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명월의 고장
- 제작년도
- 1990
원신연 감독, 공유 주연 < 용의자 >는 왕년의 ‘레전드’ 스턴트맨들이 총집결하여 반가웠다. 최태환 무술감독과 원신연 감독의 동생인 배우 원풍연 , 그리고 성룡이 이끄는 무술팀 ‘성가반’에서 이충지, 박현진 등과 함께 맹활약한 한국인 이인섭 도 눈에 띄었다. 최태환 감독이 소속된 무술팀 ‘트리플A’(All About Action)는 이인섭이 < 러시아워3 >(2007)를 끝내고 돌아와 오세영 무술감독과 함께 < 왕의 남자 >(2005)에 참여하기 직전 공동대표로 꾸린 팀이다. 가장 반가웠던 인물은 바로 원진 이었다. 영화 속 청량리역에서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얼핏 왜소해 보이는 남자가 지동철(공유)과 싸우며 그야말로 날렵하고 화려한 발차기를 자랑했다. 가끔이라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스턴트맨들 중 정두홍 무술감독의 몇 안 되는 선배이자, 그가 머리 숙여 실력을 인정한 진짜 레전드가 바로 원진이다. 그들 대부분은 ‘밥풀데기’ 개그맨 김정식이 몸담기도 했던 ‘오뚜기 무술단’ 동료들이었다. 최태환 , 원풍연 , 이인섭 물론 그는 < 조폭마누라 >(2001), < 청풍명월 >(2003), < 낭만자객 >(2003), < 청춘만화 >(2006) 등의 무술감독이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실력자라 종종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무명 시절에도 왜소한 체격 탓인지 주연 여배우 대역을 하는 일이 많았는데, <조폭마누라>에서 신은경 대역을 한 것도 역시 그다. 다소 중국스러운 이름 때문에 중국 액션배우로 아는 사람도 많았고, 실제로 홍콩 골든하베스트사의 초청으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바로 < 가자왕 >(1992)에서 길게 머리를 늘어트리고, 다리를 뒤편 위로 치켜 올려 전갈 권법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그 자세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한 ‘공중 돌려 가위차기’는 홍콩 스턴트맨들도 한없이 부러워했다. 원진 을 포함해 역시 오뚜기 무술단 스턴트맨 출신의 원신연 감독이 옛 동료들을 불러 모아 완성한 < 용의자 >는 그야말로 훈훈한 ‘우정의 무대’라고나 할까. 여기서 떠오르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비록 전체적인 완성도는 미흡하지만 당대 ‘무술인’들의 ‘십시일반’ 정신으로 완성한 김춘식 감독의 < 고수 >(1997)다. 역시 스턴트맨 출신의 김춘식과 당시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원진 이 동료들을 규합해 ‘진짜 우리들만의 제대로 된 액션영화를 만들어보자’고 품앗이하듯 의기투합한 것. 비록 스타급 배우는 없고 제작비는 넉넉하지 못 했지만 스턴트맨들끼리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거기에는 ‘액션을 영화의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주재료로 써보자’, ‘우리도 남들 대역만 하지 말고 진짜 배우가 되어 보자’는 생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배경은 1930년대 일제치하, 친일파인 기봉( 장정국 )은 딸 승희( 김지은 )를 일본의 실력자 노무라( 최성 )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이에 승희는 연인 형철( 우승봉 )과 함께 돈을 훔쳐 달아난다. 전국을 떠돌던 그들은 우연히 차례로 변소동( 오동영 ), 조달구(김춘식)를 만나 도움을 얻게 된다. 기봉이 보낸 조직 ‘야수파’ 등에 맞서 승희와 형철을 도와주는 그들은 물론 돈 때문이다. 한편, 한 손에 갈고리를 하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고수(원진)는 조달구를 쫓는다. < 고수 > 출연자들 아쉬운 점은 역시 어설픈 유머가 난무하는, 물론 보다 보면 귀엽기도 한 이야기의 완성도다. 승희와 형철을 추적하는 조직의 이름이 야수파인 이유는 그들의 별명이 하나같이 멍멍이, 풍뎅이, 메뚜기, 반달곰, 올빼미 등 ‘야수’ 혹은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개의 귀 모양을 한 모자를 쓴 멍멍이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이인섭 이며, 승희와 형철을 쫓는 또 다른 3인조 중 핑크색 옷을 입은 남자가 바로 오세영 무술감독이다. 또한 ‘홀쭉이와 뚱뚱이’처럼 반목하는 변소동과 조달구는 서로의 이름으로 장난을 친다. 자신을 ‘조달구’라고 소개하자 변소동이 “좆 안 달고 태어나는 남자도 있당가?”라고 놀리고, 이에 질세라 조달구는 ‘변소똥’이라 부르며 달려든다. 이들이 등장해서 완성한 추격의 로드무비가 B스러운 것은, 바로 등장인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동료들을 규합해 영화를 찍고자 합의는 하였으나, 이 사람도 눈에 밟히고 저 친구도 눈에 밟히니 그저 엇비슷한 분량으로 몽땅 출연시킨 느낌이다. 그래서 친일파 기봉은 딸을 잡아들이기 위해 아무런 원칙도 없이 야수파도 보내고, 혼성 3인조도 보내고, 다시 남성 2인조까지 보낸다. 게다가 서로 각자의 실력을 자랑해야 하니 의욕에 넘쳐 그야말로 영화 내내 묘기 대행진이다. 별것 아닌 동작도 굳이 날아오르거나 몇 번 굴러서 ‘짠’ 하고 잡아내는 식이다. 당연히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한 덤블링 하는’ 스턴트맨들이다. 단지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킬러를 보낸 인해전술의 추격극이 과연 있었던가. 원진 그래도 역시 실질적인 주인공은 가장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원진 이다. < 가자왕 >을 연상시키는 돌려차기에다 쉴 새 없이 ‘날고 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분명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지만 적어도 액션에 있어서만큼은 대역도 속임수도 없는 진짜 퀄리티 높은 액션영화인 것. 원진의 또 다른 추천할만한 한국 액션영화로는 < 용호취 >(1988)와 <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 >(1989)가 있다. 코흘리개 신인 정두홍이 참여한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는 그가 실력을 인정하는 두 선배 류창국 과 원진의 대결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들이 이른바 ‘아동용 영화’의 긴 암흑기를 지나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게 된 건 무척 뿌듯한 일이다. 한동안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김춘식 감독은 작년 조주현 , 전세홍 주연의 ‘리얼 액션영화’를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진짜 완성됐는지 어땠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 아는 여자 >의 패러디인지 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건 제목은 < 패는 여자 >였다. 오동영 김지은 감독: 김춘식 각본: 이무섭 개봉극장: 바다, 파고다4관(서울) 관람인원: 1,300(서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