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니얼
- 감독
- 조 블랜드, 앤드류 밸렉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다니엘 로벅, 제이미 베르나데트, 그렉 크릭, 숀 커넌, 루이스 반스
1. 1973년 3월 31일자 중앙일보의 파리 특파원이 쓴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은 울분에 찬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한국에서 로케 촬영한 <당수태권도>란 영화가 <변증법은 벽돌장을 깨뜨릴 수 있는가>라는 선전 문귀와 함께 완전한 공산주의 계급투쟁을 위한 영화로 둔갑, 파리에서 상영되고 있어 자유민주주의 한국이라는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이 성실한 특파원은 그저 소문만 듣고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직접 영화를 보고(“<당수태권도>의 토키가 중국어이기 때문에 원래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이 영화에 대한 관련 평들을 찾아보고(“‘역사적 계급투쟁의 전위이다’라는 유력지 르몽드의 평까지 받았다”) 제작자까지 꼼꼼히 살펴본 후(“이 작품은 비공산계인 Ngay Hong에 의해서 제작된 영화이다”) 이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프랑스의 많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무조건 공산주의 선전물”로 받아들이게 했는지에 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문제의 묘는 상황의식을 가한 자막의 번역이 이 비공산주의 영화에 색채를 바꾸게 한 데 있다. 즉 완전히 자막 번역을 임의로 해 관중을 오도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또한 한국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자막을 달아 이곳에서 상영중인 이 영화가 한국에서 촬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인들이 등장하고 특히 우리의 자랑인 태권도를 삼고 있다는 데 큰 문제점이 있다.” 1) ‘우리의 자랑인 태권도’를 내세운 공산주의 선전영화라니! 『중앙일보』의 보도 직후 중앙정보부, 치안본부, 경찰서, 문공부가 일제히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후속 기사에 따르면 진상은 다음과 같다. 문공부에 따르면 이 영화는 “합작영화가 아닌 순수한 우리나라 영화” < 정도 >인데, <정도>의 제작사 한진흥업은 제작에 앞서 홍콩의 장강영화사에 이 영화를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여기에는 동남아지역상영권 양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수출신고절차를 밟기 전에 한진에서 장강으로 필름을 보냈고, 장강이 <당수태권도>라는 제목의 중국어 더빙 버전을 프랑스의 ‘계급투쟁촉진회’에 이중수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심각한 ‘오용’은 장강이라는 홍콩 영화사의 농간의 결과인가? 마침 영상자료원에는 이 영화 <정도>의 검열서류가 남아있다. 이 서류들에는 영화제작신고서, 진홍열, 백표(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진호 세 명의 홍콩배우들이 출연을 요청하는 국산극영화 외국배우 출연 승인 신청서와 장강과의 매도계약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매도계약서에 따르면 한진흥업과 장강영화사 사이의 계약은 1972년 2월 27일에 이루어졌다. 영화제작신고서는 이 영화의 제작기간이 1972년 10월 10일부터 1973년 1월 30일까지라고 명기하고 있다. <정도>는 1972년 12월 22일 문공부로부터 검열승인을 받고, 1973년 5월 12일 스카라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그런데 홍콩 필름아카이브에 따르면 <당수태권도>가 홍콩에서 개봉한 것은 이보다 만 1년 가까이 앞선 1972년 6월 20일이다. 이 검열 서류는 극히 의심스럽다. 만약 홍콩 필름 아카이브의 기록이 맞는다면 한진은 이미 존재하는 영화의 허위 제작 신고를 한 셈이다. 덧붙이자면 <정도>의 감독은 강유신, 오리지날 시나리오 및 심의대본의 작가는 유일수이다. 홍콩영화 <당수태권도>의 감독은 도광계(屠光啟), 시나리오는 예광(倪匡)이다. 강유신은 한진흥업의 전신인 대양영화사의 < 낙조 >(1968)로 감독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도>는 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감독 작품이다. 1930년대말 상하이 시기부터 영화를 찍은 도광계는 1950년대 홍콩 우파 내셔날리스트를 대표하는 감독이었으며, 이후 쇼브라더스 전속으로 활약한 관록의 베테랑이다. 2) 1960년대 중후반 신필름 영화들의 각본을 담당했던 시나리오 작가 유일수는 이 시기 ‘용팔이’ 시리즈로 박노식이 그의 독특한 스타 페르소나를 만들어가는데 공조하고 있었다.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 >(장철, 1967)의 작가로 시나리오 경력을 시작한 예광은 < 보표 保鏢 > < 철수무정 鐵手無情 > <십삼태보 十三太保> < 복수 報仇 > 등 이 시기 장철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헌자이자, 홍콩영화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필과 다작의 스타 작가였다.(그는 이소룡의 < 정무문 > 각본에도 참여하였다.) 이쯤에서 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럼 대체 <정도>/<당수태권도>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다는 말인가? 적어도 서식의 완비라는 관료들의 꿈과 장사꾼의 야합이 만들어낸 저 서류들 안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무망해 보인다. 진정한 ‘위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 서류 양식들 안에서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정도>/<당수태권도>는 1970년대 한국-홍콩, 한국-대만 여타 등지에서 횡행했던 ‘합작’의 전형적인 형태에 다름 아니다. 이 결합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아열대 기후의 홍콩은 가을과 겨울이 포착가능하며 오래된 중국적 풍경을 대체할 수 있는 장소가(고궁과 절) 있는 한국에서의 야외 촬영을 선호했으며, 스튜디오 촬영은 홍콩 쪽에서 담당하였다. 각자의 인건비와 상호 체류비를 담당하되 한국 내 배급권은 한국 회사가, 그 외 지역의 배급권은 광대한 화교 문화권 전역에 배급망을 연결해놓은 홍콩 회사에 귀속되었다. 크레딧, 특히 영화의 주요 창작 주체로 상정되는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은 각각의 지역 버전에 따라 그곳의 관객들이 선호하거나 익숙한 이름만을 남기고 그 외의 이름들은 지웠다. 무엇보다 한국 같은 강력한 국가통제와 외화 유출 억제가 영화 정책의 이름으로 자행되던 장소에서 한국인 감독(제작자,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단 합작영화란 국내법과 산업적 재생산 모두를 충족시키는 기획이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복수의 기원의 영화가 발생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 <정도>/<당수태권도>의 사례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여기에 이미 내재된 포스트프로덕션적 탄력성이라고 할만한 것이다. 이 영화(들)는 이 부류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서로 다른 편집의, 서로 다른 더빙 버전으로 각각의 영화가 상영되는 지역의 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하였다. 당시 후시녹음은 다양한 언어권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했던 홍콩 영화산업의 중요한 관행이었다. 한국은 1960년대 이래 후시녹음의 탄탄한 스킬을 갖추고 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여기서부터 더 확장된 지역에서의 자유로운 더빙까지의 거리는 한 끝 차이다. 즉, <정도>/<당수태권도>는 조금 이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이 부류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서로 다른 편집의, 서로 다른 더빙 버전으로 각각의 영화가 상영되는 지역의 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무수한 전용 가능성을 향해 이미 열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전용 가능성이란 소비되는 지역에 따른 더 적절한 상품으로의 교체 가능성에 지나지 않지만. 2. “한국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자막”(이를테면 “착취당하는 자를 위해서는 건배를, 착취하는 자에게는 절멸을”과 같은 자막을 본 1973년의 파리 특파원이 느꼈을 기함을 한번 상상해보라)으로 점철된 르네 비에네의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는 한국인과 중국인 대 일본인이라는 민족적 공분을 국가-자본주의의 앞잡이인 관료들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의 항거라는 계급적 대립으로 옮겨온다. 이 “이 최초의 전적인 전용영화”는 1967년 비에네가 『인터내셔날 상황주의자 제11호』에 기고한 「상황주의자들과 정치 및 예술에 반대하는 새로운 행동형태」 3) 라는 글에서 제시한 방법론의 현실태로 등장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이전 세기의 혁명투쟁에서 이어받은 형식과 카테고리를 사용하여 체제 전복활동에 힘써왔다. 나는 과거로부터의 어떤 준거도 갖지 않는 수단을 통해 우리들의 이의 제기에 관한 표현을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는 문장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선동적인 글에서 비에네는 ”스펙타클의 명제 그 자체를 전용(détournement)”할 것을 주장한다. 스펙타클 사회에 대항하는 실천이 그 자체로 스펙타클이 되어간다면, 여기에 회수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스펙타클의 미디어를 전용할 것. 전용의 대상으로 적절한 것은 포트로망과 포르노 사진, 대중잡지, 코믹스, 그리고 예술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업영화와 같은 것들이다. “특히 상업영화를 우리의 것으로 하자.” 르네 비에네는 자신이 공언한 바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에 이어서 이시이 테루오의 <불량누님전>과 스즈키 노리부미의 <공포여학교>를 전용한 <카마레로부터 온 여자들 Girl from Kamare>(1974)이라는 또 한편의 ‘전용’ 영화를 만들었다. 1970년대 초 일본의 도에이 영화사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섹스와 폭력의 결합태로서 소위 ‘포르노 액션’으로 불리웠던 이 영화들은 노골적인 여성 신체의 전시와 착취, 그리고 젠더적 불안까지를 겸비한 포스트 68적 일본 대중문화의 급진성을 입증하는 실례였으며 또한 전세계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시장의 중요한 공급물로 기능하였다. 즉, 이 영화들 역시 이 시장에서 빈번히 이루어졌던 바, <정도>/<당수태권도>와 마찬가지로 상영장소와 형태에 따른 부단히 탄력적인 대응이 강제되었으며 더빙과 재편집에 자유로웠다. 즉 전세계 대중들에게 가장 싸게 공급되는 염가의 상품으로서 이 영화들은 도작과 도용의 가능성에 활짝 열려 있었다. 르네 비에네는 이 두 번째 전용영화를 통해 국가와 시장과 교회의 권위에 대한 전복을 꾀하였다. 말하자면 이 상황주의자의 실천은 1970년대적인 의미연관은 차치하고라도 상품으로서 어떻게 상품에 대항할 수 있는가, 혹은 상황주의자의 어법을 따라하자면 스펙터클로서 어떻게 스펙터클에 저항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는 동어반복이지만 영화가 전적으로 ‘상품’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지금 의도적으로 ‘상품’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정도>/<당수태권도> 같은 영화를 두고 국가적 귀속을 혹은 오리지날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보인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영화를 보는 자들은 이 귀속의 문제에 거의 무감하기 때문이다. 누가 상품을 만든 자를, 상품의 국적을 따지겠는가? 아마도 이 지점이야말로 왜 1970년대 한국에서 이와 같은 영화들이 그토록 유독한 저질영화로 자리매김되었는지, 또는 (거개가 골계로 끝나버렸지만) ‘태권도’라는 국가적 기표를 덧씌우는데 그토록 희화적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지가 아닌 담론적 차원에서) 매달렸는지를 해명할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 이 영화들은 할리우드가 생산하는 고급 산물들의 반대편에 놓인 가장 싼 상품으로서, 싼 값에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가들에 의해 잘라지고 이어붙여지는 것을 대가로, 이 지역 영화 중 최초로 말 그대로 글로벌한 이미지-상품으로 소비되었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비 속에서 이 영화들은 상품의 형태를 얻고 비로소 세계성의 획득에 성공하였다고. 이 싸구려 상품은 고급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염가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들, 전세계의 하위계급자들이 향유하는 이미지-상품으로 기능하였다. 아마도 20세기 영화의 위계 중에서 가장 최하위에 위치해 있을 이 영화들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포스트콜로니얼한 열정과 분노, 그리고 장사꾼들의 잇속(과 1970년대 한국이라는 저 유신 시대가 낳은 기괴한 이미지의 유통)으로 형성된 기이한 야합의 산물인 이 이미지-상품은 말하자면 ‘빈곤한 이미지’(히토 슈타이얼)의 영화적 전신이며, <벽돌은 변증법을 깰 수 있는가>라는 상황주의자의 실천은 그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혹은 상황주의의 시효와도 상관없이 무한한 도작과 도용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하나의 가능성으로 읽혀져야 한다. 3. 2000년대 이후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를 한국어로 처음 소개한 글은 2004년 4월 『씨네21』에 실린 아드리앙 공보의 「영화의 유용? 그 위험한 변신」이다. 4) 유운성은 아드리앙 공보가 전용의 ‘원본’으로 제시한 <당수태권도 唐手跆拳道>와 <정도 正道>의 관계를 밝혔다. 5) 또, 이 글을 보완, 확장한 글(「전용의 계보: 당수태권도는 변증법의 정도(正道)일 수 있는가?」 6) 에서 유운성은 이 영화의 ‘혼란스러운’ 창작주체에 관한 추측을 <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의 비교 및 <정도>의 심의대본과 오리지날 시나리오의 비교를 통하여 꼼꼼하게 수행한 바 있다. 7) 특히 상황주의자들의 실천에 관한 포괄적인 논의를 전개해가는 멕켄지 와크는 프랑스 마오이즘과 중국학 연구자 르네 비에네 사이의 긴장, 그의 두 편의 ‘전용’ 영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와 <카마레로부터 온 여자들 Girl from Kamare>(1974)을 논하는 데 책의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한편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68혁명과 영화’라는 주제하에 상영된 바 있으며, 2019년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당수태권도>는 worldcinemacentral.com이 운영하는 유투브 채널 Wu Tang Collection에서 찾아볼 수 있다. 8) 르네 비에네의 ‘전용’ 영화들은 우부웹(UbuWeb)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히토 슈타이얼은 에세이 영화 <11월>에서 그녀의 매혹적인 개념 ‘빈곤한 이미지’와 ‘여행하는 이미지’를 전개해나가면서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를 인용해오고 있다. 또한 당신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의 한국어 자막 버전과 중국어 자막 버전을 각각 유투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자막은 물론 어떤 한국어 화자와 어떤 중국어 화자의 노고 덕택이다.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은 계속된다. *** 1) 주섭일, 「프랑스서 공산주의 선전영화로 둔갑한 합작 무협영화」, 『중앙일보』, 1973.3.31 2) 국공내전의 와중에 홍콩으로 이주해온 도광계는 특히 1950년대 홍콩에서 1930년대의 상하이 좌파 영화들을 우파 영화로 ‘전용’해오는 데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경력을 생각한다면 프랑스에서의 <당수태권도>의 운명에는 명확한 시적 정의가 있다.” Morris, Meaghan. “Transnational Imagination in Action Cinema: Hong Kong and the making of a global popular culture,” Inter-Asia Cultural Studies, Vol. 5, No. 2, 2004. 도광계는 1957년에 만들어진 한국/홍콩의 첫 번째 칼라 합작영화 <이국정원>에 전창근, 와카스기 미츠오와 함께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당수태권도>는 그가 감독 크레딧에 올라 있는 마지막 영화이다. 3) Viénet, René. “The Situationists and New Forms of Action Against Politics and Art”, Internationale Situationniste No.11, October 1967. 이 글을 포함한 상황주의자들의 글은Situationist International Online(https://www.cddc.vt.edu/sionline/si/against.html)에서 읽을 수 있다. 4)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23961 5) 「<정도 正道>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La dialectique peut-elle casser des briques?>가 된 사연」 http://annual-parallax.blogspot.com/2017/10/causerie.html 6) http://annual-parallax.blogspot.com/2019/01/blog-post.html 7) 그 외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에 관한 영어 문헌으로는 다음을 참조. Wark, McKenzie. The Spectacle of Disintegration: Situationist Passages out of the Twentieth Century, London: Verso, 2013. 프랑스어 자막을 입힌 이 독특한 전용의 형태에 대해서는 Shochat, Ella and Stam, Robert. “The Cinema After Babel: Language, Difference, Power”, Screen, vol.26 no.2, 1985. 8) https://www.youtube.com/watch?v=ZmM2-SZV3Rs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1. 카트린느 드뇌브와 ‘태권도’ 1974년 한국의 한 신문기사는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트 드뇌브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액션영화가 하도 판을 쳐서 태권도를 하지 못하는 우리 같은 여배우는 발 붙일 곳이 없어요.” 카트린느 드뇌브의 이 한탄은 ‘이소룡 붐’이라는 해외영화계의 기현상을 언급하는 기사가 인용해오고 있는 발언이다. 이 언급을 곧이곧대로 믿어보자면 이소룡 영화 혹은 그와 같은 류의 영화들은 ‘태권도를 하는’ 남성 배우들의 영화이다. 그런데 과연 1974년의 시점에 카트린느 드뇌브는 태권도라는 말을 알고 있었을까? 그녀가 이소룡 식의 액션영화를 ‘태권도 영화’라고 인식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어느 시기 한국 영화시장 내에서 이 명칭은 꽤나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것 같다. 1973년 3월 쇼브라더스 소속의 정창화가 감독한 영화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이 홍콩영화 최초로 미국 박스오피스에 올랐을 때(이 시점은 이소룡 영화가 미국 시장을 강타하기 직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성공한 ‘태권도 영화’, 한홍합작영화로 한국에서 개봉하였다. 같은 해 출범한 정부 조직 한국영화진흥공사는 한국영화의 해외시장개척을 위한 중장기 전략으로 한국산 태권도 영화를 적극 장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이소룡의 죽음 직후 < 정무문 >이 한국 시장에 도착했다. 이 영화는 당시 표현에 따르면 ‘이상과열’이라고 할만한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이소룡의 영화 중 가장 노골적인 반일 텍스트인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저 적의 익숙함은 한국 관객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며, 또 1960년대 후반 무협영화 붐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와 홍콩영화의 긴밀한 연결이라는 흐름 안에서 보자면 거의 절반쯤 자국영화로 보이게 할만큼 익숙한 것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스승의 복수를 완수한 이소룡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경찰들을 향해 뛰어오르는 프리즈 프레임을 한번 상기해보라. 요절한 스타가 정지된 화면 내에서 영원히 도약하는 모습을 목격한 당대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정서적 감응을 불러일으켰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무문>을 시작으로 1973년과 74년 이소룡의 네 편의 영화, < 맹룡과강 >, < 당산대형 >, < 용쟁호투 >가 모두 개봉하며 이 열기를 지속시켜나갔다. 전세계적인 이소룡 붐과 접속한 자국 관객의 열광은 곧 “홍콩 제작의 얼치기 태권도 영화가 세계를 휩쓴 데 자극받은......참다운 태권도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와 겹쳐진 시장의 요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불현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소룡-브루스 리가 그러한 것처럼 미국식 이름을 붙이고 나타난 이들은 한결같이 미국에서 온 태권도 유단자임이 강조되었다. 2. 아마도 ‘태권도 영화’라고 할만한 것의 절정은 1974년이 될 것이다. 이해 이두용은 재미교포 출신의 신인배우 챠리 셀(한용철)을 기용하여 무려 6편의 태권도 영화를 만들었다. < 용호대련 >, < 죽음의 다리 >, < 돌아온 외다리 >, < 분노의 왼발 >, < 속 돌아온 외다리 >, < 배신자 >(이두용에 따르면 이 영화는 앞의 영화들의 ‘재편집’으로 완성되었다)에 이르기까지 이 놀라운 다작은 유행 장르를 자국화하고자 하는 한국 영화산업의 탄력적 대응의 실례라 할만하다. 일단 이 영화들은 1960년대의 인기 장르인 만주물의 서사를 고스란히 끌어온다. 배경은 식민지 시대의 만주 혹은 대륙, 적은 일본군이거나 일본군과 결탁한 야쿠자. 여기에 몇몇 제목들이 이미 노골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바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가 불러일으킨 신체적 핸디캡의 영웅이라는 표상과 이 표상이 내포하는 상실, 극복, 귀환이라는 구조가 가미된다. 발차기의 명수인 주인공은 적들의 농간으로 한쪽 다리를 잃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극복하고, 돌아와서 적들을 물리친다. 어쨌건 주인공은 단독으로 혹은 독립군과 힘을 합쳐 악독한 일본군 또는 일본 야쿠자를 물리친다. 그렇다면 이 영화들은 만주물의 재출현인가? 만주물은 1960년대라는 국민국가 만들기의 시간에 이를 형성해낼 강력한 표상자원으로서 한국영화가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식민지 시기 만주라는 실제의 시공간, 동시에 1960년대의 시점에서 가상적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는 이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항일독립투쟁의 이 액션활극은 포스트콜로니얼 분단국가가 상상해낼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국가창생기일 것이다. 아직 남과 북은 분단되기 이전이며, 하나의 ‘민족’은 미래에 반드시 당도할 독립국가를 위해 싸운다. 그리하여 이 독립국가-대한민국은 저 전쟁에서 죽어간 수많은 ‘애국선열’들에 의해 여기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 만주 웨스턴이라는 형태로 전화되어간 만주물은 이 전화의 마지막, 이만희의 < 쇠사슬을 끊어라 >(1971)에 이르러 완전히 끝장나버렸다. 만주물의 초창기 비전이 국가 만들기와 관련있는 것이라면 국가 바깥의 인간들, 국가에 무심한 인간들이라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희유한 순간을 만들어낸 <쇠사슬을 끊어라>는 말 그대로 장르에 대한 탈구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이 이야기는 1960년대적인 내셔널 시네마적 열정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두용의 태권도 영화가 만주물 서사를 새삼스럽게 반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서사들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 영화들은 서사에 공을 들이고 있지 않다. 공간은 극히 단조롭고 서사를 믿을만하게 만들어줄 캐릭터의 구축이랄 것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이 영화들이 졸속 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오로지 하나의 볼거리, 하나의 스펙터클, 하나의 동작에 집중한다. 챠리 셀의 발차기. 길고 곧게 뻗은 다리가 화면을 횡으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가로지른다. 종종 웃통을 벗는 남자는 기름을 발라 반짝반짝 빛나는 근육질의 몸을 과시하며 괴성을 지르면서 전광석화처럼 날아올라 발차기로 상대를 제압한다. 벗은 몸의 발차기. 이 형상은 이중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것은 자국 관객들을 위해서 태권도라는 지역적 귀속을 충족시켜주는 기표로 이해되는 한편 이제 곧 형성될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의 카테고리 안에서 싸우는, 맨몸의, 아시안 남성의 기표로서 기입될 것이다. 3. 챠리 셀에 이어 미국에서 온 또 한 명의 스타는 바비 김(김웅경)이다. 당시의 신문보도에 따르면 ‘이소룡과 함께 태권도 보급에 힘써 온’ 바비 김은 이소룡 사망 후 “미국 쪽에서 그를 이소룡의 후계자로 내세우려 들자 기왕 태권도 영화에 출연할 바에야 한국영화에서 활약할 생각으로 귀국하였다.” 챠리 셀의 인기에 대적하기 위해서 바비 김은 변별될 필요가 있었다. 그 역시 발차기가 특기이지만, 콧수염과 가죽점퍼를 트레이드마크로 강한 아메리칸 남성성을 번안해오고 있는 바비 김의 영화는 이두용의 태권도 영화보다 현대적 의장을 선호하였다. 찰스 브론슨을 노골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이 ‘터프한’ 남자는 사악한 일본인과 맞서 싸우거나(< 사대독자 > < 흑룡표 >) 홍콩과 동남아의 주요 도시들을 배경으로 국제적으로 암약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를 분쇄하는데(< 국제경찰 >), 알고 보면 이 적들은 서로 결탁해 있곤 한다(< 죽음의 승부 >). 이 영화들이 설정하고 있는 적은 지극히 자국적으로 보이나(일본인과 공산주의자) 실상 현대적 의장 속에서 적의 고전적 표식은 사라지기 일쑤다. 이를테면 식민지 시대 홋카이도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 귀문의 왼발잽이 >(박우상, 1977)를 보자. 다케지로와 센노스케라는 대립하는 두 일본인 집단과 이들에게 착취당하는 조선인 광부들. 어느날 이 마을에 정체불명의 사나이 바비 김이 나타나 우여곡절 끝에 고통받는 광부들을 구해낸다. <귀문의 왼발잽이>가 지극히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영화가 시대적 배경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그 어떤 장치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설정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탄광의 소유주인 다케지로는 수트 차림의 성공한 중년 사업가의 모습이다. 가죽 재킷에 헬멧을 쓰고 일당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나는 센노스케는 폭주족에 가깝다. 영화의 실제 배경은 강원도 남부의 탄광도시 태백이다. 이 이미지들 속에서 <귀문의 왼발잽이>는 탄광 노동자를 착취하고 괴롭히는 악덕 자본가와 폭력배, 이에 맞서 노동자를 구하는 히어로의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은 마치 1970년대 후반의 탄광도시 태백의 지역성만큼이나 당대적이고 구체적이며 로컬한 정치적 의제를 상기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구하는 히어로라는 오래되고 광범위하며 글로벌한 소망과 맞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4. 이소룡의 열풍이 불러일으킨 이국적 이름의 행렬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챠리 셀과 바비 김에 이어 엇비슷한 이름을 가진 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나왔다. Tang Lung, Bruce Li(何宗道), Bruce Le(呂小龍), Bruce Leung(梁小龍) Dragon Lee (혹은 Bruce Lei, 巨龍) 기타등등. 이 이름들 중 누군가는 한국인이고 누군가는 이미 한국인이 아닌데, 사실 이 영화들에 있어서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한국과 홍콩, 대만, 필리핀, 타이 등지의 영세 영화업자들이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낸 이 영화들은 이제 국가적 귀속이라는 문제로부터 더 없이 자유로워진 채 국경을 넘어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의 한 부류로 통칭될 터이니. ps. 현재 영상자료원에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귀문의 왼발잽이>는 ‘불타는 주먹(les poings enflammes)’이라는 프랑스어 더빙 버전으로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은 유창하게 불어를 구사하는 바비 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귀문의 왼발잽이>를 이런 상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런 영화들이 어떠한 유통경로를 거쳐갔는지를 증거한다.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귀하의 나라에 백정은 살 수 있습니까, 노비는 살 수 있습니까?” 류승완 감독은 < 군함도 > 개봉 초기, ‘친일영화’라는 여론에 부딪혔을 때 이렇게 말했다. “대중의 반일 감정에 기대지 않겠다.” 나는 살짝 감동받았다. 대규모 자본과 스타들... ‘천만 관객’까지 생각했을 시스템에서 일하는 영화감독이, 이런 소신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워낙 그의 팬이었으나(< 짝패 >!) 그를 다시 ‘봤다’. 그러다가 최근 김은숙 작가의 24부작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군함도>의 기시감이 되살아났다. 정확하게는 대중의 반응에 대한 기시감이다. 방영 초기, <미스터 션샤인>이 “역사를 왜곡했다”며 28,481명이 한 달 동안 청와대에 이 드라마를 막아 달라는 청원을 낸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청와대나 문화체육관광부가 TV 드라마의 스토리를 바꿀 수 있는가? 나는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위 기관들은 그럴 권한이 없다. 지면 등 사회적 문제 제기를 통한 ‘역사 왜곡’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드라마에 대한 불만을 청와대에 호소하다니...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청원인들의 주장은 이렇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피해국과 가해국 입장이 묘하게 전복되어 있습니다. 극에서 연출된 악역들의 대부분이 조선인이며, 자기 장인(도공)의 제자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등장하고, 조선의 문화가 ‘미개’하다는 연출이 계속해서 보입니다. 극을 끌고 나가는 주축, 주·조연들이 여주인공 고애신을 제외하면 일본인들이며 그들 개개인에게 부여된 서사 역시 ‘조선’이라는 나라를 피해국이 아닌 그것을 ‘자초한 쪽’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서구로부터 시작된 근대와 자본주의는 ‘원인이 없다.’. ‘자본의 운동’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갔고, 한반도의 고통스러운 현대사는 그들의 대리전, 후폭풍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지금 우리는 ‘한류’를 무기로 삼아 아류 제국주의를 꿈꾸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미스터 션샤인>도 그 ‘무기’ 중의 하나로 기획되었다. 식민 지배에, “우리의 자초”나 “저들의 의도”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무의미한 얘기다. 약육강식론도 한탄일 뿐, 원인이 아니다. 서구가 비서구를 점령했을 때, ‘우리’ 입장에서는 침략이지만 ‘그들’은 야만인에 대한 문명화 사명에 고뇌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를 젠더 혹은 계급으로 비유해보자. 남성 중에서 부자 중에서, 자신이 여성과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오히려 “역차별”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미스터 션샤인>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조선 명문가를 대표하는 고사홍( 이호재 )은, 미국인 유진 초이( 이병헌 )가 “조선은 귀댁을 보호하지 못하니, 원하신다면 저희가 보호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다음과 같이 위엄을 내세운다. “양이(서양 오랑캐)의 보호를 받느니, 차라리 조선이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그 뜻을 헤아리겠노라.” 물론, 유진 초이의 목적은 고사홍 집안의 손녀인 고애신( 김태리 )을 친일파 낭인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사적인 마음’의 발로였다. “조선이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그 뜻을 헤아리겠다.” 이 말에, 나는 표현력을 잃었다. 연인 사이의 대사로 바꿔보자. “사랑하는 그대가 나를 죽이더라도 그 뜻을 헤아리겠다?” 이 무슨 노예근성 혹은 피학증인가.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 주인이 바뀌었을 뿐 고사홍 대감이 미군의 보호를 거절한 이유는 조선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 그 자신이 조선 왕조 500년의 기득권자이기 때문이다. 애국심은 애국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 처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인격적인 양반이나 근대적 낭만으로 “불꽃으로 살고 싶은 자”(고애신) 혹은 ‘사명감’ 같은 이데올로기를 간직한 자는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러나 사리사욕이 앞선 자, 원래 핍박받았던 자들은 공동체의 운명에 관심이 없다.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조선이든 대한민국이든 국가를 비롯해서 어느 공동체나 그 구성원들은 평등하지 않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대 역시 신분 사회지만, 조선은 아예 그것이 법으로 규정된 사회였다. 노비의 입장에서, 백정의 입장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주인이 바뀔 뿐이다. 군 ‘위안부’ 동원도 그녀들의 아버지, 한국인 업자 등 한국 남성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피해 경험을 들어보면, 일본군을 상대하는 일보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족과 남편에게 구타당한 것이 더 억울하고 몸을 상했다는 증언이 꽤 나온다. 국가 내부에서 모든 사람이 국민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국민이기보다는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지방 사람이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봉합될 뿐이다. 이 봉합은 일상적으로 찢어지고 다시 꿰매지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터져서 혁명이 일어날 수도 주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비록 서구와 달리, 나라의 사정은 근대와 식민 지배와 함께 찾아온 자신도 모를 운명의 비극을 맞았지만, 구한말 개인들의 사정은 모두 달랐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 노비 유진 초이와 백정( 유연석 ), 이양자( 김민정 )의 신분은 바뀌었다. 낮은 계층의 여성들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집 밖으로 나와 글을 배울 수 있었다. 원래 국가 내부의 차이가 국가 내외부와의 차이보다 큰 법이고 격동기에는 더욱 그렇다. 드라마에서 이 문제는 경어체 여부로 드러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대사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고도의 한국적 맥락이 필요하다. “외국인에게는 어렵다”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다. 김은숙 작가의 대사와 스토리 전개 방식은 이제까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듯하다(예를 들어, “통성명, 악수, 포옹 그다음은 그리움이더이다” 이 말, 정말 맞다). 이 드라마의 설정상, 반말과 존대어가 뒤섞어 어떨 때는 정신이 없다. ‘원래 신분’과 외국(미국과 일본)에 다녀와서 바뀐 신분, 장 포수와 고애신처럼 반상과 사제 관계가 겹친 경우, 나이, 성별 등에 따라 서로 주고받는 말투가 다 다르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서 구한말을 총체적으로 본다. 유관순 누나? 민족의 대표가 여성일 때 윤종찬 감독의 < 청연 (靑燕, Blue Swallow)>(2005)은 그의 걸작인 < 소름 > 이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역시 친일 문제로 고난을 겪었다.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알려진 박경원을 다룬 <청연>의 첫 장면은 남루한 옷을 입은 조선의 소녀들이 들판에서 뛰쳐나오는 데서 시작한다. 내게 이 장면은 영화의 주제처럼 보였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소녀들의 힘찬 달리기. 그들의 꿈을 재현한 듯 한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영화는 조선인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민족주의’ 영화다. 다만, 민족의 대표가 기존과 달리 남성이 아니라 여성일 뿐이다. 그 한 가지 이유로, 이 영화는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사회에서 늘 재연되는 장면. 맹목적 대중 심리가 배타적 국가주의와 만나 ‘생각 정지’ 상태에 이르고, ‘일본 앞에 우리는 공동 운명’이라는 퇴행적 민족주의가 저항적 민족주의로 둔갑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 사이의 차이(이 경우는 성차별)는 은폐되고, 시선은 모두 ‘외부의 적’을 향하게 된다. 여성이 자아실현을 하는 데 일본인의 도움을 받으면 ‘친일 행적’이고 ‘친일 영화’인가? <청연>은 여성에게 ‘친일’과 ‘민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여성은 민족의 주체가 아니라 민족을 재현하는 대상일 때만 유용하다. 유관순은 종종 ‘열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윤봉근 열사’에 비해서는 그 경우가 훨씬 적다. 그것도 “유관순 누나”다. (나는 “유관순 언니”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떤 남성이 “레즈비언이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우리가 ‘대표 친일파’로 기억하는 이광수나 김활란에게 ‘반민족행위자’라고 하면, 두 사람 모두 억울해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을 민족주의자로 강하게 정체화했으며, 친일을 함으로써(‘근대를 지향함으로써’) 민족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민족을 살리는 길’은 사람마다 이렇게 다양하다. 창씨개명이나 단발령 등 일제의 정책을 거부한 이들 중에는, 일제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유교 규범을 수호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았다. 친일이 불가피했다거나, 사소하다거나, 모든 민족주의는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친일 청산은 절대 선, 당위적인 진실이 아니라 경합하는 언설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친일파닷!” 이 한마디가 경합해야 할 담론장의 다른 목소리를 모두 내쫓는다는 데 있다. ‘여성에게는 조국이 없다.’ 결혼하면 국적을 잃는데 여성에게 국가가 어디 있나. 아직까지도 남자가 ‘출세’하면 여자가 따르고 남자들은 그에게 아부하지만, 여자가 ‘성공’하면 남자는 떠나고 여자들은 그녀를 시기한다. <청연>은 기존의 이성애 법칙에 도전한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김주혁 )이 박경원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가 ‘똑똑하고 야망에 불타며 고집이 센’ 데다가, 특히 “너를 통해 세상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연>에서 남성은 여성을 통해 공적 영역에 진출하며, 여성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주인공 박경원( 장진영 )과 비슷한 시대를 산 퀴리 부인은 노벨상을 수상한 뒤에도, 남편 연구실에서 더부살이했고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핵분열을 발견하여 베를린 과학아카데미 첫 여성회원이 된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는, 연구소에 여성이 출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남성들 때문에 정문을 사용하지 못하고 청소부용 반지하 뒷문으로 다녀야 했다. 우리는 < 히든 피겨스 >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았다. 당시는 무려 1960년대.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히든 피겨스 박경원은 어땠을까? 일제 강점기 너무 가난했던 한 소녀가 현모양처 + 독립운동가 + 훌륭한 비행사… 이것이 가능했을까? 아니면, 관객의 바람 대로 위 모든 것을 다해 내거나 ‘독립운동가의 아내로만’ 헌신해야만 했을까. 개인의 삶도 복잡한데, 국제 정세가 얽힌 나라를 되찾는 일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탈식민주의 이론의 시원(始原)인 프란츠 파농은 말했다. “민족해방투쟁(독립운동)은, 빼앗기기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탈식민주의, 즉 포스트콜로니얼(post colonial, 후기식민주의)은 형식상의 주권은 되찾았지만 여전히 이전의 식민 국가들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문화적, 사회적으로 가해국에 대한 피해의식, 동일시 욕망, 경쟁심, 원한 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 가장 ‘웃긴’ 사례가 영연방 경기 대회(英聯邦 競技大會, Commonwealth Games)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전에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이 무슨 정체성인가? 같은 주인을 모신 나라들의 운동 경기? 사족 - 우연일까, <청연>의 두 주인공 장진영과 김주혁은 지금 우리 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