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
- 감독
- 신상옥
- 제작년도
- 1984
- 출연
- 최창수, 최은희, 김연실
날아다니는 수트를 입고, 시공간을 이동하고, 온 우주를 누비는 히어로들이 벌써 한 트럭이다. 너무 많아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히어로 패들이 도시를 무차별하게 깨부수는 우주 악당들로부터 우리 행성을 지켜내는 사이 대한민국엔 가르마조차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하찮은’ 취준생이 재난을 마주한다. 동네 놀이터라는 작은 무대에서 현란한 철봉기술과 뽀얀 근육을 뽐내며 등장하는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구경꾼 할머니의 엄지척에도 입꼬리가 비식 올라갈 만큼 인정에 목말라 있다. 부모님과 누나, 어린 조카에게까지 용남은 창피하고 손 많이 가는 가족일 뿐이다. 반듯하게 옷 차려입고 번듯한 직장에 나가 일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용남은 어디 하나 쓸 구석 없어 보이는 산악 용품만 주렁주렁 옷장 안 깊숙하게 가지런히 걸어두었다. 가족들이 아무리 무시해도 용남은 가족을 사랑한다. 돈이라곤 벌어본 지 오래지만, 조카의 초딩 친구 무리에게 음료 수라도 꼭 사주고 싶고, 괜히 시키지도 않은 짓 하지 말라고 타박받아도 꼬박꼬박 설거지를 한다. 취준생 용남은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엔 없다. 어머니의 칠순 잔칫날이 되고, 용남 일가족은 2시간이나 떨어진 신도시의 예식장으로 간다. 분명 기분 좋은 잔칫날인데, 용남에게는 수많은 실패를 안겨다 줬던 면접장과 다를 바가 없다. 사돈의 8촌까지 다 온 것 같은 칠순 잔치는 용남에게 너무 가혹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불순한 호기심으로 질문해오면 나를 대변하는 건조하고 슬픈 사실들만 내내 줄줄 늘어놓아야 한다. “먹고 자고 싸고.” 그것 말고도 할 줄 아는 게 많으면서 자조적으로 그렇게 지낸다고 대답할 뿐이다. 와중에 용남은 예식장 부점장이자 산악동아리 후배였던 의주(윤아)를 마주치게 된다. 의주와 멋지게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일부러 멀리 있는 구름정원 예식장에 왔건만. ‘최종면접에 불합격하셨습니다.’라는 가혹한 문자 하나에 계획이 틀어진 용남은 의주에게 초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벤처회사 과장이라고 거짓말을 해버린다. 실패의 마일리지만 차곡차곡 적립하고 있는 용남에게는 사실 의주도 아픈 실패의 기억이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을 수백 번은 족히 들었는데. 인생은 바라지도 않았던 보너스 마일리지를 주듯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큰 재난을 선사한다. 가스 테러로 온통 자욱해진 도시에서 용남은 가족을 지키려는 본능으로, 의주는 눈부신 책임감과 직업의식으로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사람들을 탈출시키려 한다.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그렇게 욕먹었던 동아리 활동이 모두의 앞에서 빛나는 순간이다. 쓸쓸하고 고요하게 그러나 매일 갈고 닦아 꿋꿋이 지켜온 클라이밍 기술은 세상에 쓸모없는 배움은 없다는 걸 증명해준다. 대학 시절엔 자주 실수했던 돌출 형태의 구조물이 하필 용남 앞에 놓여있다. JUST DO IT! 화면에 클로즈업된 나이키 운동화는 어서 뛰어오르라고 부추긴다. “다른 거 안 바랄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누가 되었든 들어주길 바라며 용남은 절박하고 짧은 기도를 내뱉는다. 사자 굴에 던져지고도 살아남았다던 성서 속 다니엘처럼 용남은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사자머리를 보란 듯이 넘어 오른다. 누가 용남이를 루저라고 했던가. 사자도 밟고 올라서는 용남이의 코털을 대체 누가 건드렸냔 말이다. 제목과 다르게 출구 없는 매력을 가진 <엑시트>는 재난과 코미디, 액션이라는 장르를 세련되게 넘나들며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불필요한 설명과 설정은 아예 접어두고 매일같이 보는 익숙한 현실을 여태껏 없었던 방식으로 신선하고 재치있게 빚어내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비장한 각오 없이 선택해도 될 법한 가벼운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비범한 이 영화는 이상근 감독의 사려 깊은 연출과 현실을 꼬집는 관찰력이 돋보인다. 우리에겐 재난을 맞닥뜨린 학생들을 보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국민적 트라우마가 있다. 학생들이 학원에 갇힌 장면에서 카메라는 과장된 앵글로 억지 긴장을 이끌어내지 않고 시점숏으로 멀리서 그들을 구조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관객의 트라우마를 감정을 고조시키는 도구로 쉽게 소비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엿보인다. 또한 테러의 주체에게 불필요한 마이크를 주지 않거나 재난 영화임에도 시체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 등 영리한 판단 덕에 관객은 주인공의 탈출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선을 넘지 않는 유머로 무장한 이 무해한 재난 코미디는 우리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생존 방법이나 S.O.S 신호까지 알려주어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하다. 공사장 안전망이나 미관을 해친다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짚어주기도 한다.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재난 영화에서 여성은 흔히 연약하게 그려져 절체절명의 순간에 민폐를 끼치거나 짐이 되곤 한다. 반면 의주는 클라이밍 동아리 에이스 출신으로 내내 힘차게 건물 위를 뛰어다니고, 특유의 빠른 상황 판단 능력과 센스를 발휘해 구조를 앞당기는 유능하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표현된다. 장점 가득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의 찝찝함이 남아있다면 그건 아마도 영화 탓보단 결코 웃어넘기기 힘든 청년들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엑시트>는 쓰레기로 살아가야 하는 서글픈 청년의 자아를 여러 차례에 걸쳐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용남과 의주는 방호복 대신 쓰레기 봉투로 몸을 감싸고 후반부에선 아예 쓰레기장을 달리기도 한다. 우리가 자신을 쓰레기로 여기지 않고 줄 세움 당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언제가 될까. 용남은 인원 초과로 구조헬기에 타지 못하고 남아서 울먹이며 이야기한다. “내가 나가면 저렇게 높은 건물로 된 회사에만 원서 낼 거야. 무조건 층수만 보고.” 생사의 문제 앞에서도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용남은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 높은 빌딩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밀려 늦게 구조된다. 영화 초반 용남은 친구와 시원한 생맥주 한 잔에 미적지근한 현실을 지우려 호프에 간다. 호프(Hof)에 앉아 자기 자신을 ‘개쓰레기’라고 주저 없이 칭하는 용남의 뒤로 H.O.P.E.(희망)가 쓰여진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다. 먼 행복보다 지금 한 잔의 생맥주가 더 큰 위로로 나를 씻어주길 바라며 용남은 맥주를 들이킨다. 혼수 가구 전문점을 배경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발판삼아 뛰어내리는 장면에서는 결혼조차 포기한 N포세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매트리스를 넘어 도착한 육교 위에 적힌 ‘수고했어, 잘버텨줘서 고마워’라는 메시지는 수많은 포기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작은 피로 회복제가 되어준다. 실패와 포기 속을 질주하는 청년들에게 영화는 이렇듯 곳곳에서 나름의 응원을 보낸다. 청춘들은 제각각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외침은 외면당하거나 조롱당하기 일쑤여서 청춘은 때론 차라리 입을 닫기도 한다. 하지만 <엑시트>의 주인공들은 계속 소리내기를 선택한다. 구원은 셀프니 노력하라며 옥상으로 내몰렸지만, 지지 않고 끝까지 그리고 끊임없이 외친다. “내 말 좀 들어줘요, 제발!” 재난 문자가 용남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해주기 전까지는 용남이 아무리 옥상으로 가자고 외쳐도 믿어주지 않는다.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구름정원 벽을 오르려는 용남에게 아버지는 되려 호통을 친다. “너 하지 마! 뭐가 됐든 간에 하지 마!” 그럼에도 용남은 가족을 위해 목숨 걸고 벽을 탄다. 어릴 땐 청춘이 불꽃처럼 화려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둘은 완등 지점인 크레인에 다다라서도 눈에 확 띄는 조명탄이 아닌 작은 막대기 불꽃에 기대어야 한다. 용남과 의주는 소리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또 한 번 목이 찢어져라 외친다. “우리를 봐라!” 그리고 누구보다 구조되고 싶어 하는 청춘들이 출구를 간절히 바라며 외치는 S.O.S 신호에 942만 명이라는 놀라운 숫자의 관객이 응답했다. 영화 초반 클라이밍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완등 지점까지 올라갈 때 필요한 길 찾기인 ’루트 파인딩’에 대해 나온다. 목적지를 설정했어도 가는 길이나 방법을 모르면 도착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강요당한 목적지를 지도 없이 헤매느라 길 찾기가 어려웠던 용남. 용남에게 실재했던 재난은 안개에 싸인 듯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미래였다. 취업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길은 절망으로 가득했지만, 차오르는 유독가스 속에서 자신이 정한 완등 지점으로 갈 때는 주저함 없이 완등해낸다. 영화는 이력서만으로는 멋대로 가늠할 수 없는 실패한 취준생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엔딩크레딧에 흐르는 곡, 이승환의 ‘슈퍼히어로’ 속 가사처럼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기회가 있고 깊숙이 잠재된 무한한 능력들이 있다. 장래 희망은 못 이뤘어도 매일같이 스스로를 단련하는 용남, 자신을 알바와 다를 바 없는 부점장이라고 소개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의연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의주. <엑시트>는 세상이 미처 알아봐 주지 못한 용과 여의주의 승천 이야기이다. 동시대 청년이라면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 짠내·땀내·소금기 가득한 탈출기는 재난 같은 대한민국 2030의 매일에 바치는 숭고한 헌정사이다.
[사진]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촬영 현장에서 최은희와 신상옥 속눈썹이 긴 열여덟 살의 가출 최은희는 1926년 11월 20일 1 경기도 광주읍 초월면 묵고리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최영환은 구한말의 군인이었으나, 그가 태어난 지 20일 만에 서울로 이사한 후 우체국 직원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수줍음을 탄 그녀의 본명은 경순(慶順)이다. 속눈썹이 길고 눈이 큰 편인 그녀는 말이 없는 대신 고집이 세었다. 그녀의 집안은 자식의 공부를 위해 도시로 보낼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임지가 서울로 바뀌어 수구문 쪽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다행히 광희공립심상소학교(광희초등학교 전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소학교 때부터 유별난 데가 있었다. 극장 주변을 자주 기웃거렸고 공연 포스터를 보면 친구들에게 장차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런 그녀가 종로 6가에 있던 경성기예고등학교(京城技藝高)를 다니다가 그만 두고 방공 연습을 나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연극배우 문정복(배우 문정숙의 언니, 월북)의 소개로 마침 <칭기즈칸>을 준비 중인 극단 ‘아랑(阿狼)’(대표 황철)의 의상을 거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승낙 없는 결행이었다. 1943년 열 여덟 살 때였다. 선배들의 심부름이나 하며 시름을 달래던 그녀에게 기회가 온 것은 대전 공연 때였다. 문정복이 한번 해보라며 무대로 올려 세운 것이다. 비록 하녀라는 단역에 지나지 않았으나 극의 반전을 돕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날 공연한 작품이 ‘아랑’의 단골 레퍼토리인 신파극 <청춘극장>(임선규 작)이었다. 그 시대에는 연구생으로 들어가면 일단 선배의 화장가방부터 챙기는 일을 해야 했다 (최은희, 『고백』 ‘패기의 수업시대’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7, 38쪽). [사진] 극단 아랑 시절 최은희 그녀는 지방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해방 소식을 들었다. 일제의 패망으로 문화계가 정비에 들어간 가운데 토월회가 부활하자 그녀는 신극을 표방하는 이 극단에 참여했다. 이때 무성영화 시절의 복혜숙, 서월영과 일제강점기의 김소영, 김일해, 최운봉과 같은 배우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분들을 보자 영화에 대한 열망이 타올랐다. 어릴 때 우연히 친구 손에 끌려가서 본 문예봉 주연의 <임자 없는 나룻배>(1932, 이규환)의 몇 장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연극은 무대를 떠나는 순간 존재 가치가 없어지지만 스크린은 그 폭과 생명력에 있어 무한하지 않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영화계 진출이 당면 과제로 다가왔다. 이 무렵 토월회 연극에 함께 출연 했던 최운봉이 제 상대역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며 영화를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최은희는 이렇게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1947년)와 인연이 닿게 되었다. 험준한 길, 분단의 희생양 그녀가 이성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영화배우로 변신한 촬영기사 김학성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사귄 지 얼마 안 된 1947년 가을 서울 정동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스물 한 살인 신부보다 열세 살이나 많은 서른세 살로 재혼이었다. 김학성은 무성 영화시대의 여배우 김연실(金蓮實, 납북)의 동생으로 일본의 메이지(明治)대학을 다니다가 복싱선수를 거쳐 영화 <성황당>(1939)의 카메라를 잡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6년 만에 파경을 맞고 말았다. 전쟁 때문이었다. 6·25 동란이 일어났을 때 서울 남산동에 살고 있던 이들은 미처 피난을 하지 못했다. 김학성은 마루 밑에 굴을 파고 숨었으나 최은희는 북한군에게 끌려가 위문공연을 강요당했다. 죽을 고비를 겪은 끝에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번에는 ‘부역’한 일로 국군에게 붙들려 조사받는 곤욕을 치렀다. 그녀는 종군 뉴스영화 촬영 중에 입은 중상으로 병상에 누운 남편을 간호하는 한편 광복동 ‘녹원(綠苑)다방’ 얼굴 마담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부산 피난 시절이었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이 신상옥이었다. 그들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은 극단 ‘신협’ 소속인 최은희가 무대에서 영양실조로 쓰러졌을 때 뛰어들어 병원으로 옮겨 준 데서 비롯되었다. 그 사건 이후 그들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유부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무명 영화인에게 그녀는 따뜻한 눈길로 화답했다. [사진] 1960년 경 최은희와 신상옥 부부 그사이 신상옥은 <악야>(1952)로 데뷔했다. 그리고 16밀리 문화영화 <코리아>(1954)에 그녀를 출연시켰다. 그녀는 주로 신필름의 영화에 무상으로 출연했지만 회사의 운영을 돕기 위해 다른 제작사의 영화에도 나갔다. 그의 출연작 1백 20여 편 가운데 30여 편을 제외하고는 자회사 작품이었다. 이 가운데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 세 편이 그녀가 연출한 작품이다. 그러나 1975년 오수미를 주연으로 기용한 <장미와 들개>의 예고편 ‘검열 위반’ 사건으로 신필름이 문을 닫게 되면서 신 감독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시작한다. [사진] <코리아>(1954)에서의 최은희와 김동원 결국 1976년 여름 신상옥과 23년의 부부생활을 청산하고, 경영이 부진한 안양영화예술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니던 78년 1월22일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되고 만다. 이런 사태 아래서 1983년 3월7일 김정일이 초대한 연회장에 갔다가 신상옥과 극적으로 재회, 그동안 소원했던 감정을 풀게 된다. 이후 <탈출기>(1981년), <소금>(1985년> 등 10여 편을 같이 만든 뒤 198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는 모험을 단행하고 1999년 10년이 넘는 미국 망명생활 끝에 영구 귀국길에 오른다. [사진] 최은희 신상옥 부부 납북 기사 [사진] 북한에서 연출한 영화 <소금>의 한 장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녀의 기구한 삶은 자신이 연기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분단 한국의 최대 희생자이자 황금기 한국영화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했던 최은희는 아흔 한 살에 이른 2018년 4월 16일 <어머니와 아들>(이유섭, 1976)의 출연을 끝으로 짧지 않은 투병생활 끝에 눈을 감았다. 1. 생년관련, 그동안 그녀의 생년월일에 대해 『한국연극무용영화사전』(예술원, 1985)과 『여성영화인 사전』(소도 발행, 2001)은 1928년 11월 20일 생으로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최은희는 자전적 저술인 『고백』(랜덤하우스 코리아, 2007)에서 1930년 생으로 기재, 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1913년생인 김학성에 대해 “나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사람” (51쪽)이라고 했으니 1926년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