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이폰 소시지 터치, 해외토픽 화제
- 제작년도
- 2010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2024년 하반기 대중 영상문화는 퀴어 가시화 측면에서 큰 성과를 낸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을 원작으로 장편영화 가 제작되어 10월 1일 극장개봉 됐으며 10월 21일에는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에 8부작 오리지널 드라마가 독점 공개되었다. 또한 웹툰 『정년이』(서이레, 나몬, 2019. 4.~2022. 5. 네이버웹툰 연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 정년이 >(정지인, 2024)가 tvN에서 12부작으로 제작되어 텔레비전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동시 제공되었다. 두 원작의 주인공 고영과 정년이 모두 동성애자로 설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주요 인물들도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서 벗어난 퀴어적 존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두 원작은 단순히 선정적 소재로 성적 정체성을 전유하는 방식을 넘어, 퀴어 인물들의 고유한 관점으로 시대성, 젊은 세대의 성장과 다양한 관계성,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수행성, 하위문화 혹은 특정 공동체의 민족지적 기술 등과 같은 주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비평적 평가를 받았다. 또한 둘 모두 베스트셀러로서 그 흥행성과 대중성을 입증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두 사례 모두 원작이 발표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다른 매체와 장르로 파생·변환되었다. 물론 트랜스미디어 현상, 특히 이미 대중성을 증명한 원작이 다른 매체와 장르의 콘텐츠가 되는 것은 디지털 환경 속에 놓인 동시대 대중문화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사례에서 보여준 트랜스미디어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의 퀴어적 정동을 드러내 줄뿐 아니라 각 매체 혹은 장르(의 제작자)들이 공개되는 플랫폼마다 현재 수용자를 어떻게 특징짓고 가정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하면, 이제 매체특정성이 아닌 플랫폼 특정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이 사례들이 보여준다. 우선 각 사례의 트랜스미디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례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장편영화와 8부작 드라마로 함께 공개되었다. 둘은 원작은 같지만 각색·연출 방식뿐 아니라 마케팅도 판이했다. 고래와유기농과 쇼박스가 제작하고 이언희 감독이 기획·연출·각색한 극장용 장편영화는 김나들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이 영화는 소설의 4개 에피소드 중 주로 ‘재희’를 가져오고 흥수의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가져와 영화화 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위치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원작 소설에서 4개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화자이자 사연·사건에 연루되는 인물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고영은 흔들림 없는 유일한 주인공이다. 반면 영화에서 고영은 흥수( 노상현 )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름을 유지한 재희( 김고은 )와 주인공 자리를 동등하게 나눠 갖는다. 소설이 다분히 고영의 20대를 함께 하고 목격한 고영‘의’ 친구 재희에 대한 이야기라면, 영화는 소설가 흥수가 내레이션을 도맡고 있음에도 재희 ‘그리고’ 흥수의 20대와 그들의 나눈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즉 전자가 고영에 동일시된다면, 후자는 재희와 흥수 모두에 동일시된다. 극중 흥수와 재희 이언희 감독과 김나들 작가는 흥수의 주관적 시점을 벗어나 재희가 디지털 성폭력, 데이트 폭력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응하는 당참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한편, 개성 강한 대학생에서 회사원이 되며 규격화된 자신의 변화에 대한 개인적 쓸쓸함을 묘사하며 그를 보다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재희는 이성애 여성 청년으로서 동성애자인 흥수보다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취직과 결혼)을 잘 받아들이고 주류에 진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차별을 겪는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어하고 벽장 속에 숨는 흥수에게 재희가 던지는 대사 “니가 너인게 어떻게 니 약점이 될 수 있어?”는 각기 다른 낙인과 차별을 겪는 이성애 여성과 동성애 남성의 우정을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이성애 여성과 게이 남성 간의 우정을 다루면서 게이 남성을 이성애 여성의 사랑을 상담하는 액세서리 혹은 드라마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코믹 릴리프 같은 클리셰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원작과 비교할 때 이러한 주인공의 위치 변화는 극장의 주요 타겟인 2030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더 이끌어 내고 확장성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2종 창작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케팅은 단순 공감을 넘어서 그러한 전략을 더 공격적으로 밀어 붙인다. 홍보용 트레일러와 포스터는 침대 위에 함께 누워있는 재희와 흥수를 보여주고 흥수의 게이 정체성이나 퀴어 등의 단어는 어디서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원작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이들로 하여금 해당 영화를 재희와 흥수의 이성애 로맨틱 코미디로 착각하게 만든다. 포스터와 트레일러 카피에 “사랑은 노터치 우정은 포에버. 순도 100% 찐사친 리얼 라이프”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둘의 로맨스를 가장하기에 이러한 착각은 상당히 고의적이다. 개봉 초반 관객몰이가 매우 중요한 극장 플랫폼이기에 퀴어 소재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이성애 로맨스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까지도 모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군대 내에서 사용했던 성소수자 정책(1994-2011),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와 유사하다. 이 정책은 군대 내 성소수자가 혐오공격의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성소수자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의 심기를 달래고 성소수자가 그 정체성을 드러낼 경우 복무에서 배제함으로써 되레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해당 마케팅은 어쩌면 극장용 상업영화의 개방성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퀴어는 극장 안까지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정체성을 숨겨야 한다. 이것은 영화 본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검열 중인 극장 플랫폼의 성격을 드러낸다. 여기서 상업영화 극장 플랫폼에 재희의 말을 되돌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보호 필름 떼고 하는 거야 사랑은, 이 겁쟁아” (좌)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중 / (우)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티빙의 8부작 드라마는 이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영화와 달리 박상영 작가가 직접 각본을 맡고 소설에 담긴 4편(‘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모두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주년 기념으로 기획해 동학교 출신인 허진호 (< 봄날은 간다 >), 홍지영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손태겸 (< 아기와 나 >), 김세인 (<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감독이 각각 2부씩 연출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고영의 시점을 따라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하위문화나 섹스씬도 영화보다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에이즈 문제도 다룬다. 드라마 시리즈가 온라인 스트리밍 독점으로 공개되어 티빙 구독자만을 타겟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할 전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폐쇄성이 동성애 정체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삶을 그려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티빙은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에 동성애 혐오 세력의 민원성 공격을 받았다. 드라마 시리즈는 그러한 공격과 상관없이 성공적으로 방영되었지만 아무래도 홍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텔레비전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에 공개되었던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을 소재로 여성들의 경쟁과 성장, 우정과 사랑을 그려내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뛰어난 영상미로 재연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 역시 약 1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웹툰 <정년이>의 중요한 인물이 드라마에서 삭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사라진 인물들이 퀴어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준 이들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주인공 정년이( 김태리 )에게 남성성을 체화하는 방식을 가르쳐주고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라는 대사를 통해 퀴어한 젠더 수행성의 주제를 날카롭게 전달했던 남장여자 캐릭터 고사장, 그리고 주인공 정년이의 1호 팬이며 극작가이자 정년이와 동성애 관계에 있는 캐릭터 부용이가 사라진 것이다. 부용이와의 관계성 일부는 국극단원인 주란(우다비)과 영서( 신예은 )에게로 나눠진 것처럼 보인다. 즉 웹툰에서 드라마로 트랜스미디어되는 과정에서 가장 퀴어한 인물들은 삭제 또는 용해를 겪은 것이다. 그 과정에는 투자자나 회사 관계자들의 압력, 혹은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 같은 각각의 사정들이 존재할 것이다. 드라마 <정년이> 중 위의 사례들에서 퀴어 캐릭터와 그들의 문화가 얼마나 가시화되는지에 따라 비교 평가할 수는 없다. 작품의 비평적 평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퀴어는 분명 트랜스미디어 과정에서 광산의 카나리아 혹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어디까지 있는지 실험적으로 날려 보내는 카나리아. 어느 장르와 플랫폼이 퀴어를 살려둘지 아니면 삭제할지 혹은 그 고유한 존재들을 축소하거나 용해시키는지. 소설, 웹툰, 극장, 텔레비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홍보물들 사이에서, 퀴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중첩된 채로 존재한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교과서는 언제나 역사를 재구성한 다음 요약한다. 독일 무성영화에 대한 오해는 영화사의 ‘매뉴얼’화에 관한 사례이다. 그때 영화사의 섬광은 사라지고 오류추론이 시작될 것이다. 독일 무성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해설은 과도할 정도로 표현주의 영화에 기울어져 있고, 그런 다음 하나의 경향에 모든 영화를 수렴시키면서 현실의 반영이라는 도식을 끌어들인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저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 독일영화의 심리사>가 너무 훌륭했기 때문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만 크라카우어도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물론 독일 무성영화의 위대한 전통이 표현주의 영화(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향이 바이마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하나는 사극영화(Kostüfilme)의 대중적인 성공이 있었다.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이 개봉했던 1919년부터 쏟아져나온 영화는 사극이었다. 먼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1918년 11월 11일 일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났고,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유럽동맹들은 독일 제국을 해체할 수 있는 경제적 보상금을 요구하였다. 무엇보다도 산업혁명 이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근대적인 무기가 동원된 첫 번째 전쟁에 유럽인들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여기에 독일 국민은 패전으로 인한 천문학적 화폐 가치 평가절하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다. 빈곤과 허기에 시달리는 독일인에게 필요한 건 빛과 그림자로 표현주의 세트에 그려내는 암울한 실내의 심리극이 아니라 잠시라도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여흥과 웃음의 스펙터클이었었다. 여기에 늘 위대하다고 노래하던 게르만 민족의 낭만주의의 꿈을 산산조각 낸 ‘패전한 조국’에 대한 실망이 독일 관객들을 사극 장르로 이끌었다. 전쟁 전에는 무대 극장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오페레타가 여흥이었다. 하지만 전쟁 중에 대부분 극장이 문을 닫았다. 그 역할을 사극영화가 떠안았다. 경기 불황으로 제작비는 전쟁 이전으로 돌아갔고, 게다가 전쟁에서 돌아온 수많은 남녀노소가 실직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값싸게 대규모의 엑스트라를 쓸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 온 유대인 에른스트 루빗치는 1913년 막스 라인하르트 그룹에서 배우로 합류하였다. 하지만 배우로서는 별 재능이 없었다. 이듬해 단편 <비누 거품 아가씨>를 첫 연출 했다. 배우와 연출을 오가던 루빗치는 1918년 첫 장편영화 <엄마의 눈길>을 감독했다. 다소 놀랍지만 1919년에는 7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그런 일정에도 <즐거운 남편> 시나리오를 썼고, 레오 라스코가 연출했다. 그 해 연출한 <마담 뒤바리>는 9월 18일 베를린의 가장 크고 화려한 극장에서 개봉하였고, 상영이 끝나자 “우레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영화를 보고 막스 라인하르트는 에른스트 루빗치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루빗치씨, 이 학생은 이제 스승을 넘어섰군요” 프랑스 대혁명 전야를 배경으로 실존 인물이었던 루이 15세의 정부 잔느 베퀴, 천민 계급이었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뒤바리 백작과 결혼한 다음 루이 15세의 ‘공식적인’ 정부였던 마담 뒤바리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혁명 관중들 앞에서 목이 잘리는 장면이다. 그래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문학적 표현으로 우회하지 않았다) 이렇게 설명했지만 에른스트 루빗치는 <마담 뒤바리>에서 프랑스 대혁명 전야를 재현하는데 아무 관심이 없다. 이 영리한 유대인은 처음부터 시대정신의 공기를 읽어내는 재능이 있었다. 루빗치는 1919년 독일 관객이 스크린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를 읽었다. <마담 뒤바리>는 다가오는 혁명의 기운과 열광으로 클라이맥스이자 엔딩을 맞이한다. 독일인들은 무언가 다가오고 있음을 매일 거리에서 보고 있었다. <마담 뒤바리>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동안 거리에서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이끄는 독일 공산당 스파르타쿠스당이 경찰과 바리케이드까지 치면서 무장투쟁을 하고 있었다. <마담 뒤바리>를 보면 두 가지 점에서 깜짝 놀랄 것이다. 첫째, 루빗치의 영화를 대부분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로만 알고 있을지 모른다. <마담 뒤바리>에서 이미 ‘루빗치 터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둘째, 동시대의 표현주의 영화들 속에서 루빗치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루빗치는 ‘여자’ 주인공 (1919년이라는 걸 먼저 염두에 두고 셈을 하기 바란다) 잔느 베퀴를 따라가면서 자유자재로 사회의 신분과 계급을 옮겨갈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성 복장으로 변장(cross_dress_gender)하면서 영화의 모든 장면을 동기화하고 재구성해나간다. 그러면서 영화의 플롯은 잔느가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옮겨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장면들에서 잔느는 항상 중심을 차지한다. 이 사이의 긴장이 상황을 거의 난장판으로 만들어나가는데 거기서 루빗치는 희가극이라고 부를만한 코믹한 유머를 냉소적인 조롱을 끌어낸다. 이 장면들을 연출하면서 루빗치는 이미 공간 안에서 인물의 동선을 연결하면서 콘티뉴이티 편집을 비롯한 할리우드 문법을 자신의 영화에서 활용하고 있었다. 에른스트 루빗치는 독일 영화시장을 이미 장악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다른 독일 감독들이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 더 ‘독일적인 것’을 찾는 동안 대중들이 그것을 더 잘 받아들인다면 그 일부가 되어야 하는 방법을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였다. 잔느 베퀴를 연기한 폴라 네그리는 아마도 첫 번째 팜므 파탈의 계보에 속할 것이다. 폴라 네그리와 에른스트 루빗치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조셉 폰 스턴버그와 마를레네 디트리히에 버금가는 여배우와 감독으로 하나의 짝이 되었다. 놀라운 성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담 뒤바리>는 이듬해 12월 12일 뉴욕에서 개봉하였다. 모두가 찬사를 보냈다.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미국 관객들은 독일영화를 혐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담 뒤바리>를 열렬하게 환영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마담 뒤바리>는 독일에서 만든 에른스트 루빗치의 ‘아메리카 영화’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토마스 엘새서는 재치 있게 제안했다. 나만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비평가들은 루빗치를 “독일의 그리피스”라고 불렀다. 유대인이었던 루빗치는 스튜디오에서 ‘독일에서’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은 금방 한계와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이 열광은 루빗치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1920년 뮌헨에서 반유대주의와 범게르만주의를 당 강령으로 내세운 독일 노동자당이 창설되었다. 그 해 아돌프 히틀러가 당에 가입하였다. 에른스트 루빗치는 1923년 미국으로 떠나는 증기선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