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녀
- 감독
- 김기영
- 제작년도
- 1972
- 출연
- 윤여정, 전계현, 남궁원, 김주미, 박인찬, 이대근, 김호정, 신종섭, 황백, 박암, 박정자, 사미자, 이예성, 이창식, 최남현, 송미남, 김승남, 윤일주, 최창호, 김기범, 남방운, 최재호, 석귀녀, 지방열
한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난처해질 때가 있다. 일단 필모그래피를 따라 자연스럽게 어떠한 '경향성'이 드러나면 (혹은 만들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거꾸로 그 일관성으로 포획되지 못하는 작품들은 슬며시 접어두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감독이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 라면 '아웃라이어'처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나는 순간, 호기심보다는 '어쩌자고...' 라는 나도 모르는 탄식이 앞서고 만다. 이러한 맥락에서 굳이 따지자면 이만희 감독의 1974년 작 < 청녀 >는 분명 그의 이름을 돋을 새김해줄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고 ‘숨겨진 걸작’이라거나 ‘재발견해야 하는 이만희의 작품 세계’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빈틈들이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청녀>라는 제목만 듣는다면 ‘이만희’라는 이름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 화녀 >, < 충녀 > 등의 영화를 연출한 ‘ 김기영 ’ 감독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만약 당신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채 이 글을 먼저 읽고 있다면, 그냥 그러한 혼란 속에서, 이만희라는 이름의 무게를 잠시 내려 놓고 머릿속에 연상되는 ‘-녀’ 시리즈의 영화들을 자유롭게 연상하면서 <청녀>를 보기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 교향곡’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섬마을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 형준( 남궁원 )이 인근 외딴 섬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 석화( 서한나 )를 데려다 키우면서 시작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혼자 남겨진 석화를 측은지심에 데려와 비슷한 또래의 자기 자식들과 함께 키우지만, 어느 순간 형준은 자신에게 각별한 애정을 품고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해가는 석화를 사랑하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상황은 형준의 아들 제구( 김경수 ) 역시 석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자신의 종교적 믿음과 사랑, 그리고 지켜야 할 가족 사이에서 형준은 고뇌하고, 그런 형준을 보면서 제구는 아버지에 대한 경멸과 기독교적 믿음에 대한 회의에 고통스러워한다. 부자(父子)가 얽힌 삼각관계는 썩 편한 소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만으로 시선을 끌 만한 이야기는 아니기에 이 영화가 만약 여기에서 멈추었다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작품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 20분 여가 흘렀을 때, 그러니까 전체 상영 시간 99분 중 약 4/5가 지나고 난 다음, 석화가 ‘개안(開顔) 수술’을 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이 때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전까지 형준의 시선에서, 형준의 목소리로 (목사인 형준이 하나님께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방식, 그러니까 ‘기도’라는 형식을 경유하여 영화가 계속해서 형준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을 사용했다는 상기해야 한다.) 진행되던 이야기가 석화가 눈을 떠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서사의 주도권이 형준으로부터 (동시에 제구로부터) 석화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그런데 수술을 하면서 시력을 회복한 석화가 맨 처음 본 대상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형준도, 머릿속으로만 그려봤던 제구의 모습도 아닌 도심의 복잡한 도로, 잘 정돈된 도시 공원의 풍경, 쇼윈도 안에 전시된 보석들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시력(視力), 다시 말해 볼 수 있는 ‘능력’이 거세된 채, ‘그저 힘 없는’ 두 남자의 욕망의 대상일 뿐이었던 석화는 개안수술을 통해 잃었던 능력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때 그 욕망의 대상이 자신을 욕망했던 형준이나 제구가 아니라 자본주의 하의 물질적 세계라는 사실은 이 글의 맨 처음에서 우리가 떠올렸던 ‘-녀’ 시리즈의 많은 작품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만든다. ‘길들여지지 못했던 (혹은 미처 길들여지지 않았던)’ 이들 영화 속 여성 주인공들은 도시화, 산업화, 문명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힘으로 이용한다. 이로 인해 그 과정에서 그녀들을 길들이려 했던 남성들은 망가지거나 부서진다. 그런데 이 동일한 상황이 <청녀>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석화가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그 힘을 회복하면서 그녀를 욕망하던 형준과 제구는 각자의 방식으로 욕망의 끝에서 부서진다. 형준은 늙고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제구는 (남성성을 포기하고) 천주교 신부로서의 삶을 택한다. 한편 그렇게 모두에게 파국을 가져온 석화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야생의 외딴 섬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서늘한 결말이 필연적으로 끌고 나올 여성의 욕망이나 이에 뒤따른 처벌, 좌절된 남성성 등의 논의는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대신 자유로운 연상 과정을 조금 더 허락한다면 <청녀>를 보는 내내 (명확한 이유는 끝내 짚어내지 못했지만) 떠올랐던 김기영 감독의 < 이어도 > (1977)를 함께 보아주길 바란다. 어쩌면 < 휴일 > (1968), < 쇠사슬을 끊어라 > (1971) 등의 영화와 < 삼포 가는 길 > (1975) 사이에 <청녀>를 놓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견할 수 있을 지 모른다. 마치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 청녀 고화질 VOD 보러가기 <<
< 삼각의 함정 >(1974)은 이만희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제작 당시 개봉하지 못했던 < 휴일 >(1968)과 같은 모더니즘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만희 감독의 장기는 장르 영화였다. 그를 1960년대의 대표적 감독 중 하나로 만든 < 다이알 112를 돌려라 >(1962)는 최무룡 과 문정숙 을 주연으로 내세워 만든 스릴러물이었고, 이만희 감독을 한국 영화 산업 내에 각인 시키는 계기가 생긴다. 이 영화는 1969년에 < 여섯 개의 그림자 >라는 작품으로 리메이크가 된다. 윤정희 , 신성일 , 남궁원 , 허장강 등 당대 최고의 스타시스템을 가동한 야심작이었고, 비평과 흥행 면에서도 성공을 거둔다. 두 작품 중 현존하는 것은 <여섯 개의 그림자>인데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던 60년대가 저물어 가는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장르영화를 이끌어 가는 완숙미를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리메이크를 시도한 작품이 <삼각의 함정>(1974)이다. 김기영 감독이 < 하녀 >(1960) 이후 < 화녀 >(1971), < 충녀 >(1972), < 화녀82 >(1982)로 자신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사실은 잘 알려진 편이다. 생전에 김기영 감독을 만났을 때 왜 이렇게 리메이크를 했는지 응당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질문에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제작자들이 원했고, 그게 돈이 되는 거였다는 식으로 답을 한 기억이 또렷하다. 1970년대의 한국영화는 유신시대의 등장과 함께 검열과 통제에 의한 자기 폐쇄성의 몰락을 걷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극장에서 상영할 해외영화 수입권을 얻기 위해 속성으로 한국영화를 제작하였고, 그 결과 속류와 아류가 판을 치는 시대가 열렸다. <삼각의 함정>도 이러한 시대성을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이만희 감독의 연인이었던 문숙 을 포함하여 상국 역의 오지명 , 영일 역의 유장현 그리고 두 남자를 등쳐먹으려고 하는 건달 역의 춘호 역의 백일섭 은 당시에는 유명세와는 거리가 있었다. 영화의 장면들이 넘어가는 부분이나 연기를 보여주는 부분에서도 공을 들이기보다는 대략적으로 넘어갔다는 인상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70년대 이만희 영화 중 <삼각의 함정>을 고른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1970년대가 한 감독, 혹은 한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만희 감독은 같은 해에 < 들국화는 피었는데 >, < 태양을 닮은 소녀 >, < 청녀 >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의 말년이기도 했던 이 시기에 얼마나 빠르게 영화를 제작했는가를 숫자만으로도 짐작할 수가 있다. 그 중 <청녀>는 <하녀>나 <화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하지만 제목에서는 의식한 흔적이 보인다.) 앙드레 지드의 원작 <전원교향곡>을 한국의 섬으로 옮겨와 만든 일종의 문예영화였다. 순수한 영혼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원작 소설을 근간으로 섬을 돌며 사람들을 돌보는 의사와 한 소녀의 사연을 지고지순하게 보여준다. 1970년대는 이러한 시대였다. 한쪽에서는 문예영화라는 이름으로 작품성을 과잉되게(때로는 신파조로) 강조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영화수입권을 따내기 위해 속성을 제작되는 영화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필자에게 제시된 <청녀>와 <삼각의 함정> 중 <삼각의 함정>을 고른 것은 이 작품에 이만희 감독의 특징이나 관심사가 더 들어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완성이 된 이만희 감독의 자기 복제는 출발점이 되는 <다이알 112를 돌려라>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알 M을 돌려라>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식된 영화라고 할 수 있고, 이만희 감독 뿐만 아니라 1960년대에 장르적 탐구를 한 주요 감독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할리우드 혹은 일본 그리고 간헐적으로 유럽 영화를 어떻게 한국적인 이야기로 옮기는가 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였다. 히치콕의 영화가 아내를 청부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운 남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듯이, 이만희가 만든 세 편의 영화는 한 여성을 둘러싸고 그녀의 돈을 갈취하려는 남성들의 욕망과 범죄가 이야기의 얼개를 이룬다. 반복된 욕망과 범죄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지숙은 밤중에 집으로 오던 중 건달 춘호에게 추행당할 위기에 처한다. 지나가던 영일이 이를 구해준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런데, 이전에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임신을 시킨 상국이 출옥을 하면서 지숙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숙은 남편의 유산을 요구하는 상국을 기차에서 살해하고, 영일과 결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지숙의 행동은 더 큰 위험을 가져온다. 모든 상황은 상국과 영일 그리고 춘호가 벌인 음모였고, 영일은 그 과정을 목격했다며 협박을 가한다. 이어지는 춘호의 협박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상국이 돌아오면서 세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싼 욕망의 드라마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서로가 물고 물리는 연쇄적인 파국과 그 안에 번뜩이는 인간의 욕망은 이만희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68년에 제작되었지만 오랫동안 창고에 잠들어 있다가 2005년에 발굴 및 공개가 된 <휴일>은 표면적으로 보거나 스타일상으로는 <삼각의 함정>과 완전히 다른 영화 같지만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상통한다. 한 여성의 임신에 대한 이야기, 친구의 돈을 훔쳐 도망치는 주인공 허욱의 이야기에 다뤄지는 인간의 탐욕과 집착 그리고 일요일이라는 하룻 동안의 이야기이지만 교회의 종소리가 들릴 때에도 이 세계에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허무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이만희 감독의 영화는 모던한 영화에서든, 장르적 영화에서든, 걸작에서든, 장르의 답습에서든 반복적으로 곰씹는 세계였다. <휴일>의 주인공 허욱이 수술을 위해 훔친 돈으로 여자 친구에게 가지 않고 술집에서 놀아나는 기이한 장면은 비상식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비이성이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성을 건드리는 기이한 인간의 행적이었다. <삼각의 함정>에서도 상국의 집착과 광기 그리고 이러한 범죄에 동참했다가 지숙을 보호하려고 변모하는 영일의 모습은 악당들의 세계라기보다는 일상의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 군상에 가깝다. 그 가운데 폭력과 착취를 당하는 지숙이 기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상국을 살해하는 장면은 최동훈 감독의 < 타짜 >(2006)를 미리 선취하면서 결혼이라는 새로운 욕망에 눈이 먼 인간의 이중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5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걸작과 범작을 오갔지만 이만희 감독이 항상 중심에 두었던 것은 욕망에 번뜩이는 인간의 변모였고, <삼각의 함정>에서도 서로가 뒤엉킨 욕망의 추격전을 살펴 볼 수가 있다. >> 삼각의 함정 고화질(HD) VOD 보러가기 <<
김기영 감독은 많은 작품에서 생명을 향한 의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죽음을 극복하는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간단하게 말해 김기영의 인물들은 죽음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영화 안에서 주로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나는 데, 첫 번째는 종족 보존, 또는 번식에 대한 집착이며 두 번째는 죽음마저 극복해버리는 초현실적인 상황의 등장이다. 전자는 김기영이 쥐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기영의 말에 따르면 쥐는 번식 욕구가 매우 강한 동물로서, 어떤 경이의 대상이다. 쥐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대표적 영화인 <하녀>(1960), <충녀>(1972) 등은 물론이며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에도 쥐의 생식 본능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는 <바보사냥>(1984)의 병아리 같은 경우도 동물만 바뀌었을 뿐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작품마다 구체적인 맥락은 조금씩 다르지만 김기영은 동물의 번식을 반복해서 그리며 죽음을 극복하려는 생명의 본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김기영이 연출한 섹스신이 에로틱하기보다는 노골적으로 그 행위 자체에 집중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렇게 상징을 통해 생명의 본능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론 부족했기 때문일까, 김기영은 아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인물들을 즐겨 그렸다. 그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거부하고 삶의 영역에 남으려 한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의지”를 외치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무덤을 반으로 갈라버린 <양산도>(1972), 죽은 남자의 성기를 발기시킨 <이어도>(1977), 심지어 목이 잘린 채로 다시 살아나 버린 <반금련>(1981) 등, 김기영은 삶의 의지 앞에 ‘상식’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라는 것처럼 관객의 눈을 의심케 하는 상황을 연출하곤 했다. 그리고 <현해탄은 알고 있다> 역시 생에 대한 의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아로운은 조선인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간 젊은 청년이다. 그는 군대 문화의 부조리와 전쟁의 위험과 정면으로 맞서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아로운은 상급자들의 폭력 때문에 죽을 뻔한 상황에 여러 번 처하며, 폭격 때문에 전사할 뻔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물들은 “우리 살고 봅시데이”, “사람은 사는 게 전부다!” 같은 대사를 다급하게 외치고, 전쟁은 “사망 계획”이라며 전쟁터에 나가길 거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김기영이 그리는 전쟁은 폭탄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자연 재해 같은 것이라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토록 살기 위해 애쓰던 아로운 역시 폭탄에 맞아 전사자들과 함께 공터에 버려지고 불에 타버릴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아로운은 결국 다시 살아난다. 그는 새카맣게 타서 버려졌지만, 즉 죽었다고 봐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만, 다시 살아나 삶으로 돌아온다. 이 장면은 전형적인 김기영 스타일의 사건인 동시에 개별적인 사건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더욱 특별한 건 이 상황을 보여주는 미장센이다. 김기영은 다시 살아난 아로운을 프레임의 중심에 놓지 않는다. 카메라는 아로운을 계속 보여주는 대신 여전히 죽은 채 누워 있는 수백 구의 시신에 더 집중한다. 아로운은 애인과 함께 프레임 왼쪽 구석으로 이동하고 마침내 사라지지만(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아로운을 찾기 힘들 정도다) 김기영은 아로운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시체 더미와 그 시체 위로 몰려든 유가족들을 롱숏으로 보여주며 영화를 끝낸다. 이 연출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 김기영은 생에 대한 의지를 이야기하면서 아로운을 극적으로 부활시키지만 정작 아로운이 살아난 후에는 이름 없이 죽어버린 피해자들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 즉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기적적인 사건보다 결국 살아나지 못한 다수의 죽은 자들에게 더 눈길을 주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김기영이 누구보다 뚜렷하고 큰 목소리로 인간의 생에 대한 본능을 말하는 감독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어떤 방법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거부할 수 없는 존재를 항상 의식하고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기영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픽션 속에서도 살릴 수 없는 저 죽은 자들의 존재 앞에 어떤 무력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그렇게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김기영의 삶에 대한 집요한 집착이 죽음에 대한 강박적인 의식과 나란히 놓여있음을 알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