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걸 조로
- 감독
- 로우벤 마물리안
- 제작년도
- 1940
- 출연
- 타이론 파워, 린다 다넬, 바실 라스본
<묵시록의 4기수> 중 (사진: “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루돌프 발렌티노(Rudolf Valentino, 1895~1926)가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 첫 번째 스타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도 아니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자리에 더글러스 페어뱅크스나 메리 픽포드, 펄 화이트, 테다 바라, 월러스 레이드, 윌리엄 S. 하트, 기쉬 자매, 존 길버트, 클라라 보우, 하여튼 먼저 호명해야 할 정말 많은 이름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일정 기간 사랑에 빠지곤 했다) 물론 세계 영화사의 순간(들)을 뒤져나가면서 계속해서 이 자리에 스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위대한 영화 작가들, 시네아스트들, 제작자들, 끝없는 테크놀로지의 발명만큼 이 순간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루돌프 발렌티노가 단지 호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설명이 필요한 이름이 되었는가. 스크린에 루돌프 발렌티노가 등장해서 탱고를 추는 순간 영화를 보던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현상을 이미 설명한 사람이 있다. 『적과 흑』(1830), 『파르므의 승원』(1839)을 쓴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은 1871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해서 미술품들을 감상하다가 감정적 충만함과 희열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스리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고 한다. 스탕달만 이걸 경험한 것이 아니라,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한 수많은 관광객이 미술품을 본 다음 심장의 두근거림, 정신의 혼미한 상태, 어지러움, 우울증, 현기증, 위경련, 심지어 전신마비를 경험하였다. 그래서 이 증세를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두 현상이 정확하게 같은 정신적 반응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스크린 앞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스타라는 자리는 단지 인기가 많은 배우, 만으로는 갈 수 없는 별자리이다. 그 자리에 가려면 배우와 관객 사이에서 마법이 발생해야 한다. 내 말이 아니라 스타, 라는 현상을 처음 주목한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의 지적이다. 이 말에 영감을 얻어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몇 편의 스타에 관한 글을 썼다. 그러면서 스타를 ‘현대의 신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콤플렉스. 하나의 트라우마, 하나의 현상, 하나의 담론,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단어는 ‘마법’이다. 대중과의 관계를 놓고 장황한 사회학 이론과 정신분석의 개념들로 이 단어 주변을 장식할 수 있지만, 사후약방문처럼 정리되면서 무언가 결정적인 핵심은 매번 놓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단 한 마디로 영화사의 신비로운 순간들. 나는 그걸 AI가 대신할 수 없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루돌프 발렌티노 (사진: “ Forgotten Hollywood: Rudolph Valentino – ‘The Great Lover’ ”, Golden Globe Awards) 1895년 5월 6일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카스텔라네타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네 명의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루돌프 발렌티노에게 아들만큼 이름이 긴 아버지는 루돌프 피에트로 필리베르토 라파엘로 주그렐미 디 발렌티나 단톤게라(Rudolf Pietro Filiberto Raffaello Guglelmi di Valentina d’Antonguella)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이 이름을 전부 부르는 사람은 없다.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 발렌티노는 파리에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18살에 뉴욕으로 갔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루돌프 발렌티노는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다음에도 이민 온 다른 스타들과 달리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고 이탈리아 국적을 유지하였다. 아무 경력이 없는 루돌프 발렌티노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고 매번 해고를 당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탱고 춤을 잘 추었다. 잘 춘 정도가 아니라 정말 잘 추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었다. 하늘에서 내려준 재능을 지닌 타고난 탱고 댄서였다. 게다가 춤을 추면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루돌프 발렌티노는 요염했고, 그가 탱고를 추면 홀리는 듯한 손끝과 옷이 몸에 꼭 달라붙어서 발가벗은 듯한 육체의 제스처, 그리고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춤을 춘다는 눈빛이 최면을 걸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1914년 무렵 조 파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사교 댄서이자 작곡가이며 사회 정치적인 활동가였던 조앤 소이어의 상대로 주급 50불로 탱고 파트너가 되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명성을 얻었지만, 치정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뉴욕을 벗어나 할리우드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떠났다. (좌) <A Sainted Devil>(1924) 중 (우) <묵시록의 4기수> 중 / 사진: IMDb ( 좌 , 우 ) 하지만 할리우드에 와서 갑자기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엑스트라로 현장을 기웃거렸으며, 조연의 조연의 조연에 해당하는 역할을 전전했다. 루돌프 발렌티노를 알아본 건 아직 MGM 영화사로 합병되기 이전 메트로 영화사의 제작 프로듀서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준 마티스였다. 준 마티스는 무성영화 시대에 가장 눈 밝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직관과 재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장황한 설명 대신 증명할 수 있는 간단한 사례를 들려주겠다. 준 마티스는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 탐욕 >(1924) 원작을 각색하고 대사를 쓴 사람이다. 메트로 영화사는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즈의 소설 『묵시록의 4기사』(1887) 판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소설의 각색을 준 마티스에게 맡겼다. 각색한 다음 렉스 잉그램 감독에게 배역 중에 훌리오 역에 루돌프 발렌티노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렉스 잉그램은 루돌프 발렌티노 캐스팅에 반대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전해지지만,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소문에 따르면 루돌프 발렌티노가 게이라서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주장은 전기에도 꾸준히 따라다니는 이야기지만 소문에서 멈추었다. 상황이 복잡하다. 그 당시에 게이라는 소문은 대중들에게 치명적이었고, 아마도 그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영화 흥행에 치명적인 결과를 맞을 수도 있는 시대였다. 게다가 렉스 잉그램이 거부감을 가졌다는 말도 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몇 차례 결혼했지만, 그 당시에는 많은 게이가 소문을 진압하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렉스 잉그램이 끝까지 반대하기에는 준 마티스가 메트로 영화사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묵시록의 4기수> 촬영 중 루돌프 발렌티노 (사진: “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 IMDb) 촬영 현장은 순조롭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준 마티스가 옳았다. < 묵시록의 4기수 >(렉스 잉그램, 1921)는 시사회에서 그리피스의 < 국가의 탄생 >(1915) 이후 할리우드 영화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1921년 3월 6일 개봉하자마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이탈리아인이었는데도 이 영화의 배역 때문에 ‘라틴 러버(Latin Lover)’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리고 이 애칭은 스타의 한 계보를 이루는 용어가 되었다. 스크린에 나타나 바라보면 그 눈길에 홀리듯이 빠져들게 만드는 남자. 그 자신이 하나의 장르인 스타. 더 간단하게 한 마디로 ‘유혹’ 그 자체. 이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스타는 관객이 자발적으로 날 유혹해주세요, 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덧붙인다. 점점 그 힘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존 배리모어, 샤를 보이에, 로버트 테일러. 타이론 파워, 제랄 필립,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이 계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루돌프 발렌티노의 자리를 얻지는 못했다. 단숨에 루돌프 발렌티노가 ‘라틴 러버’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러나 그런 다음 자신의 이미지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비슷한 역할을 반복했다. 하지만 루돌프 발렌티노의 열광적인 팬들은 같은 노래만 부르는데도 지치지 않고 공연장을 찾는 팬들처럼 영화관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말하는 건 망설여지지만 루돌프 발렌티노는 자신의 인기가 몰락하는 걸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926년 8월 15일 뉴욕 앰배서더 호텔에서 복막염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의사들은 낙관적이었지만 23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장례식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고, 백여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신문은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은 팬들의 자살 소식을 전했다. 전설은 또 다른 전설을 낳았다. 매년 기일이 되면 애도의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나타나서 무덤에 장미 한 송이를 놓고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얼마나 유명한 이야기인지 1959년 레프티 프리젤이 ‘검고 긴 면사포(Long black veil)’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조니 캐쉬, 조앤 바에즈가 다시 불렀다. 그런 다음에도 수많은 가수가 루돌프 발렌티노를 자신의 가사에 등장시켰다. 그중에는 밥 딜런, 킹크스, 이기 팝, 데이빗 보위, 프린스, 스키드 로우, 레오 세이어, 퀸, 그리고도 한참 더 있다. 이것이야말로 스타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겠는가. <Camille>(1921) 중 (사진: “ Camille ”, IMDb)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문샤인(moonshine)은 밀주를 뜻하는 금주령 시대의 용어다. 깊은 밤, 달빛 아래 빚어지거나 운반되는 디오니소스의 금지된 선물. 밀주제조자(moonshiner) 스스로 만들었을 법한 이 낭만적인 단어는, 달빛-술-도취-금지-위반의 이미지와 의미의 연쇄를 빚어내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감상적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저 사소한 소재로 등장할 뿐인 이 단어가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처럼 느껴진다. < 수색자 >(1956)를 만든 다음, 존 포드는 아버지의 고향 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 동료들과 영화사(Four Provinces Production)를 세웠고, 그곳에서 만든 첫 영화가 < 라이징 오브 더 문 >이다. 세 가지 에피소드를 묶은 이 영화의 제목은 19세기부터 불리던 아일랜드 혁명가 제목이기도 하며, 세 번째 에피소드의 바탕이 된 연극 제목이기도 하다. 막이 열리면 작고 오래된 성이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일랜드의 시골 풍경이 펼쳐지고(#1),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에 실린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1 말해 주오, 션 오파렐 어디서 우리 모일지를, 강가 그 오래된 곳에서. 당신과 내가 잘 아는 그곳에서, 어깨 위에 창을 매고, 달이 뜰 무렵(at the rising of the moon). 이것은 반란의 노래다. 그렇게 모인 이들은 달빛 아래 피의 투쟁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더없이 감미로운 멜로디와 목소리, 감상적 정조로 가득한 풍경은 보는 이의 넋을 잃게 만들 만큼 아름답다. 반란 그리고 도취, 혹은 반란으로서의 도취, 혹은 도취로서의 반란. < 라이징 오브 더 문 >은 아마도 그런 것에 관한 영화일 것이다. 우리의 도취를 중단시키고 1956년 당시의 현대화된 더블린 중심가로 옮겨온 카메라는 이어 영화의 소개를 맡은 아일랜드계 배우 타이론 파워를 비춘다. 그는 아일랜드인들이 모여 진정한 아일랜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며, 첫 에피소드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영화이면서 모든 것에 관한 영화입니다.” 첫 에피소드의 제목은 ‘법의 위엄’(Majesty of Law)이다. 중년의 형사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경찰서를 나와 걷는다. 고즈넉한 들판, 낡은 성벽과 작은 강을 지나 그가 찾아가는 곳은 고집쟁이 노인 오플래허티의 허름한 시골집이다. 그곳에서 형사와 노인, 그리고 주책맞고 수다스런 밀주제조자 이웃은 위스키 제조법, 민간요법, 노래들, 오래된 비밀들... 이제는 사라졌거나 금지된 것들에 관한 수다를 나눈다. “술에도 예술에도 비밀이 있다네. 순수하고 달콤한 축복이...” 수다 끝에 형사의 용건이 튀어나온다. 노인은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른 이웃 피니를 때려 부상을 입혔고 고소당했다. 벌금 5파운드를 내지 않으면 노인은 감옥에 가야 한다. 노인은 거실 바닥에 보관한 돈을 꺼내 들고 말한다. “난 돈이 있지만 절대 내지 않을 거네.” 그리고 주저하는 형사에게 금요일 저녁 식사를 끝내고 경찰서에 가겠다고 말한다. 금요일 저녁, 집을 나서는 노인에게 머리에 붕대를 두른 피니가 자가용을 타고 찾아와 5파운드를 내밀며 그 돈으로 벌금을 내라고 윽박지르듯 애원한다. 노인은 돈을 내팽개치며 말한다. “이 간사한 인간, 내가 널 벌할 거야. 나는 너 때문에 맨바닥에 눕게 될 거야. 나는 너 때문에 고통받을 거야. 그래서 너와 너의 아이들, 그리고 너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 될 거야! 저 돌들이 무너지지 않는 한... 누가 나와 함께 저 언덕 위에 오르겠나?” 노인은 집을 어루만지고 자갈에 입을 맞춘 뒤 길을 떠난다. 그를 지켜보던 농부들은 고개를 숙인다. 법의 위엄? 이건 유머다. 이 제목은 제멋대로 법을 희롱하며 ‘법 나으리, 죽을죄를 지었나이다’라고 능청스럽게 조아리는 광대의 어조로 읽어야 한다. 거구의 범죄자가 왜소한 형사를 위로하듯 감방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2)은 그 유머의 다른 표현이다. 진정한 위엄의 소유자는 바로 이 불법의 노인이다. #2 이 에피소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다. 그저 한 노인이 이웃을 때린 뒤 벌금 내기를 거부하고 징역형을 자처했다는 게 전부다. 이 사소한 세계에 사금파리와도 같은 말들과 노래와 표정과 몸짓과 풍경이 넘실댄다. 그것들은 밝지 않으며 가냘프게 반짝인다. 막 예순을 넘긴 존 포드는 이제 곧 사라질 애처로운 반딧불과도 같은 순간들을 아무것도 아닌 사건 주변에 무심한 손길로 넘치도록 담아낸다. ‘법의 위엄’은 이들을 추방해왔고 곧 소멸시킬 것이다. 태그 갤러거는 이 반동적인 노인이야말로 혁명가이며, 비루한 밀주제조자 또한 당당히 반란자라고 표현했다.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에피소드의 애상적 정조를 감안하면 다소 과도한 해석 같다. 노인의 선택은 이젠 사소한 반항으로밖에 드러낼 수 없는 잃어버린 영웅주의에 대한 애도에 가깝다. 법의 태양이 뜨면 이제 달빛 같은 영웅주의는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곧 사라질 달빛에의 도취다. 감상적이지만 거부하기 힘든 첫 에피소드의 정조에 마음이 젖는다면, 이제 다음 이야기를 편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야말로 최소한의 사건조차 없는 사소한 것들의 난장이기 때문이다. 막간에 타이론 파워가 다시 등장해 “이것은 거대한 모험일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제목은 ‘1분간 정차’(One Minute’s Wait). 기차가 작은 시골 역에 정차한다(#3). 말 그대로 이곳은 1분의 세계다. 그러나 그 1분은 끝나지 않을 듯 연장되고 반복된다. #3 ‘1분간 정차’라는 역무원의 말이 떨어지자 승객들은 물밀 듯 몰려나와, 맥주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춤추고 노래한다(#4). 한쪽 구석에서는 혼담을 벌이고 연애가 시작된다. 시골 역은 순식간에 떠들썩한 시장판이 된다. 1분의 몇 배가 넘는 시간이 지나고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승객들은 다시 승차하지만 곧 역무원은 다시 ‘1분간 정차’를 외친다. 이 과정은 몇 번이나 반복된다. ‘아일랜드에서 제일 큰’ 염소를 실어야 하고, 주교를 위한 바닷가재도 실어야 하며, 늦게 도착하는 하키팀을 위해 증차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다시 올 ‘1분’을 기다렸다는 듯 승객들은 순식간에 하차해 떠들고 놀다 서둘러 승차한다. #4 우리는 이 기차의 목적지를 알 수 없으며 누구도 목적지를 말하지 않는다. ‘1분의 대기’로 명명된 그 시간, 그리고 그 시간에 펼쳐지는 사소한 세계가 이 영화의 전부다. 목적지를 잊어버린 1분의 휴식, 짧은 그러나 한없이 연장되고 반복될 듯한 신명과 도취의 세계. 이 세계는 동시에 부조리와 난센스의 난장이기도 하다. 잠겼던 문이 열쇠 없이 열리고, 1등칸의 표시는 임의적으로 옮겨 다니며, 승객들에게 유령 이야기를 늘어놓던 주정뱅이 기관사는 그 따위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돌변한다. 어른들이 지참금 거래로 자식들의 결혼에 합의하는 사이 그들의 자식들은 사랑에 빠져, 타산과 순정이 순식간에 합일한다. 무엇보다 이 길고 소란스런 1분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철도국 간부와 주교라는 권력자들이다. 이 세계는 세상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가 뜻하지 않게 빚어낸 잉여의 시간, 반짝이는 무질서의 틈새와 같은 세계, 부조리와 난센스도 정화되는 유토피아의 순간이다. 물론 그 세계는 결국 끝에 이르고 기차는 출발해야 한다. 목적과 질서를 잊어버렸을 때 시작된 서사가 목적지를 기억해내자 기차는 움직이고 영화는 끝난다. 다시 출발하는 기차를 놓친 유일한 커플이 결혼식장이라는 목적지에 빨리 가야 한다고 서두르던 중년 부부다. 반복되는 ‘1분들’에 지쳐 차 한 잔 마시기 위해 결국 내렸으나 주문한 차는 오지 않고 기차는 떠난다. 이것은 존 포드가 자신의 인물에게 가한 유머러스한 징벌처럼 느껴진다. 이 인물의 죄는 목적지를 잊어야 할 세계에 와서 목적지에 집착한 죄이다. 첫 에피소드가 시대가 박탈해간 것들에의 도취라면, ‘1분간 정차’는 그 자체가 존 포드에게 평생 강요되던 할리우드의 목적론적 서사에 대한 반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에피소드야말로 후기 존 포드 영화의 심장과 같은 것은 아닐까. 전후의 많은 전쟁영화와 서부극에서 임박한 전투 직전에도 혹은 복수의 출정을 앞두고도 끝없이 이어질 듯한 노래와 춤의 시간을 마련하던 존 포드에게 ‘1분간 정차’의 전적인 잉여의 세계야말로 그가 진정 사랑한 세계가 아니었을까. 이것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볼 질문으로 남겨두고 마지막 에피소드로 넘어가 보자. ‘1921’이라는 제목이 붙은 세 번째 에피소드는 셋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하다. 영국군에 체포된 아일랜드 혁명가 션 큐란은 사형을 1시간 앞두고 있다. 아일랜드 민중들이 사형집행장 옆에서 침묵시위를 벌이는 동안 반란군은 수녀로 가장한 행동대원 둘을 보내 션 큐란을 빼내는 데 성공한다. 션 큐란은 삼엄한 영국군의 포위망을 뚫고 드디어 배에 오른다. ‘1921’은 반란의 서사, 그것도 정치적 반란의 서사다. 스토리가 너무도 명료한 이 에피소드에 대해선 별로 보탤 말이 없다. 존 포드는 특유의 능청스런 유머와 유려한 리듬으로 능란하게 사건을 묘사하고 우아하게 목적지에 도착한다. 다만 한 가지가 이상하다. 이 에피소드의 거의 모든 장면은 사각(斜角)으로 촬영되었다(#5). 불안과 불의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일까. 하지만 포드는 이처럼 과도하게 인위적인 카메라워크를 사용한 적이 없다. 사각촬영이 빈번히 등장한 필름누아르들 중에서도 이만큼 극단적인 앵글로 일관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나는 이 카메라워크가 최선의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그 선택을 수긍할 수 있다. 수평으로 돌아간 프레임 안에서 션 쿠란을 태운 배가 강물 위를 떠간다. 그리고 오프닝 시퀀스에서 우리의 귀를 홀렸던 혁명가 ‘The Rising of the Moon’이 다시 흘러나온다(#6). #5 #6 이 장면은 아름답다. 어쩌면 지나치게 아름답다. 1921년 이후 그리고 이 영화가 개봉된 1957년 이후에도 독립을 위해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 아일랜드인들의 고난을 감안하면 이 장면은 너무 감상적인 게 아닐까. 하지만 이런 일말의 우려는 존 포드의 동시대인도 아일랜드인도 아닌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이 마지막 장면에 취한다. 세계는 기울어져 있지만, 영웅을 실은 배는 달빛 아래 수평의 강물 위를 흘러간다. 아일랜드인에게라면 그의 행로는 기울어진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겠지만, 21세기의 외국 관객인 내게 션 큐란은, 존 포드의 많은 영웅들이 마지막에 그랬듯이,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말해주오, 션 오파렐...”이라고 노래하지만 이제 영웅은 대답할 수 없는 곳으로 가려는 것 같다. 그러니 이 노래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는, 소멸해버린 영웅을 향한 연가처럼 들린다. 마지막 장면은 영웅의 마지막 시간을 초시간적인 형상으로 봉인한다. 이것은 소멸한 반란에의 만사다. < 라이징 오브 더 문 >은 두 영웅의 이야기가 ‘1분간 정차’의 잉여적 세계를 감싸고 있는 기묘한 구조의 옴니버스 영화다. 나는 그 가운데 담긴 ‘1분간 정차’에 이 영화의 비밀이 있다고 느낀다. 소재로서의 반란이 아니라 텍스트 스스로가 반란이며 실험인 영화를 존 포드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 그리고 아직 뉴웨이브의 소란이 도착하기 전에 만들었다. 이 영화 역시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온 포드의 또 다른 보석이다.
이번 회엔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1941)를 말하려 한다. 청컨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라면 먼저 영화를 보고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이 글을 먼저 읽는 것이 혹시나 영화를 볼 때의 충만한 감흥을 빼앗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이 글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화의 한 측면일 따름이다. 존 포드의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지만 아름답고 슬프고 감상적이고 냉혹하면서 괴이한 이 영화를 아무런 사전 정보와 지식 없이 만난다는 것은 충분히 행복한 일이다.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는 존 포드의 ‘영예의 시기’(1939~1941)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이면서, 아마도 그의 영화 생애에서 가장 많은 세속적 영예를 가져다준 영화일 것이다. 하워드 혹스의 < 요크 상사 >와 더불어 그해 최고의 흥행작 대열에 올랐고,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해 6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거둬들였다.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작으로 꼽히는 오슨 웰즈의 < 시민 케인 >도 같은 해 여러 부문의 오스카 후보에 올랐으나,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미술상을 존 포드에게 넘겨주고, 각본상만 수상했다. 개봉 당시 주류 평자들도 이 영화에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즘 비평가 중 하나였던 보슬리 크로더는 개봉 다음날 「뉴욕 타임즈」(1941. 10. 29.) 기고문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거친 현실의 날카로운 대조”를 “시적 이미지”로 빚어낸 “놀라운 걸작”이라고 평했다. 이런 사실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 시민 케인 >을 반세기 가까이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아온 후대 비평가들 사이에서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가 미운털이 박혀 오랫동안 폄하되어온 배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후대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대중의 기호에 영합한 감상적 주류영화이며 기껏해야 오스카 맞춤형 작품 정도로 간주했다. 데이비드 톰슨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눈물과 석탄 가루의 흉측한 뒤범벅”이라고 혹평했다(「Biographical Dictionary of Film」). < 수색자 > 외엔 존 포드의 모든 영화를 감상주의와 폭력성의 교활한 결합으로 간주하는 철저한 포드 비판론자인 데이비드 톰슨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그의 책에 실린 간략한 존 포드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악랄한 험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존 포드의 열렬한 지지자인 린지 앤더슨조차 이 영화가 “가장 풍성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지만 “장식적이고 ‘실용적’(applied) 기교로 연출”되었으며 이 때문에 “포드의 다른 영화에 비해 더 많은 오스카를 받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다소 부정적으로 논평했다.(「About John Ford」) 그토록 널리 알려진 영화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오랫동안 오해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당겨 말하면,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는 주류적이지도 고전적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단순히 모던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괴이한 영화다. 이 영화의 괴이함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재탐구되어야 할 존 포드의 걸작이며,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이 존중받고 사랑받게 될 것이다.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는 50년 동안 살아온 탄광 마을을 이제 떠나려는 휴 모건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노스탤지어의 정조가 깃든 제목과 유년기의 회고담이라는 설정만으로도 감상적 멜로드라마라는 이 영화의 인상은 운명처럼 정해져 버린 것 같다. 이 영화가 얻은 대중적 성공과 비판적 논평은 이런 최초의 인상이 낳은 기대를 존 포드가 저버리지 않았음을 뜻할 것이다. 물론 사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존 포드는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 훼손한다. 이 영화의 괴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충족과 훼손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충족인지 훼손인지 분간할 수 없는 장면들과 끊임없이 마주한다. 많은 비판자들이 이 영화에서 충족의 면만 보았다면, 우리는 이제 훼손의 면을 볼 필요가 있다. 휴 모건이라는 화자(내레이터)의 위치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면서 일인칭 화자이다. 첫 장면은 스카프에 책을 싸는 그의 손동작이다. #1 #2 휴 모건의 내레이션과 함께 제시되는 어린 시절의 플래시백이 영화의 거의 전부다. 생긴 지 오래지 않은 웨일즈의 탄광 마을에 사는 가난한 광부 가족의 이야기. 휴는 모건 부부의 6남 1녀 중 막내이며 휴를 제외한 남자는 모두 광부이고 어린 휴도 곧 광부가 된다. 고단하지만 정겨운 공동체적 삶을 누리던 휴의 가족과 마을은 탄광주의 횡포, 파업과 해고, 불의의 사고로 무너져가고 유년의 낙원처럼 보이던 푸른 계곡(#2)은 점점 석탄으로 검게 물들어간다. 린지 앤더슨조차 ‘오스카적’이라고 간주했던 이 이야기는 과연 주류 멜로드라마의 관습에 충실한가.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한 사람은 후대의 시네필 비평가가 아니라 오히려 구세대 주류 평자인 보슬리 크로더였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그는 이 영화가, “하층민의 삶의 탁월한 디테일 묘사와 그들의 섬세한 감정표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의 구체적 패턴을 구성하지 못했으며” “영화의 의도가 삶의 형식 없는 흐름을 따르는 것이긴 하지만, 산발적인 에피소드로만 이루어져 있어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크로더는 이것이 약점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존 포드는 놀라울 정도로 극적 구성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이만큼 에피소드 중심적인 포드의 다른 작품은 그가 가장 아끼는 영화 중 한편인 < 웨건 마스터 >와 그가 가장 싫어하는 영화 중 한편인 < 세계는 전진한다 The World Moves on > 정도다). 여기엔 중심적 사건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으며 모건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점진적 해체와 몰락을 초래하는 사건들이 수평적으로 나열될 뿐이다. 이 영화의 강렬한 정감은 사건들의 극적 구성이 아니라, 어린 휴 모건의 순결한 얼굴과 표정과 말투에서 비롯된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정신이 몽롱해질 만큼 애처로운 아름다움이 있어 그가 나쁜 선택을 하는 경우조차 그의 편에 서야 한다고 믿게 만든다. 어린 휴의 마취적 아름다움에서 이 영화에 대한 매혹과 비난이 동시에 비롯되었을 것이다. 매혹된 이들은 그토록 순결한 아이의 거듭된 불행에 눈물을 쏟았고, 비난한 이들은 존 포드가 아이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비판적 의식을 마비시켰다고 보았을 것이다. 사회적 현실을 소재로 삼은 멜로드라마가 사회적 불의의 최종적 희생자를 아이로 설정하는 것, 관객은 “동정의 형식으로 (아이라는) 약자에게 막대한 감정적 에너지를 투자”하고 그로부터 정서적 안정을 얻는 것(레이 초우, 「원시적 열정」), 그 과정을 비판적 논자들이 나르시시즘적인 도피로 간주하는 것 등은 영화 세상에서 드물지 않게 보아온 광경이다. 하지만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에 대한 매혹과 비난은 한 가지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 영화는 어린 휴의 현재적 드라마가 아니라 늙은 휴의 회고담이라는 사실이다. 반복건대 회상의 자의성 자체가 모티프가 아닌 한 관객인 우리는 영화의 플래시백을 영화 내적 진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약속된 가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플래시백에서의 자의성의 은밀한 작동이 이 영화의 비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첫 시퀀스의 모종의 얼룩 때문만은 아니다. 그 얼룩은 즉각적으로 의식된다기보다 플래시백 서사의 기묘한 점들이 그것을 거꾸로 되짚게 만드는 편에 가깝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맏형 이보어가 탄광 엘리베이터에서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에게는 임신한 아름다운 아내 브론윈이 있다. 모건 가족에게 가장 끔찍한 불행이 닥친 것이다. 그런데 그 사건이 다뤄지는 방식은 이상하리만큼 간략하며 심지어 건조하기까지 하다. #3 #4 물론 장례식이 치러지는 집 안은 깊은 어둠과 침묵에 잠겨 있다(#3). 그때 어머니는 장례식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브론윈의 출산을 돕고 내려와서 “손자가 태어났다”고 태연한 말투로 아버지에게 알린다.(#4) “하나가 가니 또 하나가 왔군” “그런 이상한 소리는 며느리하고나 해요” “조용히 해”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이어지는 대화에서 어머니의 말과 표정은 자식을 잃은 어미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시큰둥하다. 더욱 이상한 점은 거의 매 시퀀스의 화자이자 목격자였던 휴 모건이 유독 이 시퀀스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째서 비극적 사건을 맞은 아이의 클로즈업에 한 쇼트도 할애되지 않았을까. 다음 시퀀스에 실마리가 있는 것 같다. #5 #6 휴의 성적표를 보며 가족들이 정담을 나누고 있다(#5). 아버지는 휴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 휴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사이, 후경에 있는 브론윈이 어머니에게 “매일 이보어의 신발과 옷을 준비하지만 그는 오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휴는 그것을 듣고 있다(#6). 아버지가 다시 장래 소망을 묻자 휴는 “광부가 될래요”라고 답한다. 만류하던 아버지는 결국 “네 뜻대로 해라. 하지만 누구도 원망하지는 마라”고 말한다. 곧이어 휴는 브론윈의 집으로 옮기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허락을 얻는다. 이 일련의 시퀀스들은 다소 끔찍한 상상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결혼 전 브론윈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휴는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사랑에 빠졌고, 그것은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고 보이스 오버로 말했다. 휴는 브론윈의 남편 자리, 즉 맏형 이보어의 자리에 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건 이보어가 사라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보어의 죽음은 휴의 말해지지 않은 소망이다. 소망이 성취되자 그는 슬퍼할 필요가 없었고, 곧이어 이보어의 자리를 대신한다. 휴가 광부가 되려는 이유는 이보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것 말고는 이 서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천진한 소년은 가혹한 현실의 순결한 희생자라기보다는 금지된 욕망의 소유자다.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휴의 주체성을 중심에 놓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사람은 역시 태그 갤러거다. 갤러거는 공동체에 대한 휴의 맹목적 집착이야말로 그의 불행을 초래한 것이며 이 영화의 표면적 감상주의 아래에는 휴의 천진난만한 선택, 그리고 가망 없는 공동체에 대한 냉소가 담겨 있다고 보았다(「JOHN FORD-The Man and His Films」). 갤러거는 또한 ‘자라지 않는 소년’이라는 훌륭한 관찰을 전해주었는데, 이것은 이 영화의 플래시백 서사에서 또 다른 기묘한 점이다. ‘이 소년은 극 중에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은 제작자 대릴 자눅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20세기 폭스의 제작 책임자였던 대릴 자눅과 존 포드는 주로 편집권 문제로 수없이 다투었으나, 끝내 서로에 대한 존중심을 잃지 않았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존 포드와의 기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사람은 자눅 뿐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디어는 작소 왜소한 아이가 관객을 동정을 끌어내기에 더 적합하며 그러기 위해선 어른 휴가 등장해선 안 된다는 상업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되지만, 존 포드는 그 아이디어를 확장해 플래시백 서사의 모호한 진실성 혹은 은밀한 자의성에 녹여 넣으면서 미학화했다.(성장한 휴 역에는 타이론 파워가 내정되어 있었다고 한) 한 장면을 살펴보자. #7 #8 #9 휴 모건은 탄광주 아들과 결혼한 뒤 멀리 떠났던 누나가 마을 내 탄광주 저택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누나를 찾아간다. 그런데 탄광주 저택에 들어선 휴는 너무 왜소해 보인다#7). 단순한 착시일까. 그렇지 않다. 다음 장면에서 휴는 대문에 걸린 쇠고리로 노크한다.(#8) 그런데 쇠고리는 까치발을 해야 손에 닿을 정도로 높이 달려 있다. 이 장면이 이상한 이유는 영화는 이미 종결을 향해 가고 있고 플래시백의 시작 시점으로부터, 영화 내적 시간이 짐작건대 2년 이상 흘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를 맞은 누나는 “정말 많이 자랐구나.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대문과 쇠고리가 모두 존 포드의 지시로 세팅된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 장면을 보면 이 쇠고리의 높이는 성인인 하녀에게도 불편할 만큼 높이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9). 이 장면들에서 휴의 과소한 신체가 회상주체의 자의적 왜곡이라면, 성장의 중단은 휴 모건의 소망이라는 뜻이다. 사건들이 연대기 순으로 발생하지만 기묘하게도 시간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휴의 신체 성장이 멈춰있기 때문이며, 모두 죽거나 떠나가지만 그만은 완강하게 집과 탄광 마을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늙은 휴 모건의 소망이다. 그는 이 시기의 기억이라는 장소 안에 영원히 거주하기를 원하며, 그 장소에서는 시간이 현실적 규칙을 벗어난 원환운동을 계속한다. 성장을 거부하고 시간을 원환하려는 그의 소망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패한다. #10 이 영화의 또 다른 기묘한 점은 짧은 기간의 플래시백 서사의 마지막 장면이 플래시백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곳은 우리가 이미 보았던 푸른 계곡의 시대, 모두가 모두를 반기고 아꼈던 낭만적 공동체의 시대다(#10 ). 이 이상한 회귀는 자의적 회상 안에서조차 (가족)공동체 해체, 몰락, 이별, 죽음의 틈입을 차단할 수 없으므로 실재의 폭력이 개입하지 않았던 회상의 시작 시점으로 되돌아갔음을 뜻한다. 우리는 유년기를 이상화하는 영화가 유년기적 낙원의 한 정점에서 끝나는 사례는 수없이 만나왔다. 하지만 현재를 경유하지 않고 플래시백 내부에서 다시 최초의 장면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맺는 다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첫 시퀀스에서 제시된 늙은 모건의 현재는 이미 유령적인, 부재에 가까운 시점이 아니었던가. 이 유례없는 플래시백은 다시 발견되고 탐구되어야 한다. 여기서 다 말하지 못한 이 영화의 비밀은 훨씬 더 많다. 이상화된 시대의 기억에 거주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던 최초의 시점으로 영겁 회귀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푸른 계곡의 시대는 그 최초의 시작 시점에 사실상의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아있고(러닝 타임으로는 15분 정도에 불과하다), 이상적 공동체는 사실상 존재한 적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존 포드는 소년의 순결하고도 완고한 아름다움이 주재하는 감상적 플래시백을 내세워, 그것의 매혹을 전시하면서 동시에 내파한다. 여기서 감상(感傷)과 냉소는 식별 불가능하다. 태그 갤러거는 합당하게도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를 존 포드의 가장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영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