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 감독
- 최예원
- 제작년도
- 2021
- 출연
- 유시현, 권민서, 양건후, 박은형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란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 < 휴가 >(2020)의 주인공은 집단정리해고 무효소송을 진행하며 5년째 천막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노조원 재복(이봉하)이다. 해고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많은 영화들이 갈등이 극적으로 폭발하는 투쟁 현장이나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의 지난한 시간에 집중해 온 것과 달리, <휴가>는 5년을 끌며 진행된 재판에서 결국 패소하고 난 이후의 시간을 담는다. 재복과 함께 노조를 만들고 농성장을 지켜왔던 영석(서광택) 그리고 만용(황정용)은 허망, 좌절, 분노, 원망, 야속, 피로, 무력을 겪는다. 이미 고공투쟁까지 하며 극한의 상황까지 가봤던 이들은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법적 절차가 끝난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황망해 한다. 그래서 천막에 모여 앉아 밥을 먹던 그들은 서로를 탓하기 시작한다. 이란희 감독은 무력한 분란의 대화 속에서 오히려 복직투쟁의 노동을 일일이 드러낸다. 노조를 만들고, 전단지를 뿌리고, 연대투쟁을 하고, 여러 결정을 내리기 위해 무수한 회의를 하고, 문서작업을 하고, 고공투쟁을 하고, 재판을 준비하고, 천막을 지키고, 밥을 하는 등 투쟁에는 무수한 노동이 있다. 특히 재복은 앞에 나서는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알뜰살뜰한 성격에 맞게 매일 식사를 준비하고 동료들의 건강을 챙기는 등 농성장의 살림을 맡아왔다. 투쟁현장에서의 재복의 돌봄노동은 반복적으로 묘사되던 중년 남성 해고노동자의 전형성을 깨트리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다툰 후에도 여전히 무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셋은 투쟁 5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갖기로 한다. 그들은 ‘휴가의 시간’을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들이 했던 투쟁이 고된 노동이었음을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가 맡아온 고유의 역할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휴가의 시간은 이후의 시간도 이전의 시간도 아니다. 어쨌든 패소로 한 단락이 만들어진 ‘선인가구’ 투쟁의 역사에서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것처럼 “옛 것은 죽는데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위기의 시간이고 그렇기에 마침내 사유가 가능한 시간이기도 하다. 투쟁을 계속 이어나갈지 아니면 접을지, 이어나간다면 무엇을 이루기 위해 투쟁을 하는지, 투쟁에서 그동안 해온 수많은 노고는 무엇을 변화시켰는지, 재복에게 함께 해온 동료들은 어떤 의미인지, 일과 노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들의 생계와 일상은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그동안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멈춰놨던 질문들이 틈새의 시간에서 한꺼번에 쏟아진다. 이 휴가와 질문은 재복이 최종적으로 농성장을 아예 떠나는 파국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갈등 끝에 복직투쟁을 포기하는 건 ‘현실성’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영화들이 선택해왔던 결말이기도 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중요한 요즘 시대에 특별한 동기나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재복이 돌아온다는 건, 언뜻 개연성 떨어지는 ‘이상적’이거나 ‘미련한’ 결말처럼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휴가>는 투쟁을 그만둘 충분히 납득 가능한 동기인 가족을 등장시킨다. 농성장을 나와 집으로 향한 재복은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딸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5년 동안 부모의 돌봄 없이 스스로 커온 딸들에게 재복의 갑작스러운 돌봄은 어색함을 넘어서 때늦은 간섭과 잔소리가 된다. 이미 두 딸은 가난과 부모 없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특히 자신도 미성년이면서 동생을 돌보는 역할까지 해야 했던 큰 딸 현희(김정연)는 재복에게 농성장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재차 다그친다. 재복은 대학에 수시 합격한 큰 딸의 예치금 30만원을 구하기 위해 친구에게 돈을 빌리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재복이 애초부터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며 그가 해온 투쟁의 가치를 무화하고 조롱한다. 재복은 결국 친구 우진이 매니저로 있는 수제가구 공방에서 휴가 기간 동안 일을 하게 된다. 재복은 다시 일을 시작하며 노동의 기쁨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매니저인 우진은 정확한 작업 지시도 없이 재복을 다른 직원인 준영에게 떠맡긴다. 그러나 준영은 매사 심드렁하고 자기 일만 할뿐 재복을 도와줄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초반에 실수를 하던 재복은 머지않아 일의 감각을 찾게 된다. 그가 꼼꼼하게 나무를 자르고 칠을 하고 사용한 장비들을 정성스럽게 닦아놓는 장면에서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재복은 무엇보다 돈을 벌어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데서 큰 기쁨을 느낀다. 현희의 예치금을 마련하고 둘째 딸 현빈(이승주)에게는 원하던 패딩점퍼를 선물해준다.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함께 저녁밥도 먹는다. 그러나 재복은 또한 오랜만에 일상을 찾은 일터에서 오늘날의 불안정한 각개전투의 노동현장과 착취를 목격하게 된다. 재복이 공방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원래 일하던 이주 노동자가 비자 때문에 한국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재복의 사수인 20대 초반의 준영(김아석)은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준영은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밥 먹고, 아파도 혼자서 견딘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누구의 도움을 받아본 적 없는 준영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이처럼 보인다. 준영은, 타인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싶지 않듯이 자신도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생존 방법을 터득한 듯하다. 재복은 매번 준영에게 ‘도와줄까?’ ‘점심 먹으러 가냐?’고 묻지만 그는 괜찮다고 말하거나 그의 말을 아예 차단한다. 준영이 하루 종일 끼고 있는 무선 이어폰은 생존하기 위해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혼자’를 선택한 이의 장치다. ‘혼자’의 고립된 삶은 그가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살아가고 살아남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인 방법일 뿐이다. 재복은 먼저 살아본 어른으로서, 그리고 복직투쟁을 겪은 노동자 선배로서 함께 일하는 법을 알려준다. 도시락을 싸와서 밥을 같이 먹고 나무 널판지가 떨어져 준영이 부상을 입자 떨어트린 휴대폰을 집까지 가져다주고 저녁을 같이 먹고 냉장고를 채워주고 보일러를 고쳐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산재신청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재복이 준영의 산재신청을 도와주고 친구인 우진에게도 산재신청을 해주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노조를 만들고 복직투쟁을 하면서 노동자로서 성장해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투쟁은 그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될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기존의 권력관계를 바꿔보려 하거나 승패 이외의 가치를 경험해 본적이 없는 준영은 일을 하다 다치게 된 것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린다. 심지어는 매니저인 우진이 차로 병원을 데려다주고 다리가 다 낳으면 직장으로 돌아오라고 한 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한 일이라고 말한다. 재복은 “맨날 당하고만 살 거냐”고 재차 말하지만 준영은 “아저씨, 저 그런 거 안 해요”라고 말한다. 준영에게 ‘그런 거’는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일을 하는, 손해 보는 짓이다. 재복은 ‘휴가’의 시간에 복직투쟁을 통해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일상, 즉 일터로 돌아오지만, 그는 거꾸로 일상에서 노동착취와 투쟁의 현장을 목격한다. 영화는 2층에 있는 공방 창문에서 건너편 1층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준영을 내려다보는 재복을 보여준다. ‘어디 가냐?’는 재복의 말에 대답도 없이 나가던 준영이 겨우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장면은 이후 다시 동일한 시점으로 반복된다. 준영이 다치고 현장실습을 나온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 민재(박재형) 역시 준영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에 혼자 슬쩍 나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먹는다. 카메라는 재복의 시점으로 준영을 바라보던 것과 마찬가지 각도로 그런 민재를 2층 창문에서 바라본다. 무선 이어폰과 편의점 컵라면으로 압축되는 젊은 세대의 노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복의 큰 딸 현희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복직투쟁을 하는 노동자로서 당사자인 재복은 휴가를 통해 일상에서 오늘날의 노동현장을 목격한다. 재복은 휴가를 통해 일상과 투쟁현장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는 또한 농성장에서 하던 돌봄 노동을 일상에서 반복한다. 자신의 집과 준영의 집 모두에서 냉장고를 청소하고, 음식물을 채우고, 반찬을 하고, 밥을 차려 같이 나눠 먹는다. 투쟁은 한편으로 주위를 살피는 목격이고 돌봄이다. 그의 일상은 투쟁의 노동으로 채워진다. 재복은 휴가 기간 동안 만용의 전화를 받지 않으며 농성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 우진의 취직 제안을 물리치고 농성장으로 돌아간다. 열흘의 휴가가 끝난 후 그는 갖가지 반찬을 해서 반은 딸들을 위한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반은 농성장에 들고 갈 가방에 싼다. 영화는 재복이 집의 문을 닫고 나가 농성장으로 돌아오는 길을 정성들여 보여준다. 준영은 재복의 설득에 회사에서 치료비를 받게 되었지만, 재복이 민재까지 돌볼 수는 없다. 재복은 대신 자신의 농성장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투쟁은 다른 노동현장의 투쟁으로 이어져 있다. 재복은 자신만 잘 살기보다는 함께 잘 살기를 선택한다. 그 길은 어둡고 불안할 수 있지만 그는 돌봐야할 동료가 있다. 그의 농성장에도 그가 목격해야 할 이들이 있다. 재복은 농성장에 걸린 투쟁기간을 알리는 표지판 ‘1893일째’에서 3을 4로 바꿔 놓으며 투쟁의 일상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고공투쟁에 들어간 영석에게 그가 좋아하는 소시지 볶음과 반찬을 올려 보낸다. 위를 올려다보는 재복의 시점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던 아이들을 내려다보던 시점과 중첩된다. 영화는 묵묵하고 담담하게 재복의 목격과 성찰의 시간을 지켜보고, 그가 돌아오는 길, 즉 함께 살기를 선택하는 그 길이 오히려 현실이고 사실성에 근거한 것이라 말하며, 해고노동자의 존엄과 품위를 보여준다. 재복은 그렇게 농성장에 돌아와 ‘휴가’라는 시간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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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의 매니저는 < 타짜 >의 모든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카페 창업의 꿈을 품고 매니저가 된 지 1년, 쥐콩만한 월급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마감 후에는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컵라면을 먹었다. 나도 종종 그와 함께 했다. 그는 스니커즈 수집이 취미였고 옷을 잘 입었으며 한번도 험한 말을 하거나 알바생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가 험한 말을 할 때는 오로지 <타짜>의 대사를 따라 할 때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안경잽이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였다... 고니야? 담배하나 찔러봐라. 한창 유럽산 예술 영화에 빠져 있던 나에게 <타짜>는 그저 그런 영화였다. 영화계는 < 범죄의 재구성 >이 개봉했을 때 이미 천만감독이 될 최동훈의 잠재력을 알아봤지만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고 간혹 <리피피> 같은 영화가 레퍼런스로 언급되면 줄스 다신의 영화를 찾아봐야겠군! 하고 중얼거리며 서치를 했다. 그러다 줄스 다신이 훗날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이 되는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와 결혼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그리스의 파시스트들과 싸운 용기 있는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결국 줄스 다신과 멜리나 메르쿠리가 함께한 영화 < 일요일은 참으세요 >에 이르게 되는 이상한 경로를 밟을 뿐이었다. 매니저가 <타짜>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호구”로 간혹 예림이! 예림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나쁜놈이야 같은 대사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호구” 캐릭터에 대한 그의 애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20대 내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만나본 최고의 매니저였고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남아있지만(그가 어디선가 이 글을 읽기를) 당시에는 왜 이렇게 <타짜>를 좋아할까?? 뭐가 그리 좋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타짜>는 개봉 당시의 히트를 넘어 21세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고전으로 등극했고 수많은 밈을 낳았으며 거의 모든 캐릭터가 재생산됐다. 그러니까 금정연이 박무석이 어쩌고 저쩌고 했을 때 나는 매니저가 떠올랐고 2008년 즈음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컵라면을 먹던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비록 우리는 망원동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아메리카노와 휘낭시에를 먹고 있지만 말이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박무석이 누군지 몰랐다. 아마 박무석을 아느냐 알지 못하냐에 따라 한국 영화-문화에 대한 친숙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를 K-man지수K-man factor라고 부르자. 당신이 만약 박무석을 알고 박무석이 부른 노래 제목까지 안다면 당신은…). 그렇죠, 지돈씨. 금정연은 이주 전 일산으로 이사했고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육아와 집필을 하게 되었다며, 결국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네마의 실행Exercise”라고 했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말했죠. 나의 목표는 시네마의 실행이 폭넓은 인류학적 형상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통과하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일련의 경로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오….. 메츠의 이론적 논의에서는 시네마 장치의 정신분석학적 구성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부분은 우선 제쳐두기로 했다(어쩌면 영원히 제쳐둘지도…). 우리가 만들 오버디터미네이션 에세이 필름overdetermination essay film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에서 중요한 건 “인류학적 형상들”이라는 말이며 우리의 목적은 21세기 한국 영화가 포착하고 실행되어 루핑 작용을 일으킨 계기들을 탐색하여 상상적 테크닉으로서의 인류학 장치인 한국 영화를 수행하는 거라고, 금정연은 말했다. 뭐라고요? 이제부터 저를 K정연이라고 불러주세요. 금정연은 Keum정연이고, 그러니까 K정연… 나는 정연 K.가 맞는 거 아닌가 잠깐 생각했지만 나름 생각이 있겠지.. YS나 DJ처럼 JY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는 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동시에 20대 중반 일했던 (또 다른) 카페의 사장이 나를 JD라고 불렀던 게 떠올랐고 최근에 지인과 나눴던 대화도 떠올랐다. 지인은 봉준호의 이름이 준호라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냐고 말했다. 친구들은 준호라고 부르겠지? 아니, 친구들도 봉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근데 그게 중요해? 이게 무슨 대화야? 우리는 잠시 의문에 빠졌지만 지인은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번 씨네21에서 뽑은 2010년에서 2020년 영화 베스트10에서 통합 1위를 먹은 영화가 < 기생충 >이야. 그 사실을 기억해. 음……(무슨 상관?) 하지만 호칭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다. 특히 영화의 이름에 관한 문제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왜 영화를 무비라고 했다가 시네마라고 했다가 픽쳐라고 했다가 필름이라고 하는가. 하물며 지금은 필름으로 찍지도 않는데! 넷플릭스의 토크 프로그램 <사인펠드와 함께 커피 드라이브>에서 사인펠드와 윌 패럴은 이 문제에 대해 간단히 정의 내린다. (<커피 드라이브>는 억만장자 코미디언인 사인펠드가 고급 클래식카를 타고 명사들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으로 버락 오바마도 출연했다. 심지어 재임 중에. 세계에는 제정신이 아닌 지도자가 너무 많다: 미국의 지도자 오바마 왈). 사인펠드 : 이 단어들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순위를 매겨봐요. ‘필름’, ‘픽쳐’, ‘무비’ 패럴 : 가장 가식적인 단어는 픽쳐예요. It’s a wonderful Picture. 사인펠드 : 아주 의식적으로 멋있는 척 하는 것 같아요. 패럴 : 두 번째는 필름이요. 무비가 확실히 덜 가식적이에요. 사인펠드 : 무비, 필름, 픽쳐에 나오는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요? 패럴 : 몰라요… 그래도 저는 영화가 너무 좋아요…. 존 포드는 자신의 영화를 절대 film이나 movie라고 하지 않았어요. K정연이 말했다. 항상 picture라고 했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cinema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K정연이 콩고물 휘낭시에를 한입 잘라먹으며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네마를 해야합니다. 비록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10 중에 <스탭 브라더스>가 있지만 말이에요. * 참고. 윌 패럴이 주인공을 맡은 <스탭 브라더스>는 이혼 가정의 두 백인 극우파 망나니가 중산층 속물 좌파로 개종하는 과정을 그린 유사 가족 로맨스로 지금은 주류 좌파 감독으로 변신한 아담 맥케이가 연출했다. 혹시 영화가 궁금한 사람은 보지 마시길… 시네마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시네마는 극장과 영화 산업 전반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로 정의된다. 가끔 무비와 차별되는 예술 영화를 지칭하는 어휘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시네마는 그게 아니었고 특히 21세기 한국 영화로 시네마를 수행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전후 일본에서 활동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하시모토 시노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복안의 영상> 시작을 일본 최초의 영화주제가 “도쿄행진곡”(1929)으로 시작한다. 시네마를 보시겠습니까, 차를 마시겠습니까. 차라리 오다큐선을 타고 도망가시겠습니까. 변해 가는 신주쿠… <도쿄행진곡>은 기쿠치 간의 장편 소설을 미조구치 겐지가 감독한 것으로(기쿠치 간은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을 제정한 사람이다), 주제곡의 가사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상징 시인 사이조 야소가 작사했다. 시네마가 나오는 구절의 가사는 원래 “장발의 마르크스 보이 / 오늘도 붉은 사랑을 안고”였으나 검열을 두려워한 레코드 회사의 요청으로 바꿨다고 한다. 마르크스를 시네마가 대체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약하자면) 시네마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삶의 문제다. 시네마를 하는 것, 시네마를 하지 않는 것 모두 생활을 새롭게 조직한다. 정연씨가 < 나랏말싸미 > 대본을 쓴 것처럼요? K정연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지돈씨, 지돈씨는 그 영화 안 봤잖아요. 어떻게 안 볼 수가 있죠? 내가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정연씨에게 여러 번 얘기했지만 마음이 아파 볼 수가 없었다. 왜 마음이 아프냐고? 그건 <나랏말싸미> 네이버 평점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얼마 전 왓챠로 <나랏말싸미>를 봤고 정연씨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다. <나랏말싸미>는… 한국 영화입니다. 조선 시대가 배경이지만 노래하는 장면도 있고 목욕 장면도 있고. K정연은 잊고 있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송강호가 말하죠.. 아픕니다. 아파요… 그 씬 쓰면서 아저씨들이 참 좋아했는데… 우리는 성산초등학교에서 망원 유수지에 이르는 골목을 산책하며 한국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의 곤혹스러움에 대해 대화했고 - K정연은 익명의 트윗을 인용했다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싫어한다, 미국의 씨네필만 빼고” – 제3세계의 씨네필들은 결국 자국 영화를 발견할 유무형의 의무 또는 압박을 느낀다, 문학이나 미술이 그렇듯 로컬의 역사와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먹힐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기반이 사라진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따위의 이야기를 나눴다. 산책이 마지막에 이르렀을즈음, 우리는 우연히 ㅁㅈ출판사의 편집자 h와 마주쳤다.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분으로 감동을 주는 책의 편집자이자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거리에 서서 출간될 책들과 – 알렉산더 클루게, 스베틀라나 보임,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등등 두근거리는 이름들이 언급됐고 – 사소한 근황을 주고받았다. 두 분은 요즘 뭐하세요? 영상자료원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아, 그러고보니.. 편집자 h가 말했다. 영화평론가 임재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순간 K정연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말씀을? 편집자 h에 따르면 최근 임재철 선생님은 서교동과 망원동 일대에 출몰하며 지식을 전파 중이었고 K정연도 잠시나마 숙주가 된 적이 있었다. 나도 한번에 불과하지만 임선생님이 주관한 영화 상영회에서 K정연과 함께 장 피에르 고랭의 <Routine Pleasures>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임선생님은 고랭과 아녜스 바르다, 자크 드미에 대한 차마 여기 적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임 선생님이 언젠가 정연씨를 만난 다음 날 저한테 전화를 걸어 정연씨 얘기를 했어요. 편집자 h가 말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금정연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어쩌면 금정연이 자기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던가…아닌가… 편집자 h와 헤어지고 난 뒤 나는 K정연에게 물었다. 정연씨 대체 임재철 쌤과 무슨 얘기를 나눈 거예요? K정연이 말했다. 지돈씨.. 그건… (다음회에 어쩌면 계속…) *참고도서 『복안의 영상』(하시모토 시노부, 강태웅 옮김, 소화, 2012) 『존 포드』(태그 갤러거, 안건형, 신범식 옮김, 이모션북스, 2018) 『영화에 관한 질문들』(스티븐 히스, 김소연 옮김, 울력, 2003)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채플린의 영화는 항상 서글프고 처량 맞았다. 넘어지고 고꾸라지고, 요상한 것 (이를 테면 ‘ 황금광 시대 ’에서의 고무부츠 같은것) 을 우걱우걱 씹어대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그의 이야기는 웃음 뒤로 지긋지긋한 가난과 계급적 불평등을 이고 살았던 노동자와 이민자들의 역사를 드러냈다. 그의 사회적 일침이 더더욱 드라마틱하고 절실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채플린의 영화들이 언어가 아닌 몸으로 이야기하는 무성이었고 화려함과 꾸미가 빠진 흑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진 건 ‘몸’ 뿐인 노동자들의 설움이 슬랩스틱과 피상의 색(色) 이 빠진 현실의 명암(明暗)만으로 시대의 고통을 공유했다. 고봉수 연출의 < 다영씨 >(2018) 역시 비슷한 화법으로 세상의 고달픔을 나눈다. 색과 언어의 소란함없이 노동의 처절함을, 노동계급의 집단적 서러움을 로맨틱 코미디의 형태로 그린 흑백무성영화, <다영씨>는 2000년대에 재등장한 채플린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 영화는 보름달 빵과 바나나 우유를 입에 꾸겨넣고 있는 퀵 서비스기사, ‘민재’의 클로즈 업으로 시작된다. 오토바이 위에 엉거주춤 앉아 빵을 먹고나면 본격적으로 민재의 부역이 시작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빌딩을 등반 하듯 올라갔다 내려오고, 배달 중에 물건을 들고 넘어져 박스 안 상품이 깨지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민재의 일상에선 다반사다. 맨날 먹는 보름달 빵 만큼이나 지겨운 일상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다영씨’에게 온 택배를 배달하는 일이다.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그녀는 밤낮 피곤과 구박에 쩔어있지만 민재가 나타나면 함박미소를 머금는, 그에게는 달콤상큼 귤 같은 존재다. 민재의 착한 동료들은 다영씨 앞으로 온 모든 택배를 민재에게 몰아준다. 그녀에게 택배가 도착할 때 마다 민재는 싱글벙글하며 귤을 챙겨 주머니에 넣는다. 자신의 쑥쓰러운 미소를 들키지 않기위해 헬맷으로 얼굴을 덮고 다영씨 책상에 몰래 귤을 얹어 놓으면 민재의 비밀스러운 임무가 끝난다. 가끔 마법처럼 생겨나는 귤 말고는 다영씨에게도 인생의 낙이 없다. 사무실에는 다영씨를 무시하고 따돌리는 네 명의 찌질한 남자 상사들과 그들을 여왕벌처럼 군림하는 사장의 딸이 있다. 상사들은 시도때도 없이 다영씨에게 커피 심부름과 각종 잡일을 시켜며 그녀의 하루를 지옥으로 만든다. 한편 민재는 다영씨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택배일을 그만두고 그녀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낸다. 민재의 낮은 학력과 경력을 비웃던 상사들은 이력서에 쓰여진 그의 희망 월급 ‘50만원’에 눈을 번쩍 뜨고는 그를 고용한다. 민재가 다영씨의 회사로 출근을 시작하면서 택배기사의 삶으로 보여졌던 고단한 노동자의 촌극은 중소기업으로 공간을 이동한다. 비정규직인 다영씨는 정규직 직원들의 회식에 초대를 받지 못하고, 늘 컵라면으로 때우며 야근을 하지만 회사는 계약기간을 늘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의 ‘웃픈’ 슬랩스틱은 꿋꿋이 이어진다. 코미디의 대부분은 여왕벌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비위를 맞추는 상사들 4인방과 다영씨를 위해 그들을 골탕먹이는 민재의 소소한 복수극으로 채워진다. 궁극적으로 <다영씨>는 노동현장에서 마주하는 비정한 현실을 다루고 있으나 민재의 직업전환으로 인해 대비되는 전반과 중반이후, 즉 노동직과 사무직의 대비를 통해 기업 내에서의 계급구조를 극명히 드러내기도 한다. 가령, 민재의 짝사랑을 위해 택배기사들이 민재를 도와주고 (동등한 위치에서) 연대하는 반면, 회사의 직원들은 대리, 과장, 부장의 서열을 통해 분리되어있을 뿐 아니라, 이를 지배하는 금수저 출신 사장 딸의 존재를 통해 계급적으로도 분리되어 있음을 명시한다. 결국 이 엄청난 서열과 계급의 벽은 다영씨의 수호천사로 회사에 ‘헐값’에 입사했던 민재도 어쩔수 없는 불가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결국 민재는 회사를 나와 퀵서비스 기사로 돌아가고 다영씨는 고난 뿐인 그 언덕에 남는다. <다영씨>에는 코미디영화에 있을법할 유쾌한 엔딩이 없다. 커플의 진한 키스신으로 끝나지도 않고 주인공의 팔자 전복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퀵서비스 기사로 다시금 나타난 민재와 다영씨의 재회는 절절하게 느껴진다. 러닝타임 60여 분에 담긴 노동자의 고단한 삼라만상 끝에 보여지는 이들의 교감은 분명 로맨스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대와 교감의 온기가 넘치는 이 영화의 엔딩은 참으로 귀한 코미디적 엔딩이자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엔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