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세이드 : 타임머신
- 감독
- 벤 솜보가트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자니 플린, 스테파니 레오니다스, 에밀리 왓슨, 마이클 컬킨
사진: “ Back to the future ”, IMDb 영화제작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게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지만, 영화계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세간의 우려가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구석으로 밀어둔 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아직 영화를 대체할 정도는 아니나 장편 영화의 일부 장면과 후반 작업에서의 역할을 보면 앞으로의 쟁점은 결국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더 가까워 보인다. 디에이징과 특정 장면 생성만 보아도,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영화 안으로 들어와 있다. 우려와 기대, 그 양가적 감정.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글이 다소 흩어져 보일 수 있겠다. 쟁점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아서다. 지금 영화가 맞닥뜨린 인공지능의 문제는 그만큼 단선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몇 갈래로 나누어 보았다. 1. 우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1985년 < 빽 투 더 퓨처 >에서 기술적 상상력과 대중적 서사 감각을 겸비한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타임머신 자동차의 불타는 타이어 자국과 번쩍이는 빛으로 시간 여행을 표현한 그였다. 당시 SF영화에서는 시각효과가 강조됐고, 저메키스는 서사 안에 시각효과를 정교하게 배치하며 그 일선에 섰다. <빽 투 더 퓨처> 중 9년 뒤인 1994년, 이번에 그는 < 포레스트 검프 >에서 다른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을 다루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려 보자. 구름 낀 하늘. 깃털 하나가 떠다닌다. 작고 하얀 깃털은 손가락 한 마디쯤 될 만큼 가늘고 여리다. 가장자리의 결은 반듯하지 않고 조금씩 흐트러져 있어, 바람을 만날 때마다 제 몸을 접는다. 공중에 떠 있을 때 그 깃털은 결코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한 번은 기울고, 다시 맴돌고, 또 한 번은 제자리에 머무는 듯하다가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진다. 깃털이 누군가의 신발에 닿는다. 깃털을 집어 든 남자, 포레스트다. 가방에 넣은 뒤, 그는 옆자리 여성에게 무언가를 건네며 말한다. “초콜릿 드실래요?” <포레스트 검프> 중 (사진: “ Forrest Gump ”, IMDb / © 1994 Paramount Pictures) 약 2분가량 이어지는 이 롱테이크 장면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됐다. 디지털 합성과 페인트 작업은 깃털의 움직임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처럼 보이게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기술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메키스는 포레스트의 삶을 감싸는 운명과 부유하는 시간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연출의 일부로 이 깃털을 배치했다. <빽 투 더 퓨처>에서 시각효과를 서사의 속도감 속에 밀어 넣었던 그가,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상징과 정서의 층위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제 최근의 이야기다. “3년 전만 해도 못 만들었죠” You couldn’t have made this movie three years ago. - The New York Times (2024), WIRED (2024) 재인용 2024년 저메키스가 < 히어 >를 선보이며 한 말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디지털 기술을 인물과 시간의 문제 한복판으로 밀어 넣었다. 톰 행크스와 로빈 라이트가 한 인물의 생애를 가로질러 직접 연기할 수 있도록 AI 디에이징이 활용된 것이다. <히어> 배우를 대상으로 한 AI 기반 디에이징 사용 전후 (사진: Brahma AI , © BRAHMA AI 2026) 영화에 사용된 기술은 Metaphysic Live라는 AI 기반 디에이징 시스템이다. 톰 행크스와 로빈 라이트의 기존 출연작 이미지를 바탕으로 머신러닝 모델을 학습시키고, 얼굴의 움직임과 피부 질감, 조명 조건을 분석해 필요한 연령대의 모습으로 실시간으로 변환했다. 배우들은 촬영 직후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달라진 얼굴을 확인하며 연기 방향을 조정했다. 저메키스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 인터뷰에서 이를 “결국 디지털 분장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아바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인물의 시간을 타임머신처럼 통과하도록 돕는 기술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말이다. 저메키스의 표현대로라면 이 영화는 3년 전만 해도 만들 수 없었다. 그 말은 곧 이 작품에서 인공지능이 선택지가 아니라 완성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공지능이 배우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의 연기를 더 먼 시간까지 확장했다는 데 있다. 배우의 몸짓과 말투, 시선의 결을 더 긴 생애 위로 펼쳐 보이게 했다. 이때 인공지능은 대체의 기술이라기보다 표현의 반경을 넓히는 기술에 가깝다. 어디까지가 보조이고 어디부터가 대체인지는 여전히 더 따져야 할 문제지만 말이다. 2. 학생 A가 영화제작 수업 과제를 두고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가 인공지능으로 과제를 했는데 결과가 꽤 좋았대요”라며 효용성을 앞세웠다가, “주제와 장르만 프롬프트에 넣으면 인공지능이 영화를 뚝딱 만들어줬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인공지능이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진 않는 거 같아요”라고 아쉬움을 토로하던 때였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는 교육 현장에서 빠르게 감지된다. 거대 자본의 스튜디오보다, 오히려 영화를 막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의 작업실에서 더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난다. 학교의 실습 현장에서는 그것이 훨씬 직접적인 질문으로 나타난다. 어디부터가 도움이고, 어디까지가 의존인지. 인공지능 기술로 영상 생성은 쉬워졌는데, 왜 영화는 아직도 쉽게 완성되지 않는가. A의 말이 흥미로웠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겼다. 더 빠르게, 더 쉽게, 더 그럴듯하게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은 분명 매력적인 도구였다. 그러나 그 학생이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은 효용보다 한계였다. 영화는 장면 하나를 생성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톤과 질감, 호흡과 리듬, 쇼트와 쇼트 사이의 연결이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영화가 된다. 인공지능은 영상 이미지를 만들어 줄 순 있어도, 아직 영화 전체의 문법까지 대신 책임져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교육 현장에서 더 선명해진다. 학생들은 누구보다 먼저 기술을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빨리 그 기술의 빈틈과 마주한다. 그 기대와 난점을 다음 대화에서 풀어본다. 필자 : 과제는 어떻게 되어가니? 학생 A: 찍은 장면들은 거의 정리됐어요. 그런데 중간에 달 장면을 넣고 싶어서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봤거든요. 달 표면에 혼자 서 있는 인물 컷이요. “SORA 2”가 생성한 이미지 학생 A : 그런데 편집하면서 붙여보니까 좀 이상했어요. 필자 : 뭐가 이상했어? 학생 A : 제가 직접 찍은 장면이랑 인공지능이 만든 장면이 질감부터 달라요. 인공지능 영상은 너무 매끈하고 깨끗한 느낌이에요. 카메라 움직임도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움직임이 너무 미끄러지듯 가요. 영상 이미지도 너무 사실적이라 제 영화 안에서는 좀 튀는 느낌이에요. “SORA 2”가 생성한 이미지 필자 : 장면 하나만 놓고 보면 괜찮은데, 영화 안에 들어오면 어색하다는 거구나. 학생 A : 맞아요. 그 장면만 따로 보면 멋있어요. 그런데 제 영화 안에 넣으면 혼자 다른 질감으로 떠 보여요. 색도 다르고, 어쨌든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요. 차라리 전부를 인공지능 영상으로 만들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필자 : 그럴 수 있지. 학생 A : 사실은 프롬프트만 잘 쓰면 해결될 줄 알았어요. 달나라 장면이 필요했으니까, 그 분위기만 비슷하게 뽑아주면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제가 상상한 장면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결과도 한 번에 안 나와서 여러 번 다시 생성해야 했어요. 필자 : 이 기술의 역설이지. 쉬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사용자의 판단을 요구해. 예전에는 찍을 수 없는 장면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만들어 놓고도 붙여보면 이상해지는 게 문제야. 더 섬세하게 써야 하는 거지. 학생 A : 그럼 아직은 인공지능을 쓰기 이른 걸까요? 필자 : 그렇게 볼 일은 아니고, 오히려 반대지. 이제는 쓸 수밖에 없어. 다만 질문을 달리 해야 해. 인공지능으로 만들 것이냐가 아니라, 네 영화의 문법 안으로 길들일 수 있느냐 로. 학생 A : 결국 인공지능이 다 해주는 게 아니라, 제가 더 많이 결정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필자 : 그렇지. 인공지능이 너의 상상력을 대신해 주는 건 아니야. 오히려 네 상상력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를 시험하는 쪽에 가까워. 영화는 선택의 예술이야. 무엇을 보여줄지, 무엇을 감출지, 어디서 컷을 나눌지, 어떤 리듬으로 밀고 갈지, 그런 판단은 아직도 우리의 몫이지. 학생 A : 보조 도구군요. 필자: 적어도 지금은 그래. 인공지능이 재료를 줄 수는 있어도, 그 재료를 어떤 의미로 묶을지는 네가 결정해야 해.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건 여전히 연출자의 판단이고, 인공지능은 그 판단을 대신하는 존재라기보다 보조하는 도구에 가까우니까. 3. 여기서, 질문이다. ‘인공지능의 파고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나?’ 영화의 표현 범위를 넓혀주는 도구가 인공지능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모든 도구가 그렇듯, 그것이 누구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일부 영화인이 인공지능을 경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기술은 빠른 속도로 노동의 자리를 흔들고, 창작의 책임을 흐리며,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까지 손쉽게 재가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2023년 미국 작가조합(WGA)과 배우노조(SAG-AFTRA)가 인공지능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도 그래서였다. 작가들은 인공지능이 대본을 쓰고 고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잠식할 것을 우려했고, 배우들은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 움직임이 동의와 보상 없이 복제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편리한 기술은 늘 반갑게 도착한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비용은 대개 가장 약한 자리부터 흔든다. 이 불안은 그래서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이다. 인공지능은 영화 안으로 거창한 방식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장면 하나, 목소리 하나, 배경 하나, 후반 작업 하나. 그렇게 작고 세세한 대체의 형태로 스며든다. 처음에는 보조 도구처럼 쓰인다. 그러나 반복되면 표준이 되고, 표준이 된 뒤에는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자리가 줄어든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는 것은 대개 이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 영화인이다. 그래서 이는 노동의 문제이고, 윤리의 문제이며, 결국 영화가 누구의 예술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문제다. 영화가 본래 집단 창작의 산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공지능의 도입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끝내 붙들고 싶은 것은 ‘완성할 권리’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역할이 더 커질 수는 있겠지만, 영화를 완성하는 일만큼은 끝내 우리의 몫이어야 한다. 영화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선택하는 예술이다. 장면을 생성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영화로 승인하고, 서사 안에 배치하고, 의미와 감정을 완성하는 일은 우리의 판단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어디까지를 기술에 맡기고 어디서부터 인간의 감각으로 되돌릴지 결정하는 권한 역시 우리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 영화에서 인공지능 활용의 핵심은 효용성이 아니라 통제다. 동의 없는 얼굴의 사용은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노동의 축소에는 정당한 보상이 따라야 하며, 작품을 최종적으로 승인할 권한은 끝내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 영화를 완성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존재 역시 결국 영화인이어야 한다. More Than 라이브 액션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이석창(강원대학교 교수, 영상제작자) l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이자 영상제작자. 무엇보다 영화를 좋아한다.
한국영화사에서 사극의 전성기는 1980년대였다. 하지만 ‘전성기’라는 표현은 이중적이다. 1980년대는 1970년대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한국영화 산업이 장기 침체로 접어든 시기. 사극은 1960년대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이 주도한 이후 충무로를 대표하는 ‘대작’ 장르였다. 그런데 1980년대에 오면, 사극은 과거의 위용에서 멀어지며 양적 팽창에 전념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에로티시즘 사극’이었다. 모두 ‘에로’를 지향한 건 아니었다. 전통의 올곧은 계승은 있었다. 사극의 서브 장르 중 하나인 ‘여인 잔혹사’는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 이두용 , 1984) < 자녀목 >( 정진우 , 1985) < 씨받이 >( 임권택 , 1987) 등의 수작들을 보유했다. ‘궁중 사극’의 흐름도 건재했다. 이두용 감독은 신상옥의 < 내시 >(1968)를 나름의 스타일로 뛰어나게 리메이크 했다. 신상옥 의 영향력은 여전했는데 그의 < 연산군 >(1961)과 < 폭군 연산 >(1962)을 잇는 < 연산군 >( 이혁수 , 1987)과 < 연산일기 >( 임권택 , 1988)가 등장했다. 계유정란을 다룬 < 사약 >( 김효천 , 1984), 당시 사대부와 왕실을 농락했던 여인의 이야기 < 어우동 >( 이장호 , 1985) 등도 만들어졌다. 임권택의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5)도 빼놓을 수 없는 ‘사대부 사극’이다. 배창호 는 < 황진이 >(1986)에서 미학적 실험을 했고, < 박철수의 헬로 임꺽정 >( 박철수 , 1987)도 당대 사극의 독특한 지점이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 <물레야 물레야> <자녀목> <어우동> <연산일기>. 1980년대 ‘A급 사극’의 계보. 여기까지는 1980년대 나름의 ‘A급 사극’ 리스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사극’, 즉 ‘B급 사극’, 좀 더 구체적으로 ‘에로 사극’ 이야기를 하려 한다. 1980년대 에로 지형도에서 사극이 처음부터 야한 기운을 얻은 건 아니었다. 1980년대 초엔 홍콩과의 합작이나 위장합작을 통해 만들어진 무협 사극이 쏟아졌고, < 팔불출 >( 고응호 , 1980)처럼 코미디나, 호러 장르 혹은 종교 영화 등과 결합되었다. 변화의 조짐은 1980년대 중반에 보였다. <어우동>과 < 변강쇠 >( 엄종선 , 1986)는 에로의 원투 펀치와도 같은 결정타였다. 특히 <변강쇠>는 모든 것을 규정했다. 이 영화의 변강쇠( 이대근 ) 이후 절륜한 정력을 지닌 거구들이 스크린에 횡행했으며, 옹녀( 원미경 ) 이후 독거미처럼 남성을 옭아매는 치명적 성욕의 소유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역사와 민속의 장이었던 사극은 바야흐로 적나라한 욕망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변강쇠>의 시작은 의외로 근엄하다. 18세기 영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변강쇠>는 이 영화의 의의를 설명하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성 윤리의 해학적 의미의 참뜻을 에로티시즘으로만 간과하려는 상업성을 탈피하면서, 그 시대의 유랑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을 서사적 영상미로 승화시켜 무분별한 성은 곧 자기 파멸이라는 교훈을 던짐으로써, 우리 고전의 진정한 의미를 오늘에 재조명하고자 한다.” <변강쇠>는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모든 것이었다. 이 영화는 변강쇠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옹녀의 유랑으로 끝을 맺는다. 다소 중언부언하는 서론이지만, 판소리 <가루지기전>을 원작으로 하는 <변강쇠>는 에로티시즘을 해학과 교훈의 방식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한다. 해학이라 한다면 정사로 산이 뒤흔들리며 옹녀 때문에 줄초상이 나 한 마을 남자의 씨가 마르는 식의 과잉된 성적 표현일 것이다. 한편 교훈이라면 술에 취해 장승을 뽑은 변강쇠가 신령에 시달리다 죽게 되는, 정력의 과시가 불러온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에로 사극은 교훈보다는 해학에 방점을 찍으며 < 고금소총 > 시리즈( 지영호 , 1988~95) < 호걸 춘풍 >(이혁수, 1987) < 이조 춘화도 >( 박호태 , 1988) < 껄떡쇠 >( 김진국 , 1989) < 후리꾼 >(최거영, 1991) 등 ‘호색한’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방사를 벌이는 영화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에로 사극의 위대한(!) 점은 단지 남자의 욕망만 만족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변강쇠>에서 더욱 흥미로운 캐릭터는 옹녀다. 변강쇠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딜레마는 언제나 욕정의 결핍 상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녀와 관계를 가진 남자는 모두 죽는다. 남성의 죽음을 담보한 섹스의 히로인 옹녀. 그녀는 언제나 겁탈이나 보쌈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수절 과부의 반대편에 있는 공격적 섹슈얼리티의 여성이다. <변강쇠>의 첫 장면, 옹녀는 첫날 밤에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남성의 옷을 벗기고 불을 끈다. 첫날 밤 장면은 과거의 사극에서 숱하게 반복되었지만, <변강쇠>의 옹녀는 그 관습을 과격하게 파괴하는 적극성을 보여주며, 이어지는 정사 신에서도 그녀가 섹스를 리드한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과 궁합이 맞는 남자를 직접 찾아 나선다. 이대근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간판 스타였다. (왼쪽부터) <호걸 춘풍> <고금소총> <가루지기>의 이대근. 변강쇠뿐만 아니라 옹녀 캐릭터도 이후 후손들을 거느리며 이른바 ‘궁합 장르’, 즉 강한 양기와 음기를 지닌 남녀가 드디어 만나 완벽한 궁합을 이룬다는 내용의 영화들이 등장한다. < 속 변강쇠 >(엄종선, 1987) < 변강쇠 3 >(엄종선, 1988)를 비롯 < 가루지기 >( 고우영 , 1988) < 합궁 >( 남기남 , 1988) < 고금소총 2 >(지영호, 1990) < 색녀도 >(박호태, 1990) 등이다. 옹녀가 영감을 준, 에로 사극의 또 다른 흐름은 ‘유랑녀 서사’다. 이것은 <어우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마치 ‘호스티스 멜로’를 연상시킨다. 가난, 집안의 몰락,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공동체의 추방…. 여러 이유로 떠도는 여성은 결국 몸을 팔게 된다. 여성의 운명성을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컨셉트로, < 됴화 >( 유지형 , 1987)는 아예 저주를 타고난 여성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후 < 호호전 >(박호태, 1988) < 들병이 >( 유진선 , 1989)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에로티시즘’이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있긴 했지만, 에로 사극 역시 사극 장르의 한 갈래였고, 그런 의미에서 시대적 테두리를 벗어나진 못했다. 즉, ‘계급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이 장르의 많은 것을 규정했고, 여기서 만들어진 긴장 관계가 오히려 에로티시즘 강화하기도 했다. 이른바 ‘씨받이 장르’는 대표적이다. 반드시 남자를 통해 대를 이어야 했던 조선 시대, 양반들은 대를 잇기 위해 소실을 두거나 오로지 아들 생산을 위한 도구인 ‘씨받이’를 두곤 했다. 이 설정에서 수많은 변주가 이뤄졌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대표적. <변강쇠> 시리즈의 엄종선 감독이 만든 < 사노 >(1987)은 숨겨진 수작인데, 나이 든 양반이 하녀 오월(원미경)를 건드리자, 그녀와 결혼을 약조한 머슴 들판(이대근)은 오월을 데리고 도주한다. 이외에도 < 잦은 방아야 >( 김병기 , 1989) < 살꼬지 >( 김인수 , 1989) < 요화경 >(박호태, 1988) < 소녀경 >(박호태, 1992) 등이 있으며 < 빨간 앵두 > 시리즈는 3편(박호태)에서 갑자기 사극으로 선회해 씨받이 이야기에 <변강쇠> 콘셉트를 결합한다. <변강쇠>로 신드롬을 일으킨 엄종선 감독, 이대근, 원미경이 다시 만난 <사노>는 숨겨진 수작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서늘하면서도 통렬하다. 씨받이만 있었을까? 아니다. 대를 잇지 못하는 집안에서 그 문제가 남자 쪽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마님과 은밀하게 통정할 ‘씨내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주로 튼실한 머슴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이 분야 최고의 걸작. 하지만 이후 에로틱해지면서 약간은 <변강쇠> 톤으로 변했고, <소녀경>에선 씨받이와 씨내리가 관계를 맺는 단계에 이른다. 이외에도 < 홍두깨 >( 김준식 , 1990) < 씨내리 >(남기남, 1993) 등이 있다. <씨받이>처럼 여성의 육체(자궁)을 어떤 도구로 이용했던 과거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도 있었지만. 씨받이와 씨내리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 자극적 캐릭터로 인해 대부분 선정주의와 소재주의로 치달았다. 그러면서 개척된 분야가 이른바 ‘회춘녀’ 장르다. < 어울렁 더울렁 >( 차성호 , 1986)은 그 시작. 이른바 ‘목밀녀’, 쉽게 말하면 ‘대추녀’ 순이( 김문희 )가 주인공이다. 대추녀는 양반들이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둔 스무 살 정도의 하녀로, 아침에 여성의 그곳에 대여섯 개의 대추를 넣었다가 저녁에 꺼내먹으면 젊은 여성의 기를 받아 정력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씨받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육체를 도구화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종종 몸을 묶는 SM 관계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소 변태적인 설정이지만, “올해 같은 흉년에 살아남기가 쉬운 줄 아느냐!“라는 양반의 호통 앞에선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유랑녀’처럼 ‘대추녀’도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 목밀녀 >(차성호, 1988) < 회춘녀 >( 방순덕 , 1989) < 춘화춘풍 >( 최기풍 , 1990) <소녀경> 등 적잖은 영화들이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조 춘화도>나 <고금소총> 같은 영화들인데, 이 영화에서 긴 세월 동안 병을 앓던 여성들은 섹스를 통해 그 병을 치유한다. ‘회춘녀’의 반대편엔, 여성의 묵은 성욕을 해소시켜 주던 ‘육봉남’들이 있었던 셈이다. (왼쪽) <홍두깨>는 씨내리 장르의 영화다. (오른쪽) ‘대추녀’ 장르의 시작인 <어울렁 더울렁>. 이 장르는 종종 SM 컨셉트로 흐르곤 했다. 가부장적 계급 사회가 만든 또 하나의 캐릭터는 수절하는 젊은 과부다. 언제나 은장도를 꺼내 들고(하지만 자결하진 못한다), 열녀문 기둥을 어루만지는(결국 그것은 무너지게 된다) 그녀들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가장 모순적 인물들이었는데, 그들은 시대의 규율에 의해 한없이 욕망을 억눌러야 했지만 결국 본능을 선택한다. < 마님 >(김인수, 1987)는 이 분야의 전형적인 작품. 마님(김문희)은 몇 년 째 수절 중이며 열녀문을 하사 받은 정숙한 여자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절을 찾아 불심에 호소하지만 욕망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하인( 백일섭 )은 마님을 사랑하지만 이때마다 마님은 “이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게냐!” “그래도 이놈이!”라며 물리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얼싸안게 된다. 김인수 감독의 <마님>. 마님과 머슴은 결국 맺어진다. 그러나 과도한 억압은 반드시 저항과 전복을 낳게 된다. 욕망은 절대 억압할 수 없기 때문인데, < 사방지 >( 송경식 , 1988)은 레즈비어니즘을 통해 이러한 테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흉악범과 광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방지( 이혜영 )는 겉모습은 여성이지만 남성을 지닌 양성구유다. 절에서 성장하는데 예불 드리러 오는 청상 과부 이소사( 방희 )는 사방지를 거두어 몸종으로 데려가지만, 그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섹스 파트너로 삼는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으로 끝나는데 <사방지>는 수절하는 마님, 계급 사회의 모순, 여성의 운명성 같은 사극의 관습을 계승하면서도 파격을 추구하며 ‘여인 잔혹사’의 서사에 균열을 낸다. 이외에도 < 이조 여인숙명사 청상계 >( 윤석봉 , 1991)나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양병간 , 1993)처럼 과부의 욕망을 해방시킨 ‘안티 열녀문’ 콘셉트의 사극도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계급 사회 속에서도 욕망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들이 만만치 않게 존재했다는 점이다. 양반집 마님이 허벅지에 바늘을 찌르며 긴긴 밤을 외롭게 보낼 때, 옹녀나 도화 같은 ‘타고난 성적 파워’를 지닌 여성이나 무당이나 주모 혹은 하녀들은 거침 없이 방으로 남성을 끌어들였다. 1980년대 가장 파격적인 사극 <사방지> 마지막으로 언급할 이 시기 에로 사극의 특징은 느닷없는 판타지다. < 변강쇠 2 >(엄종선, 1987)에서 변강쇠(김진태)가, <가루지기>에서 옹녀(김문희)가, 소변으로 폭포를 만든 후 수많은 영화들이 이 엄청난 과장법을 예사롭지 않게 모방했다. 시간 파괴의 경향도 흥미로운 지점인데, <호걸 춘풍>에서 춘풍(이대근)은 기생들과 디스코를 추며 “백 년 후에 유행할 춤”이라고 말하고, < 장미 속의 살모사 >(강구연, 1989)의 머슴 살모사( 조형기 )는 ‘라 밤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를 추기도 한다. 강구연 감독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에서도 이런 파격을 시도하는데, 조선 시대 여인들이 캉캉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 고금소총 3 >(지영호, 1995)과 < 애마와 변강쇠 >( 김문옥 , 1995)는 타임머신 콘셉트를 이용해, 배지기나 변강쇠 같은 캐릭터가 현대의 필리핀과 서울에 나타나 자신의 파워를 과시한다. 1980년대 사극의 파격적인 상상력들. (상단) <빨간 앵두 3>과 <애마와 변강쇠>. 현대로 온 배지기와 변강쇠. (하단 왼쪽) <장미 속의 살모사>에서 기생은 현대식 속옷을 입고 있다. (하단 오른쪽)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의 캉캉 춤. 당대 에로 사극의 시그니처 숏인 ‘방뇨 신’. (상단 왼쪽) 그 시작은 <변강쇠 2>였다. (상단 오른쪽) <고금소총>에서 달비의 강력한 방뇨. (하단 왼쪽) <합궁>에서 남자의 힘찬 방뇨와 그것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 (하단 오른쪽) <미지왕>(1996. 김용태)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방뇨 신을 패러디한다. 어쩌면 1980년대 충무로 지형도에서 에로티시즘 사극은 가장 과격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가장 욕망에 충실했으며,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작품을 양산했던 장르였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기획 영화가 등장하면서 사극은 10년 가까이 종적을 감추었고,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에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이재용 , 2003)나 < 왕의 남자 >( 이준익 , 2004) 등을 통해 ‘웰메이드’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과거 ‘B급 사극’의 저렴하면서도 진솔한 상상력이 되돌아오진 않았고, < 가루지기 >( 신한솔 , 2008) 정도의 시도가 있을 뿐이었다. + 이로써 작년 말부터 시작된 1980년대 장르 영화에 대한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그리고 가끔씩 피드백을 주셨던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지면을 열어주신 한국영상자료원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콘셉트로 옛날 영화들을 정리할 날을 기약하며, 10회에 걸친 연재를 닫는다.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에 바로 지금 잠시 멈추어 서 보자. 나는 지난해에 몇 편의 영화를 보았다. < 아가씨 > 혹은 < 밀정 >그리고 < 덕혜옹주 >와 < 해어화 >. 그런 다음 약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 자리에 < 암살 >이 떠오른다. 여기에 변주에 가까운 < 기담 >과 < YMCA 야구단 > < 그림자 살인 >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 뒤따라온다. 물론 맨 앞에 < 모던 보이 >가 있다. 올해에는 강제징용 간 조선인들이 노역에 지친 나머지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 군함도 >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경향인지 아니면 시대정신인지 혹은 일시적인 유행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염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부정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는 중이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자 갑자기 일제 강점기 문화에로 인문학은 관심을 돌렸다. 좋은 일이다. 나는 언제나 일종의 단절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이 시간적 단층을 언젠가 역사의 담론이 채워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담론들은 단층을 역사화 하는 대신 낭만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메이지유신이 가져온 일본의 근대화는 종종 식민지 경성에 믿을 수 없는 문화적 순간을 마련하였다. 나는 1930년대에 파블로 카잘스와 자크 티보, 알프레드 코르토로 이루어진 카잘스 트리오가 경성을 방문했었다는 기사를 읽고 어떤 쇼크를 받았다. 경성의 ‘모던 뽀이’들과 ‘모던 껄’들은 전설적인 카잘스 트리오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가졌었다. 어쩔 수 없는 탄식. 눈앞에서 티보의 저 신비로운 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니, 아니 코르토의 전성기의 미스 터치의 건반을 직접 볼 수 있었다니, 그리고 카잘스의 춤추는 것만 같은 첼로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니, 상상할 수 있겠는가. (다소 역겨운 표현이지만) 식민지 신민들의 과분한 기쁨.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쉬 현악사중주단이 경성에 와서 베토벤 현악 사중주의 레퍼토리를 연주했었다. 이 악보를 역사상 가장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었던 단체의 연주로 들었던 세대. 21세기의 우리는 그걸 고작해야 SP 복각음반으로 수 없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하면서도 도대체 정말 그들의 음색은 어떠했을 지 상상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그걸 들으러 다닌 ‘뽀이’들과 ‘껄’들은 친일분자들의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이미 역사의 저 너머로 스러져버린 조선의 정체성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었을 것이며, 풍문으로 전해온 청산리 눈밭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36년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은 다음 미국에 의해 해방되자 소설가 이광수가 했던 유명한 한 마디. “그렇게 빨리 해방이 될 줄은 몰랐다”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 말은 수없는 변주의 버전으로 식민지 강점하를 배경으로 한 해방 ‘이후’ 영화에서 마치 알리바이처럼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나는 먼저 한계를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36년을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말은 덧붙이고 싶다. 여기엔 아직도 설명되지 않은 (어쩌면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밀정> (김지운, 2016) <암살> (최동훈, 2015) 한국영화사에는 일제 강점기 36년을 다룬 영화들의 두 시기가 있다. 하나는 1960년대 말에서 1979년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지금이다. 나는 앞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전기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고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포스트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겠다. 그 둘의 차이는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먼저 1960년대에 만들어진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결정적 차이. 한 쪽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 시대와 직접 맞대면하고 살아보았고 다른 한 쪽은 양쪽 모두 그 시대를 교육을 통해서 학습했다는 사실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해보고 싶다. 살아보았다, 라는 거의 절대적인 차이. 한 쪽은 영화를 보는 시각적인 리얼리티에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이 포함되고 다른 한 쪽은 지식의 상태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물론 경험과 지식의 차이를 단순하게 삶의 문제로 치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개입한다. 살아본 사람이 대상을 관념화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만큼 똑같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거리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영화에서 재현의 표식들이 어떻게 공유되었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경험이라는 네트워크의 토대를 물어보는 것이다. 별다른 해독을 요구하지 않는 기호들의 기억. 게다가 더딘 근대의 풍경은 아직까지 일제 강점하의 생활을 재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 말뜻은 일제 강점하의 이미지와 말이 여전히 일상 안에 머물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1970년대에 영화를 만들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촬영 팀은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얼마든지 자신들이 살았던 시간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지에서 기억은 지속이라는 흐름 안에서 머물고 있다고 일깨워준 베르그송의 조언을 잊으면 안 된다. 순수 지각없이 표상이 성립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 없이 세워진 포스트 식민지영화들의 향수들이 그리워하는 순수 지각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여기에 좀 더 복잡한 역사적 논점이 기다리고 있다. 1980년을 경계로 갑작스러운 부동산 산업은 거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그 흔적을 폭력적으로 지워나갔다. 여기에 역사의 트라우마에 대한 국가적인 말소 따위란 없다. 오직 자본주의 경제학의 논리만으로 한국사회의 풍경을 바꿔나갔다. 그런 다음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일제 강점하를 오로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부채 위에 세워진 채 정책적으로 편향되고 부정확한) 자료와 학교 제도의 교육을 통해서만 학습한 세대였다. 그건 만드는 쪽도 그렇고 보는 쪽도 그렇다는 뜻이다.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의 풍경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기호이며 사진을 경유하여 재현된 이차 자료들이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경험이 매개되어 있지 않은 지식의 한계 속에서의 인공적인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더도 덜도 아닌 < 아가씨 >. <아가씨> (박찬욱, 2016) 임권택 을 설명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종종 과도하게 (이런 표현이 용서된다면) 유물론적 경험론에 사로 잡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지금 이 표현을 엄밀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화가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건드릴 때마다 거기에는 위태로울 정도로 확신에 찬 어떤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거기서 감도는 어떤 정서, 어떤 추억, 어떤 감흥, 어떤 기억, 어떤 흔적, 어떤 시간. 아니 차라리 누군가. 그런 다음 임권택은 이 시간의 선을 망쳐버린 역사라는 법칙 앞에서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져가는 섬광 같은 순간을 붙잡기 위해 애를 쓴다. 임권택의 영화가 아름답다면 그것은 가련한 실패의 수단으로 시청각 기호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만 이 무자비한 목적론적 설명. 나는 < 왜 그랬던가 >를 말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첫 번째 시기의 일제강점하를 무대로 한 전기 식민지 영화만을 건드려볼 생각이다. 그러면서 이따금 바로 지금 여기의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을 호명할 것이다. 상황을 먼저 설명하겠다. <왜 그랬던가>는 그때 만들어진 거의 하나의 제도적인 장르라고 불릴만한 일제 강점기 독립군 영화중의 한 편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이 영화들은 인기가 없었다. 이 영화들의 대부분은 마지못해 만들어졌다. 박정희 제3공화국은 북한과의 이데올로기 경쟁 속에서 두 가지 이념을 들고 나왔는데 하나가 (물론) 적대적인 반공주의였으며 다른 하나가 맹목적인 민족주의였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가까이 있었고 불씨를 안고 있는 휴전은 반공을 내세워서 민주주의를 향한 어떤 정치적 저항도 무력화시켰다. 그러는 한편 민족주의 이념 전파는 둘로 나뉜 한반도에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권력이 헤게모니 장악을 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 되었다. 1960년대 남한 민족주의는 단군의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적 서사(‘우리는 하나다’)와 일제 강점하의 식민지 지배라는 다른 민족에 의한 침략의 경험을 경유시켜(‘소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북한은 또 다른 식민지이다’, 라는 정식화. 그래서 북한을 괴뢰(傀儡)정권이라고 불렀다) 상상적 공동체로 접합시킨 이데올로기였으며 사실상 그것이 변형된 파시즘이라는 것을 드러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정책 수행과정에서 문화부는 영화를 앞세워 대대적인 이념 홍보를 했으며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보급되기 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주기 바란다) 영세자본과 탈세, 사실상 암시장 구조에 가까운 배급 체제를 갖춘 그 당시의 한국영화는 검열과 지원 정책이라는 채찍과 당근에 길들여져 정부가 요구하는 것을 순순히 수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힘세고 나쁜 일본, 힘없는 착한 조선으로 단순하고 도식적으로 이분화 되었다. 그런 다음 기괴할 정도로 이 과정에서 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수사로 망설임 없이 가혹한 고문을 개입시켰으며 종종 이 장면에서 여자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육체를 포박당한 채로 전시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훼손당하면서 변태적인 관음적 시선의 에로틱한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소름 끼치게 만드는 순간은 유교를 내세운 검열이 과도할 정도로 성적인 묘사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가위질을 하다가도 일제 강점하의 고문장면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해질 때이다. 이를테면 < 아가씨 >의 관음적 마조히즘의 전시와 < 밀정 >에서 잡혀온 다른 ‘남성’ 독립 운동가들을 제쳐놓고 유일한 여자인 연계순을 과도할 정도로 가혹하게 고문하는 장면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그리고 이 장면들은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간극이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들의 논점으로 돌아가자. 여기서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일제강점하 식민지 이야기를 다루는데 아무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건 만드는 쪽도 그렇고 보는 쪽도 그렇다. 남한은 프랑스와 달리 해방 이후 부역자들을 심판하는 일에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만이 부를 성공적으로 축적했다) 그래서 일제 강점하를 다루는 것은 언제나 현실적으로 불편한 일이 되었다. 한국근대사에서 해방은 친일부역자들의 승리의 역사이다. 여기에 복잡한 계산이 끼어든다. 사실상 이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역사를 다룬다기보다는 1960년대 박정희 체제 혹은 1970년대 유신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 블록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가에 무조건 복종하는 민족주의 이념의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어떤 이해관계에 앞서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해방 ‘이후’의 국가에 관한 충성을 어디서 시작하건 동일한 결론에로 이르는 필연적인 정의의 진리인 것처럼 위장시켰다. 그들은 항상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다음 자발적으로 희생을 받아들였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은 포스트 식민지영화들조차 이런 희생양의 논리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보는 것은 우리의 학습 과정이 식민지 강점하의 지식이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해방 이후 이승만-박정희 체제라고 불리는 교육 프로그램이 얼마나 끈질기고 악랄하게 뇌에 달라붙어있는 것인지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이미지 서사들이다. 이를테면 < 밀정 > 혹은 < 암살 >. 여기에는 어떤 전도가 있다. 이 전도를 이론화 시키는 것은 이 지면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지만 정식화시킬 필요는 있다. 이때 이 정식은 일종의 도착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내 선택이 옳기 때문에 내 민족을 위해 희생한다, 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내 민족을 위해 희생하기 때문에 내 선택이 옳다, 라는 착각에로의 자리바꿈은 나를 국가 앞에 완전히 굴복시키기기를 요구하는 유신정권의 파시스트 정책에 완전하게 부합하는 문화적(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훈련과정의 반복이다. 나는 이 기괴한 정식을 들고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던 세대의 전기 식민지 영화에 대해서 질문해보려고 한다. 「마록열전」 그리고, 그리고 반드시 여기에 셈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은 < 왜 그랬던가 >를 만들었던 해이다. 1975년 11월 15일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그 해 1월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통과되었고 4월 8일에 긴급조치로 인민혁명당 재건위 관련자를 체포한 다음 대법원 판결을 내리고 8명을 채 하루가 되지 않아 사형 집행했다. 5월에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었고 온 세상이 숨을 죽였다. 민방위를 창설하였고 무시무시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해 이만희 는 < 삼포가는 길 >을 편집하다가 편집실에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 바보들의 행진 >은 검열로 거의 사지절단 당하다시피 했다. 가장 나쁜 상황. 임권택 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여기서 멈춰야 한다. 나는 지금 전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비평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 순간 왜 당신은 잭 런던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야 했나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그저 세간에서는 새마을 국책영화를 만들고 B급 다찌마와리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당신을 부르던 시간에, 그저 혼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내면의 풍경 앞에서, 어쩌면 사정없이 조여들어오는 연좌제의 두려움 앞에서, 왜 위험하기 짝이 없게도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만들어야 했나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왜 그랬던가>를 보다가 그 문제의 ‘桃苑茶室’에서 김참의의 아들이 송주희에게 잭 런던의 책을 건네주는 순간 무언가에 감전된 것만 같은 쇼크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아마, 당신도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족보> (1978) <왜 그랬던가> (1975) 나는 몇 번이고 같은 자리로 돌아와서 임권택 의 영화들이 서로를 이루는 방식에 대해서 종종 (데리다의 멋진 표현을 빌려) 서로 대리하거나 보충하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토대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 한다.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종합이란 없다. 그는 자기의 내부를 모순된 사태 그 자체로 내버려두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종종 영화들 사이에서 약간 의아할 정도로 이 영화가 저 영화의 무언가를 폭로하는 듯한 거울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이때 대부분 이 문제를 앞으로만 밀고 나아간다. 나는 오히려 반대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어진다. 그 자리에 놓인 영화중의 하나가 < 왜 그랬던가 >이다. 임권택의 영화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비평은 <왜 그랬던가>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는 숨은 걸작, 같은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왜 그랬던가>가 없었다면 < 족보 >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두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반복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단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만이 아니다. 두 영화는 모두 친일부역자였던 아버지가 (서로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일련의 시련을 겪으면서 죽음을 대가로 치르면서까지 자기보다 소중한 그 무언가를 지키려고 한다. 같은 말이 반복. 자기보다 중요한 그 무언가. <왜 그랬던가>의 일본 경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동포를 밀고하는 마영과 <족보>의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수원 유지인 설진영은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서로 전혀 다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아가면 그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내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과 바꾼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한 과정을 거쳐 같은 결론에 이른다. 심지어 <왜 그랬던가>에는 이야기의 진행과 아무 상관도 없이 조선 총독부의 경감이 기노시타 형사를 세워두고 조선 도자기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경감은 감탄을 하면서 “조센징들이 우리들보다 월등히 앞섰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라는 대사를 한다. <족보>의 설진영은 자살하기 직전에 도자기를 정성스럽게 정리한다. 둘 사이의 유사점은 주인공에서 멈추지 않고 마치 서로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듯 이상한 곳에서 반복된다. <왜 그랬던가>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송주희가 일본 형사들에게 고문당하는 것을 마영은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족보>에서 딸의 약혼자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설진영을 핍박하기 위해 붙들려가 고문을 당한다. 다소 가혹한 표현이지만 그들 자신은 고문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은 동일하게 그들을 자발적인 죽음에로 이끈다. 여기서 왜 구경꾼들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이때 나는 다소 기이하게 반문해보고 싶어진다.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차라리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임권택이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은 무엇일까. 그런데 그 무언가는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동일한 보물로 취급될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 보물은 해방이 되자 거의 돌아보지도 않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을까. 혹시 여기에 전기 식민지 영화(들)의 어떤 수수께끼 같은 핵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이 질문에 대해서 임권택 은 < 왜 그랬던가 >에서 거의 하나의 정식화와 같은 대답을 제시한다. 마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하나의 조건에 놓여있다. 그것은 물론 일제 강점기에 놓여있는 그의 조국이다. 마영이 체포되어 감옥에 끌려 갈 때에도 세상에는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일은 마침 그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영의 거의 유일한 소망대로 그의 아들은 경성제국대학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받는다. 그러므로 마영의 변화는 외부 조건의 변화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의 어떤 요구에 따른 것이다. 어떤 정신적 신호. 그리고 응답. 이때 그 설명을 단순하게 마영의 신념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렇게 말해버린다면 차라리 이건 신념이라기보다는 변덕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 어떤 조건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영의 변화를 주변의 누구도, 심지어 그의 가족들조차, 이제까지 아버지를 경멸했던 그의 아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마영은 이 순간 이제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속적 성공의 거의 문턱 앞까지 가까스로 도달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걸 자포자기하듯이 버린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위가 결국에는 실패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무엇이 마영을 이기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삶으로부터 도무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희생의 선택에로 이끄는 것일까. 마영이 희생을 한다고 해서 독립운동의 큰 사건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국면이 전환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다. 마영은 민족, 과 같은 거대한 담론에는 끝끝내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것이 임권택의 영화가 그 주변의 전기 식민지영화들과 결별하는 지점이다. 역사 앞에서 좀 더 냉정하게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 식민지로부터 독립운동을 통해서 안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전쟁에 항복함으로써 바깥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얻어진 것이다. 게다가 <왜 그랬던가>의 인물들에게는 주어진 조건에 대한 어떤 외부적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임권택은 이들의 세계를 어떤 가능성으로부터도 차단된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끊임없이 전선을 확장하고 지칠 줄 모르는 전쟁을 했지만 마영은 세계의 새로운 질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전혀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혹하게도 객관적으로 마영은 이 상황에서 그저 희생당하는 것이다. 객관과 주관 사이의 서로 넘을 수 없는 간극.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선택은 오로지 그 자신을 위한 결정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이행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마영이 자신의 정신적인 매트릭스 자체를 현실적인 조건으로부터 그 무엇인가의 환상에로 옮겨놓은 것이다. 마영은 왜 현실로부터 환상에로 자발적으로 이행하는 것일까. 가장 쉬운 대답은 마영이 윤리적 결단을 내린 다음 그 심연을 횡단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론은 간단하다. 그렇다면 왜 해방이후에 임권택의 주인공들은 동일한 행위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 대답은 전기 식민지영화들, 그 영화들 모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임권택은 오직 여기서만 성립하는 셈을 치루면서 그것이 보물과 바꿀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결단을 내리는 중이라는 것이다. 마영 자객 그 보물은 무엇일까. 그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약간 장황하게 이야기의 윤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영은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일본 경찰에게 밀고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리 빼돌리며 양쪽에서 돈을 챙기는 박쥐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마영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서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부끄러운 줄 모른다기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기 자신을 위한 알리바이가 있다. 알리바이? 그렇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의 입장. 물론 그 자신도 자기가 무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죄의식을 성공적으로 떠넘긴다. 그때 그의 죄에 대한 책임은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 그의 아버지에게 있다. 마영은 한일합방에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쳤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다. 영화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분노한 마영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 그가 살아가는 세계의 밤. 박쥐가 마음껏 날아다니는 시간. 이때 박쥐는 오로지 자기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치 자기의 망친 삶의 원인을 향해서 복수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만일 그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주변에 자기를 노리는 수많은 자객들에게 쫓기면서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한다. 마영은 지금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는 중이다. 첫 시퀀스가 끝나고 집으로 귀가하면서 그를 뒤쫓는 자객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런 다음 자객은 내내 그의 뒤를 쫓으며 기회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이 일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일말의 후회도 없이 수행하는 중이다. 무엇이 그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 임권택 은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더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단순해보이지만 그의 삶 전체 내내 진행되어왔던 그 무거운 그림자와의 투쟁. 마영이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배신하고 밀고하는 것은 역사의 이치를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망친 자기 삶에 대한 보상의 요구이다. 약간 따분하지만 좀 더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영의 행위는 아버지의 결정으로 자기 삶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을 과정과의 주관적인 인정투쟁이며 역사의 객관적인 진행을 외면하고 자기 서사의 내면화로 재도식화 해나가는 퍼포먼스이다. 이때 그 밑바닥에는 애처로운 호소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버지, 왜 당신은 당신의 아들의 앞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아들이 살아야 할 조선이 한일합방이 된 다음 식민지라는 사실이 되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걸 정말 몰랐나요. 일본 식민지가 되었을 때 당신의 아들은 어떻게 견뎌야 하나요. 아버지의 침묵. 마영의 아버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이미 마영에게 오직 부정하는 것 이외에 대결할 방법이 없는 대상이 되었다. 이때 이 모습은 마영의 절반이다. 그는 집에 귀가하자마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애로운 아버지가 된다. 그런 다음 자신의 아들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기만을 바라면서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잠시 후에 마영이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으는 이유가 아직 합격하지도 않은 아들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이유를 서둘러 충족시키려는 이 간절함. 이때 마영의 행위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행하지 않은 것의 정확한 반복이다. 혹은 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의 재현이다. 나는 내 아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럴 뿐만 아니라 그걸 위해서 내가 무얼 해야 하는 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므로 그걸 해야만 해요. 만일 이것을 마영이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행위라고 읽으면 그건 표면만을 건드린 것이다. 정확하게 마영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하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데까지 밀고 나간다. 이 부정적 동일화.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서사와의 동일화. 이때 마영의 동일화는 보편 역사로부터 떨어져 나와 특수하고 개인적인 서사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반대로 이 서사가 마영을 포획하고 그 안에서 텅 빈 서사의 공백을 메우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 비극은 마영이 객관적인 현실 속에서 가상의 대리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그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텅 빈 공허 안으로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도 내 청을 들어주시오.” 일본인들에게 폭행 당하는 마영의 아들 “아버지, 이야기나 할까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중단 갑작스러운 에피소드. 마영의 아들은 합격통지서를 받아오던 날 술에 취해서 느닷없이 아버지에게 질문한다. “나도 아버지 부탁대로 했으니 아버지도 내 청을 들어주시오.”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나는 개의 자식으로 살으리오까, 늑대의 자식으로 살으리오까?” 물론 잭 런던의 책을 빌린 질문이다. 이때 이 책을 읽은 적이 없는 마영은 이 질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아들이 술 취해 하는 소리로만 생각할 뿐이다. 바로 다음 시퀀스. 마영의 가족은 함께 경복궁에 나들이를 간다. 여기서 백주 대낮에 근정전 앞에서 오줌을 싸는 아이를 수수방관하는 일본인 엄마에게 마영의 아들은 예의를 갖추어 야단을 친다. 하지만 이것을 모욕이라고 생각한 일본인 엄마는 다른 일본인들을 끌고 와 마영의 아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다. 자기 아들이 폭행을 당하는 꼴을 본 마영이 달려가 말리지만 그들은 함께 가세한 일본인들에게 그저 무기력하게 당할 뿐이다. 그런 다음 이상한 씬이 이어진다. 아들은 이불에 누워있고 마영은 벽에 기대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아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누우세요, 아버님도” 그 말을 듣고 마영은 옆 자리 이불에 눕는다.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이야기나 할까요” 임권택 은 매우 공들여 연출하다가 갑자기 여기서 쇼트의 진행을 중단시킨다.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마영이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지, 아니면 한 밤중에 부자지간에 언성을 높였는지, 그도 아니면 이야기는 중단되고 잠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임권택은 이 결정적인 순간을 하나의 블랙홀로 만들어버린다. 아마 보물은 그 블랙홀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임권택이 보물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마스크를 쓴 마영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영은 그 다음 날 경찰서로 출근하면서 입가에 난 구타 흔적을 감추기 위하여 큰 마스크를 쓴다. 이때 이 마스크는 동시에 밀고가 어제까지의 일이었던 마영이 그 행위를 거절하는 하나의 기호처럼 읽힌다. 그런 다음 마영은 적극적으로 자신이 이제까지 밀고 대상으로 삼았던 김참의 아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독립운동을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갑자기 민족에 대해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임무를 깨달은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는 그런 순간이 없다. 다만 이건 마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제스처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용으로는 반대이지만 형식적으로 이 행위는 이제까지 마영이 해온 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다만 그 방향이 세 개의 씬을 사이에 두고 반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서 까다로운 운동이 발생한다. 무엇을 하려는 지는 알겠다. 그런데 마영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대립의 운동에 대해서 먼저 그 성격을 살펴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마영은 이제까지 부정해온 것을 긍정하면서 긍정해온 것을 부정하는 중이다. 이때 목적어는 민족이나 독립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아들 사이를 매개하는 텅 빈 자신의 자리이다. 그는 이제까지 아버지와 자신의 선을 끊어내기 위해서 부정의 행위를 맹렬하게 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아들의 선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절단도 중단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차라리 이 과정은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의 반복인 것이다. 늑대는 개가 아니며 개는 늑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늑대는 개가 되는데 실패한다. 세 개의 선은 서로 연결된 것이며 사실은 하나의 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바카야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희들 왜놈이 아닐까?” 이제 거의 기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임권택 은 여기서 보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영은 김 참의의 아들을 돕지만 그의 계획은 거의 완전히 실패로 끝난다. 모든 계획은 탄로가 나고 마영은 그렇잖아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기노시타 형사에게 체포된다. 마영이 이제까지 해 왔던 밀고 행위에 대해 단 한 번 속죄를 하기라도 하듯 목숨을 걸고 했던 행위는 실패로 끝난다. 더 상황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큰 부자인 김 참의는 총독부에 돈을 바친 다음 사건을 무마시킨다. 김 참의 아들 관점에샬옌뺨摸?여기까지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어떤 장애물도 없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리둥절할 정도이다. 그렇게 되면서 사실상 마영의 행위는 그 자체로 무의미해진다. 그렇다면 이 실패의 서사가 왜 필요해진 것일까. 나는 여기서 이 질문을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왜 세 개의 씬, 그러니까 블랙홀처럼 막아선 세 개의 씬 다음에 실패가 기다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편집은 마치 이 실패가 세 개의 씬의 결과처럼 읽힐 수도 있게 배치되어 있다. 잡혀온 마영 앞에서 기노시타 형사는 거만하게 충고하듯 말한다. “바카야로, 아무리 날뛰어봤자 조선은 영원히 일본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거야. 알았나, 바카야로” 그러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영은 기노시타 형사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대답한다. “내가 광복된 조국을 못 본다고 치자, 그리고 또 내 아들이 조국의 광복을 못 본다고 치자, 그러나 아들에게는 손자가 있고, 또 손자의 아들이 있고, 이렇게 우리 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광복의 날이 온다. 바카야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희들 왜놈이 아닐까?” 마영이 생각하기에 ‘왜놈’이 정말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은 언젠가 광복의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마영은 자신이 그걸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들도 볼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 아들의 아들도 볼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이 선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마영의 대답에는 만일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광복을 볼 수 있다면 그건 자신이 보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여기에 역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선은 반대로 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성립하는 것이다. 이 대답을 하는 순간 마영은 이제까지 부정한 아버지를 완전하게 긍정하는 것이다. 보물은 여기에 있다. 이 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 대답을 임권택은 좀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 족보 >에서 한다. 얼핏 보면 차이를 알 수 없는 그 대답 속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어떤 심연이 있다. 대부분의 전기 식민지영화들이 그 대답을 민족에서 찾을 때 임권택은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유교에서 이끌어낸다. 유교라는 절대적인 지식. 이때 절대적인, 이라는 표현은 거기에 모든 것이 우선권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에 한계를 부여한다는 뜻에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우리가 무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에로 되돌아오는지를 분명하게 만든다. 같은 동포들 중의 누군가가 해방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그것을 분명히 한다. 내 아들이 보아야 하고, 아들의 아들이 보아야 하고,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보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올바른 대답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대답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 씨받이 >를 다루면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민족주의가 권력의 담론이 되었으며 동시에 법의 통치수단이 되었던 시기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이다. 영화에서 민족은 권력자의 형상이 되었으며, 그 안에서 국민은 끊임없이 민족으로 환원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임권택은 예기치 않은 것을 꺼내 들었다. 이것은 단순하게 아버지와 아들의 정신분석적인 도식에로의 환원이 아니다. 마영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운명에 이끌리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너무 많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제기된 것은 특수한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유교적 ‘父子’의 귀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이 과정에서 마영이 아버지라는 자리를 결국 떠맡게 되는 것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는 대신 유교라는 의무의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뒤집는다. 이것은 비로소 그 속에 나도 포함되었다는 상상이 안겨주는 기쁜 희생이 아니라 결국 그 안에 있어야한다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반성에 찬 희생이다. 보물은 아들을 아버지로 만들어주는 그 무시무시한 체계 안의 선이다. 그렇다면 뒤따라오는 질문에도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임권택 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이 귀환은 해방 이후에는 사라졌는가. 무엇이 이 귀환을 가로막는가. 반대로 무엇이 식민지 강점하에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가. 거의 뒤따라 만들어진 < 깃발없는 기수 >나 < 짝코 >에서 그들은 보물을 누릴 기회를 갖지 못한다. 혹은 좀 더 뒤에 만들어진 또 다른 한국전쟁 이후의 정식화인 < 길소뜸 >은 그 보물이 완전히 유실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니, 차라리 해방(과 뒤이은 한국전쟁)은 유교라는 체계를 어떻게 갈기갈기 찢어놓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때 무엇이 무엇으로 이행하고 있는가. 반대로 < 씨받이 >에서는 비극의 형태로 재빨리 그것이 되돌아온다. 여기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는 이미 매우 느슨하게 임권택의 영화가 유물론적 경험론에 사로잡힌 것 같다는 표현을 썼다. 임권택은 종종 자기가 경험한 세계를 그 어떤 다른 것으로 환원불가능하게 다룬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것은 일회적인 세계이며 거기서 발을 빼는 것은 이미 경험한 것을 추상적으로 만든다는 두려움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완강해진다. 이때 그의 영화 안에서 내가 느껴보는 것은 완전히 파악될 수 없는 현실 안을 통과하기 위해서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그 세상을 살아내고 있던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태도를 경유해서만 그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흐릿한 인상이다. 고향이라는 공동체. 안전한 집.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반복적인 문중제례.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는 원을 그리는 것만 같은 시간의 계절. 여기에 갑자기 단절이 생긴다. 한국전쟁과 가출. 그런 다음 그가 부모 곁을 떠나서 만난 세상과의 관계에서 그는 그 거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현실과 마주친다. 어떤 우회도 없는 경험. 그는 부모 곁을 떠나는 순간 그 보물을 잃어버렸다. 물론 이 표현이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차라리 이것은 비평의 언어가 아니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다. 임권택의 영화를 나누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번에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기준으로 둘로 나눠보고 싶다. 임권택은 양쪽 모두에서 현실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적대적인 관계들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지를 다룬다. 이때 기이하게도 해방 이전을 다룰 때마다 임권택은 그 시간을 일종의 진공상태와 같은 상황에로 밀어 넣는다. 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다시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 그냥 그 자체로 주어진 세계. 그의 영화에서 이 시간이 역사성을 갖게 된 것은 < 개벽 > 이후에서나 가능해진 일이다. 임권택은 매번 이 시간에 이를 때마다 그 자체로 완결된 것만 같은 세계 안에서 사건을 만난다. 사건은 왜 발생하는가. 그것은 이 세계 안에 무언가 불완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 앞에서 비로소 진공상태는 자기의 형식 안에 결여된 구멍을 내보이고 임권택은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 그 내용을 끌어내는 것으로 자기 서사를 진행시켰다. 이때 주인공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견디는가. 결정적인 차이는 해방 이후의 영화들에서 주인공들이 사건으로부터 소외되어 나간다면 반대로 해방 이전의 영화들은 그 사건 안으로 주인공들이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 말을 유심히 읽어주기 바란다. 그들은 상황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동화되는 것이다. 이 동화의 과정에서 임권택은 일관되게 유교라는 규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라보면서 사건의 순환을 더 없이 순종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주인공들이 파괴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련하게 지켜본다. 반대로 이 규율이 파괴되자 임권택은 그 상실감에 가득 차 때로는 우울하게, 종종 차디차게, 그리고 어떤 동정심도 없이, 그저 수수방관하면서 쳐다본다. 거꾸로 뒤집어 세운 카메라 나는 여기서 이제 이 영화가 할 이야기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다음, 그러니까 마지막 장면 다음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불러야 할, 그저 괴이하다고 밖에 달리 말하기 힘든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마영은 호기롭게 기노시타 형사를 꾸짖은 다음 그를 기다리고 있을 감옥에로 향하는데 그때 이제까지 그의 뒤를 쫓으면서 동포를 밀고했던 처단하려고 했던 사내의 기습적인 칼이 날아와 그의 등에 정확하게 꽂힌다. 물론 그 사내는 마영이 이제까지의 그의 행위를 반성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김참의의 아들을 구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이러니한 성공. 매번 실패하던 그 시도는 실패해야할 순간 기다렸던 것처럼 성공한다. 그 사내는 자신의 시도가 성공하자 재빨리 경찰청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때 등에 칼이 찔린 채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면서 마영은 그 사내를 걱정하듯이, 마치 그 사내가 자기 말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중얼거리면서 말한다. “잡히지 마라, 잡히면 안 돼, 안 돼, 바보 녀석, 그리로 가면 잡힌다구, 담 쪽으로 뛰어, 그렇게 힘을 내서 뛰어, 잘했어, 왜놈에게 잡히면 안 돼지” 하지만 그게 이 장면의 전부가 아니다. 임권택 은 도망치는 사내를 마영이 쓰러져 누운 채 죽어가면서 바라보는 시선으로(point_of_view_shot) 찍었다. 이때 영화는 도망치는 사내를 아래 위가 뒤집힌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래서 사내가 담장을 넘을 때 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은 이런 방식으로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찍은 적이 없다. 마영은 칼을 맞은 다음 그냥 돌아서서 볼 수도 있었다. 혹은 바닥에 누웠다 할지라도 구태여 카메라를 거꾸로 세워서 찍을 필요는 없다. 아니, 차라리 화면의 아래 위를 바꾸기 위하여 마영을 바닥에 눕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임권택의 카메라를 거꾸로 뒤집어 세운 것일까. 나는 여기서 마영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안으로 통합시키려는 유혹에 대한 임권택의 완강한 거절의 제스처를 느낀다. 마영은 자신과 아들 사이의 관계를 경유하여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회복한 것에 대해서 (어쩌면)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그가 회복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억압받는 민족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뿌리 깊은 유교의 부름인 것이다. 그래서 이 아래 위가 뒤집힌 카메라는 마영이 중얼거리는 그 말, 그가 자신의 등에 칼을 찌르고 도망치는 사내에 게 베푸는 관용에 대해서, 그 오해에 대해서, 그 잘못된 환대에 대해서, 교정하는 시선이다. 여기에는 민족을 향한 어떤 열정도 없다. 그러기는커녕 마영의 저 희생적인 용서에 대해서 아이러니한 감정을 품고, 약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차갑게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이, 그렇게 뒤집는다. 임권택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물이 무엇이 아닌 지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분리선. 하지만 아직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에게 일제 강점기라는 시간은 그것을 분리해내는 시간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이 모든 질문의 출발처럼 보이는 그 한복판에 선다. 그런 다음 그 안에서 나눔의 질문을 시작한다. 어떤 분류. 모두들 각자의 방식의 분류를 해냈다. 그걸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이 보여준다. 박찬욱의 분류. 김지운의 분류. 류승완의 분류. 최동훈의 분류. 분류의 소음들. 그때 누가 어떤 부름을 따르느냐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부름들 사이의 차이. 이 차이가 그들의 인물들을 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각자의 주체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임권택은 민족적인 주체와 유교적 주체를 분리해낸 다음 한 쪽을 버리고 다른 한 쪽을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이 장면을 대사와 이미지 사이를 둘로 찢어낸 것만 같은 결단의 이유일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주체 앞에 붙어있는 이 술어에 대해서 반복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마 그래야만 할 것이다. (계속) 1975년 10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우성사 각본 이은성 촬영 이석기 조명 최임춘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허장강 박근형 양광남 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