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츠츠이 마리코, 미츠이시 켄, 이소무라 하야토, 츠다 에리나, 안도 타마에
<순교자>는 유현목 영화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기독교반공문예영화다. ‘기독교·반공·문예’는 당시 정권과 순치되고 나아가 권장되었던 요소들이어서 일견 검열에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상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보부의 공식적인 검열 단계는 비교적 수월히 통과했지만 국방부, 중앙정보부, 내무부, 문교부의 개입이 이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국책과 순치되는 영화였기 때문에 관계기관들이 더 간섭하려는 면도 있었다. 또한 이 영화는 <7인의 여포로> 이후 국가가 영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통제하려던 분위기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엘리트들의 의견 역시 중요한 벡터로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순교자>를 둘러싼 논란과 검열 과정은 검열 관계기관들의 역학을 비롯해 <7인의 여포로> 이후 검열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이 당대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계층을 통해 봉합되는 국면을 드러낸다. <순교자>의 검열과정: 상영허가증 발급 이후 국방부, 정보부, 문교부, 내무부가 개입하다 1965년 3월5일 제작사(극동흥업)는 공보부에 <순교자> 영화 제작을 신고한다. 3월 20일에 “정부시책과의 관계-저촉 사항 없음”이라는 전제 하에 시정사항 4개가 지적되며 제작신고가 수리된다. 이후 영화가 완성되어 중도에 제작권한을 양도받은 합동영화주식회사 명의로 6월 10일 ‘영화상영허가신청서’가 제출된다. 6월 15일에 “보안상 유해로운 점 없음”이라는 검열의견서가 작성되고, 대사 1개처를 삭제하는 조건으로 6월 16일에 ‘영화상영허가증’이 발부된다. 그런데 상영이 허가된 6월 16일에 국방부에서 화면 1개처를 삭제하고 대사 1개처를 수정하라는 전언통신문을 보내온다. 공보부에서는 이미 영화상영허가증을 발부한 상태에서 내부적으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월 18일 공보부 영화과 계장이 기안한 내부 결재 서류에 의하면 화면 1개처 삭제를 추가 제한사항으로 승인하지만, 이미 녹음이 끝난 뒤라 대사 수정은 불가능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방화 <순교자> 심사 의견 처리”라는 제목의 부전지에는 <순교자>는 “군사극영화가 아니고 종교극영화”로 “국방부 후원은 군장비 후원”이었고 공보부에서 “국방부에 심사 요청한 바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결국 6월 18일 공보부는 국방부에 직접 “수정사항을 업자 측에 통보하시고 수정토록 조치”하라는 전언통신문을 보낸다. 공보부와 국방부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그림 1) 전언통신문: 국산극영화 “순교자” 심사의견 처리 검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순교자>가 아카데미극장에서 상영중이던 6월 22일에 중앙정보부는 “보안상 유해로운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하였으므로 “삭제 후 상영토록” 하라고 공보부에 통보한다. 그 내용은 화면 3개처와 대사 3개처를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중앙정보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공보부가 보다 긴장하는 기색이 서류에서도 감지된다. 6월23일 ‘방화 <순교자> 제한조치의견 처리’라는 제목의 서류에서 중앙정보부를 CIA라고 칭하며 “토의가 요하다고 사료되옵기 공람하고 회신은 추후 기안”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그러면서 ‘참고사항’으로 “검열 당시 CIA 파견 검열관”이 “보안상 유해로운 점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을 부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6월 15일 합동검열에 중앙정보부가 참여하여 “보안상 유해로운 점 없다”는데 동의해 놓고 뒤늦게 다른 소리를 하는 것에 대한 난감함이 묻어난다. 1964년 중앙정보부의 입장 번복으로 감독이 구속되었던 <7인의 여포로> 사건을 겪은 후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냥 반공영화가 아니라 ‘기독교반공문예영화’였다. 6월 26일에 공보부는 이 영화가 “세계 각국에서 다량 발매된 재미교포” 작가의 소설에 충실하였다는 점과 “당초 귀부와의 합동검열 당시 합의된 바” 있으며, “귀부 추가제한요구를 집행하는 경우에 예견되는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현행대로 상영토록” 하겠다는 의견을 중앙정보부에 통보한다. (그림 2) 방화 “순교자” 제한조치 요청에 대한 회신 이로써 국방부와 중앙정보부의 사후 검열은 일단락된 듯한데, 아직 등급을 정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6월 17일에 합동영화주식회사가 ‘학생관람허가신청서’를 공보부에 접수한 뒤 6월 26일에 문교부 측에서 제한사항 없이 ‘고등학생 이상’에 관람을 허용해도 된다는 의견을 공보부에 통보한다. 그런데 7월 2일에 문교부가 입장을 바꾸어 군인의 방에 걸린 태극기가 표준형이 아니므로 표준형 태극기로 화면을 수정해야 고등학교 이상 관람을 허용한다는 의견을 보낸다. 그리고 7월 6일에 내무부 치안국 보안과에서 ‘학생관람불가’ 의견을 공보부에 보낸다. 7월8일 공보부에서는 문교부와 내무부의 의견을 종합하여, 등급은 ‘미성년자관람불가’로, 문제가 된 태극기 화면은 표준형 태극기로 수정하여 필름과 대본까지 다시 제출하라고 제작사에 통보한다. <7인의 여포로> 사건, 유현목, 그리고 <순교자> 당시 정부의 정책 방향에 거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영화가 이렇게 수난을 겪게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 한 편을 두고 문화 담당 기관은 물론 국가안보, 치안, 교육을 담당하는 복수의 행정기관들이 검열에 참여하였다는 데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국책에 부응하는 영화라고 해서 검열을 덜 받은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간섭하려는 기관이 많았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한 <7인의 여포로> 사태 이후 중앙정보부가 영화 통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5.16쿠데타 직후에 설립된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정권 내내 전방위적으로 권력을 강화해간다. <7인의 여포로> 사태는 영화계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된 사건이었고 <순교자>는 그 여파 속에서 검열을 받은 것이었다. 여기에 당시 기독교계의 반응은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였다. 유현목 감독은 자서전에서 <순교자> 개봉 당시 상영을 앞두고 기독교계가 반발했다고 회고한다. 목사들이 문공부장관을 찾아가 영화에서 신목사(김진규)가 ‘신은 없다’고 말하는 대목을 문제 삼으며 상영금지를 호소했다는 것이다. 개봉한 이후에도 기독교계의 반대는 계속되어서 지방 상영극장 앞에서는 신자들이 입장을 막기도 했다고 말한다. 1) 당시 신문을 보면 기독교계가 일방적으로 반대만 한 것은 아니고 찬반이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된 것은 영화만이 아니라 원작소설부터였다. 1964년 영문으로 출간된 『순교자』(The Martyred) 2) 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남한에도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 속 목사들의 죽음이 거룩한 순교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국내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김은국 작가를 “20세기의 가롯 유다”라고까지 비난했다. 유현목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화하자 큰 화제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에 대한 비난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목사들이 공산당 앞에서 신을 부정했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증언하는 인물이 북한군 소좌라는 것이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분단 이후 남한 개신교와 반공 이념의 강력한 결속이 ‘배교와 이단’의 판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도 “현대 기독교의 문제를 제시하고 기독교적인 고민을 심화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목사들―문익환(한국신학교), 변선환(이화여고 교목), 김광우 목사 등―이 있었다. 3) 또한 언론에서도 “성직자의 고독을 묘파” 4) 한 “중량감 넘치는 역작” 5) 이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그러던 7월 13일에 유현목 감독은 돌연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다. 1965년 3월 23일에 ‘은막의 자유’ 6) 라는 주제로 열린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 세미나에서 발제한 내용이 뒤늦게 말썽이 된 것이었다. 7) 공안 검찰은 <순교자>뿐만 아니라 <오발탄>(1961)과 <잉여인간>(1964)도 용공적이라고 판단하여 유현목 감독을 소환했다고 전한다. 8) <7인의 여포로>의 이만희 감독에 이어 또 다시 영화감독이 반공법으로 입건되는 데 대해 영화계는 물론 보수언론에서도 우려스러워했다. 9) 이와 같은 논란 속에서 <순교자>는 더욱이 문제작이 되었고, 영화에 대한 평가는 높아졌다. 1965년에 베니스영화제에 처음으로 5편을 출품했는데, 그 맨 앞에 <순교자>가 놓였다. 10) 1965년 『실버스크린』 6월호에서는 “세계명작을 영화화한 영화예술의 극치”로 <순교자>를 소개한다. 11) 그리고 9월호에서는 종전에 영화학도들을 위해 연재해오던 학술적인 코너 3개를 합쳐 “내일의 영화인을 위한 쎄미너”라는 지면을 만들고 개봉된 영화 중에서 문제작 한 편을 골라 집중적으로 분석 검토하는데, 그 첫 번째 텍스트로 <순교자>를 선정한다. 1965년 말에 가면 <순교자>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평가는 “종교논쟁까지 불러일으켰던 작품”으로 “테마는 휴머니즘”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유현목 감독은 공보부에서 주관하는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유현목 감독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계속되어 1966년 1월 서울지검은 반공법 위반에 음화제조 혐의(<춘몽>)를 더해 유현목 감독을 불구속 기소한다. 1967년 3월 반공법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고, 음화제조에 대해서는 벌금 3만원 형이 확정되기까지 법적 논란은 계속된다. 일련의 과정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검찰이 중앙정보부와 함께 문화예술까지 재단할 수 있는 상위의 공권력임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언급해 둘 것은 이런 가운데 <순교자>는 미국에 첫 수출되어 상영된 영화 13) 가 되었다는 점이다. 기독교를 매개로 한국전쟁과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 속에서 국내 공권력의 역학 밖에서 움직이는 힘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로 인한 박정희 정권과 기독교계의 충돌은 197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화된다. 1) 유현목, 《영화인생》, 혜화당, 1995, 151-152쪽. 2) Richard E. Kim, The Martyred, George Braziier Inc., N.Y.C., 1964. 3) <기독교계에 순교자 파문>, 《동아일보》, 1965.6.29. 4) <[새영화] 성직자의 고독을 묘파>, 《경향신문》, 1965.6.19. 5) <[영화평] 중량감 넘치는 역작>, 《조선일보》, 1965.6.20. 6) <은막의 자유>, 《경향신문》, 1965.3.24.; <은막의 자유」, 《조선일보》, 1965.3.25. 7) <영화감독 유현목 씨 입건>, 《경향신문》, 1965.7.13. 8) <유현목 감독 입건 논문 말썽>, 《조선일보》, 1965.7.14. 9) <만물상>, 《조선일보》, 1965.7.15. 10) <<순교자> 등 다섯 작품 베니스영화제에 출품>, 《동아일보》, 1965.9.14. 11) <[이달의 문제작] 세계명작을 영화화한 영화예술의 극치>, 《실버스크린》, 1965년 6월호, 114쪽. 12) <[지상콘테스트 200자 시리즈(완)] 청룡상에 출품된 영화들-순교자>, 《조선일보》, 1965.11.28. 13) <영화 <순교자> 미에 첫 수출>, 《동아일보》, 1966.7.21.; <미주 등서 일제상영>, 《조선일보》, 1966.7.21.
<질투>(한형모, 1960) 촬영 현장, 한형모 감독의 뒷모습 (박승배 촬영감독 기증)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감독 한형모 는 1950년대 한국 영화에서 대중성과 통속성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동시대 유명 감독들 신상옥 , 이만희 , 김기영 , 유현목 같은 자기만의 고유한 주제의식이나 미학을 가진 작가로 평가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여성 인물을 매개해 대중이 쉽게 매혹될 만한 선정적인 스펙터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장르적 오락성을 중점에 두면서도, 결말에서 여성 인물에 대한 순치와 처벌의 서사를 통해 보수적인 도덕성을 거스르지 않는 통속 영화들로 이름을 날렸다. 그렇기에 한형모의 작가성에는 늘 매혹과 순응, 현대와 전통이라는 모순된 단어들이 함께 붙게 된다. 감독 데뷔작이자 최초의 반공영화인 < 성벽을 뚫고 >(1949)와 한국전쟁 중 제작된 다큐멘터리 <정의의 진격>( 1부 1951, 2부 1952)을 제외하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여성이 주인공인 멜로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이 다수를 차지한다. 촬영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던 만큼 그의 작가성으로 기술적 유려함, 다양한 장르를 결합시키는 능력(첩보+멜로, 로맨스+코미디, 멜로+뮤지컬 등)을 언급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 주인공에 대한 이중 의식이다. 전후 혼란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던 1950년대에 한형모 영화의 여성 주인공들은 얼핏 보면 당대 가장 진취적인 여성들의 샘플처럼 보인다. (좌) <운명의 손> 중 마가렛/정애 / (우) <여사장> 중 요안나 <자유부인> 중 오선영 첩보멜로물인 < 운명의 손 >(1954)의 주인공 마가렛/정애는 북한 간첩이자 ‘양공주’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어느 쪽에도 포섭되길 거부하고 개인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한다. < 자유부인 >(1956)의 오선영은 교수 남편이 있지만 경제적 욕망과 결혼제도 바깥의 성적 욕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후에도 스튜어디스인 < 순애보 >(1957)의 인순부터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출판사 사장인 < 여사장 >(1959)의 요안나, 산부인과 의사인 < 남성 대 여성 >(1959)의 윤송희, 유도 유단자인 < 언니는 말괄량이 >(1961)의 안순애까지 여자 주인공들은 경제적 독립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만한 직업과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들의 생활 묘사에서 ('남성혐오'를 포함한) 성적 욕망의 적극적인 표현, 서구문화의 소비, 자본주의 상품에 대한 갈망은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전문직 여성의 라이프스타일 혹은 자유분방하고 당당한 개성은 당대 여성 관객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형모의 영화는 일관되게 서사적으로 이들을 결국 순치시키고 처벌하며 가부장제 안으로 복귀시키는 결말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타락하거나 병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지며, 가부장의 그늘을 거부하는 경우 살인, 강간, 사기 등에 위협적으로 노출된다. 시대적으로 앞서간 여성 인물을 스크린에 가시화한 반면, 그만큼 처벌하고 순치시키는 과정도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그려냈던 이중적 태도야말로 그의 작가성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적 여성의 매혹적 스펙터클은 길고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반면(사실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여성 주인공이 화려하게 전시되는 영화적 순간들이기 때문에), 순치의 과정은 서사적 비약이라고 느껴질 만큼 짧고 급작스럽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매혹적 스펙터클을 만들어 내는 긴 시간 동안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여성들은 사회의 성차별과 가부장제의 부당함을 논리적으로 설파하게 된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거나, 남편의 물리적 힘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갑작스럽게 현모양처로 돌변하고, 자신의 욕망을 모두 헛된 꿈, 허영으로 환원한다. 영화도 그들이 자진해서 죄를 고백하고 가부장제가 지정한 자리로 재귀한다는 것이 영화 내적으로 설득력이 없을뿐더러 그저 감독 자신의 혹은 기성 사회의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프린트가 남아있지 않아 영화를 확인할 수 없는 < 질투 >(1960)는 이와 같은 한형모의 작가성이 순도 높게 구현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현대성은 동성애이다. 동성애는 영화의 가장 선정적이고 호기심 갖게 하는 마케팅 포인트이자 결국은 교정되고 처벌받아야할 대상이다. 당시 신문광고에 실린 영화의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실려 있다. “이성애의 공포가 동성애로 변한 것은 세계적인 풍조일까?” -《동아일보》 1960. 5. 25. “동성연애서 엉크러지는 일대의 질투, 국제무대에 파문을 던질 최고 이색편!” -《경향신문》 1960. 5. 7. 두 번째 문구가 적혀있는 포스터가 1960년 5월 22일자 《동아일보》에도 실려 있다. 즉 동성애를 세계적이고 국제적인 유행과 동시대성으로 연관시키며 선정적인 호기심을 부추긴다(유명한 여성 동성애 영화 두 편, 오드리 햅번과 셜리 맥클레인 주연의 < 아이들의 시간 >(윌리엄 와일러, 1961)이 1961년 할리우드에서, 로미 슈나이더 주연의 < 제복의 처녀 >(게자 본 라드바닐, 1958)가 1958년 독일에서 개봉했다). 동성애는 이 영화의 세련된 차별점이다. <질투>는 한국영화사에서 영화제작과 개봉이 확인된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형모의 다른 여성 주인공들처럼 이 영화의 재순 역시 주장이 분명하고 자기 욕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여성이다. 한형모는 배우 문정숙에게서 톰보이 기질 혹은 여성의 남성성을 포착하며 <질투>와 <언니는 말괄량이>에 연이어 출연시킨다. 문정숙 이 맡은 재순과 안순애는 모두 부치 레즈비언 혹은 남성성을 드러내는 여성으로 볼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그 이유를 '남성혐오'에서 찾는다. 특히 <질투>의 재순은 한국전쟁 당시 강간을 당하고 병적으로 남성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대사 속에서 기술된다. 입양된 동생인 금이( 전계현 )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 즉 동성애는 독자적 욕망일 수 없으며 필히 이성애의 대체제로만 가능하다. 여성 동성애는 '남성혐오'의 병적 증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모두 재순이나 금이 등 여성 인물이 아닌, 집안의 가부장인 오빠 재수와 정신과 의사의 해석일 뿐이다. 오히려 금이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표현하는 재순은 과거의 일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재순은 그저 금이를 사랑할 뿐이며, 그것이 폭력적 집착일지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금이를 위할 선택을 할뿐이다. 금이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로 이성애 결혼과 남편에 순종하는 아내의 역할을 강요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재순은 여성에게 결혼이 왜 부정적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재순은 오빠의 아내인 남이( 김신재 )에게는 “난 여자가 남성의 노예가 돼서 하루 종일 그 봉사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행복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요”라고 한다. 또한 금이의 약혼자 광호의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도 여자분이니까 그 점을 아실 겁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남성들한테 받아온 압박을 금이한테까지 당하게 할 순 없단 말이에요”라고 말하며 여성들의 동의를 구한다. 놀랍게도 서사적으로 볼 때 적대 관계에 있음에도 광호의 어머니는 “나도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이라고 답한다. 적대관계에 있는 여성들의 동의마저도 얻어내며 여성들을 규합하는 재순의 말은 여성 관객들을 머리와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또 금이의 장래와 관련해 재순은 “훌륭한 음악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수는 “훌륭한 가정부인이 돼”야한다고 대치한다. 재순은 성폭력 트라우마의 증상을 보이지 않으며 남성과의 만남에서도 두려움이 없고 합리성에 근거해 이성애중심주의와 가부장제를 정확하게 비판한다. <질투> 중 재순과 이금 (박승배 촬영감독 기증) 재순은 친동생처럼 함께 자란 금이와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아왔으며 한 방을 쓰면서 육체적 관계도 가진 것으로 암시된다. 또한 재순의 문제가 “동성연애”냐고 재수가 묻자 금이는 긍정을 표하며, 금이의 옛 이웃 광호가 등장하며 단순한 S 언니-동생 사이에서 “동성연애”로 관계 혹은 욕망이 바뀌었음을 암시한다. 금이와 재수 사이에 이어지는 대사는 재순을 병리적 인물로 보고 있지만, 동시에 재순과 금이의 관계가 단순한 자매애나 여성적 친밀감을 넘어섰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재차 확인한다는 점에서 통쾌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금이는 “사랑은 역시 이성에게서 느끼는 애정만이 인생을 즐겁게” 한다며 재순과의 동성애 관계와 광호와의 이성애 관계를 비교적 대등하게 놓고 비교한다. 한형모가 견지하는 선정성과 현대성, 서구의 유행에 대한 호기심과 물신화, 그리고 언제든지 순치시킬 수 있다는 가부장제적 자신감은 동성애라는 욕망을 매우 선명하고 직접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재순의 (이해 불가능한) 동성애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곧장 가부장제와 결혼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이어진다. 관객들은 재순의 사랑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서, 혹은 그에 앞서 그의 논리에 설득당하게 되는 것이다. 재순의 질투와 집착은 지나치게 커지고 금이와 광호의 결혼을 막기 위해 살해 시도까지 간다. 재순의 폭력성은 그의 남성성의 표현이 된다. 재수와 금이는 재순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약물치료를 통한 동성애전환치료를 받게 한다. 명목상으로는 성폭력 트라우마와 '남성혐오'를 고치는 것이라고 나오지만 결국은 동성애를 이성애로 교정하고 순치시키는 폭력이 된다. 재순의 사랑의 원인은 재순 스스로 말하듯 그저 사랑에 기인할 뿐이다. 그것이 파괴적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폭력적 교정은 매우 짧은 하나의 결말 장면으로 묘사된다. 시간을 건너뛰어 급하게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동성애전환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재순은 금이와 재수, 재순을 좋아하던 영기와 의사가 모인 앞에서 “꿈에서 깬 것 같다”라고 말한다. 공격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 많고 논리적이던 재순의 저 응축된 한 마디 대사는 문자로만 표현되어 있지만 공허한 눈을 목격한 것처럼 느껴진다. 병원장면은 논리와 설득력이 부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며 아이러니한 연극이며 그로테스크한 악몽이다. 재순은 앞의 긴 시간이 꿈이라고 했지만, 실은 병원장면이야말로 허상이자 꿈처럼 느껴진다. 한형모가 반복적으로 결말에서 여성들을 처벌하고 순치시키며 가부장제와 강제된 이성애로의 자리로 보내려는 시도는 실은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결말의 보수적 안전함 속에서 주목하고 환호했던 것은 바로 ‘꿈’과 '병증'으로 취급된 동성애 욕망이기 때문이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1. 이 영화는 단 한 명의 인물만 등장하는 영화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해역에 위치한 세이블 섬에서 40여 년간 살아온 환경보호 활동가 조이 루커스가 그 주인공이다. 미술을 전공하던 대학원생 시절 이 작은 모래섬의 흑백 사진을 보고 매료된 루커스는 1974년 세이블 섬의 바다표범을 연구하는 팀에 자원해 현장 보조원 겸 요리사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후 유실되어가는 사구를 복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섬과 육지를 오가다, 1982년부터는 아예 거처를 옮겨 대부분의 시간을 섬에서 보내게 된다. 루커스는 섬의 생활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동료들이 모두 철수한 뒤에도 혼자 남아 세이블 섬의 거주자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루커스의 일상은 여러가지 반복적인 일들로 채워져 있다. 파도에 쓸려온 해양쓰레기를 수집해 분류하고, 동물의 똥에 든 이물질의 성분을 분석하고, 죽은 말의 발굽이나 곤충의 표본을 채집해 박물관에 보내기도 한다. 섬에는 500여 마리의 야생마가 서식하고 있는데, 루커스는 야생마들을 구분하려고 공책에다 말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 넣었다. 그려 넣고 보니 얼굴이 모두 달랐다. 이름 없는 야생마들이지만, 이들은 루커스의 공책 속에서 하나하나 고유한 개체로 호명된다. 공들여 관찰하고 기록한 덕분에, 섬의 말이 없어지면 대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다. 어느 구역으로 이동했는지, 왜 이동했는지도. 성큼성큼 거닐며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는 루커스의 행동은 마치 손바닥 속을 헤아리듯 섬을 낱낱이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자연, 무모한 도전들로 이루어진 낮, 낮이 물러간 뒤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외로운 밤, 고립을 자처하기 위해 포기해야 했을 삶의 또 다른 부분들. 그러나 영화는 그 모든 과정에 대한 회고 또한 생략한다. 조이 루커스는 그저 과거의 어느 날 섬에 당도했고, 섬에 적응하며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내가 첫 문단에 쓴 내용들도 대부분 나중에 구글링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사실 카메라가 호기심을 가지고 비추는 것은 인물의 생애나 환경보전의 당위적 서사보다는 섬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순간들, 루커스의 손이 빚어내는 일상의 이미지들이다. 이를테면 햇살 좋은 날 창문에 걸어 놓은, 쓰레기 조각들로 만든 예쁜 모빌 같은 것. 2.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쓰레기에 관한 영화다. 세이블 섬의 해안으로는 매일 수많은 쓰레기가 파도에 실려온다. 루커스는 해변에 나가 수거해온 쓰레기를 깨끗이 씻고 햇볕에 말려 종류별, 소재별, 브랜드별, 색깔별로 분류한다. 루커스가 수행하는 연구는 북대서양에 떠 있는 이 외딴 섬의 느리고 미세한 변화를 체험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먼 곳에서부터 해안가로 밀려오는 자본주의적 삶의 파편들을 관찰하고 집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고무풍선에 인쇄된 이름과 문구, 깡통과 플라스틱 뚜껑 따위에 달린 라벨, 각종 파티 및 행사의 흔적과 평범한 가정의 소비 품목들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색깔과 소재가 유행하고 있고, 어떤 단어가 지갑을 열게 만들며, 무엇이 사람들을 즐겁게 또는 슬프게 만드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해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김지혜 환경과학연구자의 논문 「해양쓰레기와 함께 세계 짓기」를 읽으면서 다시금 < 고독의 지리학 >이 내게 남긴 파문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최근의 해양쓰레기 연구는 해양쓰레기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없애야 할 문제적 사물 혹은 단순한 골칫거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세계를 구성해 나가는 삶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인류세 이후의 이 ‘얽혀 있는 삶’ 속에서, 인간은 인간 이외의 것들과 작든 크든 혼종의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세계가 바다로 연결되어 있기에 해양쓰레기가 특정 지역의 문제일 수 없듯이, 세이블이라는 작은 영토 위에서도 생명체들은 잎맥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동식물 모두가 플라스틱 쓰레기, 유출된 석유, 침식작용과 같은 지형의 변화와 함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조이 루커스도 이제 그 일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섬에 흘러 들어왔다가 섬과 함께 나이가 들어 어느새 할머니가 된 그의 머리칼은 바람에 나부끼는 섬의 억새와 똑같은 은빛이다. 어떤 장면들은 아무 대사도 없이 그저 이 은빛의 일렁임과 반짝임만을 담고 있다. 바람과 태양은 섬 안의 모든 것에 공평한 손길을 준다. 화면이 한 컷 한 컷 넘어갈 때마다 섬이 살아 숨쉬는 하나의 생태계라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 보인다. 죽은 말의 몸 위로 바람이 분다. 루커스가 그 사체를 해변에 묻어준다. 그러면 토양으로부터 양분을 얻어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그 풀을 또 다른 말이 뜯어먹는다. 영화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을 들리게 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딱정벌레가 걸어가는 소리. 달팽이가 기어가는 소리. 평소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사실은 계속 존재하고 있었던 그 소리들이 ‘영화음악’의 지위를 부여받고 무대에 오른다. 달팽이가 기어가는 소리를 작곡한 것은 달팽이라는, 그 귀엽고도 엄연한 사실. 카메라는 섬 위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소중하게 담는다. 그러니 이 영화에 한 사람만 등장한다는 말은 고쳐 쓸 필요가 있다. 해초, 달팽이, 회색 바다표범, 수달, 박쥐, 야생마, 야생마의 똥, 잔디, 언덕, 해안의 모래알, 어둠이 내리면 검은 모래 장판 위로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 그리고 삶과 죽음, 모든 것의 순환을 품고 있는, 언젠가는 그 자신도 흔적으로 돌아갈 모래섬. 이들 모두가 이 섬의 주인이고, 따라서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3.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는 오물을 “자리에서 이탈한 존재”라 불렀다고 한다. 쓰레기란 그 형태와 성질이 그대로이더라도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거나 함께여야 할 존재들과 함께 있지 않는 순간부터 쓰레기로 규정되는, 이질적인 상태의 사물인 것이다. 그런데 세속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이 루커스 역시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한 존재다. 멀쩡한 대학 시간 강사 일까지 그만두고 혈혈단신 섬으로 들어가 평생을 모래 위의 동식물들과 함께 보낸다는 게 평범한 삶의 경로는 아닐 테니 말이다. 이상하게도 지난해 본 영화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에 관한 영화가 유독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사로잡힌 사람. 무언가에 천착하다 못해 그 대상에 자신의 삶이 거의 겹쳐지다시피 한 사람. 이를테면 얼어붙은 설산으로 돌진하다 실종된 사람(알피니스트: 마크-앙드레 르클렉), 또는 폭발하는 용암을 쫓아다니다 화산재에 뒤덮여 죽은 사람(불 속의 연인: 카티아와 모리스 크래프트를 위한 진혼곡). 빙벽, 설산, 파도, 용암, 번개에 대한 제어할 수 없는 매혹은 사실 같은 게 아닐까? 그런데 위험이 도사리고 있거나 대단히 위용 넘치는 경관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세이블 섬에서도 나는 비슷한 종류의 이끌림을 느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죽음이라고 하는, 언어로 내뱉고 나면 너무나 간단해지고 마는, 우리 삶에 내재한 비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존재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침식작용 같은 것을, 짐작건대 루커스는 섬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홀리듯이, 혹은 저항하듯이, 그 세계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영화에서 두 개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대비 또한 인상적이다. 해안 가까이에서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순환 속에 계속해서 새롭게 나타나는 인공물질과 분해 불가능한 플라스틱들이 있다면, 섬 안쪽에는 시간의 비질을 고스란히 받으며 천천히 소멸해가는 사물이 있다. 루커스가 정착 초기에 나무를 잘라 짓고 그 안에서 살았던 옛집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낡고 거의 무너져내려 지금은 뼈대만 남은 쇠락한 풍경이 되었다. 폐허를 훑는 카메라의 시선에 몇 줄기의 바람이 걸린다. 텅 빈 집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바람은 말없는 증언자, ‘문명’이라는 세계 또한 유한하다는 사실을 이따금 상기시켜주는 존재 같다. 세이블 섬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영화란 그런 것 아닐까? 언젠가는 소멸할 무언가를 붙잡아 기록하겠다는 환상. 그 진심. 4. 그래서 다시 쓰자면, 이 영화는 시선에 관한 영화다. <고독의 지리학>을 한평생 환경 보존에 헌신한 여성의 이야기로 읽으면 영화는 아주 건전한 두 시간짜리 자연(혹은 인물) 다큐멘터리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매혹당한 두 인간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 편이 더 좋다. 그러면 이 고요한 산책과도 같은 시간 속에 소리없이 들끓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또한 보인다. 러닝타임 내내 화면에는 루커스의 앞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최대한 조용히 뒤를 따를 뿐 앞지르거나 섣불리 말을 걸어 돌려세우지 않는다. 그러다 딱 한 번 정면으로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이 있다. 루커스가 아직 20대였던 시절, 누군가의 캠코더로 촬영된 과거의 한 순간이다. 모래가 유실되어가는 섬을 지켜야 한다며 열정적으로 발언을 하던 젊은 루커스는 인터뷰어로부터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잠시 카메라를 응시하다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 섬을 사랑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장면이 있다. <고독의 지리학>이 전주영화제에서 국내 첫 상영되었을 때, 영화가 시작하기 전 젊은 여성의 얼굴이 스크린에 떴다. 재클린 밀스 감독이 보내온 인사 영상이었다. 감독은 말했다. “이 영화는 정말 애정으로 만든 작업입니다.” 두 개의 하릴없는 고백을 지구 반대편에서 수십 명이 컴컴한 동굴에 모여 앉아 지켜보고 있는 광경. 그건 확실히 조금 이상한 감동이었다. 재클린 밀스 감독은 네 살 때 뉴스를 보고 루커스와 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들을 담은 영화를 일평생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영화들을 볼 때마다 매혹 그 자체만이 아니라, 매혹당한 사람에게 매혹당한, 기록자의 생에 대해서도 곱씹어보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삶을 부지런히 쫓고 수집하고 잘라서 정성스레 이어붙이는 작업에 대해서. 직접 돌진하는 대신에, 몇 겹의 렌즈와 필터와 녹음기를 경유해 이 불가해한 세상을 대면하고 이해하려 하는 삶의 한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앞에 선 한 무리의 ‘우리’에 대해서. 여기에 이르면 <고독의 지리학>이라는 난해한 제목도 모종의 설득력을 얻는다. 고독은 외따로 떨어진 홀로의 감각이고 전혀 지리적인 것이 아니지만, 그 감각과 조우한 영화는 필연적으로 어딘가로 향한다. 섬을 구석구석 훑고, 섬을 한 바퀴 돌고, 이윽고 섬을 떠나, 스크린의 표면을 뚫고, 영화의 바깥으로 기나긴 별자리를 만든다. 그 허구의 지표 위에 잠시라도 머물렀던 사람은 별자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점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의 점들은 이상하게도 전혀 고독하지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