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섹스남매
- 감독
- 나오토
- 제작년도
- 2021
- 출연
- 호시노 나미
< 횃불 >은 1963년에 개봉된 신상옥 감독의 사극이다. 여자주인공은 당연히 최은희 이고 남자주인공은 신영균 . 악역인 청나라 칙사로는 이예춘 이 나오며 그밖에 김승호 , 김희갑 이 조연으로 나온다. 이 정도면 화려한 캐스팅이지만 정작 이 영화를 관심을 갖고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필름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새 기준으로 보면 그리 정이 가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반세기 전엔 당연했던 이야기가 지금은 아닌가? 내용을 살펴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서유대라는 한량처럼 보인다. 도입부 캐릭터 소개 장면을 보면 그는 다섯 개 화살을 모두 과녁에 명중시키는 명사수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새로 사귄 사또 친구와 함께 정치 이야기를 하며 한탄하는 것밖엔 없다. 왜 조정에서는 당파 싸움만 하고 선비만 위하며 나 같이 잘난 인재는 쓰지를 않는가. 시대배경은 영조 때이니 18세기다. 내가 읽고 있는 녹음대본엔 중간에 인현왕후의 죽음에 대한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왜 나오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여간 정확한 시대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병자호란 이후가 배경이고 청나라에서 칙사라 내려오는 때란 것만 알면 충분하다. 오랑캐 역의 이예춘 필름은 사라졌지만, 이예춘 이 연기하는 청나라 칙사와 양석천 이 연기한 청나라 부사의 사진이 아직 남아있는데, 보면 좀 오싹하다. 한마디로 20세기 한국 사람들이 ‘오랑캐’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최악의 스테레오타이프로 뭉쳐놓았다. 같은 동양인이 만든 영화라고 해서 이것을 인종차별적이 아닌 어떤 것으로 해석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이예춘 이 이를 어떻게 연기했는지 몰라도 영화 속 칙사는 최악의 악당이다. 사악하기보다는 불쾌한 인물이다. 그가 이 영화에 등장하자마자 한 일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기에게 데려온 수청기생들의 외모를 면박 주며 더 예쁜 여자를 데려오라고 생떼를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조 앞에서 침을 뱉고 향로를 집어던진 것이다. 두 번째 행동은 이 영화 스토리 전체의 엔진이 된다. 아까 소개한 서유대가 이걸 보고 분노해서 그에게 돌을 집어던지기 때문이다. 여러분 같으면 여기서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도입부의 소개에 따르면 서유대는 명예를 아는 사나이 대장부처럼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 칙사가 돌을 맞는 즉시 당장 앞에 나타나 호령을 하거나 자수를 하거나. 그렇게 되면 당연히 체포가 될 것이고 그 뒤에는 죽을 뻔 하다가 의적이 되거나 하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이들 중 어느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유대는 조선이 다시 전쟁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는 엄청난 외교 문제를 일으켜놓고도 자기가 뭘 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칙사는 자기를 모욕한 범인을 찾겠다고 혈안이 되어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서유대는 러닝타임 절반을 훌쩍 넘길 때까지 등장하지 않으며 간신히 등장한 뒤에도 사또 친구와 정치 이야기나 하고 있다. 유체이탈화법은 영조 때부터 있었던 우리 고유의 전통이었던 걸까. 그 동안 분주하게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산홍이라는 기생이다. 서유대가 돌을 집어던졌을 때 옆에 있었던 사람이다. 이 영화에서는 아직 처녀인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는데, 관객들이 그 말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때 산홍을 연기한 최은희 는 30대 중반이었을 텐데?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가 61년에 나왔다는 걸 생각해보시길) 하여간 산홍은 어떻게든 척사의 수청기생이 되지 않으려고 간질병에 걸린 척 꾀병을 부리느라 바빴는데, 갑자기 자기가 사모하는 서유대를 살리겠다며 사또에게 몸을 바치겠다고 찾아온다. 사또는 갑자기 서유대를 불러오더니 “그대들은 처녀총각이렸다. 내 작수성례를 해주마!”라며 둘은 같은 방에 집어넣는다. 관객들이 최은희가 처녀란 걸 믿었으니 신영균 이 총각이란 것도 믿으란 말이었을까? 횃불 시위 하여간 산홍은 서유대와 섹스 한 번 한 것으로 평생의 소원을 푼 것처럼 행동한다. 당장 나가 자기가 돌을 던졌다고 자수한 것이다. 그러자 이 영화의 제목인 횃불이 등장한다. 산홍의 동료인 기생들이 횃불을 들고 데모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데모는 정말 효과가 있어서 칙사는 눈치를 보면서 산홍을 용서한다. 그러는 동안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며 자칭 남자주인공인 서유대는 뭐하고 있었냐고? 뒤늦게 산홍이 자기 대신 자수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사또 친구에게 왜 그랬냐고 징징거리다가 몽둥이를 얻어맞고 나가 떨어진다. 산홍이 사면되자 간신히 깨어나 산홍이 이름을 부르는 게 이 인간 이야기의 끝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 어이없는 인간을 만들어놓고 감독, 작가, 배우 중 어느 누구도 그 문제점을 보지 못했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