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
- 감독
- 캐럴 리드
- 제작년도
- 1958
- 출연
- 윌리암 홀덴, 소피아 로렌, 트레버 하워드, 오스카 호몰카, 키에런 무어, 버나드 리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중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본 원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에 기반해 작성됐으며,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안내드립니다. * 이 글은 2024년 12월에서 2025년 12월까지의 한 무명 영화평론가의 도전기다. 다 쓰고 보니 비평에 관한 고차원적인 통찰은 없는 것 같다. 그걸 논하려면 실력적으로 좀 더 여물어야 한다. 그전에 평론가로서 생존해야만 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만난 영화들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걸어온 길은 나를 다른 관점으로 좋게 보아온 이들의 눈을 통해서 [1] 만들어졌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Intro 바퀴가 되던가 바퀴에 깔리던가 난 다른 차선에 세우고 깜빡이 켜놔 - 이센스, <쉬게> “보안정책에 의해 차단 되었습니다.” 2026년 상반기에 잠시 일하는 곳에서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기로 한 영화를 예매 취소하려고 로그인하니 떡하니 보였던 문구다. 차단, 배제, 초대받지 못함 등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차단은 상당히 신선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갑자기 일을 하게 돼서, 평소에 가던 평일 오후 2시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주로 하는 언론배급 시사회는 당분간 못 가게 됐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상자료원이나 서울아트시네마에 가기가 아직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퇴근 후 노트북으로 영화를 파편적으로 보거나 주말을 이용해 밀린 숙제처럼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라고 여긴다. 내가 취소하려고 했던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 아마도 악마가 >(1977)였다. 손에 넣으려고 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도망간다. 영화와 잠시 멀어졌지만, 근무지에서 사람들을 대하며 오히려 영화적인 순간을 최근 체험했다.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꼭 그러면 만난다. 하나는 친했던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마주쳤다.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신세라 친구와 담배 하나를 같이 필 수 없었다. 아쉽게 손 인사만 하고 그를 떠나보냈다. 잠시 마주친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친구와의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했다. 다른 하나는 답답해서 사무실을 나와 찬 공기를 마시는데 두 명의 영화배우가 지나갔다. 작년 《씨네21》 ‘프런트 라인’에 합류해 처음 쓴 비평이 두 배우가 나온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잘 움직였던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도로에 멈춰 선다. 그는 차 안에서 담배 하나를 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지금이 나에게 그런 시기 같다. 하는 일이 끝날 무렵, 시네필들이 안 좋아하지만 나는 애정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 오디세이 >(2026)가 아마도 용산 아이맥스관에서 시사회를 열 것이다. 놀란이 매달리는 ‘귀환’이라는 화두처럼 나는 다시 영화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사회 인원수 제한에 컷 당하지 않고 무사히 입성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비평, 안녕하십니까? 글쎄 전혀 안녕하지 못하다. KMDb의 “비평, 안녕하십니까” 코너에 나는 언제 써보나? 영자원에 자주 가는 건 소용없다. 이들의 눈에 띄려면 어디서 놀아야 할까? 쟨 뭔데 50주년 리스트를 썼지? 왜 난… 이런저런 불만 섞인 질문들이 쏟아졌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점점 마음이 꼬여갔다. 늘 위기인 비평과 < 기생충 >(봉준호, 2019)으로 정점을 찍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직격탄을 맞은 후 급격하게 추락 중인 한국영화보다 내가 더 걱정이었다. 그곳에 기생하는 존재라 숙주가 위기일 때 가장 먼저 떠날(능동) 혹은 떨어져 나갈(수동) 이들은 누구일까? 래퍼 이센스의 <A-G-E>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와중에 버는 놈들이 타짜지.” 그런 타짜들이 부럽다. 나도 타짜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한몫 챙기는 영화평론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 타짜가 되기엔 애매한 재능 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악마의 저주일까? 이런 상황에서 영화와 비평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내겐 사치다. 위기라고 상정하고 파국이 된 그곳을 사유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안전거리가 확보된 이들에게 허락된 고상한 일은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그러기엔 내 눈앞에 놓인 현실이 비루하기 짝이 없다. 간단하게 말해서 일이 없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겠는가. 영화 시장이라는 곳에서 나는 스스로를 내보이곤 있지만 매칭이 잘 이뤄지지 않는 매력적이지 않은 매물인 것이다. 비평가 자체가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대(大) 인플루언서 시대에선 더욱이 말이다. 등단 이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는데) 콩고물이 떨어지길 기대했던 것이 오산이다. 요즘은 등단 없이 혹은 등단 제도에 콧방귀를 뀌며 등장한 평론가들이 오히려 내가 원했던 그 자리에 더 빨리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를 써준 분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완성형 시네필로 등단한 케이스가 아니다 보니, 지금도 나를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시네필-평론가들이 학창 시절부터 영화에 쏟아부었던 시간만큼 나 역시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적게 잡아도 10~15년. 하지만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잡지는 싸움의 장소라기보다는 매칭 애플리케이션이 되었다. 크림처럼 실패한 비평가이자, 실패한 산문가는 오늘날에 잡지에서 그렇게 환대받는 작가는 아닐 것이다. 크림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엄숙한 비평 스타일에서 탈피, 구어적이고 생생한 언어로 비평을 썼지만, 그의 지위는 어중간한 평론가로 머물며, 독자에게 호응받지 못했다.” 강덕구 평론가가 한예종 웹진에 기고한 “ 잡지의 전성기에 관한 영원한 수다 ”란 글의 한 부분이다.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실패한 평론가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신기한 행보로 비칠 수도 있다. 근데 그 누군가는 어디에 있을까? 아예 안 되진 않는다. 뭔가 되기는 한다. 그게 저주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아닌 뒤늦게, A를 바라면 B나 C를. 확실한 건 직행 티켓은 없다는 것! 우회를 거듭하며 돌고 돌아 영화라는 왕국에 잠시 머물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감질나게 맛만 보고 말이다. 2024년이 시작하고 《씨네21》에서 주는 리뷰만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나이는 차고 ‘젊은’ 시네필-평론가들이 새롭게 씬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나는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끝난 느낌을 받았다. 리부트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뭔가를 도모할 동료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내게 남은 선택지였다. 또다시 등단을 시도해야만 했고, 단편이 아닌 장편을 만들어야만 했다. 도착 지점은 다름 아닌 영화제. 여태 안 불러줬는데 내년이라고 다를까… 이런 허무함이 나를 뒤엎을 무렵, 안 불러주면 ‘내가 직접 간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오기가 작동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도 만들어서 도전해 보고 그러고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그래야 후회가 덜 남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영화제에서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 정도야 나도 안다. 그 천운이 내게 안 떨어지는 걸 어떡하겠나. 뭔 수를 써서라도 그 근처라도 가는 수밖에. 내가 찾은 틈새는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전. 부산영평 출신 평론가들이 부산국제영화제 크리틱b상 심사위원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 우회로. 물론 그해 공모전 주제였던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좋아해서 쓴 것은 맞지만 앞서 설명한 저 욕망이 없었다면 글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2025년. 김칫국을 드럼통째로 마시고 있었는데 연락은 없었다. 갑자기 《씨네21》의 김성훈 기자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이번에 부산 내려가시죠? -안 불러줘서 못 가요. -(다 함께) 하하하 30주년 기념으로 씨네21상이 신설되면서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는 반가운 섭외 전화였다. 왜 뽑혔는지 나름 예상은 했지만, 핵심은 작년에 부산영평에서 등단했다는 것. 글을 안 썼으면 열리지 않았을 문이다. 우회에 우회. 그렇게 부산에 내려가서 12편의 영화를 보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1. <아코디언 도어>: 월경(越境)의 이미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부문의 한국독립영화 12편 중 씨네21상은 손경수 감독의 < 아코디언 도어 >(2025)에게 돌아갔다. 위에서 하이라이트한 부분은 모두 이 영화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우선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스크리너를 친히 내준 손경수 감독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영화제 심사 때 쓴 “CINEMA”라 적힌 노트를 다시 꺼내 봤다. 그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영화를 다시 보며 발견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아코디언 도어>에 왜 끌렸을까를 생각해 봤다. 작가(Writer’s Block) 한예종 전문사에 입학하면서부터 글 쓰는 캐릭터에 나도 모르는 새 빠졌던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 버닝 >(2018)의 종수를 시작으로 이지은 감독의 < 비밀의 언덕 >(2022)의 명은이, 그 누구도 기회를 주지 않을 때 GV 모더레이터 데뷔를 시켜준 천재 김홍기 감독의 < 익스트림 페스티벌 >(2022)의 래오, 홍상수 감독의 <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2025)의 시인 동화 그리고 <아코디언 도어>의 지수까지. 영화평론가가 다양한 활동을 한다지만 기본이 되는 것이 결국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와 비평이 내 삶에서 멀어지려고 할 때, 작가의 형상이 아른거리는 영화를 마주하면 더 눈길이 갔다. 캐릭터들의 고민이 그 시기의 나의 고민과 공명한 것도 한몫한다. 초기엔 뭘 써야 할지(<버닝>),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지(<비밀의 언덕>)를 고민했다. 그러다 최근엔 좀 더 현실적인 고민에 접어들었다. 글을 안 쓰고 있는 나의 게으름(<익스트림 페스티벌>)과 나이는 먹어가는데 평론가로서 자리를 못 잡고 있는 현실(<그 자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초라한 상황과 상반되게 영화제는 너무나 화려했다. 그곳에서 본 <아코디언 도어>의 한 문장이 내 가슴을 후벼팠는지 노트에 많이 적혀있었다. “어차피 평범해질 운명이었다.” <아코디언 도어>에 대한 작품 비평은 이 영화의 개봉을 고대하며 뒤로 미루고 싶다. 대신에 이 영화의 전환점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수직의 움직임을 말하고 싶다. 타임라인 상 가운데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영화는 하늘 높이 풍선을 띄운다. 소제목에도 썼듯이 <아코디언 도어>는 경계를 넘는 이미지로 넘실대는 영화다. 크게는 지구와 우주,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도달하는 이 영화는 그 사이에 낀 ‘재능’이란 녀석을 주목한다. 물에서 뭍으로 사진: " 아코디언 도어 ", 부산국제영화제 /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과학 괴짜 종윤이가 우주 풍선을 쏘아 올린다. 성층권 33km까지 도달한 풍선, 그곳에서 내려다본 지구. 한계에 다다랐을 때 풍선은 터지고 지구로 추락한다. 지구에선 지수( 문우진 )가 강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물에 빠진 건 이때뿐인데 <아코디언 도어>가 그리는 세계는 마치 수면 아래의 세계 같다. 영화 내내 간간이 들리는 파도 소리와 귀가 먹먹한 사운드 효과는 물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영화를 다시 감상하며 지수가 마치 물고기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태 역시 물과 관련됐다. 예를 들면 무언가에 심취(心醉)한, 몰입(沒入)한, 사랑에 빠진(fall in) 등등. 이는 모두 물과 관련된 혹은 연상되는 표현들이다. 그러한 물의 세계와 작별을 고하고 뭍으로 넘어온 지수는 대전환을 맞이한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튜브에서 보고 적어둔 글귀가 있다.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는 것은 인간이 산소통 없이 달에 간 정도의 놀라운 기적.” 물에서 건져진 이후로 지수는 키가 자라고 털이 나기 시작한다. 일종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는 육체적 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능만 믿고 까불었던 지수는 새롭게 다가오는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지수는 빵을 만드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한다. 글 쓰는 것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지수는 무탈하게 지낸다. 그리고 글을 조심스럽게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거리감이었다. 매몰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글의 내용이 내레이션으로 나오고 여러 장면이 몽타주된다. 몇몇 장면에서 감독 본인이 지수의 어른 역으로 등장한다. 그가 출연한 사실 또한 영화를 다시 보며 엔딩크레딧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나오는 그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첫 장편영화를 만들기까지의 부침(浮沈)의 시간이 느껴졌다. <아코디언 도어>는 감독 자신을 영화에 각인시킨 에세이적인 면모를 지닌 흥미로운 픽션이다. 영화제에서 볼 때는 몰랐지만 해가 바뀌고 지수와 엇비슷한 상황에 놓여 영화와 잠시 멀어진 상태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묘했다. <아코디언 도어>는 내게 미래의 한 조각을 미리 보여준 셈이었다. 물 안에서 지수가 봤던 익사한 남자는 최악의 경우 나의 자화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아찔했다. 내시현상(內視現象) - 내 눈에만 보이는 벌레 사진: " 아코디언 도어 ", 부산국제영화제 /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재능이란 기생충을 CG로 선보이는 방식보다 지수의 시점 숏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놀라웠다. 영화제 때는 발견조차 못했던 장면이다. 그 장면은 지수가 잠에서 깰 때 등장한다. 무언가가 내 눈에만 보이는 내시현상, 의학 용어로 비문증(飛蚊症)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기생충이 지수의 신체 내부에 있는 실체인지 아니면 환영인지는 알 수 없다. 둘 중 어느 쪽으로도 환원시키고 싶지 않다. 그 두 개의 영역이 중첩된 숏이라 말하고 싶다. 기생충이 지수의 눈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낼 때의 조건이 흥미롭다. 무매개적인 조건이 아니라 빛과 커튼이 필요하다. 잠에서 깬 지수가 빛을 머금은 커튼을 바라볼 때 기생충의 모습이 잠시 등장한다. 영화의 영사 원리가 떠오르기도 한 장면이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해서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와 달리 기생충은 지수 눈에만 보인다. 기생충이 몸에서 빠져나간 이후에 지수의 시점 숏이 같은 조건에서 다시 등장한다. 더 이상 지수에게 기생충이 떠다니는 불투명한 필터는 없다. 맨눈이 된다는 것의 두려움. 지수는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아물지 않은 어떤 상처가 이제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에도 지수의 시점 숏이 나온다. 이 영화의 엔딩은 여전히 내게 미궁으로 남아있다. 지수의 흐느낌, 멈춰버린 그의 몸, 시끄러운 기계음. 밀폐된 공간 속에서 시청각적으로 구성된 이 감각적인 엔딩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장에 비평의 언어로 재단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몽타주하고 싶은 것은 현재 지수의 멈춘 뒷모습과 그가 다시 쓰기 시작한 글에서 표현했던 미래의 자신의 뒷모습이다. <아코디언 도어>는 두 뒷모습 사이의 간극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2.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수인(囚人)의 이미지 두 뒷모습은 현실과 픽션의 간극처럼도 보인다. 현실은 잠시 멈춰있지만, 미래에는 좀 더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써 내려간 희망의 픽션. 나 역시 현실의 고민을 픽션에 투영해 바라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기사 한 줄 없이 주목도 못 받았지만 그래도 영화제에 흔적은 남긴 지옥의 영화 <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2025)이다. 이것은 희망의 픽션은 아니다. 무언가를 내려놓지를 못하는 나를 산 정상에 올려다 놓고 장대비를 맞게 한다. 절벽 끝으로 몰아붙이는 느낌으로 말이다. 계속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하산할 것인지. 질 들뢰즈가 말하는 ‘사유’가 영화의 끝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내리는 비라는 사건은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것과의 우발적인 마주침” [2] 이다. 원래 엔딩은 “CINEMA”라 적힌 노트를 봉수대에 넣고 태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왠지 뻔해 보였다. 찬물을 끼얹고 싶었다. 그래서 빗소리를 붙여봤다. 썩 마음에 들었다. 기껏 노력해서 무언가를 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는 느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제에 가기 위해 200자 원고지 50매 이상을 썼다. 이번엔 장편 분량의 에세이 영화를 만들었다. 어떤 평론가가 이럴까 싶지만, 방법이 그것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감독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없다. 평론가로서 나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을 뿐이다. 그게 과연 통했을까? 프랑수아 트뤼포의 명언이라고 잘못 알려진 ‘시네필 3법칙’을 등단한 이후에 몸소 실천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 비평을 쓰고, 직접 영화를 만들기.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영화와 좀 더 멀어진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중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부산 무사이극장에서 당연히 만들면서도 알았고, 실제도 다 만들고 나서는 더욱 더 난감했다. 이걸 받아 줄 만한 영화제가 있을까? 어느 영화제에 붙여놔도 안 어울렸지만 그냥 일단 다 출품해 봤다. 그래도 받아 줄 만한 곳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였다. 당연히 떨어졌다. 그것에 낙담한 적은 없다. 떨어질 만한 영화기 때문이다. 서울독립영화제 빼곤 남은 카드가 없었다.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떨어진 것 같았다. 때마침 부산의 김영광 평론가가 운영하는 1인 시네클럽 ‘시네마 언노운’에서 상영작 공모가 시작했고, 인스타그램에서 홍보 게시물을 보자마자 바로 보냈다. 그렇게 다시 부산에 가게 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이 끝나고 바로 다음 주 화요일인 9월 30일에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게 된 것이다. 부산 무사이극장에서 진행된 상영회에서 김영광 평론가는 3시간에 육박하는 GV를 진행했다. 그는 ‘뉴웨이브’가 올 것 같냐고 물었다. 그것은 초청된 모든 감독에게 물어본 공통 질문이었다. 그때는 이걸 왜 물어보나 싶었다.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는 3월 7일에 열리는 ‘뉴웨이브 전초전’이란 대규모 행사를 그때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당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당분간 뉴웨이브는 안 올 것 같다. 지금은 기획자를 원하는 것 같다. 저런 거(<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만들지 말고, 영화를 틀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시네마토그래프의 ‘이윤영’ 씨가 지금 스타다. 비평계에선 ‘김병규’ 평론가가 스타고 그 이후엔 없다. 등단하고 나서야 안 것이지만 이미 학창 시절부터 시네필이고 파워블로거고 그 집단을 끌고 들어왔다는 점, 다시 말해 인터넷 인간들을 우군으로 끌고 왔기에 리더다. 밑도 끝도 없이 온 나의 경우는 지지기반이 아예 없는 거고… 지역 기반이 있거나 혹은 업계 사람들을 많이 알아서 일을 따가고 잘 나가도, 그처럼 아이콘은 될 수가 없다. 래퍼 더 콰이엇의 명언이 이곳에도 적용된다. “스타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시대가 원해서 나타나는 것에 더 가깝다. 근데 스타가 안 나온다는 것은 그걸 안 원한다는 거예요. 이 시대가… 근데 때가 되면 나타날 겁니다.” 비평이라면 그것을 소비하는 블로그, 커뮤니티, SNS 사용자를 끌고 와야 하는 것인데, 다음은 어떤 매체일까? 비평을 담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 블로그가 아니었을까. 혼자서는 버겁다. 잘난 사람들도 뭉치는 판이다. 아이돌 그룹처럼 모여서 팀으로 활동한다. 소리그림, 키니마 등등. 현장에선 얼추 비슷하게 말했던 것 같고 상영 이후에 정리한 말들이다. 평론가의 역할이 좀 더 확대되고 있었다. 나 역시 상영 기획을 해야 하나, 영화를 수입/배급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의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것은 감독이 아니라 프로그래머나 수입/배급업자가 아닐까? 활황인 관객 프로그래머와 시네클럽들. 프로그래밍의 외주화. 영화제와 영화관은 이들과 손을 잡고 ‘멋(hip)’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이를 통해 기획, 상영, 비평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융합형 인재가 양성되고 있었다. 새로운 종의 출현인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잠복기를 거쳐 다시 부상한지도 모르겠다. [3] ) 나는 단종된 이전 모델의 길을 걷고 있는 퇴화하는 평론가의 종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러한 압력은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어떤 영화를 어떻게 쓸 건지보다는 어떻게 상영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생존에 유리해졌다. 글도 잘 못 쓰는데 시장에선 그런 사람들을 더 반기니 말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선 이러한 시류를 반영이라도 하듯 ‘클럽 시네마’란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소리그림과 키니마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참여해 시네토크를 했다. 여태 이 글을 읽었거나 혹은 영화제를 간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는 해당 영화제에 영화로도, 평론가로도 초대받아 일해 본 적이 아쉽게도 없다. 작가로서의 평론가만 지나치게 고수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하게 됐다. 과감하게 집어던지고 건너편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비평은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 된 것은 아닐까?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나는 그 스킬을 익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게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은 영화를 보러온 동지들(김영광, 강원우 평론가, 마산영화구락부의 김준희)과 화명역 근처에서 새벽까지 소주 먹고 대단원의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마지막 남은 한 발이 먹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식 발표 하루 전날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전화가 왔다.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부문에 선정됐다는 전화였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영화로 영화쓰기” 중 섹션 “오진우 단편선”(상영작 중략) 그전에 7월 15일에 “오진우 단편선”이란 제목으로 그간 만든 영상들을 틀 기회가 있었다. 다른 평론가들이 상영 기획으로 저변을 확대하며 예비 프로그래머로 성장할 때, 나는 영상을 만들어왔다. “ 영화로 영화쓰기 ”라는 프로그램 안에서 내 영상들이 가장 이질적이었다. 다른 상영작들과 어울릴 수 없는, 그래서 단독으로 꾸려졌을 것이다. 특색이 있다지만 일종의 갈라파고스. 나도 다른 창작자들과 교류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도마 위의 생선이 되겠다는 것이다. 평론가와 프로그래머는 칼을 들고 도마 위의 영화라는 생선을 바라본다. 일종의 게이트 키퍼로서 영화를 선별한다. 나도 그렇게 남의 영화를 바라보고 싶었는데 스스로 생선이 되었다. 비평의 세계에서 영화 창작의 세계로. <아코디언 도어>의 지수처럼 나 또한 물고기 같았다. 지수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했다. 나는 이것이 진화인지 아니면 퇴화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후자에 마음이 쏠린다. 애초에 내가 평론가로서 잘 풀렸다면 영화까지 만들었을까? 아닐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타입의 영화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계속해서 비평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비평을 놓아버리고 건너편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미련하게…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KMDb에 이렇게 글을 쓰기 전에 웹진 아카이뷰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또한 우회. 그 글 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비디오 에세이와 에세이 영화는 내게 고치지 못한 습관 혹은 만성적인 질환처럼 남게 됐다. 이 증상으로서의 시네마 를 발견해 준 담당 프로그래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 향후 미래에 다시 누군가가 이 분야를 디깅했을 때 재발견되어 한국 영화비평사의 B-Side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까지, 설령 그날이 안 와도 영화로 가는 길을 계속 걷는 수밖에 없다.” “오진우 단편선”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나를 최초로 발견한 은인 황민진 프로그래머님의 제안 덕분에 성사된 일이다. 좀 더 강단 있고 잘나가고 예술적인 평론가였다면 행사의 흥행을 위해서 고사를 했을 텐데, 아쉽게도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보통 일이 들어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네, 가능합니다.” 황민진 프로그래머가 쓴 노트를 살펴보자.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비디오 에세이,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뮤직비디오를 아우르는 오진우 감독/평론가의 작업은 단일한 규정으로는 묶이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저 모든 걸 안 하고 있기도 하다. 정확히는 못한다. 저 장르로 나아가 아예 감독이 돼서 뭘 만들 줄을 모른다. 자본화되지 않는 기술력인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감독을 꿈꾼 것도 아니고, 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제작 워크숍을 경험한 적도 없다. 평론가로서 다급해져서 만든 성과일 뿐이다. 내 영상은 그간 본 것들의 총합이다. 다양한 것들을 가져와서 믹스하는 것이다. 황민진 프로그래머가 분석한 나의 작업의 특성은 유운성 평론가가 정의한 ‘에세이 영화’의 형식과 공명한다. 유운성 평론가는 에세이 영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에세이란 고전적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부정하는 대안적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포괄하고 자신의 특수한 사례들로 만드는 보편적 형식이다.” [4] 에세이에 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실제로 에세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와닿는 정의가 바로 저 문장이다. < 영상자료원 가는 길 >(2022)과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저 정의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오진우 단편선”을 본 몇 안 되는 관객 중 유운성 평론가님이 계셨고 유일무이하게 리뷰를 남겨주셨다. 글의 일부분을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상) <영상자료원 가는 길> / (하)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 “ MUBI ”, 유튜브 “(…) 최근작인 <홍상수: 중력과 은총>(2025)은 비평적 몽상의 발걸음이 홍상수 영화를 일렁이게 하는 은밀한 저류와 짜릿하게 만나면서 그것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다만, 이전 작업들에서 두드러졌던 ‘캐릭터로서의 비평가’는 여기서 훨씬 은근한 형상으로, 수줍은 자취로만 감지된다.” 바로 직전 작업인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에서 ‘캐릭터로서의 비평가’를 전면에 내세워서 반작용이 있었던 걸까? 하긴 이 영화에서도 내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이 영화 또한 직접 보러 와주신 유운성 평론가님은 다음 작품에서는 본인이 직접 출연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나는 숨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라지고 싶었던 것일까. 어디로부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상자료원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도 영화제 맛을 본 작품이다. 여기에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라는 비디오 에세이는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 후 MUBI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됐다. 나름 괄목할 만한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아시다시피 기사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은 부산을 찍고 서울에 입성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내가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서울독립영화제의 자랑인 ‘독립영화 매칭 프로젝트: 넥스트링크’란 프로그램이 있다. 보통의 영화들은 개봉이 목표다. 서독제의 넥스트링크는 배급사와의 미팅을 주선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상영작 중 배급사 미정인 작품이 이 프로그램의 자격 조건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조건을 갖췄으나 (양심적으로) 개봉이나 배급사를 둘 정도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이 영화가 내가 바라는 다음 스텝을 위한 땔감이 되길 희망했다. 마침 그런 장면이 이미 영화 안에 있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것은 감독의 자리. 내가 바라고 원했던 자리는 평론가의 자리인 모더레이터가 앉은 저 자리. 장편 분량의 영화를 만들고 고작 바라는 게 그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장은 그렇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하지만 여기서 일단 마무리가 됐다. 이 영화를 통해서 영화제 측에 나를 처음으로 알렸다. 그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를 말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영화만 틀고 끝날 수도 있다. 개막식 때로 시간을 돌려보자. 개막작 < 무관한 당신들에게 >(2025)를 기획한 문주화 평론가님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일은 저렇게 보는 거다.” 지난 1년간 내가 걸었던 길이 구태(舊態)라고 느껴졌다. 그녀는 최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발탁됐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관객석으로 그리고 엉뚱한 사무실로 점점 영화와 멀어졌다. Outro 이것이 나의 지난 1년 간의 이야기다. 손경수 감독이 쓴 <아코디언 도어>의 연출 의도가 떠오른다. “잘해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계속할 수 있다는 단순한 답은 계절처럼 한 템포 늦게 찾아왔다.” 비록 잘한 적도 없지만 좋아해서 계속할 수 있다는 단순한 답은 아직 내게 도착하지 않았다. 올해는 어떻게 될까? 그 사이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됐다. 영화에 대한 사랑보단 돈… 거짓말이라도 돈 말고 영화를 사랑한다고 외쳤어야 했다. 모든 것이 내가 자초한 일이기에 별다른 변명도 할 수 없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영상자료원 로그인 차단은 해제되었다. 차단 해제 이후 영상자료원에서 처음 본 영화는 오구리 코헤이의 < 진흙강 >(1981)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명작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진흙강>은 인물들 간의 거리감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우동집 아들 노부오는 창문을 통해 강 건너편에 정박한 배 한 척을 본다. 그것은 그에게 신기한 매혹의 세계였고, 잔혹한 진실의 세계였다. 비가 퍼붓는 날 다리 위에서 노부오는 배에 사는 키이치를 만나 친구가 된다. 배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하나는 남매의 방으로,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방으로. 배는 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됐지만,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세계였다. 들어도 못 들은 척 고통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세계 속에서 남매는 살아간다.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식사 장면이다. 키이치와 그의 누이 긴코는 우동집에 초대를 받아 밥 한 끼를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긴코가 즐겁게 노는 동생을 쳐다보는 장면이 있다. 그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잠시 누린 이 행복이 내 것 같지 않은 느낌. 다른 하나는 마지막 장면이다. 진실을 목격한 노부오는 남매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다음 날 배가 떠나기 시작한다. 노부오는 강을 따라 배를 뒤쫓기 시작한다. 그는 연신 친구 키이치를 불러보지만, 배는 무심하게 아무 말 없이 떠난다. <진흙강> 중 / 사진: <진흙강> 중 (“ Doro no kawa ”, IMDb) * 지난 여름과 겨울에 제 영화를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 감독님들, 평론가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영화제 이후 자신의 영화를 내어준 < 관찰자의 일지 >(2025)의 임정환 감독님과 < 겨울날들 >(2025)의 최승우 감독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글을 쓰지 않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볼 수 없었던 길이기에 그저 꿈만 같다. “영원히 꿈을 꾸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 이제 꿈에서 깰 시간. *** [1] 배우 권해효의 멘트를 문장에 맞게 변형해서 사용했다.( 링크 ) [2] 질 들뢰즈, 김상환 옮김, 『차이와 반복』, 민음사, 2004, 313쪽. [3] 한국영상자료원의 “1990s 시네마테크의 필름들”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가 다른 시네필들이 만났다.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읽히는 “영화서클”은 지금 활황인 시네클럽의 부상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전 세대의 시네클럽은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추적하는 고고학적인 방식의 프로그램 같다. [4] 유운성 평론가는 장 뤽 고다르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 인디아 >(1959)에 대해 남긴 짧은 글로부터 ‘에세이’라는 형식을 다음과 같이 도출한다.(유운성, 『유령과 파수꾼들』, 미디어버스, 2018, 310쪽.) [5] <관찰자의 일지>에 나오는 대사다. 영문 자막이 흥미롭다. “… Dreams can’t last forever … is the theme.” 비평, 안녕하십니까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오진우(영화평론가) l 2020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데뷔했다. 이후 2021년 한국독립영화협회, 2024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전에서도 수상한 바 있다. 에세이 영화 <영상자료원 가는 길>(2022),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2025)과 비디오 에세이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2025)를 만들었다.
고(故) 이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보라>는 제조공장에서 현장보건관리를 받는 과정을 차근차근 기록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은 3개월에 한 번씩 보건관리를 받도록 되어 있다. 영화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관점을 따라가기보다는 다이렉트 시네마 스타일의 <병원>(1970), <내셔널 갤러리>(2014), <시티홀>(2020) 등을 만든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처럼 시스템이 굴러가는 과정을 일정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 인터뷰 장면이 서너 차례 등장하지만 제작진이 직접적으로 사건에 참여하거나 등장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상황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스타일적으로도 거의 모든 장면에서 롱쇼트나 풀쇼트를 유지한다. 시스템에 관계하는 인간과 비인간 요소 모두를 고르게 관찰하려는, 휴머니즘적이지 않은 태도는 역설적으로 노동 시스템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삶의 고통을 지근거리에서 감각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 거리는 피부 위의 보라색 멍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 기법적인 클로즈업은 사용되지 않지만 시스템 내부와 고통의 지속시간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비유적 혹은 사후적 클로즈업을 체험하게 된다. 시스템 관찰은 당연하게도 관리 및 운영 체제를 돌아가게 만드는 다양한 역할과 위치의 사람들을 포함한다. 노동자, 안전보건을 담당하는 회사 관리직과 사원, 산업의학 전문의와 연구자, 산업안전보건감독관, 노조활동가, 관련 부서 행정 공무원 등이 그들이다. 영화는 사이사이에 1980년대 초에 석면을 다루는 공장에서 단 2년 일했을 뿐인데도 그 여파로 평생 폐병을 앓고 있는 나이 든 노동자의 인터뷰와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주관한 한국타이어공장 역학조사 보고회를 삽입한다. 짧은 인터뷰에도 숨 쉬기 어려워하는 석면공장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 사망사례와 공장의 유해환경 간에는 연관성이 없다고 발표하는 보고회의 배치는 인과적이고 논리적인 설명 없이도 산업재해를 증명하고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석면처럼 오래전에는 그 유해성이 대중에게 밝혀지지 않거나 난청이나 근골격계 통증처럼 장기간에 걸쳐 유해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병증의 문제가 있다. 노동은 반복과 지속시간 속에 있는 것이기에 산업보건관리는 제조과정뿐 아니라 그의 일상과 일생을 심도 있게 추적관찰 해야 한다. 술과 담배는 강도 높은 긴 시간의 노동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은 그저 몇 개의 문답으로 끝난다. 보건관리 전문의가 작업현장에서 노동 패턴과 유해환경을 관찰하며 애쓰지만 하루 몇 시간 관찰로 문제를 충분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이강현 감독은 공장 전경을 보여줄 때는 롱쇼트로, 안전보건 감독관과 보건관리 전문의들이 노동자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는 풀쇼트나 미디엄 쇼트로 거리를 두고 다큐멘터리를 진행한다. 심지어 철골이 노출되어 있는 공장은 때로 기하학적으로 아름답게 포착되기도 한다. 거기에 고통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노동자들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 기법적인 클로즈업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청각적인 클로즈업이 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즉흥적으로 붐마이크와 휴대용 녹음기를 들이댔던 전형적인 미국 다이렉트 시네마의 장면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산업현장에서 대화를 나눌 때면 붐마이크가 한 프레임 안에 늘 등장하곤 한다. 등장인물들은 무선 마이크를 차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붐마이크를 사용해 상황의 대화를 포착한다. 그로 인해 어떤 상황에서도 갑자기 대화가 진행되어도 매우 선명하게 들린다. 공장의 소음들과 함께. 대부분의 경우 롱쇼트로 멀리서 포착하기 때문에 붐마이크가 보일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이를 애써 치우거나 지우지 않는다. 노동자들과 산업관리 감독관이 나누는 대화, 관리직원과 보건 전문의가 나누는 대화들은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드는 행위자들이지만 또한 그것에 제약받는 이들임을 알게 해준다. 청각적 클로즈업뿐 아니라 친밀성에 있어서도 영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클로즈업을 시도한다. 그것은 바로 경험에 대한 경험이다. 영화 중반 즈음에 노동자들이 보건관리를 위해 검사받는 자신들의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강당에서 함께 감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노동자들은 관객으로서 영화화된 자신의 신체를 경험한다. 여기서 관객은 이미 앞서 해당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프레임 안의 프레임으로서 반복해서 이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장면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관객으로 경험하는 것을 함께 보게 된다. 따라서 이 장면은 경험에 대한 경험이다. 영화 속 스크린에서 난청이 있는 노동자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의사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올 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의사가 묻자 나이든 노동자는 “으응, 소주 두 병 정도 먹지”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에서 당사자를 비롯해 다른 노동자들은 자지러지게 웃는다. 사실 정보 차원에서 이 장면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장면이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도 당사자에게도 반복이다. 관객은 이미 앞서 본 장면이고, 당사자들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이 행한 것을 스크린 상에서 재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어떤 면에서 모든 영화 상영은 곧 ‘재연(re-enactment)’이며, 더 중요하게는 자신들의 신체가 어떻게 영화의 질료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붐마이크의 지속적 등장이 영화 만들기라는 노동을 각인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여러 영화사의 중요한 운동들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신체와 일상을 영화의 질료로 내어준 오데사, 키이우, 하르키우, 모스크바의 시민들을 영화 생산과정에서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오프닝과 엔딩에 관객과 극장상영 과정 자체를 포함시킨 지가 베르토프의 < 카메라를 든 사나이 >(1929)의 실천 그리고 그러한 마르크스주의적 영화운동을 계승했던 제3 영화운동의 순간들 말이다. 특히 제3 영화 운동이 일어났던 1970년대 쿠바에서 훌리오 가르시아 에스피노자(Julio García Espinosa)는 ‘미완의 영화(imperfect cinema)’를 주장한 바 있다. 1960년대 탈식민적인 정치적 영화를 주장했던 남미의 영화감독과 이론가들은 형식적으로 보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제1 영화로, 미학적으로 혁신적이고 계급의식을 갖고 있지만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무감각했던 유럽 영화를 제2 영화로, 탈식민적인 계급의식을 갖고 미학적 혁신을 꿈꾸는 영화를 제3 영화로 규정한다. 제3 영화의 변증법적인 실천 개념 중 하나로 주장된 ‘미완의 영화’는 텍스트 내적으로 완결되지 않는 영화를 뜻한다. 형식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열려있는 영화는 언제나 상영과 그 이후의 토론을 통해 ‘매번’ 완성된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언제나 과정 중에 있다. 각기 다른 관객들은 동일한 영화를 매번 다르게 감상한다. 재연이 기원을 보존하려 하지만 동시에 반복을 통해 그 기원의 완벽한 보존이 불가능함을 제시하며 반복된 수행의 단독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미완의 영화’ 개념에서 영화 상영은 매순간 반복될 때마다 참여자들이 그 상영의 의미를 결정짓고 따라서 반복된 상영은 단독성을 갖고 개별적 사건으로 의미화 된다. 독립영화 혹은 작은 영화라는 개념으로 범주화되었던 한국의 정치적 다큐멘터리는 제3 영화의 선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제작되었던 정치적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해서 구성되었고, 관객 역시 노동자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었다. 대중을 타겟 관객으로 할 때조차도 일차적으로 영화를 시사하고 그 영화의 가치를 의미화하는 이들은 노동자 당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와 신체를 화면에서 보는 것이 익숙했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대부분 자신을 활동가의 위치에 놓았고, 자신들이 스크린에 옮긴 이미지의 주체를 영화생산자-관객의 위치에서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 윤리적 태도라 믿었다. <보라>에서 약 50초 동안 지속되는 이 롱테이크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이제는 노동 현장을 다룬 많은 다큐멘터리들 역시 노동자 공동체에게만 소구되는 것을 넘어 일반 대중으로 관객층을 확장하고자 한다. 다큐멘터리가 화이트박스라 불리는 미술관 같은 극장 외의 다른 플랫폼에서 상영되면서 새로운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다. 한편, 과거에 영상을 함께 공동제작하고 감상했던 노동자들의 공동체 혹은 노동조합은 예전만큼 공고하지 못하다. 그러한 가운데 삽입된 이 장면은 과거 노동 현장을 다룬 한국의 정치적 다큐멘터리들이 주요하게 상영되던 방식을 재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장면은 한국 노동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쓰기이자 관객층 변화에 대한 논평이 된다. 이 장면은 또한 개인적으로 고전 할리우드 영화인 < 설리반의 여행 >(프레스턴 스터지스, 1941)의 유명한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영화에 대한 영화인 <설리반의 여행>에서 유명한 코미디 영화감독인 존 설리반은 자신의 영화경력을 반성하며 가벼운 코미디보다는 현 시대를 보여주는 사실적인 민중의 모습을 그린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는 떠돌이로 위장해 가난을 체험하려 하지만 줄곧 실패한다. 그러다 신분증을 빼앗기고 싸움에 휘말려 법정에서 6년의 중노동을 구형받는다. 그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하층민이 된다. 설리반은 강제 수용소에서 죄수들을 위한 영화 상영회에 참석하고, 수감자들이 고된 노동 후 디즈니 만화 <장난기 많은 플루토>(1934)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깨달음을 얻은 설리반은 우여곡절 끝에 영화감독의 신분으로 돌아가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코미디를 만들며 꿈의 공장인 고전 할리우드 시스템을 재승인한다. 하지만 설리번은 <플루토>가 코미디라는 것 외에 중요한 것을 놓쳤다. 그 영화가 신체극이었다는 사실이다. 슬랩스틱의 과장된 그리고 때로는 폭력적인 신체 사용은 몸을 쓰는 노동자들이 그들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만든다. 그 영화는 누구에게 말 거는가? 이 질문은 노동 영화에서 늘 중요한 쟁점이었다. <보라>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하는 몸’을 검사받는 장면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장면은 <설리반의 여행>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며 즐거워하는 노동자들의 장면과 어떤 면에선 중첩된다.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충분히 즐거워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지루하고 음울할 것으로만 상정하는 것 역시 편견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과 고통을 담은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역시 편견이다. 노동하는 신체의 전시, ‘보라(고통의 색)’의 스펙터클은 그들 자신의 신체의 고통을 감각하게 하면서도 즐겁게 만든다. ‘보라’는 단순히 트라우마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있어 산업재해와 관련해 성찰하고 고민하고 행동해야할 지점이며 반복된 일상이다. 재연(재상영)을 통해 과거 사건의 당사자이자 목격자가 되는 노동자-관객, 그리고 그 목격자들을 바라보는 스크린 밖의 관객은 ‘보라’를 신체적으로 체험하는 동시에 그 이미지에 대해 성찰한다. 동문서답의 대답이 유발하는 웃음은 소음과 먼지, 유해화학물질 그리고 반복된 팔과 어깨의 사용으로 인한 병증과 고통, 즉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을 경유한다. <보라>는 50인 이상 규모의 공장 노동자들로 시작해, 네트워크 서버 관리자, 딸기 농장의 노동자들, 취미 사진촬영이 전문가 수준에 이른 이들까지 오늘날 자본주의 노동의 양태를 기록한다. 영화는 농부와 제조공장 노동자들의 육체노동을 전시하고 가상 디지털 네트워크 역시 노동자들의 밤샘 노동을 통해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디지털 정보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물질 노동이 비물질 노동을 떠받치고 있음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의 형태는 진화론적이거나 단절적인 방식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주류 산업이 서비스, 금융, 디지털 플랫폼 같은 비물질 노동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서 근대적 형태의 공장 노동, 농장 노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디지털 산업에서도 노동자 없이 컴퓨터와 가상시스템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근대적이고 전근대적인 노동의 형태들은 여전히 포스트포디즘 체제하에서도 공존한다. 그래서 전문적인 사진 취미처럼 놀이와 노동이 구분되지 않는 새로운 생산양식까지 치밀하게 최신의 변화를 포착하면서도, 감독은 여전히 지속되는 노동자들의 고통 받는 몸을 스크린에 가장 중요한 스펙터클로 표현한다. 이러한 강조가 과거의 생산양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오늘날 지워지고 비가시화 되고 있지만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주장함으로써 고유한 노동자의 몸을 역사 속에 기입하려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안간힘이다.”
등록되지 못한 죽음,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본 첫 번째 고레에다 히로카즈(1962~)의 영화는 < 아무도 모른다 >(2004) 이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그를 ‘연구’하기로 했다. 그는 보기 드문 ‘자기 현장’의 지식인이다. 나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계기로 처음 일본을 방문했다가 충격을 받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근대를 실현한 국가가 일본이라고 생각했다. 늘 보던 일본 영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석학, 도미야마 이치로는 일본을 일본이라고 쓰지 않는다. ‘일본’이라고 쓴다. 일본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글의 제목에 들어간 ‘포스트 자본주의와 일본’은 H. D. 하루투니언과 마사오 미요시가 엮은 유명한 일본 입문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일본』을 바꾼 것이다. ‘일본’만큼 역설적인 공간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인문학 텍스트로는 최고라는 뜻이다. <아무도 모른다>. 열두 살 소년부터 막내까지, 네 남매는 돌아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큰아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행복하면 안 되니?”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어쩌면 저럴 수가……”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금방 고레에다의 카메라 속으로 빠져든다. 사회 구조나 부모를 비난하기 전에, 아이들만의 삶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모두 아이들의 생존 방식과 관련이 있다. 길거리에서 돈을 줍는 것, 몰래 음식을 얻어먹는 것. 모두 딱히 탈법도 불법도 아니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도 없고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아이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판기의 거스름돈 창구에 손을 넣어본다. 누군가 잊고 간 동전을 기대하면서. 영화를 본 후 나도 그들처럼 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몇 달 만에 딱 한 번, 500원을 횡재한 적이 있다. 아무도 모른다 일본에서 자판기 다음으로 많은 시설이 편의점인 듯하다. 편의점에서 직원이 유통 기간이 임박한 혹은 살짝 지난 먹을거리를 소년에게 주는 장면도 좋다. 일본어에서는 유통 기간을 ‘상미기한(賞味期限)’이라고 한다. 팔기 적당한 상품은 아니지만, 맛을 ‘즐기는데’는 큰 무리는 없다는……. 편의점 직원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쫓아내듯 빨리 가라고 손짓한다. 2017년 여름밤, 나는 교토 대학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맛있는 빵과 케이크를 잔뜩 들고서. 일본은 온 나라(?)가 맛있는 빵집으로 넘쳐나지만, 관광과 전통의 도시 교토는 특히 더 그렇다. 신호등이 바뀌는 동안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나랑 어느 소년 단 둘만이 거리의 행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소년이 <아무로 모른다>의 주인공 배우 야기라 유야와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역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탔지만, 중간고사 때문에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횡단보도의 그 소년은 도시락을 네 개쯤 들고 서 있었다. 흰 러닝셔츠, 마른 몸, 땀에 젖은 머리카락. 그런데 일본에서는 드물게 그가 들고 있던 물건은 비닐봉지 없이 낱개 그대로였다. 소년은 두 손에 도시락을 탑처럼 쌓아 턱으로 받치고 있었다. 나는 편하게 넣어 들고 가라고 종이봉투를 주었다. 그 소년도 <아무도 모른다>의 가장처럼 편의점에서 팔다 남은 음식을 자정 즈음에 얻어가는 길이었을까. 그는 내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여러 번 꾸벅이며 뛰어갔다.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동경에서 발생한 ‘버림받은 네 남매’ 사건을 소재로 삼아 만들어졌다.(영화와 실화의 내용은 다르다고 한다.) 엄마는 각기 다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 큰아이를 제외한 세 아이는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발견되기 이전까지 6개월 동안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낸다. 서류 한 장이 인생을 좌우하는 극도로 관료적인 일본 사회에서 등록되지 않은 어린이의 죽음은 당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비행기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소년이 죽은 여동생을 공항 부근에 묻고 돌아오는 장면에 대해 소설가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누구에게나 이뤄지지 못한 약속의 땅에 사랑하는 사람을 묻는 일이 한 번쯤은 찾아오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묻을 땅을 파느라 더러워진 옷, 아니 얼룩진 옷…….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지만, 얼룩진 마음은 기억에서 잊혀질지언정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씨네21』, 934호) 태풍이 지나가고 가족 영화가 아니라… 고레에다의 영화들 - <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 >, < 세 번째 살인 >, < 태풍이 지나가고 >,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 하나(花よりもなほ) >, < 공기인형 >, < 걸어도 걸어도 >,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 원더풀 라이프 >... 다 좋았다. ‘가족 영화’가 따로 있을 리 없지만, <어느 가족>이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이란 ‘이다’가 아니라 ‘된다’임을 잘 보여준다. 그의 모든 작품이 내게 위로가 된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치열하지만 고요하다. 나만의 감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영화에서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그 그림자가 내 삶의 번잡스러움과 욕심, 고통을 잊게 한다. 삶이란 죽음이라는 영원하고도 편안한 잠(永眠)이 기다리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기대하지 않으면, 삶도 행복하지 않다. 죽음만이 희망이다.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의 우리 말 제목 <어느 가족>은 마음에 안 들 뿐만 아니라 아주 ‘틀린’ 번역이다. 이 영화는 가족 영화 중 하나라기보다는 <아무도 모른다>처럼 일본 사회를 그린다. 좀도둑질과 막노동, 연금으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니, ‘좀도둑 가족’이 맞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의 < 우나기(うなぎ) >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좀도둑 가족>은 칸 외에도 유라시아 국제영화제, 뮌헨 국제영화제, 시드니 영화제, 멜버른 국제 영화제 등에서도 수상 혹은 후보에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다. 아마도 한국 사회라면, 감독은 한국 사회의 그 어떤 추악함을 그렸더라도 청와대에 초대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수상 소식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못마땅해하다가) 뒤늦게 축하 전화를 하려 했으나, 감독은 아베의 축하를 거절했다(아베는 국제대회에서 자국을 빛낸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에게 축하 전화를 자주 해대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아베에게 <좀도둑 가족>은 일본 사회의 그늘에 카메라를 들이댔을 뿐 아니라 천황제를 근간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숭상하는 일본의 주류 정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여겨졌으리라. 고레에다 또한 평소에 아베의 노선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 나는 <좀도둑 가족>을 나의 선생님과 같이 보았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나누었다. 나 - 고레에다 영화는 거의 다 보았는데, 저는 그 가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가족이 없어서 외로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 지긋지긋. 사람도, 가족도 모두요. 선생님 - 어제 나는 일본에서 주변부 삶이 영화 화면에 담겨지는 거. 그것을 행하는 감독이 좋았다. 영화로는 아버지가 되는 법이 훨씬 좋지……. 영화는 가족 영화라기보다는……. 나 – 예... 그렇죠, 일본 주변부... 그 집 미술감독, 끝내주지 않아요? 쇼타(‘큰 아들’)가 두 번 버림받았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라고 기도했어요. 물론, 제 자신에게 대한 다짐이죠. 선생님 - 오키이. 어제 영화 릴리 프랭키가 사는 마지막 집은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만 사는 집이었던 같은데. 쇼타가 그러잖아. 자기가 잡힌 거 일부러 그런 거라고. 쥬리 때문에 잡힌 거잖아. 가족들이 떠나려고 했던 것도, 이해한다는 거지. 자기를 보호하고자 하면 다 잡힌다는 거……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다른 방식의 삶의 지혜와 방식을 배우는 것이지. 그런 면에서 감독이 이 시대를 보는 눈이 깊은 거지. 아시아라는 공간, 시간을 앞선 자본주의 일본은 어떤 사회인가. 나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기보다 한국이 가장 모르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에 관심이 없고, 한국은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내가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일은 거리에 맘껏 나붙은 ‘共産黨’ 포스터였고, 두 번째가 자판기였다. 물론 일본 공산당은 망한 지 오래고, 재일교포와 오키나와 인들과 연대하기를 거부하고 자본가들에게 노동 고용을 부탁하러 다니는 ‘단체’다. '共産黨' 포스터와 자판기 자판기는 몇 미터 간격으로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닥다닥, 거리의 가로수보다 아니 인구보다 많은 것 같았다. 음료, 담배, 라면, 인스턴트 식품은 기본. 여고생이 입던 팬티 냄새가 사라지지 않도록 캔으로 봉인한 섹스 관련 상품을 파는 자판기도 있다. 일본은 ‘한때’ 전자 제품의 나라이기도 했지만 빵, 치즈, 잉어, 옷감, 디자인, 와인, 종이, 두부, 면(麵), 건축, 음악, 다신(多神), 화장품 그리고 세습, 서브 컬처의 나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있다. 일단, 그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무시한다. 백인에 대한 호감은 자발적 식민지급이다. 나는 영어도 일본어도 못 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느끼한 발음’으로 영어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호토 워토(hot water)” 대신에 “할 워러, 프리즈”이런 식으로 말이다. 일본과 미국은 히로시마 원폭과 9․11 전까지, 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자국이 전쟁터가 된 적이 없는 나라다. 덕분에 일본은 천 년 동안 아무런 파괴 없이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일본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들은 ‘셀프 오리엔탈리즘’으로 서양의 일본관을 상품화했다. 서양인들이 일본 문화에 느끼는 신비로움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한때 스시는 미국의 지식인 문화를 상징했다. 전통적인 국제정치학 교과서에는 ‘일본 편’이 따로 있(었)다. 외교 의전에서 일본은 공부가 필요한 사회다. 특별한 이해와 주의를 요한다. 예를 들어 대개의 언어, 특히 우리말에서 ‘고려해보겠습니다’는 대개 긍정적인 의미지만, 일본어에서 ‘절대 불가, 앱솔루트리 노’를 의미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본만의 문화가 있다는 얘기다. 파악되지 않는 타자?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을 썼다. 일본 사회는 기호(sign)만 있을 뿐 실제 말의 의미(이른바, ‘혼내’)를 알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다. 통념과 달리 일본은 류큐 왕조를 비롯한 수많은 다민족(nation), 다민족(ethnic) 국가, 다인종, ‘혼혈인’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근대 이후 강제 통합의 과정은 곧 내전을 의미했다. 홋카이도의 면적만 남한의 3분의 2를 넘는다. 고베나 오사카만 가도, 근대 초기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를 꿈꾸었고, 실현했다. 유럽 문화에 정통한 인문학자가 수두룩하다. 탈아입구를 실현한 정도가 아니라 일찍이 메이지 유신을 시작으로 해서 국민국가 체제를 완성, 세계 제패를 기획하고 미국, 중국과 전쟁을 치렀다. 작은 나라(‘倭’)가 아니다. 노벨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1950년대에 ‘성취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일본 문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루투니언 같은 일군의 자본주의와 근대성 연구자들이 일본에 주목하는 것은, 일본이 공간적으로는 서구가 아니지만, 자본주의의 발전 속도(시간)는 서구를 앞지른 지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이면서 아시아에 있다. 서구를 쫓으면서, 동시에 서구를 초과했다. 이 ‘모순’은 현재 일본 사회의 고통이기도 하고, 인류가 다음 세계를 사유하는 ‘자원’이 될지 모른다. 일본 자국의 문학, 인문학, 역사학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이들은 남을 침략하기 위해 자신을 연구했고 이미 ‘정상(頂上)국가’나 ‘정상(正常)국가’를 경험했다. 그래서 한국의 지식인처럼 식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나라 만들기에 열중하기보다는 당장, 자국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모든 담론이 “ ~ 게 되어야 한다(should be)”다. 현재는 지나가고 있는데, 오지 않을 미래를 설계한다. 자본주의와 발전주의, 민주주의가 같은 말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대신한 스마트폰 사용이 그것이다). 일본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자본주의’, 금융 유통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사회의 징조들이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출산, 자살, 우울증, 초고령화, 빈집 증가, 고실업, 프리터의 등장…… 힘든 일 기피 현상이 의대 진학 저조로 나타나서 일주일에 평균 1명의 임산부가 산부인과를 찾지 못해 사망한다. 최근에는 인생 자체를 리셋(reset)하는 자발적 실종인 ‘인간 증발’까지, 다른 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회 현상이 있다. 일본의 계급 세습과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주의, 학벌 사회는 의외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북한은 정권 세습이지만, 일본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자민당 일당 독재는 전후 계속되고 있고 ‘가업’이란 이름의 계급 제도가 철저하다.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개그맨들이 어느 학교 출신인가가 병기된다. 오타쿠, 이지메, 히키코모리, 희망 난민(희망이 있지만 이룰 수 없어 고민하는 젊은이들), 하류지향(‘루저’를 적극적으로 선택한 학생들), 소비 주체로서의 자부심,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경멸, 수학(數學)과 수학(修學)을 구분하지 못하는 도쿄 대학 학생들, 부자 나라 일본의 극빈층 노인들, 고독사 연 2만 명, 젊은이들의 탈력(脫力, 온 힘을 빼고 아무것도 안 함), 혐한(嫌韓), 혐중(嫌中)……. 일본의 현재를 살펴보는 것은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고레에다가 소중한 혹은 윤리적인 예술가인 이유가 여기 있다. 자기 사회를 직면하고 고민을 담되, 그 상황이나 인물을 대상화하지 않고 껴안는다. 이것이 그의 영화가 지닌 소구력이며, 관객은 그가 재현하는 특정한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가 <좀도둑 가족>에서 가난한 일본인을 그렸다고 해서, 일본을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거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가 아무리 다양해도 전 세계 관객들은 미국 영화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비교가 된다. 사족 - <좀도둑 가족>에서 두 명의 배우가 생각난다. 역시, 배우는 작품으로만 만난다. 안도 사쿠라를 ‘취조’하는 이케와키 치즈루는 더 이상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의 그 소녀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 눈썰미가 맞다면, 성 구매를 하는 남자 손님으로 잠깐 나왔던 배우는 < 종이 달 >의 ‘못된 녀석’ 이케마츠 소스케다. (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의 이케와키 치즈루 (좌) 종이달, (우)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의 이케마츠 소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