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늬
- 감독
- 최정화
- 제작년도
- 2007
2002년 | 스튜디오박스 감독: 박찬욱 | 각본: 박찬욱 이무영 이재순 이종용 | 제작: 임진규 | 촬영: 김병일 | 미술: 오상만 오재원 최정화 | 음악: 어어부 프로젝트 CAST 동진: 송강호 | 류: 신하균 | 영미: 배두나 | 류 누나: 임지은 | 유선: 한보배 < 복수는 나의 것 >은 촬영 초반부와 후반부, 두 번에 걸쳐 현장 공개를 했습니다. 버티고개역에서 이뤄진 첫 번째 공개 신이 다소 밋밋했다면, 두 번째는 전혀 달랐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대목이었는데요, 바로 동진(송강호)이 류(신하균)를 물 속에서 죽이는 장면입니다. 적잖이 추운 날씨에 차가운 물 속에서 배우들이 큰 고생을 했던 신이었죠.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의 섬진강 부근. < 남부군 >( 정지영 , 1990) < 아름다운 시절 >( 이광모 , 1998)이 촬영되기도 했던 이곳은 <복수는 나의 곳>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입니다. 류와 류의 누나(임지은)의 추억이 깃든 곳이며, 류가 죽은 누나를 묻은 곳이며, 동진의 딸 유선(한보배)이 죽은 곳이며, 결국 류가 동진에게 죽게 되는 곳이죠. 액션의 대부분이 물 속에서 이뤄지는 바람에 그 준비와 진행이 쉽지 않았습니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이 말과 함께 동진은 류의 목숨을 끊습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류를 끌고 물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이후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가 됩니다. 격한 연기 도중 송강호는 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지만, 그대로 촬영을 강행했습니다. 물에서 나온 배우들의 모습입니다. 난방 기구로 체온을 유지하지만, 곧 다시 물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박찬욱 감독이 “쉬었다 갈까, 그냥 갈까?”라고 묻자, 두 사람은 입을 모아 “그냥 가시죠”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었지만, 배두나가 현장을 찾았습니다. 류는 말을 못하고 동진도 거의 대사가 없는 상황에서, <복수는 나의 것>의 대사는 대부분 배두나가 맡아야 했는데요, “연기 가운데 대사에 제일 자신 없다”는 그녀는 “영화의 흐름을 깨지나 않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자신의 촬영이 모두 끝난 상황에서 편한 마음으로 방문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만난 신하균과 배두나는 연인이 되었죠. 당시 두 사람은 충무로에서 가장 촉망 받는 배우들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스크린>과의 인터뷰에서 배두나는 “배우라는 연대 의식이 서로를 가깝게 만들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균 오빠랑 둘이 있을 때 가끔 그런 이야기도 해요. 작년엔 유망주 1위로 꼽혔는데 올해엔 가장 과대 평가 받은 배우 1위로 뽑히면 어쩌냐고. 어쨌든 연기력을 인정 받았고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을 얻어서 기분 좋아요. 호평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고요.” 힘든 촬영이었지만 모니터링을 하는 감독과 배우의 표정은 밝습니다. 하지만 처음 <복수는 나의 것>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당황했어요. 표현이 ‘세다’고 생각했죠. 변칙적이고 냉소적인 가운데 리얼리즘의 확장을 추구한다고 생각했던 박 감독님의 작품 세계가 내 기준치보다 한층 더 세게 올라가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고 더욱 매력적이었죠.” 이날 현장엔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습니다. 게다가 신하균을 응원하는 팬들이 플래카드를 만들어 오기도 했죠. 박찬욱 감독은 “새로운 형식적 시도가 관객들에게 낯설 수 있다”며, “표현이나 감정의 과잉을 억제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강호가 물에 젖어야 하거든, 그러니까 머리까지 잠기게 푹 들어갔다 나와.” 감독의 주문에 배우들은 얼음장 같은 강물을 흠뻑 뒤집어씁니다. 얇은 바지를 입고 손발이 묶인 채 물 속에서 끌려가는 신하균 역시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현장에 배우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집니다. 막바지여서 그런지 한결 여유로워진 현장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류가 수화와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는 신하균은 몸무게가 부쩍 줄어 눈매가 더 깊어졌습니다. 송강호 역시 <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때보다 10킬로그램 몸무게가 줄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누구일까요? 류의 누나와 류의 어린 시절 역을 맡은 아역배우 정나예와 한성진입니다. 이 날은 이 두 아이들의 촬영도 있었습니다만… 영화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어떤 장면들이었을까요?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지는 대목입니다.
2002년 | 스튜디오박스 감독: 박찬욱 | 각본: 박찬욱 이무영 이재순 이종용 | 제작: 임진규 | 촬영: 김병일 | 미술: 오상만 오재원 최정화 | 음악: 어어부 프로젝트 CAST 동진: 송강호 | 류: 신하균 | 영미: 배두나 | 류 누나: 임지은 | 유선: 한보배 박찬욱 감독의 이른바 ‘복수 3부작’은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 복수는 나의 것 >(2002) < 올드보이 >(2003) 그리고 < 친절한 금자씨 >(2005)가 이어지면서, 마치 사후평가처럼 3부작이 완성되었죠. 그렇다면 <복수의 나의 것>은 그 시작인 셈인데요, 혹자는 3부작 중에, 혹은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서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 공동경비구역 JSA >(2000)의 큰 성공 이후 작품이라, 제작 전부터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관심은 매우 컸는데요, 제작 발표회와 두 번에 걸친 현장 공개엔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습니다. 제작 발표회는 2001년 7월 24일에 열렸습니다. 장소는 종각의 국세청빌딩. 영화 제작 발표회가 열리는 공간으로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곳이었는데요, 천장이 높기에 다소 소리의 울림이 있긴 했지만 나름 신선했습니다. 이날 ‘하드보일드’라는 장르 컨셉트가 공개되었고요. 기자 간담회에서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가 감정이 풍부한 영화였다면, 이번엔 반대로 건조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왼쪽부터 박찬욱 감독, 신하균과 배두나, 그리고 아역 한보배를 안고 있는 송강호입니다. 한보배는 이 영화로 데뷔해 최근까지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중인데요,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꼬마가 이젠 20대 중반의 숙녀가 되었습니다. 제작 발표회 3주 후에 첫 촬영 현장 공개가 이뤄졌습니다. 공개된 장면은 거의 첫 촬영에 해당하는 지하철 역 장면. 버티고개역에서 이뤄졌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엔 대사 없는 신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 장면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동진(송강호)의 딸인 유선(한보배)을 유괴한 류(신하균)와 영미(배두나)는 몸값을 요구합니다. 이에 동진은 돈 가방을 들고 유괴범의 지령에 따르는데요, 영미는 조심스럽게 동진의 뒤를 밟습니다. 초췌한 모습의 동진입니다. 이 신의 차가운 그린 톤은 지하철 역의 형광등 80개를 갈아 끼워 만들어낸 톤이었습니다. 김병일 촬영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이 첫 작품이었습니다. 20대 초반인 1985년에 촬영 쪽 일을 시작한 그는 199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2000년까지 외국에서 광고와 다큐멘터리 등에서 일했는데요, 충무로에서 ‘촬영감독’이라는 직함을 단 첫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며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촬영상을 수상합니다. 이후 < 중독 >( 박영훈 , 2002)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이재용 , 2003) 등의 카메라를 잡았습니다. “<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2000)와 <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는 ‘내가 아니면 안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했던 작품이고, <복수는 나의 것>은 ‘나한테 이 작품이 온 게 천만 다행이야’라는 고마움을 느꼈던 작품이에요.” 배두나의 필모그래피에서 <복수는 나의 것>의 영미는 어떤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었는데요, 이 영화를 통해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급속도로 확장되었죠. 첫 촬영인 만큼 현장의 긴장감은 꽤 강도가 높았습니다.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송강호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박찬욱 감독도 마찬가지고요. 이날은 자신의 분량이 없었음에도 신하균이 현장을 찾았는데요, 신하균과 송강호는 무려 네 편의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그 시작은 <공동경비구역 JSA>였고요,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친절한 금자씨>에서 짝을 이뤄 카메오 출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박쥐>(2009)에서도 공연했죠. 하지만 가장 강렬하게 부딪혔던 작품은 <복수는 나의 것>이었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배두나와 박찬욱 감독이 현장에서 파안대소하고 있는데요, 이 순간을 사진기자들이 놓치지 않습니다.
1980년대 충무로의 가장 독특한 발명품이라면 아동용 SF 액션 영화일 것이다. ‘연소자’ 관객층을 위한 영화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1970년대 < 로보트 태권 V >( 김청기 , 1976)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로봇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에도 꾸준히 제작되었고, < 하늘나라 엄마 별이 >( 이영우 , 1981)나 < 저 하늘에도 슬픔이 >( 김수용 , 1984) 같은 신파 가족 영화도 명맥을 이었다. 이때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김청기, 1986)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시작된 아동용 SF 액션 장르 영화들은, 사실 수많은 요소들의 기묘한 혼합이었다. 일단 애니메이션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당대의 아동용 SF는 장르적 시도이었을까, 아니면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SF 액션을 만들다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 채운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에 일본 특촬물의 콘셉트를 결합시킨 것일까. 후자 쪽에 좀 더 기울긴 하지만, 아무튼 그 결과물은 실사 촬영과 조잡한 그래픽, 애니메이션과 초보적인 미니어처 촬영과 심하게 티 나는 합성 장면이 뒤엉킨, 가히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1. 하늘을 나는 에스퍼맨. 한국영화의 대표적 슈퍼히어로다. 2. 우뢰매 로봇의 위용. 3. 박사 캐릭터는 < 우뢰매 > 시리즈를 비롯 이 장르의 빠지지 않는 캐릭터다. 엄용수는 <우뢰매> 시리즈와 < 흑성마왕과 슈퍼왕자 >( 박옥상 , 1987)에 박사로 등장한다. 참고로 그는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4. < 우뢰매 > 시리즈의 보미는 당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던 ‘국민 누나’였다. 걸 그룹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의 멤버인 우윤아 가 역할을 맡았다. 내러티브 부분엔 < E.T .>(스티븐 스필버그, 1982)의 개봉과 TV 시리즈 <브이>(1985) 방영 이후 불기 시작한 ‘외계인 열풍’이 가세했다. 1980년대는 UFO나 외계인이 비로소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한 시기인데, 아동용 SF는 그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7~8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한국형 SF는 죄다 외계인이 등장했다. 스토리 라인 역시 천편일률적이었는데,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은하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온다. 2-1. 그들은 지구의 그 무엇을 가져가려고 온 침략자이다. 2-2. 그들은 사정이 있어 지구에 불시착한 망명객이다. 이때 외계의 악당들이 따라온다. 3. 지구의 슈퍼히어로가 외계의 악당을 제압한다. 4. 괴짜 과학자와 용감한 아이들이 가세한다. 2-2의 경우, 외계인과 아이들 사이엔 우정이 싹튼다. 5-1.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지구를 지켰다. 5-2. 지구를 지켰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의 슬픈 이별이 이어진다. 이외에도 다양한 영향력이 있었다. SF라곤 하지만 히어로와 악당의 대결 콘셉트는 무협 영화에서 왔다. 그들은 외계가 아니라 마치 소림사에서 온 듯했고, 각종 권법을 구사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생경한 광경이었다. 여기에 슬랩스틱 코미디가 결합되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심형래의 영향이었다. 당시 설문조사를 하면 아이들 사이에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동급이었던 심형래 의 인기는, < 우뢰매 > 시리즈 탄생의 중요한 토대였다. 그의 장기는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는 몸 개그. 심형태의 성공 이후, ‘뽀식이’ 이용식 , ‘밥풀떼기’ 김정식 , ‘공포의 삼겹살’ 김형곤 , ‘맹구’ 이창훈 그리고 ‘호랑나비’ 김흥국까지, 아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연예인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개그맨이 조연과 악당으로 활약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완구 업체였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시리즈의 뽀빠이 과학, < 은하에서 온 별똥 동자 > 시리즈의 건양 과학 교재사, < 스파크맨 >( 김경식 , 1988)의 삼성 교재 완구사, < 우주의 용사 반달 가면 >( 임정호 , 1991)의 정일 과학 등 제작비는 영화를 통해 완구 판매를 노리는 업체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이런 물적 토대는 이 영화들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다. 일설에 의하면, 장난감을 만드는 금형을 일본에서 들여왔기에 ‘어쩔 수 없이’ 영화 캐릭터도 일본 것을 베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우뢰매부터 시작해 수많은 로봇과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표절 시비에 시달렸던 건 그런 이유인데, 아무튼 완구 업체의 전략은 적중했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다. 영화와 장난감이 결합된, 한국영화 최초의 본격적 부가 시장 탄생이었던 셈이다. < 우뢰매 > 시리즈가 나왔던 1986~93년 동안 등장했던 아동용 프랜차이즈들. SF 이외의 장르도 포함시켰다. 당시 이 프랜차이즈들은 1년에 두 편씩(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내놓기도 했다. 1. 영원한 ‘데일리’ 천은경. <우뢰매> 시리즈 1, 3, 4, 8편에 출연했다. 2. 5편의 ‘데일리’였던 이혜진 . 3. 1987년 3편에 외계인 ‘삐용’으로 등장한 강리나 . 이후 그녀는 섹시 스타로 부상한다. 당시 천은경 , 이혜진 , 강리나를 비롯 <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3 >( 석도원 , 1988)의 우연희 , < 바이오맨 >의 신미아 , <우뢰매> 6편의 데일리였던 김종아 등은 성인용 영화와 아동용 영화를 겸업했다. 석도원, 방순덕 , 조명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4. <우뢰매> 시리즈 최고의 파격 캐스팅이었던 7편 < 돌아온 우뢰매 >( 임종호 , 1992)의 이봉걸 . ‘인간 기중기’였던 씨름 선수 이봉걸은 외계인 ‘마주기’로 등장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흐름을 살펴보면 일단 1986년 < 외계에서 온 우뢰매 >의 시작이다. 1980~85년에 약 30편 정도 장편 애니메이션이 극장 개봉을 했는데, <외계에서 온 우뢰매>가 등장하면서 아동 영화 시장은 실사 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1986~89년에 애니메이션은 대여섯 편에 불과했다). 공식 기록은 서울 개봉관 관객 5,527명이지만, 이 영화는 ‘상영이 가능한’ 전국 각지의 수많은 공간에서 공개된, 풍문에 의하면 100만 명 이상이 보았다는 영화였다. 이처럼 1980년대 아동용 SF는 기록 이상의 위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10세 이하 어린이 시장에선 절대적인 콘텐츠였다. 그 힘은 비디오 대여점 시장까지 이어졌는데 1990년 전후 시기엔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은 OVA 마켓이 형성된다. 여기서 <반달가면> 시리즈는 흥미로운 사례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가지만, < 반달가면 >은 역주행을 했던 것. 1~2편인 <전설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0)과 <신비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1)은 비디오 영화였지만, 3편인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임종호, 1991)은 극장용으로 제작되었다(이후 다시 비디오로 돌아가 6편까지 제작되었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가 포문을 열자 봇물이 터졌고, 한국영화는 비로소 장르 프랜차이즈의 시대가 열렸다. 어른들을 위해 < 애마부인 >과 < 산딸기 > 시리즈가 있었다면, 아이들을 위해선 <우뢰매>와 <영구> 시리즈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심형래 는 수많은 프랜차이즈의 조상이 되는데, <우뢰매> 시리즈를 비롯 SF 장르를 벗어난 < 슈퍼 홍길동 >과 < 영구와 땡칠이 > 시리즈가 그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제작자 겸 감독이 된 그는, 이후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수많은 구설에 오르는 영욕의 세월을 보내지만, 1980년대로 한정할 때 한국영화에서 ‘심형래’라는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부실한 퀄리티로 ‘애들 코 묻은 돈’을 가져간다는 비난이 따라다녔지만, 이건 철저히 어른의 시각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당대 ‘심형래 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였다. 1. <별똥왕자> 시리즈의 이건주 .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의 아역들은 아동용 SF 액션의 단골 배우였는데 ‘순돌이’ 이건주를 비롯, 최정화 송정림 이종민 등이 있다. 2. <우뢰매> 6편에 오면 파워 슈트가 등장한다. 3. 당시로선 ‘고퀄’이었던 < 스파크맨 >. 여기서 심형래 는 슈퍼히어로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고뇌하는, <우뢰매> 시리즈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4. 1990년대를 대표한 <반달가면> 프랜차이즈. < 영구와 땡칠이 >( 남기남 , 1989)는 그 절정이었다. 당시 상영관은 < 록키 호러 픽쳐 쇼 >(짐 셔먼, 1975)을 방불케 하는 컬트의 용광로였다. 영구의 부름에 아이들은 마치 그를 대면하는 듯 “예~~!”라고 대답했고, “영구~ 없다!”라는 대사 한 마디에 자지러졌으며, ‘소쩍꿍’ 장면엔 좌석에서 일어나 영구의 동작을 따라 했다. <영구와 땡칠이>의 공식 시리즈는 4편까지 이어졌지만, 이후 수많은 ‘ 심형래 시리즈’가 비디오 영화로 이어졌다. 엔터테이너 심형래, 그는 장르의 섭렵자였고 캐릭터의 만물상이었다. 포졸, 흑기사, 각시탈, 괴도 루팡, 탐정, 도사, 007, 돈키호테, 대부, 헐크, 황비홍, 할매… 흥행 트렌드에 맞춰 1년에 네다섯 편씩 쏟아지는 그의 영화들은 ‘질’과 상관없이 ‘양’으로 아이들을 공격하는 융단 폭격기였다. 다시 SF 장르에 집중해 보자. 사실 당대의 영화들은 한계투성이였다. 가장 심각한 건 윤리적인 부분이었다. 그 시절 아동 영화엔 아동에 대한 배려가 심하게 부족했다. 유해 요소로 가득 한 불량식품?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일찍 성에 눈뜬 아이들을 위한 숨겨진 배려였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보기 민망한 노출 장면도 심심찮았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1986)에서 데일리(송금란)는 “에스퍼맨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아요”라는 위험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여성 캐릭터에 대한 시각적 표현은 과잉되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 타입의 의상은 거의 유니폼이었다. 악당의 경우 한껏 부풀린 퍼머 머리에 진한 눈 화장이 필수였고, 액션을 수행함에도 강인한 이미지보다는 섹시한 느낌의 여배우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1980년대의 ‘시대 정신’이었던 ‘에로티시즘’이 아동 영화 장르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섹슈얼한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반달가면> 시리즈는 범죄 요소가 너무 강했고 폭력의 수위도 높았다. 언어적인 면도 심각했다. 각종 유행어가 난무한 건 개그맨들이 주로 출연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병신 같은 것들!” 같은 욕설에 가까운 대사를 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술 마시는 장면도 간혹 있었고 흡연도 자유로웠다. < 텔레파시 여행 >( 왕호 , 1991)의 좀비들은 모여서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1. <우뢰매> 2편엔 보미의 노출 장면이 있다. 아동용 영화로선 파격적이다. 2. < 드래곤볼 >에서 부르마( 이주희 )의 샤워 장면을 엿보는 손오공(허성태). 전형적인 에로 영화의 앵글이다. 3. < 마카리안 고 >의 외계인 악당. 강렬한 메이크업과 풍성한 퍼머 헤어스타일은 클리셰였다. 4. < 외계인 코브라 >( 김병기 , 1988)에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당시 인기 개그맨 황기순 과 이원승 . 외계인들은 대부분 파충류로 설정되어 있는데, 황기순은 새를 먹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9)엔 쥐를 먹는 장면도 있다. 은근히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측면도 있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이라는 국가 대사가 이어지는 시기였기에? 실제로 여러 영화에 호돌이가 등장했고, 올림픽에 대한 언급도 있었으며, 많은 아역 캐릭터들이 태권도를 수련했다. < 마카리안 고 >( 김완기 , 1987)는 ‘독도’를 중심 배경으로 선택했다. 흥미로운 건 1987년에 1~2편, 1988년에 3편이 나온 <별똥왕자> 시리즈였다. 명성왕국에서 지구로 피신 온 별똥 왕자( 이건주 )와 지구 어린이들 사이의 우정이 중심인데, 1편엔 대표적인 ‘국뽕’ 가요인 ‘아, 대한민국’이 흐르고 3S 정책의 대표적 이벤트인 프로야구가 등장한다. 2편은 석도원 감독의 당부를 담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어른께 공경하고 도덕을 존중하는, 착하고 아름다운” 어린이가 되자고 약속하자는 내용. 그리고 영화엔 이런 장면이 있다. 아이들과 어른 사이의 대화다. 어른: 그 사람들은 우주인이야. 아이들: 우주인이요? 어른: 우주인 중에서도 아주 나쁜 우주인이야. 아이들: 그럼 북괴 공산당 같은 나쁜 놈들이군요? 어른: 응. 맞았어. 아이1: 그럼 우주 공산당이구나! 아이2: 우주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자유와 평화를 없애려는 나쁜 놈들, 공산당은 나빠요. 아이3: 공산당은 싫어요!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수많은 아이들을 ‘이승복 어린이’로 만들어 버리는 이 대목은 1980년대 아동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단서를 준다. 반공 영화와 국책 영화가 사실상 사라진 1980년대 중반, 뚜렷한 이분법으로 ‘우리 편’과 ‘적’을 나누는 한국영화 장르는 SF 액션이 거의 유일했다. 물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 사이의 우정도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시기 아동용 영화의 세계관은 이전의 이념적 영화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온 외계의 악당은, 남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 세력과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할 건 크로스오버 현상이었다. < 외계인과 콩콩 강시 >( 안승호 , 1989)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강시 영화를 접목시켰고, 인기 만화를 각색한 < 드래곤볼 >( 왕룡 , 1990)도 등장했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8)은 당시 < 돌아이 > 시리즈로 인기를 끌던 전영록 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역시 당대 청춘스타로 부상하던 박중훈 은, ‘전체 관람가’라곤 하나 사실 성인용 콘셉트가 만만치 않았던 < 바이오맨 >(조명화, 김청기 , 1989)에서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 로보캅 >(폴 버호멘, 1987)의 영향을 받은 듯한 캐릭터들도 등장했다. 안 그래도 하이브리드의 성격이 강했던 당시의 SF 액션은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이며 영토를 확장했다. 1. < 외계 번개용 >의 전영록 . < 돌아이 > 시리즈 캐릭터의 연장이다. 2. < 바이오맨 >의 박중훈 . 이 영화는 다소 성인용에 가깝다. 3. <우뢰매> 1편에 나오는 이재은 . 이외에도 안연홍 김민정 그리고 이병헌 의 동생인 이은희 등이 아역 시절 이 장르에 등장했다. 4. < 스파크맨 >의 오로라 공주 김진경 . 당시 CF 모델이었던 그녀는 수많은 남자 아동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이 장르는 1980년대 후반에 짧은 화양연화를 보낸 후 1990년대 초가 되면 급격하게 쇠락한다. 공룡의 몰락과도 같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자본 구조에서 오는 완성도의 미흡함일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초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날 때, 이른바 ‘<우뢰매> 류’ 영화들은 새 자본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르 내부에 있었다. 진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토대가 워낙 취약하다 보니 그 속도가 더뎠다. 초반엔 아예 애니메이션 장면과 실사 장면을 편집을 통해 이어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어설프지만 합성이 시도되었고, 미니어처 촬영도 있었다. 정도안(특수효과)이나 신재호(특수분장) 같은 장인들도 이 시기 경력을 시작하며 열악한 상황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 스파크맨 >은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의상과 소품과 특수효과 등은 당대의 ‘고퀄’이었다. 그럼에도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은 로케이션과 미술이었다. 이 시기 SF 액션은 그냥 주택가에서 찍었다. 액션이 벌어지는 우주선 내부는, 얼핏 봐도 아파트 보일러실 같은 곳이었고, 마분지나 은박지로 배경을 처리한 듯 보이는 후줄근한 비주얼이었다.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 임종호 , 1991)에서 외계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나이트클럽에서 촬영될 정도였다. 양적 팽창만큼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던 1980년대산 아동용 SF 액션 영화들은 1990년대를 견디지 못했다. 특히 <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캐머런, 1991) <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1993) 등이 컴퓨터그래픽의 경이로운 스펙터클을 선보이며 관객의 눈높이를 한껏 끌어올렸다. 1. < 우뢰매 > 4편에서 에스퍼맨과 형래는 동네 제과점에서 만나 빵을 먹는다. 일상적 설정이라고는 하나… 조금 심했다.. 2.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에선 나이트클럽이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화면 위쪽에 사이키 조명이 보인다. 3. < 우뢰매 > 4편의 미니어쳐. 아동용 SF 장르는 나름의 기술 발전을 이루려 했다. 4. <우뢰매> 시리즈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엔딩. “안녕”이라는 자막은 이후 다른 프랜차이즈에서도 애용되었다. 1980년대엔 여러 장르적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단명했다. 사회적 변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의 격변, 장르 내부의 모순, 외부적 영향 등 그 이유는 다양했고, SF 액션의 소멸은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장르를 기억해야 한다면, 당시 가장 강력한 대중적 소구력을 지녔던 영화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정의의 사도 에스퍼맨은 우뢰매와 함께 우리를 지켜준다.” 이 믿음직한 한 마디는, 현재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대의 관객들 귓가엔 여전히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