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탱고
- 감독
- 하재봉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김탄현, 한성희, 서진
<묵시록의 4기수> 중 (사진: “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루돌프 발렌티노(Rudolf Valentino, 1895~1926)가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 첫 번째 스타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도 아니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자리에 더글러스 페어뱅크스나 메리 픽포드, 펄 화이트, 테다 바라, 월러스 레이드, 윌리엄 S. 하트, 기쉬 자매, 존 길버트, 클라라 보우, 하여튼 먼저 호명해야 할 정말 많은 이름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일정 기간 사랑에 빠지곤 했다) 물론 세계 영화사의 순간(들)을 뒤져나가면서 계속해서 이 자리에 스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위대한 영화 작가들, 시네아스트들, 제작자들, 끝없는 테크놀로지의 발명만큼 이 순간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루돌프 발렌티노가 단지 호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설명이 필요한 이름이 되었는가. 스크린에 루돌프 발렌티노가 등장해서 탱고를 추는 순간 영화를 보던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현상을 이미 설명한 사람이 있다. 『적과 흑』(1830), 『파르므의 승원』(1839)을 쓴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은 1871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해서 미술품들을 감상하다가 감정적 충만함과 희열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스리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고 한다. 스탕달만 이걸 경험한 것이 아니라,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한 수많은 관광객이 미술품을 본 다음 심장의 두근거림, 정신의 혼미한 상태, 어지러움, 우울증, 현기증, 위경련, 심지어 전신마비를 경험하였다. 그래서 이 증세를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두 현상이 정확하게 같은 정신적 반응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스크린 앞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스타라는 자리는 단지 인기가 많은 배우, 만으로는 갈 수 없는 별자리이다. 그 자리에 가려면 배우와 관객 사이에서 마법이 발생해야 한다. 내 말이 아니라 스타, 라는 현상을 처음 주목한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의 지적이다. 이 말에 영감을 얻어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몇 편의 스타에 관한 글을 썼다. 그러면서 스타를 ‘현대의 신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콤플렉스. 하나의 트라우마, 하나의 현상, 하나의 담론,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단어는 ‘마법’이다. 대중과의 관계를 놓고 장황한 사회학 이론과 정신분석의 개념들로 이 단어 주변을 장식할 수 있지만, 사후약방문처럼 정리되면서 무언가 결정적인 핵심은 매번 놓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단 한 마디로 영화사의 신비로운 순간들. 나는 그걸 AI가 대신할 수 없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루돌프 발렌티노 (사진: “ Forgotten Hollywood: Rudolph Valentino – ‘The Great Lover’ ”, Golden Globe Awards) 1895년 5월 6일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카스텔라네타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네 명의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루돌프 발렌티노에게 아들만큼 이름이 긴 아버지는 루돌프 피에트로 필리베르토 라파엘로 주그렐미 디 발렌티나 단톤게라(Rudolf Pietro Filiberto Raffaello Guglelmi di Valentina d’Antonguella)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이 이름을 전부 부르는 사람은 없다.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 발렌티노는 파리에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18살에 뉴욕으로 갔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루돌프 발렌티노는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다음에도 이민 온 다른 스타들과 달리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고 이탈리아 국적을 유지하였다. 아무 경력이 없는 루돌프 발렌티노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고 매번 해고를 당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탱고 춤을 잘 추었다. 잘 춘 정도가 아니라 정말 잘 추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었다. 하늘에서 내려준 재능을 지닌 타고난 탱고 댄서였다. 게다가 춤을 추면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루돌프 발렌티노는 요염했고, 그가 탱고를 추면 홀리는 듯한 손끝과 옷이 몸에 꼭 달라붙어서 발가벗은 듯한 육체의 제스처, 그리고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춤을 춘다는 눈빛이 최면을 걸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1914년 무렵 조 파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사교 댄서이자 작곡가이며 사회 정치적인 활동가였던 조앤 소이어의 상대로 주급 50불로 탱고 파트너가 되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명성을 얻었지만, 치정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뉴욕을 벗어나 할리우드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떠났다. (좌) <A Sainted Devil>(1924) 중 (우) <묵시록의 4기수> 중 / 사진: IMDb ( 좌 , 우 ) 하지만 할리우드에 와서 갑자기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엑스트라로 현장을 기웃거렸으며, 조연의 조연의 조연에 해당하는 역할을 전전했다. 루돌프 발렌티노를 알아본 건 아직 MGM 영화사로 합병되기 이전 메트로 영화사의 제작 프로듀서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준 마티스였다. 준 마티스는 무성영화 시대에 가장 눈 밝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직관과 재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장황한 설명 대신 증명할 수 있는 간단한 사례를 들려주겠다. 준 마티스는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 탐욕 >(1924) 원작을 각색하고 대사를 쓴 사람이다. 메트로 영화사는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즈의 소설 『묵시록의 4기사』(1887) 판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소설의 각색을 준 마티스에게 맡겼다. 각색한 다음 렉스 잉그램 감독에게 배역 중에 훌리오 역에 루돌프 발렌티노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렉스 잉그램은 루돌프 발렌티노 캐스팅에 반대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전해지지만,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소문에 따르면 루돌프 발렌티노가 게이라서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주장은 전기에도 꾸준히 따라다니는 이야기지만 소문에서 멈추었다. 상황이 복잡하다. 그 당시에 게이라는 소문은 대중들에게 치명적이었고, 아마도 그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영화 흥행에 치명적인 결과를 맞을 수도 있는 시대였다. 게다가 렉스 잉그램이 거부감을 가졌다는 말도 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몇 차례 결혼했지만, 그 당시에는 많은 게이가 소문을 진압하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렉스 잉그램이 끝까지 반대하기에는 준 마티스가 메트로 영화사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묵시록의 4기수> 촬영 중 루돌프 발렌티노 (사진: “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 IMDb) 촬영 현장은 순조롭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준 마티스가 옳았다. < 묵시록의 4기수 >(렉스 잉그램, 1921)는 시사회에서 그리피스의 < 국가의 탄생 >(1915) 이후 할리우드 영화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1921년 3월 6일 개봉하자마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이탈리아인이었는데도 이 영화의 배역 때문에 ‘라틴 러버(Latin Lover)’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리고 이 애칭은 스타의 한 계보를 이루는 용어가 되었다. 스크린에 나타나 바라보면 그 눈길에 홀리듯이 빠져들게 만드는 남자. 그 자신이 하나의 장르인 스타. 더 간단하게 한 마디로 ‘유혹’ 그 자체. 이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스타는 관객이 자발적으로 날 유혹해주세요, 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덧붙인다. 점점 그 힘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존 배리모어, 샤를 보이에, 로버트 테일러. 타이론 파워, 제랄 필립,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이 계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루돌프 발렌티노의 자리를 얻지는 못했다. 단숨에 루돌프 발렌티노가 ‘라틴 러버’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러나 그런 다음 자신의 이미지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비슷한 역할을 반복했다. 하지만 루돌프 발렌티노의 열광적인 팬들은 같은 노래만 부르는데도 지치지 않고 공연장을 찾는 팬들처럼 영화관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말하는 건 망설여지지만 루돌프 발렌티노는 자신의 인기가 몰락하는 걸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926년 8월 15일 뉴욕 앰배서더 호텔에서 복막염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의사들은 낙관적이었지만 23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장례식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고, 백여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신문은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은 팬들의 자살 소식을 전했다. 전설은 또 다른 전설을 낳았다. 매년 기일이 되면 애도의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나타나서 무덤에 장미 한 송이를 놓고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얼마나 유명한 이야기인지 1959년 레프티 프리젤이 ‘검고 긴 면사포(Long black veil)’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조니 캐쉬, 조앤 바에즈가 다시 불렀다. 그런 다음에도 수많은 가수가 루돌프 발렌티노를 자신의 가사에 등장시켰다. 그중에는 밥 딜런, 킹크스, 이기 팝, 데이빗 보위, 프린스, 스키드 로우, 레오 세이어, 퀸, 그리고도 한참 더 있다. 이것이야말로 스타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겠는가. <Camille>(1921) 중 (사진: “ Camille ”, IMDb)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2000년대 중반 한국 영화산업은 활황의 정점에 있었다. 넘치는 제작자본, 소재와 규모, 스토리텔링, 형식의 실험이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과시하는 르네상스의 시기로 요약된다. 이명세 감독의 < 형사 Duelist >(2005)는 이 무렵에 발표된 문제작 중 한 편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낭만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했다면 슬픈 눈(강동원)과 남순(하지원)의 운명적인 키스 신 정도는 넣었어야 하건만 이명세는 칼날들이 부딪힐 때의 섬광 같은 번쩍임, 펄럭이는 천 조각들, 숨이 넘어갈 듯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땀에 절은 얼굴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스토리의 비약, 감정의 흐름을 등한시하는 태도, 슬픈 눈과 남순이 첫 눈에 반하는 이유, 슬픈 눈이 병조판서(송영창)를 배신하는 이유 등 개연성을 갖춘 플롯이 의당 감당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관객들의 불만을 촉진하였다. 그 대신 세상 돌아가는 일과 유리된 듯한 미적 도취, 비현실의 세계를 뛰노는 상상적 판타지,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연극적인 세트, 몽상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스타일로 장인적 세공술을 담금질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이미지를 조각하는 이명세의 연금술은 현실과 꿈을 교차시키는 대담한 오버랩, 아기자기한 세트, 만화 같은 이미지, 비 관습적인 음악과 사운드로 이야기체 영화의 전통이 완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논쟁을 던져왔다. 다수의 뉴웨이브 감독들이 치열한 현실인식과 그에 대한 발언으로서 이야기와 형식을 고민했다면 이명세는 영화는 무엇으로 말하는가를 밝히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시네마 뉴웨이브’의 시네아스트로 자신을 몰아갔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형사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형사 Duelist>의 스토리는 혼돈이다. 때는 18세기, 입담 좋은 대장장이 봉출(윤주상)의 한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셈이다. 봉출은 호기심에 차 눈을 부라리는 남정네들을 앞에서 한밤에 만난 기이한 분위기의 요염한 아낙(김보연)의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춘다. 그때 프레임의 뒤편에서 애꾸눈의 사내가 “이 상놈의 새끼들, 집중이 안 되잖아!”라고 아리송한 타박을 한다. 험상궃은 사내의 기세에 이야기는 갈 길을 잃고 카메라는 슬그머니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의 캉캉에 맞추어 춤을 추는 탈을 쓴 사람들의 군무로 넘어간다.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속도와 리듬을 무시하고 이어지는 붉은색 천 앞에서 칼춤을 추는 백발의 탈바가지, 북적대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장터의 풍경들로 이미지의 연쇄는 숨이 가쁘다. 군중들 사이에 섞인 좌포청 포교 남순(하지원)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을 틈타 시중에 가짜 돈을 유통하는 범인을 잡기 위해 탐문 중이다. 머리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 형사 남순의 파트너는 사려 깊고 경험이 풍부한 안 포교(안성기). 의욕을 앞세우는 남순과 꼼꼼히 전후 사정을 따져 사건에 접근해가는 안 포교는 서로의 장단점을 상쇄시켜줄 만한 최고의 단짝이라 할 만하다. 수상한 사람들이 유독 많아 보이는 그날 돈자루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소란의 와중에 남순은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탈을 쓴 백발의 괴한을 쫓는다. 좁은 시장 골목과 담벼락 길 사이에서 서로의 뒤를 쫓는 추격전을 벌이지만 신출귀몰한 백발 괴한은 두 형사의 추격을 따돌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형사 Duelist>의 장면들은 관객을 추격의 스릴로 몰아 부쳐 아드레날린에 취하게 만든다. 상당한 속도로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도입부는 통상적인 플롯의 전제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단속적으로 진행하는 신들의 연쇄는 극중 애꾸눈 사내의 푸념처럼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가 필요로 하는 차근차근 쌓아나가기 위한 세팅이 아니라 거두절미하고 스토리의 중간으로 잘라 들어가는 둔탁함이 거기에는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의 혼돈과 충돌이 만발하는 이 시퀀스의 내적 논리는 무엇인가? 시퀀스의 주제는 봉합선이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의 연쇄이다. 광란에 가까운 트릭을 구사하는 20분 동안의 시각적 스토리텔링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카메라와 잠재의식을 시각화한 것 같은 편집을 결합한다. 시각적으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정도이다. 그 자신의 스타일적인 시그니처인 스톱모션 이미지와 번쩍이는 순간 다음으로 넘어가는 불분명한 쇼트의 이행, 피사체들의 수평적 움직임, 와이프와 같은 효과를 내는 쇼트의 수평적 전환을 통해 이명세는 시네마틱 무브먼트와 트랜지션을 매개로 한 대담한 실험을 보여준다. 화면 내 요소들과 카메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활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속도와 방향이 모두 중요해 보인다. 전체 시퀀스는 하나의 쇼트가 사라지고 이어지는 쇼트 안으로 끌어 당겨지는 느낌을 준다. 백발의 괴한의 휘두르는 칼의 그래픽적인 움직임, 프레임 안 인물의 이동 따위가 광학적인 기교인 와이프를 대체하기도 한다. 구성적인 차원에서 이 시퀀스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한 장르에서 또 다른 장르로 이행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요상한 공포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캉캉 춤을 추는 무희들의 뮤지컬로, 수직의 길 위에서 맞서는 서부극적인 구도로, 몸과 칼의 안무가 이루어지는 무협영화로 전환된다. 속도는 진정되고 움직이는 카메라가 여전히 거기에 있는 동안 세트 디자인과 조명의 아름다움으로 구축된 골목에서의 결투는 이 시퀀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슬픈 눈이 쓴 탈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이 결투는 애간장을 태우며 끝이 난다. 탱고 춤과 무모한 칼싸움 사이 어딘가에서 백발의 탈과 남순이 화면에서 뛰어내리고 프레임을 분할한 조명에 잠겼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서 선명하게 또는 흐릿하게 포착된다. 장엄한 촬영 기법과 세트 디자인 위에 얹혀진 조성우의 음악은 클래식과 전통 음악을 혼합하여 영화에 깊이를 부여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액션이 없는 곳에서도 여전히 움직임은 장면 연출의 초점이다. 도입 시퀀스를 마무리하는 결투 외에도 몇 차례 반복되는 영화 속 결투에는 고유한 스타일이 있으며 거기에는 인물들의 구애의 단계가 반영되었다. 두 번째 결투 신은 번쩍이는 칼날만이 어둠을 밝히는 그림자 속에서 정교하게 촬영되었다. 탱고 스타일의 테마로 보완된 음악은 한층 무르익은 감정의 깊이를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 결투는 눈 속에서 사무라이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고, 네 번째는 유혹적인 동작들이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에로티시즘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사 Duelist>에는 영화 예술의 본질이 물질적인 움직임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움직임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스며 있다. 보는 사람의 정신에 닿게 하는 영화의 정수는 어떤 것일까? 그런데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감각의 액션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형사 Duelist>는 골치가 아프고 지루한 영화였다.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토리와 대화, 캐릭터, 장르 중 어느 것도 장면이 만들어내는 느낌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이명세는 관객을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움직임을 화면에 묘사하여 정신의 움직임을 시각화하기 위해 진력하였다. 움직임에 대한 이러한 강박은 현대영화가 잃어버린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 사운드의 출현으로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리조차 이미지화되는 감각의 전환을 창조하려는 야심이 이 영화, <형사 Duelist>를 특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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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에로티시즘 영화의 ‘정전’(canon)이라면 < 애마부인 >( 정인엽 , 1982)과 < 산딸기 >( 김수형 , 1982)에서 시작해 < 어우동 >( 이장호 , 1985)과 < 변강쇠 >( 엄종선 , 1986)를 거쳐 < 매춘 >( 유진선 , 1988)에 이르는 계보일 것이다. 당대 상업영화의 트렌드였던 이 작품들은 불륜 멜로드라마, 궁중 사극, 문예 영화, 호스티스 영화 등 한국영화의 장르적 전통을 변형시키며 그 위에 에로티시즘이라는 ‘시대정신’과 여배우를 토대로 한 스타 시스템을 결합시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정전의 뒷길엔 ‘외전’의 계보도 존재한다. < 반노 >( 이영실 , 1982)와 < 빨간 앵두 >( 박호태 , 1982)에서 시작해 < 색깔 있는 남자 >( 김성수 , 1985)와 < 사방지 >( 송경식 , 1988)를 경유해 이후 에로 비디오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일종의 ‘B 무비’의 전통이었다. 이 영화들은 ‘에로 정전’들이 지닌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나름의 엄숙주의를 파괴한다. 이질적 요소들이 결합되고 내러티브는 불균질적으로 전개되며, 때론 급진적인 테마를 관객에게 갑작스레 들이밀어 당황스럽게 만드는 영화. 지금 소개할 <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 박용준 , 1985)(이하 <서탱고>)는 그 전형이다. 사건은 1박 2일 동안 일어난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가정주부 한수진( 오수비 )은 서울에서 남편의 전화를 받는다. 수진의 남편인 신 박사( 김동현 )는 저명한 가정 문제 전문가. 세미나 때문에 부산에 내려간 그는 아내에게 내려오라고 한다. 오랜만에 바닷가에서 데이트를 즐기자는 제안이다. 경부선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협( 유승무 )이라는 청년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데, 이후 부산에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조우한다. 남편은 강연과 방송 출연 등으로 너무 바쁘다. 환영 리셉션 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새벽에 겨우 숙소로 들어올 정도다. 홀로 남겨진 수진. 여기저기 다녀 보지만, 그 누구도 외로움을 채워주진 못한다. < 서탱고 >가 특별한 건, 이 영화 속엔 1980년대 에로 영화의 굵직한 관습들이 심하게 과장된 방식으로 뒤엉켜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여주인공을 둘러싼 폭력의 시선이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 스릴러가 연상될 정도로 공포스럽다. 수진은 대형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데, 이때 바바리코트에 마스크를 쓴 남자( 배수천 . 이하 ‘마스크 맨’)가 갑자기 그녀를 공격한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수진이 대학생 시절 때부터 쫓아다니던 스토커였다. 영화엔 여러 차례 플래시백으로 마스크 맨과 수진의 과거 장면이 삽입되어, 그녀의 삶 자체가 ‘강간 공포’라는 트라우마로 점철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부산에서 여러 차례 마주치는 청년 협은 수진을 지켜주는 인물처럼 보인다. 수진이 외로울 때나 위험에 처할 때 항상 그는 나타난다. 하지만 그 역시 호시탐탐 수진의 육체를 노린다는 점에서 마스크 맨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이외에도 해운대의 천막 나이트에서 수진을 바라보던 남자들의 음험한 눈빛이나, 술에 취해 수진의 숙소에 난입해 그녀를 범하려 했던 남자처럼, 그녀 주위엔 항상 남성의 거친 시선이 존재한다. ‘성-폭력’을 동력 삼아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에로 영화의 민낯은 <서탱고>의 중심 내러티브를 이룬다. < 서탱고 >가 따르는 또 하나의 장르적 관습은 여성의 욕망에 대한 분열증적 표현이다. 1980년대 한국 에로 영화들은 여성의 욕망이 일단 억눌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 애마 부인 >은 선구자적인 영화일 텐데, <서탱고>는 이 전통을 한층 더 기괴한 방식으로 확장한다. 대표적인 장면은 마스터베이션 신이다. 숙소에서 남편만 기다리던 수진의 외로움은 급기야 분노로 변한다. 그녀는 갑자기 숙소를 뛰쳐나와 해변의 숲속으로 뛰어간다. 그녀는 이곳에서 그네 타는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는 수진에게, 자신의 엄마는 죽었으며 그네는 아빠가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다. 수진은 그네를 타다가 숲속에서 섹스를 나누는 젊은 커플을 우연히 목격한다. 그녀는 다시 뛰기 시작해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도착한다. 그곳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수진. 그녀는 ‘무릎과 무릎 사이’로 밀려드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황홀경에 빠진다. 그 흐름을 따르면, 해소되지 못한 욕정,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격렬한 섹스에 대한 열망 등이 (< 서탱고 >의 명장면 중 하나인) ‘파도 마스터베이션’ 신으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실험영화에 가까운 매우 격한 방식의 장면 연결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 밤 장면과 낮 장면은 무질서하게 배열된다(갑자기 낮에서 밤이 되고, 그러다가 낮으로 이어진다). 물론 촬영 과정에서 생긴 실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퀀스의 급진적인 플롯 구성은 이 영화의 스토리가 마치 여주인공의 의식(욕망)의 흐름에 의해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자의 억눌린 욕망에 대한 테마는, 자연스레 남성 캐릭터가 지닌 모순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 에로 영화에서 묘사되는 부부 관계의 대전제는, 부부 사이에선 절대로 성욕이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대부분 성불구이거나 먼 곳에 있거나 섹스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우연히 만난 젊은 남자’가 차지한다(이것은 < 애마 부인 >이 세운 전통으로, 애마( 안소영 )의 남편( 임동진 )은 교도소에 있고 그 자리를 미술학도 동엽( 하재영 )이 채우는데, < 서탱고 >에선 ‘협’이 그 역할을 한다). < 서탱고 >의 신 박사와 수진은 섹스리스 커플인데, 남편은 아내의 과거가 불결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영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남편을 가정 문제 전문가로 설정한다. 그는 TV에 출연해 말한다.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신뢰입니다. 결혼 전에 일어났던 일은 서로 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성 문제에선 여자보다 좁쌀스러운 게 남자요.” 그러면서 과거에 마스크 맨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고백할 것을 강요한다. 의처증에 걸린 가정 문제 상담가라는 극단적 모순 상황. 이것은 당시 에로 영화가 지녔던 남성 중심적인 보수 이데올로기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 서탱고 >는 당대 한국영화의 트렌드를 한껏 과장하고 뒤틀며 계승한다. < 애마부인 >의 틀을 가져와 그 안에서 < 무릎과 무릎 사이 >( 이장호 , 1984)의 강간 모티프를 변형시키고, < 애마부인 2 >( 정인엽 , 1984)의 히로인 오수비 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러면서 외국 영화의 섹슈얼 코드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접합시킨다. 내용상 전혀 상관이 없으면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72)를 차용한 제목은 어쩌면 1990년대 이후 성인 비디오 시장을 휩쓰는 ‘제목 패러디’의 효시다(게다가 <서탱고>의 무대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이다). 남편이 면도할 때 옆에서 샤워하는 아내를 한 프레임에 담은 장면은 < 드레스드 투 킬 >(브라이언 드 팔머, 1984)에서 가져왔다. 이런 이질성은 <서탱고>를 더욱 불균질적 텍스트로 만든다. 특히 <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메어 자르치, 1979)를 가져온 엔딩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지점이다. 마스크 맨 역할을 맡은 배수천 은 이두용 감독의 ‘발차기 액션’ 영화의 악역으로 유명한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 길이 남을 사이코 연기를 보여준다. “너를 가질 수 있다면 내 인생의 막을 내려도 좋아.” < 서탱고 >의 엔딩은 마스크 맨의 이 대사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협과 처음이자 마지막 정사를 나눈 후, 수진은 숲속으로 달려간다. 그곳 그네에선 마스크 맨이 기다린다. 과거 같았으면 겁에 질렸을 수진은 담담하게 옷을 벗고 그를 받아들인다. 마스크 맨도 마스크를 벗고, 드디어 스토커가 아닌 ‘남자’로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절정에 오르기 직전의 순간, 그녀는 그넷줄을 올가미로 만들어 마스크 맨의 목에 걸고 마치 교수형 집행자처럼 남자를 나무에 매단다. 욕망에 억눌렀던 수진은 자신의 육체를 무기로 남자에게 복수한다. 하지만 반전과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찰에게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있는 수진 앞에 남편이 나타나자, 그녀는 말한다. “난 댁을 모릅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난 댁의 여자가 아닙니다. 남의 여자입니다.” 그리고 신 박사에게 싸늘한 시선을 날린다. 이 시선엔 그녀를 욕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수많은 남성들의 시선을 단번에 뒤엎는 서늘함이 있다. 그리고 이 전복성은 < 애마부인 2 >에서 오수비가 남편에게 했던 대사를 환기시킨다. “이제 난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어요.” 사실 < 서탱고 >는 ‘한국영화 걸작선’이라는 코너 제목에 어울리는 영화는 아니다. 컬트나 괴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영화?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한 건, 이 영화를 통해 당대 한국영화가 지닌 분열증의 극단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박용준 감독은 오혜림을 내세워 < 서울의 탱고 >(1986)를 만들었고 <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2 >(1992)로 ‘탱고 3부작’을 완성했으나 전편의 충격을 넘어서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