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
- 감독
- 조규장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박채익, 성홍일, 김건, 이창수, 최영환, 서문겸, 오우정
[사진]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촬영 현장에서 최은희와 신상옥 속눈썹이 긴 열여덟 살의 가출 최은희는 1926년 11월 20일 1 경기도 광주읍 초월면 묵고리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최영환은 구한말의 군인이었으나, 그가 태어난 지 20일 만에 서울로 이사한 후 우체국 직원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수줍음을 탄 그녀의 본명은 경순(慶順)이다. 속눈썹이 길고 눈이 큰 편인 그녀는 말이 없는 대신 고집이 세었다. 그녀의 집안은 자식의 공부를 위해 도시로 보낼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임지가 서울로 바뀌어 수구문 쪽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다행히 광희공립심상소학교(광희초등학교 전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소학교 때부터 유별난 데가 있었다. 극장 주변을 자주 기웃거렸고 공연 포스터를 보면 친구들에게 장차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런 그녀가 종로 6가에 있던 경성기예고등학교(京城技藝高)를 다니다가 그만 두고 방공 연습을 나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연극배우 문정복(배우 문정숙의 언니, 월북)의 소개로 마침 <칭기즈칸>을 준비 중인 극단 ‘아랑(阿狼)’(대표 황철)의 의상을 거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승낙 없는 결행이었다. 1943년 열 여덟 살 때였다. 선배들의 심부름이나 하며 시름을 달래던 그녀에게 기회가 온 것은 대전 공연 때였다. 문정복이 한번 해보라며 무대로 올려 세운 것이다. 비록 하녀라는 단역에 지나지 않았으나 극의 반전을 돕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날 공연한 작품이 ‘아랑’의 단골 레퍼토리인 신파극 <청춘극장>(임선규 작)이었다. 그 시대에는 연구생으로 들어가면 일단 선배의 화장가방부터 챙기는 일을 해야 했다 (최은희, 『고백』 ‘패기의 수업시대’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7, 38쪽). [사진] 극단 아랑 시절 최은희 그녀는 지방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해방 소식을 들었다. 일제의 패망으로 문화계가 정비에 들어간 가운데 토월회가 부활하자 그녀는 신극을 표방하는 이 극단에 참여했다. 이때 무성영화 시절의 복혜숙, 서월영과 일제강점기의 김소영, 김일해, 최운봉과 같은 배우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분들을 보자 영화에 대한 열망이 타올랐다. 어릴 때 우연히 친구 손에 끌려가서 본 문예봉 주연의 <임자 없는 나룻배>(1932, 이규환)의 몇 장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연극은 무대를 떠나는 순간 존재 가치가 없어지지만 스크린은 그 폭과 생명력에 있어 무한하지 않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영화계 진출이 당면 과제로 다가왔다. 이 무렵 토월회 연극에 함께 출연 했던 최운봉이 제 상대역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며 영화를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최은희는 이렇게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1947년)와 인연이 닿게 되었다. 험준한 길, 분단의 희생양 그녀가 이성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영화배우로 변신한 촬영기사 김학성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사귄 지 얼마 안 된 1947년 가을 서울 정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스물 한 살인 신부보다 열세 살이나 많은 서른세 살로 재혼이었다. 김학성은 무성 영화시대의 여배우 김연실(金蓮實, 납북)의 동생으로 일본의 메이지(明治)대학을 다니다가 복싱선수를 거쳐 영화 <성황당>(1939)의 카메라를 잡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6년 만에 파경을 맞고 말았다. 전쟁 때문이었다. 6·25 동란이 일어났을 때 서울 남산동에 살고 있던 이들은 미처 피난을 하지 못했다. 김학성은 마루 밑에 굴을 파고 숨었으나 최은희는 북한군에게 끌려가 위문공연을 강요당했다. 죽을 고비를 겪은 끝에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번에는 ‘부역’한 일로 국군에게 붙들려 조사받는 곤욕을 치렀다. 그녀는 종군 뉴스영화 촬영 중에 입은 중상으로 병상에 누운 남편을 간호하는 한편 광복동 ‘녹원(綠苑)다방’ 얼굴 마담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부산 피난 시절이었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이 신상옥이었다. 그들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은 극단 ‘신협’ 소속인 최은희가 무대에서 영양실조로 쓰러졌을 때 뛰어들어 병원으로 옮겨 준 데서 비롯되었다. 그 사건 이후 그들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유부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무명 영화인에게 그녀는 따뜻한 눈길로 화답했다. [사진] 1960년 경 최은희와 신상옥 부부 그사이 신상옥은 <악야>(1952)로 데뷔했다. 그리고 16밀리 문화영화 <코리아>(1954)에 그녀를 출연시켰다. 그녀는 주로 신필름의 영화에 무상으로 출연했지만 회사의 운영을 돕기 위해 다른 제작사의 영화에도 나갔다. 그의 출연작 1백 20여 편 가운데 30여 편을 제외하고는 자회사 작품이었다. 이 가운데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 세 편이 그녀가 연출한 작품이다. 그러나 1975년 오수미를 주연으로 기용한 <장미와 들개>의 예고편 ‘검열 위반’ 사건으로 신필름이 문을 닫게 되면서 신 감독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시작한다. [사진] <코리아>(1954)에서의 최은희와 김동원 결국 1976년 여름 신상옥과 23년의 부부생활을 청산하고, 경영이 부진한 안양영화예술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니던 78년 1월22일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되고 만다. 이런 사태 아래서 1983년 3월7일 김정일이 초대한 연회장에 갔다가 신상옥과 극적으로 재회, 그동안 소원했던 감정을 풀게 된다. 이후 <탈출기>(1981년), <소금>(1985년> 등 10여 편을 같이 만든 뒤 198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는 모험을 단행하고 1999년 10년이 넘는 미국 망명생활 끝에 영구 귀국길에 오른다. [사진] 최은희 신상옥 부부 납북 기사 [사진] 북한에서 연출한 영화 <소금>의 한 장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녀의 기구한 삶은 자신이 연기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분단 한국의 최대 희생자이자 황금기 한국영화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했던 최은희는 아흔 한 살에 이른 2018년 4월 16일 <어머니와 아들>(이유섭, 1976)의 출연을 끝으로 짧지 않은 투병생활 끝에 눈을 감았다. 1. 생년관련, 그동안 그녀의 생년월일에 대해 『한국연극무용영화사전』(예술원, 1985)과 『여성영화인 사전』(소도 발행, 2001)은 1928년 11월 20일 생으로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최은희는 자전적 저술인 『고백』(랜덤하우스 코리아, 2007)에서 1930년 생으로 기재, 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1913년생인 김학성에 대해 “나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사람” (51쪽)이라고 했으니 1926년이 맞다.
2001년 | 마술피리 감독, 시나리오: 정재은 | 제작: 오기민 | 촬영: 최영환 | 프로덕션 디자인: 김진철 | 음악: 조성우 CAST 태희: 배두나 | 혜주: 이요원 | 지영: 옥지영 | 비류: 이은실 | 온조: 이은주 2000년대 초 한국영화를 꼼꼼히 살펴보면, 의외의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여기서 ‘의외’라는 건 산업적인 의미입니다. 요즘 같으면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 안에서 제작될 법한 아이템이 메인 스트림 안에서도 제작되곤 했다는 거죠. < 고양이를 부탁해 >가 그렇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섯 명의 ‘스무 살 여성’들이 세상과 맞닥트리는 이야기. < 여고괴담 >(박기형, 1998)의 오기민 프로듀서가 설립한 ‘마술피리’의 창립작인 이 영화는 당시 충무로 규모 있는 투자사 중 한 곳인 아이픽쳐스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고, 메이저였던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을 맡았던 작품입니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2001년 3월의 어느 날, <고양이를 부탁해> 촬영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인천 월미도. 태희와 혜주와 지영과 쌍둥이 자매인 비류와 온조. 다섯 친구가 오랜만에 모이는 장면이죠. 버스를 타고 월미도에서 동대문 의류 상가로 이동하는 그들. 하지만 마침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 앞에서 친구들은 옷깃을 꼭 여며야 했는데요, 그 바람은 마치 이 청춘들이 장차 겪게 될 현실이라는 거센 바람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그 바람은 실제는 아니었습니다. 대형 강풍기가 만들어내는 바람 앞에서 배우들은 ‘바람 맞는 연기’를 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정재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입니다. 영상원 출신인 그는 < 도형일기 >(1997) < 둘의 밤 >(1999) 등의 단편으로 각광 받았고,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민규동, 1999)의 스크립터로 충무로에 진입한 지 2년 만에 자신의 장편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제작자인 오기민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프로듀서이기도 했죠.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의 여성 감독은 흔하지 않았죠. 그런 이유로 정재은 감독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현장의 고유한 분위기는, 모니터 확인 시간입니다. 감독과 주연배우 다섯 명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모니터 앞에서 친구들이 옹기종기 친구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매우 정다웠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정재은 감독에게만 첫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최영환 촬영감독에게 <고양이를 부탁해>는 오롯이 혼자 촬영을 책임져야 하는 첫 영화였습니다. 역시 감독처럼 30대 초반의 나이였는데요, 이후 최영환 촬영감독은 < 피도 눈물도 없이 >(류승완, 2002) < 범죄의 재구성 >(최동훈, 2004) < 타짜 >(최동훈, 2006) < 세븐 데이즈 >(원신연, 2007) < 전우치 >(최동훈, 2009) < 베를린 >(류승완, 2012) < 도둑들 >(최동훈, 2012) < 국제시장 >(윤제균, 2014) < 베테랑 >(류승완, 2014) <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2016) 등의 카메라를 잡습니다.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인천 월미도까지 온 혜주(이요원)은 쌍둥이 자매인 비류(이은실)와 온조(이은주)를 발견합니다. 인형 뽑기에 빠져 있는 자매. 이미 적잖은 인형을 뽑았는데요, 이 장면을 위해 마련한 소품이 아니라 진짜로 뽑은 거라고 하네요. 이재용 감독의 < 순애보 >(2000)에서도 역시 쌍둥이 자매로 데뷔한 이은실, 이은주 자매는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혜주는 오랜만에 만난 지영(옥지영)에게 염색이 촌스럽다며, 집에서 혼자 한 거 아니냐며, 타박을 합니다. 배가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 때문에 촬영은 잠깐씩 중단되곤 했습니다. 드디어 약속 장소에 다섯 명의 친구가 다 모였습니다. 한편 <고양이를 부탁해> 현장이 조금 독특했던 건, 한국영화 최초로 전문 조감독제가 도입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도제 시스템에선 조감독은 감독으로 가기 위한 통로이고, 연출부에서도 퍼스트, 세컨드, 써드 등으로 위계가 형성되어 있죠. 하지만 전문 조감독은 감독에 종속된 직책이 아닙니다. 감독과 수평적 입장에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지금은 ‘옥고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옥지영에게 <고양이를 부탁해>는 첫 영화였습니다. 패션 모델 출신인 그녀는, 자신의 실제 이름과 같은 ‘지영’이라는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했죠. 이 영화로 배두나, 이요원과 함께 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배두나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한창 주목 받던 라이징 청춘 스타였습니다. 2000년 봉준호 감독의 < 플란다스의 개 >로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던 그녀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통해 한 뼘 더 캐릭터의 영역을 넓혔죠. 특유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순수하고 꿈꾸는 듯한 이미지가 황금비율로 섞인 캐릭터가 바로 ‘태희’였습니다. 배두나는 이 캐릭터로 백상예술대상과 춘사영화제와 부산 영평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요원이 영화에 안착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녀가 받았던 네 개의 영화상, 즉 백상예술대상과 디렉터스컷 시상식과 청룡영화상의 신인여우상, 그리고 춘사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은 모두 <고양이를 부탁해> 덕분이었습니다. 호기심 많고 꿈 많은 태희(배두나), 현실적인 혜주, 약간은 어둡고 세상에 냉소적인 지영, 굳건한 자매애로 알콩달콩 살아가는 비류와 온조.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 다섯 친구가 세상과 드디어 대면하는, 바로 그 시간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주성철(이하 ‘주’) 첫 질문은 배우 원진 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영화에서 원진은 청량리역 지하보도에서 과격한 액션도 선보이고, 그동안 잘 관리한 상체도 드러내고, 벽 찍고 돌고. 예전에 예광했던 원진의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라는 느낌이 왔다. < 용의자 >는 이 배우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만족시킨 것 같다. 원신연 (이하 ‘원’) 사실 공유 는 워낙 팬이 많고, 김성균 이 최근 <응답하라 1994>로 인기가 많아져 관객들이 이 둘의 격투 액션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용의자> 개봉 후 무대인 사를 다니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지동철(공유)과 SA1( 원진 )의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 솔직히 액션의 퀄리티로 만 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촬영 당시 추운 겨울이었고, 청량리역에서 촬영할 때에는 장소 섭외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다보니 일반인 통제도 어려웠다. 3분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이들이 지나갈 때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섭외한 엑스트라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나왔다.(웃음) 이런 상황이다보니 액션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액션을 액션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원진 이 맡았던 SA1 캐릭터의 변화에 대해 많은 반응을 하더라. 과거에는 아크로바틱 액션이 많았는데 현대물에서 소위 ‘고전적인’ 액션이 등장하니 그게 관객들 인상에 깊이 남은 것 같다. 더군다나 와이셔츠가 찢어지면서 몸이 드러나는데, 얼굴은 50대 중반이지만 몸은 공유 와 비슷하니(웃음) 그게 강렬했던 것 같다. 주 < 용의자 >의 액션 신만 놓고 봐도 이 배역을 탐낼 만한 다른 배우도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과거 액션 스타를 기용한 것은 감독의 이 영화에 대한 의지 혹은 열정이 보이는 부분이다. 원진 을 캐스팅한 것 하나만으로도 감독이 이 영화를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원 사실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원진 은 나에게 영웅이다. 이분은 여전히 액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분이다. 나는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계속 같이 작업하고 싶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액션배우라서 액션으로만 소비되는게 아니라 배우로서 같이 영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더라. 상업영화의 시스템에서 보면 사실 ‘이 사람이 과연 연기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이 정도 비중의 배역이라면 기존의 배우를 캐스팅하는게 좋지 않을까?’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감독 입장에서 관객으로부터 잊힌 배우를 기용하는 것에 대한 논리를 만들어 설득해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과거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액션 주역들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재미를 넘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게 나와 같은 감독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유창국 과 원진 은 액션의 대가였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분들에게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드라마를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도전하고 싶다. 무술감독 원신연 vs 영화감독 원신연 주 감독 이전에 액션 배우, 무술감독의 경력이 있다. 이런 경력으로 미루어 이전에 작업한 < 구타유발자들 >이나 < 세븐데이즈 >보다 앞서 이 영화가 감독의 데뷔작으로 하고 싶었던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원 반대다. 사실 < 용의자 >를 연출하는 것도 아직 이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1990년 중반에 무술감독을 시작해 < 테러리스트 > 등 몇 편의 영화에서 무술 지도와 대역을 했다. 사실 먹고살기 위해서도 했지만 액션을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 조폭마누라 >( 조진규 , 2001)의 무술감독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단편 < 세탁기 >(2001)를 준비할 때였다. <조폭마누라>에 참여하면 경제적으로 분명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빚을 내어 단편을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당시 연출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액션을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라마 요소가 강한 영화로 감독 제안도 많이 들어왔지만 상업영화로는 < 가발 >(2005)로 데뷔했다. 그리고 < 세븐데이즈 >(2007)와 <용의자>(2013)까지 만들게 되었다. 액션이라는 장르는 여전히 나에게 보물창고이고 욕망이다. 그리고 현재 시류와는 안 맞더라도 기술적 요소만 강조된 액션, 디지털 기술로 표현되는 액션보다 몸으로 소화하는 액션을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가 < 용의자 >의 시나리오를 받았고, 액션이 주가 되지만 그 안에서 드라마를 보았기 때문에 연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동철뿐 아니라 민대령( 박희순 )과 김실장( 조성하 ) 캐릭터의 감정도 관객들에게 표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잘 봐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주 < 조폭마누라 >를 거절하고 단편영화에 투신한 것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결국 연출가라는 꿈을 추구한 것이다. 원 그렇다. < 테러리스트 > 무술지도를 하면서 정두홍 감독과 처음 만났다. 그때 정두홍 감독이 나에게 “우리 액션의 길로 멋지게 가보자.”고 했는데 나는 거절했다.(웃음) 만약 내가 그때 정두홍 감독과 함께 액션을 계속했다면 나도 지금 경기도 어딘가에 집 한 채 장만했을 것이다.(웃음) 쌀도 임금님표 쌀 먹고 있을 것이다.(일동 웃음) 하지만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즐거움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직업이라기보다 나의 삶 자체인 것 같다. 주 < 세븐데이즈 >의 김윤진 , < 용의자 >의 공유 의 캐릭터는 일종의 워커홀릭이다. 그리고 <용의자> 초반에 등장하는 항공촬영이나 영화 전반에서 보여주는 도심 액션을 보면 이전 영화에 비해 액션의 강도가 무척 높다. 개인적으로 ‘촉감이 느껴지는’ 액션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렇게 영화 속 캐릭터, 그리고 영화자체를 봐도 감독의 집요함, 전투성이 느껴진다. 개인적 성향과 유사한 면이 있나? 원 나의 개인적 성향이나 욕구가 장르를 통해 발현되는 것 같다. 감독이라는 직업은 평소 한없이 게으를 수 있지만 작업에 들어가면 그 순간만큼은 최대한 몰입해야 하는 직업이다. 나는 영화말고 다른 유희가 없다. 오늘도 여기(영상자료원) 오면서 영감을 얻기 위해 OST를 들으면서 왔다. 이게 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꼭 이런 성격이 꼭 장점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성격은 아마도 제도권 내에서 영화를 정식적으로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이 아닐까 한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열등의식은 없는데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있다. 이런 성격이 영화를 만드는 데 직간접적으로 표현되는 게 아닌가 싶다. 주변 사람들이 좀 쉬면서 작업하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너무 숨 가쁘게 달리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더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용의자 >의 등장인물을 말하다 주 캐릭터 얘기를 해보자. 최근 < 용의자 >를 전후로 ‘북에서 내려온 과묵하고 초인 같은 남자’ 캐릭터가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 베를린 >이 그렇다. 그리고 < 은밀하게, 위대하게 >처럼 다양한 양상으로도 퍼졌다. <용의자>의 지동철은 그중에서도 가장 과묵한 남자다. 이 남자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원 지동철의 대사를 다 합쳐보면 A4 두 장이 채 안 된다. 그래도 지동철의 대사를 더 줄였어야 했다.(웃음) 영화를 만들면서 도전을 받을 때가 많다.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한국영화들은 너무 설명적이란 느낌이 든다. 관객 중심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긴 하지만 관객이 생각할 틈이 없이 너무 떠 먹여준다는 인상을 준다. 스토리나 이야기 구성은 관객들에게 친절할 수 있다 쳐도 극중 캐릭터의 감정까지 그렇게 친절히 설명해야 하나 생각한다. 과묵하고 말 없는 지동철을 통해서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눈빛 하나로 관객이 더 궁금해하고, 그러면서 관객이 더 몰입하고 이해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대사보다는 표정,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더 많이 잡고 싶었다. 주 < 용의자 >는 지동철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간다. 그리고 극중에 나오는 기자 선후배, 최경희( 유다인 )와 주 기자( 김민재 )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주 기자는 자신이 기자의 사명감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서서히 자아를 찾아가는 캐릭터다. 주 기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를 암시한 것인가?(웃음) 그리고 극중 기자라는 직업을 그렇게 그린 데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있나? 원 난 <씨네21> 정기구독자다.(웃음) 얼마 전 <씨네21> 기획특집 ‘기레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봤다. 그리고 최근 에스콰이어의 신기주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들이 현재 기자의 세계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더라. 영화에는 그냥 ‘주 기자’로 나왔지만 영화에서 이 기자의 본명은 주진웅이다. 하지만 (물론 그러시지 않겠지만)자신의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할 수도 있고, 관객의 몰입도도 떨어질 수 있어서 그냥 ‘주기자’로 표현했다. 아무튼 영화에서 난 사회의 문제와 이슈를 펜으로 표현하는 기자에 대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주진우 기자의 책은 물론 기자들이 쓴 책을 많이 읽으며 기자에 대해 공부했다. 사실 극 중 주 기자보다 최경희(유다인)의 캐릭터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기자상에 더 가깝다. 지금와서 밝히지만 최경희의 핵심 대사가 있었다. 사실 유다인 씨가 이 한 문장의 대사에 애착을 갖고 영화에 참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지보다 높지 않고, 대통령보다 낮지 않은 게 거지다. 씨발!”이다. 결국 이 대사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강도보다 세서 빠지게 되었지만 이런 성격을 가진 최경희가 내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기자다. < 용의자 > vs <본 시리즈> 주 < 용의자 >를 <본 시리즈>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원 한국 관객들이 한국영화에 박한 면이 있다. 하지만 어떤 특정 영화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배려심이 깊다. 이를테면 < 도둑들 >을 보면서 <오션스 시리즈>를 깊게 얘기하진 않잖나? 사실 < 용의자 >가 <본 시리즈>를 표절했다고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독립 다양성 영화가 아니고 상업영화 시스템 내에서 제작되는 영화라면 <본 시리즈>뿐 아니라 유사한 장르의 영화에 등장하는 흥행 요소들을 배치해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게 일종의 협의사항이다. <용의자>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6개월 동안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했다. 수정하면서 주인공의 감정, 정서를 많이 강조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감독이 생각하는 대로 수정 하다보니 ‘이 프로젝트(<용의자> 제작)가 무산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최초 시나리오의 톤앤매너를 바꿀 순 없었다. 한국의 대중은 이런 속사정을 모르니 어찌보면 <본 시리즈>와 비교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어쩔 수 없었던 부분들도 있지만 앞으로 소재적으로나 장르적으로 관객들에게 좀 더 충격을 줄 수 있는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 추격 신의 경우 어떤 면에서는 <본 시리즈> 이상이라 생각했다. 기존의 한국영화 액션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도 많이 나온다. 원 시각적 요소를 위해 준비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결론적으로 <본 시리즈>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성을 했다. 유사한 것을 인정한다기보다 오히려 <본 시리즈> 뿐 아니라 기존의 영화들과 차별되는 전혀 새로운 것에 대해 더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만약 <용의자2>를 만든다면 드라마가 중심이 된 액션이 될 것 같다. 액션으로만 < 용의자 >를 봤을 때 화두는 ‘액션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였다. 대부분 제작 환경이 디지털로 변했는데 그렇게 촬영한다면 실감이 안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수소문을 해보니 액션을 실감 나게 촬영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분이 많았다. 다만 이분들이 그 동안 영화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산적인 부분에서의 합의도 잘 이루어졌다. 향후 액션영화에도 많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원신연 이 바라보는 액션영화, 그리고 액션배우 주 < 용의자 >에는 이 영화의 무술감독인 오세운 감독이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무술지도나 액션 경험이 많은 감독으로서 무술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원 지금도 오세운 감독과 만나면 많이 싸운다.(웃음) 나도 촬영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고, 무술감독도 나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무술감독의 역할에 비해 대우를 제대로 못 받는 실정이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다양한 장기를 펼칠 수 있는 충분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그런 시나리오가 없다. 그리고 그런 시나리오가 있어서 영화화가 된다해도 그에 맞는 금전적 보상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합리한 부분이 많다. 이것은 상업영화 시스템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무술감독들도 평소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연출자가 요구를 듣고 현장에서 그 외에 3~4개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만큼 자신감과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주 개인적으로 국내 무술영화의 < 어벤져스 >라고 할 수 있는, 무술 대가들이 대거 참여한 액션영화를 언젠가 꼭 보고 싶다. < 자장가 >( 원신연 , 2002)에 나오는 권성영 무술감독은 마스크도 훌륭하다. 정두홍 , 원진 … 모두가 출연하는 그런 영화 말이다. 원 정두홍 감독이나 오세영 감독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류승완 감독도 그런 욕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기에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제도권 내에서 타협해서 장르영화를 만들기보다 무술 대가들이 그들의 재능을 내세워 자유분방하게 영화에서 표현되게 하려면 내가, 다시 말해 감독의 힘이 강해지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언젠가 결과(흥행)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그런 영화를 꼭 한 번 만들고 싶다. (‘주’ 언젠가 꼭 만드신다니… < 어벤져스 >가 아니라 < 익스펜더블 >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일동 웃음)) 얼마 전 < 세븐데이즈 >의 최영환 촬영감독이 자료를 찾다가 <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 >( 신우철 , 1989)을 봤는데, 거기서 대역을 했던 나를 보고 전화를 했더라. “왜 살짝 스쳤는데 두 번 돌아서 화려하게 넘어지냐!”며 면박을 주더라.(웃음) (‘주’ 그 영화는 유창국 과 원진 의 대결을 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영화다.(일동 웃음)) 이 얘기를 한 이유는 그 만큼 여러 감독이 액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 용의자 >, 그 이후… 주 < 용의자 > 개봉 후 6개월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원 꼭 < 용의자 >만의 얘긴 아니다. 감독에게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작품을 만들수록 제작 환경은 안 좋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억압이 커진 달까? 작품을 판단하고 검토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이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감독은 누구나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영화 시스템과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용의자>는 조금 불만족스러웠다. 결국 상업영화 논리에 많은 부분 양보했지만 더 많은 대중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반성하는 중이다. 주 < 용의자 > 엔딩이 속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원 속편은 사실 < 용의자 >를 시작하기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감독이 아무리 준비되었다 해도 시나리오 등 탄탄한 설계가 중요하다. 속편에 대한 욕심도 크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다른 감독이 <용의자> 속편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용의자>가 프렌차이즈가 되는 것은 반대한다. 아무튼 <용의자> 이후 지동철을 계속 따라가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과연 지동철은 딸이라는 것을 확인했을까? 이후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욕구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