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nii]캡스 사이트 큐브 본체
- 제작년도
- 2011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서울 한복판의 예술영화 전용관 씨네큐브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이다. 광화문역과 서대문역 사이 흥국생명 빌딩 지하 2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머링 맨’이라는 랜드마크적인 큰 조각상이 있는 건물이다. 광화문역에서 도보로 6분, 서대문역에서 도보로 9분이며 영화를 관람하면 3시간까지 무료로 주차가 지원된다. 개관 당시부터 영화인들은 물론 관객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이러한 씨네큐브의 접근성이다. 자동차로 오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서울 내에서 접근하기 쉬울뿐더러 비서울권 관객들도 찾아오기 쉽다. 출입 경로는 세 가지인데, 하나는 흥국생명 빌딩 1층 로비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경로로 ‘해머링 맨’ 전시물 바로 뒤 돌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다. 돌계단 아래 있는 전시물들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번 더 내려가면 영화관이 나온다. 영화관 안에는 매점이 없으며 상영관 내에는 생수 외의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영화관 로비에 들어서면 포스터와 매표소, 쾌적한 휴게 공간이 눈에 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일행들과 한참 동안 앉아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씨네큐브 로비 씨네큐브는 2000년 12월 2일 개관했다. 태광그룹이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지원했는데, 운영은 예술영화 배급사인 백두대간이 대행했다. 2009년부터는 태광그룹의 계열사인 티캐스트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 현재 티캐스트 안에 씨네큐브 팀이 별도로 있으며 팀원은 총 9명이다. (총괄 팀장, 팀원인 사원 두 명, 자사 수입 영화 근무자 두 명, 영사실 한 명, 현장 매니저 세 명) 개관 당시 씨네큐브는 영화팬들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갖춘 고급 영화를 접하는 통로가 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목표는 현재까지도 동일하다. 씨네큐브는 293석(1관), 72석(2관)의 좌석을 갖춘 2개의 상영관을 가지고 있다. 1관의 293석 중에서 3석은 휠체어석이며 2관은 1개의 휠체어석을 보유하고 있다. 연중 무휴로 운영되는 영화관 씨네큐브는 출범부터 ‘영화 상영의 최고급화’를 지향했다. 관람 좌석을 재배치하느라 개관이 지연되었다는 일화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일반 영화관의 앞뒤 의자 열 간격이 95cm였는데, 기존에 설치했던 것을 모두 폐기하고 좌석 열 간격을 110cm로 넓혀 새로 설치하는 바람에 개관이 2개월여 지연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한국에서 가장 안락한 영화관이라는 칭송과 함께 예술영화 애호가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충성도 높은 관객들을 만들어냈다. 씨네큐브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자립 경영을 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된 데에는 교통의 편의성, 상영작의 높은 수준과 함께 상영관에 대한 높은 만족도도 한몫 한 것으로 판단된다. 씨네큐브 1관 내부 관객들을 위해 단 하루의 휴관도 하지 않는 것을 운영방침으로 했으나, 2023년 11월 매표소를 리뉴얼하면서 5일간 임시 휴관을 가졌다. 2021년에는 임시 휴관 없는 리뉴얼과 재개관이 있었는데, 이때 개관 20주년을 맞아 전 좌석 의자 교체와 좌석 높이 조정으로 스크린 시야를 개선했으며, 로비 내 휴게 공간도 개편해 편의시설을 증대했다. 특히 가죽 소재의 좌석 시트로 교체해 위생적이고 청결한 관리가 더욱 용이해졌으며, 좌석 쿠션을 보강해 쾌적하고 편안한 상영관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23년 내내 업무를 맡아오고 있는 오랜 경력의 영사기사와 필름 영사기를 보유하고 있어 필름 상영이 가능하다. 필름 상영에 있어서 장비와 기술자가 모두 있는 극장인 것이다. 교통의 편의성과 시설의 쾌적함 등으로 인해 영화제들도 씨네큐브에서 많이 열리는데, 대표적으로 2022년까지 진행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를 들 수 있다. 자체적인 기획전으로는 씨네큐브 프리미엄 페스티벌이 있는데, 2009년부터 시작한 정기 기획전으로, 씨네큐브 개관 기념일인 12월 2일이 껴 있는 주를 기준으로 해서 전후 7일에서 10일 정도 진행한다. 페스티벌 기간 이후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본 기획전에서 많이 상영되기에 상영작들에 대한 기대가 높은 편이다. 팬데믹 이후 예술영화 전용관의 활로 찾기 씨네큐브의 전성기는 2011년부터 2013년 정도로 본다. 당시 예술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데다, 타 예술영화관에 비해 좋은 입지 조건과 시설로 인해 상대적으로 많은 관객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2012년은 씨네큐브 역대 최대 관객 수를 기록한 해로 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시기 <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2010), < 아무르 >(미하엘 하네케, 2012), < 우리도 사랑일까 >(사라 폴리, 2011),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 등 예술영화계의 히트작들이 다수 개봉했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개관 이후 최고로 힘든 시기가 찾아왔는데, 이 기간 동안 극장의 상영 시간에 제약이 생기고 좌석 수에도 제한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22년에는 11만 명 정도의 관객이 씨네큐브를 찾았고, 현재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씨네큐브 로비의 키오스크, 전단지 및 굿즈 전시대 씨네큐브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예술영화 전용관의 기준으로 정한 전체 상영작의 60%를 훨씬 넘어서는 90%를 예술영화로 채우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증하는 서울 내 가장 큰 규모의 예술영화 상영관이기도 하다. 주요 관객층으로는 예술영화를 오래 관람해 온 중장년층 여성들이 많은 편이다. 티캐스트가 운영을 담당한 2010년도부터 멤버십 회원 제도가 운영되었는데, 2023년 현재 활성화된 회원은 6만 명 정도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자체적인 매거진 제작과 뉴스레터 발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추가로 카카오톡 채널의 메시지와 SNS를 통해 오래된 관객들은 물론 신규 관객들과의 소통도 이어가려고 하고 있다. 씨네큐브의 지향점은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하고 좋은 영화들을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멀티플렉스가 경우에 따라 10개가 넘는 상영관을 가지고 많은 회차를 상영하고 있지만, 영화의 다양성 측면으로 봤을 때는 한두 작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시간대에 볼 수 있는 선택지가 좁은 편인 것이다. 이에 씨네큐브는 멀티플렉스에는 없는 상영작들을 볼 수 있는 공간, 낯선 타인들과 함께 영화를 몰입해서 보는 경험을 주는 공간이라는 차별성을 무기로 예술영화 전용관의 활로를 찾고자 한다. 씨네큐브 1관 영사실 작업공간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1가 226 흥국생명 BD 지하 2층 2. 설립일 : 2000년 12월 2일 3. 대표자 : 엄재용 4. 규모 :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내 위치 (건축면적 : 2,133.03㎡, 연면적 72,054.16㎡) 5. 극장 구성 : 1관 293석(휠체어석 3석), 2관 72석(휠체어석 1석) 6. 운영시간 : 09:00–23:00 (영화 상영 시간에 따라 다름) 7. 입장료 : 성인 평일 10,000원, 주말 11,000원, 학생 평일 8,000원, 주말 9,000원 (우대 및 조조할인 있음) 8. 조직 구성 : ㈜티캐스트 내 씨네큐브팀 및 현장 직원으로 구성 9. 구성원 : 씨네큐브 팀장, 과장, 사원, 영사실 및 현장 매니저 4인 글/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 취재 일자: 2023년 11월 24일 올해도 한국영화현장기록사업은 새로운 영화현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역량을 갈고닦으면서, 그리고 개성과 신념을 꾸준히 지켜나가면서 영화 기획과 제작, 상영에 기여하고 있는 장소들을 찾아 내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한국)영화를 주제로, 어떤 현장에서 또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많이 기대해주세요!
요즘은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예전 영화를 많이 재개봉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 회로 >를 다시 봤고, 스탠리 큐브릭의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을 4K로 봤다. 미이케 다카시의 < 오디션 >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봉했다. 비디오나 DVD가 나온 적이 없었고, 영화제에서만 상영했다. 해외에서 꽤 화제를 모았던 영화이고, 한국에도 마니아들이 있었지만, 그동안 정식으로 선보이지 못했다. 마니아들은 해외 DVD를 사고, 그것을 복사하거나 파일로 변환해서 돌려봤다. 과거에 봤던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 새로운 감흥이 일거나 기억과는 다른 장면과 대사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오디션>은 3, 4번 봤었는데,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한 10여 년 만에 다시 보니 느낌이 약간 바뀌었다. 그 남자는 자연재해처럼 난데없는 불행에 휩싸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여자의 마음은 모두 진심이었다. 애타게 전화를 기다린 것도, 완벽한 사랑을 갈구한 것도. 물론 다리를 자른 것도. 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의 걸작들을 다수 연출하며 유명해진 감독이다. 1989년,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 도에이의 산하에 있는 도에이 비디오는 ‘V 시네마’라는 레벨명으로 <크라임 헌터>를 출시한다. 20, 30대 남성을 타겟으로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는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극장용 영화보다 제작비는 적지만, 일반적인 인디 영화보다는 훨씬 스케일이 크고 상업적인 장르 영화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도에이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고, 다른 제작사들도 V시네마에 뛰어들었다. 미이케 다카시는 1991년부터 <돌풍! 미니파트대> 등으로 감독 데뷔를 하며, 일년에 서너 편의 영화를 만드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1995년부터 만든 ‘흑사회 3부작’-<신주쿠 흑사회>, <극도흑사회>, <일본흑사회>는 극장 개봉도 했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이면서 종종 극장 개봉작과 해외영화제 수상작을 연출했고, 2000년대 중반 순조롭게 메이저로 진출했다. 1999년에 연출한 <오디션>은 2000년 로테르담영화제에 출품되어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영화를 본 한 관객은 미이케 다카시를 보고 ‘악마’라며 욕을 했고, 보다가 나가버린 관객들도 아주 많았다. 이후 해외에서 개봉을 했을 때, 충격을 받아 병원에 실려 간 관객이 나오기도 했다. 주간지 <타임>이 2007년 발표한 ‘공포영화 톱 25’에 선정되었고, 영국의 영화지 <토탈 필름>의 ‘공포영화 역대 베스트 50’의 29위에도 올랐다. 메이저에 간 후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는 다소 느슨해졌고, 평범해지기도 했지만 2천년대 초반까지 미이케 다카시는 가장 기발하고, 독특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 이치 더 킬러 >, < 극도 공포대극장 우두 >, < 비지터 큐 >, <중국의 조인> 등을 만들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원작인 <오디션>은 중반이 넘어가기까지 큰 사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호러영화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모호함이 맴돌 뿐이다. 아오야마는 아내가 죽은 후 7년 동안 아들 시게히코와 함께 살아왔다. 시게히코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오야마의 사업도 안정됐다. 하지만 일본은, 그들의 세계는 불안정하다. 당시 일본은 장기 불황의 한복판이었다. 아오야마는 재혼을 하기 위해 오디션을 만든다. 명분은 영화의 주인공을 찾는다는 것. 지원서를 뒤지던 아오야마는 한 여인에게 꽂힌다. 어릴 때부터 발레를 했지만 부상으로 다른 길을 찾아야 했던 아사미. 아사미에게 끌린 아오야마는 오디션이 끝난 후 연락하고 만나기 시작한다. 아오야마의 친구는 뭔가 의심스럽다며 신중하라 하지만, 푹 빠진 아오야마는 무시한다. 아사미도 아오야마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두 사람은 함께 바닷가의 호텔로 여행을 간다. 아사미는 어린 시절 학대받은 과거를 고백한다. 아오야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첫 섹스를 한다. 아마도. 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섬뜩한 장면이 가끔 등장하지만 아오야마와 아사미의 연애가 진행되는 중반까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순간에 모든 것이 변한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아오야마는 호텔 방에서 아사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아무 연락이 없고, 수소문해도 행방을 찾을 수 없다. 아사미의 흔적을 찾아가는 곳에서 두 발이 잘린 남자를 만나고, 여자가 토막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파고들면 들수록 아사미라는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집에 있던 아오야마는 아사미의 습격을 받는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커다란 바늘이 몸에 꽂히고, 발이 잘려나간다. 도대체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무라카미 류의 소설 <오디션>은 1997년 <펜트하우스 재팬>에 연재되었다. 오로지 환락과 희망, 밝은 미래만이 충만했던 버블경제가 끝난 1990년대의 일본은 혼돈이었다. 1995년에는 한신 대지진과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사건이 있었다. 범죄의 잔혹성과 대담성, 14세의 범인이라는 사실에 모두 당혹스러워했던 고베아동연속살인사건은 1997년이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무차별 살인과 범죄도 증가했다. 버블 붕괴 후의 일본은 모든 것이 닫힌 회색의 시공간이었다. 모두가 외롭고, 모두가 누군가를 혹은 자신도 모르는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영화 <오디션>에서는, 공룡에 심취한 아오야마의 아들 시게히코가 가장 현명해보인다. 호사로운 향락에 빠지지도 않고, 불투명한 미래에 절망하지도 않는다. 중년의 아버지에게 재혼을 권하고, 자신의 미래를 담담하게 준비해간다. 아오야마도, 아사미도 누군가를 만나 완전한 소통을 바라는 기성세대다. 타인과의 완전한 사랑을 통해 자신이 완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 얽매여 있다. 친척의 학대, 어머니의 남자가 가한 폭행은 아사미를 고립되게 만들었다. 아사미는 자신을 이해해 줄,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 줄 남자를 갈구한다. 하지만 둘만의 완벽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망한 그녀는 남자가 도망갈 수 없도록 발목을 잘라버린다. 아사미는 아오야마를 고문하며 말한다. “말은 거짓이어도 아픔만은 믿을 수 있죠,....아프니까 잘 알겠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깨달을 수 있을 때는 괴로울 때나 힘들 때죠. 정말 괴로울 때만 자신의 마음이 보여요.” 아사미는 아오야마를 사랑했다. 아니 사랑하기 위해 아오야마를 들여다봤다. 나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아오야마는 그렇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아오야마는 세속적인 인간이다. 크게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 욕망에 충실하고, 자신의 이익이 제일 중요하다. 아마도 아오야마의 부하 여직원은, 그에게 크게 상처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발목을 잘라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사미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강렬하게 타인을, 타인의 사랑을 원하고 있다. 자신의 순수한 사랑이 좌절되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그들은 폭력적으로 변한다. <오디션>의 세계는 세기말의 일본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원작에서는 아오야마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안 아사미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설명된다. 나만을 사랑하겠다는 아오야마의 말이 거짓이었으니까. 영화 <오디션>에서는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랑의 과정으로 보였지만, 갑자기 아사미가 사라져버렸다. 미이케 다카시는 인터뷰에서 ‘이유 없는 재난’이라고 말했다. 길을 가다가 건물 공사장 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머리를 맞는 사고 같은 것. 이유가 없고, 예측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사고. 하지만 미이케 다카시는 영화의 꿈 장면에 많은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아오야마는 아사미의 고문을 당할만한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너무 가혹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잘못은 있다. 아오야마만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럴만한 이유와 공동 책임이 있다. 미이케 다카시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그대로 각색하면서도, 자신만의 시선을 분명하게 투사한다. 아오야마는 좋은 남자이지만, 중년의 회사 사장이라는 위치에 걸맞는 비열함을 또한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루 속의 남자와 아오야마의 고문, 계속 머릿속에서 들리는 ‘끼릭끼릭’ 소리 등 <오디션>을 보고 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은 그 시절의 미이케 다카시만이 연출할 수 있는 기괴한 풍경이다. 지금 봐도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하다. 아마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나는 영화를 보러 간다기보다는 전례 없는 시간성을 즐기기 위해 간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군. 그래서 영화관에 자주 간다고 말이야” - 장 루이 세페르,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 중 1. 영화는 처음부터 시간의 마술이었다.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그랑카페에서 <열차의 도착>을 처음으로 상영했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시간의 마술사들이었다. 잘 알려진 일화지만 뤼미에르는 ‘움직임을 기록한다’는 의미의 시네마토그라프를 완성한 뒤, 자신의 공장(뤼미에르 형제는 카메라 부품공장을 소유한 자본가들이기도 했다) 사람들과 일상들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내 그것을 유료 공개하였다. 뭔가 흥미로운 볼거리를 보여주겠노라고 그들은 호객했고, 호기심에 휩싸인 사람들이 1프랑의 돈을 내고 자리에 앉았을 때, 그는 카페에 인위적 어둠을 만든 뒤, 공간 정면에 시오따 기차역 사진을 크게 영사했다. 이 순간 사람들은 속으로 ’별거 아니군. 그저 커다란 사진일 뿐이야‘라며 실망했다. 그 시대, 확인되지 않은 볼거리를 위해 1프랑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70여 년 전(1820년대 사진 발명)에 처음 등장한 ’사진 이미지‘에 낯설지 않은 중산 계급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정지된 사진 속 이미지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화적 매혹‘의 탄생이었다. 영화사 초창기를 기록하는 자료들에 의하면 이때 뤼미에르 형제는 의도적으로 ’정지된 순간‘을 연출하였다. 익숙하다고 간주되는 것에 ’시간‘의 마술을 부여함으로써 놀라움과 매혹을 연출한 것이다. 더구나 그들 눈 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가상의 세계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한 순간을 소환한 것이었다. 지나간 시간을 현재화하는 능력, 영화는 시간을 지배하는 예술이었다. 영화 편집에 관한 다큐멘터리 <컷팅 엣지>(2004)에 인터뷰어로 등장했던 영화 감독, 롭 코헨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편집할 수 있기 때문 일거에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편집하고 싶어 합니다. 나쁜 일, 지루했던 일은 잘라버리고 좋았던 것만 더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요.”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의 삶에서 지루했던 일상과 나빴던 일들을 송두리째 들어내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통해 불가역적인 시간을 통제하고픈 욕망을 발현한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물리적 시간에 감금된 ‘평범한 인간’에게 영화는 (적어도 창작자에게) 시간 지배자의 위상과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렇다면 이쯤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는 오늘날 할리우드 감독들 중 가장 소란스럽고, 거창하며,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영화적 시간’에 대해 유희하는 인물이다. 늘 언제나 기대를 자극하는 멋지고 웅장한 트레일러를 선보이지만, 정작 본편인 영화는 늘 실망에 마지않는 유아적 영웅주의에서 멈춰서는, 그런 진부한 대작을 만들어낸다. < 인터스텔라 >(2014)와 < 테넷 >(2020)을 통해 그는 관객들로 하여금 병렬적인 세계의 차원과 열역학 엔트로피까지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현란한 언사와 스펙터클의 제스처 바로 뒤편에서 그의 영화들, 특히 이번 영화 <테넷>을 지탱하고 구성하는 본질적인 장치들은 팍스 아메리카를 설파했던 80년대식 하드바디 영웅주의 서사에 묶여있다. 팀 버튼의 분열적 반영웅 ‘배트맨’을 초국적 자본의 스펙터클 하드바디로 전락시킨 < 배트맨 비긴즈 >(2005)는 물론이고, 2차 대전의 애국적 영웅주의를 설파했던 <덩케르크> 그리고 이번 영화 <테넷> 역시, 미국의 CIA 요원이 탐욕스러운 구소련의 악당에 맞서 제3차 대전을 막아내는 새로운 위인 서사에 불과한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 터미네이터 >(1984)를 물리학 용어로 재각색한듯한 이 영화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적 스펙터클로서 시간을 재구성한다. 미래의 침입과 인버전, 역행하는 시간의 언캐니한 속도감. 화려한 오페라극장에 대규모로 동원된 관객들이 순식간에 고개를 떨구며 수면으로 빠져드는 초현실주의적 모멘트의 체험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적 물질성에 입각한 세트 촬영의 지표적 이미지라 할지라도 그의 영화는 결국,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가 비판하는 ‘시간의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현실감을 창출하는 시간적 연쇄의 합리성으로 구성된 허구, 근대적 자본주의 권력과 질서를 인과론과 합리성의 체제 내에서 지각하고 수용케 하는 시간의 허구 말이다. 미래의 침입이라는 SF적 상상력이라면 이미 1962년, 크리스 마르케가 완성한 <환송대>의 영화적 체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포토 로망으로 호명된 이 영화는 정지된 사진 이미지의 연쇄와 단 한 순간 제시되는 움직이는 이미지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3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세계, 미래의 과학자들은 한 남자를 대상으로 시간여행을 실험한다. 그는 이미 전쟁으로 사라져버린 과거의 공간, 죽은 자들의 시간으로 침입해가고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금지된 사랑은 그를 실험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결국 그는 미래의 사도들에 의해 쫓기다 살해된다. 1958년에 공개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 대한 오마쥬와 병렬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시간 이미지, 그리고 그 시간을 살아갔던 남자에 대한 기억과 흔적, 죽음과 소멸에 대한 놀라운 은유로 가득 찬 이 작품은 이미 반세기 전 영화 역사에 등장해 시간에 관한 가장 매혹적인 사유와 이미지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후 등장한 모든 영화는 <환송대>가 이미 성취한 예술적 경지 주변부를 배회할 수밖에 없다. 3.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늘 궁금하다. 예전 사사로운 리스트에 < 덩케르크 >(2017)를 언급하면서, 그 영화를 이마무라 쇼헤이의 < 복수는 나의 것 >(1979)의 한 장면에 견주어 혹평을 했음에도 그 영화가 지닌 과감한 시간 배치의 모험은 흥미로웠다. <테넷>도 다르지 않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서사와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진부하고 보수적이지만, 그는 어쨌든 할리우드의 막강한 자본력과 인력을 동원해 첨단의 영화를 물리적으로 직접 찍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감독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첨예한 방식으로 그리고 동시대적 감각으로 영화를 통해 시간을 사유하고, 구축하고 그리고 압축할 수 있는 감독이기도 한 것이다. 맑스주의 학자인 데이빗 하비가 90년대 발표한 대표 저서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은 동시대 문화가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시공간을 압축하고 사유할 수 있는지에 관한 흥미롭고 정치한 논리를 선보인다. 그중 그가 분석 사례로 제시하는 < 블레이드 러너 >(1982)에서 인조인간 ‘로이’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욕망하고 동기화하는 시공간 압축의 가장 첨예한 은유로서 분석된다. 로봇에게 부여된 4년의 작동 시간, 고도록 집약된 노동 능력,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축적된 인공지능 로봇의 기억과 감정, 추억과 연민, 공포와 분노 등은 우리가 무심하게 신격화하는 용어 ‘휴머니티’를 반성할 것을 촉구한다. 즉 ‘로이’는 당대의 자본주의 경제가 지향하는 시공간 압축과 기계화된 인간 노동에 대한 욕망의 상징이자, 탁월한 SF 영화의 기념비적 캐릭터이자, 인간 삶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 중층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흥미롭다는 것은, 달리 말해 데이빗 하비의 방식처럼(혹은 랑시에르의 방식처럼), 그의 영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문화가 집결한 그곳에서 영화적 시간을 구축하고 욕망하고, 재현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지각하고 감각하도록 강요하는지 흥미로운 것이다. 즉, 영화 제작의 최첨단에 선 그가 반영하게 될 지금 세계의 모습, 첨예한 속도전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시간에 대한 감각, 일방향적 속도를 넘어 이제 모든 차원의 시간을 다 통제하고야 말겠다는 전체주의적이고 전능주의적인 신화, 그리고 그 시간을 서사화하고 스펙터클화하는 전시주의의 욕망.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그러한 흔적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4. 다소 러프한 방식으로 ‘영화적 시간’을 정의하다 보면, 2019-20년에 선보인 영화들은 꽤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에 대한 흥미로운 감각과 욕망을 드러낸다. 그중에서 가장 아쉽고 이상해 보이는 영화는 샘 멘데스의 영화 < 1917 >(2019)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경이해 마지않는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와 함께한 이 작품에서 그는 이냐리투 감독의 < 버드맨 >(2014)과 스탠리 큐브릭의 < 영광의 길 >(1957)에서 보여준 형식적 실험과 주제 의식을 매우 지루하고 나이브하게 모방하고 반복한다. 폭격을 막기 위한 지령을 들고 목적지까지 질주하는 병사의 시간을 추적하는 이 작품이 구사하는 카메라 워크는 이미 이냐리투 감독이 2014년, 뛰어난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벳츠키와 함께 선보였던 <버드맨>의 아류처럼 보이며, 전쟁의 불모함과 광기, 병사들에 대한 연민과 공포는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영광의 길>에서 선보인 참호전의 잔혹함과 기만성을 통렬하게 성찰했던 것에 전혀 가닿지 못한다. 과거로 향하는 시간 여행에서 눈에 띈 또 다른 영화는 켈리 레이카트의 < 퍼스트 카우 >(2019)와 폴 그린그래스의 <뉴스 오브 어 월드>이다. 이 두 편은 모두 1870년대 서부를 배경으로, 전통적인 서부 역사의 결을 거스른다. 그러나 폴 그린그래스의 영화는 자상한 백인 중년 아버지상을 대변하는 톰 행크스를 서부로 데려간 것 이외엔 아무 특이점이 없다. 반면 켈리 레이차트의 <퍼스트 카우>는 그녀의 전작 < 믹의 지름길 >(2010) 못지않게 완연히 새로운 서부의 시간과 사건을 기록한다. 서부 영화 속에서 한 번도 주목하지 않았던 가난하고 비루한 백인 남성과 중국계 남성. 이들이 살아가는 서부의 시간과 공간은 정복과 개척으로 포장된 승리의 서사도 아니고, 흑과 백, 문명과 야만이 이분법적으로 명확히 선을 긋는 신화적 공간도 아니다. 빈곤과 공포 속에서 오직 생존하기 위해 서부를 배회해야 했던 가련한 사람들, 그들에 대한 연민과 기억, 그리고 그들의 흔적을 상기하고자 하는 영화이다. 그 외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던 마티 디옵 감독의 < 애틀란틱스 >(2019)는 매우 심플하지만 시선의 지형과 주체를 바꾼다는 점 그리고 현실의 시간과 초현실적 시간(죽은자의 시간)을 교차시킨다는 점에서 강렬하다. 이주 노동, 난민 등의 문제는 언제나 유럽 1세계 백인의 관점에서 서술되곤 하였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난민 문제를 포용하거나, 그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문제시하거나, 혹은 휴머니즘과 낭만적 서사를 결합하거나. 그러나 마티 디옵은 1세계의 시선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혹은 난민의 대지 바로 위에서, 그들 계급의 시선으로 ‘이주’와 ‘착취’를 묘사한다. 경제적으로 불모한 땅에 사는 젊은 청년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젊은 여성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을 청년들이 자취를 감춰버린다. 영문 몰랐던 여인들에게 들려온 소식으로는 그들 모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바다를 건너던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들의 비통함과 부재의 흔적들. 그러던 어느 밤. 청년들이 돌아온다. 더 이상 산자가 아닌, 죽은 자의 영혼이 되어 그들은 자신을 사랑했던 여인들의 육체에 강신된다. 그리고 강신된 육체가 향하는 곳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고향의 착취적 자본가들. 바다 저편에서 죽은 자가 귀환해 그들의 원통함을 해결하는 것은 흡사 존 카펜터의 호러 < 안개 >(1980)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마티 디옵의 <애틀란티스>는 오컬트 호러라는 장르적 포뮬라나 컨벤션을 외면하고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정학과 계급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한다. 새로운 ‘제 3영화’적 포지션 속에서 포개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시간은 처연하면서도 인상 깊은 계급 정치학을 피력한다. 2020년, 압축된 시공간의 논리를 보다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냄으로써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은 샤디프 형제의 < 언컷 젬스 >(2019)일 것이다. 그들의 전작 < 굿타임 >(2017)에 이어 숨 가쁘게 이어지는 사건과 사운드, 대사, 움직임 등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모두의 찬사를 받았던 아담 샌들러의 연기는 곤혹과 절박, 신경증과 불안, 허세와 짜증에 관객까지 연루시키는데 여지없이 성공한다. 5. 그러나 2020년 영화 중 가장 정서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 시간 이미지를 선보인 작품은 클로이 자오의 영화 < 노마드랜드 >(2020)이다. 사실, 사사로운 리스트를 제출한 이후에 접하게 된 이 영화는 매우 강렬한 하나의 이미지를 기억에 각인시킨다. 그것은 주인공 프랜시스 맥도맨드(극 중 캐릭터, 펀)가 텅 빈 사막지대를 배경으로 무심하게 서 있거나 걸어가는 옆모습을 클로즈업으로 팔로잉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유목적 삶을 선택한 노년의 여성을 따라간다. 60대 여성 ‘펀’은 낡은 자동차 한 대에 자신의 모든 짐을 싣고 1년 단위로 노동과 공동체를 찾아 이주하며 살아간다. 특별한 사건이랄 것도 묘사하지 않는 이 영화는 다만 유목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 얼굴, 회한, 소망 등을 가끔씩 응시할 뿐이다. 만들어진 모든 쇼트들에 유기적인 사건과 시간의 의미를 채워놓고자 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과 이 영화가 대비되는 지점은 이 영화가 모든 쇼트들로부터 시간의 강박을 지워버리고, 특정 의미를 채우려 하거나 평가하지 않으며, 무한히 열어 놓는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를 보고난 직후, 우연히도 읽게 된 글이 있었다. 앙드레 바쟁이 자크 타티의 영화 < 윌로씨의 휴가 >(1953)를 분석하며 썼던 평론 “윌로씨와 시간”.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윌로씨가 1년 중 10개월은 사라졌다가 7월 1일, 임시적인 시간이 형성될 때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나타남과 사라짐, 그러한 반복의 시간은 무용한 행위가 반복되는 시간이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리듬을 지닌 ‘의식의 시간’이라고 바쟁은 명명한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시간의 방향은 원인에서 결과로, 시작에서 끝으로 향해 간다. 하지만 <윌로씨의 휴가>는 이런 것들과는 반대로 나아간다. 아마도 시간은 그 점에서 이 영화의 소재가 아니라 이 영화의 목적 그 자체가 아닌가 한다.”(앙드레 바쟁, “윌로씨와 시간” 중) 바쟁은 따띠가 창출한 ‘윌로씨의 시간’에서 그가 영화 속 근대 사회 체제에 순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 감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영화는 윌로라는 캐릭터를 통해 근대적 시간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새로운 영화적 시간과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노마드랜드>가 감히 자크 타티의 영화에 비견될 수 있겠느냐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반복 관람한 직후, 우연히 접한 이 영화의 리듬과 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속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동 이외에 다른 것을 갈구하지 않는 ‘펀’의 무심한 시간들과 표정은 <테넷>에서 묘사된 필사적인 그 모든 것들을 가볍게 눌러버리며, 놀라운 정서적 공명을 만들어낸다. 특정한 방향으로 질주하길 재촉하는 시간 이미지들에 대비되어 <노마드랜드>에서 프랜시스 맥도맨드의 얼굴 이미지가 선택하고 열어놓은 시간은 그 모든 시간에 대한 강박을 털어버리게끔 하는 것이다. 장 루이 세페르의 말처럼, 영화는 전례 없는 여러 시간을 체험하는 여행이다. 그 시간은 때로는 영화 창작의 주체가 치밀하고 꼼꼼하게 채워 넣은 플롯들과 서사의 시간이기도 하고, 지금 내가 들어가 관람하는 극장이 존재하는 동시대적 시간이기도 하고, 또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기억을 끄집어내어 영화라는 외부적 이미지와 접촉해 만들어내는 감각 경험적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테넷>부터 <퍼스트 카우> 그리고 <노마드랜드>까지, 영화는 그 모든 다양한 시간에 대한 체험과 기억, 욕망과 불안을 모두 열어놓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영화가 구성하는 시간의 매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