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남아
- 감독
- 정인엽
- 제작년도
- 1970
- 출연
- 김희라, 남정임, 김미정, 최경옥, 김지연, 허장강, 김정훈, 이기영, 김남일, 성진아, 이강조, 장정국, 곽태용, 라정옥, 임운학, 김세라, 강세영, 박경호, 최석일, 한명환, 이종철, 박부양
엄태웅 , 주원 주연, 황병국 감독의 < 특수본 >(2011)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특별수사본부’의 약자인데 시간을 더 거슬러 1970년대로 가면 설태호 , 이원세 감독이 바통 터치하며 만든 <특별수사본부> 시리즈가 있었다. ‘한국의 CSI 였다!’라고 말하면 너무 거짓말이고, 한국영화사의 대표적인 반공수사물 시리즈라고 보면 된다. 한국영화사에 에로, 액션 시리즈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나름 진지한 범죄추리(물론 추리는 좀 약하다) 시리즈도 있었던 것. 1편인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1973)을 시작으로 2편 < 특별수사본부: 여대생 이난희 사건 >(1973), 3편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1973), ‘꽃할배’ 이순재 가 출연한 4편 <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1974), 끝으로 역시 꽃할배 박근형이 출연한 <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1975)에 이르기까지 모두 5편이 만들어졌다(1-2편은 설태호 감독, 3-5편은 이원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2, 4, 5편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VOD 관람이 가능하다). 특별수사본부 시리즈 이 시리즈는 민영방송 ‘라디오 동아방송’(1980년 신군부에 의해 KBS에 통합될 때까지 17년 7개월 동안 이어왔다)에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방송된 라디오 심야프로그램 <특별수사본부> 시리즈가 그 모태다. 이 대공수사실록드라마에서 오제도 검사는 여간첩 김소산 사건, 해군 프락치 허만도 사건, 기생간첩 구자운, 점쟁이간첩 윤길도, 거물간첩 성시백 등을 도맡은 고뇌하는 반공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수임은 광복 후 미군정기에 남조선노동당을 위해 일한 간첩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총살형에 처해졌는데, 몇 년 전에는 조명화 감독에 의해 한미합작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란 보도도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1948년, 주한 정보대장인 페이드 대령의 첩, 김수임( 윤소라 )이 특별수사본부에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매 시퀀스마다 회한을 머금은 표정으로 “그 이듬해 봄이었어요...”라는 식의 김수임 멘트로 시작하는 그 구조가, 마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조안 크로포드의 회상으로 불쑥 시작하는 마이클 커티즈의 < 밀드레드 피어스 >(1945)를 연상시킨다. 아무튼 김수임은 남로당에 가입해 자신이 얻은 숱한 정보를 북한에 제공해오다가 오제도 검사( 이순재 )에게 체포된 것. ‘묻고 따지는’ 이순재에게 지난날을 회상하는 김수임의 과거는 도저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이화보통여자학교에 입학한 김수임은 이복 오빠인 최만용(북괴공작원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 문오장 ') 때문에 17살의 어린 나이로 농부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었고, 이듬해 시집을 뛰쳐나와 다시 이화여전에 입학한 그녀는 이강국( 신일룡 )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박헌영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이강국은 “좀 더 위대한 미래를 위해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월북하고 만다. 그런 사랑의 실패를 겪으며 페어드 대령과 결혼한 김수임은 아들 ‘밥’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이강국을 미끼로 다시 수임에게 접근한 오빠 최만용의 획책이었던 것. 그렇게 수임은 남로당원으로서 첩보 활동은 물론 페어드에게 이런저런 인사 청탁까지 조종하는 위치에 이른다. 여기서 무엇보다 놀라게 되는 것은 후시녹음으로 완성된 외국인 배우들의 유창한 한국어다. 거의 아나운서 수준으로 얘기하는 페어드 대령은 물론 “엄마, 어디야? 빨리 와,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혼혈 아이 밥의 언어구사능력도 상당하다. ‘아들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수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오검사가 집으로 전화했다가, 밥이 대뜸 “마미?”라고 영어로 답하자 황급하게 전화를 넘기는 이순재 의 연기 또한 놀랍다. 윤소라 윤소라 는 당시 서구적인 마스크로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그런 외모가 당시로써는 낯설어서인지 김지미 , 남정임 , 문희 , 윤정희 의 자리까지 올라서지는 못했지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속 팔도강산 >(1968)으로 데뷔한 이래 제목부터 무언가 그녀의 선명한 캐릭터를 드러내는 < 버림받은 여자 >(1970),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 < 야녀 >(1974), < 70인의 여죄수 >(1974) 등에 출연하며 남다른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 김수임의 일생 >에서도 인사 청탁을 위해 속옷이 비치는 가운만 걸친 채 페어드 대령의 털 난 가슴을 어루만지며 유혹하는 장면이 생생하다. 물론 이강국을 그리워하는 사랑과 아들 밥을 향한 모성의 굴레 속에서 방황하는 그 깊은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함께 이국적 외모의 글래머 배우로 주목받았던 김혜정의 다소 과잉된 연기와 비교하면 더욱 도드라진다. 물론 그 이국적 외모로 인해 <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1965)의 미얀마 여자, < 여진족 >(1969)의 여진족이기도 했던 김혜정 또한 유현목 의 < 아내는 고백한다 >(1964), 이성구 의 < 지하실의 7인 >(1969)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에로틱한 매력을 뿜어냈다. 흥미롭게도 <지하실의 7인>에서 윤소라는 말 수가 적은 수녀, 김혜정은 성적 매력을 마구 발산하는 북한 여군으로 출연해 만났다. 역시 외모 하면 빠질 수 없는 남자 신일용도 있다. 수임이 이강국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누구나 한 번쯤 보면 반할 수밖에 없는 쾌남아였어요”라고 말할 정도인 신일용 과는, 윤소라의 은퇴작이기도 한 김수용 의 < 아라비아의 열풍 >(1976)에서도 연인으로 출연했다. 그런 두 사람이 마치 <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2005)의 부부처럼 ‘그 사람이 매일 아침 어디로 출근하는지 모르고’ 살아온 그 세월이 허망하다. 김수임의 화장, 그리고 페어드 대령의 유창한 한국말 그래도 김수임과 이강국은 서로를 잊지 않고 살아왔다. 클라이맥스는 이강국을 시골에서 올라온 외삼촌이라 거짓말하고 페어드 대령에게 빼내 달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수임으로 인해 한국식 인사 청탁 문화가 몸에 밴 그는 부탁대로 강국을 집으로 데려오지만, 외삼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잘 생긴 그를 살짝 의심한다. 결국 페어드는 “부인, 난 이제 사무실로 나가 볼 테니 삼촌을 좀 대접해요”라고 출근하는 척 거짓말을 하고는 그들의 뜨거운 포옹을 몰래 훔쳐본다. 그렇게 수임은 사랑에 실패하고 감옥에 이르게 된다. 반공영화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사상이 꼭 일치되어야 하나요. 전 좌익을 사랑한 게 아니에요, 그의 마음과 육체를 사랑했어요. 사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라는 항변은 가슴 절절하다. 그렇다. 당시 공공의 적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전 죽일 년이에요”라는 마무리 멘트를 들은 오제도 검사는 “사랑의 에고이즘이군요”라는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마치 제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척척 추리해내는 탐정 엘큘 포와로처럼 고뇌하는 모습으로 소파에 앉은 이순재 의 모습이 그 기나긴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는 윤정희 의 모습이 압권이었다면, < 김수임의 일생 >에서는 페어드 대령의 면회 전 손거울을 보며 눈화장을 고치는 윤소라 의 연기가 심금을 울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페어드 대령의 마지막 한 마디가 귓전을 울린다. “딸링...” 그 딸링에 덧붙여 확실히 이것 또한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종일 “마미~~~”라는 말이 입에서 내내 맴돌 것이다. 김수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검사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내 얼굴을 곱게 화장하겠어요. 추하게 있는 것은 자신을 사랑할 줄 몰라서죠. 늙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화장을 하지 않고 남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여자에요.” 이순재 정말 마지막으로 이순재 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1) 당시 인터뷰했던 그는 가장 존경하는 선배 배우로 최무룡 을 꼽았다. “후시녹음 시절에도 그처럼 자기 대사의 템포를 살려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후시녹음이라 그런 주연급 배우들 중에 대사를 안 외워오고 그냥 입만 벌리거나 조감독이 옆에서 읽어주는 대사를 그대로 따라 읽는 경우가 허다했지. 뭐 나중에 성우가 다 하니까. 그런데 최무룡 선배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늘 내실을 다지는 사람이었지. 메소드 연기의 대가였고 늘 끊임없이 새롭게 변신하는 배우였어. 물론 다른 좋은 선배 배우들이 많았지만 자기만의 확고한 원칙과 ‘폼’이 잡혀 있는 최고의 배우였지. 그래서 한번은 최민수 를 만나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 내가 민수 백일잔치도 가고 어렸을 때부터 쭉 봐왔거든. 이제 작품으로 만날 일은 없고, 전에 무슨 행사장에서 만난 적 있는데 머리에 두건 쓰고 수염 기르고 요란한 청바지 입고 왔기에 ‘야, 너 허리에 도끼만 차면 딱이겠다’고 한 적 있어. (일동 대폭소) 연기자로 치면 ‘성골’ 출신 배우고 또 한때 얼마나 잘했어? 멈추지 말고 좀 더 하면 정말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을 텐데. 마스크도 얼마나 좋아. 참 아쉬워, 한번 만나서 얘기해야지.” 그렇게 그는 한국영화사 최고의 배우로 최무룡을 꼽았다. 그러면서 앞선 시리즈에서 오제도 검사를 연기한 최무룡에 이어 자신이 그 역할을 이어받은 <특별수사본부> 시리즈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로서는 얼마나 감격적인 캐스팅이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윤소라 신일룡 이순재 문오장 감독: 이원세 각본: 오재호 개봉극장: 대한 관람인원: 11,249명
아주 매혹적인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다 그만한 사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호칭들을 붙여줄 것이다. 그렇다, 나도 주저 없이 이 시대 충무로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영화감독 설태호 를 그렇게 부르고 싶다. 그와 함께 있는 맥주집안은 늘 안온했고, 그와 함께 있는 충무로 뒷골목의 막걸리 집은 노상 정이 넘쳐흘렀다. 또한 설태호 감독이 함께 하는 영화사 안은 항상 웃음꽃이 피고 또 피고 또 피어났다. 눈이 오고 비가 내려 촬영이 펑크나거나 연기자의 스케줄이 안 맞아서 촬영이 마냥 지연돼도 설태호 감독은 기다림에 지친 스태프들을 위해서 기꺼이 삐에로가 돼 주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설태호 감독과 같이 하는 술자리에선 전혀 술값 걱정을 할 이유가 없었다. 충무로가 늘 따듯한 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주머니가 가벼운, 그래서 춥고 긴 겨울이 많은 영화인들을 힘들게 했다. 영화 일이 많은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많았으니까..그래도 영화예술을 한다는 긍지, 자부심 하나로 충무로를 떠나지 못했던 그 춥고 서러운 긴 세월, 충무로의 그 이름 없는 골목들은 많은 영화인들이 남몰래 흘린 눈물이 눈발이 되어 흩날리도 하고, 때론 웃음이 넘쳐흐르는 초원이 되기도 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닌가? 그 세월에 설태호 감독의 곁에 있으면 겨울에도 추운지 모르고 폭염 속에서도 더운지 모르게 그렇게 많은 영화인들이 그와 함께 충무로를 지켜 갔다. 단세포적으로 말하면 술값이던 밥값이던 늘 설태호 감독이 도맡아 내는 그는 한마디로 호구였다. 그의 곁에 있으면 주머니가 비어도 배불렀고 없어도 얼큰하게 취했으니까... 설감독은 자기 아닌 남이 돈 내는 것을 보는 스타일이 이 아니다. 술값을 다 털어 내고 차비가 없으면 집에 까지 한시간 반을 걸어 간 적이 한 두 번도 아니였다. 난 설태호 감독을 티끌 하나 묻지 않은 하얀 눈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와 만나면 어느 자리에서건 늘 허허 웃는 위트와 유모어가 넘치는 스트레스 해소제였고 활력소였고 그는 윤활유였다. 그래서 인지 설감독 주위에는 늘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자주 만나는 그의 친구들 그 누구도 얻어먹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밥값이나 술값을 계산하는가? 궁금하겠지요? 간단하다. 술값이던 밥값이던 설감독 보다 먼저 내는 비법이 있다. 먹기 전에 들어가면서 카운터에 설감독 모르게 넉넉히 돈을 내고 먹고 나올 때 잔금을 받는 수법이다. 이에 당황한 설감독은 아예 먹으러 갈 집에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면서 술값을 아무 한 테도 받지 말라고 단단히 엄포를 놓는 거다. 이차 삼차 갈 집도 대략 정해진 단골집이 있으니까 한 십 여 군데다가 미리 전화를 해놓는 데는 먼저 돈을 내고 싶어도 어찌 할 도리가 없었던 거다. 영화계에는 설태호 감독과 절친했던 선후배 동료들이 많았으나 그 중에도 멜로드라마를 잘 만드는 김기 감독, 청소년드라마의 선두주자 김응천 감독 (작고),그리고 이 세 감독의 시나리오를 단골로 써서 공급했던 나 이렇게 네 사람을 충무에서는 사 형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설태호 감독은 유모어 감각이 남 다르다. 시나리오 심사를 들어가서 하루에 수 십 편의 시나리오를 읽는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심사에 설태호 감독이 참여하면 양상은 달라진다. 하루의 고된 심사가 끝나고 저녁회식 자리에선 설 감독의 좀 야한 유모어가 튀어나오고, 자중은 배꼽을 잡고 나뒹굴어지는 웃음 바다가 되기 때문이다. 동료 심위원들과 유모어 대회를 열면 언제나 일등은 설태호 감독이 따놓은 당상이였다. 설태호 감독은 함경남도 단천이 고향이다. 19세때 홀홀 단신 남하한 실향민,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는 이북 단천에 두고 온 어머니. 설감독의 모친은 중견 탈렌트 나문희 씨를 쏙 빼 닮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나문희씨가 나오면 그녀를 보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내가 말야, 이산가족 상봉을 하게 돼 가지고 이북에 가서 오마니를 만나면 난 총살을 당해도 다시는 오마니 곁은 떠나지 않을 게야, 여기 있는 아내와 자식들한테는 몇 십 년을 지극 정성 다 했지만 오마니 한데는 단 하루도 효도를 해보지 못한 후래자식이니끼니' 그렇게 말하면서 설감독은 술잔을 꼭 쥐고 그 주름진 눈가에 이슬을 묻히곤 했다. 이산에 아픔의 멍우리를 풀지 못한 한 때문 이였을까, 설태호 감독은 유독 반공영화나 군사영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냈다. 정창화 감독과 이만희 감독에게서 연출수업을 받고 1963년 설태호 의 감독 데뷔작 ' 살아야 할 땅은 어디냐 ' 허근욱 의 실화소설이 바탕이 된 실향민의 고통을 담은 방공영화였다. 같은 해 해병문관이었던 체험이 밑그림이 된 ' YMS504의 수병 ' 1965년 ' 신화를 남긴 해병 ' ' 위험한 보수 ' 1967년 ' 0호작전 ' 이렇게 반공영화와 군사영화만을 고집스레 만들어 오던 설태호 감독은 일정기간을 자신의 특기인 유모어와 해학이 넘치는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한다. 1970년 ' 운수대통 일보직전 ' 연이어 같은 해 ' 남대문 출신 용팔이 '가 대박을 터트린다. 당시의 쾌남아 스타 박노식 을 주연으로 출연시켜 장안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의 코믹 액션 ' 조폭 마누라 ' 신라의 달밤 ' ' 달마야 놀자 ' 그 이상의 코믹액션 붐을 일으키면서 연이여'용팔이' 씨리즈가 탄생한다. ' 역전 출신 용팔이 ' ' 운전수 용팔이 ' ' 신입사원 용팔이 '가 황금알을 낳으며 한 시대를 풍미 한다. 1970년대는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서 정치 경제 사회는 끝간데를 모르게 암울한 시대였다. 억압에 시달리고 궁핍에 찌들고 숨쉬기조차 답답하던 그 시대에 용팔이 씨리즈는 시민들의 탈출구였다. 일자무식 시골 청년 용팔이 ( 박노식 )가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 와서 벌이는 해프닝, 무식한 촌놈이 얼렁뚱땅 돈을 벌고 여차하면 주먹과 발길질로 약아 빠진 서울 놈들 코피 터트리는 그 통쾌함에 수많은 관객들이 참았던 숨통을 터트렸던 것이다. 그렇게 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설태호 감독은 방향을 틀고 이산의 아픔을 다시 되새기듯 반공영화와 군사영화로 몰두하기 시작한다. 1973년 제2회 한라 문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 특공대와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을 연출하고 1973년 간첩 잡는 귀신 오제도 검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 특별수사본부와 기생 김소산 '에 윤정희 최무룡 을 출연시켜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여간첩 영화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뒤를 이어 ' 특별수사본부와 여대생 이난희 사건 '이 극장가를 강타 하며서 여간첩 영화들이 줄을 잇기 시작한다. 설태호 감독은 바람돌이처럼 '용팔이' 바람을 일으켰고 '여간첩'을 소재로 다시 바람 몰이를 하고 나서 기수를 또 다시 군사영화로 돌렸다. 1976년 제15회 대종상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 원산공작 '을 연출하여 영화감독으로서 흥행감각과 예술감각을 두루 갖춘 감독으로서의 위치를 견고히 했다. 설감독은 여세를 몰아 연속적으로 군사영화를 만들어 갔다. 1977년 ' 케논 청진공작 ' ' 도솔산 최후의 날 '' 수병과 제독 '' 제3공작 ' 대형 전쟁영화 ' 땅울림 '등 계속 군사영화를 만들어 갔고 설감독은 잠시 쉬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마지막이라 할 극영화 역시 군사영화인 걸작 '에미의 들'을 연출하여 춘사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다고 설감독이 군사영화와 반공영화, 그리고 코믹액션 영화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설태호 감독은 멜로드라마와 어린이들의 따듯한 사랑이 담뿍 담긴 영화들도 연출하였다. 1974년 ' 사랑이 있는 곳에 ' 1975년 ' 십 년 만에 외출 ' 1984년 안성기 주연의 ' 깊고 깊은 그곳에 ' 그리고 설태호 감독은 제작까지 겸한 대만 로케이션 작품 ' 스잔나의 체험 ' 1987년 ' LA 용팔이 '를 가지고 영화 팀들에게 유독 입국을 힘들게 했던 미국 로케이션도 감행했다. 어린이들의 정과 휴먼 드라마로는 1978년 ' 슬픔을 저 별들에게도 '' 누가 이 아픔을 ' ' 둘도 없는 너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설태호 감독은 뼈에 사무치는 이산의 한을 안고 국군 홍보영화도 수 십 편을 연출한 한마디로 한국영화계에서는 반공군사 영화에 대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70 고령인 지금도 살태호 감독은 청춘 같은 의욕에 불타 극영화 한편이라도 더 만들려는 의지와 정열로 충무로를 그리워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문상훈 (시나리오작가) / 2002년 <프로필> 1929. 5. 26 함경남도 단천 출생 1963 < 살야할 땅은 어디냐 > 데뷔 작품명 1963 살야할 땅은 어디냐 / YMS504의 수병 1965 신화를 남긴 해병 / 위험한 보수 1967 0호 작전 1970 운수대통 일보직전 / 남대문 출신 용팔이 / 역전 출신 용팔이 1971 운전수 용팔이 / 신입사원 용팔이 1972 특공대와 돌아오지 않는 해병 / 혈보산천 1973 특별수사본부와 기생 김소산 / 특별수사본부와 여대생 이난희 사건 1974 어둠속의 목격자 / 사랑이 있는 곳에 / 암살지령 1975 십년만에 외출 1976 원산공작 / 보루네오에서 돌아온 덕팔이 1977 케논청진공작 / 둘도 없는 너 / 도솔산 최후의 날 1978 대동강 출신 / 수병과 제독 / 슬픔은 저별들에게도 1979 제3공작 / 누가 이 아픔을 1980 땅울림 1981 복수는 내게 맡겨라 1984 깊고 깊은 그 곳에 / 스잔나의 체험 1987 LA용팔이 1988 햄버거 쟈-니 1992 에미의 들 수상 경력 1976 < 원산공작 >제15회 대종상 감독상 1973 < 특공대와 돌아오지 않는 해병 > 제2회 한라문화제 감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