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걸
- 감독
- 마르쿠스 발디니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파비울라 나쉬멘토, 크리스티나 라고, 데보라 세코, 카시오 가버스 멘데스
학교에서도 늘 왕따를 당하는 12살의 콜. 겁이 많고 용기는 부족한 콜을 위해 부모는 지금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콜이 짝사랑하는 예쁘고, 멋지고, 화끈한 비. 부모가 외출한 사이 콜과 놀아주고, 콜이 잠든 후 부모가 돌아오면 일이 끝나는 베이비시터다. 그런데 콜은 궁금하다. 내가 잠들고 난 후 비는 무엇을 할까. 동급생이자 이웃집에 사는 친구 멜러니는 어른들이 하는 짓을 할 것이라고 놀린다. 정말, 정말일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원제는 ‘The Babysitter’다. 이 제목이라면, 그리고 예고편도 보지 않았다면 10대 소년이 짝사랑하는 베이비시터를 통해서 현실을 알게 되는 성장영화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혹은 섹스 코미디나 불륜물. 그러나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10대 소년과 베이비시터의 이야기를 코믹 호러 성장물로 연성한다. 잠이 든 척했던 콜이 거실을 훔쳐보니 비의 친구들이 몰려와 있다. 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키스를 한다. 이제 어른들의 사정이 시작되는구나 싶더니만 반전이 시작된다.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비가 키스를 시작하는데, 웬걸 비의 두 손에 들린 칼이 남자의 머리에 꽂힌다. 피가 줄줄 흐른다. 잠든 척하다가 들킨 콜은 추궁을 받는다. 뭘 봤지? 어디까지 봤지? 그리고 비와 친구들이 악마의 책을 이용하여 의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10대 청소년들이 악마 의식에 빠지는 것은 빈번한 일이고 딱히 이상하지도 않다. 그 시절이야말로 바라는 것이 더욱 많을 때니까.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볼 때니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장르를 따진다면 호러 코미디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장이다. 12살의 콜은 스스로 새가슴이라 말한다. 언젠가는 경찰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마음뿐이다.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주겠다며 운전석에 앉혀도, 늘 다음 주를 기약하며 결국은 내려 버린다. 그런 콜이 비를 짝사랑하다가 배신당하고,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한 걸음 나아간다. 영화가 끝나면, 콜은 운전도 하고, 그를 짝사랑했던 멜러니와 데이트도 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책과 영화만 보며 몽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반드시 비를 극복해야만 한다.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기존의 청춘물, 공포물, 성장물의 특정한 요소들을 제대로 배합하여 효과를 발휘한다. 톰 크루즈를 처음 배우로 인식하게 한 걸작 < 위험한 청춘 Risky Business >(1983)이 겹친다. 모범생이 부모의 휴가를 틈타 파티를 열었다가 엄청난 재난을 겪게 되는데, 막대한 돈이 구하기 위해 그가 세운 타개책은 포주가 되는 것이다. 파티에 온 콜걸에게 연락을 하며 대학 경영학과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자본주의 생존법을 알게 된다. 청춘물의 아이들은 이렇게 고난을 통해 어른이 된다. <위험한 청춘> 초반, 혼자 남은 톰 크루즈가 거실을 누비며 에어 기타를 치는 장면이 있다. <사탄의 베이비시터>에서 콜과 비가 함께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며 톰 크루즈의 에어 기타를 떠올렸다. 도망치는 콜을 쫓는 비는 < 13일의 금요일 >의 효과음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던 콜이 용기를 내서 하나씩 비의 친구들을 물리치면 < 나 홀로 집에 >가 된다. 혼자 집에 남은 소년이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싸우는 영화.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오가잡탕인데 꽤나 맛있다. 한때 < 미녀 삼총사 > 1, 2편을 만들며 각광받다가 <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2009) < 디스 민즈 워 >(2012) < 쓰리데이즈 투 킬 >(2014) 등 실패작을 연속하며 움츠러든 맥지이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아기자기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성공작인 <미녀 삼총사>와 <사탄의 베이비시터>에 공통점이 있다면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적절하게 뒤섞었다는 것과 1980년대에 대한 향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주도했던 80년대 장르 영화 트렌드를 뭉뚱그린 소년소녀 모험백서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 구니스 > < 그렘린 > < 빽 투 더 퓨처 > 등의 영화로 대표되는. 토비 후퍼를 초빙하여 만들었던 < 폴터가이스트 >(1982)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 시절에 이미 청춘 호러가 득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는 청춘보다 호러에 방점을 둔 슬래셔 영화가 절정이었고, 이후 케빈 윌리암슨이 그 시대 슬래셔 영화를 패러디한 < 스크림 >(1996)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청춘 호러는 개화했다. 청춘 호러를 너무 어둡게 가기보다는 케빈 윌리엄슨처럼 적절히 유머를 섞어가며 다루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호러와 코미디의 결합은 어려운 선택이지만 피터 잭슨의 < 데드 얼라이브 >와 샘 레이미의 < 이블 데드 > 시리즈가 보여준 스플래터의 감각을 더욱 끌어올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80년대 감각의 청춘 호러 코미디를 매끈하게 엮어낸 영화라 할 수 있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영리하게 향수를 끌어낸다. 마당에서 프로젝터로 보는 영화는 1971년 작인 <빌리 잭>이다. 기존의 영웅들로 은하계 드림팀을 만드는 게임을 하는데, 비가 선택한 드림팀은 < 스타 트렉 >의 커크와 피카드, <에일리언>의 리플리, < 인디펜던스 데이 >의 윌 스미스와 제프 골드블럼이다. 콜은 < 배틀스타 갈락티카 >의 아다마 제독, <스타 트렉>의 데이터, 프레데터 그리고 콜과 비였다(1978년 작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있다). 이렇듯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영화 내내 과거의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또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은 캐릭터다. 콜은 비를 짝사랑한다. 멜러니는 콜을 짝사랑한다. 전형적인 스토리라면 비가 악녀로 밝혀지고, 비를 물리치는 모험을 한 후 멜러니와 맺어져야 한다. 하지만 <사탄의 베이비시터>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비를 미워할 수가 없다. 싫어할 수가 없다. 예뻐서만은 아니다. 콜을 괴롭히는 소년에게 비가 귓속말을 한다. 지독한 말에 놀란 소년은 잔뜩 겁을 먹고 도망친다. 비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인 비치(bitch), 빅센(vixen), 팜므파탈 무엇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뭔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맞는데, 그것 말고는 미워할 지점이 없다. 동정인 남자의 피가 필요해서 콜이 필요했을 뿐, 나름 성심껏 대해준다. 최선을 다해서 콜의 부족한 단점을 메워주고 용기를 준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는 콜의 질문에 비는 답한다. 원하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나는 너무 작았고 두려움에 떨곤 했지. 지금은 강하지. 두려움도 없어.” 라고. 비도 콜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더 약하고 초라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는 선택했을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더라도 강해지겠다고. 그리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콜이 비에게, “누나는 <매드맨>의 주인공 같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멋지고 잘 생겼지만 바람이나 피우는 놈.’ 하지만 그만의 이유가 있고, 매력이 있는 놈이 아닌 X인 비. 콜은 비를 사랑했고, 결코 미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비가 정체를 드러내고, 콜의 친구를 죽일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콜은 대적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비로소 콜은 어른이 된 것이다. 비를 통해서, 비와 맞서고 극복한 후에 콜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 위험한 청춘 >에서 톰 크루즈가 콜걸인 레베카 드 모네이와 섹스를 하고 포주가 되는 경험을 한 후 어른이 된 것처럼. 과감하게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듯이. 2014년, 아직 제작되지 않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인 ‘블랙리스트’, 2015년(에도) 아직 제작되지 않은 가장 좋아하는 호러 시나리오인 ‘블러드 리스트’에 꼽혔던 브라이언 더필드의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장르 요소들을 도발적이고 역전된 캐릭터와 훌륭하게 결합시킨다. 킬링타임 용 오락영화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 한 기분이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2015년 완성되었지만 2017년 10월 13일의 금요일에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사족. 최근 넷플릭스에서는 스티븐 킹 원작의 <제럴드의 게임>과 <1922>, 애나 릴리 아미푸르의 < 버려진 자들의 땅 The Bad Batch >, 제러미 러시의 <겟어웨이 드라이버 Wheelman>, 닉 다미치의 <부시윅> 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장르 영화들은 오래 전 할리우드 동시상영시대에 만들던 B-Movie 같다. 스타가 나오는 대작을 메인으로 상영하면서 열혈 팬이 있는 액션, 호러, SF 등을 저예산으로 만들었던 B급 영화. 넷플릭스는 기존 채널에서 모두 거절당한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를 제작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SF <익스팬스>와 호러 <헴록 그로브> 등 장르물에서 더욱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 블레임 > <아인> < 사이보그 009 >를 자체 제작하고 기존 작품 판권도 대거 사들이는 중이다. 소수 취향이지만 전 세계로 동시에 내보내면 시청자는 아주 많아지니까. 앞으로 넷플릭스는 < 사탄의 베이비시터 > <제럴드의 게임> 등 재기 있고 발랄한 영화들의 수원지가 될 것이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F/02184 청춘, 성장, 정체성. 여기까지만 들으면 풋풋하고도 쓰라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시절을 그린 성장영화들이 떠오른다. 구스 반 산트의 < 파라노이드 파크 >나 이와이 슈운지의 <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같은. 그런데 이 단어들 사이에 섹스를 던져 넣으면 방향이 미묘하게 뒤틀린다. 섹스를 통해서 젊은 날의 방황을 진지하게 그리는 영화들도 더러 있지만 청춘과 섹스라면 대개 ‘청춘 섹스 코미디’로 연결된다. 도발적이거나 유희로 풀어내는 정도의 차이가 있고. 청춘 섹스 코미디의 시작이라면 1983년에 개봉한 < 그로잉 업 >을 들 수 있다. 고등학교 남자애들이 성에 눈을 뜨며 벌어지는 갖가지 이야기들. 당시에는 할리우드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후일 알고 보니 이스라엘 영화였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남녀가 함께 입영 훈련을 하는 장면도 있었다. 야하기는 했지만 가슴 뭉클하기도 했는데, 1978년 이스라엘에서 개봉했을 때 인구의 40%가 본 화제의 국민영화였다. 골든글로브 해외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제임스 딘의 < 이유 없는 반항 >(1955)이나 < 폭력교실Blackboard Jungle >(1955)을 비롯하여 이전에도 청춘영화는 있었지만 하나의 장르로서 형성된 것은 1980년대였다. < 그로잉 업 >의 영향을 받아 더욱 선정적이고 머리는 비운 <포키스>가 나온 것이 1981년. 1980년대에는 청춘영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수작도 많았다. 에이미 해커링의 < 리치몬드 연애소동Fast Times at Ridgemont High >(1982), 프랜시스 코폴라의 < 아웃사이더 >(1983), 폴 브릭먼의 < 위험한 청춘Risky Business >(1983) 등등. 한때 청춘영화의 셰익스피어라고 과찬을 받았던 존 휴즈는 1984년부터 <아직은 사랑을 몰라요Sixteen Candles>(1984) < 브렉퍼스트 클럽 >(1985) < 페리스의 해방Ferris Bueller’s Day Off >(1986) 등을 만들었다. 청춘영화에 성적 체험이 빠질 수는 없었지만 두드러지게 섹스를 내세운 영화는 < 리치몬드 연애소동 >과 < 위험한 청춘 >이다. 1995년에 < 클루리스 >를 만들기도 했던 에이미 해커링은 숀 펜, 제니퍼 제이슨 리, 피비 케이츠를 출연시킨 <리치몬드 연애소동>에서 남자의 성적 모험만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그려냈다. <위험한 청춘>은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려던 모범생이 콜걸을 만나 대학을 때려 치고 포주로 나아가는 ‘위험한’ 결말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은 무려 톰 크루즈. ‘청춘 섹스 코미디’는 어느 정도 감동과 후련함을 주지만 그 이상은 결코 쉽지 않다. < 아메리칸 파이 >(1999)는 아주 재미있고, 지나간 시절의 추억과 감동을 함께 주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성적 충동은 때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일상을 보내지는 않으니까. 야한 책과 영화를 보고 자위를 매일 할지라도 나머지 시간에는 다른 무엇인가를 한다.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거나 배신하기도 하고, 왕따를 당하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불안으로 방황하기도 한다. 그런 고뇌와 일상의 풍경을 스쳐 지나면서 섹스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청춘 섹스 코미디는 애초에 한계가 명확하다. < 에브리바디 원츠 썸!! >도 제목만으로는 그랬다. 누구나 ‘썸’을 원해. 일단 이성을 만나고, 연애 이전에 탐색을 하며 섹스를 하고 미래로 나아갈까 말까 하는 단계. 기왕이면 연애 이전에 썸만 수없이 타면 더욱 좋지 않을까? 연애는 아주 아주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 훗날 하면 되는 것이고. 제목만 듣고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가벼운 만남과 섹스를 보여주는 청춘 섹스 코미디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감독이 리차드 링클레이터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감독을 알고는 바로 선입견을 내렸다.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연출한 청춘 섹스 코미디의 방점은 당연히 ‘청춘’일 테니까. 1991년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데뷔작 < 슬래커 >는 다수의 젊은이들을 따라간다. 에피소드마다 이야기가 흐르고,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섞이고 뭉쳐서 커다란 이미지로 남게 한다. 다음 작품인 < 멍하고 혼돈스러운Dazed and Confused >(1993)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다양한 청춘의 풍경을 그려낸다. 스치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후 < 비포 선라이즈 > 3부작과 아카데미 수상작인 < 보이후드 >로 대중의 사랑과 평단의 찬사를 모두 얻은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영화는 순간을 포착하면서, 그 순간들이 어떻게 거대한 흐름으로 수렴하는지를 보여준다. 개별적이고 파편적이면서도 거대한 그림의 조각으로 맞춰지는 영화. < 에브리바디 원츠 썸!! >은 대학 개강을 하기 전, 3일 15시간의 풍경을 보여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이크가 차를 몰고 대학으로 가는 장면에서 낵의 ‘마이 샤로나’가 흘러나온다. 1980년 8월의 풍경이다. 전작인 < 보이후드 >의 마지막 장면이, 성장한 소년이 대학에 입학하여 차를 타고 떠나가는 것임을 생각하면 일종의 연장선이다. 혹은 < 멍하고 혼돈스러운 >이 1976년의 고등학생들 이야기였던 것을 기억한다면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그들이 대학에 들어가 겪는 사흘간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동시에 리차드 링클레이터 자신이 겪었던 1980년의 대학이기도 하고. 명목상의 시간은 <멍하고 혼돈스러운>의 다음이고, 상징적으로는 <보이후드>의 연속선에 놓여 있다. 고등학교에서 투수였던 제이크는 대학에서도 야구부 활동을 한다. 제이크의 동료, 선배들은 모두 개성이 강하다.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사소한 내기에 지는 것도 싫어하고, 후배들을 은근히 경쟁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에서만은 일치단결한다. 여자를 만나는 것. 디스코 클럽, 컨트리 클럽, 펑크록 공연 그리고 코스튬 파티까지 오로지 여자를 만나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목적은 섹스다. 뭐 어떤가. 혈기왕성한 스무 살의 청년인데.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전부가 아니다. 제이크는 말한다. 디스코, 컨트리, 펑크를 오락가락하다 보니 뭐가 진짜이고 뭐가 아닌지 헷갈린다고. 신입생인 뷰터도 말한다. 대학은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프로에 가지 못한다면, 그들의 인생은 확 달라질 것이다. 더 이상 그라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공부를 하거나 직장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오니 주전에 끼기도 쉽지 않다. 제이크가 좋아하게 된 베벌리는 공연 예술 전공이다. 고등학교 때는 다들 주연이었는데 이제는 캐스팅만 되어도 감지덕지다. 사흘 동안, 선배들과 대학이라는 공간을 만나서 알게 된다. 이제부터가 진짜 인생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이가 엄청 많은, 좋았던 시절을 버릴 수 없어 대학을 떠도는 월러비는 말한다. “너희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해. 자신을 찾는 경험을 두려워하지 마.” 하지만 그 역시 진짜 자신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만 있다. 월러비가 쌓아놓은 <환상특급>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제이크가 한 에피소드를 말한다. 어떤 여자가 예뻐지기 위해 성형을 하려고 하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가 아름답고 다른 이들이 엉망이었다고. 그들은 모두, 자신이 별종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때는 대개 그렇다. 나는 왜 이렇지? 나는 누구지? 어디로 가야 하지? 뭐가 맞는 것일까? 아무리 이성을 찾아 하룻밤을 탕진하며 생각을 멈춰도 마음속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월러비는 원소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결합방식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말 많은 핀은 재료가 아니라 재료를 느끼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존재하는 그들 자신이 아니다. 남들이 평가하는 무엇, 나도 알고 있는 나 자신, 그것은 이미 존재한다.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결합해 갈 것인가. 대학은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른이 된다는 역시. 마지막 코스튬 파티에서 그들은 평소의 모습 그대로 간다. 하지만 알고 있다. 지금의 모습 자체도 가면이라고. 우리는 항상 가면을 쓰고 있고, 어쩌면 가장 파티에서의 가면이 자신의 진짜 얼굴이거나 미래인 것일지도 모른다. 투수는 혼자 마운드에 올라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지만, 또한 팀원들의 도움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나를 찾는 것과 동시에 타자를 만나고 어우러져야 한다. 그게 대학이고, 세상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1980년대는 싸워야 하는 대상이 사라진 시대였다. 68혁명의 여파가 이어지던 낙담과 쾌락의 70년대와는 전혀 다른 시대.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부유하는, 텅 빈 세계. 그러나 젊은이들의 존재는 언제나 똑같다. 시대가 변해도, 그들의 불안은, 그들의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 에브리바디 원츠 썸!! >은 결국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경험했던 1980년대의 번들거리는 풍경을 통해 그려낸 청춘의 표상이다.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말해준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를.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청춘 영화들은 언제나 별종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결국은 ‘Freak’ 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여자들과 썸을 타다가 베벌리를 만난 제이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쓴 에세이에 대해서 말한다. 시지프스의 신화를 빗대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의미가 생긴다고. 세상이 뭐라던 내가 할 일을 하고, 좋든 나쁘든 다가올 것을 받아들인다고. 베벌리도 말한다. 어떤 일에 열정을 갖는 것은 아름답지 않아? 그렇기에 바보처럼 보일 배짱을 가지고 예술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선언한다. 아마도 수없이 꺾이고 나뒹굴겠지만 시지프스를 떠올리면서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 에브리바디 원츠 썸!! >은 청춘 섹스 코미디다. 사려 깊고, 원숙한 시선으로 방탕한 청춘의 사흘을 그려낸 섹스 코미디. 하지만 인생은 그보다 길다. 사흘만으로 그들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한순간의 섹스에 대한 욕망과 바보 같은 열정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리차드 링클레이터는 무모하고도 요란한 청춘의 순간을 절묘하게 이어붙이면서 새벽, 아침의 개강 순간으로 관객을 끌어간다. 그건 파티가 끝난 후의 적막이 아니라 일상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의 열정이다. 아침의 열정. 섹스가 끝난 후 남아 있는 미열을 느끼며 미소 짓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지금도 일본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AKB48에서 처음으로 센터를 맡았던 마에다 아츠코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오프닝이 지나가고 나면, 영화 제목이 나온다. ‘사요나라 가부키초’. 안녕 가부키초, 라는 서정적인 제목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러브호텔’로 바꾼 것 아닐까 잠시 의심했다. 하지만 영문 제목 자체가 ‘가부키초 러브호텔’이다.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에서도 환락가인 가부키초에 위치한 러브호텔의 하루를 보여주는 군상극.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섹스를 하고, 싸우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면서 안녕을 고한다. 가부키초는 언젠가 떠나가야만 하는 곳이다. 때로는 살해당한 채로. 가부키초는 환락가다. 일본의 신주쿠는 도쿄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온갖 일이 벌어지는 거리다. 신주쿠 골덴가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드는 퇴폐적이면서도 유장한 거리라면, 가부키초는 그야말로 난잡하고 휘황찬란한 환락가 자체다. 러브호텔과 풍속 업소가 빼곡하게 들어차고 야쿠자와 불량청소년과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곳. 하세 세이슈의 소설 「불야성」 3부작을 읽어보면 1980년대부터 다국적 공간으로 변해버린 가부키초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그걸 판타지로 풀어내면 기쿠치 히데유키의 <마계도시 신주쿠> 정도가 된다.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신주쿠 흑사회>와 <표류가>는 야쿠자와 중국계 조직폭력단을 중심으로 가부키초를 들여다본 영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가부키초는 여전히 환락가이지만 여느 도시의 번화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면 나오는, 유난히 번들거리고 뒤틀린 공간.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거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마계도시 신주쿠> <신주쿠 흑사회> <표류가> 러브호텔 아트라스의 점장 테츠는 인디 뮤지션인 사야와 동거하고 있다. 오다이바의 특급 호텔에서 일하는 호텔리어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이곳이다. 아트라스에서 객실 청소를 하는 스즈키 사토미는 폭행사건의 범인인 야스오와 함께 도주 중이다.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시효가 끝나 자유의 몸이 된다. 한국에서 온 혜나는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동거 중인 정수에게도 말을 못했지만 그녀는 데리헤루, 즉 콜걸 일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성행위는 하지 않지만 유사 성행위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거리를 헤매는 여성들을 데리헤루에 팔아버리는 일을 하는 마사야는 가출소녀 요코를 만나 아틀라스에 하루 숙박을 한다. 단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2층을 통째로 빌린 AV 촬영팀에 피자를 전해주러 간 테츠는 여동생을 발견한다. 테츠의 가족은 해일이 모든 것을 파괴한 센다이 지역에 살고 있었다. 전문대를 다니던 여동생은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그 때 AV 배우 모집 광고를 보고 시작했다. 한 달에 두어 번 도쿄에 와서 촬영하고는 돌아간다. 이제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학교도 잘 다닐 수 있다. 죄책감은 없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혜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왔다. 여기서 번 돈으로 한국에 가서 옷가게를 낼 생각이다. 건설회사에서 밀려나 전단지를 돌리게 된 중년 남자를, 그녀는 따뜻하게 안아준다. 요코는 재혼한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도망쳤다. 죽어버리라는 말까지 들었다. 요코는 말한다. ‘죽어버리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매춘을 해서라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을 거야’라고. 그런 요코를 보고, 마사야는 혼돈에 빠진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예정된 균열이 생기거나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관계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하필이면 테츠가 일하는 아틀라스에, 사야가 다른 남자하고 들어온다. 음반회사의 관계자다. 사야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테츠는 애먼 방문을 걷어차는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사야의 얼굴을 보고도, 그만두라고 말하거나, 손을 잡고 도망치지도 못한다.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아니까.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의 인물들은 대체로 그렇다. 혜나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수에게 말하지 못한다. 아무리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테츠는 여동생에게 말한다. AV 배우 한다고 부모님한테 말할 수 있어? 여동생은 아니라며, 절대 말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아무리 자신은 떳떳해도, 세상은 다른 눈으로 보는 일과 사람들이 있다. 가부키초의 러브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 태반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간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떳떳하고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시효가 끝날 때까지 꿋꿋하게 버티면서 일을 하는 사토미처럼. 쉽게 변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요코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약속을 지키는 마사야처럼, 그들에게는 최후의 믿음이 있다. 그건 요코의 끈질긴 생명력 같은 것이다. 죽어라, 하는 말에는 결코 복종할 수 없다는 오기 같은 것.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라고 내뱉는 테츠보다는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야. 접대로 한 건데 뭘 그래. 데뷔할 수 있잖아.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야? 쪼잔해, 라고 말하는 사야가 훨씬 더 건강하고 애잔하다.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이란인 등이 뒤엉켜 살아남기 위해 살육전을 벌이던 가부키초에서는 지금도 보통의 남녀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상의 어둠에 파먹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혜나도, 사야도, 요코도, 사토미도 악착같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간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 들어온 감옥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요나라는,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쓰는 인사다. 다시 보지 않으려 할 때. 그러니까 이제 그들은 가부키초를 떠나간다. 혜나도, 마사야도, 사야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부키초가 기억에서 지워야 할 지옥이나 악몽은 전혀 아니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이 그리는 가부키초는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는 공간일 뿐이다. 지저분하다거나 추악하다고 힐난할 수도 있는, 아래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몸을 팔거나, 뒤틀린 욕망이 뒤엉킨 곳이지만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씁쓸하면서도 건강하고 경쾌하게 그들의 하루를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종잇장 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별다르지 않으니까.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 나도, 언제 한 칸 아래의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니까. 1982년 핑크영화로 데뷔한 히로키 류이치는 < 경멸: 에고이스트 > < 도발적 관계: 엠 > < SM 작가 > 등에서는 도발적이고 뒤틀린 성애를 묘사하지만 < 바이브레이터 > < 노란 코끼리 > 등에서 여성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태도를 드러낸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후자에 가깝다. 굳이 따진다면 인정희극에 기울어진다. 비극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카메라를 가져간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세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