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클리어 나우
- 감독
- 올리버 스톤
- 제작년도
- 2022
- 출연
- 올리버 스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2살 겨울, 처음이자 마지막 단편 연출을 끝내고 나서 나는 명확하게 깨달았다. ‘아, 이건 내가 할일이 아니다.’ 신이 나에게 감독에게 필요한 자질들은 애초에 주지 않았을 뿐더러, 낯가림이 꽤 있었던 20대 시절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현장이 너무나 스트레스 였다. 이런 성향의 사람에게 편집 파트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영화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으면서도 현장에서의 그 불꽃튀는 부대낌은 겪지 않아도 됐으니까. 근데 막상 졸업하자마자 편집실에 취직을 하고보니, 이곳도 후반작업의 시작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꽤 많이 만나는 파트였던지라, 초반에 적잖이 당황을 하며 적응을 해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편집실은 하루라는 시간 제한이 있던 현장과는 달리 마감 기한이 훨씬 널널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다. 나는 사실 편집을 오로지 감으로, 그리고 편집실에서 8년 동안 일하면서 수많은 작업들을 마치 게임 미션을 클리어하듯이 헤쳐 나가면서 오로지 경험으로 배운 케이스이다. 영화과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단지 나랑 결이 맞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는 시간과 그 순간의 공기를 사랑해서 영화를 시작한 케이스였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엔 영화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이게 뭔지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에게 편집 선생님이 누구였냐고 물어본다면, 편집실에서 같이 작업했던 수많은 감독님들이 내 선생님들이었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게 쉼없이 달려오다 어느 해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의도치 않게 쉬는 기간이 생겼다. 그때 그동안 본능으로 배운 걸 눈으로 확인 해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때 다시 본 영화가 < 디 아워스(The Hours) >(스테판 달드리, 2002)였다. 편집의 관점에서 영화 전체를 분석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동안 작업하면서 사건이나 스토리가 강한 영화가 아닌 정서나 무드로 밀어붙이는 영화의 편집과 연출이 궁금하던 찰나에 마침 리스트에 있길래 선택을 했었다. <디 아워스>는 각기 다른 시간대에 사는 세 여자가 나와서 진행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더욱이 이런 접점이 없는 인물들로 펼치는 스토리 라인에서의 편집이 궁금했다. 나는 주어진 숙제는 성실히 하는 인간이기는 했지만, 그 숙제를 스스로 만들어서 하는 대단한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눈앞에 닥친 작업들을 끝내는 것에만 몰두하면서 살기 급급해서 이런 식의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었다. 사진: "The Hours", IMDb <디 아워스>에 등장 하는 세 명의 여자들은 소설 『댈러웨이 부인』(버지니아 울프, 1925)으로 묶여 있는 인물들이다. 1923년 영국 시골 도시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고 있는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1951년 미국 LA에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임신 6개월 째인 로라(줄리안 무어). 그리고 2002년 미국 뉴욕에서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출판사 편집장 클래리사(메릴 스트립). ‘댈러웨인 부인’을 쓰고, 읽고, 그렇게 불려지는 이 세 여자들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파티를 준비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단 하루를 통해, 결국 이 여자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고독과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고 받아들이는지, 영화 안에서 시간을 건너뛰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어떤 순간들을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연출이나 편집을 활용해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교차되는 씬들을 행동으로 이어 받아주든지, 아니면 서로 다른 시대에 사는 인물의 나레이션을 이용하거나 음악으로 세 인물을 하나의 분위기로 감싸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씬과 시퀀스를 이어가고 엮어간다. 그렇게 이 주인공들이 결국 같은 불안과 고독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내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을 쌓아가며 영화의 에너지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때 이런 부분들을 세세히 뜯어 보면서, 나는 편집할 때 설계해야 하는 이미지의 배치나 컷 구성, 그리고 컷팅으로 어떻게 영화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끌고 나가는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 영화 속 세 여주인공이 하루 동안 겪는 감정적인 불안의 근원은 결국 자기 모습 그대로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허무함에서 오는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이런 주인공들의 ‘하루’라는 시간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일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날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마음 속의 어떠한 균열들이 건드려지게 되고, 그 균열을 감당하고 버티고 해소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투쟁 해야만 내 모습 그대로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건네고 있다. 사진: "The Hours", IMDb (좌 상단부터 시계 방향, 버지니아1 , 버지니아2 , 클래리사 , 로라 ) “삶과의 투쟁없이는 평화도 없어요.” -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영화를 만드는 일은 재밌으면서도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처음 편집을 시작하며 꿈을 키워 갈때는 나도 여느 유명한 편집감독님 들처럼, 이런 저런 다양한 장르를 다 잘 소화하는 편집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을때 좌절도 하고 나에 대한 자책도 많이 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를 편집하면서 느낀 가장 큰 부분은 영화에는 정답이 없고, 다 각자 자기만의 색깔과 방식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편집기사는 그 무수히 많은 촬영 소스에서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통해 작품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개성과 매력을 찾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무난하게 5점짜리 씬만 있는 영화보다는 좀 불균질하더라도 3점과 7점이 공존하는 영화가 더 매력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밖에서 바라볼 때 평균 점수가 똑같더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너무나 큰 자본이 들어가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이래야만 한다’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고, 수학의 정석처럼 딱 꼬집어 정의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의 규칙들이 이 산업 안에서는 존재한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편집기사라는 이 일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컸던 나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질보다는, 이 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던 ‘그래야만 한다’라는 것들의 기준에 맞춰서 변하려고 많은 애를 썼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잠깐의 휴식기 아닌 휴식기를 가졌던 그때의 나는, 나라는 사람이 거쳐온 시간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해소할 것은 해소하고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나는 편집기사로서의 손연지, 인간 손연지의 장점과 매력은 무엇인지, 편안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영화와 환경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쉼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무용한 시간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기가 나에겐 그랬다. “있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 가지고 있는 기질 덕분에 어렵지 않게 잘할 수 있는 작업과 공부가 필요한 작업에 대한 구분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성향적인 부분에서 오는 장점과 한계들... 그때 이 영화를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기사로든 사람으로든. 나는 운명론을 좀 믿는 편인데, 내가 보는 영화나 작업하는 영화가 나에게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2017년의 나에겐 <디 아워스>가 찾아와 편집기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손목이 허락하는 한 할머니가 되어서도 편집을 하고 싶기 때문에, 앞으로 나이가 들더라도 내가 가진 감각과 감성을 지키면서도 고착화되지는 않는 그런 할머니 편집기사로 늙어가고 싶다. 내가 편집한 작품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말을 건네는 그런 마법같은 순간이 일어나길 기원하며, 오늘 하루도 언제나 그랬듯 마우스를 잡을 것이다. 사진: "The Hours", IMDb 손연지(편집기사) l 극영화, 드라마, 다큐, 뮤지컬 필름 등 스토리 텔링이 들어간 다양한 장르에서 편집을 한다. 눈을 끄는 화려한 편집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편집을 하고 싶다. 영화 < 비밀 >(2023), < 세자매 >(2020), <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 이장 > 등 다수,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편집
1. “'나의 한국고전영화'(가제)라는 주제로 (…) 한국고전영화 대해 애정을 쏟는 부분이나 관심을 갖게 된 지점 등 한국고전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의 이야기를 KMDb 에 싣고자 합니다. (…) 조금 더 개인적인 에세이 형식의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원고 청탁은 덜컥 받았지만―KMDb에 글을 써보는 게 소망이었다.―빈 문서에 주제 적어두니 정말 불안하고 의아해졌다. ‘나의’는 불안하게 만들었고, ‘한국고전영화’는 의아하게 만들었다. 먼저 의아함은 ‘한국고전영화’라는 단어의 모호함과 관련된다. 비슷한 이름의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Classical Hollywood Cinema’가 특정 역사적 시기나 미학 체계를 지칭하는 것과 달리, 1) ‘한국고전영화’는 용어로 정립되지 않은 것 같다. 가령 영상자료원 운영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 Korean Classic Film]에는 많은 영화가 업로드 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 〉(이규설, 1920년대 추정), 〈 귀로 〉(이만희, 1967), 〈 미지왕 〉(김용태, 1996)도 있다. 이 세 편 영화를 하나로 묶는 역사적 시기와 미학 체계를 찾는 건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조선영화, 남한영화, K영화… 이런 식이라도 따로 지칭하는 게 더 실재에 가까울수도 있을 것 같고. 아무튼 ‘한국고전영화’를 모호하게 사용하는 예는 논문, 기사 어디에서도 비근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고전영화’는 그냥 이렇게 사용되는 것 같다. “여러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졌던 영화, 여러분들의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봤던 영화, 한마디로 옛날영화(김홍준, 2008)” 2) 당연하지만 ‘한국고전영화’를 “한마디로 옛날 영화”라고 해서 의아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의아해진다. 올해 태어난 내 친구의 아들에게는 〈 범죄도시 3 〉이 한국고전영화가 되는 걸까? ‘한국고전영화’를 ‘한국옛날영화’로 넘어간다 해도, ‘나의’라는 수식어는 나를 불안하게 한다.‘나의 한국옛날영화’ 이 말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특히 “한마디로 옛날영화”라는 말을 하필 김홍준으로부터 찾았다는 것은 더욱 더. 시간을 조금 돌려보자. 2021년 나는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영화제-오래된 미래’에 김홍준의 〈나의 한국영화〉 연작을 초청했다. (아마도 〈나의 한국영화〉에서 따왔지 않을까 하는) ‘나의 한국고전영화’라는 주제를 받자마자, 나는 그 영화와 그때 보낸 추천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비디오 대여점이 사라지고 있었고, 시네마테크 같은 근사한 이름들은 멀게 느꼈던, ‘굿다운로더’라는 이름이 낯설었던 과거. (합법 영역이 욕망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웹하드를 통해 한국고전영화-사실 거의 모든 영화-를 다운로드 하고, 봤다. 다른 영화 파일과 달리, 한국고전영화는 구성이 유달리 이상했는데 꼭 어떤 사람의 해설이 영화 앞에 붙어있었고, 때때로 출연진과의 짧은 대담이 이어지기도 했다. 뒤늦게 알았다만 그 파일은 ‘한국영화걸작선’을 녹화한 것이었고, 해설자는 김홍준이라는 사람이었다. / 〈나의 한국영화〉는 김홍준이 한국영화걸작선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비디오를 획득할 수 있었던 위치를 활용해 만든, (모든 에피소드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오디오비쥬얼에세이’ 작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한국영화>를 시네필 1세대-문화원 세대-가 바라본 ‘한국영화’, 또 오디오비쥬얼에세이의 아직 도달하지 못한 가능성이 담겨있는 작품이라 소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고 천진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나의 한국영화〉가 저작권을 클리어하지 않고 제작되었다는 점에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한국영화’라는 간단한 이름처럼, 그저 대면하고픈 작은 욕구에서 관점의 순수성이, 그리고 그로부터 새로운 형식이 가능했던 거라 믿는다. / 〈나의 한국영화: 에피소드 4 키노99〉는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 있다. 저작권 문제로 마지막 배경음악은 제거 되어있는데, 제거 된 노래의 이름은 ‘Je te veux’ 한국어로는 ‘당신을 원해요’다. 〈나의 한국영화〉의 첫 편 〈나의 한국영화1: My 충무로〉에서 김홍준은 〈 개벽 〉(임권택, 1992)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기억, 〈 서편제 〉의 마지막 장면에 자신의 딸이 출연했던 것, 〈어느 여배우의 고백〉과 충무로 활동 경력을 내레이션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의’는 화자가 그 피수식어와 맺고 있는 삶의 관계를 함축하는 수식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 한국옛날영화에 ‘나의’라는 수식어를 붙인 주제로는 아무런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고, 급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한국고전영화 = 불안+의아함 = 포기… 임재철: 기본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나 자국영화에 대해 냉담하다.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그렇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자국영화가 자국어를 사용해서 그렇다. 그걸 나는 ‘영화는 외국어다’라는 명제를 써서 설명하는데, 그게 문자 그대로 영화가 외국어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영화는 외국어처럼 쉽게 포착이 안 되는 게 본질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한국 영화 보는 경우엔 우리 현실에 안 맞다 거나 연기가 서툰 것을 굉장히 빨리 포착한다. 영화라는 건 우리가 가볼 수 없는 곳, 우리가 막연히 몽상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점이 있어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건데 3) 정성일: 영화는 보지 말라고 하니까 더 매혹적이고, 힘을 얻는 것이다, 문학도 학교에서 가르치니까 찾는 사람이 없는데, 왜 영화를 벌써 박물관으로 보내려 하느냐, 그런 얘기였다. 지금 영화는 공식문화가 돼버려, 매력적인 대상이 되기엔 힘이 부족한 것 같다. / 김홍준: 매혹과 열정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옛날 한국영화를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봐라. 모르는 거니까, 흥분할 수 있다. 둘째. 제도교육으로 배우려 하지 말아라. 4) 그렇게 원고를 회피하다가 영화평론가 임재철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리고 정성일·김홍준의 좌담을 떠올리고 포개어보았다. 임재철에게 ‘영화는 외국어’라서, 분명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불분명한 점이 있어서 매혹적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나 자국영화에 냉담하다 5) 정성일·김홍준의 문제의식도 유사하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은 공식문화가 된 이후에 영화는 매력을 잃었다고 말한다. 물론 임재철, 정성일·김홍준이 겨냥하는 지점에 차이는 있다. 임재철은 스크린 내 요소들의 익숙함이 매력을 저감시키는 점을, 정성일·김홍준은 스크린을 접하기 이전 정보의 과다함이 순수한 체험을 방해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표면적인 연상으로 두 인터뷰를 포개어보자. 영화는 외국어라서 흥미롭다(임재철) 그런데 공식 교육에서 외국어를 너무 가르치곤 한다. 그러므로 오히려 흥미로운 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옛 우리말이다(김홍준)? 실로 옛 우리말은 지금의 우리말보다 불분명하다. 훈민정음의 유명한 구절을 안다면 들리는 것과 써진 것을 함께 떠올릴 수 있지만, 그냥 음성만 듣고 있으면 꼭 외국어 같다. 그러다가도 ‘사람마다’라거나 ‘사람이니라’ 같은 부분에서는 또 익숙하여, 불분명하던 앞뒤의 말을 이어맞춰보곤 한다. 그리고 더 궁금증이 생긴다면 ‘우리말’이므로, 여러 방면으로 궁금증을 해결하기 편하다. 개인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나의 한국옛날영화’라며 말할 수 있는 고유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측면이다. ‘한국옛날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시네필의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어서 희귀한 ‘순수한 감상자’의 자리를 허용한다. 친절한 공급자도 적고, 알고리즘의 되먹임(KMDb가 알고리즘 기반 vod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를…)도 없다. 그런데 영화 혹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에 궁금하거나 의아한 점이 생긴다면 그 영화·사람의 주변/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2001년 정성일·김홍준이 ‘한국옛날영화’를 모르는 것으로 거명했을 때보다 한국영화사 연구는 훨씬 많이 누적되었다. 그럼에도 정전(canon) 이외의 작품은 소위, ‘작가’의 작품인 경우에도 아직 충분히 감상 되지 않았으며 해명되지 않았다. 한국옛날영화는 우리 영화팬에게 감상뿐만 아니라 역사적 해명을 충분히 시도해 봄직한 미개척의 공간이다. 박진희가 「한국고전영화 상대하기-나의 경우」에서 거명한 “역사가로서의 강력한 감상자”는, ‘옛 우리말’이라는 부분적인 분명함의 조건에서 비단 영화사 연구자/영상자료원 직원에게 한정되지 않는 모델이 될 수 있다. 6) 2. 이러한 맥락에서 내가 하나의 한국옛날영화감독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소개해보고 싶다. 이만희는 연구사의 첫머리부터 ‘숙명적 운명론자’로 논해지곤 했다. 사람들의 삶에는 조건과 한계가 정해져있고 그로부터 탈출은 불가능하다. 이만희의 주제는 반복되는 노동 혹은 일상의 갑갑함이었다. 이만희 또한 자신의 주제를 분명히 인지했던 것 같다. 그는 1973년 08월 「혼자이기 때문에」라는 짧은 글을 썼다. 이 글은 지금껏 인용되지 않은 게 의아할 정도로, 이만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조금 길게 인용해보자. (…) 우리 인간이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 중에서 맨 처음의 감정이나 또는 이 세상에 미련을 남기며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마지막의 감정은 바로 소외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읍내의 극장에서 화려한 상류(上流) 생활을 그린 영화를 보고 어두운 논뚝길을 타박타박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가난한 시골처녀, 사방 1미터도 채 안되는 공간 속에 하루종일 앉아서 담배를 피는 아주머니, 똑같은 노선을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버스 안내양, 분필가루 속에서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가르치던 것을 금년에도 반복해야 하는 여교사, 잠깐 한눈 팔면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르는 개구장이들을 마치 간수처럼 하루종일 지켜야 하는 어머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와 기묘하게 폭발하고 말듯이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 사이에 끼어서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턱을 고이고 앉아 있는 여대생, 장성한 자식들과 출세한 남편은 제 볼일로 각기 바빠 값비싼 장신구와 함께 버려져 있는 중년부인… 등등, 여유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지식 수준이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어디선가 남들은 풍족한 생활을 하며 쭉쭉 뻗어가고 있는데 자기 혼자만 이 아무 변화 없이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날로 퇴보하고 있는 것만 같은 소외감을 느낀다. (…) 나로서 가장 관심이 깊은 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 느끼는 이 소외감이다. 영화를 통해서 나는 인간들이 그 소외감을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처리해 가는가를 그리려고 애써 왔다. 그러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소외감 그 자체는 명백한 인간의 조건일 뿐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에 따라서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결론은, 자기의 소외감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해소시키려 할 때 무리가 생기고 악이 되기 쉽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일일지라도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일」을 찾을 것, 그것에 몰두할 것, 그것을 완성시킬 것, 또 「일」을 찾을 것…그래야만 우리는 훼진 운동화를 신고도 남루한 옷을 입고도 아무런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며 번화한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이다. 7) 이 글에서 이만희는 인간 보편의 문제에 가까운 소외를 주목한다. 이만희는 이 소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일을 제시하지만, 마지막 문단의 “「일」을 찾을 것, 그것에 몰두할 것, 그것을 완성시킬 것, 또 「일」을 찾을 것”이라는 반복은 소외의 극복이 불가능함을 역설적으로 강조―기실 이만희는 “똑같은 노선을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버스 안내양”과 “분필가루 속에서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가르치던 것을 금년에도 반복해야 하는 여교사”처럼 반복되는 일에서 소외를 찾고 있다―한다. “훼진 운동화”, “남루한 옷”이 풍기는 쓸쓸한 정서는 극복 불가능한 소외를 강화하는 전략 같이 느껴진다. 이런 글과 그의 영화에서 나는 우거지상 혹은 무표정한 사람으로 이만희를 떠올렸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한국영상자료원’이 2015년 04월 29일에 facebook에 올린 포스트를 보게 되었다. (https://www.facebook.com/koreanfilmarchive/photos/%EC%B5%9C%EA%B7%BC%EC%97%90-%EC%98%81%ED%99%94%EB%B0%B0%EC%9A%B0-%EB%AC%B8%EC%88%99%EB%8B%98%EC%9D%B4-%EC%83%88%EC%82%BC-%EC%A3%BC%EB%AA%A9%EF%BF%BD/797165160399351/) 이 포스트에는 멋진 사진이 있었다. (사진에는 1974년 여름 〈 삼포 가는 길 〉 촬영장이라 적혀 있지만, 입고 있는 옷은 문숙과 이만희가 처음으로 작업을 함께 한 〈 태양 닮은 소녀 〉의 촬영장이 분명하다.) 급하게 촬영한 것처럼 초점은 흔들려 있고, 초점이 맞지는 않지만 사진 속의 이만희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이 웃음이 낯설었고, 좋았다.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고 궁금했다. 혹시 이만희는 일상의 갑갑함이나 소외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사랑을 찾은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정말 그랬던 것 같았다. 비록 앞서 길게 인용한 「혼자이기 때문에」처럼 이만희가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이만희의 경력에서 사랑은 하나의 주제를 이뤘다. 먼저 14년의 짧은 경력 동안 이만희는 무려 51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일」을 찾을 것, 그것에 몰두할 것, 그것을 완성시킬 것, 또 「일」을 찾을 것…”을 실천하듯 이만희의 영화 제작 소식은 그의 활동 기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만희는 사랑을 했다. 감독 데뷔 시점부터 사실혼 상태였던 이만희는 1966년 〈 만추 〉의 배우 문정숙과 연애를 했고, 1974년의 시점에서는 배우 문숙과 연애를 했다. 1975년 4월 13일 이만희의 사망 이후에도 신문·잡지에는 이만희의 연인들의 말이 널리 보도되었다. 영화배우인 이혜영이 그의 아버지 이만희를 추억하는 글에 붙인 제목처럼 “은막의 대들보 우리 아버지(인용자-이만희), 천재는 오직 사랑뿐이었다.” 8) 그런데 이만희의 이 편력에는 독특한 구석이 있다. 여성 편력이 (특히 당사자 여성에게) 통념상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희와 시간을 함께 보낸 여성들은 그와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만희의 두 번째 아내 9) 인 오흥순은 이만희와 결별 후에도 “그이와의 7년간의 결혼생활이 내게는 너무 아름다운 추억”이었기에 오랜 기간 재혼을 하지 않았다. 10) 문정숙 또한 이만희가 죽은 후에도 “「만추」(이만희와 함께 촬영한 영화의 제목-인용자)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고 매해 가을 “낙엽속에서 그의 숨소리와 뜨거운 「영상의 혼」을 발견”하곤 했다. 11) 그의 마지막 연인인 문숙 또한 2007년 한 권의 책 마지막 한해를 통해 이만희와의 사랑을 추억했다. 12) 이만희는 사랑을 많이 한 사람일 뿐 아니라, 사랑을 참 열심히 그리고 잘 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학부 때였나? 수업 시간에 한 교수가 사랑의 비효율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사랑에 목을 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고, 대학생이 조심해야 하는 일이라고. 나는 그 교수가 바보라고 생각했다. 목맬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복된 일이다. 사랑이 끝난다고 해서 그 복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랑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준다. 소외를 말한 우거지상의 이만희가 문숙 옆에서 웃을 수 있었던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사료/정보로부터 우리는 이만희 영화에서 무엇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을까? 〈삼포 가는 길〉(이만희, 1975)로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영달과 정은 백화를 떠나 삼포로 향한다. 이만희는 떠나는 영달과 정의 얼굴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는다. 일상적 삶의 프로젝트에서 상상되지 않는 백화라는 존재를 담을 수 없는 그들을 이만희는 화면에서 추방시켜 버린 것 같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 개발의 증표로 ‘삼포’라는 가짜-외부가 영화에 삽입된 것이 나는 참 슬프다.) 이미 정해진 원고 매수는 넘었고, 나는 무엇보다 당신이 이러한 정보들을 참조하며 (아마 그의 가장 언급되지 않은 영화 중 한 편인) 〈태양 닮은 소녀〉(이만희, 1974)를 보길 바란다. 이 영화에는 영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일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어떤 의미로 배치된 걸까? 나는 우거지상의 이만희가 문숙을 만나 활짝 웃는 걸 떠올린다. 그리고 찰칵!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이 남은 것에 대해서도. *** 1) 임재철,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 세계영화사 강의: 초기영화에서 아시아 뉴웨이브까지, 연세대학교출판부, 2001, 123-151쪽 참조. 2) 김홍준, 「한국의 고전영화 읽기―사실적 재현, 장르, 스타일, 공간의 구축」, (영화감독 10인의) 연출 수업 1, 동서대학교 임권택 영화연구소, 2012, 98-99쪽. 3) 임재철, 한승희, 「영원한 구경꾼: 임재철」, 필름 2.0, 290호, 2006.07. 74쪽. 4) 김홍준, 정성일, 박은영 정리,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5] - 영화광·에필로그」, 씨네 21, 2001.02.22. http://m.cine21.com/news/view/?mag_id=573(2023.06.18. 확인) 5) 미국을 제외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한편, 브라질의 영화평론가 Filipe Furtado는 이렇게 트윗한 적 있다. “누구나 자국 영화에 애증 관계를 갖습니다. 다만 미국인들은 자국 영화를 기본값으로 보는 데 너무 익숙해서 애초에 그것을 ‘자국 영화’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https://twitter.com/filipefurtado/status/1172522298093506560) 6) 박진희, 「한국고전영화 상대하기-나의 경우」, 마테리알 7호 https://ma-te-ri-al.online/archive/641 7) 이만희, 「혼자이기 때문에」, 샘터 4권 8호, 샘터사, 1973.08. 30-31쪽. 8) 이혜영, 「「은막의 대들보 우리 아버지」 「천재」는 오직 사랑뿐이었다」, 여성동아 185호, 1983.02. 9) 이혜영에 의하면 이만희는 55년에 한 번 결혼을 한 후 바로 이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만난 것이 오흥순이다. 이혜영은 오흥순이 “극예술협회라는 극단에 들어가셨어요. 거기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하더라구요.”라고 구술한 바 있다. (이혜영, 「이만희를 말하다」, 영화천재 이만희, 한국영상자료원, 2006, 258쪽) 이와 달리 오흥순은 이만희와 그가 처음 만난 것이 ‘서울문화학원’이었다고 회고했다. 오흥순과 이만희는 각각 ‘서울문화학원’에 배우와 연출이 되기 위해 다녔다고 한다. 이후 그들은 학원을 다니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오흥순, 「사랑이 머물다 간 세월」, 아리랑 21권 8호, 아리랑사, 1975.08. 172쪽.) 서울문화학원의 한국연극학회가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공연한 것은 1955년 11월이다. (「全國大學演劇 콩클 作品은 「푸른聖人」」, 경향신문, 1955.11.06.」)이다. 이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극예술협의회(劇藝術協議會)’ 주최로 1956년 06월이다. 오흥순이 출연한 기록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劇藝術協議會 創立 公演」(경향신문, 1956.06.0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천재 이만희 15쪽에 실린 ‘57년 공연장에서’라는 사진 또한 1956년 공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이 공연에는 이만희가 감독으로 데뷔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김승호도 출연했다. 10) 오흥순, 위의 글, 174쪽. 11) 문정숙, 「그 만추의 못잊을 사랑」, 여성동아 185호, 동아일보사, 1983.02. 236쪽. 12) 문숙, 마지막 한해, 창비, 2007.
영화 현장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주로 읽는 글이라고 들었다. 먼저 영화 촬영팀의 인원 구성과 각 구성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부터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촬영팀은 거의 프리랜서라고 생각을 하면 된다. 영화 한 작품당 계약을 하고 작품이 끝나면 또 다른 영화가 잡히면 촬영이 들어간다. 예전에는 식구개념으로 항상 같은 팀으로 움직였으나 요즘은 개개인으로 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드라마와 광고 쪽도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서 드라마와 영화 등을 병행하는 촬영팀도 꽤 있다. 나는 현재 영화를 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기준으로 글을 적었다. 그리고 내가 적는 내용이 절대적이지 않고 작품이나 촬영 감독님에 따라 약간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글을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촬영 감독을 제외한 촬영팀은 보통 4명으로 구성이 된다. 제1 조수(퍼스트), 제2 조수(세컨), 제3 조수(서드), 제4 조수(막내) 이렇게 4명이다. 요즘은 B카메라가 상주하는 현장이 많다. A카메라와 마찬가지로 4명으로 구성되는 현장도 있으나 보통은 3명으로 구성된다. 두 대의 카메라가 어떻게 운영되느냐는 어떤 영화이며 촬영 감독이 누구인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A카메라가 넓은 샷을 찍을 때, B카메라는 망원렌즈로 타이트한 샷을 찍는다. 촬영팀 막내의 역할은 카메라 배터리 관리와 세컨, 서드가 카메라 세팅이 바뀔 때 필요한 장비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 별거 아니라고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장비가 어디에 있는지 항상 알아야 하며, 장비 및 소모품의 수량도 완벽하게 파악을 하고 있어야 한다. 꼼꼼한 막내가 있으면 나머지 촬영팀들은 카메라 세팅과 본인의 일에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다. 촬영팀 서드의 역할은 세컨을 도와 카메라 세팅을 같이 하는 일이다. 촬영팀의 중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세컨의 일을 해야 하며, 때로는 막내의 일도 해야 한다. 중간에서 눈치껏 필요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고생이 많은 직급이다. 촬영팀 세컨의 역할은 카메라 세팅, 그리고 카메라 장비를 관리하는 것이다. 카메라 세팅의 실수가 없어야 촬영 감독이 촬영에 집중할 수 있으며, 전체적인 촬영시간에 딜레이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 위해서는 콘티를 숙지를 하고 있어야 하며, 어떤 순서대로 촬영이 진행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촬영 감독과 카메라와 가장 많이 붙어있는 촬영팀원이 세컨이다. 촬영팀 퍼스트는 직접적으로 카메라 세팅을 하지는 않는다. 퍼스트는 카메라 노출과 포커스를 담당한다. 정확한 노출을 보기 위해서는 조명, 해의 상태, 인물의 스킨톤 등을 고려해야 한다. 포커스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는 인물의 동선과 카메라의 움직임을 슛 들어가기 전에 완벽히 파악해야 한다. 노출과 포커스를 보기 때문에 퍼스트는 시간적으로 카메라 세팅에 관여하기 사실상 힘들다. 경우에 따라선 퍼스트가 같이 세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세팅을 같이 하지는 않는다. 세컨, 서드가 카메라 세팅을 실수 없이 해줘야 퍼스트가 본인의 일에 100퍼센트 집중해서 할 수 있다. 글을 적고 있는 나는 2013년부터 상업영화 촬영팀을 하고 있으며 세컨을 맡고 있다. 글을 작성하는 현재(2016년 12월)는 김용화 감독의 < 신과 함께 >를 촬영 중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얼마 전에 개봉했던 < 아수라 >를 통해 구체적으로 촬영팀 세컨이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Alexa XTM < 아수라 >의 본 촬영은 2015년 9월 말부터 2016년 1월 말까지 총 4개월 동안 76회차 동안 촬영이 진행되었다. 카메라의 경우는 ARRI사의 Alexa XT로 촬영이 되었고 RAW 파일에 센서 모드는 Open Gate(3.4K) 포맷으로 촬영이 되었다. 렌즈는 Masterprime 렌즈를 사용하였다. 카메라와 렌즈는 촬영 감독이 선택한다. 촬영팀 조수는 카메라와 렌즈가 정해지면 렌탈숍에 모여 카메라 및 렌즈, 그리고 사용하는 카메라 액세서리의 이상 유무를 체크한다. 카메라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촬영에 직접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말 꼼꼼히 체크를 해야 한다. 위에서 말했듯 카메라 장비는 세컨의 주도하에 장비를 체크해야하기 때문에 프리프로덕션 기간 동안 촬영팀의 스케줄은 세컨이 관리를 한다. 언제 모여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필요한 인원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를 조율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카메라와 렌즈만 있는 것 같지만 사용하는 작은 액세서리까지 체크를 하려면 해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막내의 같은 경우는 사용할 배터리를 전부 다 완충을 시켜 카메라에 장착해서 이상이 없는 지 확인을 해야 하고 서드의 경우 보통 촬영팀에 필요한 물품 및 소모품이 부족하지 않은지 체크한다. 세컨은 그 모든 것이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장비를 체크한다. 상황에 따라 카메라 세팅이 달라질 때마다 카메라 액세서리가 달라진다. 하나하나 상황에 맞게 세팅해서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하고 또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카메라에 사용할 모니터가 정확한 색과 밝기를 구현하는지, 카메라 헤드가 오퍼레이팅을 할 때 문제없이 작동되는지, 사용하는 전원 라인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등 촬영에 필요한 모든 부분은 체크한다. 그리고 각각의 영화의 필요한 장비 및 소모품들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 및 로케이션의 상황을 미리미리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극 같은 경우는 지방촬영이 많기 때문에 장비의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체품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지방으로 오래 촬영을 가는 경우 여분의 장비를 좀 더 챙기는 것이 기본이다. 폭우 속 차량 추격 장면 < 아수라 >의 경우 가장 공들여 준비했던 장면은 폭우 속의 차량 추격 씬이었다. 일단 비가 오면 촬영팀은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촬영 장비 전부 비에 취약하기 때문에 방수 작업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세컨으로서 이런 부분에 대해 실수가 없도록 준비를 해야만 했다. 가장 중요한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해 카메라 모양에 맞는 방수포를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동대문시장을 돌아 다녀보았다. 단순히 트라이포드만 사용해서 촬영을 하는 것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다양한 카메라 세팅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 방수포를 만들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제작 시간과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 포기하였다. 결국 카메라 방수에 사용했던 것은 모든 촬영팀이 쓰는 김장비닐이었다. 1억이 넘는 카메라를 고작 몇백 원하는 김장비닐로 방수처리 하는 것이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김장비닐만 한 것이 없다. <아수라>의 모든 비 씬을 김장비닐을 사용해서 방수처리 했지만 침수가 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비닐이 찢어질 수 있으니 중간중간 꼼꼼히 체크만 잘하면 김장비닐만큼 유용한 소모품은 없는 것 같다. 또 다르게 신경을 써야 했던 장면은 영화 엔딩의 총격 씬이었다. 총격 씬에서 공포탄을 사용하긴 하지만 화약가루가 계속 렌즈 앞쪽으로 날아온다. 화약이 렌즈에 묻게 되면 치명적이므로 클리어필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클리어필터는 유리이기 때문에 혹시나 깨지게 되면 렌즈에 스크래치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보통은 아크릴을 필터사이즈로 재단하여 사용한다. 아크릴 같은 경우는 쉽게 먼지가 달라붙고 지문 같은 게 묻으면 쉽게 지워지지도 않기 때문에 길어야 두 테이크 정도 쓰고 바로 새것으로 교체를 해야 한다. 필요한 소모품을 생각해서 주문을 하는 것 역시 세컨의 역할이다. 얼마나 쓸지 모르니 여유 있게 아크릴을 준비했다. 생각해 보니 아크릴도 장당 몇백 원 정도다. 글을 쓰며 새삼 김장비닐과 아크릴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촬영팀의 프리기간 중 장비 체크만큼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테스트 촬영이다. < 아수라 >의 경우는 세 번의 테스트 촬영이 진행되었다. 첫 번째 테스트 촬영은 영화사 사무실 계단에서 진행되었다. <아수라>는 좁고 어두운 공간이 유독 많았다. 그와 비슷한 계단에서 테스트 촬영을 진행하였고 테스트 촬영의 주된 목적은 영화의 맞는 라이트 콘셉트를 찾는 거였다. 키라이트 방향에 맞춰 조명의 종류를 바꿔가며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형광등, 나트륨등, 수은등을 포함해 5개 정도를 테스트를 하여 촬영을 하였고 다음 날 DI(Digital Intermediate) 실에 가서 테스트한 영상을 확인했다. 그 자리에는 연출을 맡으신 김성수 감독님 포함 촬영, 조명, 미술, 분장 파트의 헤드급들이 모두 와서 콘셉트에 대해 회의를 했다. 회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많이 되었다. 각 팀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고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테스트은 실제 촬영할 구의시장에서 진행했고, 영화의 내용과 비슷하게 김성수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적어오셨다. 첫 번째 테스트 촬영을 통해 정한 조명 콘셉트로 촬영을 했고, 두 번째 테스트 촬영이 끝나고 나서 그 다음날 역시 DI 실에 갔다. 두 번째 DI 실 방문에는 색보정 작업을 통해 영화에 맞는 색감과 톤을 이야기를 했다. CG 촬영 세 번째 테스트 촬영은 차량 추격 씬 중 한 부분을 테스트 하는 것이었는데 CG에서 프리비주얼을 가져와서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보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차량 추격 씬 도중에 카메라가 차량 안으로 들어가 휘젓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 같은 경우는 두 대의 차량의 지붕 부분을 잘라내어 촬영하고 편집과정에서 CG로 일일이 그려냈다. 테스트 촬영을 통해 그것이 가능한지 테스트를 해보았던 것이다. 세 번의 테스트 촬영은 실제 촬영이 들어가기 전 촬영팀끼리 손발을 맞춰볼 좋은 기회다. 위에서 언급했듯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면 그전까지는 한 번도 일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과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테스트 촬영 통해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고, 호흡을 맞춰볼 수 있으며, 실제 촬영에 들어가기 전 장비를 최종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 꼼꼼한 준비를 위한 필수 과정인 것이다. 프리기간으로 대략 한 달 반 정도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본 촬영에 들어갔다. 프리프러덕션 물론 잘해야 하지만 정작 촬영에 들어갔을 때 잘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서드에서 세컨이 되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일을 할 때의 나의 자세이다. 서드, 막내 때는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을 했던 입장이었다면, 세컨이 돼서는 능동적으로 내가 주도해서 일해야만 했다. 막내에겐 필요한 장비를 말해 가져다 달라고 해야 했고, 서드에겐 카메라 세팅 시 서로의 역할분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세컨을 하고 또 달라진 점은 다른 파트들과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스콜피오 무인 헤드, 스테디캠, 러시안 암 등 특수 장비의 스케줄을 촬영 감독님께 전달받으면 제작부장과 함께 일정을 체크해서 장비 스케줄에 문제가 없는 체크를 했고 촬영팀의 요구사항이 생기면 촬영팀 대표로 제작팀과 이야기를 할 때도 생겼다. 촬영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촬영팀 세컨이라고 예전에 누가 말해줬는데 그 이유가 뭔지 직접 해보니 알 것 같았다.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를 했을 때 그만큼 많이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재밌을 때가 많았다. 러시안 암 슛이 들어갔을 때 꼭 세컨의 역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체크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앵글에 불필요한 요소가 있는지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붐 마이크의 그림자가 인물에 떨어지지 않는지도 봐야 하고, 유리 벽 같은 반사체에 스텝들이나 카메라가 반사되어 나오지 않는지 등을 체크해야한다. 슛 들어가기 전에 그런 불필요한 요소들을 체크해야지만 NG를 줄일 수 있다. 카메라 옆에 항상 붙어 있다보니 가장 잘 볼 수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이기 때문에 앵글이 잡힌 후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 그런 것들을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세컨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카메라 메모리 관리이다. 촬영 기간 동안 512GB 메모리 카드 4장을 번갈아 가면서 촬영을 했다. 촬영이 길어지다 보면 하루 동안 같은 카드에 두세 번 녹화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때마다 카드를 포맷을 해야 한다. 이 역시 세컨이 담당을 한다. 세컨이 착각하여 실수로 포맷을 해버린다면 다시 재촬영을 해야 한다. 나 역시 그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천만다행으로 인물 촬영 분량이 아닌 인서트 분량 이였지만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의 실수로 그날의 촬영이 늦게 끝나버리게 된 것에 대해 모든 스텝들에게 죄스런 마음이 생겼다. 그 이후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예전의 필름으로 촬영할 때와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촬영팀은 데이터 매니저와 함께 그날 찍은 분량을 관리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데이터 관련한 실수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쯤 왔으니 < 아수라 >의 몇 가지 장면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차가 있다. 검찰수사의 검정 탑차인데 실제로 탑차를 구매한 뒤 미술팀이 세팅을 했다. 좁은 탑차 안에 인물이 6명일 때도 있었다. 비좁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세컨인 나도 빠져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좁은 장면 촬영 시에는 카메라를 간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은 카메라에 장착하는 온 보드 배터리를 제거하고 라인으로 연결하는 그라운드 배터리로 카메라 및 모니터에 동력을 공급했다. 카메라의 달려있는 손잡이도 제거해서 카메라에는 모니터만 달려있도록 해서 촬영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차량 추격 씬도 기억이 많이 남는다. 촬영은 부산에서 하루, 안산에서 일주일 정도 진행되었다. 부산에서는 추격 씬의 초반부만 촬영을 하였고 대부분은 안산의 미개통 도로에서 진행되었다. 추격 씬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자면 차량이 전복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데, 차량이 달리는 부분은 러시안 암으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러시안 암이란 SUV 차량 위에 지미짚이 달려 있고 달리는 차 안에서 조종을 할 수 있는 것이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차량의 스턴트는 무술팀이 담당했고 카메라는 계속 러시안 암에 달려있어서 처음에 세팅이 끝나면 촬영 종료까지 카메라 세팅을 크게 바꾸는 일은 없었다. 폭우 설정이었기 때문에 차량이 베이스로 돌아와서 모니터링 하는 시간 동안은 방수에 빈틈은 없는지 체크를 잘해주면 됐다. 렌즈 앞에 빗방울이 맺히면 안 되기 때문에 스프레이오프 라는 장비를 사용했다. 스프레이오프는 유리를 빠르게 회전시켜 빗방울을 튕겨 내주는 장비인데 차량 추격 장면을 촬영하면서 꽤 유용하게 사용했다. 차량이 전복된 이후의 장면은 핸드헬드로 촬영이 되었다. 핸드헬드 할 때 세컨은 촬영 감독이 원하는 동선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잡아 주는 것이다. 걸어오는 인물의 앞부분을 찍기 위해선 촬영 감독은 뒷걸음 쳐야 한다. 세컨은 촬영 감독님을 잡고 원하는 동선으로 이끌어 줘야 한다. 촬영 당시에 바닥에는 온통 과일 천지였다. 오렌지와 사과였는데 촬영 감독님이 밟지 않도록 계속 치워줘야만 했다. 이 역시 폭우였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굉장히 부담되는 장면이었고 폭파장면도 있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촬영이 끝났다. 프리 때부터 모든 스텝들이 이 장면에 많은 공을 들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개봉 이후에도 사람들이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이라 말해줘서 고생스럽던 순간이 보람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장례식장 장면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이기도 했던 장례식장 장면이다. 장례식장 내부는 이천에 있는 무대 마당에 세트를 짓고 촬영 하였고, 2주 정도 진행했다. 엔딩이기도 하며 주인공 5명이 모두 모이는 장면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었다. 격투 및 총격 씬이 많았기 때문에 리허설이 꼼꼼히 진행되었고 스텝들 모두 긴장을 많이 했다. 카메라 가까이에서 총을 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카메라 앞에, 위에서 말한 재단한 아크릴을 사용했다. 카메라를 보호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문제는 사람이다. 화약이 얼굴에 튀면 따끔따끔하게 느껴진다. 자칫 눈에 화약이 튀기라도 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카메라 주변의 스텝들은 투명고글을 쓰고 손에는 장갑을 썼다. 총소리 때문에 귀마개를 사용했지만 바로 앞에서 총을 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장례식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내내 귀가 멍멍할 상태로 촬영을 했던 것 같다. 액션 씬을 촬영할 때는 촬영팀이 주의해야 하는 점은 카메라 와 인물의 거리감이다. < 아수라 >는 광각계열의 렌즈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인물에 붙어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화 씬은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액션 씬 같은 경우는 인물과 거리가 가까워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촬영 감독들은 모니터를 보며 앵글에 집중하기 때문에 카메라 밖의 상황을 잘 모를 때가 있다. 세컨이 그런 상황들은 촬영 감독에서 설명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세팅을 바꾸겠다고 역으로 제시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엔딩 씬의 경우에 몇 번 그런 경우가 있었다. 재밌게 글을 쓰고 싶었으나 글재주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 읽기에 편하게 쓴 것 같지는 않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은 것은 각 팀의 스타일이 다르고 작품의 특수성 마다 일하는 방식이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루한 글을 읽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글을 쓰는 내내 개인적으로 애착이 있는 < 아수라 >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