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러스라인
- 감독
- 리차드 아텐보로
- 제작년도
- 1985
- 출연
- 마이클 더글라스, 알리슨 리드, 빅키 프레더릭, 카메론 잉글리쉬, 야밀 보게스, 그레그 버지, 오드리 랜더스, 팜 클린거, 블레인 사바지, 마이클 브레빈스
한 평생 타인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삶이란 어떤 걸까? 그리고 나의 삶을 규정하는 무수한 명명과 논평들을 뚫고 나와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어떤 물질적 조건과 태도가 필요할까? 다큐멘터리 < 나와 부엉이 >(박경태, 2003), < 아메리칸 앨리 >(김동령, 2008), < 거미의 땅 >(김동령·박경태, 2012)을 통해 동두천 기지촌 여성의 삶의 서사화와 그 재현 미학을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김동령·박경태 감독의 최신작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2019)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진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주인공이자 영화 속 판타지 서사의 공동 창작자이기도 한 박인순은 소위 ‘양공주’로 칭해져온 ‘미군 위안부’였다. ‘미군 위안부’의 생애는 전쟁과 탈식민, 젠더와 섹슈얼리티, 계급과 지역 같은 한국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교차하고, 저간의 소문과 험담, 의회와 법정의 증언록, 뉴스보도, 학술저작, 소설·연극·영화 같은 예술매체 등에서 명명되고 의미지어지고 해석되어 왔다. 그러는 동안 정작 당사자들은 각기 다른 서술자들의 관점과 입맛에 맞게 자신들의 삶이 맞춰 깎여나가고 조형되는 것을 목도해왔다. 이렇게 풀려나온 다수의 이야기들은 ‘미군 위안부’에 대한 정형화된 형상을 반복해온 측면이 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그러한 이야기들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박인순이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장르와 형식으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갈 방도를 찾도록 돕는다. 한평생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휘둘려온 박인순은 적어도 죽음만은 자신의 의지와 방식대로 선택하고자 한다. 사실 ‘미군 위안부’에게 있어 죽음조차도, 특히 비극적인 사건이 된 죽음들은 다른 쟁점을 선동하는 도구가 되거나 자극적인 이야깃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박인순은 적어도 죽음의 방식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죽음의 메신저들과 대면한다. 영화는 박인순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화면 사이즈와 내레이터를 바꿔가며 그녀에 대해 이야기 해온 화자들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그 화자들에는 김동령과 박경태 감독도 포함된다. 두 감독은 기지촌 여성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두레방’에서 미술치료에 참가한 모습부터(<나와 부엉이>)부터 매일같이 황량한 산등성이와 동네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미국에 남겨두고 온 딸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낭독하는 풍경까지(<거미의 땅>) 박인순과 20년 가까이 함께 영화작업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자신들의 기존 작업 혹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메타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오프닝에서 박경태 감독은 스스로 다큐멘터리 감독을 연기하며 국가배상소송을 위해 실태조사를 하는 교수(변중희)와 영상촬영을 담당한 신진 미술작가를 박인순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데려가고 엔딩에서는 산을 올라가는 박인순을 뒤따르는 카메라 뒤의 목소리로 두 감독이 등장하며 박인순이 서사를 함께 만들긴 했지만 이 영화 또한 두 감독의 프레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도입부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박감독은 교수와 미술작가와 함께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며 미군기지가 이전된 이후 수년 동안 마을이 재개발되면서 일어난 변화와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박인순과 그녀의 동료들, 이름도 적혀있지 않은 여자들의 무연고 비석, 산과 들판 등-에 대해 설명한다. ‘뺏벌’이라 불리는 그곳은 ‘배밭’에서 기원했다는 사료가 있지만 또한 여자들 사이에선 “한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서도 나가지 못하는 곳”이란 의미로 통용되기도 했다. 셋은 마을 어귀에서 오래된 당산나무를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뺏벌을 지켜봐 온 당산나무는 재개발에 뽑혀나가거나 굿이 금지되어 당산나무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해있다. 당산나무는 액자 속의 액자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입구의 표지가 된다. 변교수는 법정증거로 제출할 ‘미군 위안부’의 피해기록을 박인순에게서 얻어내려 하지만 박인순의 구술은 일관성이 없고 시간대가 잘 들어맞지 않으며 이름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한 기록은 제도권에서 인정받기 힘들다. 교수는 기지촌 여성들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제도권 내에서 일하며 사용가능한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가르고 걸러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시를 준비하는 젊은 미술작가는 어떨까? 박인순의 이야기에 매료된 그는 이후 홀로 뺏벌을 방문한다. 그는 언어대신 사람들이 버리고 간 현장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예술적 질료로 사용하려 한다. 미술작가는 폐허가 된 클럽의 사진을 찍고 버려진 컵, 미러볼, 낙서된 전단지 등의 소품을 전시에 사용할 요량으로 챙긴다. 그는 남아있는 것들에 매혹되지만 정작 그 공간과 소품들의 주인이기도 한 꽃분이의 유령이 나타나자 공포에 질려 도망친다. 미술작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려하기보다는 이미지와 소품들을 맥락에서 떼어내 자신의 전시공간에 맞춰 놓으려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실태조사를 하는 교수, 기지촌 여성에 관심이 있는 미술작가는 모두 좋은 의도를 갖고 있지만, 자기들만의 틀에 박인순을 맞추려 한다. 여러 화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드는 것에 공조해주던 박인순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자 마침내 직접 스토리텔러로 나서게 된다. 이승에서 배회하는 유령들을 소멸시키고자 저승사자들이 나타나자 박인순도 그들도 함께 동네를 배회한다. 박인순은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버려져 자기의 이름과 나이도 모른 채 포주인 수양엄마에게 팔려왔다. 클럽에서 일하려면 ‘패스’라 불렸던 보건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포주는 동네 죽은 여자의 신분을 사서 박인순에게 줬다. 그녀를 가리키는 이름과 나이 자체가 누군가의 이야기 짓기로 구성된 것이다. 화자의 존재 자체가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지표가 된다. 꽃분이를 비롯한 젊은 여자 유령들은 박인순의 젊은 시절인 동시에 죽은 그녀의 동료들이다. < E.T >, <드라큘라>, < 엑소시스트 >를 좋아한 박인순의 취향에 맞게 장르는 호러와 코믹 판타지를 오고간다. 박인순은 자기 죽음의 서사를 원하는 대로 써내려가고자 한다. 방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감독, 교수, 미술작가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와 저승사자들은 그녀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끼어들어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들처럼 논평을 해댄다. 거기에 꽃분이를 찾아온 미군까지 등장한다. 꽃분이와 미군이 ‘윤씨 종친 무덤’에서 함께 잠을 자면서 박인순이 그린 그림의 제목이기도 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가 연극처럼 상연되기도 한다. 박인순은 로맨틱한 구원자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미군의 목을 꽃분이와 함께 잘라 복수를 하고 그의 목을 끌고 직접 저승길로 향한다. 내레이터는 읇조린다. “저승으로 가는 아홉 고개를 넘기 위해 그들은 남편의 살과 뼈를 고아 감쪽같이 먹어치우고 머리만 끌고 가기로 했다. 잘린 머리는 저승의 문지기에게 뇌물로 바치기로 했다. 저승사자는 이 무모하고 자신만만한 여자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나는 인순이와 꽃분이가 비웃음에 굴하지 않으며 아홉 고개를 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레이터는 그 동네를 지켜보던 당산나무일 수도 있다. 기품 있는 옷을 지어 입은 박인순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활보하며 저승으로 향한다. 박인순은 시작은 그렇지 못했더라도 결말은 자신의 의지대로 맺고자 한다. 박인순의 이야기는 비참에서 비장으로("그런 이유로 나는 죽음을 비장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증언에서 판타지로, 잔여에서 초월로, 운명의 피해자에서 운명의 대결자로, 치유에서 복수로, 이야기 소재에서 이야기하는 자로, 진부하고 교환가능한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단독자 영웅의 극적인 이야기로(“인순은 반복되는 지루한 이야기를 참을 수 없었다”) 이동한다. 그러는 동안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그리고 미술, 연극, 영화, 연구조사 등의 미학형식을 오고 간다. 혼란스러운 비연대기적 기억은 환상성 속에서 예민한 실재적 감각으로 살아나며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 가능하도록 만든다. 영화는 더 나아가 기존 페미니즘 미학에서 금기시되어왔던 것을 가시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페미니즘 미학은 잘 들리지 않고 주변화 되어온 존재 양식을 재현하기 위해 유령, 잔여, 지나간 역사, 재현불가능한 트라우마의 미학을 고안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미학적 형식은 반복되면서 때때로 매너리즘에 빠져 그 현존과 물질성이 의도치 않게 지워지기도 했다. 박인순은 여기서 스스로를 통제되지 않고 비규범적이며 제멋대로 구는(unruly) 자신의 신체성을 스펙터클로 내어준다. 카메라는 구석구석 꼼꼼히 씻어 내려가는 목욕하는 나체를 촬영한다. 그 몸은 적당히 살집과 주름이 있어 그 물질성을 묵직하게 감각하게 한다. 성판매를 하며 돈을 벌었던 몸이기도 하다. 박인순의 몸은 단순히 고통과 피해의 증거나 온갖 말들의 전장을 넘어서 팔을 크게 움직이며 동네를 휘젓고 성큼성큼 걸어 다니고, 그림을 그리고, 돈을 벌고, 목욕하는 몸이다. 그것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신체적 현존이다. 유령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것 혹은 침전 중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유령과 저승사자들도 어떤 효과도 없이 뻔뻔하게 보통 인간과 다를 바 없이 표현되고 구분 없이 돌아다닌다. 심지어 동네 여자들은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옛 친구를 숨겨주기까지 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미군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윤금이의 살인 현장 사진을 사용한다. 미국의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분노를 야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보진영은 한때 윤금이 살인 현장 사진을 공론장에서 사용해왔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사진의 사용은 여성의 피해사실을 선정적 스펙터클로 전시하는 2차 가해라고 비판해왔다. 그것은 타당한 비판이었고 페미니스트 예술은 피해 사진을 스펙터클화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거꾸로 그 사진을 스크린에 가시화하며 기존의 관점에 도전한다. 여전히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판단에 있어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음에도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 한국 페미니스트 예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사진의 사용은 고통의 전시가 아닌 이미지 정보 과잉의 시대에 거꾸로 그 여성의 고통의 대면과 물질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말에서 박인순은 마침내 죽음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저승사자와 대적한다. 신체성의 감각이 첨예화되는 이 장면은 그로테스크와 어이없는 코믹함이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촛불이 쭉 늘어선 동굴의 연극적인 미장센을 배경으로 “아무도 널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며 “죽어라”라고 명령하는 저승사자에게 박인순은 기합소리 뒤에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인공적인 기이한 웃음소리를 낸다. 그것은 시원하게 터트리는 통쾌한 웃음도 아니도 그렇다고 소리 없는 비웃음도 아니다. 출처도 알 수 없고 누구의 것인지도 알기 어려운 웃음,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의문인 웃음이다. 잌히히히, 앜하하—아앜알, 잌히히키키알앜흐으, 으흐크아하하크오호호. 그러자 화면 밖에서 다른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박인순과 윤금이와 그녀의 동료들이 웃고 운다. 그것은 신체들을 깨우는 오염성 짙은 통제할 수 없고 비규범적이며 제멋대로이고 즉흥적인 웃음이다. 으흐흑아하학, 아하하흑, 이이킥이익. 때로는 울음소리, 분노의 비명소리와 구분되지 않는다. 캐스린 로위는 『제멋대로인 여자: 젠더와 웃음의 장르』(1995)에서 뤼스 이리가레이와 엘렌 시수를 경유해 미하엘 바흐친이 그로테스크의 예시로 든 ‘망령 나서 웃고 있는 임신한 노파 조각상’을 재해석한다. 노파는 왜 웃었을까? 로위는 노파는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몸을 “부적절하게” 노출시켜 “그들 자신을 스스로 스펙터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오래된 금기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 웃음은 소수 집단의 기존 권위와 체제를 향한 분노이다. 그 웃음은 기존의 권위와 체제를 위반하며 공간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점유하고 신체들을 재배치한다. 그것은 천진난만한 때 묻지 않은 웃음이나 남자들에게 반응해주는 수동적인 웃음과는 다르다. 그녀들의 웃음은 “카니발적인 사회적 실천”이며 자기를 향한 응시를 함께 웃을 수 없는 상대방에게 돌려버리는 공격의 웃음이다. 그로테스크한 웃음으로 체제들을 무너트린 박인순에 대해 내레이터는 말한다. “여자는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어둠속에서는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고 창녀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아 좋았다. 모두가 거대한 환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신도 사람들 중 일부가 된 것 같아 그제야 편안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를 이야기이자 스펙터클로 만들며 사각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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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세계에는 역사가 없다. 비애극은 죽은 자들을 그 유령의 세계로 보낸다. -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지난 역사 속 특정 시공을, 재현representation의 매체medium라 흔히 일컫는 영화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공동체에 트라우마를 안긴 사건의 경우는 더하다. 필자의 얕은 안목으로는, 지난 삼십 년간 광주항쟁을 다룬 어떤 영화도, 적벽가 한 대목을 꿇어앉은 배우들이 주야장천 부를 뿐인 연극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 - 데모 버전>(2014, 극단 그린피그 / 연출 윤한솔)만큼 마음을 끈 작품은 없었다. 최근 전두환 회고록이 출간되고,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 증언 등이 나오는 와중에 본 한국 영화 < 택시 운전사 >는 이러한 편견을 더욱 굳혔을 뿐이다. 한편, 작년과 올해 본 라브 디아즈와 존 토레스의 신작 덕에 3백 년이 넘는 스페인 식민 지배와 미국 강점에 이은 마르코스의 장기 독재를 ‘피플 파워’로 끝냈던 필리핀 역사와 이를 담은 영화들을 한국의 경우와 비교해 보게 된다. 1989년 하와이에서 죽은 마르코스의 시신이 2016년 11월 고향 마을에서 국립 ‘영웅묘지’로 이장되었고, 1983년 암살당한 베니그노와 코라손 아키노의 아들 베니그노 3세를 뒤이어 대통령이 된 두테르테의 통치 방식을 전해 들으며 소스라치곤 한다. 필리핀에서 장편극영화가 처음 제작된 해는 1912년으로 필리핀을 지배하던 미국인들이 만든 작품 두 편이 하루 차이로 공개되었다 한다. 둘 다 호세 리살의 전기 영화였는데, 앨버트 이어슬리(Albert Yearsley)의 <호세 리살 박사의 처형 El Fusilarmiento de Dr. Jose Rizal>과 해리 브라운(Herry Brown)의 <호세 리살의 생애 La Vida de Jose Rizal>였다. 작가이자 의사였던 호세 리살은 필리핀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반제국주의 혁명가이다. 리살은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1887)를 써서, 7천 개가 넘는 섬에 흩어져 살며 여러 언어를 쓰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1521년 이래 이어진 스페인 식민지배에 맞설 저항정신과 ‘국민국가’를 향한 열망을 일깨우려 했다. (『엉클 톰스 캐빈』(스토우), 『사냥꾼의 수기』(투르게네프) 등과 더불어 “제국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이행시킨 19세기 소설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나를 만지지 마라』는 2015년에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호세 리살의 문학 작품들은 필리핀 영화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를테면, 라야 마틴은 『나를 만지지 마라』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 부에나스 노체스 에스파냐 >(2011)를 시작한다. 또, 라야 마틴의 첫 장편 < 필리핀 인디오에 관한 짧은 필름 >(2006)에서 면벽하고 신부에게 벌을 받을 준비를 하는 성당 종치기 소년은 바로 『나를 만지지 마라』의 주요 인물 바실리오다. 바실리오는 라브 디아즈의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에도 이사가니의 동료로 등장한다. 한편 라브 디아즈의 전작 중 < 엔칸토에서의 죽음 >(2007)의 시인에게도, 1892년부터 1896년 사이 민다나오 다피탄에 유배되어 있던 호세 리살의 체취가 배어 있다. 『나를 만지지 마라』의 주인공 크리소스토모 이베라는 호세 리살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보인다. 리살은 자신의 소설 속 인물 크리소스토모 이베라처럼 개혁을 꿈꿨지만 제안한 개혁안이 반란으로 간주되어, 필리핀 혁명을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1896년 처형당한다. 『나를 만지지 마라』 대단원에서 주인공 후안 크리소스토모 이베라 막살리는 스페인 식민당국 순찰정을 피해 도망치고, 마치 몬테 크리스토 백작처럼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의 보석상 시모운이 되어 돌아온다. 『나를 만지지 마라』의 속편 격인 『엘 필리부스테리스모 El Filibusterismo(‘폭로자’라는 뜻)』(1892)에 호세 리살은 ‘필리핀 소설 novela filipina’이라는 부제를 붙인 바 있다. 현재 필리핀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라브 디아즈는 바로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의 일부를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한다.(<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는 2016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연 작품에 수여한다”는 알프레드 바우어상도 받았다.) 호세 리살과 그의 소설을 연구해 『상상의 공동체』, 『비교의 유령: 민족주의, 동남아시아, 세계』 등을 쓴 베네딕트 앤더슨이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와 제국주의에 맞선 쿠바 혁명, 아나키즘 투쟁의 삼각지대를 분석한 『세 깃발 아래에서: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서지원 역, 2009, 도서출판 길)에 따르면, 『나를 만지지 마라』를 통해 리살은 “필리핀 ‘사회’의 전체상(이자 동시대상)을 상상 속에서 창조해냈다. 한편, 리살이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에서 한 일은 이 사회의 정치적 파멸 및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제거나 다름없는 것을 상상해 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앤더슨은 『엘 필리부스테리스모 』를 ‘세계 소설 novela mundial’이라 칭한다.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의 결말 즈음에는 ‘미스터리(El misterio)’라는 짧은 장이 있는데, 베네딕트 앤더슨에 따르면 원본 원고 7쪽 중 3쪽을 호세 리살이 검게 지워버렸다. 라브 디아즈가 붙인 영화 제목의 기원을 유추하게 하는 일화다. 남아있는 소설의 ‘미스터리’ 장은, 영화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 초반처럼 오렌다 가 습격 직후의 혼란을 묘사한다. 사랑하는 파올리타의 목숨을 구하려 램프를 탈취해 강에 뛰어든 학생 이사가니는 보석상 시모운의 무장 피습 계획을 뜻하지 않게 좌초시키고, 『나를 만지지 마라』의 시모운처럼 사라진다. 한편, 영화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에서는, 소설에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도피한 시모운이 호세 리살의 유고시 「나의 마지막 이별」을 길에서 읊는 가난한 모녀에게 은전을 베푸는 시퀀스가 이어진다. 호세 리살이 창조한 인물이 리살을 추모하는 “보르헤스적“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역사와 픽션이 함께 머무르고 흐르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서사는 8시간이 넘는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가 가장 야심차게 시도하는 바일 터다. . (전략) 내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운 나라 필리핀이여 나의 마지막 작별의 말을 들어다오 그대들 모두 두고 나 이제 형장으로 가노라 내 부모, 사랑하던 이들이여 저기 노예도 수탈도 억압도 사형과 처형도 없는 곳 누구도 나의 믿음과 사랑을 사멸할 수 없는 곳 하늘나라로 나는 가노라 (후략) 소설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의 마지막 페이지들은 죽어가는 시모운과 그를 돌보는 필리핀인 신부 플로렌티노의 긴 대화로 채워졌다. 라브 디아즈의 영화는 이 부분이 리살의 소설과 이 부분이 꽤 다르다. 필리핀의 스타 배우 존 로이드 크루스와 피올로 파스쿠알이 이사가니와 시모운으로 분한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에서, 부상을 입고 이사가니의 도움으로 플로렌티노의 거처에 도달해 임종을 맞는 시모운이 남기는 말은 많지 않다. 그가 죽자 플로렌티노와 이사가니는 시모운의 시신과 더불어 “터전을 태워” 없애고 혁명을 위한 배수의 진을 친다. 한편, 이미 『나를 만지지 마라』에서 사랑은 물론 터전도 모두 버린 소설 속 시모운은 죽음을 기다리며, 신부에게 “이반 카라마조프가 던졌을 법한” 질문을 건넨다. 신이 자신을 용서하겠냐는 시모운의 물음에, 플로렌티노는 신은 시모운의 모든 고통을 이해하며 용서할 테지만 그가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사악한 방식들을 택한 것은 용인할 수 없다 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엘 필리부스테리스모』를 『나를 만지지 마라』와 비교하여, 영웅이 없고, 플롯은 실패와 좌절,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더 어둡고, 문체도 한층 냉소적인데다 당시 필리핀 식민 사회와 다른 점이 많아 필리핀에서도 인기가 덜하다고 썼다. 앤더슨에 따르면, 리살은 “필리핀 소설”인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에서 주로 스페인에서 경험했던 사건과 감정들을 필리핀으로 옮겨, 필리핀에 “임박한 미래의 그림자”로 명멸하는 스페인 제국 내 혁명의 불꽃(스페인의 또다른 식민지 쿠바에는 이미 도래했던)을 현시presentation하려 했다. 임박한 미래에의 예감은 소설 출간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웨일레르 총독 시대에 뿌리내린 현실 인식으로 더욱 단단해진 것이었다. 다시 앤더슨의 분석에 기대자면, 소설 속 시모운은 전작 『나를 만지지 마라』에 근원을 둔 인물이며, “스페인으로부터가 아니라 상상된 쿠바로부터, 그리고 지구를 도는 방랑으로부터 소설에 입장”한다. 리살에게 시모운은 한때 공상되던 “인터내셔널이라는 감추어진 마키아벨리적 네트워크”의 거울상이었으며, 장차 필리핀에 출몰하게 될 (혁명이라는) ‘세계적 유령’의 일종이었다. 마치 그의 민족처럼, 아직 현실에는 없지만, 이미 상상되었으므로, 곧 도래할. 한데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의 시모운은 무력함과 타락을 오가며 공포와 연민만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로, (『독일 비애극의 원천』(최성만/김유동 공역, 2009, 도서출판 길)에서 벤야민이 쓴 표현을 따르자면) “순교하는 폭군”처럼 군림하며 “도취된 상태에서 권력을 펼” 뿐이다. “현란한 빛을 받는 별도의 장면”에 등장하는 웨일레르 총독 등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아나키즘이 경합했던 19세기의 정복자이기 보다는 벤야민의 분석을 따르는 전형적인 바로크 드라마의 적대자들 같다. “그들을 움직이는 동기들은 대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바로크적 음모는 마치 열린 무대 위에서 무대장식이 바뀌듯 이루어진다. 음모 속에서 환상이 의도되지 않음에 따라 이러한 대립 플롯의 조직도 강하게 두드러진다.” “동작은 기민하나 표정은 무력한” 프로타고니스트 이사가니도, 비애극 속 전형적 인물들처럼 역사의 격랑 속에 “동요하는 육체적 충동”만으로 빛과 어둠을 오가는 신화적 형상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독일 비애극에 등장하는 ‘라이엔 Reyen(독일 바로크 비애극의 각 막 끝에 있는 코러스를 가리키는데, 대개 극 중 사건을 일반화하여 해석하고 가치평가를 내린다.)과 흡사한 필리핀 악령 틱발랑 셋이 등장하여, 실존인물 웨일레르 총독 일행과 어울려 황음무도하는 시모운을 지켜보는 한편,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의 또다른 주요인물(이자 소설『엘 필리부스테리스모』에는 등장할 수 없었던 진정한 ‘미래의 이브’)그레고리아 데 헤수스(라브 디아즈 전작들의 스태프와 배우로 계속 작업해온 헤이즐 오렌시오가 분했다.)가 남편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의 시신을 찾아 헤매며 떠도는 길을 동반한다. 호세 리살에게 소설은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었는데, 라브 디아즈가 그의 소설을 실제 역사적 과거를 픽션과 교차시키며 영화에는 다른 분기점이 발생한다. 각기 남성, 여성, 양성구유인 세 탁발랑은 닥쳐올 비극도 목도할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다. 『엘 필리부스테리스모』가 출간된 지 5년 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살해당했다. 호세 리살이 죽은 지 5개월 남짓 지난 뒤였다. 보니파시오는 독학으로 역사 등을 공부한 뒤 1892년 혁명운동 조직 ‘카티푸난’을 창시하여 반스페인 무장항쟁에 나섰다. 리살의 동의를 얻지 못했음에도, 카티푸난을 창설하며 보니파시오는 리살을 명예 의장으로 추대했다. 1895년 3월 카티푸난 하급자로 입회한 뒤 재빨리 자신의 파벌을 키웠으나 테헤로스 선거에서 보니파시오에게 진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를 그의 형 프로코피오와 함께 붙잡아 1897년 5월 10일 반혁명 혐의로 처형했다. 스페인을 이어 필리핀을 침략한 미국과의 전쟁 중 1901년 3월, 아기날도가 붙잡히자마자 “재빨리 워싱턴에 충성을 맹세하자 혁명은 끝났다”. 그리고 아기날도는 ‘공식적인’ 필리핀 초대 대통령이 된다. ‘혁명 영웅’ 보니파시오도 호세 리살처럼, 필리핀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다. <영생 Ang Magpakailanman>(1983)의 감독 레이몬드 레드는 학살자의 내래이션으로 보니파시오 형제의 삶을 증언하는 <영웅들 Bayani>(1992)을 연출했다. 라야 마틴의 < 오토히스토리아 >(2008)와 <연인들>(2008)이, 증인도 없고 시신을 영영 찾지 못해 재현할 도리도 없고 잊힐 수도 없는 보니파시오 형제의 죽음과 카티푸난 진압이라는 기억을 현시하려는 시도임도 익히 알려진 바다. 미국인들이 필리핀에서 영화를 처음 만들기 전에, 필리핀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먼저 소개한 것은 기실 1521년 필리핀을 점령한 뒤 300년 넘어 식민지로 삼았던 스페인인들이었다. 『아시아 영화의 이해』(주윤탁,김지석 편, 제3문학사, 1993)에 따르면, 1897년 1월 1일 포토그라피아 페르티에라Fotographia Pertierra 극장에서 45초 미만의 수입 단편영화 6편이 최초로 상영되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들이 여기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큰데, 라브 디아즈와 영화 속 틱발랑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최초의 영화를 관람하던 스페인 식민관료들과 고위 인사들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기차’가 아니라) 틱발랑을 보고 혼비백산한다. 이 날은 호세 리살이 처형된 1896년 12월 30일로부터 불과 이틀 뒤였다.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의 이 장면은 리살의 죽음이 드리운 어둠의 자장 속에서 관객들이 보았을 초기 영화를 재구성한 것이었으리라.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에는 학살(과 전후)을 재현한 신도 여럿 있다. 바로크 비극의 ‘엠블렘’과도 같은 전장의 시체들이 영화 속 곳곳에 즐비하다. (필리핀 역사의 큰 ‘트라우마’인)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노상에서 죽임당하는 장면조차 직접 보여진다. 스페인 군대가 실랑에서 필리핀인들을 죽이기 직전에는, 불을 피워놓고 망을 보던 농민군 중 한 사람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반란군으로 분한 이는 필리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현업 뮤지션 엘리 부엔디아(Ely Buendia)이고, 그가 부르는 ‘민족의 아들 Anak ng Bayan’은 라브 디아즈가 존 지안비토의 <비행운(클라크) Vapor Trail(Clark)>(2010) 대단원에서 직접 불렀던 저항가다. 한데, 형언하기 힘든 비극을 앞둔 이 시점, 이 장면, 이 노래는 한없이 애처로우면서도 연극적으로 “과장된 한탄조”가 담겨있다. 또, 혁명군들이 주둔하고 있는 이 밤의 숲은 확연히 인위적인 세트처럼 보인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고난에 대해 쓴 모든 저술에는 거의 애처롭게 들리기까지 하는 과장된 한탄조가 고정적으로 담겨 있다. 말하자면 절망에 찬 표현방식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보편적이었던 것이다. 비참함은 그것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 정도의 변화가 있는 반면, 비참함을 기술하는 데에서 당대의 저술들은 뉘앙스의 차이를 거의 알지 못했다. ”는 에르만스되르퍼의 말을 인용하며, 바로크 시대 ‘비애극’을 연극무대가 역사무대에 동화된 것에 대한 극단적인 결과라 일컫는다. ‘독일 비애극’은 17세기 ‘30년 전쟁’ 전후에 “잔인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잔인한 사람들을 위해 씌어진 작품들”이다. 벤야민은, “전쟁과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의 분위기 속에서 살던 그 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장면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그들에게 제공된 그들 자신의 풍속도였”기에 비애극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필요했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제공된 쾌락을 소박하고 노골적으로 맛보았다.” 한편으로 그들은 강변한다. “당신께선 저희들이 이 역사를 쓰라린 마음으로 기술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따라서 저희는 일련의 사건을 엮어냈다기 보다는 그것이 지닌 비참함을 비극이란 방식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어쩌면, 예컨데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피살은 ‘미망인’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 뿐 아니라 “민족 해방”을 꿈꾸었던 20세기의 ‘제3세계’인들이 모두 증인이 되고 싶었던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 트라우마를 직시하여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터이다. 라브 디아즈도 480분에 걸쳐, 호세 리살과 보니파시오의 삶과 죽음이 여전히 피워올리고 있는 불꽃, 그리고 사건과 문학이 지닌 마법의 힘을 빌어 이 비극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한다. 그 ‘미스터리’의 기술이 이토록 슬프고 쓰라림은 그러므로 잘 알겠다. 그러나, 벤야민은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격렬한 사건들 속에는 바로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게 표현되고, 이론까지도 연극장면적 효과를 종종 강조한다”고 일갈했다. 안드레스를 찾아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 일행이 헤매는 산과 강 등은, 최근까지도 국가에 대항하는 본거지가 되었던 동남아시아 ‘조미아’ 산악지대가 표상하는, 지배자의 역사와 대립하며 저항한 실재하는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풍경을 탐닉하며 “역사적인 것을 세속화하는 바로크의 세계 도피”를 낳는 세트 역할에 충실하다. 이 세트 속에서, 보니파시오 사후에 보니파시오의 측근이었던 훌리오 낙필과 재혼하고 투쟁을 지속했던 실제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의 삶과는 꽤 달리, 오시리스를 찾는 이시스와 같은 여신의 형상이 되어 “민족(국가)의 혼”을 찾는다고 독백하는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가 맺는 영화의 결말은 자못 퇴행적이다. “역사가 무대로 세속화”되니 이 시간들의 움직임은 필리핀의 밀림 속에 갇혀 버리고 만다. 라브 디아즈는 이미 < 멜랑콜리아 >(2008년에 나온 이 작품의 주인공 알베르타는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처럼 남편의 시신을 계속 찾아다닌다)라는 작품을 상재하기도 했는데,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에서 본격적으로 바로크 시대 독일 비애극 작가가 되기를 자청한다.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에서 퇴행적으로까지 만개한 멜랑콜리는, 독일 비애극에 편재하는 주된 정동이기도 하다. 벤야민에 따르면, 비애의 이론은 멜랑콜리적인 인간의 시선 아래 드러나는 세계의 묘사 속에서만 펼쳐진다. 슬픔은 자신의 의도를 특별하게 상승시키고 지속적으로 침잠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침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앞에서 연대기적 세계사의 거대한 상황들은 일종의 유희로서, 즉 신뢰할 만하게 해독될 수 있는 의미를 위해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 끊임없는 반복으로 멜랑콜리적 삶의 혐오가 절망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촉진하는 일종의 유희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독일 비애극의 멜랑콜리를 분석하며,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집요하게 침잠하는 멜랑콜리는 죽은 사물을 구제하기 위해 그것을 자신의 명상 속으로 받아들인다. 나머지는 침묵이다.(햄릿이 남긴 말) 왜냐하면 살아본 적이 없는 모든 것은 구원받지 못한 채 지혜의 말이 오직 기만적으로 유령처럼 떠도는 공간 속에서 쇠퇴해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령의 세계로의 쇠퇴는 영원한 잠을 낳을 뿐이고, 저항을 깨끗이 소거한 ‘자장가’만 들려줄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 속 사건은 역사와 멀어지며, 시공은 비애극 속 공허한 신전이나 궁정을 닮아간다. (연극 세트와 닮은 건물을 그린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포스터는 뚜렷한 자기 고백으로 보였다.) 흑백 이미지를 선호하는 라브 디아즈가 근작에서 저화질 디지털 카메라 대신 HD 포맷을 채용하며, 비애극의 폐허와 흡사한 무대 효과를 자아내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콘트라스트는 더욱 두드러지는 듯하다. 전작 대부분과 달리,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가 구사하는 4:3 화면비가 인물들의 행위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고, 스크린을 하나의 무대처럼 만든다는 분석도 있다.(김소희, 「기울어진 세계: 라브 디아즈의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와 < 떠나간 여인 >」, 2017, 《오큘로》 4호) 두테르테 집권 후 국가폭력이 노골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참이니, 민족과 국가의 ‘혼’을 찾고 싶어하는 바람이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파국의 이념을 밝히는 대신, 예술이 "자연주의적 재현"을 택한다면 퇴행과 복고에 기여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트라우마를 안긴 역사를 비애극 속 무대로 삼는 재현보다는, 이를테면 1987년 ‘피플파워’라는 사건과 베트남전이라는 기억을 함께 거하게 하며 현전하는 영화 이미지와 사운드 자체를 역사의 질료로 여기고 발굴을 시도하는 존 토레즈의 신작 < 피플 파워 폭탄 선언: 베트남 장미의 일기 >(2016) 같은 시도가, 호세 리살이 지운 검은 페이지를 해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다른 기회가 있다면, <피플 파워 폭탄 선언: 베트남 장미의 일기>에 대해서 따로 쓰고 싶다.
1.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해설이 필요할 듯하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웬만큼 마니악하지 않으면 보지 않는 장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독립애니메이션 등 일반 관객은 잘 보지 않는, 주로 업계인이나 특수한 소수의 팬`층이 존재하는 애니메이션 분야는 실제로도 많이 있겠으나 그런 계열도 아니고 일종의 ‘팬무비’로서 성장해온 분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극소수의 사람들밖에 접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동영상 사이트를 통한 아마추어 팬 애니메이션을 말하고자 한다. 사실 아마추어 팬 애니메이션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애니메이션 역사의 초기에 있어서 만들어졌던 수많은 단편 애니메이션은, 사실 딱히 금전적 수입을 만들 방도가 별로 없었을 테니 ‘프로’라고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따라서 전부 다 아마추어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패러디’라든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팬’으로서의 요소를 갖춘 팬 애니메이션 쪽이다. ‘패러디(풍자)’ 요소를 갖춘 아마추어 팬 애니메이션으로서는, 1969년 제작되어 1973~74년에 미국에서 화제를 모았던 <밤비, 고지라를 만나다 Bambi meets GODZILLA>를 빼놓을 수 없다. 캐나다의 애니메이터 마브 뉴랜드(Marv Newland)가 만든 이 작품은, 단 2분 남짓의 매우 짧은 단편으로서 디즈니의 밤비가 일본의 괴수 고지라를 만나는(?) 독특한 내용이 특징적이다. (참고로 IMDb에는 이 작품의 릴리즈 연도가 1974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1974년 9월 25일에 미국 애리조나에서 상영되었다는 표시일 뿐이다.) 이 작품의 감독 마브 뉴랜드는 이후 프랑스 동화 원작의 짧은 애니메이션 <바바파파 Barbapapa>(과거에 국내에서 TV 방영되었고, 최근에는 편의점 등에 캐릭터가 그려진 식품이 유통되고 있는 바로 그 작품이다)에 참여하는 등 애니메이션계에서 계속 활동해왔다. (‘마브 뉴랜드’에 관해 검색하다 보니 네이버 지식백과의 『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항목을 찾게 되었는데, 여기 기술된 내용이 전부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인용이 아니라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영어 위키피디아 내용을 읽기 힘든 분이라면 번역판(?)으로서 참고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2. 이 애니메이션은 (보통이라면 상업성을 담보하기 힘든) 엄청나게 짧은 단편이기도 하고, 또 내용상 디즈니로부터도 고지라의 판권사인 일본 토호로부터도 허락을 받기가 대단히 어려울 과격성을 갖춘 작품이기에 그냥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상업적으로 제작된 패러디 애니메이션도 존재한다. 원작 제작사가 직접 만든 경우도 있고, 그냥 과격하지 않은 패러디의 일종으로서 암묵적으로 묵인될 것으로 여기면서 만든 작품도 있는데, 그런 상업 패러디 애니메이션은 제외하고 이 글에서는 주로 현대에 와서 인터넷을 통해 발표되는 팬무비 애니메이션에 관해 써보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1월 베타서비스판이 시작된 일본의 동영상 플랫폼 ‘니코니코동화’를 통해 발표되어온 팬무비 애니메이션군(群)이다. 본래 인터넷상에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상에 있는 콘텐츠가 다수 업로드되곤 하지만,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도 분명히 존재한다. 니코니코동화도 마찬가지로, 기존 상업애니메이션 작품을 편집하거나 음성을 바꾸는 정도만 처리해서 올리는 ‘회색’ 콘텐츠(말은 회색이라고 하지만 분명한 저작권 침해 콘텐츠이다)로서 패러디 동영상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 한편으로는 저작권자(주로 작곡가)가 허락한 곡을 스스로 부르는 형태의 ‘불러보았다’ 동영상이라든지, 본인이 작곡한 음악을 멜로디만 올리거나 노래를 잘하는 이라면 직접 불러서 올리는 등 저작권 측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동영상도 많이 존재해왔다. 그중에서도 2007년 일본의 소프트웨어 업체 크립톤 퓨처 미디어(Crypton Future Media, Inc.)가 발표한 음성합성 보컬 음원 ‘하츠네 미쿠’의 등장이 가져온 변화는 매우 컸다. 일본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자면 하츠네 미쿠는, 야마하가 개발한 음성합성 시스템 ‘보컬로이드(VOCALOID)’에 대응되는 보컬 음원인데, 멜로디를 달아서 가사를 적으면 합성 음성으로 보컬 파트와 백코러스가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발전에 따라 노래 도중에 숨을 고르거나 음성의 강약 조절 등도 가능한 등 리얼리티를 살린 보컬의 표현이 가능해졌다. 보컬로이드 시스템은, 여성 보컬인 하츠네 미쿠 말고도 여러 다른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발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 하츠네 미쿠의 인기가 일본의 인터넷상에서 크게 높아지면서 하나의 무브먼트, 하나의 장르로서 만들어졌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하츠네 미쿠 관련 음악은 이미 10만 곡 이상 발표되었다고 하며,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을 포함하여 다양한 유저 창작 콘텐츠(소위 UCC)가 만연하고 있다. 기존에는 아마추어가 작곡을 했을 경우, 작곡가 스스로가 보컬 실력이 좋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거나, 혹은 본인은 남성인데 여성 보컬 곡을 만들었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 등의 곤란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보컬을 섭외해야만 곡을 공개할 수 있게 되니까…. 프로 작곡가라면 평소에 거래하던 회사라든지 알고 지내는 가수에게 돌리면서 곡을 팔 수도 있겠지만, 아마추어에겐 그마저도 높은 벽이 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하츠네 미쿠를 필두로 한 보컬로이드 시스템의 등장은, 그런 곤란함을 타개하여 아마추어 작곡가들이 쉽게 스스로의 보컬 곡을 인터넷상에서 공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던 것이다. 또한 이 하츠네 미쿠 보컬 음원에 맞춰 발표된 하츠네 미쿠의 캐릭터를 가지고 2차 창작 형태로 동인지나 CG일러스트도 많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하츠네 미쿠 캐릭터의 저작권을 갖는 크립톤 측에서 2차 창작에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덕분이었다.(애초에 하츠네 미쿠 캐릭터의 인기가 높아진 배경에는 2차 창작 동인 문화와의 연계성이 컸다는 점이 있었으니, 오픈 마인드를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다.) 그에 따라 하츠네 미쿠와 관련하여서는 인터넷상에서 온갖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2008년 공개된 ‘미쿠미쿠댄스 MikuMikuDance’라는 프리 소프트웨어(약칭 ‘MMD’)이다. 이것은 하츠네 미쿠를 필두로 한 캐릭터 3D 모델을 조작해서 일종의 3D 애니메이션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일본의 개인(온라인상의 닉네임 ‘히구치M’)이 하츠네 미쿠를 가지고 3D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제작한 것이다. 그 소프트웨어의 기본 모델로서 하츠네 미쿠가 내장되어 있는데, 이 역시도 일종의 2차 창작으로서 캐릭터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MMD 프로그램 자체는, 캐릭터 모델만 집어넣으면 하츠네 미쿠 외에 다른 캐릭터를 사용해서도 3D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이 나온 이후에는 니코니코동화를 통해 하츠네 미쿠를 3D애니메이션으로 사용한 동영상이 다수 발표될 수 있게 되었고, 기존의 하츠네 미쿠 보컬을 덧입히면 일종의 ‘캐릭터 아이돌’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되면서 수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3. MMD 외에도, 기존 2D 애니메이션 방식을 채용하여 뮤직비디오 형식의 짧은 동영상으로서는 애니메이션이 몇몇 제작된 바 있다. 즉, 캐릭터디자인은 널리 알려진 하츠네 미쿠를 사용하고, 배경 음악의 보컬 역시도 하츠네 미쿠 음원(물론 나름대로의 개조를 가한 경우도 있음)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형태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슈퍼셀(supercell)의 곡들이다. 슈퍼셀은 일종의 음악 집단인데, 일본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작곡가 료(ryo)를 중심으로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가 함께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집단(동인음악 활동 중심)이라고 한다. 멤버 중에 보컬이 없기 때문에, 슈퍼셀 명의의 활동에서는 하츠네 미쿠를 보컬로 대체하여 곡을 발표했다. (현재는 이미 프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곡가 료 개인으로서는 타 보컬에게 곡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슈퍼셀의 활동에 관해서는, 이런 형태의 온라인에서의 아마추어 곡 발표가 그 전까지 일본에서 흔했던 것은 아니기에 (한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 말에 PC 통신 동호회를 통해서 조PD, 싸이 등이 자작곡을 발표한 후 프로 데뷔를 한 사례가 있었다) 초기에는 료가 자작곡에다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그림을 무단으로 붙여서 동영상을 만들어 발표했었다. (2007년 12월 니코니코동화에 업로드한, 료 두 번째 자작곡인 <멜트>.) 그 곡이 1년 만에 조회수 300만을 기록할 만큼 인기를 얻었고, 하지만 댓글에서 해당 일러스트는 허락을 받고 사용한 것인지 지적을 받자 료는 일러스트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사죄하는 연락을 했다가, 결국 마음이 맞아서 함께 활동하기로 한 것이 바로 슈퍼셀 결성의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일본어 위키피디아 참조) 그 후 2008년에 <사랑은 전쟁> <월드 이즈 마인> <블랙★록 슈터> 등의 곡을 연속적으로 발표하면서 슈퍼셀은 그 유명세를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멜트> <월드 이즈 마인>의 경우엔 일러스트(정지화)가 그냥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영상의 배경으로 깔려 있을 뿐이었고, <사랑은 전쟁>은 정지화를 약간 편집한 정도의 애니메이션이었을 뿐이었다. <블랙★록 슈터>에 와서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움직임이 있는, 그나마 뮤직비디오 형태의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었다. 물론 움직임은 매우 적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어차피 상업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아마추어 동인 활동으로서 제작한 것 인만큼 사실 그 이상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자체 제작한 음반을 코믹마켓 등 동인지 판매전에서 판매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서서히 하츠네 미쿠와 그 관련 음원을 이용하여 니코니코동화를 통한 자작곡 발표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어느 정도 이상의 애니메이션을 배경에 집어넣는 경우도 늘어났고, 이번 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모래의 혹성 feat. 하츠네 미쿠>도 그런 ‘뮤직비디오형 애니메이션’으로서 발표된 동영상인 것이다. 니코니코동화와 유튜브에서 2017년 7월 21일 동시에 발표된 이 곡은, 하츠네 미쿠의 이벤트인 「매지컬 미라이 2017」의 테마송으로서 작곡가 하치(ハチ)가 만든 곡(작사·작곡·편곡)에 CG나 프로모션비디오 제작 단체인 남방연구소(南方硏究所)가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작품이다. *하치 MV 「모래의 혹성 feat. 하츠네 미쿠」 동영상 ‘하치’는 온라인 활동을 할 때의 닉네임이고, 음악가로서는 본명인 요네즈 켄지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본인이 직접 작곡과 보컬도 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이지만 하츠네 미쿠 보컬로도 자작곡을 많이 발표했다. 2008년에 처음 자작곡을 니코니코동화에 올렸으나 그 당시 곡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후에 전부 삭제했고,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곡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높은 인기를 끌게 되어 2013년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되었다. 메이저 활동을 하면서 CF송이나 개인 음반을 발표했고, 2016년엔 <3월의 라이온>, 2017년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 애니메이션 주제가도 담당하게 되었다. 한동안 프로로서의 활동이 중심이었는데, 이번 <모래의 혹성>으로 4년 만에 다시금 ‘하치’ 명의로 곡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4. 이 <모래의 혹성>은 뮤직비디오의 애니메이션 내용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표출되었다. 아마추어 작곡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째를 맞이한 하치가, 자신의 활동기간과 거의 겹쳐지는 니코니코동화, 그리고 하츠네 미쿠를 통한 아마추어 작곡가들의 ‘인터넷 무브먼트’에 대해 ‘총괄’하는 의미에서 만든 곡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그중에서 상당히 겹쳐지는 내용을 납득이 가게 설명하고 있는 페이지로 한 블로그를 소개하겠다. 이 블로그에서는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통해서 내용에 관하여 고찰을 하고 있는데, 이 곡과 뮤직비디오가 가진 엄청난 ‘정보량’을 상당히 납득이 가게 설명해놓고 있어서 일본에서도 꽤 화제가 된 바 있다. 예를 들어 곡의 제목인 ‘모래의 혹성’이란 ‘전성기와 비교해보면 이미 황폐해져버린 보컬로이드계의 상황’을 가리킨다든지, 애니메이션 초반부에 집단으로 걸어가는 가면의 사람들 맨 앞에 하츠네 미쿠가 있는 모습은 바로 보컬로이드의 대표격인 하츠네 미쿠를 선두에 놓고 다른 보컬로이드 음원이나 작곡가들이 같이 나아가는 것을 가리키지 않겠는가 하는 부분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왜 모두들 가면을 쓰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인터넷상에서 본명이 아니라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 가면 쓴 집단의 일부는 악기를 등에 메고 있기도 한다. 중간에 하츠네 미쿠의 모습 중에서, 위에 설명한 슈퍼셀의 <멜트>에서의 미쿠 디자인이 그대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앞서 언급한 대로 하츠네 미쿠 초기의 최대 히트 작곡가였던 료가 처음으로 그 이름을 날리게 된 명곡 <멜트>가 현재까지 10년간 이어져 온 일본의 보컬로이드 붐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셈이다. 그다음, 가면의 집단 중 몇몇이 갈림길에서 집단과는 떨어져 나와 따로 걸어가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10년간의 기간이 지나면서 보컬로이드계에서 멀어져 버린 이들, 혹은 사망해버린 이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블로그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하치, 즉 요네즈 켄지는 일본의 웹매거진 「Real Sound」와의 인터뷰에서 <모래의 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보컬로이드를 둘러싼 환경도, 제가 즐기던 때와는 많이 달라져 버렸다고 느낍니다. 테마곡을 만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을 계기 삼아, 지금 하치로서 하츠네 미쿠와 곡을 만든다면 어떤 형태를 취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까? 하고 고민한 결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아온 보컬로이드의 원점이 되는 풍경, 그 시절에 모래밭에서 우리들이 만들었던 성을 되새기면서, 그리운 마음과 새로운 마음 사이의 딱 맞는 지점을 찾아보았더니 거기에 <모래의 혹성>이 있었습니다."(「Real Sound」 2017.07.21) 이제는 프로가 되었고 프로로서 활동해나갈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본인은 “보컬로이드 출신이고 보컬로이드를 통해 음악을 추구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보컬로이드 시절의 악곡이나 경험이 지금의 요네즈 켄지를 분명히 받쳐주고 있을 것이다”(위 블로그)는 이야기이다. “보컬로이드는 쇠퇴의 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지도 모른다”(위 블로그)고 여겨지는 것 역시, 지금까지 보컬로이드나 니코니코동화를 쭉 보아온 사람들에겐 분명히 피부로 느껴지는 상황일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와 곡은 바로 그런 상황을, 지난 10년간의 보컬로이드 붐을 총괄하는 의미를 갖는 애니메이션이고 곡이라는 말이다. 애니메이션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필자 역시도 1990년대 한국의 PC 통신 ‘동호회 문화’를 겪으면서 많은 경험을 해왔고 추억하는 입장에서 <모래의 혹성>이란 뮤직비디오와 곡이 가진 이런 측면이 꽤나 친숙하게 느껴져서, 약간 좀 매니악한 분야이긴 하지만 이 글을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