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투명인간
- 감독
- 찰스 라몬
- 제작년도
- 1951
- 출연
- 버드 앨보트, 루 코스텔로, 낸시 길드
청주 – 대구 – 케임브리지로 그들 각자의 터전이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스카이프(Skype)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삼총사 정희(김주아), 민영(윤아정), 수산나(손다현)는 이 썰렁한 재회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저들 사이의 간극은 청주 – 대구 – 케임브리지로 분리된 세 장소의 지리적 거리감만큼이나 벌어져 있다. 여고 시절을 동고동락한 세 친구가 스무 살이 되면서 변화해가는 역동성을 묘사하는 < 성적표의 김민영 >(2022)은 물리적 거리감을 실재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으로 은유하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우정이라는 감정을 고요하고 섬세하게 담아내는 이 영화는 ‘김민영’을 평가 대상으로 집중하여 관찰하는 제3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환상과 추억으로 일상을 확장하는 내러티브의 궤적은 청소년기의 종말에 대한 가볍고 우울한 자화상을 따라간다. 도입부는 임박한 시험을 앞두고 삼행시 동아리를 작파하기로 결정한 세 친구의 마지막 회합을 보여준다. 이날 이후 세 친구의 길은 갈라진다. 몽상가 기질의 정희는 수능을 보던 날 시계를 지참하지 않아 불안해하는 소년 정일(임종민)에게 손목시계를 주고 창밖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냄으로써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과 작별한다.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도 태평해 보이는 정희는 우연히 정일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청주 나달 테니스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데 누구도 가치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 이상한 상상을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의 세계를 쌓아간다. 집과 테니스클럽 사이를 벗어나지 않은 좁은 활동반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테니스클럽 홍보를 위해 자신의 그림 재능을 활용하기도 한다. 한편 여고 시절부터 모임 결성을 즐겼던 민영은 대구의 대학에 진학하여 교내 청자켓 동호회 대표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수산나는 모두가 탐내는 자리를 확보하여 옛 친구들과 연결되기 어려워진다. 여름방학 동안 민영이 머무는 서울 집을 방문한 정희는 친구를 초대한 뒤 그 자신의 일에만 몰두해있는 민영에게 어색함을 느낀다. 민영의 마음은 서울의 더 나은 대학으로 편입하는데 보탬이 될 성적(학점)에만 집중되어 있다. 성적에 집착하는 대학생이 된 민영과의 재회는 정희에게 명령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의 성공에 대해 조용한 자각을 준다. 뚜렷한 근거 없이 학점 교정을 탄원하는 시시한 대학생이 되어 친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민영에게 성적표를 남기고 정희는 돌아선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스무 살을 지나갔거나 곧 지나갈 관객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우정이 서서히 해체되는 과정을 세심히 관찰한다. 느린 서사의 진행은 다소 우울한 분위기를 강조하지만, 곳곳에 뿌려진 건조한 유머는 안도감을 제공하면서 몽상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정희의 본성을 포착하는 것을 돕는다. 이재은, 임지선 공동감독은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던 두 친구의 나란했던 자리가 조금씩 이지러지는 순간들을 제시하면서 한동안 마음에 남는 애틋한 순간들을 보여준다. 보드게임, 햇반, 배드민턴 라켓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 상경한 정희의 재회에 대한 상상은 슬프게도 현실에 부응하지 못한다. 앉은뱅이 책상과 노트북을 떠나지 않는 민영은 정희가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져버렸다고 비난하지만 그 자신의 소홀했던 학업성취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보상하려 한다. 점차 한국적으로 변해가는 민영의 위선에 비해 정희의 상상의 나래는 실제 우정 장면과 상상의 우정 장면을 하나의 그림으로 엮는다. 홀로 남겨진 정희는 민영의 일기와 개인 영상을 발견하고 민영의 우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검토하게 된다. 이는 여고 시절의 친우(親友)가 멀어져가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도록 이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자아의 희생을 의미하는가? 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서울집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표면화되는 상황의 장면 연출은 탁월하다. 민영이 단 하루로 시한을 한정하였으나 정희의 목적은 옛 시절처럼 민영과 ‘룸메이트’가 되는 것이다. 여고 시절 기숙사 방과 군에 간 민영의 오빠 자취방은 미묘하게 대조된다. 여고 시절 기숙사에서 나란했던 정희와 민영의 침대는 일치된 이상을 향하고 있던 존재의 조건을 묘사한다. 민영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정평이 난 도시인 대구가 너무 한국적이어서 지루하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편입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로 결정한 친구 정희에게는 냉담하다. 자취방에서 두 사람의 배치와 자세, 카메라 위치는 엇갈리는 두 친구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문과 거울, 방바닥을 어지럽히는 잡동사니들, 신체적 제스처 따위가 교착된 관계를 보여주면서 두 인물을 분리하는 촉매가 된다. 민영의 과업에 동참하여 교수에게 탄원 메일을 작성하는 것을 돕는 정희에겐 나의 친구가 좀 유치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한편, 민영은 정희의 선택을 무시하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더 현실적이 되어야함을 강조한다. 한국에서 청소년 성장 서사의 상투형은 경쟁적인 입시 제도로부터 비롯되어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지는 학위, 직업, 가족을 형성해야 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이다. 사회적 기준이 제시하는 표준적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인생의 고충은 성장 서사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이는 <성적표의 김민영>의 주제이기도 하나 이 영화는 관습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 저항하는 상상의 힘을 지지하며 성인이 되기까지의 험난한 길을 묘사하는 무미건조하고 유머러스한 스타일을 창안해냄으로써 통상의 성장담과 다른 길을 간다. 눈치조차 성공의 덕목으로 간주될 수 있는 한국에서 정희는 사회적 관습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민영과의 멀리 떨어진 거리에도 불구하고 공감은 피어날 수 있을까? 두 공동감독은 점차적으로 서로 분리되어가면서 세상을 헤쳐나가는 젊은 여성들의 내면적 삶을 유머와 솔직함, 연민으로 다룬다.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풍으로 상상된 제주 여행 삽화는 진부한 공간을 현실의 기억과 상상의 장면들로 채우는 정희의 기질을 잘 보여준다. 소원과 애정 사이를 오가는 순간들은 섬세한 연출력 덕분에 잘 다루어지고 있으며 스토리를 따라가는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를 신뢰하게 한다. 정희에게서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관찰할 수 있고, 환상과 오류의 차이를 평가할 수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브랜드화하기보다 현실화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 학력 중심의 소비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평판에 기대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스무 살의 모습을 본다. 정희는 민영의 우월한 태도에 상처를 받지만 우정을 회복하여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 민영이 그녀를 계속 무시하는 동안에도 온건한 태도를 유지한다. 정희를 혼자 남겨둔 채 떠나는 민영의 일기는 낮은 자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암시하며, 친구에게 자신의 불안을 투사하는 소녀의 감정을 보여준다. 친절한 태도와 타인에 대한 관대함을 바탕으로 정희는 친구의 더 나은 자질을 칭찬하는 동시에 민영의 위선과 결점을 가감 없이 지적하는 성적표를 작성한다. 정희는 ‘한국인의 삶’에 F를 주면서, 좁은 땅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남의 눈치를 보면서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보다 덜 한국적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녀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사회적으로 억압적인 문화에 대한 온건한 비판을 제시하는 이 사려 깊은 드라마는 일탈적인 공상의 강렬함을 소유한 자유로운 영혼의 정희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성숙한 인간이라고 설득한다. 완전했던 세계의 파괴, 우정의 몰락을 형상화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이야기를 쌓아가는 공동 감독은 ‘삼(3)’이라는 숫자를 통해 이를 암시한다. 숫자 삼(3)의 논리는 무엇인가? 수비학(數秘學)에서 지혜와 이해, 창의의 수로 간주되었던 삼(3)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획된 시간의 세(3) 축, 탄생, 삶,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의 삼(3) 주기로 약호화된다. ‘조화’와 ‘일체감’, ‘통일성’을 상징하는 삼(3)은 세(3) 개의 꼭짓점을 연결한 삼(3)각형처럼 삼위일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인생에서 호재와 악재는 세(3) 단계를 거쳐 온다고 하며, 가장 이상적인 스토리의 구성은 삼(3)막의 행위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되곤 한다. 내쳐 <성적표의 김민영>은 삼(3)의 해체, 몰락에 관한 스토리라고 할 수도 있다. 삼(3)행시 짓기 동아리로 하나가 되었던 세(3) 친구의 분리는 삼(3)행시 모임을 중단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삼(3)행시는 단어를 이루는 세(3) 음절을 모체로 하나의 문리(文理)를 조형해내는 행위인 바, 그 결과는 단어의 본래적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문맥을 창조하게 된다. 문학적 깊이마저 지니게 되는 저들의 삼행시는 그저 말을 지어내는 놀이를 넘어 진짜 ‘시’를 닮게 된다. 하나로 뭉쳐 삼(3)행시를 짓던 세(3) 친구는 세(3) 도시로 흩어지며 셋(3)으로 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생은 따라야 할 목록, 결의안의 지침처럼 간단하다. 문제는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정희가 관리하는 테니스 코트의 경기로 환원하자면 이재은, 임지선 감독은 완강한 완력으로 라인을 타고 공을 보내기 위해 공격적으로 라켓을 휘두르는 대신 담장 바깥에서 담장 안 가까운 곳으로 보내야 하는 테니스공들처럼 스핀이 많이 걸린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겸손하고 소박한 <성적표의 김민영>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다가 점진적으로 그 깊이를 체감하게 하는 감정을 드러내면서 조금씩 스며드는 환멸을 묘사한다. 감춰진 감정들이 많은 이 영화는 이별은 감상적일 수 없으며 매우 가혹하지만 필요하다는, 희소성 있는 주제를 다룬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런 곳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깊고 그윽한 숲속 어딘가, 정희가 그린 곳에서 살고 싶었던 마음처럼, 우리들의 친구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에 혼자 있으리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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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배(황정민)는 옛 미군 건물이 재개발을 앞둔 안남 시(市)의 시장이다. 부패한 정치인 성배의 수족 노릇을 하는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범죄와 결탁한 자신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검사 김차인(곽도원)과 어쩔 수 없이 내통하는 관계가 된다. 도경이 이 조야한 권력자들에 굽신거려야 하는 이유는 병원비를 변통해야 하는 말기 암 환자 아내 윤희(오연아) 때문이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남자는 시장의 오른팔 은충호(김종수)의 장례식에서 한 가지 묘수를 짜낸다. 도경의 기지로 두 권력자가 장례식장에서 화해할 수 없는 상태로 맞닥뜨리는 시퀀스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도경과 선모, 성배, 차인은 예정된 순서에 따라 차례로 순회하면서 서로를 대면하게 된다. 누구든 자신의 앞길을 막는 상대를 향한 으르렁거림과 생존을 위해 울부짖는 위협, 땀에 젖은 얼굴을 묘사하는 날카로운 카메라 워크로 주요 인물들 간의 간의 대결이 차례로 기술된다. 성배는 무늬만 시장이지 지하세계와 연줄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범죄 조직의 수괴에 가까운 갱스터로 뼛속까지 타락하였다. 성배와 같은 인물이 선거에 통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권력과 도시의 퇴행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법의 수호자인 차인은 성배를 체포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다가 그 자신이 범죄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순진무구한 조무래기 형사였던 선모(주지훈)는 도경을 추종하여 피와 돈의 맛을 본 순간 비열한 갱스터로 빠르게 변질된다. < 아수라 >(2016)는 남성성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작품으로, 네 명의 주인공은 모두 통제할 수 없는 도덕적 타락으로 붕괴한다. 충성심과 우정이 변질되면서 남자들이 차례로 자동차, 손도끼, 망치, 금속 스파이크 및 재래식 무기의 희생자가 될 때 세상은 피바다로 변한다. 김성수 감독은 ‘갱스터’라는 장르의 비유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작가이다. <아수라>에서 그의 연출은 영화에 풍자적인 분위기와 악독한 코미디의 느낌을 고조하면서 폭력의 악순환에 갇힌 캐릭터에 선의의 뉘앙스까지 부여한다. 세상이 나아질 가능성을 0%로 보는 비관적인 세계관이 새로울 건 없으나 촘촘하게 짜인 긴장을 고조해가는 스토리는 권위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치를 경멸하며, 가망이 없는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낸다. 어두운 골목길과 옥상, 불길해 보이는 회의실과 경찰서 등 <아수라>의 현대적인 누아르 스타일에선 위협과 위험의 분위기가 반영된 공간 세팅이 핵심을 이룬다. 영구적인 분노와 적대감, 고통에 매몰된 존재의 상태는 폐쇄적인 프레이밍(framing) 연출을 통해 시각화된다. 장엄한 엔딩을 보여주는 장례식장 시퀀스에 이르기 전까지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작은 옥상, 미로와 같은 빈민가의 건물들, 골목, 쇠창살의 교도소, 황폐한 건물의 내부 등은 살아남기 위해 모사와 굴욕,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최적의 무대를 제공한다. 구타와 살인이 끊이지 않는 세계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김성수는 도경이 마약에 찌든 부랑아 작대기(김원효)를 의도치 않게 살해하는 옥상 신, 조선족 갱단들과 도경이 벌이는 빗속의 자동차 추격 신,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에게 도경이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 사무실에서의 린치 신 등을 차근차근 쌓아나간다. 공간의 함의와 조형에 기초한 김성수의 장면 연출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폭력과 유혈이 도처에 널렸으며 그 소용돌이에 휩싸인 사람은 누구도 탈출할 수 없으리라는 강력한 신호를 전달한다. 공간의 프레이밍 전략은 헤어날 길 없이 갇힌 존재들의 비의(悲意)를 보여주는 폐쇄성에 기초하고 있다. 고문과 구타, 칼질을 포함하여 잔인한 유혈의 장면들 중 대학살로 점철된 클라이맥스 시퀀스는 공간의 시각화라는 관점에서 역사에 남을만하다. 거의 140분에 육박하는 영화에서 이 시퀀스는 서사의 흐름이 지루한 수준으로 끌려갈 즈음 다시 스릴이 넘치는 광경으로 되돌리는 기능을 한다. 장면 연출의 초점은 수직의 복도에서 벌어지는 자비가 없는 폭력이다. 모든 인물이 벌이는 권력 투쟁과 충성심, 힘의 우열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들의 위치에서 절정에 이르며 장례식장의 좁고 수직으로 난 복도에서 극적인 방식으로 파열된다. 김성수의 연출은 도경과 그의 충직한 동생 선모의 쟁투가 벌어지는 복도와 박성배와 김차인의 수하들이 벌이는 장례식장 복도의 살육극을 나란히 배치한다. 두 개의 복도(도경-선모, 성배-차인)는 기하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형제애를 기반으로 했던 도경과 선모의 투쟁, 이권과 권력욕에 눈이 먼 성배와 차인의 대결은 남성적 유대가 파탄 난 세계의 지옥도를 그려 보인다. 각각 경로를 통과한 도경과 성배가 피의 복도에서 마주하게 되는데 누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없이 냉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아무려나 우정과 형제애가 사라졌을 때 온 세계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 시퀀스의 촬영과 편집은 도경과 선모가 드잡이 싸움을 벌이는 복도, 성배가 고용한 조선족 갱스터와 차인을 호위하는 검찰 병력의 충돌이 빚어지는 장례식장 복도의 수직적 형상을 강조하는 기교들을 활용하여 구도와 앵글, 사이즈, 조명, 액팅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시퀀스의 초입에 천장에서 떨어져 대롱대롱 매달린 형광등은 초기 설정의 용의주도함을 입증한다. 흔들리는 빛의 특성과 텍스쳐는 현실과 은유적인 차원 모두에서 죽음이 도열하는 이 수직의 공간을 편집증적인 불안으로 세팅하면서, 성배와 도경이 최후를 맞는 대단원에서 시각적으로 절정에 달하는 그 기능(앞뒤로 흔들리며 죽음의 풍경을 비추는 빛)을 예비하고 있다. 공간 연출의 성취는 벽들이 프레임의 1/3을 점유한 복도 공간에서 총 하나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육박전을 벌이는 도경과 선모, 좌우대칭의 비좁은 벽 사이에서 조선족 갱단에 도륙당하는 창학, 길게 수직으로 난 장례식장 홀에 쌓이는 시체들의 조형 방식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시퀀스의 목표는 어느 누구도 품위가 있거나 호감이 가는 인물이 없는 이 세계에서 아둔한 남자들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고, 서로의 목을 조르며, 경쟁 상대를 쓰러트리려 발버둥 치는 형상을 묘사한다. 안남 시라는 가상의 무대 구축은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 또는 이해할 수 있는 것 너머로 이동을 허용함으로써 언캐니한 공간감을 조성하고 도시의 음영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은 불가능한 정도의 밀도와 깊이를 전달한다. 갱스터 장르에 대한 김성수의 폭넓은 이해와 공간 연출은 낮은 조도의 조명과 더치 앵글, 대담한 색상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활기를 통해 안남이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라기보다는 ‘씬 시티’에 가까워 보이도록 만든다. 도시 정체성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한데 안남은 도시 구조에 자율적인 존재감을 부여하는 수많은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별되는 구역들의 경험은 독특하며, 각각의 구역은 고유한 물리적 특징은 물론 현실 세계의 구조를 압축하고 있다. 도시 갱스터 장르에 대한 감각과 비트를 내장한 하드코어 액션 장면들에서 뛰어난 공간 연출은 장례식 시퀀스 외에도 몇몇 장면들로 선행적으로 축적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도경의 SUV 차량과 갱단이 탄 승합차가 격렬한 파열음을 내며 경합하는 체이스 시퀀스에서 도경의 차 안에서 번쩍이는 붉은 등과 푸른 화염, 가드레일을 충격하는 동안의 불꽃 등이 사이키델릭 조명을 대신한다. 먹이사슬 구조의 억압과 고통을 광적으로 분출하는 도경의 폭주는 비에 젖은 도로의 번들거림, 수직, 수평으로 교차하는 빗줄기의 미장센과 조응하여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만 할 뿐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는 암흑의 터널 안에 갇힌 인간의 조건을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이모개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차의 안과 바깥을 오가며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괴성을 지르는 한 남자가 구제의 가능성을 상실한 채 지옥에 억류되어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선함과 온기를 거둔 정우성의 악에 받친 연기는 흑적색으로 물든 멍자국들, 퉁퉁 부은 눈두덩, 독기를 품은 욕지기로 폭발한다. 허무주의적인 배음과 그림자의 극단적인 사용, 양식적인 구도는 압도적인 불길함을 조성하면서 대비의 인상을 강화한다. 무고한 피해자들과 달리 모든 인물들이 완전히 무참하고 버림받은 채 잔인하게 살해되는 영화의 결말은 도덕적 신념 체계를 완전히 거부하며 진실과 도덕, 선의에 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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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시피 거리를 좋아한다. 헤시피 거리를 좋아한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클레버 멘도사 필루는 주문처럼, 다짐처럼 같은 문장을 두 번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 대사를 넣을까 말까 편집하면서 망설였다. 같은 말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강조해야 한다.” 친근하고도 나른한 목소리의 보이스 오버에 담긴 이 간명한 말, 좋아하는 건 강조해야 한다는 이 마음을 알 것 같다. < 아쿠아리우스 >(2016)와 < 바쿠라우 >(2019)의 감독 클레버 멘도사 필루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 유령들의 초상 >은 오로지 좋아하는 걸 강조하려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관을 좋아하고, 그리고 브라질 북동부에 위치한 고향 헤시피를 좋아한다. 그 좋아하는 것을 한 편의 영화에 온전히 다 끌어 담기 위해, 계획이나 의도는 일단 접어두고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30년 전부터 이 영화를 준비했다. 지금 찍고 있는 게 무엇이 될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헤시피의 거리와 영화관을 카메라에 담았던 1990년대 초,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던 클레버 멘도사 필루는 이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브라질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문득 지난 시절 틈틈이 기록해둔 개인적인 아카이브들을 들여다본 게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바쿠라우>를 찍기 전인 2017년의 일이니 7년이 소요된 프로젝트다. 영화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헤시피를 담은 신문기사와 사진, 영상 등 온갖 아카이브 자료 위에 여러 단편영화부터 <아쿠아리우스>까지의 영화 클립을 이음매 없이 끼어 넣고 그 자신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얹어 사적인 에세이 영화로 완성되었다. 여기에 35mm부터 슈퍼 8mm, 16mm, VHS, 베타캠 SP, 미니 DV, HD,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에 걸친 카메라의 변천사가 담기고, 다양한 질감과 제 각각의 톤을 지닌 이미지 위에 두 세기에 걸친 도시와 극장의 변천사가 쓸쓸하게 또 애틋하게 담긴다. 이쯤에서 예비 관객들은 <유령들의 초상>이 대략 어떤 영화인지 알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엔 이르다. 클레버 멘도사 필루는 “연구방법론을 다루려는 게 아니다. 이건 사랑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역사학자인 어머니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한 말이지만 이 영화에 관한 코멘트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 후반부에 “영화는 멜로드라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멜로드라마로 기우는 게 영화 매체 본연의 속성이라는 듯, <유령들의 초상>에는 이제 더 이상 여기 없는 것들이 안기는 아득한 그리움이 멜로의 기운으로 배어있다. 또 이런 장면도 있다. 1970년, 더 없이 화려했던 어느 극장의 개관식 장면 다음에 텅 비어버린 극장의 공중전화가 신경 곤두서는 쇳소리를 내며 오래도록 울려댄다.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이 극장에서 보낸 탓에 감정적이고 혼란스러운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감독의 보이스 오버가 들리고,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불가능한 시공간을 연결한 탓에 멈칫하게 되지만, 이 기묘한 매치 컷의 의미는 단순명료하다. 이제 영화관은 그의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영화 포스터로 가득했던 거리, 극장 앞의 긴 줄, 매표소 티켓 기계에서 나던 딸깍대던 소리, 꽉 찬 객석이 뿜어내던 흥분과 열기, 극장 문을 나서는 즐거운 얼굴들. 여기서 클레버 멘도사 필루는 이제 더 이상 여기 없는 것들이 안기는 애상과 여전히 우리 안에 존재하는 환상 사이를 오가며 한 도시의 시공에 담긴 감정의 지도를 그려나간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이며, 물리적이면서도 영적인 탐험이 이제 시작된다. <유령들의 초상>은 자신을 길러준 이 도시와 극장에 바치는 클레버 멘도사 필루의 지극한 헌사이자 무엇보다 사랑 이야기다. 2. “행복한 결말은 없어”라고 노래하는 톰 제의 곡 ‘해피 엔드’가 영화에 흥겨운 바이브를 연신 뿜어대며 ‘1부’가 시작된다. <유령들의 초상>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세투바우 아파트’라는 제목이 달린 1부는 70년대에 헤시피의 해안가 마을로 이사를 와서 40년을 살았던 필루 감독의 집을 주 무대로 한다. 이혼한 어머니가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는 두 번의 공사를 거치면서 크게 바뀌었는데 그 집의 구석구석은 20여 년간 그곳을 스튜디오 삼아 만든 10여 편의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클레버 멘도사 필루는 초기 단편부터 < 네이버링 사운드 >(2013)와 <아쿠아리우스>에 이르는 영화 클립을 가족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숏들 사이에 과격하게 툭툭 끼어 넣었다. 그러자 가족들이 식사하고 아이들이 뛰어 놀던 거실은 발밑으로 피가 쏟아지고 권총에 한 남자의 뒤통수가 날아가는 공포영화의 무대가 된다. 한 공간에 담긴 수십 년의 시간을 더듬는 방식치고는 유별나게 특이하다. 이 편집은 연대기적이지도 선형적이지도 않다. 전적으로 사적이며 별나다. 그 탓에 관객을 따돌리려는 건가, 혼자 추억에 잠겨 자기도취적인 에세이를 쓰는 중인가 하는 의심이 피어오를락 하는 순간 여기 매 숏들이 미스터리한 얼룩들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채고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여기엔 영(靈)적인 기운이 담겨 있다. 우선 감독이 오래전 거실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자. 무언가 형체를 알 수 없는, 흐릿한 유령의 형상이 포착된 이 사진은 영화 제목 <유령들의 초상>을 직관적인 이미지로 구현하고 있다. 해명되지 않는, 해명할 수 없는 이 이미지보다 우리의 뇌리에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유령은 이웃집 개 니쿠일 것이다. 니쿠는 깨어있는 한 내내 짖어대는 통에 필루 감독의 전작들에 불가피하게 배경 사운드로 새겨지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한밤, 필루 감독은 니쿠의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어? 니쿠는 벌써 몇 년 전에 죽었는데. 알고 보니 TV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그의 영화를 온 동네가 보고 있는 중이었다. 클레버 멘도사 필루의 영화에서 니쿠는 여진히 활기차게 짖어대고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니쿠는 유령이 되었’고, 그 유령은 영화를 통해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2부 헤시피 시내의 영화관’에서 클레버 멘도사 필루는 마침내 집을 나서서 헤시피 거리를 쏘다니다 영화관을 찾아간다. 우울한 잿빛의 도시 헤시피, 과일 향과 오줌 냄새가 뒤섞인 거리를 그는 여전히 사랑한다. 인파로 북적대던 거리는 이제 텅 비었고, 13살부터 25살까지 그가 살다시피 한 영화관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극장의 마지막을 기록했던 청년 클레버의 영상 속에서 우리는 영사기사 알렉산드르를 만나 2차 대전 당시 헤시피의 극장이 나치 프로파간다의 전초기지가 될 뻔한 이야기, 4개월간 상영된 < 대부 >에서 니노 로타의 음악이 지긋지긋해져서 상영 마지막 날 도망친 이야기, 정권의 검열 이야기를 듣는다. 이 영화의 유일한 인터뷰 씬으로 그를 향한 클레버 멘도사 필루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순간이다. 영사기사 알렉산드르씨도 유령이 되었다. 그는 그렇게 여기에 있다. ‘3부 신전과 성령들’은 오래전 교회의 자리에 지어올린 상 루이스 극장이 다시 복음주의 교회로 바뀌는 과정을 담은 장이다. 교회에서 극장으로, 극장이 다시 교회로 바뀌는 동안, 의미심장하게도(어쩌면 우연이겠지만) 영화와 종교는 무언가를 공유하게 되었다. 스크린과 의자가 그대로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스크린에 매혹된 관객의 표정과 기도하는 신도들의 얼굴에는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믿음, 열광 그리고 사랑. 하지만 헤시피에서 극장과 교회는 공존하지 못한다. 클레버 멘도사 필루의 진단으로는, “극장이 죽고 교회가 부활했다.” 이제는 사라진, 흥분과 즐거움으로 들썩이던 극장 객석을 보며 “이토록 하나가 되는 공간이 헤시피에 또 있을까”라며 경탄 혹은 탄식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긴 감정적 파장을 남긴다. 3. 다시 말하지만 <유령들의 초상>은 음울하고 무거운 영화가 아니다. 때때로 향수에 젖고 가슴 한편이 저릿해오는 순간도 있지만 영화는 대체로 경쾌하고 친근하고 별나면서 유머러스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영화 전체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시퀀스가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밌는 장면으로 꼽을 만한, 그리고 우리에게 좀 더 생각해보라고 요청해오는 듯한 그런 장면이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필루 감독은 지금 우버 택시를 타고 있다. 차에는 허브 앨퍼트의 트럼펫 연주곡 <라이즈 Rise>가 흐르고, 택시 기사와 필루 감독은 트럼펫을 연주하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해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운전석과 뒷좌석을 나눠 찍은 방식으로 보나 그들의 대화로 보나 분명 이 시퀀스는 배우를 기용하여 연출한 픽션 장면이다. 그 사실을 확증해주듯 택시 기사는 문득 자신의 초능력에 대해 털어놓는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능력’, 즉 사라지는 능력을 가졌다는 그의 고백은 곧장 증명되고, 필루 감독은 운전석은 비었지만 여전히 잘 굴러가는 택시 뒷좌석에서 옅은 미소를 짓는다. “거기 있는 거죠?” “네, 여기 있어요.” 클레버 멘도사 필루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작동하는 어떤 존재/비존재들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하더라도 투명인간 시퀀스는 왜 여기 있는가. 픽션으로 다큐멘터리를 매듭 짓는 클레버 멘도사 필루의 선택은 2부에서 “픽션 영화는 최고의 다큐멘터리야”라고 주인공 청년(아마도 감독의 페르소나)의 귀에 비밀처럼 속삭인 에이젠쉬테인의 대사와 정확히 접속된다. 단편 <에이젠쉬테인>에서 가져온 이 장면에 대해, 그리고 이 대사에 대해 필루 감독은 아무런 논평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픽션과 논픽션의 접속에 관해서라면 극영화는 물론 현대 다큐멘터리 제작에서도 유연하게 수용되는 편이니 덧붙일 말이 필요했을까 싶다.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존속하는’ 존재 혹은 비존재들과 관련한 대목일 것이다. <유령들의 초상>이라는 제목이 지시하는 바대로, 이 영화에는 유령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유령의 모티프는 가시적인 유령의 이미지를 담은 심령사진으로 시작해서 이웃집 개 니쿠,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밤거리를 활보하는 남자(드라큘라), 영사기의 빛과 함께 사라진 영사기사 알렉산드르로 차츰 확장된다. 이들 ‘유령들의 초상’과 더불어 <유령들의 초상>은 보이지 않는 유령들도 담고 있다. 2부 끝자락에서 우리는 텅 빈 극장에서 승강기와 극장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걸 보았고, 인적 없이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는 유령들에 둘러싸인 공간에 살고 있다. 고향 헤시피의 거리와 극장에서 클레버 멘도사 필루가 하려던 것이 과거에 있었지만 현재에 사라진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이라면, 본질적인 속성 상 영화는 언제나 그래왔던 게 아닐까. 모든 영화는 과거의 흔적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스크린으로 보는 모든 것은 그때 거기에 있었지만 지금 여기에 없는 것들이다. 과거에 존재했었지만 현재 여기 없는 것. 혹은 소멸되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유령 혹은 시네마. 영화의 역사가 사자(死者)들의 발자취이듯, 개별 영화는 유령들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유령들의 초상>은 그 사실을 문득 일깨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화하는 클레버 멘도사 필루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