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침실
- 감독
- 이형표
- 제작년도
- 1970
- 출연
- 최무룡, 문희, 백영민, 박지연, 박명옥, 이성호, 홍정인, 김진아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The Apartment Pictures) 1978년 3월 16일 아침 9시 10분. 이탈리아 총리를 2번이나 역임한 기독교 민주당 대표 알도 모로가 붉은 여단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날은 기독교 민주당이 서구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공산당과의 연합정부를 구상하고 신임투표에 들어가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일명 ‘역사적 타협’의 설계자였던 모로는 당 안팎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납치, 살해, 테러, 총격전이 횡행했던 이탈리아의 가장 어두운 시기, 이른바 ‘납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는 좌우간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가장 폭력적인 시대의 희생자 아이콘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모로는 납치 당한 지 55일 만에 시신으로 돌아왔다. 다섯 명의 경호원이 죽고 모로가 납치된 그날로부터 빨간색 르노 자동차 트렁크에서 모로의 시신이 발견되는 날까지, 수백만 명의 시청자가 TV에 붙어 있던 55일 간의 일을 벨로키오는 오랫동안 곱씹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모로 사망 40주기가 되던 해에 그는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그 55일의 이야기를 다성적이고 기념비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모두의 간절한 바람과 기도를 저버리고 거대한 비극을 상영했던 (벨로키오의 비유에 따르면) ‘거대한 TV 극장’은 실제 사건으로부터 44년 후에 (이번에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이탈리아 TV를 통해 다시 한번 송출된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The Apartment Pictures) < 익스테리어, 나잇 >(2022)은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첫 시리즈 작품이다.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러닝타임 330분에 이르는 이 시리즈는 애초 TV 방영을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되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자 극장용 영화로 확장되었다. 제작 방식뿐 아니라 작품의 릴리스 방식 또한 무척 이례적이고 예언적이다. 시리즈물로서는 영화제부터 극장, TV, 무료 스트리밍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배급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이고, 이 사례가 예외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예언적이기도 하다. 사실 시리즈물이 유수 국제영화제의 한 섹션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2022년 칸영화제는 <익스테리어, 나잇>을 칸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했다. OTT 영화에 대한 거부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온 칸일지라도 83세 이탈리아 거장의 시리즈물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익스테리어, 나잇>은 칸에서의 프리미어 상영 즈음에 두 파트로 나눠 이탈리아 극장에 순차적으로 개봉됐고, 이탈리아 TV에서 방영된 다음 이탈리아 넷플릭스와 무료 플랫폼 라이플레이(RaiPlay)에서 다시 공개되었다. 적어도 이탈리아인이라면 누구나, 언제나, 쉽게, 다양한 통로로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럼 그들은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1978년의 TV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무엇을? 벨로키오는 2003년에 모로 사건을 이미 한차례 영화로 만들었다. < 굿모닝, 나잇 >(2003)은 붉은 여단의 관점으로 밀실에 감금된 모로를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내부 시선의 영화라면, <익스테리어, 나잇>은 시선을 외부로 전환하고 확장한, 리버스 버전의 영화다. 자연스럽게 여기엔 주인공이 여럿이다. 벨로키오는 정치인, 교황, 가족, 붉은 여단원을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 삼아 사건에 얽힌 그들의 내면 풍경을 자꾸만 반복 변주되는 악몽의 사이클로 재현한다. 에피소드 1에서는 기독교 민주당과 공산당의 연립정부를 구상하는 모로의 정치적 이상 뒤에 숨겨진 그의 불면과 연약함, 관용과 사랑을 그린 다음, 에피소드 2에서는 그의 정치적 동지인 내무부 장관 코시가의 죄책감과 정신분열적 망상을, 에피소드 3에서는 모로를 구하기 위해 온갖 방도를 강구하는 교황 바오로 6세의 절박한 무력감을, 에피소드 4에서는 붉은 여단 내부에 번져가는 정치적 의심을, 에피소드 5에서는 모로의 아내 엘레오노라의 고통과 소외를 거쳐 에피소드 6에 이르러 환상과 상상, 꿈으로는 바꿀 도리가 없는, 총체적인 파국으로 맺는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The Apartment Pictures), IMDb (촬영: Anna Carmerlingo) 에피소드마다 불현듯 끼어드는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환상과 꿈이 구현하는 것은 대개 알도 모로의 환생이다. 역사적 비극을 다각도로 재고하는 벨로키오의 상상력은 불가역적인 역사의 결말을 그렇게 뒤집는다. 공히 모로 사건을 다룬 <굿모닝, 나잇>과 <익스테리어, 나잇>에 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바로 그 점이다. 역사에 환상과 상상, 그리고 꿈의 이미지를 덧대어 숨겨진 진실의 일단을 들춰 보이는 것. 어쩌면 결론이 바뀔 수도 있었다는 깨달음. 그 환영의 세계에서 모로의 운명은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익스테리어, 나잇>은 그렇게 <굿모닝, 나잇>의 엔딩에서 다시 시작한다. <굿모닝, 나잇>은 감금된 밀실에서 탈출한 모로가 새벽 거리를 비척대며 걸어가는 몽환적인 장면으로 끝나고, <익스테리어, 나잇>은 로마 병실에 누운 모로가 문병 온 동료 정치인들에게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우 초현실적이고 거의 신화적이기까지 한 이 오프닝의 환영은 러닝타임 330분을 관통하는 일련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거기서 모로는 코시가의 방음된 밀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침실 의자에 앉아 불면의 밤을 보내고, 홀로 십자가를 진 채 고난의 길을 걷고, 동료 정치인들과 함께 익사한 시신으로 강물에 떠내려가고, 르노 자동차 트렁크에서 마침내 눈을 뜨고 걸어 나온다. “그 남자는 그리스도처럼 죽어야 했다.” 벨로키오는 감독 노트에 그렇게 적어놓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의 수사가 아니라 실제의 이미지로 우리 눈앞에 재현해 보인다. 그는 아무것도 새롭게 밝히지 않으면서도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허구를 통해, 오직 상상력만으로. (좌) <굿모닝, 나잇> 중 / (우) <익스테리어, 나잇> 중 / 사진: IMDb( 1 , 2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탈리아가 기묘한 열병을 앓고 있던 시기다. 벨로키오는 그 시대의 풍경을 장대한 프레스코화처럼 펼쳐놓고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걸어 나온 듯한 인물들을 차례로 무대 중앙에 세웠다. 1막이 오르고, 2막이 오르고, 3막에서 또다시……. 그렇게 여섯 개의 장에 3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다. 모로의 정치적 동지와 정부가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를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을 영화는 낮은 톤으로 서늘하고 선명하게 우리에게 일러준다. “이 영화, 아니, 시리즈, 이게 뭐라고 불리든 간에” 벨로키오는 자신의 첫 시리즈물을 만들면서 그걸 무어라 규정하든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이 영화, 아니, 시리즈, 이게 뭐라고 불리든 간에’ <익스테리어, 나잇>은 영화제와 극장 스크린, TV와 OTT 플랫폼을 가로지르며 시네마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를 즐겁게 상상하도록 부추긴다. 완전한 몰입의 330분이 지나고 나면, 이걸 뭐라고 부르든 간에 저 멀리 제 길을 가는 시네마의 발걸음을 좇느라 바빠진다. 실은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영화는 매번 시네마의 경계를 탐문하느라 머뭇대는 우리를 저만치 앞질러 간다. 강소원(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l 영화제에서 일한다. 매년 엄청난 편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 본 글에는 <색깔있는 남자>의 반전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영화 산업은 여러 면에서 척박했던 시기로 회자된다.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한국영화 산업의 첫 르네상스라 평가됐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와 80년대는 독재 권력의 감시 하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검열이 극심해지면서 산업적 토대와 시스템이 허약해진 시기로 평가된다. 1970년대부터 대중추수적인 에로티시즘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1975)처럼 청춘을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주제와 형식 측면에서 저항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간간이 출현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한국영화의 전면적 시장개방이 일어나면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긴 했지만, 영화제작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검열제도가 심의제도로 전환되고 저항적인 학생영화운동을 포함해 새로운 영화세대가 부상하면서 독립영화와 코리안 뉴웨이브의 싹이 틀 수 있는 움직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 색깔있는 남자 >(김성수, 1985)가 개봉된 1980년대 초중반은 전두환 정권의 적극적인 3S(Sex, Screen, Sports) 정책, 선정성과 폭력성이 극대화된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할리우드 장르 관습, 흥행작의 끝없는 시리즈화, 컬러 비디오라는 새로운 부가시장의 저예산 문법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한국영화 산업 전반이 에로영화에 몰두한 것처럼 보인다. <색깔있는 남자> 역시 에로틱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이 영화는 당시 대부분의 에로영화들처럼 다양한 정사 장면을 넣기 위한 지나치게 복잡한 인물 구도와 설득력 없는 급작스러운 반전, 컬러 비디오 시대에 걸맞은 화려한 색상과 조명, 줌 쇼트와 프리즈 프레임 등의 과도한 사용을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선정성을 목표로 두면서 느슨해진 서사 그리고 부족한 예산과 시스템을 메우기 위한 표현적 과장은 오히려 이 영화를 급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 지점에서 김형석 은 <색깔있는 남자>를 < 디아볼릭 >(앙리 조르주 끄루조, 1955)이나 < 원초적 본능 >(폴 버호벤, 1992)과 같은 놀라운 반전 서사를 가진 1980년대 대중영화의 숨겨진 걸작에, 이문우(「1980년대를 퀴어링하기」)는 범죄화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레즈비언을 가시화한다는 측면에서 퀴어적 독해의 텍스트로 위치시킨다. <색깔있는 남자>는 제목만 보면 김성수 감독의 전작, 장미희 와 이영하 주연의 < 색깔있는 여자 >(1980)의 후속작처럼 보이지만, 두 영화는 장르적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색깔있는 여자>가 신파적 특징이 강한 여성수난사라면, <색깔있는 남자>는 냉철하고 잔인무도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팜 파탈과 여성 착취적이고 이기적인 옴 파탈이 대격돌하는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는 당대 몇몇 에로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정적 재현을 위해 비규범적 성적 욕망과 관계를 소재로 가져온다. 유사 근친상간, 사도매저키즘, 양성애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도 전통적 젠더 역할을 뒤집는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패션 디자이너 샤르망 최( 임성민 )의 귀국 기자회견으로 시작한다. 세련된 매너에 잘생긴 얼굴을 가진 그는 돌아오자마자 여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샤르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여자들의 사랑과 욕망을 이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샤르망은 공사 모두에서 누나 같은 변수린( 오수미 )의 돌봄과 지원을 당연하게 받고 있지만 정작 그의 집착 어린 사랑은 모른 척한다. 또한 그는 김여사( 홍명진 )의 애인 노릇을 하며 후원을 받아 패션사업을 키워나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젊은 여자들과의 성적 관계를 거절하지 않는다. 저돌적으로 그에게 다가오는 부티크 직원( 오경아 )과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 오혜림 )이 그들이다. 모든 여자의 욕망의 대상인 샤르망은 이 모든 관계의 중심인 것처럼 보인다. 샤르망을 연기한 임성민은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한 스타로 신성일 이나 남궁원 같은 이목구비 뚜렷하고 키 큰 ‘미남배우’의 계보에 있긴 했지만 훨씬 세련되며 때로는 유약하기도 한, 그래서 이성애 여성들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은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는 미묘한 스타성을 갖고 있었다. 임성민이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장길수, 1994)에서 수많은 여성의 이상형으로 꼽히는 (그래서 여성운동 활동가 강민주에게 전략적으로 납치당하는) 스타 배우 백승하로 캐스팅된 것은 그의 실제 스타 이미지에 일부 근거한 것이기도 했다. 매너 좋고 유약한 남성성에서 오는 그의 스타성은 에로영화의 선정적 노골성을 약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런 면에서 임성민은 에로영화의 타겟 관객을 이성애 여성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실제로 여성 주인공들보다 임성민을 중심에 놓고 “에·놈·쌍쉬엘(Un homme sensuel)”이라는 카피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는 주인공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스펙터클화 하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좌) <색깔있는 남자> 포스터 (우) <색깔있는 남자> 중 배우 임성민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샤르망은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자신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옴 파탈이다. 샤르망은 사업 확장을 위해 공장을 구매할 자금이 필요하다며 김여사를 부추기고, 김여사는 기어이 병들고 늙은 (가학적 성욕을 가진) 남편( 변희봉 )을 복상사하게 만든다. 범죄와 그에 따르는 불안과 집착은 연쇄성을 갖게 되고 영화는 점점 에로보다는 스릴러에 집중한다. 자금을 확보한 샤르망이 김여사를 귀찮아한다는 것을 눈치챈 변수린은 그렇잖아도 질투 때문에 마땅치 않던 그녀를 차로 여러 번 치어 살해한다. 변수린의 범죄를 알게 된 샤르망은 자신을 향한 집착이 부담스러워지고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과 새 삶을 계획한다. 주은몽은 다른 여자들과 달리 그에게 집착하지 않는 ‘쿨’한 여자다. 결국 그는 변수린을 기찻길에서 잔인하게 살해한다. 하지만 주은몽과 형사들은 그를 살인자로 의심하고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 같은 이상한 징후들이 그를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반전을 내놓는다. 그 반전을 예상하지 못한 건 영화가 반전을 위한 서사를 거의 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디아볼릭>을 넘어선 파격적 혹은 허술한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주변부 인물, 즉 조연이었던 직원과 영화 후반부에 등장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주은몽이 이 모든 계략을 지배하며 완전범죄를 저지른 레즈비언 커플이었음이 매우 급작스럽게 밝혀진다. 주은몽은 변수린에게서 벗어나고픈 샤르망의 욕망을 자극해 공장을 판매한 대금을 자신에게 투자하도록 유도했으며, 아마도 사적, 공적 공간 모두에서 프레임 바깥에 상시적으로 존재했을 직원은 온갖 정보를 수집해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변수린과 샤르망의 대화를 녹음해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밀 수 있었을 것이다. 변수린, 샤르망, 주은몽을 훔쳐보는 제3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종종 암시하지만 서사적으로 그 눈이 직원의 것일 거라는 예측을 하기는 어렵다. 프레임 바깥 존재인 그들의 비가시성과 유령성은 완전범죄와 ‘완벽한(예측 불가능한)’ 반전 서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비가시적이고 유령적인 레즈비언 커플이 변수린의 유령을 위장하고 무대화할 때 과장되게 연출된 줌 쇼트, 화려한 번쩍이는 조명, 사각앵글 등은 그들 스스로 유령적 존재였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매우 아이러니하다. 변수린이 김여사를 살해할 때 부띠크 직원을 용의자로 몰기 위해 그의 모습으로 변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과장과 위장은 1980년대 에로틱 스릴러의 문법이기도 하면서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는 레즈비언 커플의 유령적 현현의 비틀어진 알레고리가 된다. 전말이 드러나는 에필로그, 즉 마지막 장면 바로 직전 쇼트에서 샤르망은 자신을 체포하려는 형사들에게서 도망쳐 기차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간다. 기차와 부딪히기 직전 그의 신체는 프리즈 프레임 효과 속에서 동결된다. 기차의 헤드라이트 때문에 하얗게 날린 스크린은 종결보다는 다른 이미지와 서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하얀 스크린과 샤르망의 신체가 한중간에서 찢겨나가기라도 하듯 바로 이어지는 쇼트에서 창문 양쪽이 열리고 하얀 커튼이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누드로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여자, 부띠크 직원과 주은몽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샤르망의 신체와 스크린(그리고 이성애 서사)을 찢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마치 < 에이리언 >(리들리 스콧, 1979)에서 에일리언과 접촉했던 남자 승무원의 배를 찢고 아기 에일리언이 나오는 장면이, 직유적으로 (불가능한) 남성출산을 가리켰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까지 어떤 서사적 암시도 없었기에 그 반전은 그야말로 영화 전체를 헤집고 뒤집는 얼룩이 된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여자 등친 돈, 여자가 돌려받았을 뿐이야”라고 그럴듯한 범죄 동기를 던져줌에도 이 반전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한 에필로그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분석하며 그의 회화가 구상이나 추상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상을 뒤흔들고 해체하는 힘의 운동(강도)에 가깝다고 분석한 것에 가깝다. 들뢰즈가 ‘돌발흔적’이라고 부른 것 말이다. 돌발흔적은 구상에 가까운 그림 위에 우발적이고 맹목적으로 던져진 국지적이고 질료적인 손의 흔적을 지칭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에서 퀴어적인 것은 영화 내내 이어진 팜 파탈과 옴 파탈 간의 연쇄 범죄도, 비규범적 섹슈얼리티도, 레즈비언 커플이 가시화되는 에필로그도 아니다. 그보다는 국지적인, 흰 스크린 위의 얼룩과도 같은, 마지막 한 씬으로 영화 전체를 뒤흔들고 반향을 만드는 힘의 강도다. 무엇도 선명하게 의도되지 않고 혼탁하기 그지없다. 외삽도 내삽도 아닌 방식으로 존재하며 우발적으로 스크린을 찢어내며 등장한 돌발흔적. 레즈비언 커플은 그야말로 샤르망의 몸, (혹은) 스크린을 찢고 자진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기존의 (이성애) 서사를 완전히 망쳐 놓는다. 영화는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듯 “아... 색깔있는 남자여 안녕”이라는 대사를 던지며 웃는 주은몽의 얼굴로 다시 한 번 프리즈 프레임하며, 샤르망의 프리즈 프레임을 취소시키고, 그 자신의 얼굴로 끝을 낸다. 에필로그 ‘얼룩,’ ‘돌발흔적’에 그칠 수밖에 없던 레즈비언 커플은 기껏해야 하나의 씬, 비밀스러운 작은 침실에서만 가시화될 수 있었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두 편의 퀴어 장편영화 < 딸에 대하여 >(이미랑, 2023)와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는 사회와 공동체에 의해 지워버려야 하는 얼룩과 불쾌한 냄새로 취급되는 레즈비언 커플의 가족구성권 혹은 자기 자리와 공간의 확보를 다루고 있다. <색깔있는 남자>의 ‘에필로그’는 국지적인 것이 바탕을 바꾼다는 면에서 퀴어적으로 독해될 수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반향을 만들어내는 얼룩의 자리는 강제된 것이고 실제로 그 자리 이외의 것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에 대하여>와 <럭키, 아파트>는 레즈비언 커플들이 더 이상 얼룩과 냄새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며, 돌발흔적은 오히려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넘어 상상된 관계들과 공동체들의 이접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말한다. 돌발흔적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촉지될 수 있다. <딸에 대하여>, <럭키, 아파트> 중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야심한 밤의 주유소, 프레임 오른쪽에 도열한 급유기들과 바닥에 무질서하게 그려진 흰색의 사각형, 후경의 도로 뒤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프레임을 수직으로 가르며 달려와 카메라 앞에서 멈춘다. 프레임 왼쪽에서 주유원이 프레임 인하여 주유구를 열고 기름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이 깊은 공간의 가장 앞쪽에서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을 주는 긴 쇼트가 지속되는 동안 주유가 끝나고 오토바이의 라이더가 시동을 걸자 카메라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넓어진 화각의 카메라는 축축하고 어두운 도로, 전반적으로 컴컴하고 듬성듬성 불이 켜진 건물들, 황녹색 신호등 사이를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인도하는 것 같다. 하나의 쇼트로 서술되는 이 신에서 영화의 주인공 태훈(서준영)이 막 도착했고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될 것임을 짐작한다. < 회오리 바람 >(2009)은 기대감을 형성하는 설정의 기능을 통해 서사의 심부(深部)로 관객을 끌고 가는 인상적인 프롤로그를 제시한다. 플롯을 주재하는 모티프는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구조이다. 태훈과 그의 동급생 여자 친구 미정(이민지)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속초여행을 다녀오는데, 이 일탈적 여행이 초래한 여파, 악화하는 관계의 추이가 내러티브의 골간을 이룬다. 서로에 대한 깊은 애착을 실현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소년 소녀에 관한 이 로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익숙한 스토리이다. 이와 같은 유서 깊은 스토리 유형의 장점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내러티브를 파악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들은 모두 그런 장면들이다. 장건재 감독의 성취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부유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요동하는 존재의 상태를 시청각적인 기술(記述)을 통해 서술해낸 것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 이후 ‘3개월 전, 고2 겨울방학’으로 시간이 점핑하여 속초여행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플롯은 저들의 존재와 앞날을 암시하는 한 신을 제시한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태훈과 미정은 각각 흰색 콘크리트 기둥과 쇠기둥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쓰레기통에 담배를 비벼 끄고 프레임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태훈을 카메라가 따르는 동안 미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외면하는 자세로 선다. 짙은 그림자가 잠식한 프레임 뒤편에서, 숨겨져 있던 쇠기둥들을 걸치고 태훈은 한 사내에게 “서울에서 올라왔는데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여비를 구걸한다. 태훈은 서울로 돌아가 계좌로 빌린 돈을 붙여드리겠다고 청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 사내는 돈이 없다며 거절한다. 곤란한 표정의 태훈이 대합실 입구에서 안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미정은 그가 다음 상대를 골라 프레임 왼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시 바닥으로 고개를 떨군다. 태훈은 일군의 젊은 여행자들에게 같은 요청을 하지만 용건이 끝나기도 전에 냉랭한 거절의 답을 듣는다. 다시 프레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대합실에서 나오는 중년의 여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할 때 상황이 반전된다. 태훈의 기색을 살피던 여인은 “얼굴이 아주 심각하구만”이라고 관심을 보이더니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는 듯, “붙여준단 소리 하는 학생은 또 처음 보네, 인상이 좋아서 꿔주는 거야”라며 지갑을 연다. 구제의 가능성이 보이자 “도착하는 대로 꼭 붙여드릴게요”라고 다짐하듯 말하는 태훈에게 이 구원자는 “믿어보는 거지 뭐, 진짜 줄래나 안 줄래나”라고 혼잣말을 한다. 태훈의 이동 경로를 따라 프레임 앞으로 슬그머니 이동한 미정은 콘크리트 기둥 뒤에서 태훈과 여인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관객의 관점을 공유한다. 물경 2분 20여 초 간 지속하는 기나긴 이동 쇼트는 불안한 구도와 기우뚱한 자세로 선 소년 소녀의 현재와 앞날에 대한 적확한 묘사이다. 호의를 보인 구원자의 바람과 달리 태훈이 빌린 돈을 돌려주었을 가능성은 없다. 태훈에게는 서울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여비가 있었으나 다만 초코바와 우동을 사 먹을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가벼운 배신의 삽화는 다소간 약삭빠른 태훈의 성격을 암시하는데, 이와 같은 캐릭터의 일관성은 PC방에서 마주친 건달들을 속이려다 숨겨둔 돈과 신발을 모두 빼앗기고 린치까지 당하는 장면(이 신은 마치 선의의 구원자를 배신한 이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인다)에서 섬세하게 유지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태훈의 움직임과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도 가담하지도 못하는 미정의 제스처를 한 호흡으로 담아낸 롱테이크 쇼트는 이후에 진행될 서사의 궤적을 지시한다. 저들은 이 즉흥적인 바다 여행을 빌미로 강제로 이별하게 될 운명이다. 소년은 변덕이 있고, 즉흥적이며, 괴팍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비해 소녀는 주변을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소년은 둘의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을 보이지만 소녀는 이미 결단을 내리고 그를 외면한다. 태훈은 새로운 관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미정의 침실 창문을 두드리거나 은밀하게 뒤를 밟아 알아둔 학원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태훈의 불쾌한 행동과 그를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미정의 절교 선언은 겨울 바다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이미 예견된 바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두 사람의 선택은 미세하게 갈라지게 된다. 표면적인 이야기 너머를 향하면서 영화의 의미맥락을 풍부하게 하는 영화적 묘사의 힘은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보여주는 후속 신에서도 드러난다. 자식들의 일탈을 눈치챈 미정의 부모가 태훈과 그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장면이다. 얼마간 거들먹거리는 성격을 가진 미정의 아버지(최효상)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두 아이에게 각자의 행적을 적게 하고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를 확인하려 한다. 범죄 조서를 꾸미듯 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저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스토리를 적어 냈을 때 미정의 아버지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발목에서 칼을 꺼내 나무 탁자 위에 꽂는다. 핸드헬드 쇼트는 극도의 혼란을 전달하고, 점프 컷은 미정의 뺨을 때리고 골프채로 장식장 유리를 부수는 아버지의 광란의 퍼포먼스를 단속적으로 보여준다. 태훈을 향한 아버지의 욕지기는 별안간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텔레비전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결된 것임이 밝혀진다. 상이한 타임 라인을 잇는 사운드의 연결 패턴은 이후에도 반복될 것이다. <회오리 바람>의 특이점은 소년, 소녀가 그해 겨울의 체험을 겪어야 했던 이전의 상황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회귀적인 지향성에 근거하여 그들을 둘러싼 주변이나 세계와의 접점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로 표랑하는 열여덟의 특성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외 상황, 캐릭터, 서사를 전달하는 연출의 스타일 전략, 디테일은 잘 조율되어 있으며 디지털 영화 제작의 가능성이 만개하던 시절 DV 캠으로 촬영한 이미지의 생생함, 시간과 주의를 낭비하지 않는 촬영, 섬세한 연기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빈번한 롱테이크는 나른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기여하고 상당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부 묘사는 반항심에 찌든 십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바람의 이미지, 텍스처는 거칠지만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미성숙한 시절에 관한 이 가슴 아픈 이야기의 무드와 잘 어울린다.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훈의 오토바이가 행인을 친 뒤 급격히 암울해지는 분위기는 텅 빈 겨울 바다를 무대로 들려오는 태훈과 미정의 화면 바깥 대화와 대비를 이룬다. 지나 버린 시절의 격정 안에 영화가 포괄하고자 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에서 확실해진다. 험준한 산길과 사막을 걷는 태훈이 모습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방황이 오래 지속될 것임을 말한다. 시간이 다시 점핑하여 ‘3개월 후, 열아홉’이 된 미정은 진즉에 상실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체육관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목엔 태훈이 준 목걸이가 매달려 있다. 얼마 후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들리더니 바닷바람을 맞은 듯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두 사람의 미래가 완전히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시간은 겨울 바닷가 여행이 시작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바람의 이미지는 백사장을 덮은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내며 태훈이 움직일 때 매섭게 부는 바람의 사운드로 이어진다. 미정 역시 태훈과 마찬가지로 잘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주유소, 터미널, 미정의 집, 바닷가 눈밭에서의 움직임과 정지, 동요는 영화가 묘사하고자 한 ‘바람’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바람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광기를 부리고, 차분하고, 들떠 있고, 안정을 주고, 불안하고, 차갑고, 따스하다. 정제되지 않은 시간과 존재를 흔드는 바람의 색깔은 열여덟의 고뇌와 황홀경, 삶의 혹독함을 이기는 기억을 생생하게 회상하는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6.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