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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영상]〈해운대〉제작진 내놓은 야심작 퀵, 조범구감독 말한 영화 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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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영상](해운대)제작진 내놓은 야심작 퀵, 조범구감독 말한 영화 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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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 서비스(방송영화모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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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QUICK AND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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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샌드(QUICKSAND)-S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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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시 존스-백온더 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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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T 콤팩트카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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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퀵건 의 예고편 통관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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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퀵건 미성년자 관람신청 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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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연화 퀵건 수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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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세계는 콘텐츠가 되었다
< 완다비전 >은 OTT 플랫폼인 월트디즈니플러스(이하 ‘디즈니’)의 오리지널 드라마이다. 총 9화로 구성된 <완다비전> 시즌1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페이즈4(Marvel Cinematic Universe: Phase Four)의 첫 번째 드라마 시리즈다. 절대적 권능을 가진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우주의 절반을 절멸시키려는 타노스와의 전쟁을 치룬 슈퍼히어로들의 모험을 그린 페이즈3는 < 어벤져스: 엔드게임 >(앤서니 루소·조 루소, 2019)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 블랙 위도우, 비전 등 여러 슈퍼 히어로는 자신들의 죽음을 통해 타노스가 절멸시킨 우주의 절반을 되돌린다.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은 비극성을 띠며 영웅서사를 완성한다. 페이즈4는 그 이후의, 특히 멀티버스를 강조한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첫 시리즈인 <완다비전>은 멀티버스를 이용해 트라우마와 회복을 서사화 한다. 타노스는 급증하는 인구에 비해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최대다수의 행복을 위해 모든 행성의 절반을 단 한 번에 절멸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가 공익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야기한 재난은 전체주의적으로 인구를 통치하는 정치의 결과다. 그렇다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영웅들의 세상을 구하는 방식은 어떤가? 그들 역시 사라진 인구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 즉 숫자의 회귀에 집중한다. 그 이후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회귀는 회복과 같지 않다. 그렇기에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시리즈로써 트라우마와 회복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완다비전>은 분명 페이즈3와 다르다. <완다비전>은 미학적인 완성도나 세계에 대한 뛰어난 성찰을 보여주는 시리즈는 아니지만, 대중 플랫폼 시대의 메타서사와 팬덤으로서의 관객성을 텍스트 내외부에서 자기 반영적으로 현란하게 구사하는 놀라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것은 거의 MCU의 선언문과 같다. ‘사사로운 리스트’에 이 시리즈를 넣은 것은 이 시대의 대중 미디어 콘텐츠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놀라운 ‘아방가르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MCU가 그래픽노블, 피규어, 극장,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넘나들며 영화를 제작·유통하고 팬덤을 구축하는 방식은 새로운 관객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MCU의 팬덤은 민족국가를 비롯해 장소에 기반 한 지역 공동체들이 더 이상 크게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극장을 중심으로 한 관객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가운데 국가경계와 플랫폼을 가로지르며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영상문화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유의 개성과 능력을 갖고 있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이 개별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를 가로지르며 서사를 상호교차하고 리부트하고 보철하고 있는 방식은 관람자들이 개입할 여지를 많이 남겨둔다.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도 상호교차 출연하면서 어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었던 이가 다른 영화에서는 조연이 되고, 또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주인공도 조연도 없다. MCU가 계속되는 한 언제든, 심지어 죽은 이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서사가 써 내려갈 수 있다. 캐릭터와 텍스트 모두 언제든 다양한 매체로 상품화될 수 있는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의 중심은 캐릭터들이다.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완결된 닫힌 서사가 아니고 언제든 변형가능하고 유연한, 그리고 평행 우주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콘텐츠로 이루어진 영화적 우주에는 끊임없이 생성하고 확장할 여지가 있다. 어떤 우주가 되었든 (미래에 캐릭터와 콘텐츠가 추가되면서) 늘 그보다 더 큰 우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더니즘 시대에는 기존 체제의 해체와 성찰 혹은 진리의 장소였던 개방성과 사이-공간은 이제 도래할 콘텐츠로 빼곡히 채워질 공간이 된다. 심지어 페이즈3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가장 극적인 영웅적 희생을 보여주며 진정한 주인공이 된 아이언맨도 다음과 같은 대사를 듣는다. “스타크 씨, 당신은 더 큰 우주의 일부일 뿐이에요. 아직 모를 뿐이지.” 늘 더 큰 우주로 열린 가능성과 그들의 복잡하면서도 유연한 관계성 때문에 MCU 팬은 슈퍼히어로들과 조연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의 네트워크에 참여 가능한 것처럼 느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 얻은 특별한 ‘능력’이야말로 MCU의 영화적 우주 네트워크에 참여 감각을 높여준다. 그것은 바로 MCU를 읽어 내기 위한 리터러시이다. 끊임없는 확장을 위해 잉여공간을 만들고 그를 통해 이윤을 생산하는 자본주의가 영구엔진을 믿는 것처럼 MCU는 지속적으로 수많은 슈퍼 히어로와 서사들을 양산하고 있고 그들 간의 관계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멀티버스는 그러한 경향을 강화한다. MCU 팬은 그 우주에 참여하려면 해당 텍스트 그 자체만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매해 양산되는 영화와 시리즈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과 돈이 들지만, 별도로 해당 텍스트 밖에서 그들의 개성과 관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더 나아가 남들의 이해를 돕는 콘텐츠를 부가적으로 생산한다. 그래서 MCU 팬은 기본적으로 메타적이고 생산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영화학자는 이러한 MCU 관객성을 “연속성의 리터러시(literacy of continuity, 패리 댄츨러)”라고 개념화한 바 있다. MCU 팬덤은 MCU가 지속되고 확장되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들은 개별적인 텍스트들이 복잡하게 연결되며 배치되는 가운데 그 빈 간극을 메워주며 연속성을 유지시켜준다. 이들은 다양한 장르, 매체, 플랫폼을 오가는 와중에도 그 모든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양한 스타일들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고 박식한 정보를 모으고 공유한다. 단순히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텍스트들이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각 텍스트가 지닌 상징, 기호, 의미를 적극적으로 밀도 있게 독해하며 그것들을 상호텍스트적으로 네트워킹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선 많은 에너지를 투자할 수밖에 없고 투자를 회수하기 위해 다시 MCU를 소비하게 된다. 그렇기에 관객의 적극적 리터러시는 MCU의 확장과 응집력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그들의 참여감각은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성을 시뮬레이션 한다. MCU의 관객성은 리터러시가 높고 메타적이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성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공동체 감각을 강화하는 연속성은 영화적 우주가 잠재적으로 확장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세계 바깥을 더 이상 상상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역사적 성찰은 바깥의 사유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MCU 팬덤의 리터러시는 슈퍼히어로의 슈퍼 파워 같은 것이 된다. 그리고 이 슈퍼 파워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성장 가능한 것이다. 페이즈3에서 남성 영웅들이 장애를 갖거나 허약한 신체에서 기술적 보철을 통해 무적의 영웅으로 성장하는 서사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능력주의’ 성장서사, 팬들이 리터러시를 키워며 MCU에 점증적으로 몰입하는 활동, MCU의 확장은 그 자체로 평행/멀티 우주를 구성한다. 여기서 장애는 비정상성/능력 없음이 되고 비장애는 정상성/슈퍼 파워가 된다. 장애가 있는 신체를 대가로 MCU가 연속성과 확장성을 얻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나온 페이즈4의 <완다비전>은 매우 흥미롭다. 제목 ‘완다비전’은 다중적 의미를 갖는다. 스칼렛 위치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의 비전, 즉 완다가 바라보는/보고 싶은 세상일 수도 있고, 완다가 만든 연인 비전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완다와 그의 연인 비전이 만든 가상세계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드라마의 초반 에피소드들은 매우 낯설고 혼란스럽다. 미국 텔레비전 문화의 역사와 MCU에 대한 정보와 정동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시네필’과 같은 높은 리터러시를 요구한다. 완다는 ‘엔드 게임’에서 연인 비전(폴 베타니)을 잃는다. 그런데 비전을 잃는다는 문장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비전은 골격과 외장부터 세포단위까지 무한 재생력을 가진 비브라늄이라는 합성소재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포스트휴먼이기 때문이다. 사실 비전은 남성처럼 묘사되고 남성 배우가 연기하지만 그의 성별과 외양도 어쩌면 결정된 것이 아닐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트랜스젠더들은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 MCU 슈퍼 영웅으로 비전을 택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 완다는 비전의 상실과 트라우마 그리고 애도를 주제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포스트휴먼을 상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드라마는 깊이 탐색한다. 완다의 트라우마는 비전만이 아니라 동유럽 이민자 가족으로서 오빠 퀵실버와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상실이 축적되어 발생한 것이다. 동유럽 이민자와 인공생명체의 애도는 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어떻게 애도가 가능한가. 왜 백인 남성영웅 아이언맨에 대한 애도는 ‘엔드게임’ 내내 중요하게 다뤄짐에도 인공생명체인 비전이나 러시아계 여성영웅 블랙 위도우는 그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서사화되지 못했는가. 완다의 슬픔과 분노는 단지 비전을 잃었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의 죽음이 공동체 내에서 제대로 애도되지 못했다는 것, 아니 애초에 애도불가능성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도의 이중적 불가능성, 즉 애도불가능성이 애도되지 못하는 것이다. 비전은 비브라늄이라는 신소재만 있으면 언제든 재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고전적인 죽음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완다는 비전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사건의 완료가 불가능하다. <완다비전>은 과잉된 메타성, 혹은 빠른 속도로 급증하는 하이퍼매개성을 특징으로 하는 MCU와 같은 콘텐츠들이 도래할 메타콘텐츠들로 인해 외부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성찰적 비평이 불가능함을 텍스트 내적으로 서사화한다. 완다는 비전을 다시 만들어내 자신의 가상공간을 만든다. 그 가상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과 교외의 이성애 ‘정상가족’ 신화를 믿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1950-60년대 시트콤을 오마주한다. 흑백에서 칼라까지, <Mary Tyler Moore Show>, <I Love Lucy>, <The Dick Van Dyke Show>, <Bewitched> 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상성’에 편입되기 힘든 인공생명체인 비전과 마녀인 완다는 아이들까지 낳으며, 정상가족을 시뮬레이션 한다. 사실 그 시트콤들은 당시에도 정상가족이 신화라는 것을 이미 드러낸 바 있다. 이 코미디들은 ‘정상성’을 슬로건으로 걸면서도 넘어지고 부딪히는 신체 코미디와 말실수, 농담, 각자 맡은 성역할에의 무능함 등으로 ‘정상성’의 불가능성을 노출시킨다. 중산층의 존중받는 직업을 가진 모범적인 남편과 그를 보살피고 위로하는 전업 가정주부인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장난꾸러기인 귀여운 아이는 사실 그 자리에 잘 적응하지 못해 늘 해프닝과 슬랩스틱 코미디를 만들어 낸다. 완다의 아버지는 동유럽 이미자 출신으로 미국 텔레비전 쇼가 담긴 해적판 DVD를 파는 일을 했고, 완다와 오빠 퀵실버는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그 DVD를 보며 자랐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정상가족에 들지 못한 완다의 매체적 정동을 드러내는 콘텐츠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정상적인’ 백인 중산층 가족을 다룬 프로그램들이 된다. 회복을 위해 바깥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메타성을 작동시키며 완다는 점점 텍스트 내부로 진입한다. 완다의 비전은 결국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시트콤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가 되는 ‘제 4의 벽’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완다비전>은 매체성찰적이고 매체고고학적인 모더니즘 영화들이 해오던 작업을 진지하게 수행한다. 메타성의 바깥을 끊임없이 사유하고 텍스트 내로 끌고 들어온다. 외부가 되는 즉시 내부가 되는 그런 방식이다. 드라마에서 완다는 결국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제 4의 벽을 뚫고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외부의 사유, 즉 ‘비브라늄’이라는 소재의 조건(이중적 애도불가능성의 트라우마)과 ‘이민자’라는 위치를 사유할 여력이 남아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에게 또 다른 멀티버스가 도달할 것이고 또 다시 재현체계 안으로 주름 접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사유는 지연되고 성찰성은 포르노가 된다.
[초이스]다영씨
채플린의 영화는 항상 서글프고 처량 맞았다. 넘어지고 고꾸라지고, 요상한 것 (이를 테면 ‘ 황금광 시대 ’에서의 고무부츠 같은것) 을 우걱우걱 씹어대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그의 이야기는 웃음 뒤로 지긋지긋한 가난과 계급적 불평등을 이고 살았던 노동자와 이민자들의 역사를 드러냈다. 그의 사회적 일침이 더더욱 드라마틱하고 절실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채플린의 영화들이 언어가 아닌 몸으로 이야기하는 무성이었고 화려함과 꾸미가 빠진 흑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진 건 ‘몸’ 뿐인 노동자들의 설움이 슬랩스틱과 피상의 색(色) 이 빠진 현실의 명암(明暗)만으로 시대의 고통을 공유했다. 고봉수 연출의 < 다영씨 >(2018) 역시 비슷한 화법으로 세상의 고달픔을 나눈다. 색과 언어의 소란함없이 노동의 처절함을, 노동계급의 집단적 서러움을 로맨틱 코미디의 형태로 그린 흑백무성영화, <다영씨>는 2000년대에 재등장한 채플린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 영화는 보름달 빵과 바나나 우유를 입에 꾸겨넣고 있는 퀵 서비스기사, ‘민재’의 클로즈 업으로 시작된다. 오토바이 위에 엉거주춤 앉아 빵을 먹고나면 본격적으로 민재의 부역이 시작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빌딩을 등반 하듯 올라갔다 내려오고, 배달 중에 물건을 들고 넘어져 박스 안 상품이 깨지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민재의 일상에선 다반사다. 맨날 먹는 보름달 빵 만큼이나 지겨운 일상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다영씨’에게 온 택배를 배달하는 일이다.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그녀는 밤낮 피곤과 구박에 쩔어있지만 민재가 나타나면 함박미소를 머금는, 그에게는 달콤상큼 귤 같은 존재다. 민재의 착한 동료들은 다영씨 앞으로 온 모든 택배를 민재에게 몰아준다. 그녀에게 택배가 도착할 때 마다 민재는 싱글벙글하며 귤을 챙겨 주머니에 넣는다. 자신의 쑥쓰러운 미소를 들키지 않기위해 헬맷으로 얼굴을 덮고 다영씨 책상에 몰래 귤을 얹어 놓으면 민재의 비밀스러운 임무가 끝난다. 가끔 마법처럼 생겨나는 귤 말고는 다영씨에게도 인생의 낙이 없다. 사무실에는 다영씨를 무시하고 따돌리는 네 명의 찌질한 남자 상사들과 그들을 여왕벌처럼 군림하는 사장의 딸이 있다. 상사들은 시도때도 없이 다영씨에게 커피 심부름과 각종 잡일을 시켜며 그녀의 하루를 지옥으로 만든다. 한편 민재는 다영씨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택배일을 그만두고 그녀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낸다. 민재의 낮은 학력과 경력을 비웃던 상사들은 이력서에 쓰여진 그의 희망 월급 ‘50만원’에 눈을 번쩍 뜨고는 그를 고용한다. 민재가 다영씨의 회사로 출근을 시작하면서 택배기사의 삶으로 보여졌던 고단한 노동자의 촌극은 중소기업으로 공간을 이동한다. 비정규직인 다영씨는 정규직 직원들의 회식에 초대를 받지 못하고, 늘 컵라면으로 때우며 야근을 하지만 회사는 계약기간을 늘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의 ‘웃픈’ 슬랩스틱은 꿋꿋이 이어진다. 코미디의 대부분은 여왕벌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비위를 맞추는 상사들 4인방과 다영씨를 위해 그들을 골탕먹이는 민재의 소소한 복수극으로 채워진다. 궁극적으로 <다영씨>는 노동현장에서 마주하는 비정한 현실을 다루고 있으나 민재의 직업전환으로 인해 대비되는 전반과 중반이후, 즉 노동직과 사무직의 대비를 통해 기업 내에서의 계급구조를 극명히 드러내기도 한다. 가령, 민재의 짝사랑을 위해 택배기사들이 민재를 도와주고 (동등한 위치에서) 연대하는 반면, 회사의 직원들은 대리, 과장, 부장의 서열을 통해 분리되어있을 뿐 아니라, 이를 지배하는 금수저 출신 사장 딸의 존재를 통해 계급적으로도 분리되어 있음을 명시한다. 결국 이 엄청난 서열과 계급의 벽은 다영씨의 수호천사로 회사에 ‘헐값’에 입사했던 민재도 어쩔수 없는 불가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결국 민재는 회사를 나와 퀵서비스 기사로 돌아가고 다영씨는 고난 뿐인 그 언덕에 남는다. <다영씨>에는 코미디영화에 있을법할 유쾌한 엔딩이 없다. 커플의 진한 키스신으로 끝나지도 않고 주인공의 팔자 전복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퀵서비스 기사로 다시금 나타난 민재와 다영씨의 재회는 절절하게 느껴진다. 러닝타임 60여 분에 담긴 노동자의 고단한 삼라만상 끝에 보여지는 이들의 교감은 분명 로맨스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대와 교감의 온기가 넘치는 이 영화의 엔딩은 참으로 귀한 코미디적 엔딩이자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엔딩이기도 하다.
[월간스크린]귀여운 콩가루 가족: <귀여워>(김수현, 2004)
2004년 | 튜브픽쳐스 감독, 각본: 김수현 | 각색: 김소정 김봉훈 | 제작: 황우현 황재우 | 촬영: 김철주 | 미술: 박혜성 | 음악: 이병훈 CAST 순이: 예지원 | 963: 김석훈 | 뭐시기: 정재영 | 개코: 박선우 | 장수로: 장선우 | 막내: 박희순 사연은 이렇습니다. 박수무당인 장수로(장선우)는 자신을 찾아온 여인네들에게 씨를 퍼트렸고, 그래서 배다른 형제들이 탄생합니다. 퀵서비스맨 963(김석훈), 레카차 드라이버 개코(박선우), 그리고 조폭인 뭐시기(정재영). 여기에 순이(예지원)이 가세하며 가족을 이룹니다. 순이는 길에서 뻥튀기를 팔다가 우연히 개코를 만나 가족이 되었고, 장수로는 젊은 순이에게 연정을 품죠. 이처럼 < 귀여워 >는 어느 콩가루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현장 공개는 실외와 실내 모두 이뤄졌습니다. 실외는 2002년 11월, 실내는 2003년 1월이었는데요, 영화 개봉이 2004년 11월이었던 걸 감안하면 꽤 간격이 큽니다. 원래는 2003년 5월 개봉이었는데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죠. 공개된 장면은 뭐시기가 아버지 장수로를 찾아온 신입니다. 동네 평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데요, 딱 봐도 건달기가 줄줄 흐릅니다. 역할을 위해 실제 건달과 합숙하면서 연기를 준비했는데 단 며칠 만에 완벽하게 ‘조폭화’되었다고 하더군요. 뭐시기를 바라보는 장수로 역의 장선우입니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파와 콩나물 봉지를 들고 있죠. 사실 <귀여워>의 가장 놀라운 캐스팅은 장선우입니다. 김수현 감독은 장선우 감독의 < 너에게 나를 보낸다 >(1994) < 꽃잎 >(1996) < 나쁜 영화 >(1997) 연출부 출신인데요, 자신의 데뷔작에서 스승을 배우로 모셔온 셈이죠. 원래는 한진희 씨가 맡을 예정이었는데 일정이 지연되면서 무산되었고, 이때 튜브픽쳐스의 황우현 대표가 ‘장선우 캐스팅’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의외로 주변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역할 제안을 하게 되었으며, 처음엔 난처해하던 장선우 감독은 농담처럼 “한번 망해보자”며 승락했다고 합니다. 뭐시기가 앉아 있는 평상 근처의 풍경입니다. 황학동 철거촌 주변 아파트죠. 김수현 감독은 말합니다. “철거는 서울의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죠. 황학동 아파트는 60년대 후반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부의 상징이었는데 10년도 못 가 철거가 거론됐어요. 서울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성격인데요, 끊임없이 변화가 이뤄지지만 실상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어요. 세우고 부수기만 반복할 뿐이죠.” <귀여워>는 지금은 사라진 폐허의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서울에 대한 기록의 측면에서도 가치를 지닙니다. <나쁜 영화> 연출부를 끝내고 일란성 세쌍둥이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던 김수현 감독은, 장수로와 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이야기가 쉽게 풀렸고 그 결과물은 <귀여워>가 됐습니다. 963의 퀵서비스나 개코의 레카차 운전사는 모두 감독이 직접 경험했던 직업이라고 하는데요, 생계를 위해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자연히 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야생적 느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시기 예지원은 < 생활의 발견 >( 홍상수 , 2002) 이후 독보적인 아우라를 지니게 된 배우였죠. 그녀에게 ‘순이’는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안성맞춤 캐릭터였습니다. 좁은 아파트 복도에서 촬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 실내 장면은 양수리 세트에서 촬영되었습니다. 2003년 1월에 개봉된 세트 촬영 현장입니다. 밖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둘째 개코가 발톱을 깎으면서 맞이합니다. 이 역할을 맡은 배우가 왠지 낯익다고 느껴지신다면… 맞습니다. ‘하얀 겨울’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남성 듀오 ‘미스터 투’의 멤버 박선우입니다. 김수현 감독의 동국대학교 영화과 후배인데요, 파격 캐스팅을 통해 이 영화로 데뷔해 신인답지 않는 노련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박선우는 영화음악을 맡기는 줄 알고 연락을 받자마자 김수현 감독에게 달려왔다고 하는데요, 기다리는 건 ‘개코’라는 캐릭터였습니다. 이날 963은 오토바이에 순이를 태우고 질주하다가 함께 집에 들어오는데요, 순이를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하는 장수로는, 아들에게 순이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며 아들의 뒷통수를 갈깁니다. 약간은 비뚤어지고 냉소적이면서 내성적인 963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연기하기 가장 까다로운 역할일 텐데요, 김석훈은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역할을 해냈습니다. 집안 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구조가 매우 특이합니다. 철거촌에 있는 집인데. 집 안도 철거되어 있는 셈이죠. 좁은 세트 안에서 앵글을 만들어내기 위해 구조를 조금씩 바꿔가며 촬영을 했습니다. 당시 예지원의 매니저는 지금은 고인이 된 하용수 였습니다. <귀여워> 시나리오를 읽고 “혹시 예지원이라는 배우를 잘 알고 쓴 시나리오냐?”고 물을 정도로 적역이었다고 하네요. 배우 역시 순이와 자신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준비 과정부터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었고 현장에서 감독에게 가장 힘이 되어 준 배우였다고 합니다. 당시 정재영은 < 킬러들의 수다 >( 장진 , 2001) < 피도 눈물도 없이 >( 류승완 , 2002)로 조금씩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하며 거친 마초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말끝마다 “뭐시기”라는 말을 붙이는 뭐시기는 철거반을 이끄는 건달인데요, 정재영은 거의 완벽하게 역할을 해냅니다. 장수로의 부스스한 헤어스타일도 섬세한 작업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장선우의 연기에 대해 현장 스태프들은 “연기와 연기 아닌 것의 경계에 서 있는 묘한 느낌의 연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김수현 감독은 매우 꼼꼼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감독은 <귀여워>가 결국은 “네 남자가 순이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 영화”라며, 남자들의 그 귀여운 모습이 <귀여워>라는 제목의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감독은 < 창피해 >(2011) < 우리 손자 베스트 >(2017) 등을 내놓았습니다. 김수현 감독은 말합니다. “남자들은 무엇인가 계속 이뤄내려고 하죠. 세상이든 자신이든 끊임없이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정작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반면에 순이는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가벼운 사람인 것 같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요. 그녀는 변화를 주도하지 않고, 상대에 반응하면서 변화를 이끌어내죠. 남자들이 뭔가 이루려고 아등바등해서 세상이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자연에 동조하며,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대안을 보여주는 모델이 순이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