의 시간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베트남 영화는 강렬한 색감과 회화적인 구도에 강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팜 티엔 안 감독은 이 시각적 유산을 능숙하게 다룰 뿐 아니라 편집이라는 시간의 리듬마저 훌륭하게 조율해낸다.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힘든 정교한 롱테이크는 단연 압권이다. 영화 속에서 때론 아름답게 때론 무심하게 스쳐 가는 풍경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기원전부터 수백 세대를 거쳐 ‘사람이 가꿔온’ 장소이자 척박한 정글을 일군 땀, 수천 년에 걸친 전쟁의 피와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 눈물이 배어 있는 역사적 지층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 던져진 주인공의 삶 역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잃고 시골로 내려가 장례를 치르며 조카를 돌봐야 하는 현실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오롯이 그의 몫에 달려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베트남 영화사에 이정표가 될 만한 지점은 그간 금기시되던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무심한 듯 툭 건드리는 대목이다. 그것이 당국의 실수였든 의도치 않은 허용이었든 이 장면은 베트남 영화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 호랑이 소녀 >: 소녀의 해방이 선사하는 날 선 카타르시스 사진: IMDb , 부산국제영화제 이슬람 문화권인 말레이시아에서 소녀의 신체적 변화는 흔히 부끄럽고 감춰야 할 대상으로 치부된다. 아만다 넬 유 감독은 12세 소녀 자판을 통해 이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자판은 초경을 불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몸이 겪는 변화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바디 호러’라는 장르는 사회적 억압을 찢고 나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탁월한 선택이 된다. 영화를 견인하는 힘은 소녀들이 뿜어내는 야생적인 활력이다. 기성세대가 씌워놓은 차별과 억압의 프레임을 내면화하는 대신, 자판은 두려움마저 집어삼키고 사회가 경외하는 호랑이로 탈피한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는 것만큼 큰 자유가 어디 있을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정작 본국인 말레이시아에서는 검열 문제로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가진 전복적인 힘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자서전>: 깨지 않는 숙취 같은 독재의 그림자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 KawanKawan Media < 자서전 >(막불 무바락, 2022)은 독재 정권이 끝나면 곧 공정한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던 청년의 순진한 믿음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수십 년간 이어진 독재의 잔재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미세한 틈새에서 악취를 풍긴다. 수감된 아버지를 대신해 은퇴한 장군의 저택에서 일하게 된 청년 라킵은 카리스마 넘치는 장군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냉혹한 어른의 세계를 학습한다. 그는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거짓을 덮고 우발적인 폭력을 묵인한다. 약육강식의 법칙 속에 새겨진 부패는 라킵의 내면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인도네시아의 신예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막불 무바락 감독은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을 부자 관계를 연상시키는 개인의 서사로 치환하여 설득력을 얻는다. 과거의 유령이 현재의 청춘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그 서늘한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이러한 표현이 허용된다는 사실 자체에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희망을 엿보게 된다. <대통령의 케이크>: 달콤한 케이크 위로 흐르는 씁쓸한 아이러니 사진: 토론토국제영화제(TIFF) 이웃 국가와의 전쟁과 강압적인 철권통치 아래 놓인 1990년대 이라크. < 대통령의 케이크 >(하산 하디, 2025)는 이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다. 9살 소녀 라미아에게 떨어진 숙제는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할 케이크를 구해오는 것. 경제 제재로 당장 먹을 빵조차 부족하고 사기꾼이 들끓는 거리에서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하지만 절대권력과도 같은 선생님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는 소녀는 길을 나선다. 시장과 검문소에서 마주친 어른들은 소녀를 도울 여력이 없거나 오히려 이용하려 든다. 그러나 라미아는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전문적인 연기 수업을 받았을 리 만무한 비전문 배우가 보여주는 그 단단한 눈빛은 연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체득한 앙상한 강인함처럼 보여 마음을 울린다. 가장 달콤해야 할 케이크를 구하기 위해 가장 비정한 현실을 통과해야 하는 아이러니. 영화는 그 끝맛이 달콤함이 아닌 강렬한 메시지임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저 사고였을 뿐>: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외치는 진실 앞서 살펴본 데뷔작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올해 가장 주목받은 영화중에 하나인 < 그저 사고였을 뿐 >(자파르 파니히, 2025)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늦은 밤 운전 중에 발생한 로드킬로부터 시작된 영화는, 도입부 이후 자기의심과 복수심 사이에서 국가폭력 희생자들이 겪는 끊임없는 갈등이 고조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정부로부터 영화 제작 금지와 출국 금지라는 가혹한 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며 저항의 서사를 써 내려온 작가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저 사고였을 뿐>은 제목이 주는 무심함과는 대조적으로, 이란 사회 내부에 깊게 뿌리 박힌 불신과 권위주의, 그리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집단적 심리를 이전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층 서늘해진 시각으로 해부한다. 국가적 트라우마가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묵직하게 웅변하고 있다. 사진: Cinema Galeries 스크린으로 목격하는 아시아의 오늘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전반적인 경향을 짚어보자면, 동남아시아는 적극적인 국제 공동 제작의 틀을 활용해 자본과 기술의 한계를 영리하게 극복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서아시아는 국가 정책의 기조가 과거의 통제에서 적극적인 지원으로 선회하며 산업 성장의 새로운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두 지역 모두 이전보다 압도적인 작품 수와 두터워진 작가군을 배출하며 영화 산업의 비약적인 고도화를 이뤄내고 있다. 물론 모든 곳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이란과 같이 정부의 직접적인 검열과 통제가 오히려 강화되는 역행의 길을 걷는 국가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영화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 가장 날카로운 저항의 언어로 거듭난다. 억눌린 목소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기어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본래 영화는 소설이나 미술 등 인접 예술의 자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해왔지만 동시에 대중과 가장 밀착된 예술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아 왔다. 과거에 금기시되었던 소재를 수면 위로 올리고 소외되었던 관점을 복원하는 이들의 시도는 단순한 미학적 성취를 넘어선다. 특히 초반에 열거한 다섯 편의 영화들은 각기 다른 국가, 장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맥락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바로 기억과 응시다. 이들은 국가가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나 사회가 강요하는 금기를 외면하지 않고 장르적 상상력 혹은 집요한 리얼리즘을 통해 스크린 위로 기어이 끄집어낸다. 특히 이 작품들이 모두 신인 감독들의 데뷔작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윗세대가 남긴 부채와 상흔을 물려받았지만 그것을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법으로 해석하고 기록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망각에 저항하는 기록이자 억압된 목소리들의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낯선 아시아 영화들을 보며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또한 지난한 근현대사를 통해 비슷한 고통과 성장을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대 아시아 작가들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지 이국적인 풍광을 즐기는 취미를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고군분투에 보내는 가장 조용한 응원일지 모른다. 스크린 너머 그들의 치열한 오늘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박성호(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l 10년 이상 해외에 거주하며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A Million Years (2018) 등 다수의 단편 및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이소룡 세대에게 바치는 절절한 송가이다. 서자로 태어난 집안의 천덕꾸러기 ‘삼촌’은 그 시절의 무수한 사내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소룡을 지극히 흠모했고, ‘그가 간 모든 길을 뒤따르고 싶어 했’다. ‘삼촌’은 이소룡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몸을 단련한다. 심지어 이소룡은 마치 벼락처럼, 계시처럼 그의 앞에 나타나 삶의 향방을 몸소 손짓으로 가리키는데, 먼 남쪽 하늘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중국집 배달부인 ‘삼촌’은 홍콩으로 가는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같은 형태의, 같은 크기의 열망을 품은 무수한 이소룡을 꿈꾸는 자들과 함께. 이소룡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와 워너브러더스는 그의 죽음으로 중단된 영화 < 사망유희 >를 완성하기 위해 이소룡 대역을 찾고 있었다. 영화 속 이소룡의 육체를 대신하는 것. 그건, 이소룡에게 매료된 수많은 아시아의 젊은 남자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배는 난파하고, 삼촌과 함께 꿈꿨던 자들은 홍콩 땅은 밟지도 못한 채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비록 소설 속 ‘삼촌’의 밀항선은 난파되었지만 우리는 이 꿈과 같은 일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다. 본명 김태정, 예명 당룡(이 이름은 < 맹룡과강 >에서 이소룡이 분했던 바로 그 역의 이름이기도 하다)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부산 출신의 사내는 마치 삼촌이 그러한 것처럼, 혹은 같은 꿈을 꿨던 저 무수한 젊은 남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연히 < 정무문 >을 보고 이소룡과 같은 배우가 되기를 꿈꾸며 그의 모든 동작을 따라하기 위해 부단한 연마를 거듭하였다. 김태정은 다른 수많은 아시아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사망유희>의 대역으로 발탁되었다(이 영화의 또 한 명의 이소룡 대역은 1980년대 홍콩영화의 스타 중 하나가 될 원표였다). <사망유희> 이후 다시 한번 이소룡의 필름 푸티지를 알뜰히 활용한 영화 <사망탑>에서 이소룡의 동생으로 분한 그는 장 클로드 반담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 특명 어벤저 No Retreat, No Surrender >에서 이소룡의 유령 역을 맡은 것을 끝으로 ‘세계’ 영화계를 떠났다.(이 ‘국제적’ 영화인이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 홍콩, 미국의 합작으로 이루어질 <야쿠자>라는 영화였다. 『무비스트』, 2009.6) 1970년대의 전세계적이고 지역적이었던 이소룡 붐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고 해도, 단 한번도 부산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나이가, 단 한마디의 중국어도 하지 못했던 자가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홍콩으로 건너가 비록 한순간이나마 꿈꾸었던 바로 그 신체가 되는 이 이야기에는 여전히 기묘한 울림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이 이야기가 지독한 행운처럼 보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기묘함은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가 보여주는 밀항선에 올라타 난파된 저 무수한 꿈들의 강도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부산에서 홍콩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압축시켜버릴만큼 강렬하다. 한 시기 한국의, 아시아의 젊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이 열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런데 다시 말하건데 이들이 꿈꿨던 것은 배우가 아니라, 정확히 ‘이소룡 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이소룡 영화에서 진정 매혹적인 것(혹은 모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신체 자체이자 그 몸의 운동이다. 매끈한 근육질의 몸, 그것이 만들어내는 동작의 디테일은 끊임없는 복기와 수련으로 가능해질 터, 이소룡 영화가 상영되는 동시상영관이야말로 이 모든 수업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곳은 아침에 극장에 들어가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똑같은 영화를 반복 학습하고 저녁에 되어서야 나왔던 진정 학습의 장이라 할만한 곳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이소룡이라는 이 중화권 최초의 국제 스타가 남긴 단 네 편의 영화를 어떤 일관성 속에서 포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 이소룡 자신의 제작사인 콩코드 픽쳐스, 할리우드의 워너브러더스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관여한 그의 영화는 초국적 시장에 대한 고려 위에서 만들어졌으며 크리스 베리의 언급처럼 “인종적이며 민족적인 동맹의 광범위함”을 특징으로 하는 이 영화들을 유일하게 하나의 일관성으로 묶고 있는 것은 이소룡이라는 강력한 페르소나이다. 공장주와 싸우는 이주 노동자(< 당산대형 >), 스승의 복수를 위해 일본인에 맞서는 수제자(<정무문>), 로마에 도착한 동양인 촌뜨기(<맹룡과강>), 국제 첩보조직과 협력하는 소림사 수제자(< 용쟁호투 >). 인종과 민족과 계급에 관한 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이소룡이라는 유려하고 아크로바틱한 근육질의 신체를 가로지른다. 게다가 웃통을 벗고 맨몸의 상체를 드러낸 채 적과 맞서는 이 몸은 그 이전의 무협영화가 견지하고 있던 문화적 의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즉, 이 맨몸은 그 어떤 의장 없이, 오직 아시안, 젊음, 남성이라는 기호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럼으로 이 몸은 기술과 신체의 연마를 통해 ‘무한히’ 모방 가능한 것이 된다. “로저 무어가 나오는 <007> 영화를 보면 우리가 집에 가서 흉내를 내겠어요? 그건 상상의 나라인 거고. 근데 이소룡이 발을 차는 걸 보면 내가 운동하면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었던 거지.” 1) 김태정의 이 언급은 저 모방 가능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보여준다. 이소룡은 당연한 말이지만 동양인 남성이다. 그는 ‘내가 운동하며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은 맨몸의 격투 혹은 단순하지만 숙련이 필요한 오래된 기구(이를테면 쌍절곤)을 쓴다. 이소룡과 제임스 본드. 이는 단지 유행하는 액션 장르영화의 두 히어로를 불러온 것 이상으로 꽤나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007> 시리즈에서 당신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시리즈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당대 최고의 미녀들이 분하는 본드걸과 매번 새롭게 선보이는 최첨단 기구들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유지하는 매혹의 기본값이 아닐까. 본드걸을 동반한 이 백인 남성이 헤테로섹슈얼한 남성성을 과시하며 최첨단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면, 이소룡(과 한국, 홍콩, 대만, 태국, 필리핀 등등에서 유행했던 ‘권격영화’)은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럼으로 이 동성사회적(homosocial) 영화들은 노골적으로 젊은 남성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소룡 영화와 권격영화의 몸들이 보여주는 능력은 단련된 신체를 통해서 발현된다. 요컨대, 이소룡(과 권격영화의 주인공들)은 영국 첩보원이 구사하는 세계 전략과 테크놀로지와 신사다움과 지능이 아닌 맨몸과 오래된 기구를 이용하여 다수를 상대한다. 요절한 이소룡을 둘러싼 저 열망들, 이 지역 일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공통의 감각이 발생시킨 트랜스내셔널한 아시아적 동일성이라 할만한 것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적 열망이라고 할만한 저 열망들은 백인 남성에 대한 동양남성의 오랜 좌절과 이 좌절에 대한 상상적 극복, 남성성의 재활성화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 패권하의 아시아 남성들, 계급적 하위자들이 미국에서 온 강한 동양인 이소룡에게 매혹당한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리라. 동시에 최첨단 기구가 장착된 신체와 수련을 거친 맨몸의 능력이라는 이 차이야말로 세계 자본주의 내에서 제1세계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부과된 역할 분담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소룡 붐이 시작된 1973년, 한국은 유신 체제에 접어들었고 그해 8월 경제기획원은 「우리 경제의 장기 전망(1972~1981)」을 발표하며 경공업 중심 산업에서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의 전환을 알렸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으로 끝나게 될 이 개발근대화 하이모던 철권통치 기간이 홍콩-한국-대만의 권격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와 겹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 맨몸으로 상경한 산업 노동자(혹은 예비 인력들)들은 맨몸의 저 싸우는 영화들 속에서야말로 진정 신체의 어떤 이상(idea)을 발견한 것인지 모른다. *** 1) 김태정 인터뷰, 『무비스트』, 2009.6.(http://www.movist.com/star3d/read.asp?type=32&id=16400)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1970년대는 한국영화사의 암흑기로 알려져 있다. 유신 치하에서 검열의 서슬이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국가주도형 철권통치가 예술의 자율성마저 말살했던 프로파간다의 시대. 그러나 문화가 권력의 발아래 있었던 이 시기를 야만의 기억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손쉬운 일반화이다. 그렇다면 암울하기 그지없었다던 1970년대 한국영화사를 무언가 새로운 상상력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동서고금의 영화사를 훑어보면 이데올로기를 강제 주입하려 했던 프로파간다가 부정적인 기능만 한 것은 아니다. 국책영화, 반공영화, 새마을영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1970년대 영화도 재조명될 여지가 있다. 임권택 감독의 1976년 영화 < 낙동강은 흐르는가 >는 이러한 심증을 확증으로 되돌릴만한 작품이다. 물론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근대사의 부침 속에서 만들어진 반공영화이다. 당대 충무로 유력 제작자 중 하나였던 우진필름의 정진우 가 제작하고,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소년 진유영 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국책을 지지하는 작품에 호의적이었던 당대의 분위기에서 원색적인 반공의 함의를 띈 이 영화는 13회 백상예술대상 감독상, 신인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 낙동강은 흐르는가 >의 최초 제목은 <작은 병사>였는데 가열했던 낙동강 전투의 유장함이 서린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시나리오 집에는 ‘육탄십용사’라는 부제가 적혀 있는데, 이는 작사가 이영순이 만든 군가의 제목이기도 하다.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그 표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전쟁의 끄트머리에 놓인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를 제재로 한 이야기이다. 길고 무더웠던 여름 석 달간 지속된 생사의 전장에서 남한의 열일곱 살 소년 병사 천 이병( 진유영 )이 치른 전쟁 체험을 요체로 한다. 대구를 목전에 두고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던 남한군이 죽음을 불사하고 육탄으로 교량사수에 목숨을 바치는 과정이 장렬하게 묘사된다. 국책, 반공의 색채가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의 흐르는가>가 인상적인 대목은 예술과 프로파간다의 관계, 1970년대 한국영화계가 감당할 수 없었던 프로덕션의 완력이 곳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천 이병은 남한 병사이지만 좌우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은 앳된 소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가친지들의 좌익운동 가담으로 식솔들이 험난한 고초를 당했던 임권택 은 소년의 시점을 도입함으로써 이념을 갈등의 축으로 설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전쟁의 원인을 초점화하기보다는 전쟁이라고 하는 사태로 말미암은 참상을 무구한 소년병의 시점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 낙동강은 흐르는가 >에서 주목할 것은 1970년대 한국영화 산업의 현실과 괴리가 느껴질 만큼의 압도적인 스케일이다. 국책을 지지한다는 미명 하에 이 영화는 국방부로부터 전폭적인 제작지원을 받게 된다.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전쟁 장면에서 프로파간다가 예술에 육화되는 과정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직업 감독으로 10여 년간 경험을 쌓았던 임권택은 영화 안에서 제작의 호조건을 십분 활용하는 능란한 기능공의 면모를 보여준다. 국방부의 지원을 받은 실제 탱크는 물론 전투 장비와 군중 신에 동원된 엑스트라는 요즘 한국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규모이다. 군으로부터 받은 장비 지원은 ‘리얼리티’의 충실함을 살려내는데 크게 한 몫하고 있다. 포탄이 빗발치는 한 전투 장면에서 진유영 은 전후방으로 오락가락하는 실제 탱크의 밑을 오가며 곡예와 같은 액션을 수행한다. 후일 증언에 따르면 죽음을 각오하고 했다는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프로파간다 예술의 불가사의한 힘이 절감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기술적 트릭에 의존하지 않고 전투 장면의 리얼리티를 창조하는데 있어서 < 낙동강은 흐르는가 > 만큼의 성취를 보인 영화는 많지 않다. 일사불란한 군중 액션 연출은 예술적 자의식을 각성한 뒤 임권택 이 만든 < 개벽 >이나 < 태백산맥 > < 춘향뎐 > 같은 영화의 고난이도 군중 신을 예고하고 있다.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임권택이 먹고살기 위해 영화를 찍었던 직업 감독의 노선을 변경한 마지막 시기 작품이기도 하다. 경멸의 시대가 남긴 한 유산으로 남은 이 영화는 선전선동의 프로파간다도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