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하루
- 감독
- 김종관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한예리, 이와세 료, 권율, 이희준, 김준범, 이승연, 최유화, 배영해, 설창희, 조부현, 옥주리, 이재순, 강숙, 고재운, 황복순, 심국영, 권옥희, 조미초, 서양훈
‘긴긴 하루였어요. 하느님이 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어요? 물론 전 원하는 걸 드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 거예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사실, 전 다 솔직했는걸요.’ 영화 < 최악의 하루 >( 김종관 , 2016) 속 은희( 한예리 )는 무명 배우이다. 늦여름의 오후, 연기 수업을 듣고 나온 은희는 일본에서 와 길을 헤매는 작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나 도와준다. 연인 현오( 권율 )의 재촉에 은희는 배우인 그의 촬영지 남산으로 향해 그를 만나지만 고운 말이 오가는 평범한 데이트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한참 연애사를 헤집으며 서로를 탓하다가 달콤한 연인 행세를 좀 하려는가 싶은 찰나, 현오는 은희를 다른 여성의 이름으로 부르고 만다. 화가 난 은희는 현오를 뒤로하고 남산에서 내려가고, 거기에는 은희의 트윗을 보고 멋대로 찾아온 운철(이희준)이 은희를 기다리고 있다. 은희가 현오와 헤어졌을 때 만났던 운철은 은희에 대한 미련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뻔뻔하게 전 부인과의 재결합을 알린다. 운철은 오랜만에 겨우 만난 은희를 보내주지 않으려 하지만 은희는 적당히 둘러대며 다시 현오를 만나러 남산에 오른다. 그러나 또다시 은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운철을 마주치고, 현오와 셋이서 마주치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 은희는 가지 않으려는 운철을 사정하다시피 해서 돌려보낸다. 물론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고, 현오와 함께 있는 은희를 운철은 다시 한번 찾아온다. 결국 맞닥뜨리게 된 세 명, 서로가 은희의 연인이라 주장하는 현오와 운철 사이에서 은희는 그저 힘없이 길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그들이 떠난 뒤, 은희는 앞서 연기 수업에서 배운 대사를 체화해서 조용히 읊어본다. ‘긴긴 하루였어요. 하느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최악의 하루>라는 제목은 꽤 직관적이다. 한 앵글에 잡히는 은희, 현오, 운철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쉴 테다. 영화는 료헤이의 내레이션으로 막을 연다. ‘여행지에서 이야기를 하나 생각했다. 곤경에 처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은희의 하루가 료헤이가 문득 생각해낸 허구의 이야기라면, 이는 그가 곤경에 빠진 여성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생각해낸 것처럼 보인다. 보통의 액자식 구성(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액자처럼 끼어들어 있는 구성)은 내부 이야기와 외부 이야기의 경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최악의 하루>는 외부 이야기의 화자처럼 보이는 료헤이의 내레이션과 그의 모습이 잠깐 등장한 후, 바로 은희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료헤이는 자연스럽게 은희의 하루에 녹아들어 오늘 하루 동안 은희가 만나게 된 세 명의 남자 중 그저 한 명으로 느껴지게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분명 처음의 내레이션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은희의 하루에 같이 발을 동동 구르게 될 것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은희의 시간을 하루로 제한하는데, 그뿐만 아니라 공간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은희가 처음 수업을 듣고, 료헤이를 만나는 배경은 서촌이다. 길을 잃어 한없이 걷는 둘의 뒤로 펼쳐지는 고즈넉한 풍경은, 늦여름의 서울을 관객이 하여금 대신 만끽하도록 한다. 은희와 료헤이가 작별을 고한 후, 배경은 남산으로 고정된다. 현오를 만나러, 운철을 피하려 은희는 푸릇푸릇한 남산을 걷고 또 걷는다. 최악으로 치닫는 하루와는 대비되는 아름답고 안정감마저 주는 배경은 은희의 하루를 더 비참하게 만들기도, 덜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최악의 하루>는 거짓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이다. 현오는 실수로 부른 이름의 여성과 은희 몰래 교제를 하는 것처럼 보이고, 운철은 전 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 은희를 만난 이력이 있다. 그러나 은희는 이들 사이에서 그저 수동적으로 순진한 얼굴을 하고 난처해하지만은 않는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에는 거짓으로 응수하기를 선택한다. 비록 그 치열한 고군분투의 결과로 그의 하루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지만 말이다. 은희와 료헤이가 처음 만나 서로의 직업을 물었을 때, 료헤이는 소설가인 그의 직업을 ‘거짓말을 하는 직업’이라고 소개한다. 은희는 배우인 자신도 같다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지만, 이 둘은 서로에게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서툰 언어인 영어로 대화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고르고, 줄여서, 쉽게 말한다. 유창한 거짓이 덧붙을 여유는 없다. 소박한 대화 속에서 그들은 미소 짓는다. 료헤이의 팬이라는 한 잡지 기자는 인터뷰에서 ‘이야기가 자극적이고 주인공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잔인하다. 왜 인물들을 위기에 넣고 꺼내주지 않느냐’고 묻는다. ‘글은 글일 뿐’이라고 답하는 료헤이에게 ‘저는 부끄러웠어요. 저 자신과 그 안의 인물이 점점 닮아가더니 벼랑으로 떨어지고 땅에 묻히더군요.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있나요?’라고 말한 뒤 기자는 사라진다. 아니, 있었던 흔적이 아예 온데간데없다. 료헤이가 본인에게 묻는 말인 것이다. 그대로 은희에게 가 닿는 질문. 그는 혼자 앉아 골똘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본다. 이미 늦은 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은희의 앞에 료헤이가 다시 나타난다. 현오에게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냥 일본인이라고 했지만, 은희는 료헤이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최악의 하루를 보냈음에도, 은희는 다시 만난 료헤이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어땠어요?’ 상대의 안위는 안중에 없이, 각자의 욕망만을 이야기하던 현오와 운철과는 극명히 대비된다. 이제는 별다른 목적 없이, 한 번도 끝까지 가 본 적 없는 남산의 산책길을 료헤이와 은희는 함께 걸어본다. 기자의 입을 빌려 자신에게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료헤이는 드디어 내놓는다. 한 번도 소설의 주인공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 없는 그가, 언제나 위기에 빠뜨리고 방관자의 눈으로만 지켜봤던 그가, 처음으로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최악의 하루를 보낸 은희에게, 료헤이는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한 이야기에 대해 말해준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예요.’ 료헤이가 은희에게 직접 해주는 이 말은, 누구나 항상 되뇔법한 ‘다 잘 될 거야.’와 꽤나 다른 의미를 갖는다. 액자식 구성을 명확히 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과 남이 해주는 말의 무게는 으레 다른 법이지만, 나와 다른 층위에 있는 존재의 이 말은 강력해서 최악의 하루 끝에서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준다. 당신의 하루를 감히 이해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려 하지 않고, 그저 내일의 안녕을 빌어주는 말. 이는 료헤이가 은희에게 하는 말이면서도, 감독이 힘든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르는 관객에게 전하는 심심한 위로의 말이 아닐까.
은희에겐 정말 최악의 하루다. “하느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가을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 한예리 )는 연기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연기력 없다고 타박 들으며 시원찮게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길을 헤매고 있는 일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어쩌다 료헤이에게 길 안내를 해준 후, 아침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 권율 )을 만나러 남산으로 향하는 은희.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중무장한 현오와 비밀 데이트를 하면서 은희의 최악의 하루가 펼쳐진다. 엉겁결에 자기 이름 대신 다른 여자 이름을 외친 현오. 화가 난 은희는 도망치듯 자리를 뜨게 되지만, 곧이어 다른 복병이 등장한다. 한때 썸을 탔던 운철( 이희준 )이 은희가 올린 트윗을 보고 우연히 남산에 나타난 것이다. 처음 본 일본 소설가, 현재 만나는 남자, 그리고 과거에 만났던 세 남자가 동시에 주마등처럼 하루 만에 은희 앞에 나타나고, 은희는 복잡한 감정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된다. 허세 가득한 현재의 남자와 솔직하지 못한 과거의 남자가 은희를 둘러싸고 만들어놓는 엉망진창의 삼각관계는, 흡사 홍상수 월드의 남자 캐릭터들이 빚어놓는 풍경처럼 적잖이 남우세스럽다. 마침내 조우한 연적의 두 남자가 담판을 짓기 위해 연희를 내버려둔 채 소주를 마시러 가는 장면은 가히 영혼의 빤스줄을 내린 지질한 한국 남자 전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홀로 남은 은희가 홀로 벤치에 앉아 하느님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라고 넋두리를 할 만큼 최악의 하루다. 6년 만에 내놓은 김종관 감독의 신작,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담백해졌다. 절제된 이미지들은 유려하게 이야기들 속에 스며들어 있고, 빛의 조탁 또한 탁월하다. 카페 벽면과 찻잔 테이블 위에까지 나뭇가지 그림자와 햇빛을 드리워 영화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는 디테일한 솜씨가 출중하다 못해 부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리숙한 세 청춘의 삼각관계를 묘사하는 데 그쳤다면 이 영화는 그저 이쁘장한 엽서들이 나열된 듯한 평이한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최악의 하루 >의 매력은 두 개의 후반 신부터 발산되기 시작한다.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와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 그리고 홀로 남겨진 은희의 독백. “왜 인물들을 위기에 넣고 꺼내주지 않나요?”라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료헤이는 자신이 쓰는 글은 그저 글을 뿐이고, 자신들이 아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답변하다. 그러나 정작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있나요?” 라는 질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대신, 그다음에 이어지는 신에서 은희는 마치 대꾸하듯이 이렇게 대답한다.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현실 속 인물과 영화 속 등장인물의 두 개의 속내가 포개지면서 돌연, 영화 속으로 감독의 자의식이 서서히 틈입한다. < 최악의 하루 >는 연애담이기도 하지만, 사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감독의 내밀한 고백이라는 걸 토로하는 순간이다. 은희와 료헤이가 남산의 밤길을 걷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마치 마법을 부려놓은 듯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영화 밖의 감독이 나란히 산책을 한다. 가을 밤빛이 나른히 부서지고, 료헤이의 이야기 속에서 뜨덤뜨덤 눈발이 내린다. 그 사이 손등을 스치듯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시적인 순간이다. 사랑을 하는 일이든, 영화를 만드는 일이든 사실 같은 여정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은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전 커피 좋아해요. 진하게....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 최악의 하루 >는 최악의 남자들을 만나 최악의 하루를 보낸 영화 속 은희의 각성의 이야기자, 료헤이로 은유 된 감독의 은밀한 각성의 고백이기도 하다. 왠지 이 고백이 설렌다. 김종관 감독은 다음에 더욱 반짝거리고 단단한 영화로 다가올 것만 같다.
밤이다. 낮이 지나면 오는 밤. 자정이 지나 전화기는 멈췄고 SNS도 조용하다. 행사가 끝난 밤이면 뒤풀이를 하고 있을 시간인데 행사가 없던 어제가 감사하다. 컴퓨터에게 미안하지만 또 한 번 다시 켠다. 언제 꺼질지 모를 불씨들을 언제 까먹을지 모를 생각들을 찾고 쓰고 저장하고 다시 확인한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다가, 팔자가 거 참 치사하다고 생각하다가 가능하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2010년 KT&G 상상마당에 입사하면서 시작한 독립영화와의 인연이 어느덧 만 5년이 넘었다. < 환상속의 그대 >를 시작으로 개봉을 앞둔 < 최악의 하루 >까지 15편이 넘는 작품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을 도왔다. 그 동안 꽤 많은 개봉영화에,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했고 영화 속 배우들에 대한 글을 격주로 맥스무비 온라인 뉴스에 송고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동시에 네이버 인디극장 선정위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어떻게 어떻게 해오고는 있지만 잘하고 있는지는 자신이 없다. 하루하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데 놓치는 것이 없나 노심초사하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기억하려고 애쓴다. 적어두었지만 눈앞에 놓고도 보이지 않는 글자들이 있고 생각했었지만 당장 또 떠오르지 않는 방법들을 찾아 헤맨다. 독립영화 마케팅이 상업영화와 무엇이 다르냐고 하면 쉽게는 돈의 크기라고 말하겠다. 기본적으로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개봉 과정에서 광고 비용을 집행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개봉에 있어서의 구분점이 아닐까 싶다. 극장 광고를 비롯해 온라인 광고, 버스 광고, 잡지 광고까지 ‘독립영화로 개봉’하는 작품들의 P&A(Print & Advertisement) 규모에서 광고 비용은 들어올 틈이 없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마케팅, 포스터 및 전단 디자인, 예고편 제작 등 3가지 영역의 비용을 집행하고 인쇄 비용을 챙기는 데만 해도 허리가 휜다. 거기에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VPF(디지털 영사기 사용료 Virtual Print Fee)와 배송비까지 더하면 늘어날 수 없는 예산안 문서가 백지수표였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작품들 중 P&A 규모가 가장 작았던 < 파스카 >와 < 달에 부는 바람 > 같은 경우에는 함께 일했던 파트너들의 도움 덕에 1천만 원이 조금 넘는 규모 안에서 작품을 개봉시킬 수 있었다. 물론 1천만 원이라는 비용으로 적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의 기간을 준비하는 작품들이니 사실 모두가 이 작품을 돈으로 보고 일 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생일’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한마음이었을 것이다. ‘생일’을 만들어준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 파스카 >의 경우 만들어진 지 햇수로 3년 만에 극장에서 개봉을 했다. 2015년 7월 이미 여러 차례 봤던 <파스카>의 극장 개봉일에 티켓을 사서 영화를 관람했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어두운 극장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파스카>의 개봉을 도왔던 안선경 감독의 제자와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브먼트의 작품들은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다시 말해 흥행선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작품들로 개봉을 한다는 이야기를 외부에 할 때마다 ‘힘들겠다’란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어왔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 파스카 > 역시 화면에 오롯이 드러나는 태아의 사체 장면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다. 그 장면에서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들도 있었다. 개봉을 준비하면서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15세 관람가 등급이 나왔고 걱정과는 다르게 관객들은 그 장면의 당위성에 대해서 공감했다. 아이가 태어나야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게 된다. 짐작했던 것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고 기대는 늘 배반당하고야 만다. 물론 기대하지 않았던 응원과 축복으로 아이는 세상에서 다시 자라난다. 영화라는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 파스카 >는 개봉이라는 생일을 통해 <파스카>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손에서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인디스페이스에서 독립영화 돌잔치를 통해 1년 만에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다시 만난 <파스카>의 안선경 감독님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돌잔치 라니요!”라면서 들떠 있던 안선경 감독은 개봉 후 1년 동안 새 영화 < 나의 연기 워크숍 >을 촬영했고 텀블벅을 통해 후반 작업비를 모았고 영화진흥위원회 개봉지원 신청서를 작성했다. < 파스카 > 개봉을 준비할 때보다 안선경 감독은 훨씬 더 밝아졌다. 여전히 어려운 시장이지만 함깨 개봉을 준비하면서 감독은 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의지가 단단해졌다. <파스카>는 천 명이 조금 넘는 관객들을 극장에서 만났지만 안선경 감독은 그 숫자보다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겠다는 마음을 얻으신 것 같아 기쁘다. 다시 영화를 만들고 관객과 만나야겠다는 마음은 아마도 <파스카>의 생일 이후였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 마케팅이 상업영화와 구분되는 지점이 돈의 크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하는 사람의 숫자에서도 차이가 생긴다. 전문적인 영역으로 쪼개진 스태프들의 역할이 요원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할 역할들이 많아진다. < 파스카 >와 현재 준비 중인 < 다른 길이 있다 >의 경우 안선경, 조창호 감독이 직접 예고편 제작에 나서서 비용을 줄였고 < 철원기행 >의 경우 김대환 감독이 직접 만든 포스터를 첫 번째 포스터로 공개했다. < 달에 부는 바람 > 역시 이승준 감독과 김민철 프로듀서는 물론이고 제작사 독에어의 오희정 님과 예고편 작업을 했던 유태인 실장과 포스터 작업을 했던 박현규 실장까지 영화 개봉에 대한 마음을 담은 글을 페이퍼에 기록했다. 무브먼트라는 독립영화컴퍼니를 만든 이후 영화의 보도자료와 전단을 통합합 페이퍼 형식의 홍보물을 만들어오고 있다. 접지형의 8페이지 인쇄물인 이 형식은 사실, 보도자료 디자인과 인쇄 비용에 전단 디자인과 인쇄 비용을 더한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생각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버리기 어려운 전단을 만들어 폐지가 돼버리는 극장 전단들의 안타까운 손실을 줄여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 거짓말 >을 개봉했을 때는 주연배우 김꽃비 와의 지면 인터뷰가 실렸고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때는 정한석 평론가와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 전문이 실렸다. < 홀리워킹데이 >와 < 최악의 하루 >에는 이희원 , 김종관 감독의 사진들과 제작기가 실렸다. < 프랑스 영화처럼 >에서는 신인배우 김다솜 과 정준원 의 첫 영화 도전기가 그들의 문장으로 담겼다. 독립영화라는 시장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 힘든 곳에서 일하는 것이 괜찮냐는 걱정들도 많이 듣는다. 시장이 어려워진다는 건 말뿐만은 아니다. 몸으로 느껴지는 어려움이다. 개봉관 상영 회차와 개봉일 관객 수를 확인하고 나면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고 허탈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할까라는 고민으로 애꿎은 담배만 피워댄 시간도 꽤 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왜 이 일을 계속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태어난 영화의 생일들을 챙겨주고 싶어서라고 말하겠다. 그 영화가, 그 감독이, 그 배우와 함께 만든 첫 번째 생일 이후 우리는 다 컸는데도 불구하고 또 같이 자라난다. 그리고 제작 현장에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개봉 현장에 함께 있었던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은 믿음이라는 걸 말로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큰돈을 벌지 않아도 유명한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상업영화 시장에 진출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기서 함께 가깝고 뜨겁게 영화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독립영화들의 생일 파티가 작고 반짝이는 불꽃처럼 여기저기서 치러지길 기대한다.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뛰어갈 돈과 마음을 매일 밤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