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박스
- 감독
- 전혜은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김규리
사진: “ Back to the future ”, IMDb 영화제작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게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지만, 영화계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세간의 우려가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구석으로 밀어둔 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아직 영화를 대체할 정도는 아니나 장편 영화의 일부 장면과 후반 작업에서의 역할을 보면 앞으로의 쟁점은 결국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더 가까워 보인다. 디에이징과 특정 장면 생성만 보아도,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영화 안으로 들어와 있다. 우려와 기대, 그 양가적 감정.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글이 다소 흩어져 보일 수 있겠다. 쟁점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아서다. 지금 영화가 맞닥뜨린 인공지능의 문제는 그만큼 단선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몇 갈래로 나누어 보았다. 1. 우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1985년 < 빽 투 더 퓨처 >에서 기술적 상상력과 대중적 서사 감각을 겸비한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타임머신 자동차의 불타는 타이어 자국과 번쩍이는 빛으로 시간 여행을 표현한 그였다. 당시 SF영화에서는 시각효과가 강조됐고, 저메키스는 서사 안에 시각효과를 정교하게 배치하며 그 일선에 섰다. <빽 투 더 퓨처> 중 9년 뒤인 1994년, 이번에 그는 < 포레스트 검프 >에서 다른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을 다루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려 보자. 구름 낀 하늘. 깃털 하나가 떠다닌다. 작고 하얀 깃털은 손가락 한 마디쯤 될 만큼 가늘고 여리다. 가장자리의 결은 반듯하지 않고 조금씩 흐트러져 있어, 바람을 만날 때마다 제 몸을 접는다. 공중에 떠 있을 때 그 깃털은 결코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한 번은 기울고, 다시 맴돌고, 또 한 번은 제자리에 머무는 듯하다가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진다. 깃털이 누군가의 신발에 닿는다. 깃털을 집어 든 남자, 포레스트다. 가방에 넣은 뒤, 그는 옆자리 여성에게 무언가를 건네며 말한다. “초콜릿 드실래요?” <포레스트 검프> 중 (사진: “ Forrest Gump ”, IMDb / © 1994 Paramount Pictures) 약 2분가량 이어지는 이 롱테이크 장면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됐다. 디지털 합성과 페인트 작업은 깃털의 움직임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처럼 보이게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기술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메키스는 포레스트의 삶을 감싸는 운명과 부유하는 시간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연출의 일부로 이 깃털을 배치했다. <빽 투 더 퓨처>에서 시각효과를 서사의 속도감 속에 밀어 넣었던 그가,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상징과 정서의 층위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제 최근의 이야기다. “3년 전만 해도 못 만들었죠” You couldn’t have made this movie three years ago. - The New York Times (2024), WIRED (2024) 재인용 2024년 저메키스가 < 히어 >를 선보이며 한 말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디지털 기술을 인물과 시간의 문제 한복판으로 밀어 넣었다. 톰 행크스와 로빈 라이트가 한 인물의 생애를 가로질러 직접 연기할 수 있도록 AI 디에이징이 활용된 것이다. <히어> 배우를 대상으로 한 AI 기반 디에이징 사용 전후 (사진: Brahma AI , © BRAHMA AI 2026) 영화에 사용된 기술은 Metaphysic Live라는 AI 기반 디에이징 시스템이다. 톰 행크스와 로빈 라이트의 기존 출연작 이미지를 바탕으로 머신러닝 모델을 학습시키고, 얼굴의 움직임과 피부 질감, 조명 조건을 분석해 필요한 연령대의 모습으로 실시간으로 변환했다. 배우들은 촬영 직후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달라진 얼굴을 확인하며 연기 방향을 조정했다. 저메키스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 인터뷰에서 이를 “결국 디지털 분장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아바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인물의 시간을 타임머신처럼 통과하도록 돕는 기술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말이다. 저메키스의 표현대로라면 이 영화는 3년 전만 해도 만들 수 없었다. 그 말은 곧 이 작품에서 인공지능이 선택지가 아니라 완성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공지능이 배우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의 연기를 더 먼 시간까지 확장했다는 데 있다. 배우의 몸짓과 말투, 시선의 결을 더 긴 생애 위로 펼쳐 보이게 했다. 이때 인공지능은 대체의 기술이라기보다 표현의 반경을 넓히는 기술에 가깝다. 어디까지가 보조이고 어디부터가 대체인지는 여전히 더 따져야 할 문제지만 말이다. 2. 학생 A가 영화제작 수업 과제를 두고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가 인공지능으로 과제를 했는데 결과가 꽤 좋았대요”라며 효용성을 앞세웠다가, “주제와 장르만 프롬프트에 넣으면 인공지능이 영화를 뚝딱 만들어줬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인공지능이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진 않는 거 같아요”라고 아쉬움을 토로하던 때였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는 교육 현장에서 빠르게 감지된다. 거대 자본의 스튜디오보다, 오히려 영화를 막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의 작업실에서 더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난다. 학교의 실습 현장에서는 그것이 훨씬 직접적인 질문으로 나타난다. 어디부터가 도움이고, 어디까지가 의존인지. 인공지능 기술로 영상 생성은 쉬워졌는데, 왜 영화는 아직도 쉽게 완성되지 않는가. A의 말이 흥미로웠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겼다. 더 빠르게, 더 쉽게, 더 그럴듯하게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은 분명 매력적인 도구였다. 그러나 그 학생이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은 효용보다 한계였다. 영화는 장면 하나를 생성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톤과 질감, 호흡과 리듬, 쇼트와 쇼트 사이의 연결이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영화가 된다. 인공지능은 영상 이미지를 만들어 줄 순 있어도, 아직 영화 전체의 문법까지 대신 책임져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교육 현장에서 더 선명해진다. 학생들은 누구보다 먼저 기술을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빨리 그 기술의 빈틈과 마주한다. 그 기대와 난점을 다음 대화에서 풀어본다. 필자 : 과제는 어떻게 되어가니? 학생 A: 찍은 장면들은 거의 정리됐어요. 그런데 중간에 달 장면을 넣고 싶어서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봤거든요. 달 표면에 혼자 서 있는 인물 컷이요. “SORA 2”가 생성한 이미지 학생 A : 그런데 편집하면서 붙여보니까 좀 이상했어요. 필자 : 뭐가 이상했어? 학생 A : 제가 직접 찍은 장면이랑 인공지능이 만든 장면이 질감부터 달라요. 인공지능 영상은 너무 매끈하고 깨끗한 느낌이에요. 카메라 움직임도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움직임이 너무 미끄러지듯 가요. 영상 이미지도 너무 사실적이라 제 영화 안에서는 좀 튀는 느낌이에요. “SORA 2”가 생성한 이미지 필자 : 장면 하나만 놓고 보면 괜찮은데, 영화 안에 들어오면 어색하다는 거구나. 학생 A : 맞아요. 그 장면만 따로 보면 멋있어요. 그런데 제 영화 안에 넣으면 혼자 다른 질감으로 떠 보여요. 색도 다르고, 어쨌든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요. 차라리 전부를 인공지능 영상으로 만들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필자 : 그럴 수 있지. 학생 A : 사실은 프롬프트만 잘 쓰면 해결될 줄 알았어요. 달나라 장면이 필요했으니까, 그 분위기만 비슷하게 뽑아주면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제가 상상한 장면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결과도 한 번에 안 나와서 여러 번 다시 생성해야 했어요. 필자 : 이 기술의 역설이지. 쉬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사용자의 판단을 요구해. 예전에는 찍을 수 없는 장면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만들어 놓고도 붙여보면 이상해지는 게 문제야. 더 섬세하게 써야 하는 거지. 학생 A : 그럼 아직은 인공지능을 쓰기 이른 걸까요? 필자 : 그렇게 볼 일은 아니고, 오히려 반대지. 이제는 쓸 수밖에 없어. 다만 질문을 달리 해야 해. 인공지능으로 만들 것이냐가 아니라, 네 영화의 문법 안으로 길들일 수 있느냐 로. 학생 A : 결국 인공지능이 다 해주는 게 아니라, 제가 더 많이 결정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필자 : 그렇지. 인공지능이 너의 상상력을 대신해 주는 건 아니야. 오히려 네 상상력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를 시험하는 쪽에 가까워. 영화는 선택의 예술이야. 무엇을 보여줄지, 무엇을 감출지, 어디서 컷을 나눌지, 어떤 리듬으로 밀고 갈지, 그런 판단은 아직도 우리의 몫이지. 학생 A : 보조 도구군요. 필자: 적어도 지금은 그래. 인공지능이 재료를 줄 수는 있어도, 그 재료를 어떤 의미로 묶을지는 네가 결정해야 해.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건 여전히 연출자의 판단이고, 인공지능은 그 판단을 대신하는 존재라기보다 보조하는 도구에 가까우니까. 3. 여기서, 질문이다. ‘인공지능의 파고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나?’ 영화의 표현 범위를 넓혀주는 도구가 인공지능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모든 도구가 그렇듯, 그것이 누구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일부 영화인이 인공지능을 경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기술은 빠른 속도로 노동의 자리를 흔들고, 창작의 책임을 흐리며,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까지 손쉽게 재가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2023년 미국 작가조합(WGA)과 배우노조(SAG-AFTRA)가 인공지능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도 그래서였다. 작가들은 인공지능이 대본을 쓰고 고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잠식할 것을 우려했고, 배우들은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 움직임이 동의와 보상 없이 복제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편리한 기술은 늘 반갑게 도착한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비용은 대개 가장 약한 자리부터 흔든다. 이 불안은 그래서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이다. 인공지능은 영화 안으로 거창한 방식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장면 하나, 목소리 하나, 배경 하나, 후반 작업 하나. 그렇게 작고 세세한 대체의 형태로 스며든다. 처음에는 보조 도구처럼 쓰인다. 그러나 반복되면 표준이 되고, 표준이 된 뒤에는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자리가 줄어든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는 것은 대개 이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 영화인이다. 그래서 이는 노동의 문제이고, 윤리의 문제이며, 결국 영화가 누구의 예술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문제다. 영화가 본래 집단 창작의 산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공지능의 도입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끝내 붙들고 싶은 것은 ‘완성할 권리’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역할이 더 커질 수는 있겠지만, 영화를 완성하는 일만큼은 끝내 우리의 몫이어야 한다. 영화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선택하는 예술이다. 장면을 생성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영화로 승인하고, 서사 안에 배치하고, 의미와 감정을 완성하는 일은 우리의 판단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어디까지를 기술에 맡기고 어디서부터 인간의 감각으로 되돌릴지 결정하는 권한 역시 우리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 영화에서 인공지능 활용의 핵심은 효용성이 아니라 통제다. 동의 없는 얼굴의 사용은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노동의 축소에는 정당한 보상이 따라야 하며, 작품을 최종적으로 승인할 권한은 끝내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 영화를 완성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존재 역시 결국 영화인이어야 한다. More Than 라이브 액션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이석창(강원대학교 교수, 영상제작자) l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이자 영상제작자. 무엇보다 영화를 좋아한다.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낙원상가와 함께 탄생한 극장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256(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28)에 위치한 낙원상가는 1960년대 후반 서울시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1969년 아파트와 상가가 공존하는 지상 15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완공됐을 때 볼링장, 당구장, 다방, 캬바레 등 다양한 상가가 입점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허리우드 극장은 낙원상가 4층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개관 당시의 운영주체는 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사였던 신필름이었다. 낙원상가는 서울시 도시 계획으로 건축된 1세대 주상복합건물 중 하나로 1967년 10월 완공됐다. 지금도 남아있는 건물의 현판에는 ‘낙원삘딍’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당시 서울시는 종로구에 대규모 건물을 지을 만한 넓은 대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4차선 도로 위에 지상 15층 규모의 건물을 올리는 독특한 건축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낙원빌딩 1층은 주차장과 신호등, 건널목까지 있는 4차선 도로가 됐다. 이는 도로 관련법 체계가 완비되지 않았던 시절에 준공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지금은 공공도로 위에 민간업체가 건축물을 짓는 일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낙원빌딩의 지분을 소유한 법인이나 개인은 토지세가 아닌 도로 점용료를 내고 있다. 1970년대 말까지 낙원상가는 다양한 상가와 아파트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의 성격을 유지했지만, 1979년 탑골공원 정비 사업 이후 다수의 악기 점포들이 들어오면서 악기전문상가로 특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도심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한때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건물의 상징성을 인정받아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됐다. 씨네필의 메카였던 때 1980년대 강남이 개발되기 이전까지 낙원상가는 서울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찾는 인기 명소였다. 영화 애호가들과 음악인들이 찾는 중심지로 호황을 누리던 허리우드 극장은 1980년대 강남 개발 사업이 시작되고 1990년대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겨나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1997년 기존 2000여석 규모의 개봉관을 레드, 블루, 그린 3개관으로 분리하며 시대의 변화를 적응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대형 극장의 몸집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허리우드 극장은 예술영화관 전용관에 장소를 임대하는 곳으로 공간의 성격을 바꾸기 시작했다. 2005년 4월 필름포럼과 서울아트시네마가 나란히 낙원상가로 자리를 옮기면서 허리우드 극장은 ‘시네필을 위한 전당’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사단법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희가 위탁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며, 2002년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문을 열었다가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화사 이모션픽쳐스의 대관으로 운영됐던 필름포럼은 기존 허리우드 극장 3개관 중 2개관을 임차하며 각각 480석과 300석의 규모를 자랑하는 예술영화관이 됐다. 당시 기획·운영은 임재철 영화평론가가 맡았다. 필름포럼은 2008년 4월 이화여대 후문으로 이사했고, 서울아트시네마는 2015년 3월까지만 낙원상가 내에서 운영되다가 계약이 만료되어 인근 서울극장으로 위치를 옮겼다. 실버세대를 위한 영화문화의 공간으로 허리우드 극장 입구의 돼지국밥 골목 인사동 거리와 탑골공원에 인접한 허리우드 극장은 젊은 층과 외국인 관광객, 노인 인구에게 모두 접근성이 높다. 따라서 서울아트시네마가 계약을 맺었던 2015년까지 예술영화를 즐기는 젊은 시네필이 방문하기에 어렵지 않은 곳이었다. 2009년 개관한 실버영화관 역시 노인 인구가 높은 인근 거리 일대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지속 가능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6년 8월에는 육의전 빌딩부터 낙원상가까지 이어지는 ‘송해길’이 만들어졌다. 낙원동에서 오래 활동했던 고 송해 선생의 이름을 딴 것이다. 낙원상가 입구에는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는 돼지국밥 식당들이 줄지어 있어 이곳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돼지국밥 골목 옆 낙원상가 입구 계단 현재 허리우드 극장은 ‘낙원악기상가’로 명칭을 변경한 건물 4층에서 임차 형태로 개별 극장에게 공간을 내주고 있다. 극장 앞에 위치한 광장은 허리우드 극장 시절부터 각종 공연 및 행사가 열렸던 공간이다. 현재는 노인들을 위한 쉼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작은 정원으로 인테리어를 바꿨다.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허리우드 클래식-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추억을 파는 극장은 2009년 1월 이곳에 문을 열었다. 바로 옆에 자리한 낭만극장은 서울아트시네마가 떠난 자리에 2015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필름포럼이 이사한 후 공연장으로 활용되던 기존 허리우드 극장의 상층, 낙원상가 5층에 해당하는 공간은 현재 ‘모두의 극장’이란 이름으로 추억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허리우드 극장 입구의 정원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추억을 파는 극장에 소속된 직원의 90% 이상은 노년층이다. 오전, 오후 그리고 주 3일 로테이션으로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어 고용노동부로부터 60대 이상 노년층을 채용하고 사회공헌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 야외매표소 ※ 5층은 공연장인 "모두의 극장"으로 활용 중 인터뷰: 김은주 대표(추억을 파는 극장 대표, 헐리우드 클래식-실버영화관 운영) 실버영화관을 운영 중인 (주)추억을 파는 극장 김은주 대표 임수연 _낙원상가에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이 입주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세요. 김은주 _원래는 필름포럼과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는데, 필름포럼이 먼저 이사를 한 뒤 그 자리에 제가 하는 ㈜추억을 파는 극장이 들어오게 됐어요. 서울아트시네마가 이사를 한 뒤에는 낭만극장이 입주했습니다. 현재는 ㈜추억을 파는 극장에서는 영화관을, 낭만극장에서는 영화관 1개관과 공연장을 운영합니다. 처음 극장을 대관하게 됐을 땐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하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나 고민이 있었어요. <더티 댄싱> <영웅본색> <미션> 이런 옛날 영화들을 상영을 해볼까 해서 왔는데, 사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노인 관객들이 대거 오시는 거예요. 그때 그분들이 옛날 영화를 갈망하는 눈을 봤고, 그 눈을 제가 뿌리칠 수 없었어요. 여러 조건이 맞아 떨어져서 2009년 1월 실버영화관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임수연 _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김은주 _낭만극장 대표님은 2013년 관객으로 처음 만났어요. 은행에서 오래 일을 하시고 퇴직한 직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시길래 실버영화관과 같은 결을 갖고 있는 극장을 운영해보시라고 제안드렸어요. 그래서 2015년 서울아트시네마가 떠난 자리에 낭만극장이 문을 열게 됐습니다. 실버영화관이 영화만 상영한다면, 낭만극장은 영화도 상영하고 공연도 합니다. 실버영화관은 7~80대를 대상으로 상영한다면, 낭만극장은 그보다는 젊은 영화들도 틀어요. 그래서 낭만극장에서는 도전해볼 만한 영화들도 틉니다. 저희가 히트했던 대작 위주로 진행한다면, 낭만극장은 ‘오드리 헵번’전, ‘존 웨인’전, ‘윌리엄 웰먼’ 특집전 같은 기획전 위주로 프로그램을 짭니다. 실버영화관(좌)과 낭만극장(우) 입구 임수연 _실버영화관의 상영 프로그램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김은주 _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종이에 써서 집어넣는 함이 있어요. 이를 토대로 저작권이 협의된 작품들을 추립니다. 아직은 이 시장의 저변이 확 넓어진 건 아니기 때문에 마니아성 영화보다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노년층들이 좋아하는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주로 언급됩니다. 임수연 _공간 인테리어 측면에서 어떤 부분을 신경 쓰고 있습니까. 김은주 _코로나 이전에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미세먼지였어요. 전 시대에 비해 폐렴으로 돌아가시는 노인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만큼 미세먼지에 굉장히 취약하다는 거죠. 실버영화관도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원과 같은 극장을 만들려고 했어요. 노인을 위한 극장이라고 초라하고 허름할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거죠. 영화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삶의 질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식물들로 장식된 4층 로비 벽면 임수연 _이곳을 찾는 노년 관객들의 성향은 어떤가요. 김은주 _눈을 뜨면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되게 행복하신가 봐요. 부산에서 표를 끊어 올라오셔서 굳이 티켓까지 보여주시면서 “자리가 없으면 서서 볼 거다” 라고 하세요. 여기 오시는 분들은 극장 매표소에 있는 박스에 사식 넣듯 자꾸 초콜릿, 과자 같은 것을 집어넣으세요. 어떤 날은 집에서 재배했다면서 감자를 엄청 삶아갖고 오시고, 사과나 곶감을 보내시기도 해요. 일반 극장은 관객과 소통할 일이 없는데 저희는 관객과 쌍방향 소통을 상당히 많이 한다는 게 굉장히 독특하죠. 실버영화관 내부 코로나로 인해 격석으로 좌석을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임수연 _실버영화관에서 일하는 직원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김은주 _㈜추억을 파는 극장에는 30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중 10% 미만이고 나머지는 다 노인 분들이에요. 병원도 가셔야 하고 스케줄이 많아요. 그래서 오전과 오후, 그리고 주 3일 로테이션으로 업무를 나누느라 많은 사람들이 근무를 하게 됐어요. 또 저희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어요. 고용노동부에서 60대 이상 경험자들이 현장에 파견 나가 일을 할 수 있게끔 돈을 주고 지원하는데, 그렇게 사회공헌 일자리로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죠. 임수연 _상영환경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면? 김은주 _아쉬운 건 필름으로 계속 상영을 하고 싶지만 전 세계적으로 필름이 공급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필름으로 영화를 틀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다행인 건 필름의 거의 마지막 시대에 가장 좋은 필름으로 고전 명작을 많이 구입했어요. 만약 <사운드 오브 뮤직>을 상영한다면 저희가 갖고 있는 거의 원판에 가까운 필름으로 트는 게 가장 화질이 좋을 거예요. 필름비는 한편당 500만원, 번역과 통관까지 합치면 1000만원 이상 드는데 2004~2005년쯤 작품을 대거 구입했습니다. 실버영화관 영사실 내부와 영사기 임수연 _앞으로 이 공간이 사람들에게 계속 기억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요. 김은주 _예산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지 않을까요. 실버영화관이 멀티플렉스는 아니지만 멀티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했던 영화 키드 세대가 지금은 노인 세대가 됐어요. 이분들이 좀더 품격 있는 노년을 맞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친구가 돼서 항상 곁을 지켜줘야 해요. 어려운 것부터 가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시도를 해 나가려고 해요. 극장이 사라지면 안 되기 때문에 영진위에서 다양한 예산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김종준 대표(낭만극장 운영) 낭만극장 김종준 대표 임수연 _대표님은 과거 허리우드 극장에 대한 추억이 있을 법한 세대입니다. 그 기억이 낭만극장을 운영하는데 영향을 미쳤나요. 김종준 _제가 62학번입니다. 60~70년대에는 영화를 관람하는 게 제일 좋은 취미였습니다.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도 영화 보는 게 제일 큰 행사였죠. 500원, 1000원이면 영화도 보고 불고기도 먹을 수 있었죠. 그때 기억 때문에 영화도 지금까지 좋아하는 거예요. 어느덧 저도 늙었으니까, 노인들의 행복을 위해 아지트를 만들고 외로움을 덜어드리고자 낭만극장을 열었습니다. 임수연 _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의 프로그램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김종준 _차이는 없어요. 코로나19 전에는 관객이 1500~2000명씩 왔어요. 한 극장에서 프로그램 한번 할 때 3~4일 정도 상영하거든요. 여기 오는 관객들은 오늘은 낭만극장에서, 내일은 실버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식으로 하다 보면 일주일에 영화를 4~5편 봐요. 그래서 시너지 효과가 좋아요. 내가 영화관에 가야 사는 것 같다고도 하시고요. 서대문의 청춘극장도 김은주 대표가 맡고 있는데, 거기까지 티켓 2000원으로 서울시로부터 위탁을 받아서 영화를 틀고 있습니다. 임수연 _낭만극장과 공연장을 함께 운영하고 계세요. 5층은 언제부터 공연장으로 만드신 건가요. 김종준 _2년 정도? 그 전에는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다른 공연팀이 있었는데 몇 천 명씩 와서 공연을 봤어요. 그러다 코로나 때문에 중국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하니까 저희가 국내 공연을 하는 곳으로 만든 거예요. 예전에는 일주일에 2~3번씩 공연을 했어요. 낙원상가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악기상가가 있잖아요. 악기상들이 자기 고객들에게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로 소개하면 저희가 대여를 해주기도 했죠. 지금은 극장 2개관이 각각 300석, 공연장이 400석, 총 1000석입니다. 5층 공연장 모두의 극장 내부 임수연 _낭만극장과 실버영화관이 공유하는 라운지를 꾸밀 때 특히 어떤 점에 신경 쓰셨나요. 김종준 _영화를 안 보시는 분들도 로비에 와서 즐기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식당에서 간단한 음료와 간식도 팔았어요. 공기 정화를 위해 공기청정기도 설치했습니다. 임수연 _낭만극장을 주로 찾는 관객들은 대체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김종준 _가장 많은 건 80대에요.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70대였는데 그분들이 지금은 80대가 됐을 테니까요. 5~6년 전에는 90대 관객이 오면 신기해서 따로 모셨는데, 지금은 예사롭지 않은 일입니다. 가장 많은 건 80대, 그 다음이 70대, 그 다음이 90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60대 관객이 가장 적습니다. 대체로 50년대부터 60년대 초,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보시던 분들이 많습니다. 낭만극장 내부 임수연 _튼튼하게 지은 만큼 건물 자체는 앞으로도 보존될 수 있겠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영화관이 계속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종준 _60~70년대에는 영화를 많이 봤지만 80~90년대에는 야외에 나가서 골프도 치고 다른 여가활동을 많이 하게 됐어요. 앞으로 베이비부머 세대를 흡수하기 위해 공연장에서 베이비부머 연예인들이 공연을 많이 하게끔 하는 게 낭만극장의 숙제이자 목표에요. 추억의 명화를 트는 일은 70~80대가 80~90대가 되고 나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끌어들여야 해요. 필자: 임수연(씨네21) 사진촬영: 최성열(씨네21) 인터뷰 일자: 2022년 4월 19일
1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이것을 시인해야만 한다. 영화 관람이 끝나고 영화관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그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라는 말로 롤랑 바르트는 「영화관을 나오며」를 시작한다. 나도 그 순간을 좋아한다. 문제는 영화관을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영화관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콜릿이 코팅된 아이스크림 콘의 꼬다리를 먹기 위해서는 먼저 나머지 부분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나이를 먹으며 어느 순간 군것질을 하면 곧바로 군살이 붙는다(대사량이 떨어져서)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늙었다(만나는 사람만 만나서)는 사실도. 나는 시간으로 둥글어진 다른 이들의 얼굴에서 나의 늙음을 본다. 굴뚝을 청소하는 두 아이가 등장하는 오래된 이야기처럼, 혹은 그냥 거울처럼. 바르트는 계속해서 쓴다. “영화관 안에서는, 아무리 멀리 앉아있더라도, 나는 스크린이라는 거울에, 나 자신을 자기애적으로 동일시하고 있는 “타자의” 상상적 세계에, 코가 납작하게 짓눌릴 정도로 바짝 들이댄다(스크린에 최대한 가까이 앉는 관객은 어린아이이거나 영화광(cinéphiles)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그날 내가 극장에서 너무 많은 늙음을 보았다고 해서 너무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내가 어린아이가 아닌 만큼 씨네필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린아이와 함께 살며 몇 명의 영화광을 알기는 한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나는 종종 씨네필이 아닌 한 인간(=나)에게 얼마나 많은 씨네필-지인들이 필요할까 자문해보곤 한다. 내 대답은 늘 같다: 한 명도 너무 많다! 오해하면 안 된다. 체스터턴을 따라 말하면,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을 사랑할 수는 있으며 사랑하기도 한다. 여기에 솔직한 마음을 덧붙인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극장에 갔다. 아이도 씨네필도 없이. 아내와 나 둘이서.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고, 우리가 함께 극장에 갔던 건 < 극한직업 >이 마지막이었다. 주말 오후에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다녀온 것이었다. 힘들 때 하는 선택이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이 맞다면 나는 3년 만에 가는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지 않고 주저없이 < 탑건: 매버릭 >을 고르는 사람이다. < 헤어질 결심 >이나 < 브로커 >가 아니라… 문득 임재철(=씨네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었다는데 무슨 길을 잃었냐고. 내가 보기엔 한국 영화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 안 그래?” 3 <극한직업>과 <탑건: 매버릭> 사이 나는 극장에 모두 다섯 번 갔는데, 그중 네 번은 JD와 함께(나머지 한 번은 혼자)였다. 가장 최근은 지난 6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GV를 진행하기 위해 영자원에 갔던 것이다. 장학퀴즈 우승자, 베스트셀러 작가, 천재 감독으로 불리지만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씨네필에 따르면 “그저 딜레탕트일 뿐”인 이규형의 1987년 작품으로 서울 관객 26만 명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참고로 같은 해 개봉한 외국 영화들의 대략적인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오버더톱 >, < 록키4 >, < 코브라 >, < 플래툰 >, <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 >, < 백 투 더 퓨처 >, < 프레데터 >, < 죠스3 >, < 작은 신의 아이들 >, < 컬러 오브 머니 >, < 파리, 텍사스 > 그리고 < 탑건 >. 4 그날 우리가 길을 잃기는 했다. 오랜만에 찾은 웨스턴돔은 기억보다 훨씬 복잡했고, 낡았다. 그리고 그건 극장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중간 공실이 된 상가와 저녁 시간에도 텅 빈 식당들과 달리 극장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직원은 적었고 관리가 되지 않은 티가 곳곳에서 났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관객이 줄고 그에 따라 인원을 감축했지만, 관객이 다시 늘어난 이후에도 충원을 하지 않아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렇지. 내 기억 속 극장은 대부분 새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하지만 이내 그것이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우리 세대의 특별한 경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내가 스무 살이 될 무렵 멀티플렉스가 생겼다. 처음에는 강변으로, 다음에는 코엑스로.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과 함께 새로 생긴 극장을 찾아다녔고,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 지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가깝고 새로운 상영관을 찾았고, 다시 더 가깝고 새로운 상영관을 찾았다. 더 이상 가까운 곳에 새로운 상영관이 생겨나지 않을 때까지. 그러면서 시간과 함께 서서히 낡아가던 기존의 극장들은 팬데믹을 거치며 급격히 쇠락한다, 뭐 이런 이야기 아닐까? 그리고 그건 (상업) 영화 자체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아니면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문화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이거나. 한 마디로, 메인스트림 문화가 적절한 세대 교체의 리듬을 놓친 채 동일한 인물들, 주제들, 스타일들과 함께 고인물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5 결론부터 말하면 <탑건: 매버릭>은 좋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시험비행단을 해체하러 온 에드 해리스 위로 탐 크루즈가 모는 전투기가 지나가는 장면부터 눈물이 날 뻔한 걸 참느라 혼났다. 다만 제목이 <탑건: 매버릭>이 아니라 <탑건: 우리들의 블루스>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저도 후반부 공중전 장면 재밌었고, 잘 찍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씨네필이 말했다. 전편의 편집이나 데쿠파주를 거의 똑같이 따라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전편에서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젊은이로 등장했던 톰 크루즈가 속편에서는 늙은이(young sixty)가 되어 반항하는 새로운 젊은이와 함께 등장하지만 영원한 대위(captain)로 머물며 스스로 기성세대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윗세대에는 반항하면서 그렇다고 아랫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거나 당해주지는 않은 채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잘난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곱게 받아주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런 나를 위로하려는듯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씨네필이 말했다. -탐 크루즈가 내한했잖아요. 영상이 있는데, 중년 남성 관객이 영화를 보고 막 울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탐 크루즈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괜찮아요! 마음껏 우세요! 이건 바로 당신을 위한 영화에요!” 6 이 글을 마감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게 유운성(=씨네필)은 유럽의 어느 영화 평론가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름도 정확한 국적도 기억나지 않지만 주간지에 매주 빠짐없이 영화평을 쓰던, 그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단명한 평론가를 회고하며 다른 이가 쓴 글이라고 했다. 어느 날 글쓴이가 집에 가려는데 문제의 영화 평론가가 하얀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더란다. 마감 날이라서 원고를 쓰고 있나보다 생각하고 집에 갔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없어서 다 쓰고 집에 갔나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나온 잡지를 보니 그의 영화평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의 이름만 있고 본문이나 제목은 없이 하얗게 비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원고를 펑크낸 게 아니다. 하얀 백지를 원고로 제출한 것이다. 바로 그거다! 나는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표절을 할 순 없기에 이 글을 쓴다. 내가 <탑건: 매버릭>처럼 그 영화 평론가의 속편도 아니고… 7 <탑건: 매버릭>에서 또 재미있었던 점은 영화가 이런저런 세부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탑건: 매버릭>은 온전한 서사라기보다는 설정집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이를테면 젊은 파일럿들을 다루는 방식이 그렇다. 영화에서는 굳이 다루지 않겠지만 이런 인물들이니 원한다면 마음껏 2차 창작을 해보라고, 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혹은 내가 출처를 잊어버린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감옥에 간 사람의 이야기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던 탓에 매일 똑같은 농담들을 주고 받았고, 어느 순간 농담에 번호를 붙여서 매번 번거롭게 농담을 이야기하는 대신 번호를 부르는 것으로 갈음하게 되었다. “45번.” 누군가 말하자 사람들이 웃었다. “125번.” 사람들이 뒤집어졌다. 그렇게 번호들이 이어지고 깔깔 대잔치가 벌어지던 와중에 영문을 모르던 신참이 시험 삼아 말했다. “77번.” 그러자 순식간에 감방이 조용해진다. 잠시 후 누군가 헛기침을 하며 말한다. “그건 적절하지 않은데. 사과하세요.” 그러니까 <탑건: 매버릭> 또한 수많은 영화들에서 반복되어온 세부들을 번거롭게 이야기하는 대신 번호를 부르듯 간략한 설정만 제시해주고 넘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의 나머지를 번거롭게 일일이 쓰는 대신 몇 가지 아이디어를 질문의 형태로 제시하며 영화의 예를 따를 생각이다. -비와 신세경이 주연한 한국의 항공 블록버스터 < R2B >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탑건>의 아류라기보다는 <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의 속편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R2B>가 <탑건>과 <탑건: 매버릭>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라고 주장하는 건 가능할까? -<탑건>과 <탑건: 매버릭>과 <R2B> 중에서 비천한 영화는 무엇이고 비천하지 않은 영화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몇몇 유튜버를 비롯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전에 참전하겠다며 불법 출국을 감행한 사건이 <탑건: 매버릭> 같은 영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혹은 <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를 두고 “아주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그리고 스필버그의 재능이 최고도로 발휘된 그런 훌륭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정말 감동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미국인, 미국 국적이라는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한 박찬욱 감독이 <탑건: 매버릭>을 어떻게 평가할지 유추한다면? -왜 이번 화에는 JD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가? 그것은 지난 화의 마지막에 임창정의 신곡 <나는 트로트가 싫어요>의 유튜브 링크를 보낸 것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인가? -기타 등등… 8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이것을 시인해야만 한다. 원고를 마감하고 워드프로세서를 종료하는 순간을 그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