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터
- 감독
- 존 맥켄지
- 제작년도
- 1998
- 출연
- 티모시 휴튼, 엘리자베스 페나, 조안 폴로라이트, C. 데이비드 존슨, 유진 리핀스키, 라버트 베너데티, 파티시아 캐럴 브라운, 조이스 고든, 마이크 샤러, 다니엘 마그더, 드와이트 맥피, 알랜 맥쿨로프, 마이클 로즈, 지나 코박스, 이보 파우니
<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를 보기 전, 주목한 이름은 감독 도이 노부히로가 아니라 시나리오를 쓴 사카모토 유지였다. 도이 노부히로도 뛰어난 감독이다. <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04)를 연출했던 도이 노부히로는 영화보다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다. <이상의 결혼> <파랑새> <스트로베리 온 더 숏케이크> <운명의 사람> <잠자는 숲> <중쇄를 찍자> 등등. 화제를 모은 최근작으로는 2016년에 찍은, 연애와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남녀의 다정하고 은근한 사랑 이야기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가 있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정작 실천에는 힘들고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과 현실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사카모토 유지는 일본 드라마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은 <도쿄 러브 스토리>(1991)의 각본을 쓴 작가다. 당시 월요일 밤 9시가 되면 거리에서 젊은 여성을 볼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였고, ‘게츠큐’라고 불리는 월요일 밤 9시의 후지드라마는 최고의 인기 드라마 산실이 되었다. 1967년생이니, <도쿄 러브 스토리>를 쓴 것이 25세. 자기 세대의 일과 사랑을 리얼하게 그려내 찬사를 받았고, 트렌디 드라마 열풍을 가져왔다. 그런데 정작 사카모토 유지는 밝게만 그려내는 TV 업계에 질렸다며 96년, 돌연 일을 그만둔다. 한동안 연극과 소설 등을 파고들던 사카모토는 2002년 다시 각본을 쓰며 돌아온다. <라스트 크리스마스> <우리들의 교과서> <마더> <그래도, 살아간다> <최고의 이혼>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콰르텟> <아노네> 등 화제를 모은 작품이 즐비하다. 복귀 이후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은 화제작보다 문제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사카모토가 다루는 드라마의 소재는 이지메, 아동학대, 싱글 마더, 직장내 괴롭힘 등등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을 그대로 보여준다. 트렌디 드라마의 원점이 사카모토 유지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사카모토의 드라마는 마주보기 불편한 이야기를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대중의 눈앞에 들이민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둡기만 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어둠에 먹히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사카모토 유지가 쓴 드라마를 좋아했기에, 그가 보여주는 청춘의 사랑은 어떨지 궁금했다. 영화 작업은 오랜만이었다. 사카모토는 2004년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의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당시 일본 영화계의 흐름을 바꾼 역작으로 평가된다. 이후 <김미 해븐>(06)과 <서유기>(07)의 시나리오를 쓴 후 15년 만에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로 영화에 돌아왔다. 도이 노부히로와는 이전에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와 <콰르텟>을 함께 작업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20대 초반 남녀의 사랑을 그린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지는 작은 사랑 이야기. 대단할 것 없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울림이 큰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스물한 살의 키누는 말한다. 토스트를 바닥에 떨어트리면, 늘 버터를 바른 면이 바닥에 닿는다고. 살면서 유별난 행운이 찾아온 적 없고, 누군가 관심 있게 쳐다봐 준 적도 없는 평범한 인생. 그래서 언제나 조용히 지내고, 흥분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무리 좋아하고, 열광해도 나에게 좋은 일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무기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 대학생이다. 구글 스트리트 뷰를 보다가 자신이 찍힌 것을 보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한 흥분이 있을까 생각한다. 좋아하는 동급생은 자기를 무시하는 듯 관심 있는 듯 거리를 두며 지낸다. 키누도, 무기도 눈에 띄지 않는 유형이다. 그렇다고 아주 보통은 아니다. 키누와 무기는, 일본식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문화계다. 책, 영화, 만화, 음악, 전시 등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전철 막차를 놓치고, 우연히 같이 있게 된 그들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심야 카페에서 ‘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있던 직장인 남녀는, 마니아로 불릴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면서도 오시이 마모루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은 <마녀 배달부 키키>를 실사로 보고 좋아하는 부류다. 함께 있던 자리에서 뭐라 말할 수 없었던 키누와 무기는, 밖에서 ‘오시이 마모루’를 떠올리며 즐겁게 대화한다. 그들의 대화는, 만남은 이렇게 ‘문화’로 시작되고 흘러간다. 좋아하는 작가가 같고, 같은 만화를 보며 즐거워하고, 마침 신고 있는 신발도 같은 브랜드다. 무기의 집에 간 키누는 마츠모토 타이요와 나난 키리코, 모치즈키 미네타로,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만화와 나가시마 유, 호무라 히로시, 이시이 신지, 오가와 요코의 소설이 꽂힌 책장을 보며 말한다. ‘거의 내 책장이잖아’라고. 같은 것을 보고 듣는다는 호감으로 시작된 사랑은 같은 것을 함께 경험하면서 점점 커져간다. 그러나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2020년에서 시작한다. 카페에 앉은 남녀가 음악을 듣는다. 이어폰을 한쪽씩 자신의 귀에 꽂고, 같이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뒤편에 앉은 키누가 말한다. 저건 음악을 듣는 게 아니야. 다른 자리에 앉은 무기가 또 말한다. 엔지니어는 섬세하게 양쪽에 다른 소리를 배치하여 함께 들으면 하나의 음악이 완성되는 거야. 키누와 무기의 옆에는 다른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미 헤어진 것이다. 관객은 두 사람이 이제는 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어떻게 동거를 하는지 보게 된다. 궁금하다. 이렇게 비슷한 취향을 가진 남녀는, 어떤 과정을 통해 헤어지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이 서로 다른 길을 택하게 한 것일까. 키누와 무기는 보통의 남녀다. 키누는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업을 하려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프리터가 된다. 무기는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하지만 대가가 너무 작다. 자신의 꿈을 찾겠다는 무기의 말에, 니이가카에 사는 아버지는 이제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고 답한다. 동거를 시작한 키누와 무기는 알바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을 유지해간다. 하지만 알고 있다. 알바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러스트 일만으로 안정적인 미래는 없다는 것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현실에서 조금씩 지쳐가는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같은 경험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방식으로 온전하게 각자의 생활을 유지해야만 ‘동거’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삶 없이 함께 하는 삶은 가능하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무기는 영업직으로 취직한다. 키누는 회계 자격증을 따서 병원에서 일한다. 무기의 바람은 현상유지다. 키누와 함께 이대로 주욱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책도, 영화도, 게임도 이제는 즐길 여유가 없다. 봐도 재미가 없다. 일하는 틈틈이 핸드폰 게임을 하는 정도다. 키누는 책을 보고, 영화를 보기 위해 일한다. 되도록 좋아하는 것들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림도 못 그리고, 글도 못 쓰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가깝게 지내며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면서, 현상유지를 하고 싶지는 않다. ‘꽃다발 같은 사랑’ 이야기다. 빛나는 순간,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 하지만 그들의 매순간이 완벽해서 그런 아름다운 사랑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키누가 좋아하는 미라 전시를 무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는 가스탱크이지만 무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키누는 함께 보러 간다. 모든 것이 똑같기 때문에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지 않아도, 즐겁게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으니까.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사랑의 미묘한 순간들을 부드럽게, 정서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서서히 어긋나는 과정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사건과 충돌이 아니라 미묘하게 어색하거나 낯선 공기를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키누는 엄청 좋아할 때도 막 흥분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 영화도 그렇다. 그렇기에 더욱 진하게 감정이 밀려든다. 관객이 그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영화 속 일상의 공간에 채워 넣는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사랑의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대신, 함께 하는 것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스쳐 지나가며 관객이 상상하게 만든다. 스스로 깨닫게 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서서히 잠겨드는 영화다. 키누와 무기가 사회의 완강한 벽에 부딪쳐 좌절할 때에도, 세상 안에서 키누가 자신의 ‘취향’을 붙잡고 종종걸음을 칠 때에도, 공감을 느끼며 바라보게 된다. 이건 멋진 사람들의 화려한 연애담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작고 흔들리는 순간들의 이야기다. 결코 끝나지 않을 인생의 이야기. 언제나 내 주변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은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그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키누와 무기는 헤어지고도, 여전히 같은 취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서로의 행복을 빌어줄 뿐이다. 사카모토 유지는 67년생, 도이 노부히로는 63년생. 둘 다 50대 중반의 나이다. 이제 장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지금 20대의 이야기를 너무나 신선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연구조사취재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언제나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20대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언제나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가 만드는 세상은 언제나 경이로우니까. 여전히 젊음이 사카모토 유지에게는 있다. 사카모토 유지의 젊은 대사, 장면을 보는 것은 너무나 생생하고, 마음이 끌린다. 젊다. 젊음의 빛나는 순간이 한껏 나의 세상에 비치는 영화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다. 그래서 즐겁고, 또 슬프다. 그들의 사랑이 그랬듯이.
1.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해설이 필요할 듯하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웬만큼 마니악하지 않으면 보지 않는 장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독립애니메이션 등 일반 관객은 잘 보지 않는, 주로 업계인이나 특수한 소수의 팬`층이 존재하는 애니메이션 분야는 실제로도 많이 있겠으나 그런 계열도 아니고 일종의 ‘팬무비’로서 성장해온 분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극소수의 사람들밖에 접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동영상 사이트를 통한 아마추어 팬 애니메이션을 말하고자 한다. 사실 아마추어 팬 애니메이션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애니메이션 역사의 초기에 있어서 만들어졌던 수많은 단편 애니메이션은, 사실 딱히 금전적 수입을 만들 방도가 별로 없었을 테니 ‘프로’라고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따라서 전부 다 아마추어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패러디’라든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팬’으로서의 요소를 갖춘 팬 애니메이션 쪽이다. ‘패러디(풍자)’ 요소를 갖춘 아마추어 팬 애니메이션으로서는, 1969년 제작되어 1973~74년에 미국에서 화제를 모았던 <밤비, 고지라를 만나다 Bambi meets GODZILLA>를 빼놓을 수 없다. 캐나다의 애니메이터 마브 뉴랜드(Marv Newland)가 만든 이 작품은, 단 2분 남짓의 매우 짧은 단편으로서 디즈니의 밤비가 일본의 괴수 고지라를 만나는(?) 독특한 내용이 특징적이다. (참고로 IMDb에는 이 작품의 릴리즈 연도가 1974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1974년 9월 25일에 미국 애리조나에서 상영되었다는 표시일 뿐이다.) 이 작품의 감독 마브 뉴랜드는 이후 프랑스 동화 원작의 짧은 애니메이션 <바바파파 Barbapapa>(과거에 국내에서 TV 방영되었고, 최근에는 편의점 등에 캐릭터가 그려진 식품이 유통되고 있는 바로 그 작품이다)에 참여하는 등 애니메이션계에서 계속 활동해왔다. (‘마브 뉴랜드’에 관해 검색하다 보니 네이버 지식백과의 『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항목을 찾게 되었는데, 여기 기술된 내용이 전부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인용이 아니라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영어 위키피디아 내용을 읽기 힘든 분이라면 번역판(?)으로서 참고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2. 이 애니메이션은 (보통이라면 상업성을 담보하기 힘든) 엄청나게 짧은 단편이기도 하고, 또 내용상 디즈니로부터도 고지라의 판권사인 일본 토호로부터도 허락을 받기가 대단히 어려울 과격성을 갖춘 작품이기에 그냥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상업적으로 제작된 패러디 애니메이션도 존재한다. 원작 제작사가 직접 만든 경우도 있고, 그냥 과격하지 않은 패러디의 일종으로서 암묵적으로 묵인될 것으로 여기면서 만든 작품도 있는데, 그런 상업 패러디 애니메이션은 제외하고 이 글에서는 주로 현대에 와서 인터넷을 통해 발표되는 팬무비 애니메이션에 관해 써보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1월 베타서비스판이 시작된 일본의 동영상 플랫폼 ‘니코니코동화’를 통해 발표되어온 팬무비 애니메이션군(群)이다. 본래 인터넷상에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상에 있는 콘텐츠가 다수 업로드되곤 하지만,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도 분명히 존재한다. 니코니코동화도 마찬가지로, 기존 상업애니메이션 작품을 편집하거나 음성을 바꾸는 정도만 처리해서 올리는 ‘회색’ 콘텐츠(말은 회색이라고 하지만 분명한 저작권 침해 콘텐츠이다)로서 패러디 동영상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 한편으로는 저작권자(주로 작곡가)가 허락한 곡을 스스로 부르는 형태의 ‘불러보았다’ 동영상이라든지, 본인이 작곡한 음악을 멜로디만 올리거나 노래를 잘하는 이라면 직접 불러서 올리는 등 저작권 측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동영상도 많이 존재해왔다. 그중에서도 2007년 일본의 소프트웨어 업체 크립톤 퓨처 미디어(Crypton Future Media, Inc.)가 발표한 음성합성 보컬 음원 ‘하츠네 미쿠’의 등장이 가져온 변화는 매우 컸다. 일본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자면 하츠네 미쿠는, 야마하가 개발한 음성합성 시스템 ‘보컬로이드(VOCALOID)’에 대응되는 보컬 음원인데, 멜로디를 달아서 가사를 적으면 합성 음성으로 보컬 파트와 백코러스가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발전에 따라 노래 도중에 숨을 고르거나 음성의 강약 조절 등도 가능한 등 리얼리티를 살린 보컬의 표현이 가능해졌다. 보컬로이드 시스템은, 여성 보컬인 하츠네 미쿠 말고도 여러 다른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발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 하츠네 미쿠의 인기가 일본의 인터넷상에서 크게 높아지면서 하나의 무브먼트, 하나의 장르로서 만들어졌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하츠네 미쿠 관련 음악은 이미 10만 곡 이상 발표되었다고 하며,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을 포함하여 다양한 유저 창작 콘텐츠(소위 UCC)가 만연하고 있다. 기존에는 아마추어가 작곡을 했을 경우, 작곡가 스스로가 보컬 실력이 좋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거나, 혹은 본인은 남성인데 여성 보컬 곡을 만들었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 등의 곤란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보컬을 섭외해야만 곡을 공개할 수 있게 되니까…. 프로 작곡가라면 평소에 거래하던 회사라든지 알고 지내는 가수에게 돌리면서 곡을 팔 수도 있겠지만, 아마추어에겐 그마저도 높은 벽이 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하츠네 미쿠를 필두로 한 보컬로이드 시스템의 등장은, 그런 곤란함을 타개하여 아마추어 작곡가들이 쉽게 스스로의 보컬 곡을 인터넷상에서 공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던 것이다. 또한 이 하츠네 미쿠 보컬 음원에 맞춰 발표된 하츠네 미쿠의 캐릭터를 가지고 2차 창작 형태로 동인지나 CG일러스트도 많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하츠네 미쿠 캐릭터의 저작권을 갖는 크립톤 측에서 2차 창작에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덕분이었다.(애초에 하츠네 미쿠 캐릭터의 인기가 높아진 배경에는 2차 창작 동인 문화와의 연계성이 컸다는 점이 있었으니, 오픈 마인드를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다.) 그에 따라 하츠네 미쿠와 관련하여서는 인터넷상에서 온갖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2008년 공개된 ‘미쿠미쿠댄스 MikuMikuDance’라는 프리 소프트웨어(약칭 ‘MMD’)이다. 이것은 하츠네 미쿠를 필두로 한 캐릭터 3D 모델을 조작해서 일종의 3D 애니메이션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일본의 개인(온라인상의 닉네임 ‘히구치M’)이 하츠네 미쿠를 가지고 3D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제작한 것이다. 그 소프트웨어의 기본 모델로서 하츠네 미쿠가 내장되어 있는데, 이 역시도 일종의 2차 창작으로서 캐릭터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MMD 프로그램 자체는, 캐릭터 모델만 집어넣으면 하츠네 미쿠 외에 다른 캐릭터를 사용해서도 3D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이 나온 이후에는 니코니코동화를 통해 하츠네 미쿠를 3D애니메이션으로 사용한 동영상이 다수 발표될 수 있게 되었고, 기존의 하츠네 미쿠 보컬을 덧입히면 일종의 ‘캐릭터 아이돌’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되면서 수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3. MMD 외에도, 기존 2D 애니메이션 방식을 채용하여 뮤직비디오 형식의 짧은 동영상으로서는 애니메이션이 몇몇 제작된 바 있다. 즉, 캐릭터디자인은 널리 알려진 하츠네 미쿠를 사용하고, 배경 음악의 보컬 역시도 하츠네 미쿠 음원(물론 나름대로의 개조를 가한 경우도 있음)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형태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슈퍼셀(supercell)의 곡들이다. 슈퍼셀은 일종의 음악 집단인데, 일본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작곡가 료(ryo)를 중심으로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가 함께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집단(동인음악 활동 중심)이라고 한다. 멤버 중에 보컬이 없기 때문에, 슈퍼셀 명의의 활동에서는 하츠네 미쿠를 보컬로 대체하여 곡을 발표했다. (현재는 이미 프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곡가 료 개인으로서는 타 보컬에게 곡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슈퍼셀의 활동에 관해서는, 이런 형태의 온라인에서의 아마추어 곡 발표가 그 전까지 일본에서 흔했던 것은 아니기에 (한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 말에 PC 통신 동호회를 통해서 조PD, 싸이 등이 자작곡을 발표한 후 프로 데뷔를 한 사례가 있었다) 초기에는 료가 자작곡에다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그림을 무단으로 붙여서 동영상을 만들어 발표했었다. (2007년 12월 니코니코동화에 업로드한, 료 두 번째 자작곡인 <멜트>.) 그 곡이 1년 만에 조회수 300만을 기록할 만큼 인기를 얻었고, 하지만 댓글에서 해당 일러스트는 허락을 받고 사용한 것인지 지적을 받자 료는 일러스트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사죄하는 연락을 했다가, 결국 마음이 맞아서 함께 활동하기로 한 것이 바로 슈퍼셀 결성의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일본어 위키피디아 참조) 그 후 2008년에 <사랑은 전쟁> <월드 이즈 마인> <블랙★록 슈터> 등의 곡을 연속적으로 발표하면서 슈퍼셀은 그 유명세를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멜트> <월드 이즈 마인>의 경우엔 일러스트(정지화)가 그냥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영상의 배경으로 깔려 있을 뿐이었고, <사랑은 전쟁>은 정지화를 약간 편집한 정도의 애니메이션이었을 뿐이었다. <블랙★록 슈터>에 와서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움직임이 있는, 그나마 뮤직비디오 형태의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었다. 물론 움직임은 매우 적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어차피 상업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아마추어 동인 활동으로서 제작한 것 인만큼 사실 그 이상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자체 제작한 음반을 코믹마켓 등 동인지 판매전에서 판매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서서히 하츠네 미쿠와 그 관련 음원을 이용하여 니코니코동화를 통한 자작곡 발표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어느 정도 이상의 애니메이션을 배경에 집어넣는 경우도 늘어났고, 이번 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모래의 혹성 feat. 하츠네 미쿠>도 그런 ‘뮤직비디오형 애니메이션’으로서 발표된 동영상인 것이다. 니코니코동화와 유튜브에서 2017년 7월 21일 동시에 발표된 이 곡은, 하츠네 미쿠의 이벤트인 「매지컬 미라이 2017」의 테마송으로서 작곡가 하치(ハチ)가 만든 곡(작사·작곡·편곡)에 CG나 프로모션비디오 제작 단체인 남방연구소(南方硏究所)가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작품이다. *하치 MV 「모래의 혹성 feat. 하츠네 미쿠」 동영상 ‘하치’는 온라인 활동을 할 때의 닉네임이고, 음악가로서는 본명인 요네즈 켄지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본인이 직접 작곡과 보컬도 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이지만 하츠네 미쿠 보컬로도 자작곡을 많이 발표했다. 2008년에 처음 자작곡을 니코니코동화에 올렸으나 그 당시 곡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후에 전부 삭제했고,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곡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높은 인기를 끌게 되어 2013년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되었다. 메이저 활동을 하면서 CF송이나 개인 음반을 발표했고, 2016년엔 <3월의 라이온>, 2017년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 애니메이션 주제가도 담당하게 되었다. 한동안 프로로서의 활동이 중심이었는데, 이번 <모래의 혹성>으로 4년 만에 다시금 ‘하치’ 명의로 곡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4. 이 <모래의 혹성>은 뮤직비디오의 애니메이션 내용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표출되었다. 아마추어 작곡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째를 맞이한 하치가, 자신의 활동기간과 거의 겹쳐지는 니코니코동화, 그리고 하츠네 미쿠를 통한 아마추어 작곡가들의 ‘인터넷 무브먼트’에 대해 ‘총괄’하는 의미에서 만든 곡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그중에서 상당히 겹쳐지는 내용을 납득이 가게 설명하고 있는 페이지로 한 블로그를 소개하겠다. 이 블로그에서는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통해서 내용에 관하여 고찰을 하고 있는데, 이 곡과 뮤직비디오가 가진 엄청난 ‘정보량’을 상당히 납득이 가게 설명해놓고 있어서 일본에서도 꽤 화제가 된 바 있다. 예를 들어 곡의 제목인 ‘모래의 혹성’이란 ‘전성기와 비교해보면 이미 황폐해져버린 보컬로이드계의 상황’을 가리킨다든지, 애니메이션 초반부에 집단으로 걸어가는 가면의 사람들 맨 앞에 하츠네 미쿠가 있는 모습은 바로 보컬로이드의 대표격인 하츠네 미쿠를 선두에 놓고 다른 보컬로이드 음원이나 작곡가들이 같이 나아가는 것을 가리키지 않겠는가 하는 부분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왜 모두들 가면을 쓰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인터넷상에서 본명이 아니라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 가면 쓴 집단의 일부는 악기를 등에 메고 있기도 한다. 중간에 하츠네 미쿠의 모습 중에서, 위에 설명한 슈퍼셀의 <멜트>에서의 미쿠 디자인이 그대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앞서 언급한 대로 하츠네 미쿠 초기의 최대 히트 작곡가였던 료가 처음으로 그 이름을 날리게 된 명곡 <멜트>가 현재까지 10년간 이어져 온 일본의 보컬로이드 붐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셈이다. 그다음, 가면의 집단 중 몇몇이 갈림길에서 집단과는 떨어져 나와 따로 걸어가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10년간의 기간이 지나면서 보컬로이드계에서 멀어져 버린 이들, 혹은 사망해버린 이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블로그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하치, 즉 요네즈 켄지는 일본의 웹매거진 「Real Sound」와의 인터뷰에서 <모래의 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보컬로이드를 둘러싼 환경도, 제가 즐기던 때와는 많이 달라져 버렸다고 느낍니다. 테마곡을 만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을 계기 삼아, 지금 하치로서 하츠네 미쿠와 곡을 만든다면 어떤 형태를 취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까? 하고 고민한 결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아온 보컬로이드의 원점이 되는 풍경, 그 시절에 모래밭에서 우리들이 만들었던 성을 되새기면서, 그리운 마음과 새로운 마음 사이의 딱 맞는 지점을 찾아보았더니 거기에 <모래의 혹성>이 있었습니다."(「Real Sound」 2017.07.21) 이제는 프로가 되었고 프로로서 활동해나갈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본인은 “보컬로이드 출신이고 보컬로이드를 통해 음악을 추구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보컬로이드 시절의 악곡이나 경험이 지금의 요네즈 켄지를 분명히 받쳐주고 있을 것이다”(위 블로그)는 이야기이다. “보컬로이드는 쇠퇴의 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지도 모른다”(위 블로그)고 여겨지는 것 역시, 지금까지 보컬로이드나 니코니코동화를 쭉 보아온 사람들에겐 분명히 피부로 느껴지는 상황일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와 곡은 바로 그런 상황을, 지난 10년간의 보컬로이드 붐을 총괄하는 의미를 갖는 애니메이션이고 곡이라는 말이다. 애니메이션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필자 역시도 1990년대 한국의 PC 통신 ‘동호회 문화’를 겪으면서 많은 경험을 해왔고 추억하는 입장에서 <모래의 혹성>이란 뮤직비디오와 곡이 가진 이런 측면이 꽤나 친숙하게 느껴져서, 약간 좀 매니악한 분야이긴 하지만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이상한 일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2016)(이하 <설리>)에는 단 한 명의 죽은 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설리>는 2009년 1월 15일, 전 세계에 알려진 실화 사건에 기반한 일이다. 이 사건이 세계적인 이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155명을 태운 민항기가 사고로 인해 비상착수를 했는데, 승무원 한 명의 경미한 부상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죽거나 실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죽을 수 있었으나, 모두가 살아남게 된 사건. 미디어와 대중들은 그 기적적인 ‘생존’에 열광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 반대로 그들 누구도 ‘죽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같은 말인 것 같지만 방점이 다르다. 어떻게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진부한 응답은 기장 설렌버거(설리)의 영웅담에 그치겠지만, 이스트우드는 자꾸만 현실에선 벌어지지 않았던 설렌버거의 실패를 상상한다. < 설리 >에 왜 죽음이 등장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이전 그의 거의 모든 영화들이 ‘죽음’을 기록하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지속된 그의 초기 서부극은 ‘죽은 자’가 귀환해 복수를 가하거나 공동체를 파괴하는 영화였다(< 평원의 무법자High Plains Drifter >(1973) < 페일 라이더 >(1985)).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지는 영화들은 아예 유령학에 가까웠다. 이 유령학의 핵심에는 현재로 침입해오는 과거의 망령들, 죄의식, 혹은 죽은 자를 증언하는 강신술사가 등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영화에서 등장인물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사라졌다. 가령 < 미드나잇 가든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1997)과 < 히어애프터 >(2010)는 죽은 자와 대화하는 자들에 관한 영화이다. 산자와 사자의 공존, 죽은 자들은 현세를 떠나지 못하고 자꾸만 말을 건네거나 복수를 감행한다. < 퍼펙트 월드 >(1994)나 < 밀리언 달러 베이비 >(2004)는 등장인물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화자들의 기억 혹은 편지에 관한 영화이다. < 미스틱 리버 >(2003)는 죽음이 예정된 자들의 벗어날 수 없는 잔혹한 숙명적 세계에 관한 영화이며,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출연작이 되어버린 < 그랜 토리노 >(2008)는 아예 장례식으로 시작해 그 자신의 죽음으로 마감하는 ‘비가’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그의 최고작들로 언급되는 < 용서받지 못한 자 >(1992)나 < 아버지의 깃발 >(2006)은 영웅 신화를 해체하는 영화임과 동시에 ‘과거’의 망령 혹은 죄의식이 현재를 증언하거나 기억의 책무를 남기는 영화들이다. 그 과정에는 무수한 죽음들이 필연적으로 수반됐다. 2010년대, 그의 필모그라피는 흡사 바이오그라피 시네마에 가까웠다. 미국의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FBI의 에드가 후버를 그린 < 제이. 에드가 >(2011)나 이라크 전쟁에서 활동한 미군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에 관한 < 아메리칸 스나이퍼 >(2014) 그리고 이번 영화, 허드슨 강의 기적을 그린 < 설리 >까지. 특히 <제이. 에드가>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주인공의 ‘죽음의 순간’이 중요한 작품들이다. <제이. 에드가>에서 후버의 죽음은 무서운 권력을 창출하고 지배했던 역사적 인물의 비장함이 아니라, 자신의 침대 아래로 처박힌 한 인간의 늙고 추레한 살덩어리, 죽음 그 자체의 쓸쓸함에 관한 소묘였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이라크 전쟁이 만든 미국적인 영웅의 정당성과 딜레마, 그러나 결국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던 그 이라크 전쟁의 트라우마로부터 살해당하고 마는 삶과 정치의 아이러니를 피력하는 작품이었다. U.S. Airways Flight 1549 [출처]huffingtonpost.com 그런데 < 설리 >에선 아무도 죽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 속 한 구조대원이 한 승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는 날입니다.” 아마 이스트우드 영화에서 우연적이건 필연적이건(혹은 주인공이건 주변 인물이건) 그 어떤 죽음도 묘사되지 않은 건 이 영화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아흔을 바라보는 미국의 완전작가 이스트우드는 이미 알고 있다. 위대하고 두터워 보이는 삶들이 사실은 얼마나 위태롭고 우발적인 방식으로(혹은 필연적인 숙명으로) 죽음의 순간들과 공존하는지 말이다. <설리>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눈 건 고작 208초의 순간이었다. 설렌버거 기장도 말하지 않는가. “42년 동안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는데, 고작 208초의 시간이 나를 설명한다”고 말이다. 그 208초의 시간이 155명의 사람을 살렸고, 설렌버거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스트우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반대를 가정한다. 모두가 살아남았지만 모두가 죽을 수도 있었던 그 208초의 운명 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화는 설렌버거의 비행기가 허드슨 강이 아니라 뉴욕의 마천루로 치달아 거대한 폭발과 함께 무수한 죽음을 발생시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물론 이 장면은 영화 서사 내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아니다. 영화는 이내 그것이 주인공 설렌버거의 ‘악몽’임을 드러낸다. 미국의 영웅 설렌버거는 이 영화 속에서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자’로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순간, 자칫 죽음의 208초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그 고통과 불확실성의 순간으로 영화 속 설렌버거는 자꾸만 소환된다. 조사위원회의 회의나 청문회에 불려 나가 그 시간을 진술하는 실제적 순간으로의 소환 외에도 그는 악몽과 환영, 기억의 방식으로 자꾸만 그 자리에 불려 나간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누운 잠자리의 악몽으로, 꺼져있는 TV의 환각으로, 그리고 심지어 젊은 여성이 그의 볼에 감사의 키스를 한 직후에도 그는 창밖 뉴욕의 도심 풍경을 보며 자신의 비행기가 빌딩으로 충돌해 화염에 휩싸이는 환영을 보게 된다. 설렌버거는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돌아가는 지점은 사고의 순간, 그 208초의 시간 속이다. 죽음 앞에서도 물러섬이 없으며, 명백한 자기 확신과 명예율로 살아가는 단독자들. 이런 캐릭터는 고전기 서부극의 남성 영웅들이었다. 60년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레오네에 의해 그러한 반영웅 캐릭터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표면적으로 단일하고 명백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어떠한 내적 균열과 불안 혹은 자기모순에 찬 존재들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 용서받지 못한 자 >를 만들었을 때, 그 영화는 단순히 서부극의 90년대적 부활이 아니라, 자신의 스타 이미지(반영웅 아이콘)를 해체하는 영화였으며 서부의 신화를 탈신화하는 영화, 이상화된 영화적 시간을 현실의 시간으로 되돌리는 영화였다. < 아버지의 깃발 >은 그 정점에 있는 영화였다. “전장을 모르는 자들은 너무나 간단하게 생각하지. 선과 악, 영웅과 악당,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2차 세계 대전 중 이오지마에서 벌어졌던 참상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노인은 후대의 젊은이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웅은 국가나 사회의 필요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며, 그 영웅으로 호명된 존재 자체도 그 신화 속에서 희생되어 가는 존재들이었다. 영화 속 이오지마에 깃발을 꽂은 영웅으로 조작된 인디언 아이라와 위생병 닥은 자신들에게 부과되는 영웅의 거짓 선동 속에서 진짜 영웅들, 전장에서 무수하게 죽어간 동료들의 자리, 즉 “죽은 자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며 항변하곤 하였다. < 설리 > 역시 명백히, 이스트우드가 늘 묘사해왔던 영웅 신화를 해체하는 궤적에 있는 영화이다. 155명의 승객이 단 24분 만에 전원 구조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미디어와 대중은 즉각적으로 그를 ‘영웅’으로 추앙했다. 그러나 이스트우드는 그를 대중사회의 영웅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 앞에 두려웠으며, 불안과 회의 속에서 자기 확신을 하지 못한 채로 ‘두려움의 반복강박’(꿈에서 같은 자리로 자꾸만 되돌아가는 악몽을 표현하는 프로이트 용어)에 시달린다. 아내와의 대화 속에서 그는, 어쩌면 위원회 결정에 의해 퇴직금과 연금을 박탈당하고 소유하고 있는 빚과 건물을 잃을지도 모르는 노후에 대해 걱정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155명 전원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잘못을 저지를 뻔했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과 책무감에 시달린다. <설리>(2016) <아버지의 깃발>(2007) 가장 심플하고 명백해 보이는 이스트우드의 이번 영화 < 설리 >는 의외로 그의 가장 복잡하고 치밀하게 구조화된 걸작 <아버지의 깃발>과 같은 영화이다. 두 영화가 같다는 것은 서사적 구조와 테마, 그리고 ‘진짜’ 영웅들을 복권시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설리>가 설렌버거의 악몽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 아버지의 깃발 > 역시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노년의 닥(의무병 존 브레들리)의 악몽으로 시작된다. 꿈속에서 그는 2차 대전 중인 이오지마의 격전지에 홀로 서 있다. 고통에 찬 병사들이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정작 그는 아무도 없는 전장에 홀로 서 있다. 그는 텅 빈 전장에서 두려움과 죄의식에 눈물을 흘리다 잠에서 깨어난다. 죄의식과 두려움의 반복강박에 시달리는 주인공들은 이제 진짜 역사와 기억을 증언해야 한다. 이스트우드는 그 방법론으로서 ‘플래시백’을 사용한다(이스트우드의 주된 수사학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 플래시백은 과거와 현재를 서사적으로 연결하는 기능주의적 장치이지만, 이스트우드에게 플래시백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복권이자 진실의 구조이다. 그리고 때로는 죽은 자의 기억이자 증언이며 죄의식의 공유기법(서사적 시각화)이기도 하다. 먼저 < 아버지의 깃발 >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소급하는 영화이다. 3명의 영웅 중 닥의 아들이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과거의 시간을 추적하고, 살아남은 생존자들로부터 2차 대전 중 벌어진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증언과 기억에 따른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당시 이오지마의 영웅으로 위장된 아버지들이 결국 어떻게 국가로부터 이용당하고 버려졌는지, 그 과정에 그 아버지들이 어떠한 부대낌과 죄의식을 평생 강요당해야만 했는지를 기록한다. 파편적인 증언들은 영화의 중반부에 이르러 조각난 퍼즐이 맞춰지듯 하나의 진실로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가 걸작에 반열에 오른 진짜 이유는 영웅 신화의 진실을 폭로해서가 아니라, 진실의 순간 이후에 맞이하게 될 ‘애도와 상기’의 시간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아이라는 거짓된 깃발 퍼포먼스의 강요에 “죽은 자의 자리는 어디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말한다. “전장에서 내가 한 건, 내가 본 건 결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다. 난 영웅이 아니다.” 이 말과 함께 그는 국가에 의해 버려진다. 영화는 후반부 영웅으로 호명됐으나, 그 거짓 신화에 홀로 저항하고 거부했던 닥의 죽음을 묘사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닥의 아들은 “세상에 영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릴 위해 전장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한 방식”으로서, 즉 애도의 방식으로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의 맨 마지막을 닥의 소망이미지로 대신한다. 잘려나간 시체들의 무덤이 아니라, 혹은 누군가의 간절한 부름에 응답할 수 없는 전장의 두려움이 아니라, 평화로운 해변에서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으로 일군의 병사들이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닥의 시선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과 함께 오는 진짜 이오지마의 영웅들(평범한 군인들, 영웅 신화에 이용당한 병사들), 그리고 참혹한 전장의 풍경들. < 설리 >는 테마와 구조의 유사성을 공유하지만 정반대의 방식으로 같은 영화이다.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이며, 국가나 조직의 필요에 의해 영웅으로 조작된 사기극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로부터 손실의 책임을 강요당하는 일개 항공사 기장에 관한 영화이다. 국가나 대의명분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 책무에 관한 영화이고, 그 과정의 완결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회의하고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죽음을 이용해 영웅으로 올라서는 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통해 소소한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수주의자로 낙인찍힌 이스트우드의 세계는 종종 남성 마초이즘과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적 이상을 찬미한다는 점에서 불편한 지점이 내재하지만, 그러나 우파 파시스트로 매도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시선과 태도가 존재한다. (심지어 한국적 정치 프레임에서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평가한다면 우파는커녕 좌파 극단주의자로 매도될지도 모른다. 전쟁의 광기와 불모함, 국가 권력의 폭력과 기만, 정치적 조작을 폭로하는 영화들, 기계적 시스템의 비인간성에 저항하는 영화들, 심지어 이주노동자의 아이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거는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들이지 않은가) < 설리 >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그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수행해내는 소시민들의 일에 대한 책무와 공동체적 연대로부터 진짜 영웅성을 발견해내려는 의지의 영화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순간, 설리는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나’라는 영웅이 아니라, ‘우리’(승무원들, 승객들, 구조대원들)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책무와 연대에 대해 언급하고, 엔딩 크레디트에 진짜 설렌버거를 통해 “155는 그저 생존자의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의 집합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 설리 >는 죽음을 통해 진실을 피력했던 이스트우드가 이번엔 죽음에 거의 가 닿을 뻔했던 삶의 순간으로부터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삶과 희망은 이스트우드에겐 낯선 화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음과 절망의 반대극이라는 점에서 같은 이야기이다. 게다가 여전히 이 영화에서도 그는 젊은이들의 치기가 아니라 삶을 오래 살아낸 노장의 원숙함과 혜안이 사건을 해결하고, 냉정하고 수학적인 기계적 시스템의 세계(비행 시뮬레이션)가 아니라 ‘휴먼 팩터’라 말하는 인간적인 판단과 선택을 신뢰한다.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는 이스트우드와 톰 행크스에게 트럼프 선거기간,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작업할 수 있었는가를 질문했다. 이스트우드는 잘 알려진 대로 공화당원으로서 트럼프를 지지했으며, 톰 행크스는 민주당 지지자였다. 이스트우드는 자기가 겪어온 역사적 시기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의 변화과정을 언급하며, 적어도 그는 사람에 따라 다른 정치적 의견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한다. 이에 기자가, 타인의 정치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점에서 당신은 ‘리버럴리스트’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수긍했다. - 사족(그러나 < 설리 >가 올해의 베스트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 이스트우드는 < 설리 >에서 허드슨 강의 기적으로부터 2001년 9.11의 트라우마를 상기한다. 민항기가 뉴욕의 빌딩과 충돌하며 빚어진 참상의 이미지들은 이 영화 속에서 설렌버거의 악몽으로 재현한다. 두 재난은 모두 뉴욕이 주인공이었으며, 하나는 수천 명의 삶을 앗아간 재앙으로, 다른 하나는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삶의 미래로 이어졌다. 허드슨 강으로 비상착수하기 이전에 상황들, 설렌버거의 악몽과 환상, 그리고 실제 비상착수 당시 민항기가 강으로 저공 비행하는 순간의 위기를 직감한 불안한 목격자들의 시선 쇼트들은 명백히 9.11의 트라우마이자, 208초가 갈라놓은 죽음의 잠재적 이미지들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고기에 간신히 탑승했던 한 청년의 말처럼 ‘오늘은 해피엔딩’으로 귀결됐다. 불과 25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1,200명의 구조자들이 사고기 주변으로 몰려왔다. 아침 출근 선박들과 전문 구조요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승객을 가장 먼저 탈출시킨 승무원들의 행동들. 실제로 설렌버거는 승객들이 다 빠져나간 뒤에도 침몰해가는 항공기 내부를 두 번이나 들어가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승객들을 살펴봤으며, 제일 마지막에 빠져나왔다. 이 순간 우리에게 < 설리 >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와 겹쳐지고, 슬픔과 회한의 시간으로 내몰린다. 모두가 살아나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300여 명의 삶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의 출근 선박들이 사고기 주변으로 제일 먼저 달려갔던 것처럼 우리도 주변 어선들이 제일 먼저 달려가 그나마의 생존자들을 구출했지만, 그냥 거기서 멈춰버렸다. 제일 먼저 도망친 선장과 승무원들, 납득 불가능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건과 시간이 아직 그곳에 침몰해있다. 위정자들의 음모와 태만, 폭력이 여전히 거기에 있다. 이스트우드는 모두가 살아남은 허드슨 강의 기적으로부터 혹시 발생할지도 몰랐을 참사의 이미지, 죽음의 이미지를 자꾸 상기하며 현재의 희망에 대해 역설하지만, 우리는 그 반대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시대의 알레고리)에 따라 그 자리에서 수장당한 300여 명의 죽음에 대한 무력한 방관자로서의 트라우마, 죄의식과 분노.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이스트우드와 반대로 죽음 속에서 가상의 구원을 그려내는 것이다. 어느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으로 시작된 ‘희망의 고래(아이들을 제 몸에 실어 날아오는 고래 일러스트)’가 SNS에서 공유되고, 촛불을 든 광화문에서 가상의 증강현실로 등장하고, 다시금 어느 건축가에 의해 실제 ‘고래와 아이들’ 풍선으로 등장하기까지, 우리는 그저 가상의 상상물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위한하고 기억하고 애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스트우드는 < 제이. 에드가 >에서 무소불위의 권력과 좌파 이념에 대해 폭력적인 척결을 자행했던 에드가 후버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개개인이 소중하다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다. 삶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을 초월하는 의미를 지닌다.” “도덕이 무너지면 선한 자는 아무것도 못하고, 악한 자는 번창한다. 모든 시민들은 자신의 가정과 아이들에 대한 위협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과거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 사회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절대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결코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