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
- 감독
- 최양일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고바야시 가오루, 시나 깃페이, 카가와 테루유키
< 환절기 >는 명필름영화학교 극영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앞으로 함께 제작할 동기이자 주요 스태프(촬영, 미술, 편집, 사운드, 연기 부문)와 2015년 한 해 동안 프리프로덕션의 사전 단계를 느슨하게 거쳤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 준비를 시작해 5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 약 7주 동안 총 28회차로 촬영을 마쳤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에게 처음 선보인 후 연말까지 이어진 개봉 버전의 후반 작업 기간까지 친다면 저예산 학교 졸업영화치고는 꽤 긴 시간 동안 작업을 한 셈이다. 프로덕션 약 1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제작일지를 기록했다. 장편 영화연출은 처음이라 다음 작품 제작 시 참고할만한 정보를 남기고,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제작일지에는 세부 진행 사항과 고민, 그리고 그 해결 과정 등을 후에 복기할 만한 로그북 형태의 파일로 남겼는데, 한창 촬영 중이었던 6월 말 이후로는 기록하지 못했다. 촬영 막바지에 이르자 일지를 쓸 만큼 여유가 없었고, 이후 곧바로 후반 작업에 몰두하느라 미처 끝맺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이 제작기로 < 환절기 > 일지를 마무리 짓는 기분이다. < 환절기 > 시나리오로 운 좋게도 명필름영화학교에 들어온 후, 다시 테이블 위에 시나리오를 놓고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논의를 했다. 실로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결국엔 처음 시나리오의 의도를 그대로 살리면서, 작품 특유의 결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수정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2015년 8월, 일찌감치 최종고를 확정하고 이후에는 진행 상황에 맞추어 일부 장소나 인물, 대사 등 디테일 수정을 했다. 영화 제작 전 동명의 그래픽노블(만화) 작업과 출간을 통해 독자와 만나며 느낀 바지만, 시나리오는 꽤 호오가 갈리는 편이었다. 일부에서는 소재에 대한 우려 섞인 이야기나 작품의 정서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회의적인 반응도 제법 있었다. 그럼에도 고유의 색깔과 작은 미덕을 잃지 않고 제작으로 이어갈 수 있었던 동력은 함께 준비하는 이들의 믿음 때문이었다. 외로운 마음으로 썼던 시나리오라 그런지, 그들의 지지와 응원은 연출자로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촬영과 미술감독은 학교의 다른 1기 극영화 제작에도 참여해야 했다. 일정이 < 환절기 >보다 불과 몇 달 앞에 있었기에 아무래도 프리프로덕션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촬영과 미술 부문은 조금 일찍 서둘러서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촬영감독과는 본격적인 콘티작업에 앞서 러프하게 각 씬에 대해서 촬영 콘셉트와 기조를 정했다. 콘티작업의 기본 뼈대를 구성했던 셈인데, 덕분에 이후 빠듯한 프리프로덕션 일정에서 콘티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큰솔 촬영감독은 우리가 만들 영화를 퀼트에 빗댄 적이 있다. 작고 섬세한 감정, 그것들이 엮이고 쌓여서 주는 먹먹함을 전달했으면 했다. 촬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여백이었다. 일반적인 앵글에서는 다소 벗어나더라도 가급적 빈 여백을 보여주고자 했다. 프레임 속 인물 곁에 있는 공간을 통해서 정서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우리 영화 속에는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이 유독 많다. 카메라 역시 연기하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고통받고 상처받는 다른 인물을 직접적으로 응시하는 것이 아닌 조금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다. 인물의 외로움을 얼굴에 집중해서 그 감정을 보여주기보다는 뒷모습이나 그가 있는 공간을 통해 느껴졌으면 했다. 미술감독과 콘셉트 논의를 할 때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 작품들을 언급했다. 이제는 참고로 삼기에도 너무 흔한 느낌이 드는 에드워드 호퍼. (심지어 그의 그림을 따라 한 TV 광고마저 있으니까.) 하지만 그의 그림은 어떻게 보면 이젠 더 이상 새롭지 않은데도, 아직까지도 늘 회자되고 묘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권하얀 미술감독은 그 이유를 우리가 그의 그림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을 겹쳐보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우리 역시 < 환절기 >가 그러한 영화가 되길 바랐다. 영화 초반에는 어두운 그레이 위주 톤에 직선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다가 끝에 이르러서는 자연의 빛깔과 같은 다양한 색으로 전체적인 톤이 변화한다. 점차 밝고 생동감 있는 색으로 이동하는 것이 작품과 인물의 정서 변화와 비슷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다만 개별공간과 프레임에서의 색의 톤 일치와 조화는 늘 중요하게 염두에 둬서 일정하게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영화 속 가장 특징적인 공간은 요양병원이었다. 미술감독과 함께 경기도 일대의 다양한 요양병원들을 미리 찾아가 보고, 작품 속 요양병원이 과거 모텔이었던 공간인 만큼 색을 많이 드러내고자 했다. (실제로 과거 모텔이나 숙박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용하는 병원을 다녀보니 실내 인테리어 등에서 그 특유의 과감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흥미로웠다.) 영화학교 구성원도 그렇지만, 함께 프로덕션과 후반 작업에 참여한 각 부문 스태프 중에는 이번 현장으로 처음 장편영화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지영 PD는 오래전부터 제작부 일을 시작해 그동안 수많은 현장을 경험한 선배였지만 “모든 영화 현장은 누구에게나 처음일 수밖에 없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작품, 이번 동료들에 한해서만큼은 누구나 처음이다. 처음은 언제나 두려움 섞인 용기와 동시에 설렘 섞인 긴장감을 준다. 돌이켜보면 소위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말은 자기충족적 예언의 성격을 띤 수사 표현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종종 그런 작은 행운에 감사할 일이 많았다. 특히 내게 행운은 역할을 떠나서 작품을 아껴주고 헌신해준 배우와 스태프들을 만난 것이 아닐까.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 그것도 3종류 다 다른 병원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데다, 차량 씬과 바닷가, 산속 야간 씬 등이 적지 않아 촬영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더구나 촬영 기간 동안 때 이른 무더위에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지고, 장마까지 겹쳤다. 각 파트별로는 내가 모르는 다른 곤란들이 더했을 것이다. 촬영 약속을 해두었던 강원도의 한 병원이 크랭크인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촬영 불가 통보를 해서, 촬영 도중 대안을 마련하고 촬영이 없는 날에도 계속 지방 헌팅을 다녔던 것은 그나마 작은 고비에 속한다. 12시간이 넘는 촬영은 기본이고, 한 회차에 도시와 장소를 네 곳 이상 옮겨가며 24시간 촬영 중 ‘정말 이건 무리다’ 느낀 적도 있다. 사실 이런 고생담을 전하는 건 진심으로 부끄럽다.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특히 저예산영화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도 우린 해냈어” 같은 일종의 정신력과 체력을 호기롭게 얘기하거나 서로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는 개인적으로 꺼려진다. 저예산독립영화일수록 더욱더 사람이 중요하다. 시스템이나 자본력으로 보완하기 힘든 한계 여건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개별 참여자의 컨디션과 에너지 관리가 가장 우선돼야 한다. 주5일제와 휴식 보장, 주간에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너도나도 기본이 되기를. 저예산영화라고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스스로 접거나 배척하는 경향은 사라졌으면 한다. 아무튼 힘든 와중에 모두 무사히 안전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고 정말 고마운 일이다. < 환절기 >는 저예산영화라는 일반적인 틀에서 ‘영화학교 1기’라는 첫 시스템과 인력이 만드는 특수한 상황이 공존하는 프로젝트였다. 일반적인 저예산영화가 갖는 인적·물리적 한계점도 분명 있었고, 낯설고 예외적인 제작방식이 갖는 가능성도 동시에 존재했다. 각 파트 스태프와 배우들 사이에는 다양한 경험치의 차이와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었다.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나는 이 특수성 속에 보편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선택과 해결점을 찾는 것이 늘 과제였다. 때로는 이 한계가 일부 대안적인 크리에이티브로 연결되기도 했던 것 같고, 솔직히 어떤 것은 여전히 모르는 채로 아직도 남아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망원동 어느 다락방 같은 곳에서 시나리오 첫 씬을 쓰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제법 흐른 뒤 그림 작가가 자신만의 그림체로 표현해 만화를 완성했다. 이제는 매력적인 배우들과 전문 스태프가 참여해 함께 영화로 만들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내게는 ‘환절기’라는 한 이야기가 세 가지로 존재하고 변화하는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세계. 그리고 만화로 재현된 이미지와 분위기. 마지막으로는 개봉을 앞둔 영화 < 환절기 >의 시공간. 비슷하면서도 각각 다른 인물들과 이야기가 있다. (겸연스럽지만) 그러니 부디 만나주시길 부탁드린다. 영화로도, 또 책으로도.
자, 가렛 에드워즈의 < 고질라 >를 보면서 ‘쇼와 고질라’와 ‘헤이세이 고질라’의 전통을 언급하며 유년기의 추억이 귀환한 듯 기뻐하는 평들이 딱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는 것부터 먼저 언급하며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째서 고질라가 유년기와 청년기의 추억일 수가 있지? 쇼와든 헤이세이든 내가 극장용 고질라를 처음으로 본 건 2000년대 이후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 진정한 첫 번째 고질라 영화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 고질라 >였던 것 같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다시 매만져진 일본인들의 전통을 목격한 뒤, 그걸 토대로 다시 일본인들의 전통을 거슬러 올라 머릿속에 입력시켰다는 이야기다. 문방구의 꽃,「괴수대백과」 만약 고질라가 내 안의 아주 미묘한 덕심을 살짝 건드리긴 했다면, 그건 오로지 80년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괴수대백과」 덕분이다. 이걸 기억하는 세대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80년대 문방구에서는 한국에 전혀 소개된 바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에 대한 번역본 해설지를 팔았다. 그게 또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인기가 있었다. 나 역시 「괴수대백과」의 열렬한 팬이었다. 고질라와 가메라와 모스라와 킹기도라와 메카 고질라의 사진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것들을 진짜 스크린 속에서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그 열망은 십여 년 뒤에나 겨우 DVD를 통해 이루어졌다. 마치「‘건담대백과」로 접한 <기동전사 Z건담>을 십수 년 뒤에나 카피본으로 겨우 (그것도 중간중간 더 이상 성인에게는 온전히 통하지 않는 과장된 감상주의를 감내해가며) 목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괴수물’을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본 게 언제냐고 묻는다면, 고질라나 가메라 대신, 입에서 꺼내는 즉시 살짝 웃음이 터지는 제목을 굳이 꺼내야만 한다.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이라면 기억할 < 비천괴수 >라는 제목 말이다. < 비천괴수 >는 60년대 신상옥 , 나봉한 같은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한국과 홍콩 합작영화가 쏟아지던 시절 성룡, 홍금보가 출연한 <용호문>(1975), < 사대철인 >(1977) 등 무협 영화를 만들었던 김정용 감독의 영화다. 합작영화 시절이 막을 내리고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도래한 80년대 초반, 그는 < 소림사 주방장 >(1981)이나 < 무림 걸식도사 >(1982)같은 코믹 무협영화들을 만들었다. 낯설다고? 80년대 토요일 낮에 당신은 TV로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을 거다. 하여간 그는 90년대 후반까지도 조형기가 임화수를 연기하는 < 충무로 돈키호테 >(1999)같은 싸구려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이 남자의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게 격정적인 B급 영화가 바로 이 한국형 괴수물 <비천괴수>다. 뭔가 대단한 영화일 것 같다고? 확실히 대단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공룡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 김 박사(왜 그 시절에는 다 김 박사인가!)가 실종된다. 잡지사에 근무하는 강 기자는 박사를 찾아 어느 작은 해안 도시로 간다. 알고보니 김 박사는 딸과 함께 숨어서 공룡의 존재를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강 기자는 이러저러해서 김 박사의 가정부로 취직을 한다(왜?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자정신이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끝에 괴수가 부활해 인간들을 침공하기 시작한다(공룡이라더니 왜 괴수냐고? 그걸 나에게 물어봐야......). < 비천괴수 > 스틸 홍보물 당대의 국민학생들에게, 아니 적어도 내가 살던 지방 항구도시의 유년들에게, < 비천괴수 >는 센세이셔널한 블록버스터였다. 소문이 퍼지자 거의 주변 모든 학교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거기에는 「괴수대백과」에 나올 법한 괴수들이 정유시설을 파괴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쓰나미를 일으키고(태풍이었던가? 어쨌든.....), 하여간 모든 걸 파괴했다. 그건 그야말로 당대 한국 영화의 어떤 괴수적 절정에 다름 없었다. “「괴수대백과」 괴수들이 다 나와!” 나는 친구들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가며 <비천괴수>를 보라고 권했다. 그렇다. 「괴수대백과」의 괴수들이 이 영화에 다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이건, 알라바마주의 할매가 옆 동네 천을 하나씩 훔쳐다가 기워낸 퀼트 같은 영화였으니까. < 비천괴수 >는 80년대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카피라이트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는지에 대한 근사한 역사적 사료다. 사실상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괴수의 스펙터클은 < 울트라맨 > 시리즈의 괴수 장면들을 불법으로 가져온 것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돌아온 울트라맨>의 시고라스, 벰스타 등이고, 초기 울트라맨의 페스타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상상해보시라. 한국형 괴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제작자와 감독은 아무리 원화를 팍팍 투자해도 엔화로 만든 특촬물의 퀄러티를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어차피 한국에 전혀 들어오지 않은 일본 특촬물의 괴수 장면들을 조금씩 떼어다가 영화 속에 삽입하는 것이었을 게다. “자, 영화의 줄거리는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따오는 거야. 공룡을 발견한 학자 이야기를 넣으면 근사하잖아? 응? 공룡이 아니고 괴수물 아니냐고? 한국 사람들은 괴수 이런 단어 잘 모르니까 일단 공룡으로 시작해. 그리고 그냥 해변 마을에 가서 배우들 데리고 도망치고 이런 거 찍은 다음에 편집하면 되는 거야. 괴수랑 사람이랑 직접적으로 컨택트하는 장면이 하나 쯤 있어 하지 않냐고? 그러면 발만 하나 만들어! 발만!” 발만! 당연히 괴수가 나오는 장면들과 실제로 찍은 인간들의 장면들은 도대체 붙을 리가 없다. 아마도 김정용 감독은 거의 제대로 된 대본도 없이 이 영화를 촬영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 뒤에는 옅게 미소 짓거나 좋아서 박수를 쳐대는 인간의 리액션 씬이 등장한다. 아, 혹시 이것은 지구 종말의 날을 맞이한 인간들의 광증을 표현한 몽타주인가? < 비천괴수 > 최대의 명장면은 배우 김을동 이 마을에서 아기를 둘러업고 산으로 피신을 갔다가, 둘러업고 온 것이 아기가 아니라 베개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프게 오열하는 장면이다. 공포에 질려서 산으로 도망쳤던 김 박사의 딸은 그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도 기쁘게 웃어젖힌다. 나중에 <비천괴수>를 다시 봤더니, 이 영화의 진정한 괴수는 괴수가 아니라 김 박사의 딸이었다. 그러고보니 왜 한국형 괴수영화 속 아이들은 이토록 인간미 없는 사이코패스인가에 대한 논문을 누가 하나 써볼 법도 하다. 전설적인 < 대괴수 용가리 >에서 용가리와 춤을 추는 소년의 캐릭터와 함께 묶어서 말이다. < 비천괴수 >는 < 대괴수 용가리 >(1967), < 우주괴인 왕마귀 >(1967)로부터 시작된, 가난한 한국 B급 괴수영화의 계보도에서도 결코 진골은 될 수 없는 영화다. 두려움 없는 저작권의 테러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대괴수 용가리>를 극장에서 보기에는 너무 어렸고, 레이 해리하우젠의 몬스터들은 ‘괴수’라기보다는 뭔가 좀 다른 존재였다(그리고 심형래의 < 용가리 >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나이가 들었다). 지금 삼사십대의 한국 몬스터 영화광들에게는 <비천괴수>가 주는 어떤 미묘한 향수를 도저히 거부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건 마치, < 고질라 >를 보고 싶었으나 정작 알라바마주 동네 극장에서 상영하는 샘 커츠만의 거대 ‘칠면조 괴수물’ <자이언트 클로 The Giant Claw>(1957)가 생애 첫 괴수영화가 되어버린, 지금은 예순이 넘은 미국의 어떤 괴수광 노인이 느끼는 향수 같은 것과도 비슷한 것이리라. 뭐, 그런 느낌적 느낌일 거란 소리다. 김기주 남혜경 김다혜 문태선 감독: 김정용 각본: 이문웅 개봉극장: 오스카(서울) 관람인원: 2,741명(서울)
< 별을 쫓는 아이 >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으로 2011년 개봉하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1999)와 < 별의 목소리 >(2002)로 일약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해성같이 나타난 신인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마치 사진과 같은 아름다운 배경 미술과 1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든 상업회사의 작품을 상회하는 퀼리티가 그 주목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첫 장편 <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2004)에 이어 < 초속 5센티미터 >(2007) 그리고 이번의 <별을 쫓는 아이>(2011)까지 3번째 장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여러 면에서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과는 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애니메이션 회사 출신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애니메이션 감독과 다르게 애니메이터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픽사나 디즈니 감독들처럼 애니메이션 학과를 나온 전공자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의 작품은 두 가지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감수성과 일치하는 내성적이고 성찰적인 소년의 정서이다. 두 번째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SF의 세계관이다. 첫 단편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는 게임회사에서 틈틈이 만든 작품으로 온전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찰적인 감성과 연애에 대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일본의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DOGA CG애니메이션 페스티발에서 그랑프리를 받으며 일약 가능성 있는 신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만든 < 별의 목소리 >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감성의 두 원류인 내성적인 소년의 시각으로 본 풋풋한 사춘기의 연애 감정 그리고 또 하나인 SF가 25분의 러닝타임에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DVD만 16만장이 팔리면서 자신의 상업성을 입증하였다. 제작비가 2000만원이 든 것을 감안하면 이 작품은 엄청난 히트상품이다. 또 그는 이 작품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첫 장편인 <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에서는 SF세계관이 그의 장점이던 성찰과 예민한 감수성을 잡아먹어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좋은 성과를 보여 왔던 작품의 두 원천이 충돌을 보인 것이다. SF가 작품의 뼈대라면 성찰적인 연애감정은 심장이다. SF는 액션을 만들지만 영화의 감정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시 < 초속 5센티미터 >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나의 목적에만 집중하여 그 감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 큰 스토리가 감성을 방해하지 않도록 옴니버스로 구성하였으며 자신의 또 다른 취향인 SF를 배제하였다. 결국 <초속 5센티미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소기의 목적이란 신카이 마코토 색깔의 장편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연달아 만든 작품을 피로를 없애기 위해 영국으로 가서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1년 뒤 그는 새로운 작품의 기획안을 들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물론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창작자를 존중해 주는 제작사 코믹스 웨이브 필름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이번에는 완전한 SF중심의 모험물을 가져온 것이다. 결과는 화면의 완성도는 합격. 내용은 아직 불합격이다. 그는 이 소녀의 모험영화를 위해서 지브리와 비슷하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캐릭터와 미술을 지브리에 가까운 스타일로 만들었으며 여러 가지의 신기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다. 부지런하며 의지가 강한 소녀도 나오고 귀여운 애완동물도 나온다. 그리고 아가르타라고 불리우는 지하세계는 중세와 티베트를 합쳐놓은 것처럼 다른 영화와 겹치지 않는 판타지 세계로 만들었다. 요소는 다 있었다. 하지만 요소만으로는 마법이 발동하지 않았다. 뭔가 중요한 주문이 빠져 있는 것 같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과도한 음악사용? 공감이 가지 않는 주인공과 설명적인 스토리 전개가 문제일까? 나는 신카이 마코토가 분명 < 천공의 성 라퓨타 >와 같은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요소들은 다 있는데 왜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마법이 발동하지 않은 걸까? <천공의 성 라퓨타>와 < 별을 쫓는 아이 >의 차이는 무엇인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귀여움과 유머의 결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도 분명 SF의 어두운 세계지만 거기에는 귀여움이 묻어나는 캐릭터들의 작은 유머가 잔뜩 있다. 그것이 영화의 숨통을 열어준다. 하지만 <별을 쫓는 아이>에서는 관객들이 숨 쉴 틈이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답답하다. 이것이 작지만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것이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관객들이 바라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 공각기동대 >를 만들려고 했다면 또 다른 이야기 이다. 완전히 다른 지향점을 가진 영화에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영화를 비판 하는 건 쉽지만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이러한 시도가 지극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 초속 5센티미터 >는 신카이 마코토의 기존 스타일의 최고 퀄리티이다. 하지만 젊은 감독이 계속 같은 감성을 반복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좀 더 넓은 세계로 가서 많은 관객을 만나야만 한다. 별의 목소리 의 대사를 빌리자면 ‘혼자서라도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