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오브 스카이
- 감독
- 크리스토퍼 리 도스 산토스
- 제작년도
- 2013
- 출연
- 니콜라스 반 더 빌, 안드레 프라우엔슈타인, 브래드 백하우스, 애덤 보이즈, 릴리 클레어, 앤드류 워스데일, 라이언 디트먼
지난 6월 21일, 로빈 하디의 < 위커맨 >는 개봉 50주년을 기념하는 4K 복원판이 영국에서 첫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다. 이후 미국 전역을 비롯한 각 국가 개봉에 이어 10월에는 현존하는 본편 3개 버전과 방대한 서플먼트 그리고 폴 지오바니와 밴드 마그넷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포함한 5 디스크 DVD 박스세트가 출시되었다. 동시에 <위커맨: 공식 스토리>라는 신간도 함께 출판되면서, <위커맨>은 올해 복원된 고전 중에서 가장 활발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히트작이 되었다. 이미 개봉 40주년을 기념한 디지털 복원판이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상영되었던 전력을 떠올려보면, 새로운 4K 복원판에 대한 식지 않는 관심은 진정한 컬트 고전으로서 <위커맨>이 가진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 셈이다. 요란스러운 상찬과 제사에 불구하고, 컬트의 지위를 가진 대부분의 걸작들이 그러하듯 <위커맨>은 시작부터 개봉까지 쉬웠던 순간이 하나도 없었던 고난의 영화였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말 그대로 복원과 부활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위커맨>은 < 발자국 >(Sleuth, 1972)로 유명한 작가 안소니 샤퍼가 제작사 ‘브리티시 라이언’의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제작자 피터 스넬 그리고 해머의 드라큘라 재생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와 1967년 출간된 데이빗 피너의 소설 ‘의식(Ritual)’의 영화판권을 공동으로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개발에 난항을 겪던 프로젝트는 당시만 해도 ‘듣보'였던 로빈 하디가 의기투합하면서 주말동안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순식간에 하우이 경사를 중심으로 한 제대로 된 시나리오로 전개되었다. 완성된 시나리오에 만족한 스넬은 ‘저예산으로 제작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비로소 <위커맨>은 1972년 가을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촬영은 약 7주 가량 25개 스코틀랜드 지역 곳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정작 로케이션 중에서 진짜 섬은 한곳도 없었다. 로빈 하디는 공간의 통일성을 위해 이곳 저곳에서 찍은 장면들을 패치워크하듯 이어붙이는 작업이 오히려 흥미로웠다는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으나, 가을의 스코틀랜드에서 5월 초여름의 풍경을 담아야 한다는 미션과 더불어 로케이션 중간중간 출몰하는 근대와 문명의 흔적을 피하는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산 부족과 고된 촬영, 추위와 이어지는 과음으로 하우이 역의 에드워드 우드워드는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윌로우 역의 브릿 에클랜드는 촬영 내내 우울증에 시달린 나머지 이후 완성된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에클랜드는 2023년 5월 <위커맨> 50주년 특별행사에 참석하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00분이 넘는 길이로 영화는 완성되었지만 <위커맨>의 개봉은 요원했다. 20세기 초중엽 에드가 월리스, 알렉산더 코다, 캐롤 리드 등 영국영화의 대표주자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던 상황이었는데, <위커맨>이 완성된 시점의 사장인 마이클 딜리는 완성본을 싫어한 나머지 영화의 개봉을 거부했다. 제작자 스넬은 딜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칸 영화제에 완성본을 들고 가 쇼케이스를 진행하는 동시에 호텔 로비에 거대한 위커맨을 세워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이때 <위커맨>을 본 영화 관계자 중에는 로저 코먼도 있었는데, 드라이브 인 상영에 좋겠다고 판단한 코먼은 편집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브리티시 라이언은 영화를 87분으로 대폭 가위질해서 먼저 개봉하여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니콜라스 로에그의 < 쳐다 보지 마라 >(Don’t Look Now, 1973)와 동시상영하는 조건으로 영화의 개봉을 허가했다. 크리스토퍼 리는 안면이 있는 모든 평론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좌석을 빼두는 등 공을 들이기도 했다. 20세기 브리티시 호러의 대표작인 두 편의 영화가 동시상영이라는 비참한 대우를 받았다는 비극인지 아니면 두 편을 동시에 본다는 엄청난 기회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관객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처참한 박스오피스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어떻게든 제작비를 환수하려고 애썼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로저 코먼을 비롯, 미국 배급을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미국 배급권은 워너 브러더스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워너는 개봉 전 테스트 상영을 했지만, 버라이어티를 비롯 지면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상영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위커맨>은 순식간에 시네필 그리고 영화학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볼 수 없는 걸작'이 되면서 컬트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6년 할리웃으로 와 각본작업을 하던 로빈 하디는 <위커맨>의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워너 브러더스는 이미 미국 배급권을 단돈 2만불에 아브락사스라는 소규모 회사에 넘겨버린 상태였고, 하디는 아브락사스를 설득해서 난도질당한 <위커맨>의 부활 작업의 허가를 얻었다. 하디는 바로 피터 스넬, 앤드류 샤퍼 그리고 크리스토퍼 리에게 연락을 취했고, ‘위커맨 4인방'은 가위질 이전의 롱 버전 프린트 사냥에 나섰다. 개봉버전과 로저 코먼에게 견본으로 보냈던 오리지널 프린트를 찾아낸 하디는 결국 1977년 가을 미국에서 첫번째 디렉터스 컷이라고 할 수 있는(현재는 ‘미들 버전’이라 불리는 버전으로 4K 복원 상영본인 ‘파이널 컷’의 원형이 된 판본이다) 92분 버전의 <위커맨>이 상영되었고 결과는 큰 성공이었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위커맨>은 숏 버전과 미들 버전이 번갈아가며 TV와 홈비디오 시장을 통해 배급되었지만, 본격적인 복원은 2001년 영화의 세계배급권을 갖게 된 스튜디오카날에 의해 시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완성된 100분이 넘는 오리지널 프린트는 찾지 못했지만 현존하는 프린트와 텔레시네 버전들을 조합한 99분 버전의 ‘디렉터스 컷’이 DVD로 출시되었다. 스튜디오카날은 <위커맨>의 복원을 위해 프린트 사냥을 멈추지 않았는데, 하버드대 필름보관소에서 92분 버전의 필름 4K 버전을 입수하면서 제대로 된 디지털 복원의 신호탄을 쐈다. 로빈 하디는 페이스북에 올린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영화의 디지털 버전을 복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복원 과정에서 하디는 섬머아일로 가기 전 경찰서 등 하우이의 일상 장면을 포함, 디렉터스 컷에 삽입되었던 장면들을 제외한 92분 버전의 복원에 동의하고 이 버전은 2013년 크리스토퍼 리가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던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버전이 올해 4K 복원판 상영으로 이어진 이른바 ‘파이널 컷'으로, 국내에서는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국내 관객을 처음 만났다. 영생을 믿는다며 부활을 울부짓었던 하우이의 희생 덕분이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불굴의 4인방의 <위커맨>은 부활에 성공하여 영생을 얻은 셈이다.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영화의 부활 서사때문에라도 <위커맨>은 수많은 관련서와 팬매거진을 거느린 컬트 고전이자 아리 에스터 등 현대의 감독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된 걸작이지만, 역경을 딛고도 부활할 수 있었던 영화의 저력은 전무후무한 전복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지난 10여년 간 글로벌 호러의 지배적인 서브장르로 급부상한 포크 호러 열풍과 더불어, <위커맨>은 < 심판 >(Witchfinder General, 1968), < 사탄의 피부 >(The Blood on Satan’s Claw, 1971)과 포크 호러 장르의 ‘불경한 삼위일체'라는 명성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중 <위커맨>은 근대 서구 문명의 이성과 기독교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과 완전한 전복을 스크린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두 편과 궤를 달리한다. 엄격한 교리와 도덕률 그리고 사법제도의 규칙으로 무장한 채 아버지의 법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근대적 남성주체 하우이는 로완 모리슨의 실종을 추적하는 탐정으로서도, 순결한 총각으로서도, 무엇보다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도 성공하지 못한 채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섭리라는 말로 수렴될 수 없는 자연의 동학을 긍정하는 섬머아일에서 섹스와 남근, 수확과 재생산은 하우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질서를 구성한다. 그 안에서 당혹과 충격 그리고 어이없음과 무력함을 넘나들며 심리적 폐소상태에 놓인 하우이의 클로즈업과 영화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메이데이의 현기증나는 의식은, 종교적 이성과 원시적 이단이라고 재단된 양립할 수 없는 두 질서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라고 너스레를 떠는 로빈 하디의 코멘트에 충분히 고개가 끄덕이면서도 왠지 영화의 강열도를 축소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란 1965년 디즈니가 테마파크 건설을 위한 플로리다주 올랜도 부동산 매입계획에 붙인 가칭이다. 그렇게 지어진 디즈니월드는 여전히 성업 중이지만 가족 단위 투숙객을 겨냥한 인근 저렴한 모텔들은 2008년 경기침체 이후 극빈층의 임시거주지로 용도가 변경됐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이라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남의 집에 얹혀살거나, 차에서 먹고 자거나, 모텔에 주 단위로 투숙하는 소위 ‘숨은 홈리스’(Hidden Homeless) 현상이다. 숀 베이커 감독의 <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192번 국도 주변 퇴락한 모텔 매직 캐슬을 로케이션으로 삼아, 디즈니 월드 지척에 살면서도 디즈니 월드와 가장 멀리 떨어진 세계에 속하는 여섯 살 소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친구들의 여름을 지켜본다. 아직 10대 티를 벗지 못한 엄마 핼리(브리아 비네트)는 하루 38달러의 방값과 다음 끼니가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처지다. 그러나 말썽쟁이 무니에게 알록달록한 모텔 동네와 기념품 가게들은 신나는 놀이터고 교육의 부재는 무한한 자유다. 소녀는 관광객에게 잔돈을 얻어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이 하나도 슬프지 않다. 엄마끼리 친구인 아래층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이웃 퓨처랜드 모텔에 새로 이사 온 잰시(발레리아 코토)와 삼총사를 이룬 무니는 어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부류의 꼬마다. 자동차 창에 침 뱉기 게임을 하고,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 두꺼비 집을 내리고, 일광욕하는 아줌마를 놀리며 뛰어논다. 말할 나위 없이 한 발 떨어져 보면 아이들의 일상은 위험투성이다. 국도에는 자동차가 질주하고, 수풀에서는 악어가 나올지도 모르고, 공사가 중단된 주택단지에선 뭐가 떨어질지 모른다. 수상한 취향의 뜨내기 아저씨가 노는 아이들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무니의 매일은 여름 캠프처럼 즐겁지만, 엄마 핼리는 생계를 점점 위험한 방법에 의지하게 되고 이는 여름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보호자들이 돈을 버는 사이 본의 아니게 모텔 아이들의 안위를 챙기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매직 캐슬의 관리인 바비(윌렘 데포)다. 관광 모텔이 빈민 레지던스로 변하면서 모텔 매니저인 그는 업무 내역에도 없는 ‘생활주임’ 노릇을 한다. 투숙객들은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의지한다. 숀 베이커 감독은 이 사내를 가부장적 시혜자로 만들지 않는다. 모텔 주인의 피고용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명백히 인식하면서도 무니 모녀가 최악의 상태에 떨어질까 반사적으로 경계하는 바비는 수호천사도 선한 사마리아인도 아니고 그저 다른 인간의 곤경에 감응하는 인간이다. 모녀를 염려하지만 도울 길이 무망하다는 점에서 그는 관객의 대리자이기도 하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 >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부산한 일과를 마친 그가 어스름을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찾아온다. 바비가 첫 연기를 작은 한숨처럼 내쉬자 모텔 복도 외부 등이 일제히 들어오는 순간은, 이 남자가 ‘매직 캐슬’을 지키는 소박한 마법사임을 말하는 매직 아워다. 바비는 관객의 대리자일 뿐 아니라, 사회 주변부에서 겨우 생존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감독이 택한 윤리적 포지션도 암시한다. 우선 미국 영화에서 거의 재현되지 않는 극빈층 아웃사이더의 삶과 그들의 생활공간, 그들이 매일의 빵을 얻는 지하경제는 숀 베이커 감독이 줄곧 이끌리는 소재다. 2012년 작 < 스탈렛 >은 샌 페르난도 밸리의 백인 포르노 배우가 노년의 여성과 맺는 우정 이야기였고 바로 전작 < 탠저린 >은 매춘으로 먹고사는 트랜스우먼 친구 둘의 크리스마스이브를 그렸다. 이와 같은 소재에 접근하면서 숀 베이커 감독은 외부자로서 취하기 쉬운 분노나 동정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내려다보지 않고 옆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삶에 내재한 아름다움과 어두움을 그대로 파악하고자 한다. 궁핍한 삶에서 방점은 궁핍이 아니라 궁핍이라는 조건을 수반한 삶에 있어야 한다고 숀 베이커의 영화는 믿는다. 예컨대 < 플로리다 프로젝트 >의 도입부에는 무니가 침을 뱉은 차의 주인이 따지러 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내키지 않는 투로 무니의 손목을 끌고 간 엄마 핼리는 피해자 아주머니와 벌 받는 아이들을 구경하다가 아주머니도 처지가 딱해진 딸 대신 손자를 키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담배를 나눠 피는 두 여자 사이에는 어느새 미묘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이 아이들을 보라!”는 계고의 메시지와 거리가 멀다. 숀 베이커의 시나리오와 카메라는 가난한 어린이의 가난에 집중하는 대신,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환희와 활력을 놓치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의 객관적 궁지도 직시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극 중 개인도 천사와 악마로 만들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선한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절망을 착취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입증한 바 있다. 핼리는 누가 봐도 훌륭한 엄마가 아니다. 부분적으로 무책임하며, 어리석은 선택도 한다.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팔려고 어린 딸과 함께 호객하고, 매춘을 위한 프로필 사진 촬영을 딸과의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핼리의 행동은 충분히 우려스럽다. 그녀가 딸에게 선물하는 사치는, 좀 더 고급스런 모텔의 아침 뷔페에서 누리는 도둑 포식이다. 숀 베이커 감독은 핼리를 변호하지 않으나 이 캐릭터를 판정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핼리를 한심해 하면서도, 이 어린 엄마가 무니에게 최고의 친구이며 무니를 온 세상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사필귀정이라는 안도감과 모녀가 헤어지는 일은 옳지 않다는 감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영화의 최선은 때로 관객 안에 진정한 갈등을 심는 것이다. 전작 < 탠저린 >을 아이폰 5S로 스크린에 손색없이 아름답게 촬영해 화제를 모았던 숀 베이커는 ‘아이폰 감독’으로 세상에 기억되는 일을 방지라도 하듯 < 플로리다 프로젝트 >를 35밀리 필름으로 찍었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 사일런트 라이트 > < 포스트 테네브라스 럭스 >를 촬영한 알렉시스 사베가 카메라를 담당했다. 실제 로케이션에서 촬영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프레임은 연보라와 오렌지, 플로리다의 환한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혹자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현실의 어둠과 배치되는 컬러의 역설에서 찾겠으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숀 베이커는 그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장소의 공기를 주민의 눈으로 포착할 줄 안다. 저예산 영화 다섯 편을 만들며 세트 없이 인물의 생활공간에서 영화적 긴장을 발견해 온 경험은 그의 커다란 자산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많은 숏은 성인의 허리께에 오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순진한 흥분과 거기에 무심한 세상의 압도적 사이즈를 전한다. 그러나 숀 베이커는 특정 스타일에 고착하는 감독은 아니다. 존재감이 엷고 기동성 높은 스마트폰 촬영으로 비전문 배우의 거침없는 연기를 따라잡고 부추겼던 <탠저린>과 대조적으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주의 깊은 블로킹과 프레이밍이 만들어 낸 숏으로 지지된다. 어린 배우들로부터 의도한 결과를 끌어내는 데에 실용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뇌관인 무니 역 브루클린 프린스의 연기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널리 회자될 터라 여기서는 말을 아끼기로 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공개된 후 프린스와 자주 비교되는 대상은 최연소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됐던 <비스트>(2012)의 크반자네 왈리스인데 왈리스가 아이로서 존재를 그대로 카메라 앞에 드러내는 연기를 했다면 브루클린 프린스의 그것은 타고 난 배우의 철저히 리허설 된 연기다. 이런 영악한 속성이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믿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무니라는 소녀의 성격과 조화롭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내 관객을 이끌고 무니의 세상을 기웃거리고 뛰어다니던 <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마지막에 이르러, 마치 지금껏 한 번도 달리지 않았던 것처럼 달려나간다. 질주인지 비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미지 앞에 떨면서 나는 딱 한 가지만 잊지 않으려고 했다. 예술이 세계를, 예술가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료 인간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좋은 방법을 아는 영화를 방금 봤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