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커 & 데일 Vs 이블
- 감독
- 엘리 크레이그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테일러 라빈, 알란 투딕, 카트리나 보우든, 제시 모스, 필립 그랜저
이렇게 매력 충만한 영화가 극장 개봉을 못 하다니, 좀 억울하지 싶은 생각이 든다. 스크린으로 못 보는 것도 그렇고, 덕분에 마케팅의 기회를 잃어 소개될 기회도 제한된다는 생각이 드니 그런 안타까움이 급증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코너가 그래서 생겨났지 하는 생각에 일단의 안도감을 느끼며. < 더 브론즈 >는 굳이 카테고리를 찾자면, 스포츠영화다. 뼈대로만 보면 17살 체조선수가 부상 후 실의에 빠져 있다가 몇 년 후 후배 선수를 양성하며 다시 자아를 찾아 나가는 예측 가능한 형태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손쉽게 설명하고 말아버리면 영화의 매력이 손가락에서 모래 빠져나가듯이 쉬쉬쉬 다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 기존 스포츠영화가 가진 식상한 도식들에서 벗어날 비장의 무기들을 잔뜩 챙겨가지고 있으니, 부디 일단은 빨,파,흰색 조합의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걸친 멜리사 로치의 <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스러운 스틸 컷에 일단 혹해주길 바랄 뿐이다. 호프 앤 그레고리(멜리사 로치)는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 애머스트에서 나고 자란 영웅이다. 올림픽 체조 동메달 선수로 명성을 얻어 마을 입구 비석에는 ‘세계 제일 사암의 고장’이라는 수식과 함께 ‘2004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호프 앤 그레고리의 고향’임이 자랑스럽게 표기되어 있다. 그녀의 동메달이 화제가 된 건 2004년 올림픽 도중 발목에 부상을 입은 채로 아픈 다리를 수습하고 이단 평행봉에 도전한 스포츠 정신을 높이 사서다. 그렇게 그녀는 일숨에 에머스트의 천사가 되었다. 착지의 순간, 브라운관을 빠져나온 카메라가 잡는 건 화면을 보며 쾌감에 젖은 현재의 호프다. 호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현재에는 ‘가망’이 없다. 부상으로 체조를 그만둔 그녀는, 일생 최고의 환호가 쏟아지던 순간을 되감기 하며 침대에서 자위를 하고 약물을 흡입하며 시간을 보낸다. 단둘이 사는 아버지에게는 온갖 짜증과 욕설을 퍼붓고, 우체부로 일하는 아버지의 우편물을 뒤져 돈을 훔치기 일쑤다. 마을 곳곳 상점에 동메달을 목에 건 빛바랜 사진으로 간신히 명성을 입증해야 하는 삶.(그러고 햄버거 할인을 받는 정도랄까) 호프의 현재에는 그러니까, 문제가 넘쳐흐른다. 호프 앤 그레고리가 가진 문제의 핵심은 그녀가 한때 ‘공주’였으며, 공주가 아닌 현재의 그녀가 여전히 그 ‘한때’를 놓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생활은 불가능한데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선수, 연금이 이미 다 바닥났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수익으로 집안이 유지된다고 믿는 자신감. 그 갭과 괴리감을 다른 누가 메꾸어 줄 수나 있을까. 일단 차림새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어딜 가나 호프 앤 그레고리를 모를 새라 등에 큼지막하게 U. S. A가 새겨진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를 보면서 찬란했던 그녀의 과거를 유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호프를 추락한 지금의 일상에서 끄집어내는 계기는, 자신이 지금 지도 중인 매기를 올림픽에 나가게 해준다면 50만 달러의 유산을 호프에게 상속해 주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택한 그녀의 전 코치에게 있다. 현실을 위해 50만 달러의 가능성을 수락하지만, 사실 호프에게 중요한 건 돈보다, 대중에게 천사로 군림해 온 자신의 자존심이다. 전도유망한 후배 선수 매기에게 기름진 햄버거만 먹여 망쳐놓는 건,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해 줄 코치가 아니라 여전히 자신만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주인공이고 싶어 하는 열망에서 기인한다. 그녀가 현실과 과거에서 오는 영광의 갭을 줄이지 못하는 걸 탓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 인정욕구 역시 호프가 별나서가 아니다.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메달을 향해 달려왔던 이 영화의 선수들 모두가 그렇다. 호프와 티격태격하며 시종 그녀를 시기하는 팀 코디네이터 랜스 터커는 그리하여 이렇게 폭발한다. “난 금메달, 은메달 다 땄는데, 사람들은 모두 동메달 딴 ‘호프의 기적’만 대단하다고 말한다고!” 체중 조절을 위해 ‘한 달 동안 수박주스만 먹어, 씹는 법을 새로 익혀야 할 정도’인데다, 가슴이 나오지 않도록 붕대로 가슴을 꽁꽁 싸매고 다닌 호프 같은 사춘기의 선수들에게 대중의 인정은 곧 폼 나는 삶을 유지할 동력이다. 경쟁, 시기, 낮은 자존감, 부상 같은 변수들 앞에서 영화의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 모두 자신이 획득한 영웅의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무시무시한 공포를 끌어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비정상적인 어른이 되어갈 뿐이다. 호프는 결국 매기가 올림픽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돕게 되지만, 그러기까지는 환호 속에 존재하던 자신이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이 씁쓸한 현실 어디에도 여느 스포츠 영화의 ‘재기와 갱생의 프로젝트’가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 더 브론즈 >의 장면 중 마음을 흔드는 하나의 장면은 올림픽 경기에서 매기가 환호를 받는 순간 자신의 영광을 뒤로하고 멀어져가는 호프의 뒷모습이다. 관중은 새로운 영웅을 주목할 뿐, 그 순간 과거의 영웅은 빛을 잃는다. 그 교체의 시간을 안타깝고 길게 응시해주는 건 호프의 아버지뿐이다. 브라이언 버클리 감독은 체조경기의 쾌감은 모두 덜어낸 채, 오롯이 대중의 심리가 움직이는 역동성 안에서 벌어지는, 이 감정의 분투를 지켜본다. 이 영화가 신기한 지점은 욕쟁이 호프를 위시한 어느 하나 선뜻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호프 정도는 좀 포장해줄 법한데, 그러지 않는다는 데 오히려 점수를 주고 싶다. 시트콤 < 빅뱅 이론 >에서 독특한 목소리로 시종 웃음을 끌어내는 베르나데트 역의 멜리사 로치가 심통스런 호프 역을 맛깔나게 연기할 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 윈스턴 로치와 공동 각본을 집필했는데, 그녀의 코믹함을 십분 투여했지만 그게 <빅뱅 이론>에서처럼 귀엽고 유쾌한 웃음과는 거리가 좀 멀다. 그들은 그냥, 지질하고 있는 그대로여서 웃길 뿐이다. 아, 호프와 랜스가 급작스럽게 돌진하는 19금 체조 섹스 장면에서만큼은 호프의 캐릭터만큼이나 제대로 ‘병맛’ 살린다. 미국을 대표하는 남녀 국가대표 체조의 다양한 동작들이 격렬한 체위로 수행되는 그 과정에 대해 랜스 역을 연기한 세바스티안 스탄은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하면 병맛을 살릴지 스태프들과 함께 엄청난 구상과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었다“고 밝힌다. IPTV 서비스로는 안타깝지만 그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바람에, 그렇게 고심해서 찍었을 게 분명한 정말 중요한 장면 하나를 놓치고 만다는 걸 미리 알려둔다.
어느 영화나 다 기구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 터커 >를 만들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우여곡절을 넘겨야 했다. 애초 계획은 < 대부 2 >가 끝나는 대로 말론 브란도를 주연으로 촬영할 생각이었으나, 이는 < 지옥의 묵시록 >으로 인해 바뀌고 만다. 시대를 앞서 나간 천재의 좌절과 전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 기치가 전쟁의 광기와 내재된 악마적 본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코폴라는 두 번째 터커 역으로 버트 레이놀즈를 낙점하지만 배역을 맡기에 너무 어렸고, 시나리오가 지연되고 다른 프로젝트가 개입되면서 <터커>가 재개되었을 땐 불행히도 그 역을 맡기에 너무 늙어버린다. 최종 촬영이 들어갔을 때 터커 역을 맡은 이는 <지옥의 묵시록> 오디션에서 떨어진 바 있던 제프 브리지스였다.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 청춘낙서 > 때와는 반대로 조지 루카스가 제작을 책임지며 간신히 영화를 마칠 수 있었지만, 2,300만불의 제작비를 들인 <터커>는 본전도 회수하지 못한 채 망해버렸고, 이 실패로 코폴라는 16년 만의 속편, < 대부 3 >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코폴라의 꿈의 프로젝트였지만 좌초해버린 영화의 운명은 기가 막히게 실제 주인공인 프레스톤 터커의 삶과 닮았다. 1940년대 장삿속 위주로 판매에 몰두하던 미국 자동차 빅3, GM과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항해 순수한 열정으로 안전과 편의에 입각한 자동차를 만들고자 했던 터커는 사기혐의로 몰려 오랜 기간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고, 간신히 재판에서 이기지만 그로부터 6년 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 도전의 좌절과 시련을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활력 넘치게 그려내는 코폴라의 유려하고 리드미컬한 연출은 인상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저평가되고 대중들마저 외면해 쓸쓸히 잊혀진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터커에 의해 처음 주창되고 채택한 안전벨트와 연료분사장치, 디스크 브레이크와 패디드 대쉬가 현대 자동차의 기본 장비로 쓰이고 있고, 혁신적인 공기역학 스타일의 디자인 역시 현재 유행이 되었듯, 코폴라가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창조적인 열정과 무한한 도전정신, 그리고 꿈과 아이디어는 생생히 남아 두고두고 곱씹게 만든다. 물론 조 잭슨이 담당한 들썩들썩 흥겨운 영화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조 잭슨.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라 느껴진다면, 맞다. 그는 펑크와 뉴웨이브가 약동하던 1970년대 후반 신성처럼 등장해 세련되고 도시감각 넘치는 스타일로 단숨에 주목받은 영국의 뮤지션이다. 펑크, 뉴웨이브, 스카와 레게, 팝, 블루스 그리고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들을 재해석하고 혼합해 자신만의 사운드를 창조한 그는 뛰어난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로, 어린 시절부터 로큰롤과 베토벤, 재즈 등 다양한 장르에 심취해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고 작곡했던 수재였다. 영국 왕립음악 아카데미를 장학금 받고 다녔고, 졸업 후 연주활동을 하던 그의 데모 테이프가 듀란듀란과 트레이시 채프먼, 브라이언 아담스 등과 작업한 바 있는 음반 제작자 데이비드 커센바움 눈에 들며 데뷔하게 되었다. 고전을 경배하지만 한 장르에 안착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꺼리지 않는 그의 과감하고 진보적인 사운드는 익숙하면서도 모던한 경향을 띠는데, 90년대 이후 클래식과 연주 음악으로도 행보를 넓히며 더욱 원숙해진 음악성을 발휘하고 있다. 처음 영화음악을 담당한 건 1984년 <마이크의 살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영화가 재편집되며 존 배리의 음악으로 대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잭슨 자신도 영화 후반의 타이트한 작업일정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고 토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터커>에선 원래 내정됐던 존 윌리엄스를 제치고 그의 스코어가 간택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조 잭슨 Joe Jackson 그래서 그런 걸까. <터커>는 일반적인 스코어와는 조금 다른, 자유분방함과 실험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닌, 복고 지향적인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 같다. 빅밴드와 스윙, 딕시랜드, 랙타임 그리고 부기우기 등 초기 뉴올리언즈 재즈 스타일을 기조로 밝고 명랑한 사운드를 영화 전반에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암울하고 무거운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터커의 실패담을 희망차고 상징적인 신화로 반전, 격상시키는 효과를 준다. 담합과 관료주의 앞에 무릎 꿇은 시련에 찬 기업가 모습을 담기보다 낭만적인 영웅의 도전기로 비치길 원했던 코폴라의 감상적인 연출은 그래서 조 잭슨의 고색창연하지만 감미로운 사운드와 더 잘 어울린다. 만약 존 윌리엄스의 고전적인 심포닉 스코어였다면 이처럼 다양하고 색다른 분위기로 전환하거나 변화를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과거 뉴스릴이나 징글(이른바 CM송)에서 쓰였던 스타일을 카피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장기인 블루스와 뉴웨이브 등을 가져와 재즈와 결합시키며 조 잭슨이란 이름을 명확하게 각인시킨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을 인수해 자신의 터전으로 삼게 되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Factory’는 여백과 퍼커션, 공장에서 들릴법한 소음들로 공간감을 극대화시킨 상상력이 돋보이는 큐이고, 하워드 휴즈와 만나는 짧은 씬에 흘러나온 ‘Hangin’ in Howard Huges’ Hanger’는 그 당시 SF영화에서 유행처럼 사용된 테레민 사운드를 흉내 낸 센스가 일품인 트랙이다. 여기서 코폴라는 거대 세력에 맞선 고독한 영웅의 심리를 앙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모노톤의 표현주의 스타일을 활용해 인상적인 씬을 만들어냈다. 터커가 자신의 주제가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부르며 호랑이 힘(?)을 불어넣는 ‘Tiger Lag’은 밀즈 브라더스나 루이 암스트롱이 불러 유명해진 올드 넘버를 잭슨 자신이 직접 부르고 있으며, 그 외 아들 영화라면 빠짐없이 작곡가든 지휘자로 참여하는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가 작곡한 ‘Tuker Jingle’도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이전부터 재즈의 매력에 빠졌던 잭슨이지만, 이 사운드트랙이 기점으로 보다 진일보한 인스트루멘털 앨범들을 선보이며 아티스트 반열에 올라선다. 실패한 영웅이자 아메리칸 드림의 다른 신화 프레스톤 터커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비록 코폴라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이처럼 훌륭하고 뛰어난 응원가를 남겨주었다. 그해 그래미상 최우수 영화음악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던 조 잭슨의 긍정적이고 희망찬 스코어는 타인에게 쉽게 전염되는 달콤한 꿈처럼 강렬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성공의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찬가로 더할 나위 없다. Track List 1. Captain of Industry (Overture) 2. The Car of Tomorrow-Today! 3. No Chance Blues 4. (He's A) Shape In a Drape 5. Factory 6. Vera 7. It Pays To Advertise 8. Tiger Rag 9. Showtime In Chicago 10. Lone Bank Loan Blues 11. Speedway 12. Marilee 13. Hangin' In Howard Hughes' Hanger 14. Toast of the Town 15. Abe's Blues 16. The Trial 17. Freedom Swing / Tunker Jingle 18. Rhythy Deliv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