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
- 감독
- 존 S. 베어드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태런 에저튼, 토비 존스, 니키타 에프레모프, 소피아 레베데바, 로저 알람, 앤서니 보일, 이가와 토고, 벤 마일즈, 릭 윤
영화 촬영 감독. 써놓고 보니 그야말로 멋진 단어가 아닌가. 아마도 그 멋의 대부분은 영화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사람의 경우 보통은, 이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액션”이라든가 “컷”이라든가 하는 말들을 외치면서 배우를 감독하는 사람이 아마도 감독일 터인데, 촬영 감독이란 사람은 무엇을 감독한단 말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뭐라도 감독한다니 멋이 나는구나! ...그러니까 촬영 감독이란, 말하자면... 카메라를 감독하는 사람이리라. 영화란 매우 당연하게도, 카메라로 찍는 것이다. 제아무리 명작가가 기가 막힌 시나리오를 쓰고 명감독이 액션과 컷을 멋들어지게 외치고 명배우가 울고 웃어도, 그 촬영장 어딘가에 카메라가 서 있지 않으면, 좀 더 생색을 내자면 촬영 감독이(엣헴) 카메라의 REC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그 순간들이 영화로 기록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렇다면 촬영 감독이란 인간은 고작 버튼 정도를 감독하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터인데,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게 이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카메라가 그냥 서 있을 것인지, 움직일 것인지, 혹은 움직이기로 사전에 결정을 해 두었는데 막상 움직여보니 그냥 서 있는 편이 나은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해는 져 가는데 접고 내일 다시 찍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이 꼭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엔 정답이라는 것이 없고, 누군가는 그것들을 조율하고 결정을 내려서 어느 순간에는 계속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촬영 감독이란, 촬영장에서 생기는 기술적인 문제를 감독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하면 촬영 감독이란 직업을 가지게 되는가. 소싯적부터 카메라에 숨길 수 없는 재능을 보여 빨간 버튼만 보면 누르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든지 왠지 모르게 팀 버튼 영화가 취향이라든지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본인의 경우는 아닌 듯하고, 무언가 영화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는 일을 하고 싶어 어찌어찌 영화학교에 들어갔으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건 어째 내 길이 아닌 듯한 와중에, 이것 봐라 카메라맨이란 직업이 꽤 나쁘지 않은 것이다. 촬영장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도 척척 나르고 문제들을 척척 해결해 나가는 것이 무언가 척척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졸업 작품으로 촬영한 단편 영화가 프랑스의 썩 유명한 영화제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상을 받는 바람에, 또 그런 마음이 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어쩌다 보니, 덜컥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가 촬영을 전공하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빼도 박도 못하게 카메라맨의 삶을 선택한 거지. 카메라 뒤에 계속 있기로 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졸업 후 통장의 잔고를 돌아보니 매우 슬퍼져서 이런저런 촬영 일들을 하면서 버티던 차에, 손태겸 감독이 영화 아카데미 장편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 친구와는 영화학교 동기이자 문제의 그 졸업 영화를 함께 만드는 바람에 영화 아카데미에서까지 동기가 되고 마는 불행한 인연을 계속 이어온 사이었으며, 언젠가는 장편 영화라는 걸 한 번쯤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꿈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이자 무엇보다 개그 코드가 서로 잘 맞는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었다. < 아기와 나 >는 그가 예전부터 장편으로 해보고 싶다 말하던 이야기로, 큰 파고의 감정을 다루는 걸 피해가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때는 2015년 여름, 본격적인 < 아기와 나 >의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장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우선 사무실에 출근하는 일이어서, 홍대 모처의 냉방이 좀처럼 되지 않는 사무실에 스태프들과 모여앉아 여러 가지 촬영 계획을 짜야 했다. 처음으로 장편 영화의 촬영을 맡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제작비 통장을 볼 때마다 문득 슬퍼지곤 해서, 이런 돈으로 사람을 쓰려 하면 안 된다고 훈계하신 미술 감독님도 계셨고, 미팅을 하러 왔다가 페이를 듣고 허허 웃으면서 사라져 가신 녹음 감독님도 계셨더랬다. 어찌 되었든 영화는 찍어야 되지 않겠는가. 연출부는 손태겸 감독의 지인들이었는데, 여러 가지 처참한 상황에도 쉽지 않은 준비 기간 동안 쉽지 않은 일들을 함께해 주었다. 보통은 영화 준비 기간에 본 촬영에 들어가면 이러이러한 동선과 화면으로 이래이래 찍자 하고 계획을 짤 때면 콘티 작가가 붙어 그림을 그려서 계획을 세우고는 하는데, 우리는 대신 감독과 연출부들이 사무실 근처 공간들을 오가며 촬영 현장을 가정하고 연기하면서 실제 사진을 찍어 콘티 작업을 대신했다. 이런 작업 방식은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퇴근을 하지 못하고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아픔이 많은데, 모두가 한마음으로 영화에 관한 열정이 있었으니까...!! 라고 말한다면 적잖이 간지러운 이야기이고, 사실은 우리 모두 이 과정이 꽤 즐거웠었으니까. 라는 생각이다.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실은 그런 종류의 일들이 연속되는 나날들이다. 어쨌거나 영화를 만드는 일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우리가 만들 영화는 이런 모습이 될 거야, 라고, 준비하는 시간이나마 낙관하는 일. 화이트보드 언제나 실제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주연으로 결정된 이이경 배우는 한창 떠오르는 스타로 TV 프로그램과 드라마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빴고, 정연주 배우는 실제 촬영 회차는 많지 않았음에도 TV 쇼에서 고정 패널을 맡고 있어서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영화의 수없이 많은 변수들 덕분에 프로덕션을 앞둔 우리는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 스케줄을 작성해놓고는 가안과 수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끼리는 ‘강 건너기 게임’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왜 있잖는가, 양치기가 늑대와 양과 양배추를 강 건너까지 보내야 하는데 늑대와 양을 두고 가면 늑대가 양을 잡아먹고 양과 양배추를 두고 가면 양이 양배추를 먹어치우고 하는 문제들. 이날은 10씬을 찍고 20씬으로 이동하면 되지 않을까? 아뇨 그때 이경씨가 스케줄 때문에 이 시간 이후만 가능한데요? 그러면 10씬 대신 9씬을 집어넣으면? 그때는 그 장소가 몇 시부터만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아예 8씬과 21씬을 이날 찍으면? 그러면 7, 8씬에 나오기로 한 선배님께서 일정이 어긋나는데? ...그럼 그냥 20씬만 찍는 걸로 합시다. 감독님 연락이 왔는데 그날 20씬 찍기로 한 데가 다른 날밖에 안 될 것 같대요!! ...말을 말자. 그렇다고 한들 허허 알아서들 하시고 저는 촬영장 가서 REC 버튼만 누르겠습니다. 라고 할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만드는 영화 속 장면 장면들이 좋은 공간에서, 좋은 빛을 받게 하고 싶으니까. 어찌어찌 그 생지옥 속에서도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감정이, 감독이 시나리오에 묘사한 이야기가, 카메라를 통해 영화로 제대로 옮겨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개와 애와는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격언이 있는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는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가 어어어어어엄청나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영아치고는 몹시 수더분한 성격의 피디의 조카 예준이가 캐스팅되기는 하였으나 아니나 다를까,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영화 촬영장에서 낯선 배우의 품에 안긴 예준 배우는 얌전하다가도 액션을 외치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배우들은 젊은 나이에 표현하기 쉽지 않은 감정들을 때로 카메라 뒤의 본인마저 찡해질 정도로 멋지게 표현해주곤 했다. 그런 감정들을 거칠더라도 온전히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감독과의 의논 하에 < 아기와 나 >의 촬영은 90퍼센트 이상 들고 찍기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두 달이 넘는 촬영 기간 동안 몇십 킬로그램쯤 될 카메라는 촬영의 어깨 위에 대부분 올려져 있었다. 꽤나 고생스러운 일이지만 마찬가지로,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아기와 나> 촬영 현장 그래서 영화 촬영이란 결국, 무거운 쇳덩이를 짊어지는 일이다. 영화 아카데미에는 어지간한 상업 영화들에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촬영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는데, 좋은 장비가 좋은 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만 그러한 전문적인 장비들을 사용해 화면을 어떻게 구현할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관객이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좀 더 영화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고, < 소셜포비아 >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 연애담 >과 같은 아카데미 장편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 뒤에서 뛰어난 촬영감독들이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장비의 전문성이란 장비의 무게이기도 해서, 그것을 운용하는 데는 그 쇳덩이들이 손에 익은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하다. 영화 촬영팀은 고가의 장비들이 담긴 무거운 박스들을 많이 가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보통 12인승 스타렉스를 빌려 트렁크 쪽의 의자를 두 줄쯤 떼어내고 차곡차곡 장비를 테트리스해서 다니곤 한다. 짧지 않은 프로덕션 기간 동안 그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노라면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오는 집보다 여기가 진짜 집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안에서 매일 만나는 촬영부 친구들은 어떻겠는가. 이 이상한 유대감의 정체는, 마찬가지로 스타렉스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것 말고는 도통 재미가 없어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겠지. 영화를 찍기 위해서 어딘가에 카메라를 세우는 것. 앵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 글을 빌어 ‘아기와 나’의 촬영부인 이승현, 박찬희, 김선형과 데이터 매니저 오혜주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프로덕션 시간표는 흘러가고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 아기와 나 >는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었다.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조만간 해외 영화제에서도 상영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었다만, 뭐 그런 거지. 마틴 스콜세지쯤 되는 거장도 영화를 찍어 놓으면 칭찬도 받고 욕도 먹고 하는데 우리 같은 쪼렙들이 좋은 소리만 듣겠냐. 우리는 꿈꿔오던 장편 영화를 만들었고, 그걸 의도하던 대로 어찌어찌 완성한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기도 하고. 장편 영화를 한 편 완성했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통장 잔고는 계속해서 줄어들기 마련이고 그 부분은 썩 기쁘지만은 않기 때문에, < 아기와 나 > 이후에도 어떻게 REC 버튼을 꾸준히 계속 눌러 보려고 한다. 장편을 하나 찍고 나니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겨서, 지금은 학교에서 막 카메라에에 흥미를 느끼는 젊은 친구들을 돌이킬 수 없게 부추기는 일을 하고 있다. 어차피 영화 만드는 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친구들은 놔둬도 불구덩이로 뛰어들기 때문에 그다지 죄책감은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진심으로, 카메라를 책임진다는 건 꽤나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부족하게나마 이렇게 계속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해주고 싶은 거지.
2. ‘늑대소년’ 에피소드 2011.9.1 ~ 2011.12.20 프리 프로덕션 2011.12.21 ~ 2012.4.15 프로덕션. 총 67회차 후반 작업 후 2012.10.31.(개봉) 프리 프로덕션 너무나 감사하게도 흔히 말하는 대박이 났던 영화.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첫 시작은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었다. 물론 당시 감독님은 < 남매의 집 > < 짐승의 끝 >으로 한창 주목받는 신예였지만 상업영화 스태프들의 눈에는 여전히 신인 감독이라는 색안경이 있었고 주연이었던 송중기 도 지금은 아시아의 프린스지만 당시는 라이징 스타 정도. 박보영 또한 과거 히트를 친 경험이 있는 배우였지만 몇 년 쉰 후의 복귀작이라 주변에서 불안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더군다나 다른 팀의 영화 만드는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 중 “뭐 대충은 알겠고, 그럼 너네 영화 내용은 뭐냐? ” 라고 물었을 때 “첫 사랑 이야기고 꽃미남 소년이 늑대로 변신해. 그리고 늙지 않고 나중에 할머니가 된 소녀와 다시 만나는 이야기야” 라고 했을 때 10명 중 9명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늑대로 변신한다고? 누가, 사람이? ...... 그게 되겠냐? 한국에서 판타지는 안돼!” 그들의 예상은 시원하게 틀렸지만 리얼리티의 맹신자! 한국 관객들의 특성을 우리도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한가득 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프리 프로덕션을 하면서 가장 공을 들였던 것들은 역시나 늑대. 송중기 =철수 역이었다.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가질까? 였다. 그 첫째가 우선 비주얼 문제. 소년이었을 때 모습과 늑대가 되었을 때 모습. 소년이었을 때야 뭐 중기가 워낙 꽃미남이라 걱정 안 했지만 늑대로 변신한 모습은 중기 본인과 모든 스태프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둘째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늑대소년이 소녀와의 사랑을 통해 길들여져 가는 과정에 몸짓, 감정의 표현들이었다. 왜냐하면 분명 이 영화는 사랑을 속삭이는 멜로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했다. 20110906 철수 관련 회의록 중 일부 1. 눈 1안 : 사람 눈 → 늑대 눈 2안 : 늑대 눈 → 늑대 눈 (밝기와 동공모양) 2. 이빨 평소 : 사람이빨 같은데 송곳니가 도드라져있다. / 변했을 때 : 더 부각이 된다.(길어진다) - 4단계 정도 3. 손톱, 발톱 - 자르는 순간:1안. #18씬. (깨져있거나 울퉁불퉁인데 ---- 다듬어진다) / 2안. #28씬 - 자를 필요가 없다. ............................................................... - 평소 : 노말한데 변했을 때 : 더 부각이 된다.(길어진다) 4. 구부정 #12 처음등장은 네 발 짐승 1단계 1안. 처음부터 인간과 만나면서 두 발로 다닌다. 2안. #27부터 두 발이 된다. 2단계 #28씬 --어느새 사람처럼 허리를 거의 핀 철수. 3단계 - #55 이후는 사람에 가까운데 의기소침해서 구부정한 것. 그 이후는 감정에 따라서 구부정의 모습이나 형태가 변한다. - #40에서 인간적인 것보다는 동물적으로 구부정하게 돌아간 철수 단, 순이와 함께할 때는 인간에 더 가깝다. ............................................................... * 개처럼 누워있는 것은 영화 전체적으로 계속적인 철수의 습관이다. 감정에 따라서 그 표현 수위만 조절 (귀엽게 엎드려있기도 하고 화가 날 땐 으르렁 거리면서 엎드려있다) ............................................................... 프리 프로덕션 단계 때는 이런 아이디어 회의를 수도 없이 한다. 보니까 초창기, 가장 기초적 회의라 좀 러프하고 정리가 덜 된 상태지만 이러한 아이디어 회의를 기준으로 야생의 철수가 사람이 되는 모습, 행동의 변화를 시나리오 흐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눠서 그 단계에 맞는 의상과 분장, 배우의 움직임, 자세를 정교하게 만들었다. 또한 동물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익히기 위해 배우 이준혁 선배(움직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두 달가량 중기가 트레이닝을 받았다. 러프 콘티가 나와 있는 상태였고 (기본적인 동선) 이것을 기준으로 씬 별로 준혁 선배가 동물의 기본적인 습관, 움직임을 보여주고 아이디어를 주면 중기는 그 움직임을 베이스로 본인 나름의 재해석한 연기를 했고 우리 연출부는 매번 연습장면을 찍고 감독님과 배우에게 전달했었다. 그리고 각자 그 영상을 보면서 촬영 전에 연출과 액팅을 시뮬레이션했고 조금씩 약점을 개선해 나갔다. 또한 관심사였던 철수가 괴물로 변신했을 때의 모습은 감독님이 직접 디자인을 해서 만들었다. 조성희 감독님의 주특기가 시각 디자인 전공에 CG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워낙 비주얼에 관해서는 본인 생각이 확고한 사람이라 본인이 그린 괴물을 스태프들에게 보여줬을 때 모두들 굉장히 만족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영상작업에서 단순한 스케치라도 시각화를 해야 이야기를 나누기도 편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확장시키기도 좋은데 괴물의 모습이 탄생하면서 의상, 분장, 특분, CG, 특효, 무술 등의 여러 파트에 준비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감독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은 영화작업에 있어서 매우 큰 장점이다. 분명 스태프들로부터 더 큰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1 2012년 2월 9일. 29회차 촬영 스케줄표 (스태프들끼리는 촬영 달력이라고 부르는데 촬영 내용을 간단하게 표시한 요약집 같은 거다) #41D. 지태( 유연석 )가 순이( 박보영 )를 괴롭히고 때리는 것을 지켜보던 철수가 화를 참지 못하고 영화상 처음 괴물로 변신하던 날이었다. 밤 촬영이었고 지태와 그 친구들이 철수와 복잡한 액션을 찍는 첫날이었고 괴물로 변한 철수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다가 관객들에게 처음 완전체를 보여주는 날이라 우리 영화에 흥망이 달린 촬영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낮부터 촬영장에는 스태프들, 배우들이 총출동해서 액션 동선을 점검하고 그에 따른 안전장치, 와이어, 와이어 크레인, 액션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사전에 약속된 소품, 특수효과들을 준비하느라 에너지가 넘쳐났다. 나는 감독님들과 찍는 순서, 디테일한 세부 사항을 약속하고서 다시 그 결과를 스태프들과 공유했다. 겨울 촬영이라 해는 금방 넘어갔고 다들 저녁을 먹은 뒤 본격적인 밤 촬영을 준비했다. 촬영장은 전주 양묘장이라고 전주시에서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던 공터였는데 그곳에 순이 집의 외관 껍데기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 오픈 세트장에서 며칠 촬영하며 안 사실이었지만 쓰레기 매립장이어서 그랬는지 밤이 되면 땅속에서 어떤 가스와 습기들이 올라와서 지표면을 뿌옇게 채웠었는데 이 습기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추위를 선물했었다. 이날도 고작(?) 영하 10도였지만 실제 우리가 느낀 체감 온도는 그 차가운 습기 때문에 더욱 덜덜덜 + 덜덜 이었다. 저 멀리 크레인이 올라가고 영화용 달이 뜨면서 현장 세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어서 2시간 정도의 특수 분장을 마친 중기가... 아니 늑대소년이 현장에 왔다. 그가 왔을 때 스태프들의 표정은 아직 생생하다. 풀 세트를 장착한 늑대소년을 사진으로만 본 사람도 있고 처음 본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 모두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맞나...? 맞을 거야... 맞나? 맞을 거야... 아닌가...? 맞을 거야.” 상상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 그것을 다시 영화적으로 만져서 극장에서 보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본인들도 경험상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몇 개월 동안 시나리오라는 같은 글을 수십 번 읽으면 각자가 상상한 늑대소년의 모습은 서로서로가 다르고 내심 자신의 판타지를 닮았기를 바란다. 감독이 결정한 모습이 있음에도 말이다. 참 재밌는 현상인데 스태프는 작업자이자 동시에 이 영화의 첫 관객이기도 하다. 영화 스태프를 하며 자신의 상상과 현실을 이어보려고 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참 진귀한 풍경이다. 꿈속에서 보던 백마 탄 왕자를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마음. 농담이 아니고 딱 그거다. 그리고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여담인데 마찬가지 이유로 스태프들은 영화 작업을 하는 몇 개월을 시나리오를 통한 반복 학습을 하며 각자만의 상상 속에서 살게 되는데 이 효과가 얼마나 강력하고도 강력한지 나는 알고 있다. 한 예로 이전 멜로영화를 만들다 보면 현장에서 탄생하는 커플들이 유독 많았고 액션 하드코어를 찍다 보면 현장 분위기가 우울하고 드셌다. 공포 영화를 찍다 보면 꼭 세트장에서 귀신 봤다는 스태프들이 등장했고 한때 섹시 코미디 영화를 작업했던 나는.................. 흠. 어쨌든 그 날은 현장 스태프가 100명이 훌쩍 넘었고 모두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대규모 전투를 치르듯이 찍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관객들이 제발 괴물이 된 늑대소년을 처음 보고서 “에이 이게 뭐야! 말이 돼?” 라는 반응만 안 하길 빌며 촬영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럴 새도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또 난이도가 있던 촬영이라 그랬는지 예상치 못한 사고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괴물이 된 늑대소년이라 컬러렌즈를 꼈고 송곳니가 달린 가짜 치아를 끼고 있었는데 찍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액션 중 송곳니가 부러졌고 그 조각이 중기 목에 걸리는 사고도 났었고 눈에 낀 칼라렌즈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한 컷 한 컷 찍어가며 철수가 나쁜 놈들을 이리 던지고 저리 물리치던 #41D는 3일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지금도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괴물이 된 철수가 차가운 입김을 내뱉으며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다가 전주 밤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포효하던, 그 새벽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중기가 용기 있게 잘해낸 씬 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2 2012년 1월 3일. 9회차 촬영 스케줄표 #38B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철수와 순이. 둘 만의 데이트. 순이가 철수를 위해 자신이 만든 노래를 기타연주와 함께 들려준다. 보영이는 현장에 마스코트. 분위기 메이커였다. 싹싹했고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잘 어울렸고 의외로 터프했다. 이날은 보영이가 프리 내내 연습하고 연습했던 기타연주와 노래를 뽐낼 시간이었다. 순이가 된 보영이는 거실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고 철수는 마룻바닥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노래를 하는 순이를 지긋이 바라본다. 둘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중요한 씬이었고 아름다운 감정씬이었다. 두 대의 카메라가 순이를 향해 있었고 멜로의 뽀샤시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조명 감독 형은 앉아있는 순이의 뒤통수가 정말 타들어 갈 정도로 강력한 HMI 조명들을 몇 개나 설치했다. 연주를 시작하는 순이. 그 날의 첫 샷. 첫 테이크를 찍을 때의 그 순간. 그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A캠이 트래킹을 하며 순이의 메인 컷을 찍고 있었고 B캠은 약간 옆쪽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순이의 손과 얼굴 위주로 FOLLOW 하며 찍었고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거실 바닥에 앉은 체 그녀의 단독 콘서트를 숨죽이며 보고 있었다. 음악 감독님 작곡. 감독님 작사에 ‘나의 왕자님’ 이란 노래가 시작되었고 이 넓은 전주 세트장에 아름다운 기타 연주와 순이의 수줍은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나는 뒤쪽으로 살짝 빠져서 이 촬영장 전체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뭔가 뭉클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스태프들 얼굴을 보니까 구경하는 남자 스태프들은 이미 눈이 달나라, 별나라로 향해 있었고 여자 스태프들은 ‘흥, 칫, 뿡’. 괜한 팔짱을 끼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났던 것은 노래가 끝나고 몇 초의 적막이 흐른 뒤 감독님의 컷 소리가 났는데도 보통 때 같았으면 컷 소리와 함께 다음 컷 준비로 소리 지르며 바로바로 소란스럽게 움직였을 사람들이 쥐죽은 듯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드 썬! 과 동시에 별나라 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최면이 풀리면서 지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가 보다. 그 후로도 몇 초가 지나서야 조심스레 다음 컷을 준비하기 시작한 스태프들. “이보게나, 정신들 차리게.” “아... 네. 네. 배시시” 미소 짓는 그들의 얼굴은 뭔가 밝고 따뜻하며 다정다감한, 원래 항상 착했던 사람들처럼 변신해 있었다. 조감독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런 순간들은 참으로 신비하고도 놀랍다. 다음 컷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평소보다 더 신중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이쿠야. 안 하던 양보도 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애기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보영이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고. 행복해진 것이다. 이 뜻은 그 장면이 본인들이 상상해왔던 것만큼 잘 찍혔다는 이야기고 관객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씬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습을 ‘영화 현장의 마법’이라 부른다고 생각한다. 이 만족감에 취해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한 스태프들은 다시 최선을 다해 영화의 장면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이렇게 촬영을 하는 날은 안 봐도 뻔하다. 그 날 촬영 회차에 점수를 매기라면 분명 10점 만점에 100점이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3 2012년 2월 18일. 35회차 촬영 스케줄표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연이다. 조감독들의 가장 큰 숙제이자 적. 촬영장에 생기는 대다수의 변수들은 정말 정 안되면 스태프들이 으싸으싸 하던지 그것도 안 되면 결국 돈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답이 없다. 촬영 스케줄이라는 것이 100명의 사람들, 그리고 각각의 팀들이 세팅하고 작업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시간, 수십 명의 배우들에 개인 스케줄들, 촬영 장소별 섭외 여건, 세트의 완공 시기, 비싼 소품과 장비의 대여 기간 등등등등.... 하물며 야식 먹는 시간까지. 거짓말 안 하고 수십, 수백 가지의 요소와 가능성을 생각해서 짠 거대한 테트리스 같은 건데 인간의 일들은 설득이란 게 있고 섭외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자연은 말이 없다. 그리고 이 변수 때문에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하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도미노처럼 발생하고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초과되기 일쑤다. 한 예로 여름 장마 기간, 태풍에 크게 잘못 걸린 팀은 보름 가까이 쉬는 팀도 봤었다. 제작자, 피디 형들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도 타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 날씨가 오락가락하면 그 날을 애초에 쉬는 날로 하느냐, 아니면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지켜보며 대기를 타느냐의 판단도 늘 촬영 때마다 있는 가슴 졸이는 일이다. 보통 촬영장에 기본적으로 있는 스태프의 수가 70명가량이고 움직이는 차량이 십여 대가 훌쩍 넘는다. 서울에서 대기를 타고 있는 수십 명의 배우들은 계속해서 전화를 건다. “우리 촬영장 가요, 말아요? 찍는 겁니까, 안 찍는 겁니까? 언제 결정이 나나요?” 글을 쓰면서도 스트레스가 확 밀려온다. 어쨌든 우리는 겨울 촬영이었고 우리의 변수는 비. 눈. 한파였다. 그래서 애초에 메인 촬영 장소를 강원도나 북쪽이 아닌 남쪽 지방에서 찾았고 전주를 중심으로 촬영 장소를 선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상청을 통해 전라도 지역에 도시별 5년간 적설량, 강우량을 뽑아서 촬영 스케줄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2008년부터 쭉 데이터를 뽑아보니 우리가 찍는 2012년. 짝수년이 더 추워서 비보다 눈 위주로 많이 왔고(다행히) 그 짝수년들을 보니까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 눈이 많이 내렸고 2월부터는 간간히 눈이 오더라. 라는 나름의 통계를 뽑을 수 있었다. 물론 100프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반복적인 데이터였다. 그래도 갑자기 내리는 비와 눈은 하늘의 뜻이니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고. 어쨌든 이 자료를 디테일하게 반영해서 전주에 내려간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는 야외 촬영 없이 전주 세트장 안에서 내부 세트만 촬영을 하고 1월 이후에 야외로 나간다, 라는 큰 그림을 그렸고 만약 야외 촬영 중 눈이나 비의 변수가 생길 경우 당장 가까운 거리에 점프해서 촬영할 수 있는 예비 촬영 장소와 찍을 것들도 2안으로 준비했었다. 그런데 우리 영화에 또 다른 숙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위 스케줄 표에 나와 있는 눈 배경 장면이었다. 그것도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눈이 와 있는 추억의 별장을 노인이 된 순이가 찾아가는 장면과 영화의 에필로그. 혼자 남은 철수가 여전히 순이를 추억하며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 그래서 이 장면들은 고창 청보리밭에서 찍기로 했었는데 그 이유는 콘셉트에도 맞는 목가적 풍경을 가지고 있었고 전라북도 지역에서 눈이 자주 오는 곳이기도 했고 메인 거점이었던 전주에서 차량으로 한 시간 반 거리라 전주에서 변수가 생길 시에 언제든 점프를 할 수 있는 장소였었다. 촬영 스케줄 상 이 씬들은 어느 날짜라고 픽스를 짓지 않았고 전주 야외 촬영 중 고창에 충분한 눈이 내리면 언제든 점프한다는 각오로 준비했다. 그러던 중 첫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2012년 1월 31일. 전주 양묘장 오픈 세트장에서 야외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번째 날, 일기예보와 다르게 낮인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마당에서 감자를 우걱우걱 집어 먹는 철수의 머리 위로 함박눈이 내렸다. 이곳의 촬영은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고 긴급회의를 열어 고창 쪽 상황을 알아보니까 그쪽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 시간이 오후 1시 무렵이었고 고창 쪽에 지금 내린 눈이 쌓인다면 내일 점프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다음 날 까지 눈이 유지될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결국 그 날은 모두가 만세를 외치는 휴차(쉬는 회차)가 되었다. 두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전주에는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전라북도 전 지역에 걸쳐서 내리는 비였다. 그리고 고창지역은 늦은 밤부터 비가 눈이 돼서 적설량이 5cm가 넘는다는 애매하고도 애매한 예보였다. 다시 긴급회의가 열렸고 제작부장과 내가 고창 쪽에 넘어가서 새벽 2시까지 상황을 지켜본 후 다음 날 고창에서 촬영을 할지 말지에 대해 상황보고를 하기로 했다. 사실 이 계획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다수였지만 내 입장에서는 2월에서 3월로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눈 내린 들판 장면을 못 찍지나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걱정에 밀어붙이기로 했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스태프들 또한 전주 숙소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새벽까지 대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밤 12시부터 고창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폭설이었다. 쌓이지 않는 폭설. 싸리 눈이었다. 제작부장과 나는 쓸쓸히 전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2월이 가고 있었다. 3월이 되면 우리는 다른 촬영 관계상 전라도를 떠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제는 오히려 눈이 내리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중 날짜가 서서히 박혔다. 2012년 2월 18일. 이미 일주일 전부터 전북 지역 전역에 걸쳐 폭설이 예보돼 있었고 그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일기 예보의 확률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하루 전날 연출부 세컨 동생과 제작실장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창 청보리밭으로 급파됐다. 이날의 일기예보는 늦은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폭설이 예보되어 있었고 그 예보가 몇 일째 변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숙소에서 콩닥 콩닥 마음 졸이며 삼십 분에 한 번꼴로 체크 전화를 걸어서 욕을 먹던 중, 열 시를 넘을 무렵 희망찬 메시지가 날아왔다. “조감독님, 눈 옵니다. 폭설입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현장 사진이 날라 왔다. 대략 3cm 정도의 눈이 내린 상태였고 내일 오전까지 내리고 기온도 영하라고 하니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빠르게 키 스태프들과 의논을 했고 다음 날 촬영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낮 촬영이고 이동 거리가 한 시간 반이라 스태프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촬영장을 향했고 촬영장을 향하는 동안 오히려 폭설을 해치며 가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넓고 넓은 평야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때 저 멀리서 선발대로 와있던 연출부 동생이랑 제작실장이 새벽어둠을 뚫고 뚜벅뚜벅 눈을 맞으며 걸어오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장 넓은 샷을 우선 찍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넓은 벌판 위에서 철수가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그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눈 내린 배경에 촬영은 순조롭게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찍었던 엔딩 장면을 우리는 추후 3월 14일. 대관령에 가서 재촬영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뭐 그런 것이 촬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영화 마지막에 눈사람 굴리는 철수의 장면은 대관령 촬영 분량이 쓰였고 그 외에 노인이 된 순이 장면은 고창 청보리밭 촬영 분량이 쓰였다. 3 마무리 영화 스태프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촬영 때는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 만땅 이지만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근질근질해지고 그리워지는 게 현장이라고. 그리고 다음 작품은 보다 내 취향과 잘 맞는 시나리오, 감독님과 작업하기를 늘 꿈꾼다. 내 취향에 맞는 일을 할 때, 나랑 잘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의 손때가 뭍은, 내가 찾은, 내가 캐스팅한, 내가 찍은, 내 손으로 만든 나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장면들이 스크린에 펼쳐질 때 그 희열이란 한 번이라도 맛을 보고 나면 중독이 돼서. 그래서 다시 영화 촬영장을 그리워하고 꿈꾸는 것 같다. 감독님들. 배우. 스태프들. 정해진 시간 속에서 같이 밤을 새우고 같은 비바람을 견디며 영원히 기억될 영화를 만든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두가 좋아서 이 일을 할 뿐이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길,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