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가
- 감독
- 안슐 차우한
- 제작년도
- 2025
- 출연
- 카와구치 타카시, 노나미 마호, 엔도 유야, 쿠도 코세이, 나리타 와타루
< 올드보이 >(2003)의 오프닝 시퀀스는 거두절미(去頭截尾)의 박력을 품은 하나의 이미지로 열린다. 수직의 구도로 촬영한 검은 실루엣의 물체가 위압적으로 프레임을 짓누른다. 흡사 그것은 권총을 쥐고 있는 사람의 손을 앙각으로 촬영한 쇼트로 보인다. 검은 실루엣의 손이 천천히 좌우로 움직일 때 폭발 직전까지 고조되는 사운드의 비트를 따라 카메라가 틸트 업 하면 어둠에 감싸인 얼굴이 드러난다. 이 돌연한 이미지의 형상들은 군불을 떼듯 서서히 긴장을 상승시키는 관습적인 영화 오프닝 기능을 무시한다. 정면의 클로즈업에서 왼쪽으로 카메라의 각도를 변경한 미디엄 부감 쇼트로 전환되면 이전에 보았던 이미지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은 강아지를 안은 성명불상 남자(오광록)의 넥타이를 주인공 오대수(최민식)가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다. 식은땀을 번들거리면서 강아지를 안은 남자가 대수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서 시간은 15년 전으로 빠르게 되감긴다. 15년 전 경찰서의 대수가 현재의 남자가 던진 질문에 대답한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첫 번째 쇼트는 남자가 건물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순간 그의 목과 실루엣의 형상으로 보였던 대수의 단단한 그립의 조합이었음이 밝혀진다. 대수는 이 사내를 건물 바깥으로 밀어 떨어뜨리려 하면서 그를 위협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올드보이>에서 처음 보이는 것은 진실을 잔인하게 배반한다. 영화의 테마를 압축한 이 이미지로 20분 후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강아지를 안은 남자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하고 있고, 대수는 그런 남자의 자살을 저지하려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오인의 몽타주는 처음 생긴 인식과 그것이 잘못된 인식으로 입증되는 장면들이 영화의 곳곳에 매설되어 있음을 알리는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오프닝의 시간과 20분 뒤 다시 그 시간으로의 복귀는 남자에 대한 위협을 구제로 전환한다. 넥타이가 총으로 변하고, 응징이 구원의 제스쳐로 화(化)하는 이 의미의 대전환은 <올드보이>를 주재하는 처음 본 것의 의미가 바뀌고, 주체와 객체가 뒤집히는 플롯의 효과를 모방한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은 이와 같은 뒤집힌 이미지들의 도발에 계속 직면한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연결을 도모하는 시청각 언어의 관습을 의도적으로 묵살하는 구조적, 스타일적 경향은 박찬욱 의 후속작인 < 친절한 금자씨 >(2005), < 박쥐 >(2009), < 아가씨 >(2016)에서도 일관되게 관찰된다. <올드보이>는 영화의 문법, 내러티브 구조, 명시적이고 강력한 장면화 등 거의 모든 방식에서 이러한 스타일이 자라나는 출발점이다. 총이 넥타이로 변하는 둔갑술은 지난 20여 년 동안 박찬욱의 작가적 명성을 만든 문체적이고 형식적인 요소를 대표한다. 이 장면과 연관하여 추락을 저지하려는 제스쳐는 중요한 순간마다 되풀이된다. 그것은 대수를 거대한 복수의 고리에 갇히게 한 태초의 죄와 연관된다. 과거의 행동에 대한 탐사와 복수에 대한 갈증 사이에서 동요하는 대수의 깊은 망각을 깨고 솟아오른 이미지는 이 모든 사태를 조종한 이우진(유지태)의 누이인 수아(윤진서)의 투신자살이다. 서사의 클라이맥스에서 우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을 뻗고, 시간이 전환하여 수아가 어린 우진의 손에 매달려 흔들리다가 검은 강물 아래로 추락한다. 누이의 추락을 막으려는 우진의 애절한 제스쳐가 오프닝 시퀀스에서 강아지를 든 남자의 추락을 저지하려는 대수의 액션으로 순환하는 것이다. 제스쳐의 순환은 복수(復讎)의 순환, 돌고 도는 원한의 고리를 암시한다. 이러한 영화의 주제는 비선형 퍼즐 플롯으로 최고조에 달했으며, 종종 여러 층위의 신들을 평행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극적 도약을 달성하고 있다. 미도(강혜정)와 대수가 15년 간 먹은 만두의 맛을 단서로 하여 중국음식점들을 순례하는 여정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시청각 몽타주는 시간과 공간, 행위의 계열을 가공할만한 리듬으로 건너뛰면서 신속하게 연결한다. 수직과 수평으로 틸팅과 패닝하는 카메라의 운동은 방향과 흐름, 속도를 일치시키면서 순식간에 미도와 대수의 수첩에 적힌 중국음식점들의 리스트를 지워간다. 대가의 손길을 느끼게 하는 이 몽타주 신의 종지부는 노트에 빨간 줄을 긋는 미도와 대수의 액션 매치 커트이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놓인 두 인물의 행위를 일치시킴으로서 탐사의 여정은 마무리된다. 박찬욱의 복수 스릴러는 서사적으로 복잡하고, 스타일적으로 화려하다. 그의 주인공들은 종종 난해해지기도 했지만 몽타주에 기반한 양식은 세련미를 더해갔다. 그는 추상 회화와 비(比) 서사적 이미지, 장식적이고 구조적인 디자인, 타이틀과 자막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청각 표현의 요소를 극대화한다. 쇼트의 구성과 편집의 차원에서 <올드보이>는 내러티브 사건들에 대한 불가능한 뷰를 제공하고 카메라가 그 자신의 삶을 갖도록 허용한다. 넥타이-총의 변환과 더불어 이미지의 계열이 연속적인 시퀀들 안에 배치됨으로써 형태와 의미의 몽타주를 강화하는 사례는 미스터리를 품은 박스이다. 비가 추적대는 밤거리에서 납치되었을 때 대수는 공중전화 박스 안에 있었고, 15년 후 아파트 옥상에서 최면 상태로 풀려날 때 붉은색 박스를 박차고 나온다. 미도와의 관계를 확증하는 증거들은 봉인된 보라색 박스 안에 들어 있다. 이처럼 영화 속의 시각 요소들은 스토리에 접근하여 가장 인상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계열을 이룬다. 쇼트의 접속과 이행에 있어서도 정해진 룰을 따르지 않는다. 오대수가 이우진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이우진이 설명하는 펜트하우스 신은 전통적인 시간의 편집을 몽타주로 대체하고 있다. 감금방의 여러 국면을 포함한 긴 플래시백 시퀀스도 이러한 특성이 강조된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현란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이 시퀀스는 다양한 속도와 크기, 지속시간을 오가는 장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규모의 점프 커트, 오래 돌아다니는 카메라 움직임, 패스트 모션, 분할 스크린 등 선형적인 방식으로 쇼트를 배열하는 규범을 위반하면서 인물의 행동이 프레임 내에서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지각될 수 있는 방식을 쓴다. 이러한 시, 공간의 조직방식은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채면서도 분명하고 확실한 단서를 통해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숱하게 많은 장면들에 녹아 있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왕빙은 < 사령혼 >(2018)을 오랜 시간동안 비밀리에 촬영하였고 그런 다음 기습적으로 공개하였다. 여기에 이유가 있다. 이제는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1957년에 시작된 대약진 기간 동안 우파분자로 지목되어 간쑤성 고비사막에 있는 자볜거우(夾邊溝)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사상교정을 이유로 부역하고 돌아온 다음 침묵을 강요당한 ‘인민’들을 인터뷰한 영화이다. 중국 공산당은 등 샤오핑 이후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당의 오류임을 인정했지만 그러나 사실상 파국으로 끝난 대약진 시기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아직도 대약진 기간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것은 사회주의 중국 인민 공화국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중국에서 공산당이 허락하지 않는 행위를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홍콩에서 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인민’들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비공식 기록에 따르면 저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에서만 3년 동안 3만 5천명이었던 수용소 우파분자들 중에서 돌아온 사람은 6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강제노동수용소가 중국 전역에 있었다. 대약진 운동 중에 굶어 죽거나, 맞아 죽거나. 실종되거나, 하여튼 죽은 사람의 숫자는 4,7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나는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왕빙은 다른 영화를 찍으면서 내내 이들을 만나러 다녔다. 왕빙에 따르면 촬영분량은 600시간에 이르고 만난 사람은 120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령혼>은 그 중에서 15명에 관한 인터뷰를 담고 있다. 상영시간은 8시간 16분이다. 그런데 왕빙은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령혼>은 저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돌아온 사람들에 관한 삼부작 중에서 첫 번째 영화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 영화를 기다렸다. 그래서 < 미(美)는 자유에 있다 >(2018)가 당연히 <사령혼> 연작의 두 번째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이 영화는 왕빙이 미국에 가서 라스베가스 근처에 살고 있는 중국인 화가 가오얼타이(高爾泰)을 만나 인터뷰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왕빙은 예술가들을 인터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음악가도, 대중예술가도, 어떤 영화감독도 만나지 않았다. 왕빙은 노동자들, 농부들, 어란 아이들, 정신병자들, 버림받은 이들, 그저 ‘인민’들만을 만났다. 그런데 갑자기 화가를 만났다. 두 번째 이유는 왕빙은 중국 바깥에 머무는 중국인들을 만난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외국인도 만나지 않았다. 아니, 그 자신이 외국에 누군가를 찍기 위해 나간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거기서 찍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오얼타이를 만나기 위해서 미국 라스베가스에 갔다. 내가 왜 왕빙이 그를 찍기 위해서 미국에 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를 본 다음이다. 먼저 가오얼타이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가오얼타이는 화가이지만 그는 미학을 연구한 학자이며 철학을 강의한 선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이두(百度, www.baidu.com)의 소개에 따르면 산문수필가이며, 서예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왕빙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가오얼타이는 1935년 장쑤성(江蘇省) 가오춘현(高淳縣)에서 태어나 수쪼우(蘇洲)사범대학에서 공부했다. 1957년 7월 잡지 ‘새로운 건설(新建設)에 ’미를 논하다(論美)‘를 발표하였다. 이 글이 문제가 되었다. 가오얼타이는 지금도 변증법에 기반을 둔 이 미학에 관한 논문이 왜 문제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오얼타이는 여기에 대해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는 반혁명분자로 분류되었고, 사상재교육을 위해 자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가오얼타이가 간신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1959년 우여곡절 끝에 간쑤성 박물관으로 재배치되었고, 거기서 둔황(敦煌) 문화유적 복원사업에 복무하였다. 1962년 봄, 자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가 폐쇄되면서 가오얼타이는 고향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복권된 것은 아니다.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되자 가오얼타이는 다시 우파분자로 고발조치 되었다. 그는 하방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첫 번째 아내가 죽었다. 가오얼타이가 학교로 돌아온 것은 1977년 문화혁명이 끝난 다음이다. 그 이듬해 란쩌우(蘭州)시범대학에 교편을 잡았고 거기서 <미는 자유의 상징이다(美是自由的象徵)>을 썼다. 이 책은 지식인들에게 널리 읽히는 미학에 관한 저술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와 관련하여 가오얼타이는 136일 동안 감호소에 구금되었다. 가오얼타이는 1992년 그의 두 번째 아내와 함께 홍콩을 거쳐서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은 중국에 남았고 미국에서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 소개를 읽고 나면 왕빙이 왜 가오얼타이를 만나기 위해 미국까지 가야만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왕빙은 가오얼타이가 화가이거나 유명한 미학 학자여서가 아니다. 그는 우리가 <사령혼>에 이어서 만나는 16번째 자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다. 아니, 17번째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왕빙의 두 번째 영화 <펑밍; 중국여인의 연대기>에서 만난 허펑밍(和鳳鳴) 할머니도 (그 영화를 볼 때는 미처 셈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게 된 것인데) 자볜거우에서의 경험을 안고 살아 돌아온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미(美)는 자유에 있다>는 상영시간이 5시간 25분이지만 단 한 번도 가오얼타이의 그림에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인터뷰가 내내 그의 작업실 바로 옆방에서 진행되는데도 그러하다. 그리고 왕빙은 단 한 번도 가오얼타이의 창작의 과정, 그의 예술작업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쉬지 않고 오직 자볜거우에서의 경험에 대해서만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그렇다면 왜 가오얼타이를 <사령혼>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 단지 그 분량이 길기 때문에? 내 생각에 그건 (마오쩌둥의 분류에 따르면) 가오얼타이는 지식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사령혼>에서 단 한 명도 지식분자들을 만나지 못했다. 가오얼타이는 <미적 각성>과 <미적 저항>이란 두 권의 저서가 지금도 중국 내에서 예술가들과 아카데미에서 읽히는 존경받는 저자이다. 왕빙은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그의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경청(敬聽)의 미학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방법으로 듣고 또 듣는다. 왕빙은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영화에 그가 질문하는 순간을 남겨놓지 않았다. 일단 가오얼타이가 대답을 시작하면 그 대답의 시간 안으로 왕빙은 개입하지 않는다. 그는 카메라를 믿고 오로지 대답하는 가오얼타이를 담는 일에 집중한다. 거기에는 음악도 없고, 별다른 카메라의 위치 변화도 없고, 그렇다고 구도를 바꾸지도 않는다. 다만 두 대의 카메라를 사용해서 이따금 이 카메라로부터 저 카메라에로 옮겨갈 따름이다. 이때 이 인터뷰를 담는 것은 왜 그토록 긴급하고 중요한가. 첫째, 대약진 시대에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어떤 이미지도 없다. 게다가 중앙정부의 자료들은 대부분 아직도 접근이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또한 (역사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그 신뢰도가 매우 낮은 상태의 보고서들이다. 심지어 지방 성(省)과 현(縣)의 자료들은 그것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훈련받은 공무원들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체계적이지 않았고 일부 수치들은 중앙정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일부 수치를 멋대로 수정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거기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증언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둘째, 그런데 그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를 낸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왕빙은 서둘렀지만 가끔 인터뷰가 끝난 다음 몇 달 뒤에 장례식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사령혼>에 그런 순간들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왕빙의 영화들을 단지 역사적 증언의 가치 때문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인가. 만일 그게 전부라면 이 영화들의 가치에 대해서는 우리보다는 역사학자들의 손에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바로 여기가 우리들의 출발점이다. 우리들은 왕빙의 작업 과정에서 영화가 증언을 듣는 순간, 증인과 만나는 자리. 증언을 들으면서 증인의 증인이 되는 영화의 자리를 다시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영화는 자기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을 시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왕빙의 영화를 보면서 배움을 구하는 것이다. 고다르는 1944년 아우슈비츠에 영화가 없었기 때문에 영화가 죽었다, 라고 말했다. 정확하게 같은 의미에서 왕빙은 영화가 1957년 자볜거우에 없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영화의 책임을 물어보는 중이다. 접근 불가능했던 것들에게 영화가 다가가서 그들에게 증언을 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단지 기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둠 속에 있던 역사의 심연에서 영화가 하나의 섬광 같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때 영화는 자기의 존재를 역사 속에서 증명해낼 것이다. 그렇게 영화의 죽음을 한 번 더 선언하지 않기 위해서 왕빙은 생존자들의 말을 영화에 담기 위해 그들 곁에 있는 것이다. 영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네,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올해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한 <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August at Akiko’s >(크리스토퍼 마코토 요기, 2018)는 연초에 봤음에도 연말이 된 지금까지 나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는 영화다. 하와이 배경의 음악 영화인데, 하와이 출신의 음악 애호가이자 하와이 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인 앤더슨 리가 일찍이 작품을 보고 귀띔해줬던 덕에 미리 로테르담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보기로 자청하고 갔었다. 긴 설명 없이 “작은데 잘 만들었어. 데뷔 장편 영화고. 한 번 봐봐”라던 앤더슨의 말에 믿음이 갔다. 또 그 친구가 추천한 만큼, 화이트워싱 논란을 일으켰던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알로하Aloha>(2015) 같은 영화들과는 달리 하와이의 모습을 좀 더 현실성 있게 그리기도 하겠지 싶었다. 실제로 가보면 관광객을 포함한다 쳐도 하와이에는 백인이 소수라는 느낌이 확연히 들 정도로 아시아 태평양계의 인종이 많다. 토속 하와이인들뿐만 아니라 수 세대 전서부터 하와이에 이민 가서 정착한 아시아계 가족들, 앤더슨네와 같이 좀 더 최근에 들어간 가족들 등등 다양하다는 걸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크리스토퍼 마코토 요기 감독도 일본계 하와이 출신이다. 증조부모가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에서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갔다가 끔찍한 노동 조건과 부당한 계약에 혹사를 당했다고도 한다.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는 도시 소년으로 잘살았지만, 그 전 가족 중에 하와이섬을 야반도주한 증조할머니뿐만 아니라 자살한 여러 명과 마약 중독과 학대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은 가족 사이의 소곤거림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아시아계 가족인 만큼 이런 트라우마의 역사는 드러내놓고 회자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고 한다. 감독은 전 세대들이 고생하고 고통스러워했던 덕에 잘 살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얼굴 없는 조상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영화 예술 MFA를 받고 본토에서 생활하게 된 그는 이런 조상들과 끊긴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1년 넘게 하와이섬에 살면서 영화 준비를 했다고 한다. 올해 유난히 한국 영화 관객과의 대화가 많았던 것 같은 로테르담에서 나는 숨이 턱에 걸려 뛰어다니다가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는 상영 당일이 돼서야 관객과 함께 처음 보게 됐다. 관람 전 심기를 잠시 말하자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속된 말로 빡친 상태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부 상피까지, 여러 가지 일을 둘러싼 고질적인 문제들부터 시작해서 그날 영화제 센터에서 꽤 떨어진 극장을 찾아가는데 나타나지도 않아놓고 차비를 청구한 우버 예약 차량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일로 빡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관람을 시작한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는 이런 내 안의 모든 불협화음을 더욱더 심하게 진동시키다가 궁극적으로는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좀 상투적인 표현을 쓰자면 <어거스트 앤 아키코즈>는 ‘힐링 영화’다. 음악가 '더티 비치스Dirty Beaches'로도 알려진 알렉스 장 후앙타이가 주연이다. 대만 태생으로 하와이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영화 속에서도 ‘알렉스’라는 이름의 30대 중반 음악가 역이다. 인생의 뭔가 안 좋은 전환점이나 방황기를 맞은 것 같은 모습으로 오랜만에 하와이에 도착해서 할머니 집을 찾아가지만, 당황스럽게 집은 사라졌고 모르는 사람의 새집이 공사 중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전화를 걸어본 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수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걸 그때까지 몰랐다는 것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질 않아.” 가족 관계의 근절이 나타나는 순간이다. 사라진 어린 시절 하와이의 모습과의 근절도 느끼는 알렉스는 더욱 방황하는데, 결국 흘러 들어간 곳은 ‘아키코즈 부디스트 베드 앤 브렉퍼스트 (Akiko’s Buddhist Bed and Breakfast)’이다. ‘아키코’라는 일본계 미국인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 시설로 새벽에는 명상도 하고 낮에는 요가도 하는 곳이다. 푸르른 자연 속에 옛 일본계 농장 가옥들을 개조한 B&B는 고양이들이 느긋하게 돌아다니고 개구리들이 밖에서 합창으로 울어대는 곳이기도 하다. 아키코는 항상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열대 꽃을 한쪽에 꽂은 채, 주로 민소매 차림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70대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다소곳한 일본 할머니는 절대 아니다. 거의 락커 할머니 느낌이다. 인생을 좀 사신 분이다. 긴말을 묻지 않고도 알렉스가 방황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나름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가이드 해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호놀룰루 태생의 일본 이주민 3세 아키코 마수다가 영화 속 아키코 역을 맡았다. 배경이 되는 B&B도 실제 그녀의 것이다. 현실과도 매우 비슷한 두 인물의 설정 때문에도 그렇지만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 두 사람과 많이 협업하고 즉흥 연기도 많이 장려했다고 한다. 알렉스는 자기 안의 갈등과 상실감, 죄책감 등으로 힘들어할 때 색소폰으로 울부짖는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아키코와 함께 앉아 명상을 하다가 그녀가 해주는 기도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동네 꼬맹이와 놀아 주기도 하고, 공동체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면서 자아 밖으로 시선과 성찰을 돌리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불협화음과 소음이다. 왠지 일본식 불교 명상과 기도를 할 때면 완벽한 정적이 강구되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아키코는 인생의 시끄러움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예를 들어 거의 정글 같은 수풀 속의 가족 묘지를 정돈하러 가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사람들과 둘러서서 기도할 때,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철학으로 알렉스도 불협화음과 갈등 속에서 맑은 색소폰 소리와 마음의 평화를 찾아 나가기도 한다. 영화의 제작비는 $100,000 (원화로 1억1천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 미국 영화치고 초저예산인데, 갖가지 현물 지원과 심지어 밥을 해서 갖다 주는 지역 주민들의 도움까지 있었다고 한다. 예산이 작았음에도 아름다운 전경들과 빛과 소음까지 하와이의 모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감독과 스태프는 현지 로케이션의 모든 것을 활용한 것 같다. 소위 말하는 “프로덕션 밸류”는 뒤지지 않는 영화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로스앤젤레스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타내기도 했다. (이 작품의 조은수 촬영 감독은 < 해어화 >(박흥식, 2015) 등을 찍기도 한 한국인이다.) 브루클린에 근거지를 둔 ‘팩토리 25’라는 독립 영화 및 음반 제작〮배급사가 내년 3월부터 미국에서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를 개봉시킬 예정이다. 그렇지만 영화의 제작자들은 아직 해외 배급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새라 킴’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 김사화는 “우린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한정적으로라도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이 영화와 그 속에 담긴 힐링의 메시지들을 최대한 나누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전한다. -에필로그- 워낙 연초에 본 영화라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다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2018년 11월 도쿄 필멕스 심사위원으로 와서 쟁쟁한 경쟁작 10편을 진하게 보는 와중에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를 다시 보게 됐다. 이날 숙소로 들어오기 전에 본 것은 230분짜리 <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An elephant sitting still >(후 보, 2018)라는 작품이었다. 멀리 만저우리에 있다는 코끼리를 꿈꾸는 네 명의 주인공이 중국의 소도시에서 하루 동안 겪는 일련의 우울하고 화나고 끔찍한 사건․사고들을 따라가는 수작이다. 중국의 현재 자화상을 그렸다며 베를린 국제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당시부터 찬사를 받은 영화다. 소설가 후 보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을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서로 ‘하지만 어디 가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다른 곳으로 떠난다 해도 인생은 다 이래’ 식의 담담한 대사를 읊기도 하는 영화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이 영화를 완성할 즈음, 후 보 감독이 자살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엔드 크레딧 올라갈 때, 그의 웃는 모습이 담긴 추모 사진이 나오는 순간, 우린 방금 어느 한 사람의 성명서를 본 것인가, 삶의 무게와 아픔을 못 이기겠다는 자살 편지를 본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근 4시간 동안 그의 영화와 함께 호흡한 끝에 압도적인 충격과 슬픔이 몰려왔다. 히비야의 밤거리를 헤매다시피 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와이파이가 자꾸 끊기는 일본 부띠끄 호텔 쪼끄만 방구석에서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 재관람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고맙기까지 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갈등과 부조화는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의 것과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우리에 갇혀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감이나 혼란스러움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이 두 영화에는 사뭇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에 나오는 코끼리의 거친 울부짖음은 <어거스트 앳 아키코즈>에 나오는 알렉스의 색소폰 울부짖음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알렉스의 색소폰 소리는 거친 울부짖음 끝에 차차 맑은 조화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영화를 재관람하면서 다시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안타까웠다. 평소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후 보 감독도 영화를 만들고 나서 아키코즈 부디스트 베드 앤 브렉퍼스트 같은 델 경험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와이의 햇볕과 터프한 할머니의 온기, 다른 곳에 가면 가끔은 기적 같은 만남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더라면 말이다. 중국 영화인들이 대면하고 있는 억압인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 안이한 상상일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말이다. 애달픈 젊은 예술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하와이의 푸르른 숲과 그 속에 있는 민박집에 마주 앉아 눈 감고 명상을 하며, 기도를 하듯 노래도 하고, 색소폰도 불고, 눈물도 흘리는 두 사람 알렉스와 아키코를 생각하며 동경에서의 새벽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