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미국인
- 감독
- 빈센트 미넬리
- 제작년도
- 1951
- 출연
- 진 켈리, 레슬리 카론, 오스카 레번, 니나 포크, 조지 게터리
아마도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대대적인 마틴 스콜세지 회고전을 환영하며, 팬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그의 실패작 두 편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 말에는 어떤 아이러니도 없다. A4 한 장 분량의 소개 글에서 새삼 < 비열한 거리 > < 택시 드라이버 > < 성난 황소 > < 코미디의 왕 > < 좋은 친구들 > < 순수의 시대 >를 언급하는 것은 민망한 지면 낭비다. 그보다는 이럴 때가 아니고서야 언제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을까 싶은 작품, 본다고 한들 누가 뭐 얼마나 얘기할까 싶은 작품, 그러나 널리 알려진 수작들과 마찬가지로 스콜세지를 이해하는 데에 빛을 던져줄 만한 작품 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 뉴욕, 뉴욕 >은 < 택시 드라이버 >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후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오만해진 스콜세지가 매우 방만하게 만든 뮤지컬이다. 스콜세지는 제대로 된 각본 없이 많은 것을 즉흥에 의지해 계속 카메라를 돌렸는데, 처음 편집본에서는 두 주인공이 만나는 첫 장면의 길이만 한 시간에 달할 지경이었다. 그런 방만한 만듦새에다 로버트 드 니로가 재능 있는 트럼펫 연주자로 나와 역시 재능 있는 가수를 연기한 라이자 미넬리를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괴롭히는 진절머리 나는 이야기인데 흥행할 리가 있나. 영화는 대폭 삭제되었고,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지미 도일의 패악질을 어떻게든 참아낼 수만 있다면, < 뉴욕, 뉴욕 >은 그렇게 실속 없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광 스콜세지는 여기에서 고전기 할리우드의 뮤지컬에 헌사를 바친다. 여기 나오는 뉴욕은 스콜세지가 나고 자란 비열한 거리가 아니라, 그가 어린 시절 TV로 보고 꿈꾸었을 인공적인 세트 속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가짜 뉴욕이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연인을 학대하는 남자 예술가의 이야기는 4~50년대의 뮤지컬 <내 꿈은 당신의 것My Dream Is Yours>(1949)이나 <스타 탄생A Star Is Born>(1954)에서 가져왔다. 어쩌면 라이자 미넬리를 주연으로 삼은 것도 한편으로는 고전기 뮤지컬의 대표 감독 빈센트 미넬리와 스타 주디 갈랜드에게 바치는 간접적인 헌사였을지 모른다. 특히 대미를 장식하는 ‘해피 엔딩’ 장면은 50년대 이후로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MGM 뮤지컬의 화려함을 한껏 뽐낸다. <악대차The Band Wagon>(1953)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1951)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1952) 같은 옛 뮤지컬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눈물을 글썽일 만하다. 두 주인공의 권력 균형이 좀 더 맞았더라면, 지미 도일이 그토록 자연재해 같은 인간만 아니었더라면 더욱더 보기 좋은 영화가 되었을 텐데. 그래도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스콜세지는 지미 도일 같은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 덮은 채 ‘해피 엔딩’으로 갈등을 무마할 정도로 몰염치한 창작자는 아니다. 조금만 참아주시기를. < 비상근무 >는 어떤 면에서는 < 뉴욕, 뉴욕 >과 정반대의 상황에 놓인 작품이다. 90년대 초 뉴욕의 야간 근무 구급요원을 다룬 이 영화에서, 스콜세지는 다시 한 번 < 택시 드라이버 >의 세계로 돌아간다. 뉴욕의 밤은 불타는 지옥이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주인공 프랭크 피어스는 그 안에서 구원을 찾아 헤맨다. 단,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이 피로 도시를 정화하고자 하는 복수의 천사라면, 프랭크는 피 흘리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한 명이라도 살리고 싶어하는 성자다. 일종의 과대망상과 강박관념에 빠졌다는 점은 마찬가지일지 몰라도, 그는 스콜세지 영화의 남자 주인공치고는/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것치고는 놀랄 만큼 제정신이다. 여기에 로버트 리처드슨이 촬영한 뉴욕은 마이클 채프먼이 촬영한 <택시 드라이버>의 뉴욕과 마찬가지로 빨갛고 파랗고 노란빛이 어둠 속에 번지면서 화려한 추상미를 자랑한다. 거의 무게 없이 허공을 활강하듯 춤추는 카메라와 빠른 편집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스콜세지의 스타일도 눈을 홀릴 만하다. 스콜세지의 음악 선곡 실력이야, 가장 좋지 않은 영화에서도 빛을 발하는 부분이고. 요컨대 < 비상근무 >는 이번 상영작 중 가장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큰 불편 없이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으며, 눈과 귀를 만족시킬 자극도 충분하다. 그런데 왜일까, < 택시 드라이버 >의 심란함이 빠져나가자 스콜세지의 정수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스콜세지의 정수는, < 좋은 친구들 >에서처럼, 끔찍하지만 누리고 싶은 권력의 세계 앞에 느끼는 매혹과 혐오 모두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 불온한 균형 감각에 있는 것이 아닐까? <비상근무>에서처럼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채 바라보는 지옥의 풍경은 오히려 관찰자를 게으르고 위선적인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비상근무>는 부재를 통해 거꾸로 스콜세지 영화의 힘이 지닌 성질을 검토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로버트 드 니로를 비롯한 스콜세지 세계 남정네들의 갖은 난동을 보고 이런 건 정말 싫다고 질색하신 분들께 충심으로 권한다.
최근 개봉한 < 집으로 가는 길 >을 봤다.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도 많이 났지만, 다른 면으로는 우리나라 영화도 해외 로케이션이 많이 자연스러워졌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파리, 마르티니크 섬이 서울 쪽 연출과 어색하지 않게 연결이 되고 있었다. 프로덕션의 방식과 과정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겠고 연출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었으니, 한국 최초의 파리 올 로케이션 영화 < 몽마르뜨 언덕의 상투 > 다. 제목부터... 살벌하다. 곱슬거리는 정동환 의 수염 상투를 튼 정동환 이 피리를 불고 있다. 그런데 그의 입 주변에 난 수염이 뭔가 살바도르 달리스럽기도 하고 하여간 조선사람 몸에서는 안 나올 듯한 꼬불꼬불한 수염이다. 뒤에 바라보는 외국인 부자(어쩌면 모자일지도 모른다)의 미묘한 표정은 또 뭔가. 이 한 장의 이미지가 < 몽마르뜨 언덕의 상투 >를 대변한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은 일반 시민들에겐 요원한 이야기였다. TV, 영화를 통해 접하는 해외의 모습이 전부였을 것이다. 영화 제작 시 해외로케이션에 대한 열망은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올림픽을 목전에 둔 1987년,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채비를 갖추던 한국인. 우리와는 생김새가 다른 외국들의 땅에서 활보하는 대한 남아(혹은 여아)의 모습을 당당하게 스크린에 담아 오겠다는 야심! <몽마르뜨 언덕의 상투>는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자는 거기 갈 생각만 했지, 가서 뭘 할지는 충분히 생각하지는 못한 것 같다. 제목이 < OK 목장의 결투 >를 닮았지만 별로 비슷한 구석은 없는 영화다. 1987년에 개봉된 강대진 감독(제작자로 유명한 강대진 감독과는 동명이인이다.)의 < 몽마르뜨 언덕의 상투 >는 앞서 말했듯 ‘한국 최초의 파리 올로케이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지금까지 안방극장의 지지않는 해로 존재하는 정동환 과 < 애마부인 > 하나로 모든 것을 평정했던 안소영 이 투톱으로 출연한다. 정동환 과 안소영 . 딱히 이 영화의 스틸컷은 아님. 아마도 빈센트 미넬리의 < 파리의 미국인 >을 느슨하게 가져오지 않았나 싶은 이야기다.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위해 파리 유학을 떠난 진호( 정동환 )는 그곳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다. 하지만 그의 파리 생활을 첫 도착부터 순탄치가 않다. 그가 신세를 지기로 한 황 화백의 집에서, 과거 미대 동기이자 연인이었던 희정( 이진경 )이 반라의 차림으로 나오는 것을 본 그는 파리에서의 첫 번째 좌절을 경험한다. 그녀는 돈 많은 재일교포이자 상업 작가인 황 화백의 재력과 박력에 넘어가 그와 함께 파리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호는 이에 실망하고 곧 혼자 레스토랑 서빙을 하면서 그림 작업에 몰두한다. 그의 열정은 ‘다다이즘 거장’ 삐숑 선생님의 마음을 열게도 하는데,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그림을 평가해달라는 진호의 부탁을 거절하자 그는 외친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러니 삐숑 선생님의 가정부가 감동하고 3초 만에 설득하여 그의 청을 받아주게 된다.(다다이스트들이란!) 이제 곧 개인전을 열 것 같이 꿈에 부푼 진호는, 아르바이트하는 레스토랑에서 만난 윤 여인( 안소영 )에게도 호감을 가진다. 그녀에게 모델을 제안하자, ‘사생활에 대해선 절대 묻지 말라’며 조건부로 제안을 수락한 윤여인은 급기야 누드모델까지 허락하지만, 술 취해 그녀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그에게 다시는 연락 말라며 매몰차게 내친다. 그렇게 두 번째 좌절. 이후로는 좌절의 연속이다. 아니, 그냥 외국인 부랑아라고 해도 좋다. 이 부분에 대한 연출이 꽤 재미있는데, 진호는 파리 내의 관광 명소들을 골라가며 방황을 한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려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센 강 인근에서 술을 마시며 방황을 하며, 길거리에서 정치, 문화를 이야기하는 청년들에게 한국인의 세계사 지식을 뽐내기며 먹을 것은 얻어먹기도 한다. 진호의 방황을 핑계로 파리의 관광코스를 쭉 훑은 영화는 급기야 그를 프랑스인들의 새해 행사인 성 실베스트리의 날에 등장시켜 들뜬 사람들 사이에 혼자 심각하게 서서 술을 들이키게 한다. 그런 그의 방황은 한 창녀에게 이끌려 갔다가 바지가 벗겨지면서 끝난다. 이건 아니야! 이래선 안 돼! 바지춤을 부여잡고 창녀의 집을 나서면서 본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러 왔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순간, 진호는 자신의 방황에 대해 반성하고 정신을 차리지만, 영화를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탄식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 그리기 그런 방황 중 우연히 버스킹을 하는 거리 예술가들을 본 진호는 기발한 생각을 해내게 된다. 몽마르뜨 언덕에 위치한 계단에서 한국 전통의 의상과 악기를 통해 색다른 문화를 선보이며 호객을 해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유명해진 진호는 파리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개인전 의뢰를 받게 되고,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이에 때맞춰 희정도 황 화백을 떠나 진호에게 돌아오고 모든 것이 잘 풀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개인전은 사실 윤 여인이 뒤에서 진호를 위해 기획한 것이었다. 근본도 알 수 없는 한국인 미술대생의 개인전을 개최하기 위해 윤 여인은 화랑 주인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던 것이다.(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윤 여인은 화랑 주인에게 눈물을 흘리며 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진호는 윤 여인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가 충격적인 장면을 본다. 윤 여인이 사생활에 대해 알리기를 극구 꺼린 것은 장애인 남편을 수발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수발하는 윤 여인을 멀리서 바라보던 진호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랬군요. 그랬었군요. 멀찌감치서 그녀를 보던 진호는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그때, 윤 여인은 진호를 불러 세우고, 둘은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유럽에 대한 예술적인 동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멜로 영화다. 물론 그 만듦새가 탄탄하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는 주인공 진호가 그렇듯 일단 외국에 나가긴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이야기는 중구난방이고 인물들은 저마다 심리적이든 물리적이든 모두 헤맨다. 비밀을 가진 듯 행동하는 윤 여인의 사정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이고 영화의 라스트씬에 가면 저 여자는 뭐하는 여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말하자면, 80년대 우리가 ‘외국’, 특히 ‘유럽’을 생각하면 떠오를만한 이미지들을 대충 엮고 그 위에 ‘한국의 미술 대학생’을 쑤셔 넣은 영화가 < 몽마르뜨 언덕의 상투 > 되겠다. 그래서 그 충돌이 재미있다. 이 글 초반에 올라가 있는 사진처럼, 미묘하게 안 어울려 충돌하는 이미지와 행동들이, 세계에 편입되고 싶은 대책 없는 욕망이 끓어오르던 80년대 중후반의 당시의 모습을 비춰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거지가 만든 두 세계의 이상한 만남. 이후로 세계는 급속히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인다. 진짜로 그렇게 되고 있는지는 뭐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동환 안소영 감독: 강대진 각본: 박철민 개봉극장: 스카라 관람인원: 4,618(서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