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살문
- 감독
- 변장호
- 제작년도
- 1972
- 출연
- 황정순, 최정민, 신성일, 나오미, 최봉, 장혁, 최남현, 주증녀, 강계식, 이예민, 김기범, 지방열, 최황, 장정국, 이난희, 석귀녀, 권일정, 박부양, 최형근, 최민규, 김소제, 최성호, 곽철성, 장춘언, 박종설, 박영범, 송일근
[사진] 한국전쟁 중 미군 위문공연을 하러 온 마릴린 몬로와 함께 한 최은희 최은희는 좌우익의 분열이 본격화되기 전인 민족영화 건설기에 모처럼 얻은 수확이다. 1947년 청구영화사가 제작한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에 발탁되면서 그녀의 파란만장한 여배우의 삶이 시작된다. 일제의 강제 징용에 끌려 나갔다가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온 어촌 청년들이 마을 처녀들과 힘을 모아 황폐한 어촌을 재건해 나간다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잘사는 집 외동딸 역을 맡아 애인 역인 최운봉과 그의 어머니 김연실 등과 함께 공연했다. 은막으로 이끈 순진한 얼굴 <노도(怒濤)>를 개작한 최금동 각본의 <새로운 맹서>는 46년 기획 단계부터 여주인공은 신인을 쓰기로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후보 깜이 나타나지 않았다. 영화에 투자할 전주(錢主)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을 때 회현동에 있는 영화사 사무실로 한 손님이 찾아왔다. 신경균 감독은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여기 주연 깜이 한 명 나타났으니 와서 보라고. 이 처녀가 바로 최은희(崔銀姬)였다. 감독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사람은 이 영화의 촬영을 맡은 카메라맨, 뒷날 그녀의 남편이 된 김학성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최은희는 ‘큰 키에 때 묻지 않은 촌스런 얼굴, 가꾸지 않은 엉성한 몸매에다 집안에만 있다가 배우가 되겠다고 뛰쳐나온 순진한 모습’이었다. (김학성, 「30년을 하루 같이(6) 원로 연예인의 수기」, 『일간스포츠』, 1978.3.20.) 그래서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좋게 본 감독과 작가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그녀가 영화사 사무실을 찾게 된 데는 이 무렵 토월회 연극무대에 함께 섰던 최운봉이 제 상대인 배역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며 지원을 적극 권유했기 때문이다. 촬영에 들어가자 감독으로부터 오버 액션이라는 질책을 받았다. 아버지가 딸에게 준 돈이 애인의 서울 유학비에 쓰인 사실을 알고 꾸짖자 딸이 용서를 비는 장면이었다. 관객들이 없이 스태프들만 바라보는 가운데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해야 하는 연기는 허공에 뜬 것처럼 와 닿지 않았다 .(최은희, 『고백』 영화에 데뷔하다, 2007, 랜덤하우스 코리아, 46쪽) 그래서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듯이 하다 보니 감정이 과장됐던 것이다. <새로운 맹서>는 제재(題材)와 내용이 과거 무성영화 <바다와 싸우는 사람>이나 <바다여 말하라>에 비하여 별다른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금룡, 최운봉, 김연실 등과 함께 신인 최은희가 열연했다. (「신영화평, ‘새로운 맹서’」, 『대동신문』, 1947.6.30.) 는 평을 들었다. 이 영화에 이어 캐스팅된 것이 수도청 경우회가 제작한 <밤의 태양>(1948, 박기채)이었다. 대규모 밀수단을 추적한 끝에 일망타진하는 경찰관의 이야기로, 김동원의 상대역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되자 수도청 기자단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언론인 전체의 명예를 훼손한 장면이 있으니 삭제해 줄 것과 사과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진] 최은희는 <마음의 고향>에서 젊은 미망인 역을 맡았으나 연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세 번째 출연한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에서는 홍역을 앓다가 죽은 어린 아들의 49제를 지내려 절을 찾아온 젊은 미망인 역을 했다. 정적 연기가 요구되는 캐릭터 때문이었는지 주지 역(변기종)과 미망인 어머니 역할(석금성)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태우, 「조선영화의 발전, ‘마음의 고향’을 보고」, 『경향신문』, 1949.1.6.) 모두 6.25전쟁 이전의 출연작들이다. [사진] <젊은 그들>에서 남장 여인으로 분한 최은희 최은희의 연기 활동은 그로부터 5년 만인 1954년 신상옥 감독의 문화영화 <코리아>(1954)를 계기로 재개된다. 잇따라 신 감독의 <꿈>(1955)을 비롯한 <젊은 그들>(1955), <무영탑>(1957), <지옥화>(1958)에 주연으로 기용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승려 조신의 꿈을 통해 애욕의 덧없음을 깨우치게 되는 이광수 원작의 〈꿈〉, 실각한 대원군의 복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열혈 청년들의 사투기 김동인 원작의 <젊은 그들>(1955), 불국사의 석가탑 건립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엮은 현진건 원작 〈무영탑〉(1957)에서는 승려를 홀린 달례(꿈)와 정혼자가 있는 남장 여인(젊은 그들), 그리고 석공 아사달을 사랑한 구슬아기(무영탑)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낸다. 그녀는 어느새 ‘신상옥의 전속배우’나 다름없는 부러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고전미에 상응한 도발적 여성의 욕망 그러나 <지옥화>에서는 앞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전후 아프레 걸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기지촌의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양공주 쏘냐 역 최은희는 미군부대의 창고를 털어 내다 파는 일이 주업인 사내(김학)의 정부 노릇을 하면서도 그의 동생을 유혹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쏘냐는 동생과 도망가기 위해 정부 일당의 음모를 헌병대에 신고하지만 도망쳐 나온 정부의 칼에 찔려 죽고 사내도 총에 맞아 죽는다. <지옥화>에는 통속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6.25전쟁을 겪은 궁핍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작가의식이 담겨 있다. 깊게 파인 검은 드레스와 짙은 화장으로 빗나간 여성의 욕망을 표출하고 그동안 한복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농염한 몸매를 드러내면서 기존의 정적 이미지를 탈색시키는데 성공한다. [사진] <지옥화>에서 최은희는 형제를 동시에 유혹하는 악녀 쏘냐 역을 맡아 변신에 성공한다 이 작품을 전후하여 농촌을 무대로 한 김소동 감독의 <돈>과 김성민 감독의 액션 영화 <형제>(이상 1958)에 출연했으나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고아인 법대생이 부정한 방법으로 신분을 세탁, 변호사의 꿈을 이루게 되는 신상옥 감독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과 <동심초>(1959)의 전쟁미망인 역할에 이르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동심초>의 경우 양장점을 경영하다가 사기꾼에 걸려 파산상태에 이르렀을 때 도움을 준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물러서는 미망인의 연기는 ‘최은희가 발산하는 고절(高節)한 미망인다운 애절감이 좋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돼 연일 대성황을 이룬 이 영화는 신상옥프로덕션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한다. [사진] <동심초>에서의 최은희와 김진규 김기영 감독의 <슬픈 목가>로 1960년대 신년 벽두를 연 최은희는 <동심초>의 변주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를 포함, <청춘의 윤리>(김화랑), <려인(麗人)>(이봉래), <돌아온 사나이>(김수용) 등 타사 영화 5편과 신상옥프로덕션 10주년 기념작 <이 생명 다 하도록>을 비롯한 〈로맨스 빠빠〉, 〈사랑의 역사〉, 〈백사부인〉(이상 신상옥 감독) 등 4편에 출연했다. 이 가운데 <이 생명 다 하도록>은 6,25 전쟁 때 참전했다가 척주마비로 하반신 불구가 된 남편(김진규)과 어린 딸을 돌봐야 하는 인고(忍苦)의 여인상을, <로맨스 빠빠>에서는 가부장적 질서와 해체의 경계를 넘나든 영악한 맏딸의 모습을 보여 관심을 끌었다. 이 시기에 그녀와 대적할 만한 여배우는 연배가 비슷한 황정순과 주증녀, 이민자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아 내 가슴에>(1958)의 히트 이후 기세가 오른 젊은 김지미였다고 할 수 있다. 최은희에게 신상옥이라는 배경이 있듯이, 김지미에게도 남편인 홍성기 감독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계에서는 그들의 판세를 ‘연기와 미모의 대결’로 받아들였다 .(「라이벌」, 『씨나리오문예』 4호, 40쪽, 1959, 12) 이 무렵 최은희는 연기 잘 하는 스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40고개를 바라보아도 잔주름을 연기력으로 너끈히 카버하고 젊은 주역을 해내는 데보라 카처럼 연령적 육체적 조건을 극복하고 톱스타의 자리를 차지할 것’ (「‘배우동서(俳優東西)’ 데보라 카와 최은희」 , 『경향신문』, 1960.8.13.) 이란 전망을 갖게 했다. [사진] 흥행 신기록을 세운 <성춘향>의 한 장면. 오른쪽은 월매 역을 맡은 한은진 그런 점에서 1961년 시네마스코프 색채 대형화면 시대를 연 구정 대목 프로 <성춘향>(신상옥)은 이와 같은 세간의 평가와 전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더욱이 최은희는 역대 <춘향전> 영화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35세의 중년 춘향 역에 도전했다. 같은 시기에 경쟁한 21세인 <춘향전>(홍성기)의 김지미와는 무려 14년이라는 차이가 났다.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이명우, 1935)의 문예봉이 19세에, 1955년 한국영화 중흥기의 <춘향전>(이규환, 1955)의 조미령이 27세에, 그리고 뒷날 <성춘향>(박태원)의 장미희가 21세에 춘향 역할을 맡은 것과는 대비되는 무리한 캐스팅이었다. 감당하기엔 어려운 배역이었으나 당시의 매스컴은 <성춘향>에 대해 성의 있는 고증과 색조, 허장강의 방자 역에 호의를 표명 (「예술과 기업의 대결, 매니큐어 반짝이는 두 편의 춘향전」, 『조선일보』, 1961.1.30.) 하면서도 최은희의 과년한 춘향 역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손에 바른 ‘반짝이는 매니큐어’만 지적했을 뿐이다. 이는 분장과 연기력으로 나이의 약점을 극복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성춘향>(명보극장)은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국제, 국도극장)에 참패를 안겨주며 서울에서만 74일간 3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기업적 기반을 마련한 신상옥은 신필름을 확장하고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춘 영화사로 키워 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 <성춘향>에 이어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연산군>(이상 신상옥), <서울의 지붕 밑>(이형표) 등 5편과 이만희와 유심평의 감독 데뷔작 <주마등>과 <군도(群盜)> 등 2편이 포함된 9편에 출연하였다. 여섯 살 소녀 옥희를 화자로 내세워 어머니와 사랑방에 세든 중년 남성과의 애틋한 사랑을 보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의 여주인공은 <마음의 고향>(1949), <동심초>(1960)에 이은 미망인 소재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깨끗이 빗어 올린 쪽진 머리와 하얀 저고리, 절제된 미소, 조신한 동선(動線)으로 ‘동양적인 청결과 멜랑콜리한 분위기’ (「신영화, 담담하고 격조있는 가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한국일보』, 1961. 8.26.) 를 자아내며 인내와 수절이 미덕, 가부장 중심 사회의 단면을 애잔하게 보여 주었다. 그 반면에 <상록수>(원작 심훈)에서는 야학을 열어 문맹 퇴치에 나선 일본 식민지시대의 농촌 여성 채영신으로 변신해 역할의 확장을 꾀하였다. 이 시기야말로 최은희 연기 생애에 있어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최은희 연기 인생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한 장면 〈산색시〉(박상호), <29세의 어머니>(이강원), <무정>(이강천) 등 외부 작품을 포함 12편에 캐스팅되면서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운 62년은 <열녀문>과 <로맨스그레이>(1963, 이상 신상옥)로 자칫 굳어질 뻔한 ‘청상과부’의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효과를 거두게 했다. 그런 잔제는 <29세의 어머니>와 같은 캐릭터에 남아 있긴 했으나 <열녀문>의 경우처럼 양반집 과부 며느리(최은희)가 머슴(신영균)과 정분에 빠져 임신을 하거나, <로맨스그레이>에 나타나듯이 단란한 가정의 가장인 대학교수(김승호)를 유혹해 돈을 뜯어내는 꽃뱀 수준의 호스티스(최은희)로 전환, 지금까지와는 상반된 여성상을 그려 보였다. 특히 <로맨스그레이>에서 여주인공 민자의 입술 오른쪽 볼에 그려놓은 검은 점은 화류계 여성다움을 나타낸 차밍 포인트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은 캐릭터는 <지옥화>의 양공주 쏘냐와 함께 최은희 연기세계의 동적인 한 축을 형성하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사진] <로맨스 그레이>에서 김승호와 한 장면 [사진] <민며느리>에서 최은희는 연출에 도전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 <벙어리 삼룡>(1964, 신상옥)과 직접 메가폰을 잡은 <민며느리>(1965), 신상옥 감독의 옴니버스 사극 〈이조여인잔혹사〉(1969) 등에 출연하여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봉건주의적 인습에 희생 되는 여성의 틀을 유지한 채 <날개부인>(1965, 김수용),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 임원식, 나봉한) 등에 출연, 밀수품 장사에 뛰어든 공무원(김진규)의 아내, 쇄국정책을 펼치는 대원군(김승호)의 섭정에 맞서 개혁·개방 정책을 추구하다가 죽음을 맞는 민비 역 등을 통해 연기의 폭을 넓혀 나갔다.
이두용 의 < 피막 >(1980)은 전국 각지의 무당들이 강 진사 집으로 몰려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강진사의 장남 성민이 알 수 없는 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굿을 통해 고쳐보려는 것이다. 무당 가운데 옥화( 유지인 )가 영험을 보이자 나머지 무당들은 모두 물러간다. 옥화는 마을 외딴 곳에 묻혀있던 호리병을 찾아내고 거기에 갇혀 있던 원혼이 성민에게 씌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강 진사 집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게 되고 미스터리는 차츰 풀려나간다. 이두용이 이 영화 바로 전에 연출한 영화는 < 최후의 증인 >(1980)이었다. 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후유증을 담아내려고 열심히 찍었지만 ‘빨갱이 영화’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었다. 이두용은 2시간 30분 길이의 영화가 40분이 잘려나가는 걸 보고 상심한 나머지 영화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제작자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피막>은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액션영화를 주로 찍었던 이두용은 당시 이른바 ‘토속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시기 한국 대중영화의 주류는 ‘에로티시즘 영화’였다. 따라서 <피막>은 토속적 샤머니즘과 에로티시즘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원혼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질 때, 에로틱한 설정과 장면들이 나열된다. 강 진사 집안에는 남자들이 요절을 많이 한 탓에 청상과부들이 즐비한데, 여인네들은 밤마다 욕망을 참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 가운데 둘째 며느리( 김윤경 )는 자해를 계속 하다 상처가 덧나 중태에 빠진다. 그녀는 ‘피막’으로 옮겨지는데, 피막지기 삼돌( 남궁원 )의 극진한 간호로 살아난다. 처음에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성관계를 맺게 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그 대가로 두 사람은 강 진사 집 사람들에게 살해당한다. 원혼의 주인공은 삼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계급이 다른 남녀(여성이 양반이고 남성이 완전 밑바닥 계급인 경우가 많다)가 성관계를 맺는 설정을 통해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 그 결과 비극을 맞이하는 결말은 1980년대 토속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여기에 옥화가 강 진사 집 남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설정을 통해 에로틱한 장면이 더해진다. 옥화의 굿 때문인지 성민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빠르게 회복된 그는 그간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다. 동경유학을 다녀온 듯한 그는 ‘과학문명으로 개화된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며 옥화의 영험을 믿는 가족들을 비판한다. 그는 옥화와 관련된 죽음의 현장에 가서 형사처럼 조목조목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샤머니즘을 모티브로 전개되던 영화는 이 대목에서 전근대와 근대가 충돌한다. 피막에서 씻김굿을 하는 옥화와 과학적인 설명을 하는 성민의 장면은 교차 편집을 통해 더욱 대비된다. 성민의 추리는 설득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옥화가 내림굿을 통해 진짜 무당이 되는 과정이나 피막에 묻힌 삼돌의 시체가 20여 년 동안 하나도 썩지 않은 상태 등은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옥화는 강 진사에게 자신이 삼돌의 딸이라고 정체를 밝힌 다음 죽이려고 하다 잘못을 빌자 복수를 포기한다. 한국 공포영화에서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원수들을 처치하다가 가부장(주로 시아버지)에게 억울함을 호소한 다음 복수를 멈추고 물러나는 설정과 유사하다. 이두용은 근대로의 방향은 동의하지만, 전근대의 가치에 대해 연민과 동조의 시선을 보낸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설정은 ‘피막’이라는 공간이다. 그 곳은 혼령이 돌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죽어가는 병자를 마을에서 멀리 옮겨놓는 장소로서, 하계와 이승의 중간정거장 같은 곳이다. 다시 말해서 호상도 누리지 못하고 가족들의 임종도 받지 못한 영혼들의 한이 서린 공간이다. 옥화는 복수를 완수하고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피막에 들어간다. 그녀가 기도를 시작하자 억울하게 죽었다고 호소하는 수많은 원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때 그 원혼들은 멀리는 한국전쟁에서부터 가까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한국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희생자들처럼 보인다. 이두용은 인터뷰(월간 [키노](1999년 9월)에서, ‘1980년대는 검열을 피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대였다. 사실적인 작품을 할 수가 없으니 사극의 형태를 빈 영화를 선택했다. 정권에 아부하기는 싫고 생존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근대사를 표현한 미스터리한 사극 < 초분 >(1977) < 물도리동 >(1979) <피막>을 연출했다’고 말한다. 옥화가 그 모든 원혼들에게 한을 풀어주겠다고 응답할 때, 피막에 불을 지르고 아버지와 다른 모든 원혼들과 함께 산화할 때, 그 앞에서 안타까워하는 마을 사람들과 원혼들을 달래는 굿 소리가 어우러질 때, <피막>은 역사의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이 된다. <피막>은 한국영화 최초로 1981년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되어 특별상을 받았다. 한국영화사에서 1970-80년대는 무자비한 검열과 3S 정책에 의해 초토화된 시기였다. 만일 <피막> 같은 성과마저 없었다면, 그 시대는 완전히 한국영화의 암흑기로만 기록 되었을 것이다. >> <피막> VOD 보러가기 <<
어려서 본 에로영화 중 가장 충격적인 영화는 단연 < 사방지 >다. ‘그들에겐 남자가 필요 없었다!’는 도발적인 카피와 함께 입을 반쯤 벌린 배우 방희의 뇌쇄적인 표정이 꽉 찬 포스터도 무척 야했고, ‘퀴어’라는 개념 자체도 없던 시기에 ‘반남반녀’ 사방지라는 캐릭터 자체가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선우일란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큰 가슴을 억지로 가리고 있던, 그러니까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를 널빤지로 막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의 < 이조춘화도 >(1988) 포스터와 더불어, 그저 한참을 서서 봤던 당시 포스터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사방지> 제작사인 인창영화사의 정준규 대표는 공연윤리위원회의 불가판정에도 불구하고 <사방지> 포스터를 배포, 부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나이아가라를 널빤지로 막는 < 이조춘화도 > 포스터 영화가 시작하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외딴 초가에서 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 죽는다. 우연히 옆을 지나던 한 스님이 그 아이를 거둬 절로 데리고 들어가고, 그렇게 사방지( 이혜영 )는 절에서 성장한다. 한편, 절에 남편의 탈상제를 지내러 왔던 청상과부 이소사( 방희 )는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사방지를 눈여겨 본다. 폭포에서 몸을 씻던 그녀 앞에 또아리를 튼 뱀이 등장하자, 그것을 나뭇가지로 건져 올려 무심히 던져 버리는 사방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뱀의 클로즈업과 사방지의 등장은, 이후 이소사가 사방지의 ‘물건’을 처음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소사는 스님에게 얘기해 사방지를 자신의 몸종으로 데리고 내려온다. 사방지의 등장 한창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이소사는 밤마다 마구 몸을 뒤척이며 괴로워한다. 급기야 남근 모양의 나무로 만든 성기구를 꺼내 욕구를 해소한다. 그러고 보면 방희 는 임권택 의 < 씨받이 >(1986)에서도 비슷한 역할이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씨받이 옥녀( 강수연 )에게 밀려난 윤씨 부인(방희)의 처지도 그러했다. 유현목 감독의 < 문 >(1977), 임권택 감독의 < 만다라 >(1981), 박호태 감독의 < 빨간 앵두 >(1982) 등에 출연한 1973년 TBC 특채 탤런트 출신의 방희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배우였다. 특히 < 신궁 >(1979), < 짝코 >(1980), < 오염된 자식들 >(1982), < 불의 딸 >(1983),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4) 등 임권택 감독 영화에서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중요한 역할을 해냈는데(아마도 출연 편수로만 보자면 김지영 아주머니와 함께 가장 많은 임권택 영화에 출연했을 것이다), 바로 <씨받이>가 일종의 세대교체의 순간이었던 것. 임권택 감독의 이전 영화들에서 방희가 맡은 역할이 ‘욕’(欲)이었다면 언제부턴가 그의 영화에서 그것이 사라졌고, 그것을 임권택 영화에서 방희의 퇴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오염된 자식들>에서 병구( 안성기 )는 명희(방희)의 과도한 자식욕으로 인해 성적 공포심에 시달리는 남자였다. 별당에서 혼자 지내는 이소사는 이제 대놓고 사방지를 방으로 불러들인다. 천자문을 읽고 수를 놓을 줄도 아는 사방지를 보고는 “절에서 밥이나 짓는 애인 줄 알았는데 이런 재주가 있다니. 날마다 너를 새롭게 보는구나.”라며 작업을 걸고 결국 야심한 시각에 이르자,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소사가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사방지에게서 어딘가 사내다운 중성적 매력을 느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소사의 손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사방지는 방을 박차고 나온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이소사가 사방지의 특별한 육체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 기어이 찾아온다. 그때 사방지의 ‘아래’를 손맛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거의 0.1초 정도 막대기 모양의 물체가 몽타주로 끼어든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정사신이 < 쌍화점 >(2008) 못지않은 농도로 진행된다.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 이소사는 무척 흡족한 표정으로 ‘먹방’을 시연하며 기존의 별당 담당 사월이에게 명령을 내린다. “앞으로 별당 일은 사방지가 다 혼자서 할 수 있으니, 이제 넌 그만 가 보거라.”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 얼마 전 900만 관객을 동원한 < 관상 >처럼 ‘사방지 사건’ 역시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계유정난으로 왕권을 찬탈한, 바로 그 세조 때의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생생하게 기록돼 있는데 세조 집권 후기인 1462년, 괴이한 사건으로 대신들과 사법기관이 떠들썩했다. 이른바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사건이다. 사방지 사건이 처음 제기된 것은 세조에게 올려진 한 상소 때문이었다. “김구석의 처 이씨의 여자 종인 사방지가 여복을 하며 종적이 괴이하다고 하여 관가에서 잡아다가 이를 보았더니, 과연 여복을 하였는데 음경과 음낭이 곧 남자였더라.” 물론 여자의 성기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방지를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던 세조는 그 일을 거론하지 말라는 영을 내렸다(이씨의 아버지 이순지는 세종이 아끼던 공신이었고, 또 이씨의 외아들 김유악의 아내가 바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도와 영의정이 된 정인지의 딸이었다). 나중에 사방지가 다시 이씨의 집에 들어가 이전과 같은 행각을 벌이자, 우의정 한명회도 나서서 먼 지방으로 유배하라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세조는 “전에도 이미 국문(조선 시대, 국청에서 역적이나 강상죄인 등의 나라의 큰 죄인을 형장을 가하여 신문하던 일)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또한 용서하라”고 했다. 하지만 신숙주를 포함한 대신들의 반대가 이어지니, 세조도 어쩔 수 없이 “사방지는 인류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먼 지방으로 보내 노비로 삼게 했다. 사방지 이소사 집안의 어르신들에게 발각된 이후, 문제가 된 사방지를 데리고 간 무당 모화는 ‘뚜쟁이’처럼 사방지를 사대부 부인들에게 보낸다. 수많은 부인들을 만족시켜주고 농락하는 사방지의 행각은 당시 1980년대 에로영화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걸 통해 양반사회를 뒤틀고자 했던 무당의 욕망은 당시 산업화사회 한국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것. 사방지의 물건을 향해 달려드는 사대부 부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고속촬영은 당시 룸살롱을 가득 메운 사내들의 탐욕과 다를 바 없다. 그 매춘 생활에 질린 사방지가 “전 남자도 여자도 아니지만 짐승도 아니에요.”라고 항변하며 달아나려 하자, 무당은 “넌 달팽이의 혼을 타고 나서 음지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달팽이의 몽타주가 끼어든다. 그렇게 무당은 사방지를 ‘악마의 씨’라 여기고, 급기야 사방지는 “부처님이 계시다면, 왜 저 같은 저주받은 생명을 만드셨습니까. 남자도 여자도 아닌 병신을 말입니다.”라며 울부짖는다. (잘 안보이지만) 욕망의 사대부 부인들 고속촬영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이수광 지음)을 보면, 당시 사방지 사건과 비교해 영화 < 사방지 >의 ‘격정 멜로’스러운 스타일이 눈에 띈다. 먼저 실제 노비 출신 사방지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어머니가 죽으면서 낳은 것이 아니라, 늘 함께 지냈다. 살결이 곱고 입술이 붉어 다들 ‘계집애가 사내로 잘못 태어난 것’이라는 얘기를 듣던 사방지를 보면서 그 어머니는 늘 수심에 잠겼다. 그러니까 영화의 첫 장면은 뭔가 사방지에게 ‘몹쓸 운명’이라는 숙명을 부여한다. 또한 장성해서는 벼슬한 선비의 집안에 꽤나 드나들며 많은 여종들과 정을 통했다. 그와 달리 이소사에게 일편단심을 바친 것으로 묘사되는 영화는 사방지의 가슴 아픈 사랑을 더욱 강조하는 것. 그러니까 사실과 달리 두 사람의 자살로 끝맺는 <사방지>는 조선왕조실록의 사방지 사건을 ‘첫사랑의 멜로’로 완성했다. 이쯤에서 실제 사방지의 ‘그것’이 어떠했는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사헌부가 사방지를 잡아들여 심문하면서 여자아이를 시켜 직접 만지게 했는데, 그 아이는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아주 장대하다’고 했단다. 왜소한 수많은 남자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릴 얘기다. 이혜영 방희 감독: 송경식 각본: 지상학 , 안태근 개봉극장: 아세아 관람인원: 40,221(서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