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밟으며
- 제작년도
- 2010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도시 공간은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여 온 시간의 레이어가 중첩된 결과물이다. 어떤 곳은 레이어의 층위가 그다지 많지 않아 과거의 모습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반면, 어떤 곳은 너무 많은 층위가 겹쳐 불과 수년, 수십 년 전 모습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도시 중에서 사회·문화·정치·경제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서울의 도시 공간은 아마도 대부분 후자에 속할 것이다. 특히 서울 도심부는 불과 1세기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일제강점기, 광복, 6·25 동란, 군사정변과 산업화라는 역사의 격랑을 거치며 무수히 많은 시간의 레이어가 촘촘히 덧씌워져 왔다. 이러한 서울의 역사적 조건은 미시적인 변화상(예를 들면 1960년대 서울은 1950년대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가)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각각의 레이어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 주도로 제작된 <대한뉴스> 및 각 관청에서 촬영한 행정 기록용 사진들은 여전히 상당수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 기록은 ‘국가의 시선’에서 취사 선택되었다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대한뉴스>의 제작 목적은 국가 정책 홍보와 대국민 계몽이었으며, 관청 사진들 또한 행정 결과 보고라는 목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면 민간(시민)의 시선에서 날 것 그대로의 도시 공간에 가장 근접한 기록은 무엇일까? 당대 시민의 생활상을 담아낸 영화 작품이야말로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영화 < 마부 >(강대진, 1961)는 서울에 거주하는 서민 가정의 가장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그린 작품이다. 김승호 가 분한 가장 춘삼은 1960년대 서울에서 이미 전근대적 운송업으로 취급받기 시작한 ‘마부’이며, 그의 자식들은 당시 서울 시민 대다수를 차지했던 서민 가정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모든 등장인물이 서울 시내 각지를 방황하는 이야기 전개상 4.19 혁명 직후 서울 시내 곳곳의 모습이 명확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흑백 영화라는 시대적 한계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거리의 모습 때문에 첫눈에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춘삼네 식구들의 희로애락이 투영된 장소가 지금도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서울 시내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60년 전 서울의 어느 서민 가정을 매개체로 하여 95분의 러닝타임 속에 담긴 60년 전 서울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옥인길에서 촬영된 세련된 오프닝 시퀀스 <마부>의 오프닝 시퀀스는 춘삼의 작은아들 대업( 김진 )이 훔친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내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업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그 형태, 그리고 1960년 10월에 치러진 보궐선거(서울시의원 종로 제1선거구) 벽보와 배경의 산세로 보아 지금의 누상동·누하동의 옥인길로 추정된다. 시퀀스로 미루어 춘삼네 집은 옥인길 초입에서 5분가량 걸어올 라가면 나오는 옥인동 47번지 일대의 비탈진 곳에 위치했으리라 짐작된다. 지금은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으로 인해 한옥과 판잣집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영세한 필지만큼은 춘삼네 가족이 머무르던 시절을 담고 있다. 장충동에서의 근대-전근대의 교차 다음으로 주목할 장면은 작은딸 옥희( 엄앵란 )가 남성과 자동차를 타고 가다 마차를 끄는 아버지 춘삼과 길에서 마주치는 씬이다. 숭정문이 저 멀리 내다보이는 가운데, 장충동의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근대의 문물(자동차)과 전근대의 문물(마차)이 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도로를 지배하는 교통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옮겨간 시대적 배경에서, 이는 춘삼이 겪는 가난이 사회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드러내는 씬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영동 성남극장 극중에서 춘삼과 수원댁( 황정순 )이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는 곳은 남영동의 성남극장이다. 1918년 세워진 ‘경룡관(京龍館)’을 전신으로 하는 성남극장은 서울의 수많은 초창기 영화관이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극장 건물이 남아있는 드문 사례다. 한강로를 건너는 춘삼과 수원댁의 배경에는 서울전차의 원효로 분기선이, 교차로에는 221호 전차와 1950년대 후반 출시된 미제 닷지 트럭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우마차의 시대가 이미 종결을 고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은 트럭과 전차의 출연은 당시 서울의 교통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물류의 중심지, 서울역 마차를 끄는 춘삼과 수업( 신영균 ), 그리고 ‘서울소화물’이라 적힌 화물 오토바이를 모는 창수( 황해 )는 당시 서울역 북서쪽에 위치한 화물 취급소를 자주 찾는다. 트럭 운송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대부분의 장거리 화물은 기차로 서울에 옮겨졌고, 이를 시내 각지로 운반하는 영세 운송업자들은 자연스레 서울역 서쪽으로 모여들었다. 맞은편 북쪽에는 서울수산시장(1975년 노량진으로 이전, 現 서소문역사공원)이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물류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찻길 옆 시가지, 청파동 춘삼은 기찻길 옆 돌다리 위에서 수원댁과 만나 담소를 나눈다. 오른쪽으로 기차가 지나가고, 개천이 흐르며, 왼쪽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점에서 이곳이 옛 만초천을 복개한 청파로 부근임을 알 수 있다. 이 일대가 서울역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임을 감안하면, 화물 취급소로 향하던 춘삼이 자연스레 수원댁을 만났다는 공간적 개연성이 확보된다. 수원댁과 헤어진 춘삼 너머로 보이는 높은 굴뚝은 1930년대부터 존재했던 철공소(청파동1가 183번지)의 것으로, 오랜 세월 청파동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마부> 촬영 이후에도 60년 가까이 살아남았으나 2019년에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왼편에 철공소 굴뚝이 보인다. 해당 철공소 건물(1938년 12월 준공, 2019년 철거. 사진: 필자 제공) 불안한 해피엔딩, 중앙청 앞 율곡로 <마부>의 결말은 오프닝과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오프닝의 카메라는 누하동의 굽이진 골목길을 어지럽게 쫓아가지만, 결말의 카메라는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 춘삼네 가족이 중앙청 청사와 옛 경기도청 사이의 율곡로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큰아들 수업의 성공으로 춘삼네 가족이 더 이상 서울역 화물 취급소, 누하동 비탈길, 장충동 교차로를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간적 단절을 의미하는 듯하다. 다만, 과연 춘삼네 가족에게 그런 미래가 찾아왔을까? 현실의 서울에서는 수업의 성공으로부터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5.16 군사정변이 발발했고, 독재정권이 도시계획을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서울 도시 공간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춘삼네 가족과 그들의 삶이 투영된 서울 또한, 결말의 줌 아웃을 끝으로 그 이전과 단절된 셈이다. <마부>는 95분의 러닝타임 동안 미처 글에 담지 못한 장소들(노들섬 한강대교, 문배동 오리온 제과공장, 충무로 대한극장 앞)을 포함해 서울 시내 십여 곳에서 직접 촬영을 진행하고, 이를 ‘어딘가에 존재했을 법한’ 서울 사람의 생활 동선으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부>가 첫 개봉으로부터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당대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으로 다시금 조명받는 데는 이러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 속 서울의 모습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작품 수에 관객 수를 곱한 것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읽어내야 할 과거 서울의 모습이 무궁무진할 뿐 아니라,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서울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여왔음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시선과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 속 서울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도가 이어지길 바란다. 김영준 연구원이 들려주는, <마부> 속 서울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국영화X공간] 영화 "마부", '1961년 서울의 삶' 클릭!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 ‘2021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선정작입니다. 신분을 초월한 세 사람의 우정 영화를 여러 번 보다 보면 처음에는 눈에 안 들어왔던 것들이 보인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는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관계만 집중하느라 알아채지 못했던 소피와 엘로이즈 마리안느 이 셋의 관계가 그랬다. 백작 부인이 없는 동안 그 세 사람은 신분을 초월한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생리나 임신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서로 돕는다.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에게 “우린 똑같은 위치에 있어요”라고 하는 대사가 있다. 나는 이 대사가 세 여자들의 관계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이 셋은 예술가와 뮤즈, 귀족과 하녀가 아닌 친구로 지낸다. 나는 그것을 셋이서 함께 있는 장면에서 많이 느꼈다. 소피가 십자수를 하는 동안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모습이나 셋이 함께 약초를 캐는 장면,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 등 여러 번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처음에는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 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분위기가 편안하고 즐거워 보이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촬영 기법 때문이었다. 세 사람을 똑같은 위치에서 하나의 쇼트에 넣는다든지 단독 쇼트에서도 카메라 앵글의 크기를 같게 함으로써 마리안느, 소피, 엘로이즈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카메라의 의도가 돋보인다. 계급사회가 배경인 영화들을 많이 봐왔는데 귀족과 하녀가 가까이 지내는 것은 봤어도 이렇게까지 평등한 위치해 있는 것은 못 본 것 같아 새로웠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인터뷰 중에 이에 대해 ‘평등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계급을 넘어선 하인 소피와의 우정, 욕망과 열망을 지닌 백작부인과의 대화 같은 것들. 인물들 간의 연대와 정직함을 원했다.’고 말했다. 완전한 여성 서사 이 영화 속의 페미니즘과 여성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 러닝 타임인 120분에서 남성이 나오는 장면은 58초가 끝이다. 소피 아이의 아빠나 엘로이즈가 결혼할 남자, 엘로이즈의 아버지 등 남자들의 서사는 물론 얼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새로움과 신선함을 느꼈던 이유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오롯이 여성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여성 서사 영화가 많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대화 중에서 여성 화가로서 활동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마리안느는 ‘여성 화가의 활동은 제한되어 있고, 중요한 주제들도 전부 여성을 비껴간다’며 직접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한다. 찾아보니 마리안느가 미술을 가르치는 학생들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 18세기에는 여성 화가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여성 예술가들의 권리가 조금씩 신장되던 시기였지만 여성 화가의 작품은 전시에 출품할 수 없었다. 마리안느가 전시에 작품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낸 것처럼, 여성 작가들 또한 글을 남성의 이름으로 냈다고 한다. 대를 잇는 정략결혼과 억압의 역사 정략결혼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 당시에 여성이 억압받던 시대상을 잘 드러냈다. 엘로이즈의 언니가 원치 않는 결혼 대신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에 엘로이즈가 대신 결혼하게 된 것도 상징적인 부분인 것 같다. 엘로이즈가 언니의 대체품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엘로이즈의 어머니도 그랬듯이 언니와 엘로이즈도 정략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 대를 이어 전해지는 여성 억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이 원해요?’ 임신 중단이라는 소재가 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소재를 담담하게 그려낸 것도 인상 깊다. 위에서 언급했건 것처럼 소피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언급하지도 않고 괴로워하는 여성의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소피가 낙태 시술을 받는 장면에서 소피의 옆에 아기를 둔 연출도 기억에 남는다. 소피가 아기에게 위로를 받지만 임신 중절을 한 것에 대해 죄책감은 가지지 않고 그저 소피의 선택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 당시에 하녀는 출산을 당연하게 해야 하는 존재였을 수도 있는데, 마리안느가 소피에게 아이를 원하냐고 질문한 것이, 또 원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대답에 소피를 도운 것이 출산에서의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는 장면인 것 같다. 소피와 아기를 함께 둔 것이 잔인하다는 사람의 글을 보았는데, 임신 중절을 단순히 살인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술 모습을 그리려는 장면도 기억에 남았다. 마리안느는 보기 힘들었는지 고개를 돌리지만 엘로이즈는 그 모습을 보라고 한다. 여성에게 금기된 행위를 부정적으로 여겨 지우려고 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확실히 다른 영화에서 다루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보는 여성 간의 사랑 셀린 시아마 감독은 여성 성소수자로서 여성들 간의 사랑을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다뤘는데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 그게 보였다. 타오르는 영화의 초상 gv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질문 중에 하나가 ‘둘은 언제 사랑에 빠졌나’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캐롤> 에서 나오는 것처럼 첫눈에 반한다거나 하는 말 그대로 ‘영화적인’ 설정이 없다. 관객들은 언제부터 둘의 사랑이 시작되었는지, 엘로이즈가 처음으로 마리안느에게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둘이 점점 더 사랑에 빠지고 있다는 것은 눈에 잘 보인다. 처음의 엘로이즈는 분노가 늘 이긴다며 잘 웃지 않았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어머니에게 그녀가 좀처럼 웃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웃음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 포즈를 취할 때 마리안느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을 보며 둘은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굉장히 현실적으로 여성 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싸우는 장면이다. 영화를 볼 때는 이 장면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만약에 남성과 여성인 상황이었으면 이 장면이 의아하지 않고 자연스러웠을 것이라는 글이었다. 연인이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 싸우는 장면은 사실 아주 많이 봐온 모습인데 둘 다 여성인 연인의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느꼈던 이질감인 것이다. 이것을 알고 나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들처럼 여성에 대한 대상화도 없고 보기 편안한 여성 서사 영화를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재회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정말 엘로이즈가 마리안느를 못봤을지’였다. 마지막에 본 엘로이즈의 모습이 사실 마리안느의 환영이라는 의견도 보았다. 계속 시선이 평등하게 오고 가는 편집에서 갑자기 극적인 줌인이 어색했고, 마리안느가 이전에 보았던 엘로이즈의 환영이 복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또 엘로이즈가 혼자 올 리가 없는데 혼자였다는 것도 근거가 되었다. 이 의견도 정말 재미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혼자 있으면 자유롭다고 해주었는데, 마리안느는 사계 여름 3악장의 뒷부분을 듣기 위해, 마리안느를 생각하며 자유를 느끼기 위해 혼자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영화를 봤는데 이렇게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는 곳은 항상 참 재미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엘로이즈가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고 끝나는 결말이었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이야기의 끝을 매듭짓는 느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원래의 결말이 관객들에게 생각할 만한 여지를 주고 오랫동안 줌 인을 하는 것도 긴 시간이었는데 지루하다거나 그런 느낌 없이 내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다. 이 영화는 혼자 생각하고 상상할 부분이 많았고, 나는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소피는 두 사람 관계를 눈치챘을지 같은 사소한 부분부터 마지막 장면에서 엘로이즈는 정말 마리안느를 보지 못했는지, 둘은 어떤 방식으로 평생 동안 그 5일간의 기억을 추억할지 같은 오래 생각할만한 부분까지 궁금한 점도 많았기에 여러 번 보며 곱씹고 싶은 영화 중에 하나이다.
아마 금방 첫눈이 내릴 것이다. 눈 내린 풍경에서 가장 웃긴 순간은 넘어진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누군가 미끄러져 자빠질 때일 것이다. 그게 꼭 악의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미끄러져 넘어지는 모습을 볼 때 거의 기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물론 그런 다음에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거리를 지키면서 가까스로 표정을 감춘 채 시선을 돌리고 할 수 있는 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이다. 우리가 자빠지는 모습을 보고 공식적으로 웃을 수 있는 장소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이다. 지금도 이 개그는 웃음을 자아낸다. 브라운관에서 너도 나도 자빠질 때 그걸 바라보던 언론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그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자빠지는 것 말고 없다는 비난과 함께 지성이 없는 희극이라는 비판을 던졌다. 이 개그는 가장 단순하지만 매번 보는 쪽을 웃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자빠지는 개그가 시작된 곳은 아마도 보드빌 연극무대였을 것이다. 이 무대에서 활동하던 많은 배우들이 각자의 퍼포먼스를 갖고 카메라 앞으로 왔다. 보드빌 무대에서 누가 가장 먼저 자빠졌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 누가 가장 먼저 자빠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들은 앞 다투어 자빠졌다. 왜냐하면 그 퍼포먼스가 가장 쉽고 가장 분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말했지만 이 퍼포먼스는 부상당할 위험이 항상 있었으며 게다가 상대방과의 앙상블이 중요했기 때문에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채플린은 그의 경력 초기부터 자빠지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1916년은 채플린에게 중요한 한 해가 되었다. 당시에는 매주 월급의 형식으로 지불하는 주급(週給)방식으로 영화사와 계약을 맺었다. 채플린의 명성이 올라가면서 더 많은 주급을 받으면서 매년 연간 제작 편수를 줄여나갈 수 있었다. 1915년에 연간 16편의 영화 연출(과 주연으)로 계약을 맺었던 것을 1916년에는 12편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 시간적 여유는 채플린을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채플린은 좀 더 시나리오에 공을 들일 수 있었고, 자신의 개그 퍼포먼스를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으며,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점점 그의 영화가 눈에 보이게 길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에피소드에 불과했던 채플린의 영화들은 점차 서사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고 드라마투르기를 작동시키는 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씬들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으며 그러는 과정을 통해 씬 안에서 활동하는 동선과 드라마, 감정선, 퍼포먼스의 디테일, 그것들이 펼쳐지는 장소의 미장센,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거리를 정식화시켜 나아갔다. 채플린이 말한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 이라는 말은 단순하게 클로즈업과 롱 쇼트를 설명한 것이 아니다. 채플린은 하나의 씬 안에서 액션과 상황의 원근법을 창조해냈다. 원근법은 가까운 것(近)과 먼 것(遠)이 한자리에 있을 때만 구별되는 것이다. 채플린은 하나의 씬 안에서 그 둘 사이의 왕복운동을 만들어내면서 하나의 씬이 희극이자 비극이라는 천재적인 발명을 해냈다. 나는 이 문제를 다시 한번 다루게 될 것이다. 이 해에 만든 영화 중에서 마지막으로 개봉한 <롤러 스케이트장(The Rink)>은 상영 시간 24분의 소동극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찰리는 손님 주문을 받으면서 뿐만 아니라 주방에서도 실수를 거듭하지만 롤러 스케이트장에 가면 보란 듯이 솜씨를 뽐낸다. 이때 찰리는 레스토랑에 온 진상 손님 스토우트씨를 여기서 다시 만나자 골탕을 먹인다. 게다가 여기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이 찰리를 롤러 스케이트장 파티에 초대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스토우트씨와 마주친다. 일대 난동이 벌어지고 찰리는 유유히 빠져나와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채 달리는 자동차의 뒤에 매달려 뒤를 쫓아오는 신사들로부터 멀어진다. 두 번의 시퀀스에서 찰리는 거의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나는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찰리는 롤러스케이트가 갖고 있는 자유로운 미끄러짐과 불안정한 균형을 이용해서 우아한 동선을 먼저 만들어냈다. 그런 다음 무례한 악당을 사정없이 쓰러트린다. 이때 악당은 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매번 제풀에 미끄러지고 자빠진다. 롤러스케이트장에 들어서는 순간 일반적인 균형의 법칙은 사라지고 갑자기 새로운 중력 법칙이 작동하는 것만 같은 세상이 될 때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찰리는 이제까지 보잘것없이 모두에게 구박받던 존재로부터 벗어나서 여기서 세상의 법칙에 대한 주인의 자리에 간다. 이때 자빠지고 넘어지는 개그는 세상의 법칙에 대한 전복적인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 개그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부자들을 마음껏 웃어주는 위대한 퍼포먼스가 된다. 물론 찰리 채플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찰리를 잡기 위해 스케이트장 안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찰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들 사이를 공기처럼 빠져나간다. 점점 더 스케이트장은 카오스에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르면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율동의 동선으로 가득 찬다. 모두의 동선이 실타래처럼 뒤엉키는데도 찰리만은 우아한 동작으로 그들 사이를 그렇게 빠져나간다. 찰리 채플린은 여기서 자빠지고 넘어지는 개그 퍼포먼스의 스펙터클을 정식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 스펙터클이 품고 있는 웃음의 정치학을 발명해낸 것이다. 아마도 그때 이 스펙터클을 모스크바에서 레프 쿨레쇼프와 그의 제자들은 유심히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 더. 아마도 그때 베를린에서 발터 벤야민은 유심히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사 앞에서 나는 반문하고 싶다. 누가 이 스펙터클을 바보로 만들어버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