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의 어쌔신 코드
- 감독
- 래리 리긴스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최민수, 줄리안 리, 존 사비지, 마틴 코브
1. 금정연의 문자를 씹었다. 종종 있는 일이다. 그는 문자를 보내고 나는 씹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멘션을 보내고 금정연이 씹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금이 간다거나 어색한 상황이 발생하진 않는다. 적어도 지난 금정연의 원고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는 지난 원고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했다. “(JD는) 여전히 답이 없다. 말풍선도…” 금정연이 나의 답장을 기다렸다니. 어떻게 임창정 얘기를 꺼내고도 내 답장을 기다릴 수가 있지? 임창정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내가 만약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면 그건 오로지 임창정 탓이다. 한국 남자가 나오는 악몽을 꾼다면 그는 임창정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고 한국 남자가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는 <소주 한잔>일 것이며 한국 남자가 시비를 건다면 그는 17대1로 싸운 자신의 과거를 자랑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임창정이야말로 한국 영화의 부인된 무언가이며 아무리 외면해도 기어코 돌아오는 실재의 찌꺼기다. 우연히 홍대나 건대의 술집이나 거리(혹은 그와 유사한 모든 먹자골목)를 지나치기라도 하면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우리를 습격하지 않는가. 나는 왜 그의 바이브레이션만 들어도 식은땀이 날까.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이건 임창정이라는 배우이자 가수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라캉의 저 유명한 말을 생각해보라. “성적 관계 같은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임창정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임창정에 대해서 말해야한다. 2. 하지만 임창정에 대해 말하려면 윤제균에 대해 말해야한다고, 나는 소전서림에서 만난 문윤기에게 말했다. 윤제균이요? 윤기씨는 그런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본다는 듯 말했다. < 색즉시공 >(2002)이 개봉했을 때 그는 아마 초등학생이었으니 그럴수도 있다. 나는 윤기씨에게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트라우마가 내 입을 봉하고 성대를 틀어막았다. 게다가 임창정에 대해 말하려면 이병헌과 최민수와 류승룡과 김상진과 신재호/신동엽에 대해서도 말해야하지 않나. 이 이름들은 무엇이며 이렇게 목록화 되는 이유가 뭐냐고는 묻지 말길. 나는 그 세계가 궁금하지도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도 그 세계를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영화과에 입학한 이후 영화를 피해 이십여년을 도망다닌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니까.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영화가 턱밑까지 칼을 들이 밀었고 마감을 알리는 메일은 벌써 일주일 전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마감과 글쓰기의 고통 때문에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진심) 말해야할 때가 왔다는 의미이다. 3. 이쯤에서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유추의 방식으로 연결될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장 루이 셰페르의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가 그것인데, 나는 이 책의 서문을 다음과 같이 편집한 후 적용할 것이다. 관객에게 영화는 무엇보다도 영화에 대한 분석이 제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으로 등장한다. 이야기가 이들 ‘괴물들’에게 역할(의미)을 부여하기 이전에, 이야기와 관계없이, ‘괴물들’은 그것이 나타나는 순간에 이미 무언가 알 수 없는 의미 자체로서 관객인 나에게 도래하는 것이었다. 스크린 위에 나타난 무언가는 바로 내 속에 도래하고 그곳에 들어와 일정한 장소를 점유한다. 내가 고찰하고 싶은 것은 영화와 함께 태어나 여전히 고착되어 있는 이상한 감정 – 이미지를 계속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남게 되는, 말하자면 부식토와 같은 물질적인 감정에 대해서이다. 이것이 영화와 개인의 삶의 어떤 표현되지 않는 부분 사이에 사적인 연결을 갖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내 삶의 가장 숨겨진 부분이며 내 삶에서 가장 굴종에 처해진 부분이기라도 하듯이, 침묵에 빠지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말하려 해도 실어증에 빠지고 만다. 우리는 영화화된 행위에 대한 상상적인 참여를 통해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스크린의 형식이나 존재에 우리를 투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삶 속에서 성장한다. 영화는 현실적인 어떤 것의 현실화 혹은 전용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인 것이란 잠정적으로 관객처럼 사는 어떤 것이다. 이미지와 경험적인 정동이 섞인 기억의 삶이다. 이것은 영화를 신체의 일부, 자신의 신체임에도 우리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부분처럼 사용하는 습관에 대한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장 루이 셰페르는 영화가 불러오는 시뮬레이션이 실제의 세계로부터 빌려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게다가 이 시뮬레이션은 그 시뮬레이션의 모상인 영화보다 선행하는 것이며 계속해서 지속된다. 이 시뮬레이션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는 어떤 신체의 운명 속에서 욕망했던 것이다. 지젝은 사본의 사본인 예술이 직접적인 첫번째 층위인 사본-물질적 현실과 경쟁하지 않고 오히려 이데아 자체와 경쟁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물질적 대상을 복사할 때 사실상 복사되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제3의) 이데아라고 말이다. “플라톤이 예술의 위협에 그토록 당혹스럽게 반응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이데아는 곧 현실이 복사될 때 나타나는 그 무엇이다. 사본(현실)의 사본(영화)의 사본인 셰페르의 시물레이션은 바로 이와 유사한 매커니즘을 가진다. 그것은 영화로부터 복사되어나온 환영이지만 영화보다 선행하는 현실보다 선행하는 무언가로 구성되며 그러므로 현실은 곧 영화가 시뮬레이션 될 때 일어나는 그 무엇인가의 복사물이 된다. 이러한 매커니즘은 빙크스 볼링의 경우처럼 영화의 수준 따위는 따지지 않는다. 따지는 방법도 모르며 안다한들 그 기준은 기이한 전-의식적인 단계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괴물이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이 괴물이 괴물이 아닌 것처럼 군다는 사실이다. 4. 그러나 비천한 영화란 무엇일까. 정연씨를 통해, 마테리알의 오픈 스페이스를 통해 비천한 영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너무나 적절한 작명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천한 영화는 디테일과 뉘앙스는 다르지만 유사한 형태로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해왔다. 보통은 길티 플레저라는 이름으로, 요즘 말로는 쿠소 영화, 언젠가는 시네마 지옥이라는 명명하에 우리를 울리고 웃기지 않았나. 하지만 여기에도 혼란의 여지는 있다. 에드 우드와 같은 유형의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는 망작 또는 괴작은 비천한 영화에 속할 수 있을까? 괴작과 망작을 한 묶음에 넣을 수 있을까? 유년의 기억을 차지하는 길티 플레저 영화들은 뻔하고 전형적이지만 망작은 아니지 않나? 이를테면 정연씨가 사랑하는 < 콘에어 >(1997)는 러닝 셔츠를 입고 턱걸이를 하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상상만해도 입안의 콜라가 뿜어져 나오지만, 생각보다 좋은(?) 영화 아닌가. 내가 초등학교 때 가장 사랑한 영화 는 < 록키 4 >(1987)였다. < 록키 1 >(1976)도 아니고 <록키 2>(1980)도 아닌, 4탄. 한 영화 잡지에서 <록키 4>를 최악의 시리즈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천하의 졸작으로 평가한 걸 본 이후 나는 어디서도 <록키 4>를 인생 영화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면 비천한 영화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범작 2) 망작 3) 괴작.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비천한 영화들이 기거하는 시네마 지옥 속에서 이 세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천한 영화 대부분은 개인의 기억에 속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이 의미를 (거의) 상실한다. 중요한 건 이 영화들을 사랑했다는 기억을 비천하게 만드는 사회와 나와 영화의 관계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진짜 비천한 것은 영화가 아니다. 이들 사이의 위계와 위상이, 비천함의 지정학이 행위자들을 비천하게 만든다. 어른이 된다는 것, 나아가 씨네필이 된다는 것은 이 비천함을 숨기거나 잊고 부정하는 것이다. 영화잡지의 리스트, 선생님들의 평론, 커뮤니티의 평가들이 우리를 그러한 길로 이끈다. 물론 다른 길도 있다. 리스트를 부정하고 선생님들의 뒤통수를 치고 커뮤니티를 혁신하려는 이들은 부인된 비천함 속에서, 사회가 어둠 속으로 쫓아낸 네트워크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고 비천함 그 자체의 미학화를 시도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명명들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극도의 섬세함과 정치적 현명함을 요구한다. 비천하되 너무 비천하지 않은 영화들로, 괴작이지만 망작은 아니고 범작이지만 윤리를 벗어나지 않고(아니면 아주 완전히 벗어났거나) 잊혀졌지만 스토리텔링 하기 좋은 영화를 선택할 것. 5. 하지만 내게 임창정은 비천한 영화도 시네마 지옥도 쿠소 영화도 아니다. 임창정은 현실에 뿌리내린 시뮬레이션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묻기도 했다. 왜 그렇게 임창정이 싫은건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임창정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건… 6.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하기로 한 <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1987) GV를 앞두고 금정연은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의 회고록 링크를 보냈다. 나는 스포츠서울 창간 편집국장이자 추리소설가인 이상우의 회고록 링크를 보냈다. 이태원과 이상우는 옛날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건달이자 영화제작자로 일세를 풍미했고 한 사람은 스포츠신문의 귀재이자 한국의 조르주 심농으로 알려져 있지만(안 알려져 있기도 하다) 두 사람은 한번도 함께 일을 하거나 마주치지 않았다. 최소한 회고록의 내용을 봤을 땐 그렇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정연씨와 내가 함께 한 GV의 픽션 속에서 잠깐이지만 마주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6.10 민주항쟁이 있고 한달 후쯤 개봉한 작품으로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관객 수는 약 28만명. 영화에 대해 할 얘기는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것이다. 우리는 영화 보다 영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주로 했다. 청춘영화의 계보나 당시 영화계의 상황 같은 것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과거의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의 곤혹스러움이었다. 만약 과거의 영화가 동시대의 영화를 뛰어넘는 걸작이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과거의 영화가 역사의 과오를 되새기게 해주는 따위의 용도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과거의 작품이 현재의 시각에서 안이한 범작일 때 발생한다. 스탠리 카벨의 말처럼 우리는 “결코 그 당시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과거의 작품을 보고 이야기해야하는 걸까? 우리가 역사학자도 아닌데 말이다. 안 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불가능한 태도다. 과거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아카이브와 네트워크를 경유한 너무 많은 과거가 현재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 범속한 과거들에 어떤 식으로건 응답 할 것을 요구받는다. 뭐라고 말할까? 그건 너무 비천하다고 무시하거나 그저 개인의 추억일 뿐이라고 뭉개고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7. 국문학자 권보드래는 기이할정도로 충격적이고 다층적인 3.1운동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직접성’과 ‘무매개성’을 동원한다. 파국과 유토피아가 함께 임박해 있다는 감각은 민중들의 시간성에 있어 직접성의 형식을 구성한다. 한편 무매개성은 문제가 좀 더 복잡하다. 3.1 운동은 일반적으로 기미독립선언서, 유관순 등으로 대표되어 왔다. 이러한 대표성에는 민족이나 진보라는 관념, 사회주의, 의회정치 등등이 매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3.1 운동의 면면을 살펴보면 현실은 다르게 작동했다. 교통도 통신도 미비하고 변변한 조직체도 없는 시절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운동에 참여하고 사건을 일으켰다. 권보드래는 묻는다 “인민은 대표되고 재현되어야만 하는가? 개별 그대로, 인민의 존재 그대로 사건의 동력이 될 수는 없는가?” “매개되지 않고 대표되지 않는 세계가 가능할까.” 이를 한국 영화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특정 사조나 흥행, 감독이나 작품 등으로 매개되지 않고 대표되지 않는 한국 영화의 역사가 가능할까. 영화가 실재의 찌꺼기처럼 존재하며 현실을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시뮬레이션이라면, 그것을 개별 그대로의 동력으로, 사건으로 구조화할 순 없을까. 헤겔의 유명한 문구가 있다. “세계의 역사는 세계의 도살장이다.” 프랑코 모레티는 이 표현을 가져와 <문학의 도살장>을 썼다. 살아남은 소수의 문학과 사라져버린 다수의 문학. 추앙받는 소수의 영화와 비천해져버린 다수의 영화.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양적 연구도, 형식주의도 아날학파도 아니다. 흥미롭게도 권보드래는 <3월 1일의 밤> ‘나가는 글’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아직, 3.1 운동을 만나면 길을 잃는다.” 나는 정연씨에게 답장을 썼다. “임창정 신보가 나왔네요. 17집. 유튜브 링크 보냅니다. 노래제목은 <트로트가 싫어요> https://youtu.be/wsH0mv3yZEc 왠지 < 국제시장 >이 생각나네요..”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최근 한국영화가 발명한 장르가 있다. 바로 ‘ 마동석 이라는 장르’다. 배우에게 일반적으로 ‘변신’이 미덕으로 여겨진다면, 마동석은 그 반대편에서 범죄 스릴리라는 장르 안에 자신만의 둥지를 틀고 있다. < 악인전 >( 이원태 , 2019)는 그 정점이다. 클리셰로 구성된 장르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마동석은 자신이 구축해왔던 나름의 영역을 완성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악인전>은 두 겹의 텍스트다. 표면적으로 <악인전>은 조폭 두목과 미친 형사와 연쇄살인마라는, 범죄 장르에서 지겹게 반복되었던 캐릭터를 한 데 모아 새롭게 재조합한 영화다. 여기서 마동석은 또 하나의 겹을 만든다. 그는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면서 ‘마동석 영화’의 본색을 보여준다. 마동석은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기를 거부하는, 스스로 페르소나를 만들어가는 배우다. 그가 맡은 캐릭터들은 모두 마동석의 분신이자 배우 자체처럼 여겨지는데, 이런 위력은 한 명의 배우가 장르와 동의어가 되는 원동력이다. 세 악인의 팽팽한 대결처럼 보이지만, <악인전>의 중심은 마동석이 맡은 캐릭터인 장동수다. 여기서 ‘마동석 영화’의 첫 번째 법칙. 마동석은 언제나 ‘룰’(rule)을 만드는 사람이다. 응징이든 복수든 정의 구현이든, 그는 언제나 자신이 원칙을 만들고 그 안에서 움직인다. <악인전>에서도 이 영화에서 ‘게임의 법칙’을 만드는 사람은 장동수다.(“먼저 잡는 사람이 갖는 거지”) 이 과정에서 그는 형사 정태석( 김무열 )과 상의 같은 건 하지 않으며(“우리 애들 쓰고, 진행비도 내가 내. 정보 공유하고”), 현실의 법 따위엔 관심 없다.(“법으로 못하는 일 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그리고 최후의 응징자가 된다.(“사내 셋이 목숨 걸고 게임을 했는데 끝을 봐야지”) 여기서 장동수의 포지션은 흥미롭다. 법을 만들지만 그는 법 밖에 있는 사람(조폭)이다. < 범죄도시 >( 강윤성 , 2017)의 마석도처럼 형사일 때도 있지만(그럴 때조차도 그는 법을 따르지 않지만), 마동석의 캐릭터는 공권력을 부여 받지 않았음에도(범죄자인 경우에도) 법의 집행자가 된다. 그는 평범한 승객(부산행), 수산물 가게 주인(성난 황소), 체육 교사(동네 사람들), 유도 도장 관장(원더풀 고스트)이면서 악당과 맞선다. 그는 한국영화에선 드문 일종의 자경단원 같은 역할을 반복하는데 그 상징적 시작은 카메오로 출연했던 < 베테랑 >( 류승완 , 2015)의 ‘아트박스 사장’이다. 화면에 그가 등장했을 때 관객들이 느꼈던 기대감, 즉 ‘완력을 이용한 즉각적 응징’은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지니는 가장 큰 장르적 매력이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그 어떤 적도 제압할 것만 같은 파워의 소유자. 마동석은 그런 면에서 범죄 영화 장르의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마동석의 액션이 절대 판타지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개인적 동기가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악인전>에서 장동수가 강경호(김성규)를 잡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경기 이남 최고의 조폭인 자신에게 칼을 꽂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개인적 복수는 연쇄살인마를 감옥에 가두는 결과로 이어진다. < 성난 황소 >( 김민호 , 2018)에서 아내를 구하는 과정에서 납치 조직을 소탕한다. < 부산행 >( 연상호 , 2016) < 동네 사람들 >( 임진순 , 2018) < 원더풀 고스트 >( 조원희 , 2018) 등도 그런 구도다. 가정과 이웃을 위하는 소박한 행동은 집단에 위협적인 존재를 처단하는 공익적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같은 이미지를 지나치게 소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마동석의 행보는 한국영화가 오랜만에 접하는 경험이다. 서민극의 김승호 , 청춘 영화의 신성일 , 액션의 박노식 과 장동휘 , 멜로의 문희 등 과거 한국영화는 스타와 장르의 반복적 결합을 통해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박중훈 (코미디), 최민수 (액션), 전도연 (멜로) 등의 배우들이 한때 그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마동석이다. 그는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형사든 범죄자든, 한국영화 100년 사상 가장 두꺼운 팔뚝을 휘두르며 강렬한 ‘한 방’의 액션을 선보였고, 그것은 이미 익숙한 쾌감이 되었다. <악인전>은 엔딩의 ‘살인 미소’와 함께 그 쾌감의 끝을 보여준 영화이며, 아마도 마동석이라는 장르는 좀 더 우리 곁에 머물며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198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던 장르를 꼽는다면 ‘종교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멸종된 건 아니다. 최근 < 일사각오 >(권혁만, 2016) 같은 영화가 소박한 흥행을 거두었고, 김수환 추기경(< 바보야 >(2011)), 법정 스님(< 법정 스님의 의자 >(2011)), 옥한흠 목사(< 제자, 옥한흠 >(2014) 등 종교인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울지마, 톤즈 >(2010)나 < 소명 >(2009)처럼 오지의 성자들에 대한 작품도 있다. 다른 건 소속된 리그다. 최근 종교 관련 작품들이 다양성 영화의 범주에 속한다면, 1980년대의 종교 영화는 메인 스트림 안에 있었다. 이 영화들은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당시로선 큰 흥행인 ‘서울 관객 10만 명’ 이상을 동원했으며, 사극일 경우 거대 예산이 들어간 대작이었다. 특정 종교의 역사, 인물, 교리 등을 테마로 삼는 종교 영화는 1980년대 상업영화의 한 축이었으며, 비록 그 종교의 신도들을 중심으로 하지만 강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기독교, 가톨릭, 불교는 물론이고 증산도를 다룬 < 화평의 길 >( 강대진 , 1984), 무속을 소재로 한 < 피막 >( 이두용 , 1981) < 무녀의 밤 >( 변장호 , 1982) < 불의 딸 >( 임권택 , 1983) < 태 >( 하명중 , 1986) < 업 >(이두용, 1988) 등이 이어졌고, 수련을 통한 초능력을 다룬 < 단 >( 김행수 , 1986)이나 사이비 종교에 대한 < 백백교 >( 최영철 , 1993) 등도 있었다. 1980년대 이전에도 기독교와 가톨릭을 다룬 종교 영화들은 있었다. 그 영화들은 사극, 전쟁 영화, 반공 영화 등에 걸쳐 실존적 철학과 이념적 갈등과 역사적 사실 등을 다루었다. 유현목 감독의 < 순교자 >(1965) 최하원 감독의 < 새남터의 북소리 >(1972) 이성구 감독의 < 악마의 제자들 >(1974)과 < 쥬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 >(1973) 당대 종교 영화 트렌드의 중심은 기독교였다. 조짐은 1970년대 말부터 있었고 1980년대 초반까지 주요작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기독교 영화의 붐이 일기 시작했던 걸까? 이것은 당시 기독교의 부흥과 깊은 관계가 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5일 동안 열렸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 대회엔 전국 각지의 크리스천이 300만 명 이상 모였다. 이후 1974년엔 김준곤 목사의 엑스플로 대회가 있었고, 1977년엔 민족 복음화 성회, 1980년엔 세계 복음화 성회, 1984년엔 선교 100주년 대성회 그리고 88 세계 복음화 대성회 등이 이어졌다. 이 시기 뉴스에서 여의도 광장을 가득 채운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접하는 건 흔한 일이었고, 1980년대 중반에 오면 ‘1,000만 기독교인’이라는 자체 집계가 발표된다. 이른바 ‘대부흥의 시대’였다. 자고 나면 교회가 생겨나던 시절, 기독교 영화에 대한 잠재적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였다. 이때 < 사랑의 원자탄 >(강대진, 1977)이 포문을 열었고 뒤를 이은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임원식 , 1981)는 서울 관객 20만 명 이상을 동원한 흥행작이었다. 다음 해 < 죽으면 살리라 >(강대진, 1982) < 하늘 가는 밝은 길 >( 김성호 , 1982)이 나왔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신앙을 실천했던 손양원 주기철 안이숙 등이 주인공이었던 이 영화들은 한참 교세를 확장하던 시기 기독교인들에겐 일종의 교재였다. 실화 영화로서 이 작품들이 지닌 이분법적이고 감정적이며 극적인 감수성은 절절한 간증이 되어 신도들의 가슴을 쳤다. 가톨릭도 마찬가지였다. 최하원 감독은 < 초대 받은 사람들 >(1981)과 < 초대 받은 성웅들 >(1984)를 내놓는다. ‘천주교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한 <초대 받은 사람들>은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약 15만 5,000명의 서울 관객을 모은 흥행작. <초대 받은 성웅들>은 ‘천주교 조선 전래 200주년’을 기념하며 서울 대교구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최인현 감독의 < 소명 >(1984)도 200주년 기념작. 이 작품들은 이승훈 김대건 이벽 등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올 시기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그린다. 특히 1984년은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며 가톨릭의 열기가 뜨거웠던 해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까지 만들어진 주요 종교 영화들의 중심 테마는 순교와 박해였다. 이 영화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겪었던 참혹한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하드고어에 가까운 표현을 하기도 했다. <사랑의 원자탄>은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해방 후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다. 그는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의 양자로 들였다. (상단 오른쪽) <저 높은 곳을 향하여>는 주기철 목사의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 거부로 결국 옥사한 그의 이야기는 <하늘 가는 밝은 길>과 <일사각오>로도 영화화되었다. (하단) 최하원 감독의 <초대 받은 사람들>과 <초대 받은 성웅들>. 가톨릭이 조선에 들어오던 시기 겪었던 박해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처럼 1980년대 초 기독교와 가톨릭이 이끈 종교 영화의 열풍은 종교적 이벤트와 신도의 양적 성장을 토대로, 억압 받았던 수난의 역사를 환기시키는 영화들의 만남이 빚어낸 결과였다. 이 영화들을 통해 기독교와 가톨릭은, 신분제 사회와 식민지 체제에서 평등 사상과 민족 정신을 주장하고 지켰던 종교로서 일종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 받았다. 흥미로운 건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의 사례다. 원래는 1977년에 제작되어 개봉 예정이었지만, 유신 정권은 이 영화에서 불온한(?) 기운을 감지했다. 일제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신사 참배에 저항하는 주기철 목사(신영균)의 모습을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세력으로 여겼던 모양. 그래서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던 영화는 198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고, 큰 흥행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종교 영화들이 오로지 신앙의 힘으로 전진했던 걸까? 그렇지 않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의 한국영화는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 시기 충무로는 산업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 떠오르던 종교 이슈를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의 큰 흥행은 자극제 역할을 했고(이 영화는 속편이 기획되기도 했다), 무산되긴 했지만 <정의가 나를 부를 때> <빛을 마셔라> <이천석 목사> 등도 제작될 예정이었다. 기독 영화인들의 모임도 큰 역할을 했다. 1970년대에 모이기 시작한 그들은 1976년 ‘새롭게 하소서’라는 공연으로 연예인 선교의 단초를 마련했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는 개런티 없이 참여하기도 했다. 신영균 고은아 를 비롯 최민수 의 어머니인 강효실 , < 예수 천당 >( 홍의봉 , 1991)의 이영후 , 그리고 임동진 문오장 구봉서 곽규석 윤복희 (가수) 송도영 (성우) 등이 대표적 인물. 한편 종교적 테마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감독들도 등장했는데 복음주의적 입장의 강대진 감독은 <사랑의 원자탄>과 <죽으면 살리라>를(그런데 1984년에는 증산도에 대한 <화평의 길>을 연출하기도 했다), 실존주의적 입장의 유현목 감독은 < 사람의 아들 >(1981)과 < 상한 갈대 >(1984)를, 선교적 입장의 홍의봉 감독은 < 휴거 >(1990) < 천국의 비밀 >(1990) < 예수 천당 >을 내놓았다. 여기서 1980년대 종교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이장호 감독과 이동철(본명 이철용) 작가다. 그들은 한국 종교 영화에 본격적으로 ‘민중’의 개념을 가져왔다. 기독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찬송가였다. 이 영화들의 OST는 대부분 찬송가 멜로디의 변주였다.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를 거부했고, 감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다 해방을 맞이해 극적으로 살아난 안이숙의 이야기인 <죽으면 살리라>. 가수인 윤복희가 주인공을 맡아,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들려준다. 이 시기 기독교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는 ‘회개’였다. <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에서 최자실 목사는 빈민촌에서 교회를 세우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킨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무당( 김을동 )이 회개하는 대목이다. 이동철 원작의 < 꼬방동네 사람들 >은 빈민촌의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그 중엔 고물 장수 목사가 있다. 그는 영화의 결말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예수의 메시지를 전한다. < 과부춤 >은 천민 자본주의 시대의 기독교를 이야기한다. 부흥회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당시 교회의 모습이 풍자된다. 그 시작은 < 낮은 데로 임하소서 >(1982)였다. 안요한 목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청준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주인공이 신의 부름을 받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종교적 체험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한 인물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한국 종교 영화가 담지 못했던 풍경을 보여준다. 그것은 도시 빈민의 모습이다. 안요한(이영호)은 시력을 잃은 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판자촌에 교회를 세우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동철 작가 원작인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인)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에도 등장한다. 영화에는 리어카를 끌며 고물 장사를 하는 목사( 송재호 ) 캐릭터가 있는데, 그는 ‘꼬방동네’(빈민촌) 사람들에게 예수의 메시지를 전한다. 당시 한국 기독교는 대형화와 함께 중산층화를 겪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소외 당한 자들에 대한 시선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민중 교회가 등장했는데, 이런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 매체가 바로 영화였다. 이런 시각은 창녀촌을 배경으로 한 < 밤을 기다리는 해바라기 >( 엄종선 , 1982) 같은 영화에서 간접적으로, 의도하지 않게 드러나기도 했고, 김진홍 목사의 빈민 선교 이야기인 < 새벽을 깨우리로다 >( 이기원 , 1990) 같은 영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김수형 , 1982)은 한국 대형 교회의 상징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최자실 목사(송도영)의 일대기를 통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이장호 감독, 이동철 원작의 <과부춤>(1984)은 본격적인 종교 영화는 아니지만, 당대 한국 기독교를 적나라하게 풍자한 수작이다. 광적인 부흥회, 돈에 눈먼 목사, 교회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는 신도 등 <과부춤>은 ‘천만 기독교인’ 시대의 이면을 들춘다. 이 영화는 단순한 기독교 비판에 그치지 않고, 종교 없인 살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멘털리티를 보여주며, 그 이면엔 ‘가난’이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세상에 대한 당대 기독교 영화의 관심은 불교 영화와도 일맥 상통하는 지점이 있었다. < 만다라 >를 시작으로 1980년대 불교 영화는 끊임없이 속세와 종교적 깨달음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중광 스님의 이야기인 < 허튼 소리 >(김수용, 1986)를 비롯해 < 아제 아제 바라아제 >(임권택, 1989) < 우담바라 >( 김양득 , 1989)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정지영 , 1991) 그리고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배용균 , 1989)까지 이 시기 불교 영화엔 사바 세계에 대한 미련과 번민이 있다. 종종 멜로드라마 장르의 관습에 갇히기도 하지만(유난히 비구니 캐릭터가 많았던 건 그런 이유일까?), 관념적 화두에 머물지 않고 세상과의 관계를 중시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이후 임 감독은 <비구니>를 만들려 했지만, 촬영 도중 중단되어 결국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다. 법난 이후 불교계와 정권은 갈등을 빚었고, 그 와중에 조계종은 이 영화의 제작을 반대하여 결국 중단 사태까지 간 것. 이후 감독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비구니>의 한을 풀었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한국을 넘어, 세계 불교 영화의 대표작이다. 이 영화를 전후로 충무로에 잠깐 불교 영화의 붐이 일었다. 실존주의자 유현목 감독의 <사람의 아들>. 이문열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이 시기 종교 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는 초월적인 기적의 순간을 시각화하는 것이었다. <초대 받은 사람들>에서 정혜(원미경)의 가슴에 십자가 빛이 새겨진다. 1980년대 종교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군사 정권의 군홧발 아래서, 개신교 지도자들은 전두환에게 달려가 조찬 기도회를 열어주었고, 불교계는 10.27법난(1980년)을 겪으며 초토화되었다. 가톨릭은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이 되었다. 기복 신앙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고, ‘종교 과잉’과 ‘사이비’의 시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 카오스 속에서 ‘영적 상품’으로 기획된 종교 영화들은 전반기엔 기독교 영화가, 하반기엔 불교 영화가 중심을 이루며 1980년대를 장식했다. 하지만 1990년대 기획 영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 영화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기업 자본에게 ‘종교’는 매력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이 부활한 건 2010년 전후 즈음. 몇 편의 다큐멘터리가 다시 신앙과 선교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후 주기철 목사에 대한 <일사각오>를 비롯 < 신이 보낸 사람 >( 김진무 , 2014) < 로마서 8:37 >( 신연식 , 2017) < 산상수훈 >(유영의, 2017) 등의 극영화가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