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방
- 감독
- 김문옥
- 제작년도
- 1979
- 출연
- 이영옥, 김추련, 이영하, 김진, 현주, 노정옥, 라영실, 문미봉, 김지영, 권일정, 조학자, 김기종, 박동용, 김승남, 신찬일, 임성포, 오희찬, 이인찬, 김영수, 곽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에게 1980년대는 곤란한 시간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박정희의 죽음을 겪고(등굣길에 길에서 우는 수많은 할머니들을 보았다), 3학년 때 5.18이 있었으며(서울 변두리에 살았는데 동네 큰길에 정말 아무도 없었다), 4학년 때 집에 컬러텔레비전이 들어왔던 게 생생히 기억나는 걸 보면 1980년대를 제대로 경험한 건 분명하다. 동네 삼류극장의 추억, 올림픽 때문에 샀던 VCR, 학교 앞 만홧가게 쪽방에서 보던 포르노, < 영웅본색 >과 < 천녀유혼 >…. 1980년대는 나에서 문화적 요람기이며, 지금의 취향이 형성된 결정적 계기였다. 그때 따먹은 선악과 때문에 난 아직도 어떤 원죄 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며, 이런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무의식의 발로일 거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줌-아웃 하여, 그 시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나에게 ‘1980년대’는 분명 살긴 했지만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10년이기도 하다. 그 시절 영화를 연구해 보겠다고 나선 입장에선 더욱 난점이 있다.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처럼 이상한 시기는 없기 때문이다. 10년씩 묶어서 뭉뚱그리는 수사법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영화사는 대충 10년 단위로 어떤 레이블이 붙는다. 1960년대가 황금기로서 한국영화의 모더니즘이 여러 감독에 의해 시도되었다면, 1970년대는 그 모든 성과물들이 ‘유신 체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른바 ‘암흑기’로서, 전 세계 영화계가 ‘뉴 시네마’의 열풍에 휩싸일 때 한국영화는 ‘방화’라는 용어 안에 갇혀 외화 쿼터와 국책 영화라는 당근과 채찍에 길들어 갔다. 그 시기에 이만희와 하길종이 요절했던 건, 슬프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시대의 공기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 1980년 1월 1일에 개봉된 두 편의 한국영화. < 타인의 방 >( 김문옥 )과 < 어느 여대생의 고백 >( 김선경 ). 모두 이영옥 이 주연을 맡은 멜로드라마다. 1990년대는 ‘기획 영화’가 등장하며 한국영화의 자본 구조가 천지개벽을 겪었고, 이런 물적 토대의 변화를 기반으로 200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으며, 산업적 팽창은 2010년대 독과점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마치 공란처럼 존재하는 1980년대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물론 이 시기를 대표하는 표제어는 존재한다. 바로 ‘3S 정책’이 그것이다. 신군부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 애마부인 >( 정인엽 , 1982)의 심야 상영을 필두로 에로티시즘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하는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만약 1980년대를 ‘3S 정책’으로 설명한다면, 이 가설의 장점은 연속성이다. 1970년대 유신에서 1980년대 3S로 이어지는, 군부 정권의 억압적 문화 정책에 의해 한국영화는 긴 침체기에 빠졌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단점은 1990년대와 연결할 때 발생한다. 20년 가까이 침체되었던 한국영화가 1990년대 초 갑작스레 활기를 띨 수 있었던 건 계기는 무엇인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선 뭔가 다른 시대 규정이 필요한데 아마도 ‘코리아 뉴웨이브’가 그런 시도일 것이다. 이것은 ‘서울의 봄’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충무로에도 새 바람이 불었다는 가설이다. 1980년대 전반기의 이장호 와 배창호 , 후반기의 장선우 와 박광수 가 그 기수였는데, 그들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는 1990년대의 성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난점은, 당대의 영화가 1970년대와 어떻게 단절을 이룰 수 있었는지의 문제다. 그리고 과연 ‘뉴웨이브’라 부를 만큼의 성과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의외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던 게 1980년대 영화다. 곽경택 감독의 < 챔피언 >(2002)과 박흥식 감독의 < 사랑해, 말순씨 >(2005). 영화 속에서 김득구( 유오성 )는 연인과 함께 심야 상영으로 < 애마부인 >을 보고, 아이들은 동시 상영관에서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정진우 , 1981)를 본다. 197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부정적이고, 1990년대의 전사로 받아들이면 긍정적인 1980년대의 한국영화. 3S와 뉴웨이브가 공존했던 불균질 적이며 돌발적이고 혼란스러우며 규정할 수 없는 시기. 이번 주부터 격주로 이어갈 연재는 바로 그 시대에 대한 글들이다. 명료하게 정리할 야심은 없다. 그럴 수 없는 시대였으며, 그런 ‘쉽게 파악되지 않는 속성’이 이 시대 한국영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단서 하나. 기존에 이뤄진 이 시기 감독들에 대한 작가 연구에 글 하나를 보탤 생각은 없다. 이 연재는 그 시기 가장 대중적이었던 영화들에 대한 재평가다. 에로 영화, 하이틴 무비, 코미디, SF 아동 영화 등 당시 가장 많이 만들어졌고 휴지처럼 소비되던 영화들이 분석의 대상이 될 것이다. ‘1980년대’라는 시대 구분도 약간 수정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1982년 < 애마부인 >부터 1992년 < 결혼 이야기 >( 김의석 ) 직전까지, 즉 에로 영화가 본격화되고 기획 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영화를 중심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 1980년대엔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졌을까? 1960~70년대의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걸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1980년 한국영화 흥행 1위는 364,538명(이하 모두 서울 관객수)의 < 미워도 다시 한번 1980 - 1부 >( 변장호) 였다. 1981년은 287,929명을 동원한 윤정희 주연의 < 자유부인 >( 박호태 )이었다. 기존의 신파 멜로가 이어지던 형국이었고, 이때 1982년에 < 애마부인 >이 315,738명을 기록하며 그 해 1위 자리에 오르면서 충무로의 풍토를 바꿔 놓았다. 정인엽 감독의 < 애마부인 >과 < 애마부인 2 >(1984).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에로 프랜차이즈다. 그런 점에서 당대의 에로틱 멜로드라마, 이른바 ‘에로 영화’는 돌연변이였다. 1960년대 신파 멜로에서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로 오면서,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가벼운 수준의 노출이 감행되었다면, 1980년대 에로 영화들은 국가 정책의 조장 속에서 영화의 특정 요소를 다소 지나치게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굳이 에로 영화만의 특성은 아니었다. 쉽진 않겠지만 1980년대 대중 영화를 뭉뚱그릴 수 있는 용어가 있다면 그건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 필름’일 것이다. 번역하기 쉽지 않은 이 용어는 풀어서 해석하면 ‘특정 관객의 취향에 호소하는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상업영화’라 할 수 있는데, 1980년대 한국영화는 상당 부분 이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섹슈얼하고 에로틱한 부분에 그치지 않았다. 1970년대 얄개 영화는 1980년대 청춘 영화로 이어지며 로맨스 부분이 대폭 강화됐고, 액션 영화는 수많은 아류 스타일의 영화로 가공되었다. 정식 합작영화도 있었지만 위장 합작영화도 상당했고, 합작과 무관한데 제목만 중국 영화인 척하는 한국영화도 부지기수였다. 이 영화들은 모두 무협 팬들을 위한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으로, 극적 개연성 없이 대결 액션 신으로 꽉꽉 채운 영화들도 등장했다. 저예산 호러도 1980년대 중반까지 심심찮게 이어졌다. 코미디도 마찬가지였다. 이주일 , 김형곤 , 심형래 등 당대의 인기 코미디언과 개그맨의 유행어와 개인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심형래는 <우뢰매> 시리즈를 통해 아동 영화 시장을 붐업 시켰고 수많은 유사작들이 등장했다. < 평양 맨발 >( 남기남 , 1980)의 이주일 과 < 그 사랑 한이 되어 >( 이형표 , 1981)의 조용필 . 이 시기 영화를 더욱 기묘하게 만든 건 크로스오버(crossover) 현상이었다. 여기서 요즘 콘텐츠 전략에서 언급되는 ‘원 소스 멀티 유즈’ 같은 개념을 떠올려선 곤란하다. 1980년대에 영화라는 콘텐츠는 타 분야와의 경계선이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다. 최근 ‘연기돌’들이 나름 착실한 연기 수업을 바탕으로 연기자에 도전한다면, 1980년대엔 인기 있는 가수는 별 장벽 없이 배우가 되었다. 조용필 , 심수봉 , 인순이 등이 모두 영화를 찍었고, < 마음 약해서 >( 심우섭 , 1980)나 < 모모는 철부지 >( 김응천 , 1980) 처럼 당대 히트곡 제목을 그대로 딴 영화들도 많았다. < 난 이렇게 산다우 >( 남기남 , 1985)처럼 개그맨의 유행어를 그대로 제목에 가져온 영화도 부지기수였다. 만화의 영화화가 본격화된 것도 1980년대이며, 의외로 많은 리메이크와 프랜차이즈(와 외화 표절) 영화들이 있었다. 이처럼 쉽사리 정리되진 않지만, 그 카오스 속에서도 어떤 묘한 질서를 찾아볼 수 있는 1980년대 영화들. 다음 글에선 좀 더 세부적으로 접근해보겠다. 그 첫 대상은 에로 영화로 건너가는 가교 역할을 했던, ‘토속물’ 혹은 ‘향토물’이라 불리었던 영화들이다.
전자음으로 이뤄진 불안하고도 여린 선율 속에 무표정한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등장한다. 표정없던 남자의 얼굴에서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금세 미소가 번지며 말하기 시작한다. 뭐지? 혼잣말? 그런데 본인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일단 좀 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 4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장난꾸러기 소년과 같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지닌, 감독 스파이크 존즈의 작품을 접할 때면 매번 크고 작은 탄식이 잇따른다. 그의 넘치는 (장난기를 포함한) 끼와 상상력에 대한 시기와 놀라움이 섞인 탄식은 풋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정확하지 않은 어느 미래, 손편지 대필 회사에서 작가로 일하는 테오도르는 무심하게 스팸메일은 삭제하지만, 섹시 스타의 화보는 꼭 확인하는 이혼 예정남이다. 게임과 채팅룸으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극복하려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고양이 사체에 흥분하는 여자뿐. 그마저도 거절 못 하고 응해주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그에게 선물처럼 ‘그녀’가 등장한다. 그리고 첫 마디를 건넨다. “Hello? I’m here.”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존즈의 2010년 단편 <아임 히어 I’m Here>의 여자 로봇 프란체스카가 남자 로봇 셸든과 세상에게 하고 싶은 말이 ‘I’m here’였고, 최인호 의 단편 < 타인의 방 >에서 남자가 자신의 집 문 앞에서 끝내 하지 못했던 말도 ‘I’m here’였다. 그토록 듣고 싶고, 말하고 싶었던 한 마디는 나의 존재를 일깨워 줄 단순한 인사였을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고 나서야 꽃이 됐듯 최초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대화 상대가 되어 연신 질문하고, 대답하며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혼서류의 서명만을 남겨둔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테오드르의 일상은 사만다의 등장으로 조금씩 변화해간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혀지고, 항상 시작은 전보다 나은 사랑인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대상이 감정을 지닌 인격체로 느껴지는 건, 테오도르의 기분에 맞춰 목소리의 톤까지 조절해가며 실감 나게 위로해주는 사만다, 스칼렛 요한슨의 탁월한 목소리 연기가 한몫한다. 워낙 개성 있는 목소리를 가져 인지하기 쉬운 배우이기에 등장할 때부터 떠오르는 건 사실 실제 모습이다. 극 설정 자체에 빠져드는 데는 인지할 수 없는 일반 여성의 목소리가 나았겠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목소리이기 때문에 관객도 OS1을 여성으로 받아들이기 쉬웠을 테다. 게다가 감독의 위트가 엿보이는 ‘점’ 신을 보고 나면, 요한슨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된다. 둘의 관계는 ‘몸을 갖고 싶다’는 그래서 상대와 같아지고 싶다는 사만다의 욕심으로 인해 위기를 맞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극복한다. 운영체제와의 사랑이 주변 사람에게 자연스레 인정받는 설정은 무척 재미있다. 3명이 가는 커플 여행이라니! 매번 존즈가 창조한 세상에서는 이상한 환상은 당연하고 평범한 현실이 되고, 주인공은 더 인간적이어서 생각할 구석을 만들어내곤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 속의 개 인간의 귀갓길(뮤직비디오 <다 펑크 Da Funk>)이나 도서관에서 일하는 로봇 셸든(단편 <아임 히어>)의 출퇴근길에 인간과의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불붙은 남자(뮤직비디오 <캘리포니아 California>)까지도 그저 어딘가로 급히 달려가는 남자일 뿐이다. 조금 다르다는 점 말고는 그들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사랑은 그저 사랑 그 자체를 얘기하기 위한 설정으로서 기능한다. 불안하게 이어가던 그들의 사랑은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혼자만 독점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순간파경에 이른다. 자신은 사만다가 동시에 대화하는 8,316명 중 하나이며, 641명과 함께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상대에 대한 독점적 소유욕이 사랑의 한 속성이라면, 결국 그들은 양보할 수 없는 차이점이 문제였다. 물론 이런 이유가 아니라도 내 품으로 감당할 수 없는 단계로의 성장을 준비하는 상대방은 놔줄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사랑을 보내며 한 단계 성숙해진 테오도르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편지에 담아 전부인 캐서린에게 보낸다. 타인의 감정만을 대신하는 사이 정작 자신에게는 솔직하지 못했던 그는 신기루 같았던 사랑을 뒤로하고, 차분하게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린다. 스스로 솔직하며 짧은 인생, 즐겁게 살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치이고, 연신 사랑에 실패하는 현대인을 풍부한 감성으로 위로해주는 < 그녀 >를 통해 감독은 정작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그리고 게임에서가 아니라 진짜 세상에서 인간끼리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서로 위로하며 즐겁게 그렇게 살자, 라고. 파스텔톤의 원색 가득, 황홀하고 아름다운 미술과 의상 속에 감성이 뚝뚝 묻어나지만, 그 안에서 자제하고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표출되는 감독의 B급 취향이 사실 더 큰 재미였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웃음이 가득하다. 극 중 테오도르가 즐겨 하는 게임 속 욕쟁이 캐릭터, 외계인 소년의 목소리가 존즈라면? 존즈의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은 상상력과 괴짜스런 장난기는 어쩌면 아이 같은 코맹맹이 목소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에게는 오지 않았던 변성기처럼, 재미없는 어른으로 크기보다 지금 그대로 탄식과 웃음이 어우러지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주길 바란다.
1981년. 신군부의 문화정책을 상징하는 행사 ‘국풍 81’이 열렸고,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됐다. 이듬해엔 교복 자율화가 발표되고 프로야구 정규리그가 출범했다. 1983년 6월,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밤낮으로 전국을 울렸다. 그해 8월 셋째 주 일요일. 미국 망명 중 하버드에서 김대중과 이웃하며 지냈다던 베니그노 아키노가 마르코스 치하의 필리핀으로 돌아가자마자 마닐라 공항에서 총을 맞아 죽었다는 뉴스가 이산가족들의 눈물바람을 뚫고 종일 들려왔다. 10월 9일에는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져, 대통령이 도착하길 기다리던 남한 정부 각료 등 21명이 죽었다. 이십 일 뒤인 10월 29일, 단성사에서 배창호 감독이 연출한 < 적도의 꽃 >이 개봉했다. 1983년 흥행 수위를 차지한 이 영화는, 서울 개봉관에서만도 15만 명이 넘는 관객들과 만났다. 배창호 감독은, 자신이 조감독을 맡았던 < 어둠의 자식들 >( 이장호 , 1981) 원작자 이동철의 동명 소설을 각색해 1982년 첫 장편 < 꼬방동네 사람들 >을 만든다. 개봉 전 프린트 검열과 더불어 존재했던 사전 시나리오 검열에서 어림잡아 67군데를 손보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뚝심으로 완성한 이 작품은 크게 흥행했다. 도시빈민의 현실을 생생히 살렸다며 비평계의 지지도 얻었다. 곧이어 “현대그룹 홍보영화” < 철인들 >(1982)을 만든 배창호는, 차기작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최인호 가 1981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소설 『적도의 꽃』을 선택한다. 직장을 다섯 번 그만두고 아버지가 주는 생활비에 의존하나 가족과 왕래하지 않는 미스터 M( 안성기 분)은, 혼자 지내는 자신의 아파트 이웃들을 망원렌즈로 훔쳐보며 소일한다(발단의 설정과 연출은 히치콕의 < 이창 >(1954)을 절로 떠오르게 하는데, 최인호 원작소설의 첫 장 제목도 ‘이창(裏窓)’이다). 어느 여름날, 맞은 편 아파트로 이사 온 오선영( 장미희 분)에게 반한 그는 그녀를 스토킹한다. 중년 기혼남 김성두, 바람둥이 사업가 정준환과 차례로 사랑에 빠지는 선영을 남자들과 떼어놓으며 그녀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하는 미스터 M. 그러나 그의 편집광적인 사랑은 파국을 부른다. 출간된 『 최인호 시나리오 선집』(1987, 우석출판사)에서 남자주인공 미스터 M은 “월남전에서 뭔가 받은 충격으로 식물인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다. 한데 완성된 영화에서나,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존하고 있는 < 적도의 꽃 > 시나리오 원안과 심의대본에는 월남전의 흔적이 없다. 정신과 의사가 미스터 M을 문진하는 오리지널 시나리오 첫 장면은 M의 보이스오버로 시작하는 출판 시나리오나 심의 대본과 차이가 있으나, “명예와 욕망과 물질에 눈이 먼 사람을 경멸하”며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는 이방인”으로 자신을 일컫는 미스터 M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 참전 언급을 원치 않았던 검열 당국의 수정 지시를 따랐다기보다는, 1980년 이후 당대에 집중하려는 작가와 연출자의 의도가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짐작할 따름이다. 참전용사가 아닐지언정, 미스터 M은 여전히 프로이트가 진단한 바 “외상적 신경증”을 입은 주체로 남는다. 영화 초반, 열기가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가로수 그늘에 기대 하품하는 그의 몸짓은, 권태와 무료를 드러낸다기보다는 소리 없는 절규에 가깝다. 80년대라는 “모멸과 폭압”의 시간이 주는 고통을 견딜 완충재(프로이트는 이를 위해 “자극에 대한 방어기제를 재조정”하는 “불안”이 필요하다 했다)를 지니지 못한 그는, “수용의 임계치를 넘어 쾌락 원칙에 심각한 손상을 가하는 압도적인 외부의 충격”에서 비롯하는 “경악”을 괴로움 없이 체현한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복제판을 자신의 아파트 벽에 걸어둔 그는 선영을 순수한 사랑의 화신으로 여긴다. 그녀를 농락하고 모독하는 모든 이들을, 미스터 M은 “심리적 거리감”을 한순간에 지우며 망설임 없이 단죄하고, 자신의 기대에 어긋난 선영을 미련 없이 버린다. “주체와 대상의 가상적 경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신체와 세계를 연출”하지 못하는 미스터 M을 재현하는 안성기 의 얼굴 근육 쓰기와 말더듬이 연기는 탁월하다. 그를 동반하는 초?중기 배창호 의 전매특허 360도 카메라 트래킹은, 결말에 이르러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 이창 >의 제임스 스튜어트와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미스터 M의 강박증을 뚜렷이 그린다. 정신없이 쏘아댔다고 감독이 회상하는 붉고 푸른 조명, ‘국풍 81’이 낳은 스타 이용 의 ‘잊혀진 계절’을 작곡해 당대 최고의 대중음악가로 떠올랐던 이범희 가 담당한 발라드와 디스코를 오가는 스코어도 M의 심리를 끈끈히 엮는다. < 고래사냥 >(1985) 등으로 80년대 충무로를 뒤흔들 배창호와 최인호 , 안성기 “트리오”는 이렇게 만났다(지극히 아름다우나 남성의 시선 앞에 “한 송이의 허망한 꽃”일 뿐인 장미희 라는 배우가 욕망이 깃든 피와 살을 지닌 인간으로 육화하기 위해선, < 깊고 푸른 밤 >(1985)까지 기다려야 한다). < 적도의 꽃 >의 숨은 주인공은 아파트다. 최인호 는 이미 1971년에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공간을 다룬 「타인의 방」이란 소설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 영화는 아파트 이미지로 시작하고 같은 장면으로 끝난다. 들끓는 여름 모래톱 너머에 신기루처럼 솟아오른 아파트 그림자가 일렁인다. 이어지는 컷은 전지적 시점, 한강 변 아파트 전경을 살피던 카메라가 베란다를 거쳐 미스터 M의 집으로 들어간다. 당시로선 드물게 중앙난방과 욕실을 갖추었고 최대형 면적이 80평에 달했던 신흥 부촌으로, 1978년엔 특혜 분양 때문에 물의를 일으키기기도 했다는 이 아파트 벽에는 ‘現代’라는 검은 글씨가 또렷하다(감독의 전작 < 철인들 >을 상기하노라면, 이 공간은 더욱 복합적인 파장을 부른다). 압구정 현대 아파트 세 채를 빌려 찍었다는 영화 속 카메라는 아파트 단지와 베란다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며 인간의 눈높이를 벗어나 “새로운 토건 권력”이 굳혀지는 시점을 포착하는 시선이 된다. “시선과 응시의 교환이 빚어내는 욕망의 경제,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 위에 구축한 나르시시즘의 성채”인 아파트는 “도시-산업적 기술의 확산, 대규모로 진행된 사회적(성적) 관계의 해체, 대중 소비로의 이행이 실질적인 파괴와 결손을 초래하는 동안, 시선과 감각적 지각을 조직화하는 새로운 방식, ‘사물들’과의 새로운 관계, 모방적 경험 표현, 정서, 시간성, 성찰성의 다양한 형식”(미리엄 한센)을 보여주는 시대정신의 현현이었던 것이다.(박해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2011, 자음과 모음).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지속”이며 “정치적 보수화의 전초기지”이기도 했던 아파트 주민 미스터 M과, 역시 한창 개발 중이던 동부이촌동 양옥을 소유한 김성두, 토착 부촌 평창동 저택에 사는 정준환. <적도의 꽃> 속 남자들이 이루는 삼각형은, 1980년대 초 서울이라는 시공간에 거했던 어떤 이들의 몸과 정서, 욕망이 변하는 경로를 따라가게 하는 지도가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