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
- 감독
- 이규웅
- 제작년도
- 1967
- 출연
- 김지미, 남정임, 허장강, 김희갑, 도금봉, 김순철, 남미리, 나애심, 이빈화, 서영춘, 양훈, 오천평, 파이브휭거스, 강민호, 최리, 강송진, 박일, 박병기
< 여자가 더 좋아 >는 1965년 6월에 개봉하여 약 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국산영화 흥행 2위에 올랐던 코미디 영화다. 그러나 대중이 이와 같이 호응했음에도 이 영화에 대한 당시 저널리즘과 평단의 반응은 혹독했다. 이 영화에는 “C급 저속 넌센스 소극”이라는 말이 붙어 다녔고, 1) 청소년 범죄를 부추기는 영화로 지목되었으며, 2) 주제가는 「동백아가씨」가 왜색조로 금지될 때 저속하다는 이유로 함께 금지되었다. 3) 이 영화를 제작한 이들은 “바로 오늘만을 살고 스스로 묘혈을 파는 어리석은 장사치의 대표적 유형”이자 심지어 ‘영화반역자’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이때 이 영화의 대척점에 놓인 영화들은 < 자유만세 >(1946), < 성벽을 뚫고 >(1948), < 순교자 >(1964) 등인데, ‘민족의식’과 ‘저항정신’을 지닌 ‘세계시장을 지향하는 좋은 영화’로 일컬어졌다. 그러니 <여자가 더 좋아>는 그 반대의 ‘나쁜 영화’인 셈이었다. 앙리 베르그송이 웃음을 논하면서 희극과 예술일반을 비교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일반적으로 예술은 비극이고, 희극은 비극보다 열등한 것으로 오랫동안 간주되어왔다. 식민지에서 분단으로 이어지며 근대 계몽에 대한 욕구와 당위가 비등한 데다 이분법적 인식이 공고했던 한국에서 그러한 경향은 한층 더했다. 검열에서 코미디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했다는 증언은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경직된 규율의 눈으로 바라볼 때 코미디는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말할 가치도 없는 것, 그야말로 난센스(nonsense)였던 것이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것에도 위계가 있었다. 비현실적이고 개연성 없고 우발성과 과장으로 이루어져 웃음을 유발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계몽이나 위로로 귀결될 때에는 희극으로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 웃음이 계몽에 닿으면 풍자가 되고, 위로에 닿으면 유머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4) 그리고 그러한 웃음은 미래지향적이고 건전하며 명랑한 웃음으로 웃음 중에서는 높게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엎치락뒤치락’ 소동으로 끝날 때, 말도 안 되는 일이 말도 안 되는 상태로 끝난다고 보일 때 그것이 유발한 웃음은 “최저속선까지 철저하게 타락시킨 웃음” 5) 으로 질타되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희극에 못 미치는 ‘저속한 C급 소극’으로 평가되었다. 바로 그 대표적인 영화가 <여자가 더 좋아>였다. 이 영화를 시종일관 끌고 가는 것은 코미디언 서영춘 의 페르소나다. 1960년대 초 라디오 방송에서 만담으로 유행어를 연달아 만들어내며 인기몰이를 시작한 서영춘은 1965년에 영화 세편에 출연한다. < 청춘사업 >(4월 개봉), <여자가 더 좋아>(6월 개봉), < 출세해서 남 주나 >(11월 개봉)가 그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가 <여자가 더 좋아>였다. 제목에서 할리우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1959)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1960년대 후반 한국영화계에 ‘여장 남자 코미디’ 유행을 견인한다. 이 영화 이전에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1년에 <뜨거운 것이 좋아>가 한국에서 개봉하여 크게 흥행하고 1962년 마릴린 먼로의 돌연한 죽음으로 롱런을 하면서 <뜨거운 것이 좋아>의 번안영화가 제작되었다.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 남자는 안 팔려 >(1963)가 그것인데 눈에 띄게 관객을 동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2년 후에 <여자가 더 좋아>가 나와 크게 흥행하여 ‘여장 남자 코미디’의 유행을 촉발한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서영춘이 분한 주인공 규철은 여자직업기술학교에 출강하는 음악 강사다. 그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체모도 적은 데다 바느질과 요리를 즐기고 말도 얌전하게 하며 입을 가리고 웃는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특징으로 인식되는 이러한 행동 때문에 그는 ‘여성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기술학교 학생 영숙( 최지희 )과 엄연히 연인 사이다. 그는 결혼하기 위해 영숙의 부모님을 만나는데, 의학적으로 여성에 가까운 중성이라는 이유로 파혼을 당한다. 영숙은 박문기( 남궁원 )라는 밴드마스터와 곧바로 결혼하고 이에 상처받은 규철은 복수를 결심한다. 그는 여장을 하고 규화라는 이름의 식모로 영숙의 시집에 들어간다. 영숙의 시아버지( 김희갑 )는 성정이 ‘괴벽스러워’ 식모를 붙어있지 못하게 만드는 영감인데 규화의 ‘서비스’에 만족하여 규화와 잘 지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영숙은 규화(규철)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리지만 규화는 영숙의 남편 박문기와 악단주 선우광( 양훈 )까지 매혹한다. 규화(규철)가 불행한 영숙을 보며 자신의 복수에 대해 회의할 때쯤 선우광의 구애로 정체를 들킨다. 선우광이 규화(규철)에게 수작을 걸 때 현장을 덮친 선우광의 부인 때문에 그는 슈미즈 바람에 가발이 벗겨진 채 마침 나들이에서 돌아오던 영숙과 문기, 영숙의 친정어머니와 시아버지까지 모두 보는 가운데 뛰쳐나가게 되는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프린트에서는 이 상태로 영화가 끝난다. 그런데 시나리오 상으로는 규철이 성전환 수술을 하여 결국 여성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와 같이 여장 남자로서 남성과 여성을 넘나드는 전개는 서영춘의 규정을 거부하는 ‘난센스 페르소나’를 통해 이분법을 끊임없이 교란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서영춘의 외양과 태도는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분방한 모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행동거지와 거기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는 남녀로 분리된 젠더박스에 진동을 일으키고 균열을 낸다. 이는 1960년대 말 구봉서가 출연했던 ‘남자 시리즈’(< 남자 식모 >, < 남자 미용사 >, < 남자와 기생 >)와 비교해 보면 보다 명확하다. 이 영화들에서 구봉서 는 깔끔하고 자상한 남자로서 여자 흉내를 잘 낼 뿐이지 결국 남자다. 여자로 변장했을 때의 모습과 남자로서 연인과 있을 때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되는 데서 젠더 이분법이 잘 드러난다. 그가 여장을 통해 수행하는 것은 발언권이 세진 여성들과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성들을 동시에 비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영화들은 가부장적인 젠더 질서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안착한다. 이와 달리 <여자가 더 좋아>에서 서영춘이 표상하는 것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독자적 섹슈얼리티다. 이에 대해 박선영은 “서영춘의 그로테스크한 신체는 회복되지 않은 남성성과 포기되지 않은 여성성의 기묘한 공존을 시각적으로 전시하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6) 그런데 따져보면 규철은 영숙과 혼인신고만 안 했지 부부와 다름없이 지냈던 것으로 나온다. 그는 불량배를 만났을 때 그들을 물리적으로 물리칠 완력은 없지만 기지와 헌신으로 여성들로부터 떼어놓는다. 그가 다른 남자들처럼 밖으로 나돌지 않고 술 담배도 입에 대지 않기에 영숙은 그를 믿고 좋아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남성으로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음에도 그의 취향이나 태도가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것이라 하여 그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너는 남자니? 여자니?’ 라는 질문 속에서 경계의 지점은 용납될 수 없기에 그는 자신 그대로 사회에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성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마지막에 제리(잭 레먼)가 가발을 벗으며 “나는 남자야. I’m a man”라고 고백하지만, 필딩이 “완벽한 사람은 없지. Nobody is perfect”라고 받는 것과 갈라지는 지점으로, 당시 한국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난센스의 한계를 보여준다. 당대에 웃음으로 봉합될 만한 수위 차원에서 결말을 생각해보면 규철이 성전환을 해야 영숙이 오해를 받지 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규철에게 매혹되었던 모든 인물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래서 규철의 성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다른 인물의 안전과 그에 따른 관객의 안심을 위한 사회적 거세에 해당한다. 이 영화는 1983년에 더스틴 호프만이 여장 남자로 분한 영화 <투시 Tootsie>(1982)가 흥행하면서 7) ‘남자 시리즈’의 심우섭 감독 연출로 리메이크된다. 8) 이 영화에서도 서사의 전개는 유사한데 결말은 오히려 더 계몽적인 양상을 띤다. 주인공 유경진(강태기)이 아파트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젊은 부부들에게 건전한 생활을 유도하다 표창장까지 받고 여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1960년대보다 1980년대가 민주적으로 진보했다고 여겨지나 서영춘이 보여준 난센스와 같은 경계적 특이점이 설 자리는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서영춘은 <웃으면 복이 와요>(1969~1985)가 프로야구 붐으로 돌연 폐지 9) 된 이듬해에 간암으로 타계했다. 10) 그는 한동안 잊혔다가 21세기에 대중문화 장르와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면서 비로소 ‘저질’에서 벗어나 ‘독보적인 코미디언’으로 재평가된다. <여자가 더 좋아>가 ‘말할 가치도 없는 난센스 소극’에서 벗어나, 난센스라는 요동으로 경직된 시스템에 파문을 일으키며 젠더 이분법을 일찍이 뒤흔든 영화로 재발견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재평가와 맥을 함께 한다. >> 여자가 더 좋아 고화질 VOD 보러가기 << 1) 「만화조 넌센스 소극」, 《조선일보》, 1965.7.15.; 「소극붐 수준급 이하의 넌센스들」, 《조선일보》, 1965.11.11.; 「영화 황량한 질 안고 과잉생산」, 《동아일보》, 1965.12.27. 2) 「자극적인 영화제목과 소년범죄」, 《조선일보》, 1965.8.24. 3) 「왜색조를 추방」, 《조선일보》, 1965.9.7.; 「방송음악 日色調 일소키로」 , 《동아일보》, 1965.9.11. 4) 웃음의 유형에 대해서는 박유희, 「총론: 웃음의 서사와 한국 대중문화」,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4.코미디』, 이론과실천, 2013, 22-23면. 5) 「만화조 넌센스 소극」, 《조선일보》, 1965.7.15. 6) 박선영, 『코미디 전성시대』, 소명출판, 2018, 529면. 7) 「추석 극장가 외화가 압도」, 《동아일보》, 1983.9.20. 8) 「방화에도 남성 치맛바람 강태기 여장하고 김환진과 주연」, 《경향신문》, 1983.6.15. 9) 「프로 감축 항의 MBC 코미디언들 파업」, 《조선일보》, 1985.4.25. 10) 「코미디언 서영춘씨 별세」, 《매일경제》, 1986.11.1.
<미워도 다시 한번>을 다시 읽는다 한 편의 ‘최루성 멜로’가 던진 파문 수출 목표 10억 달러의 문턱에서 온 나라가 생산증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1968년, 군소영화사를 통폐합하고 영화산업을 기업화하려한 정부 시책에 영화계는 양극화되었고 영화인들의 불만도 누적되어 갔다. 그런데 그해 여름, 정소영 이라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감독이 군소영화사에서 만든 영화 한 편이 영화법 개정 요구에 불씨를 댕겼다. 그 영화가 바로 1968년도 최고의 흥행작이자, 그때까지 신상옥 의 < 성춘향 >(1961)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영화 사상 최대 관객동원 기록을 깬 < 미워도 다시 한번 >이다. ‘최루성 멜로드라마’의 대명사가 된 이 영화는 1960년대 관객에게조차 매우 익숙한 플롯을 전개한다. 애인 김신호( 신영균 )가 유부남인 줄 몰랐던 유치원 교사 전혜영( 문희 )은 시골의 본처가 남매를 데리고 상경하자 임신 사실을 숨긴 채 묵호로 귀향한다. 바닷가에서 노동하며 홀로 아들 영신을 키웠으나 아이가 아버지를 찾는 나이가 되자 혜영은 아들의 장래를 위해 신호에게 맡긴다. 그러나 낯선 환경, 서먹한 ‘큰’ 어머니, 의붓형의 괴롭힘,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영신의 마음은 병들어간다. 어느 날 하교 후 무작정 엄마에게 가려다 길을 잃은 영신은 폭우가 쏟아지는 밤거리를 헤매다 돌아온다. 아이를 잃어버린 줄 알고 피가 마르던 신호는 대문간에서 잘못했다고 비는 영신을 때린다. 모질게 아들을 때어놓고선 걱정되어 그 곁을 맴돌아왔던 혜영은 영신이 맞는 모습을 보고는 “제가 길러야겠다는 걸 뼈아프게 느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아들을 데리고 묵호로 떠난다. 눈물의 공감대: 출세와 교육열 이토록 익숙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속편, 3편, 4편까지 만들어진 데다 1981년과 2001년에 리메이크되기도 한 것은 그 어딘가에 한국인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선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등장인물들의 출신과 직업이다. 신호, 혜영, 신호의 아내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시골에서 상경한 인물들이다. 농촌 출신인 신호는 회사를 다니면서 박사논문을 집필하던 중에 혜영을 만났고 지금은 제약회사 사장이다. 즉, 그는 물려받은 재산이 아닌 전문지식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부자이고 그의 출셋길은 교육으로 인해 열린 것이다. 어촌 출신인 혜영은 유치원 교사였지만 신호로 인해 중산층 가정부인이 되는 루트에서 밀려나 가난한 미혼모가 되었다. 친정아버지에게서 소 판 돈을 꾸어 서울 살림을 시작한 신호의 아내는 남편의 출세로 상류층에 진입했지만 사생아의 존재는 그동안 그녀가 가꾸어온 안락하고 모던한 가정을 뒤흔든다. 다음으로 주목을 요하는 부분은 왜 혜영이 8년간 숨겨왔던 아들의 존재를 지금에야 알리고 신호에게 양육을 요구했는가이다. 당시의 민법이 현재와 달랐음을 고려해야 한다. 사생아인 김영신이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김신호의 호적에 올라야 하고 그러자면 본부인에게도 그 존재를 알릴 수밖에 없다. 이는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아 오늘날의 관객은 유추하기 어렵지만 60년대의 관객이라면 이미 미혼모가 아이를 데리고 친부를 찾았을 때 자연스레 연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묵호로 아들을 데리고 떠난 혜영이 속편에서 신호에게 알리지 않고 서울로 되돌아온 이유도 오로지 영신에게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고픈 욕망 때문이었다. 요컨대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에서 갈등의 원천은 그 이전의 멜로드라마처럼 삼각관계보다는 자식교육에 있었던 것. 따라서 이전의 멜로드라마라면 본처를 악녀로 설정했을 터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남편의 사생아를 키워야 하는 본처가 겪는 고통도 최루성 장면의 일부를 이룬다. 고도경제성장기의 멜로드라마 호주제가 2007년까지 유지되었고,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사전에 등재되어있으며, 대학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이 나라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은 사회학적으로 분석해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 마부 >( 강대진 , 1961)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마부의 의젓한 장남으로 고시에 합격한 신영균은 고도경제성장기의 초입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자수성가한 테크노크라트로 변신했다. 그의 공부를 뒷바라지 했던 문희는 한때 인텔리였지만 한순간에 가난한 미혼모로 전락했고 자식만이 유일한 희망이기에 통곡하며 어린 아들을 더 나은 가정으로 떠나보낸다. 스무 밤만 자면 온다던 엄마를 기다리던 영신이 자전거를 사 온 아버지를 붙잡고 “자전거 안 가질래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학교 안 갈래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한테 데려다줘요.”라고 흐느끼는 장면은 지금도 우리의 눈물샘을 지그시 누른다. 이 영화가 오랜 세월 그토록 많은 관객에게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은 익숙한 신파적 감수성 때문이 아니라 교육이 유일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된 양극화된 사회의 비애를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 미워도 다시 한번 VOD 보러가기 <<
옛 영화는 자주, 영화 자체의 재미라기보다는 그 영화가 지니는 문화사적 맥락의 정보들 때문에 보게 된다. 특히 타 장르와의 교섭이 활발한 작품들, 대중영화로서 당대 유행하고 있던 주류적 흐름에 충실한 작품들은 더 그러하다. 1967년 이규웅 감독의 < 치맛바람 >도 그런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는 수작이 아니다. 사극을 주로 연출해왔던 이규웅 감독이 만든, 정말 몇 편 안 되는 현대물 코미디이다. 그래서인지 코미디 연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리듬감과 속도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고, 연기로부터 소품, 카메라 워크에 이르기까지 희극적 과장이 들쭉날쭉하여 균형이 어그러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당시 드라마와 쇼에 사운을 걸고 있던 상업적 민방 동양방송(TBC)의 인기 텔레비전드라마의 리메이크이고, 1960년대 후반의 수많은 코미디영화들의 흐름 속에 놓여있음을 생각하면, 매우 다양한 문화사적 맥락을 읽어낼 흥미로운 작품임을 깨닫게 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방송드라마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원작 공급처였다. 일찍이 해방 직후 연속극의 시작점에 놓인 < 똘똘이의 모험 >(1946)이 영화화된 것부터 시작하여, 연속극의 안정적 편성의 시작인 < 청실홍실 >(1956)부터는 인기 연속극은 으레 영화화되는 수순을 밟았고, < 로맨스 빠빠 >, < 박서방 >, < 빨간 마후라 >, < 남과 북 > 등 1960년대의 수작 영화 중 적지 않은 작품이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라디오드라마였다. 1964년 동양방송의 개국과 함께 녹화가 가능해져 텔레비전 연속극이 발전하고 있었고, 따라서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텔레비전드라마의 영화 리메이크가 간간이 나타나는데, 텔레비전드라마의 리메이크영화는 그리 성공적인 작품이 많지 않다. 아무래도 영상물을 또 다른 영상물로 옮기는 이러한 리메이크는,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들게 했기 때문이리라. 이 작품의 원작인 드라마 < 치맛바람 >은 1967년 동양방송 주말연속극의 또 다른 이름인 ‘유호극장’의 작품이다. 극작가의 이름을 내걸고 같은 시간대에 한 작가가 계속 집필한 사례는 한국방송사에서 전무후무하다. 그 정도로 당시 유호는 매우 인기 있는 작가였고, <치맛바람>은 1965년부터 시작된 유호극장의 한창 시절 작품이다. 유호는 희극에 능한 작가이며, 특히 도시 중간계층에 속하는 평범하고 속물적인 인물들이 벌이는 희극적 사건을 삽화적으로 펼쳐놓는 것을 좋아한다. < 치맛바람 > 역시 그러하다. 가난한 월급쟁이 ‘장’은, 아내, 아버지, 대졸 실업자와 여대생 동생, 중학생 아들까지 먹여 살리느라 취미는커녕 담배마저 끊는다. 견디다 못한 아내 ‘진’이 계를 들어 돈을 벌고자 하는 데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돈 주무르는 수완이 능란한 계주 ‘풍’을 비롯한 계꾼 여자들은 한복 치마를 펄럭이며 몰려다닌다. 집단화된 여자들은 목소리가 커지고 집단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도 하는 것에 비해, 오히려 남자들은 이들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쩔쩔 맨다. 바깥으로 나돌며 돈을 만지는 드센 여자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는 이미 1950년대부터 흔했다. 이 겉멋 든 여자들은 남자 머리꼭지에 올라선 것처럼 굴지만, 결국 이들에게 몰려드는 남자들과의 관계, 혹은 금전 관계의 실패로 극적 처벌의 결말을 맞게 된다. 이런 보수적 시각은 오래 유지되지만, 1960년대 후반에 놓인 이 작품은 1950년대의 작품들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치맛바람 일으키는 계군들은, 1950년대의 < 자유부인 >이나 < 여사장 >처럼 미국 여배우처럼 차려입은 멋진 여자들이 아니라, 그냥 한복 입은 중산층 아줌마들이다. 또한 이 여자들에게 ‘껄떡대는’ 남자들 또한 돈 많은 사장님만이 아니라, ‘진’의 시아버지나 룸펜 시동생처럼 장삼이사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1950년대에 눈 뜨기 시작한 물욕과 성욕의 적극적 구현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 대도시의 보통사람들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한편, 치맛바람이 극적 처벌을 받긴 하지만, 아내가 나서서 계라도 하며 살아나가는 도시 서민의 생활방식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1960년대에 가정의 경영권은 이미 주부에게 넘어왔고, 주부는 시아버지부터 시동생의 소소한 지출까지 간섭하면서 재태크에 눈을 돌리는 경제적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원작인 드라마 동영상이나 대본이 남아있지 않아 영화와의 차이를 정교하게 비교할 수는 없으나, 원작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오리지널 대본과 비교해 보면 영화화 개작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삽화의 수를 줄이고, 성적 농담과 노출, 슬랩스틱코미디 스타일의 과장된 연기를 크게 강화했다. 즉 당시에 인기를 모으고 있던, 서영춘 등 코미디언의 개인기를 중심으로 젠더 선입견에 기대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영화의 관행을 받아들인 것이다. 가정과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희극적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치중한 유호 의 텔레비전드라마의 경향이, < 남자 식모 > 같은 영화가 주를 이룬 코미디 영화의 경향으로 흡수되어 조정된 양상인 것이다. 비교적 원작에 가까웠을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 ‘진’이 사업상 만난 무 사장과 요정에서 춤추는 장면이 삽입되고, 뚝섬유원지에서 수영복 바람으로 춤추는 장면이 반복되며, 특히 뚱뚱한 여자 코미디언 오천평 과 서영춘과의 엎치락뒤치락 장면을 길게 배치하는 등, 내용이 많이 추가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렇게 자극의 수위를 놓여놓았으니, 결말 역시 좀 더 과격하거나 억지스러워질 수밖에 없는데, ‘장’의 계몽적인 일장연설로 계꾼들이 개심하는 결말도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다. 이규웅 이 낯선 장르 코미디를 만나 이 작품은 다소 어설펐지만, 이후 그가 코믹한 사극인 < 공주 며느리 >, < 꼬마 신랑 > 등을 연출하는 데에 이 작품은 중요한 다리가 되었을 것이다. 젊은 미모의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희극적 캐릭터를 귀엽게 잘 소화해낸 남정임 은, 이후 이규웅의 코믹한 사극의 주인공을 도맡았다. 소심한 남편 ‘장’을 맡은 허장강 의 계산된 정교한 연기, 고령에도 불구하고 뚝섬유원지의 록밴드 앞에서 엉터리 영어로 팝송을 부르며 판을 제압하는 아버지 김희갑 의 놀라운 감각, 남정임 과 1950년대 아프레걸을 도맡았던 이빈화 의 과감한 비키니, 그리고 유호 작품에서 허랑방탕한 삼촌(시동생) 역을 단골로 맡았던 김순철 의 대체 불가능한 시동생 연기 등은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볼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