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의 여왕
- 감독
- 아이바 토모아키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오가와 아사미, 요시오카 무츠오, 다나카 야스노리, 이나바 료이치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소피아 코폴라, 2003)는 소통을 통해 위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도쿄라는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삶의 고독 속에서 표류하는 외로운 두 미국인 남녀의 정서적 교감을 그린다. 중년 배우 밥(빌 머레이)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이질감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오랜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의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연락은 그에게 공허함과 권태로움만을 안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사진작가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 도쿄에 머물고 있지만, 홀로 보내는 나날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두 인물은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단절을 겪으며 심리적 고립에 빠져 있다. 영화는 초반 엘리베이터 장면부터 밥을 외부인으로 설정하는 위트 있는 연출의 묘미를 보여준다. 좁은 공간 안에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 무리 사이 홀로 우뚝 솟은 밥의 대비되는 신체 비율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아무런 대사 없이 그가 완벽하게 ‘이방인’이라는 걸 보여준다. 구도와 비율만으로 메시지를 센스 있게 전달하는 장면이다. 밥이 홀로 머무는 호텔방은 고독과 침묵이 가득하다. 지극히 미니멀하고 한없이 적막함이 느껴지는 온기 없는 방이다. 무기력한 밥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무심하게 정지한 상태로 여백을 많이 둔다. 배우의 체구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밥의 시선으로 보이는 일본 TV 프로그램 속 기이하고 과장된 이미지들은 그의 문화적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샬롯이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창밖 도쿄 도심은 차갑고 건조하다. 넓게 펼쳐진 도심뷰 창문 앞에 홀로 배치된 샬롯의 뒷모습 샷들은 창문 너머 세상에 대한 동경이거나 혹은 철창 같은 호텔방을 벗어나 해방을 갈망하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성 꼭대기에 갇혀 있는 고립된 공주처럼 창밖 배경과 인물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고독감은 증폭된다. 방 안에 흐트러진 옷가지와 정리되지 않은 소품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그녀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하다. 종이꽃으로나마 방 안을 꾸미려는 샬롯의 행위는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샬롯이 우연히 꽃꽂이 수업 공간에 들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꽃 한 가지를 꽂는 장면은 소소하지만 묘한 울림이 있다. 이 장면은 비언어적 교감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3 )", IMDb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샬롯의 시선으로 보이는 혼잡한 도심 풍경을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불안하게 보여준다. 건물의 파사드 광고에 등장하는 공룡들의 이미지는 그녀가 있는 공간을 더더욱 낯설고 모호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홀로 지하철을 타고 찾아가는 신사 또한 서양인에게는 낯설기만 한 공간일 것이다. 영화는 뜻을 알 수 없는 일본어 네온간판들이 가득한 번화한 야경 거리, 파친코 상점, 가라오케 같은, 이들에게 더욱 낯설게 다가올 공간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캐릭터의 감정적 소외를 컬러풀한 조명의 시각적 요소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언어의 청각적인 요소에 대비시킨다. 도시의 혼잡함과 인물의 고요함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그들의 정적인 내면을 부각시킨다. 화려하고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도쿄라는 배경은 영리하면서 감각적인 선택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설정했더라도 이야기는 성립되었겠지만, 의사소통도 감정소통도 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상태의 이방인으로 만들 수 있는 배경을 택한 거다.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낯선 문화 속에서의 혼란과 외로움의 정서가 배경과 어우러져 한층 더 밀도 있게 시너지를 낸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IMDb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단절된 상태였던 이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긴밀하게 느낀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대로 맺어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이제 프레임 속에서 그들은 각자 홀로가 아닌 둘이 함께 존재한다. 이들이 소통해 나가면서 서구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색하고 불편한 낯선 나라의 문화는 다른 시선으로 바뀐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유쾌하게 도시를 경험하며 즐긴다. 홀로 경험하는 도쿄는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둘이 함께 하는 도쿄는 새롭고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지치고 무기력한 눈으로 바라보던 낯선 풍경은 술에 취해 혼미한 시선으로 몽환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맞이하는 해방감과 설레임이 도쿄거리의 흐릿한 불빛들과 함께 자유로이 부유하는 듯 보인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외피를 썼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성 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모호한 플라토닉 우정에 가깝다. 한 침대에 누워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샬롯의 발에 살며시 올려놓은 밥의 손은 묘하게 에로틱하면서도 숭고함마저 깃든다. 무언의 위로와 정서적 교감이 정점으로 느껴지는 최애 장면이다. 마침내 이들은 이렇게 숭고하게 그토록 원하던 깊은 잠에 들며 평온한 밤을 맞이한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이들은 계속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서로가 외롭지도 권태롭지도 않기를 바랄 것이다. 진솔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우수에 찬 마지막 시선은 서로를 보듬어주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이들이 작별하는 엔딩의 도쿄 도심 풍경은 이전에 보여줬던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전의 도심이 화려한 간판 불빛에 눈부시고 정신 없이 번쩍였다면, 엔딩의 도심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감성이다. 동시에 두 인물의 정서적 변화도 느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말을 아낀다. 하지만 우리는 설정된 무드의 공간 안에 배치된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탁월하지만 침묵 속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언어 대신 이미지로 말하는 느낌이다.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인물의 공허한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연출한 영화라는 생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파이크 존즈의 < 그녀(HER) >(2013) 역시 인물의 감정선을 반영한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는데,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그 파동이 강하게 전달된다고 느꼈던 소피아 코폴라의 초기 작품을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공간이 단지 보기 좋은 배경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내러티브와 연계되어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서사의 일부로 작용할 때 미장센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런 미술을 지향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마친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서성경(미술감독) l 이야기에 숨결을 더하는 미장센을 지향합니다. < 사바하 >(장재현, 2018), < 가장 보통의 연애 >(김한결, 2019), < #살아있다 >(조일형, 2020), < 원더랜드 >(김태용, 2024), < 파묘 >(장재현, 2024) 미술감독.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금녀의 벽이 여태껏 깨진 적이 없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 상임지휘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우상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사사 받고, 천부적인 재능과 악마 같은 권력욕을 과시하며, 클래식 스타로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는 러브콜들에, 일거수일투족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그녀는 ‘교향곡 5번’만 연주하면 꿈에 그리던 말러의 교향곡 전곡 지휘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절정의 순간, 클래식계에서 제명당한 한 젊은 여성의 자살과 성추문 미투(Me Too) 그리고 새로 뽑은 단원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리며 급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한다. 흡사 실제 음악업계 인물의 추락을 담아낸 듯 생생한 디테일과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토드 필드 감독의 16년 만의 연출 복귀작 < 타르 >는 굴곡진 서사와 드라마틱한 비극 대신 섬세한 인물 직조와 그 배경을 리얼하고 꼼꼼하게 스케치하며 권위적이고 욕망이 꿈틀대는 예술의 뒷면을 고스란히 까발린다. 가상의 음악가를 다루는 만큼 이를 진짜처럼 연기해 낼 주연배우와 진짜 음악을 구현해 낼 음악감독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토드 필드는 영화 제작을 진행하며 캐스팅 1순위로 주연 배우인 케이트 블란쳇을, 그 다음으로 음악가 힐두르 구드나도티르를 섭외하는데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1982년 아이슬란드에서 출생한 힐두르는 영화 초반 실명으로도 잠깐 언급되는데, 클래식과 영화음악, 아방가르드 사운드를 넘나들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여성 음악가 중 한 명이다. 대중문화에 큰 영향력을 지닌다는 영미권의 4대 트로피 EGOT(에미, 그래미, 오스카, 토니) 중 EGO를 달성한 채 토니상만 남겨두고 있는 그녀는 음악가 집안(아버지는 작곡가이자 클라리넷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 남동생은 밴드 음악을 하며, 남편은 음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첼로에 빠져들었다. 아이슬란드 예술원과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작곡 및 뉴 미디어를 전공한 힐두르는 연극과 무용, 공연을 위한 곡들을 썼고, 최근 오스카를 수상하기도 한 하우슈카나 <다크>의 벤 프로스트, < 파친코 >의 니코 뮬리 등 여러 아티스트들과 밴드에서 연주 및 녹음을 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아울러 첼리스트로 활동하는 틈틈이 네오 클래식과 힐링 뮤직, 아방가르드한 현대음악 사이에 위치한 독특한 자신의 솔로 앨범 5장을 발표하며 좋은 평가도 얻었다. 2011년부터는 영화음악으로 저변을 넓혀 핀란드와 브라질, 슬로바키아, 터키 등 여러 국적의 작품들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게 된 건 같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영화음악가 요한 요한슨이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일련의 작품들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힐두르 구드나도티르 힐두르는 이미 2006년 요한 요한손이 작업한 곡들이나 앨범 그리고 힐두르 자신의 솔로 앨범에 참여하며 여러 차례 교류한 바 있는데, 공감각적인 엠비언트가 몽환적으로 발휘되는 드론 사운드에 중후하면서도 매혹적인 어쿠스틱 음색의 스트링(첼로)을 조화시켜 음악적 방향성과 색채를 공유했다. 요한 요한손이 안타깝게 약물 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그가 진행하려 했던 시카리오의 속편 <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와 TV시리즈 < 체르노빌 >을 이어받아 호평을 받았고, 공동으로 작업하던 <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 >까지 마무리 지으며 명실상부 그의 사운드를 계승한 새로운 음악가의 출발을 알렸다. 여기에 스판덱스 쫄쫄이 유니폼이나 입고 돌아다니는 유치한 슈퍼히어로라는 장르의 편견과 한계를 부셔버리고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 조커 >의 음악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 되는 찰리 채플린의 아이러니와 마틴 스콜세이지의 비정하고 시니컬한 기운을 잔뜩 물려받은 이 고전적인 영화는 힐두르의 슬픔을 잔뜩 머금은 스산한 사운드로 광기어린 애수의 초상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조커>로만 힐두르는 20개가 넘는 음악상을 휩쓸었으며 골든 글로브 최초로 음악상을 단독으로 수상한 여성 작곡가이자, 오스카 음악상이 단일부문으로 합쳐진 이후 최초 여성 수상자고, 역대 오스카에서 3번째로 음악상을 수상한 여성 작곡가가 됐다. 토드 필드는 음악을 리허설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음악을 작곡하는 건 어떤 것이고, 그 과정에서 왜 좌절하게 만드는지, 그 심리적이고 정서적 측면을 샅샅이 담아내고 싶었기에 <조커>로 날개를 단 힐두르 구드나도티르가 모든 제작 과정 전반에 관여하길 바랐고, 그 열의와 진심에 반해 그녀는 자신이 맡을 예정이었던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암스테르담>에서 하차하면서까지 <타르>에만 1년이 넘는 시간을 집중해 매달렸다. 힐두르는 <타르>에서 보통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3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하나는 이른바 ‘템포 매핑’이라 부른 - 영화와 캐릭터 간의 사운드 동기화를 이루는 - 비공개적인 음악 과정을 거쳤고, 다른 하나는 리디아 타르가 극 중에서 작곡하던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마지막은 영화를 위한 진짜 스코어 작업이었다. 본 영화 내에서나 앨범에서 결코 들을 수 없는 ‘템포 매핑’ 작업은 상당량의 곡들이 상황이나 캐릭터에 맞는 BPM과 템포로 만들어져 리허설과 세트장에서 배우들이 착용한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고, 캐릭터 내면의 리듬을 음악적으로 안내하고, 이를 통해 배우들이 몸짓 언어로 구현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이는 음악을 전공했고,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기도 했던 토드 필드 감독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자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 작업을 두려워하지 않는 힐두르였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극중에서 리디아 타르는 딸에게 바치는 곡을 작곡하느라 안 풀리는 멜로디를 잡고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바로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메인 테마로 등장하는 “For Petra”다. 힐두르는 대본에서 이 장면을 읽자마자 상승 기조의 멜로디 단서를 바로 떠올렸는데, 작곡가이자 음악가가 외부 세계의 소리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시켜서 음악으로 완성하는지, 또 그 집착이나 탐구의 과정 속에서 음악이 되기 전의 소리들과 마주할 수 있단 점에서 인상적인 결과물로 다가온다. 물론 영화상 리디아 타르는 결코 완성하지 못하지만, 후술할 컨셉 앨범에선 첫 단서였던 1분 언저리의 보컬곡과 함께 로버트 에임스가 지휘하고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8분에 이르는 대곡으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유령처럼 들리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40여분에 이르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가는 스코어가 있다. 거의 후반에 몰려있는데 관객은 거의 알아차리기도 힘든 정도로 희미하고 잠재의식 수준에서 작동하는 공감각적인 사운드디자인으로, 매우 건조하고 느리지만 불안하고 섬뜩하며 흥미진진한 영화에 현재적이고, 정서적인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는 영화에서 다루는 권력형 갑질과 성추문 등 불편하고 민감한 요소들을 관객의 입장에서 자극적으로 소비하거나 부각시키지 않고, 온전히 리디아 타르가 직접 마주하는 체험적 측면에 주력한 것이다. 하지만 오스카를 비롯한 여러 시상식 기준에 적합하지 않아 음악상 후보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런 연유로 <타르>의 사운드트랙은 정확히 말해 사운드트랙이 아니다. 리디아 타르가 노란 딱지로 유명한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만약 앨범을 냈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컨셉 앨범인 동시에(그래서 이 앨범에 앞서 얘기한 “For Petra”의 완성곡이 담긴 이유다!), 리디아 타르의 실시간 플레이리스트며, 토드 필드와 힐두르가 원했던 “클래식 음악을 준비하는 작업들의 모든 지저분함”을 담고 있는 체험형 실황 앨범이기도 하다. 그래서 케이트 블란쳇이 직접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5번의 완벽한 연주가 아닌 리허설들만 일부 수록됐고, 줄리어드에서 인상적인 수업을 하며 직접 시범을 보인 바흐의 “평균율 1번 프렐류드”나 임시 단원으로 뽑힌 첼리스트(소피 카우어)가 어린 시절 연주했던 곡이라며 보내 준 영상 속의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 그리고 영화의 시작을 여는 페루의 주술사이자 치료술사 노래나 오래된 뮤지컬 넘버에, 리디아 타르가 만들었다는 가정 하의 힐두르 구드나도티르가 작업한 결과물과 그 단서들로 다시 재구성된 3악장짜리 현대음악 소품까지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 영화의 세계가 현실 속으로 확장돼 발휘된 비장의 OST인 셈이다. 이 앨범만으로 온전하게 <타르>의 음악을 모두 즐길 순 없지만, 적어도 리디아 타르가 어떤 음악 세계에 살아왔고, 또 추구해가고 있는가 가상의 방향성을 생생하게 제시하고 전달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힐두르 구드나토티르는 2024년 자신에게 놀랄만한 명성을 안겨다 준 조커의 속편 <조커: 폴리 아 되>로 다시금 영광을 재현할 준비를 하고 있다. Track List 1. For Petra (Vocal Version) - Hildur Guðnadóttir 2. Mortar - Hildur Guðnadóttir 3. Introductory Words 4. For Petra (Recording Session) - Hildur Guðnadóttir 5. Hildur's Impressions 6. Tár: I. Largo - Hildur Guðnadóttir 7. Tár: II. Allegro - Hildur Guðnadóttir 8. Tár: III. Moderato - Hildur Guðnadóttir 9. Symphony No.5 in C-sharp minor / Pt.1: I. Trauermarsch & II. Stürmisch bewegt (Rehearsals) - Gustav Mahler 10. Symphony No.5 in C-sharp minor / Pt.3: IV. Adagietto (Rehearsals) - Gustav Mahler 11. Introductory Words (Recording Session) 12.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IV. Allegro (Recording Session/First Take/Excerpt) - Edward Elgar 13. Control Room Talk (Recording Session) 14.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IV. Allegro (Recording Session) - Edward Elgar 15. Applause (Recording Session) 16. 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 I. Adagio – Moderato (Recording Session/Excerpt) - Edward Elgar 17. Here's That Rainy Day - Jimmy Van Heusen / Johnny Burke 18. Prelude in C major, BWV 846 from The Well-Tempered Clavier (Lesson/Excerpt) - Johann Sebastian Bach 19. Lydia Tár Field Recording 20. Cura mente - Fernandez
하라 카즈오 감독이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걸 선배 감독들로부터 배웠다”고.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의 신작 <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했던 말이다. < 극사적 에로스 >(1974), <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1987) 등을 제작한 일본의 대표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대담은 이렇게 시작했다. 올해 72살인 그는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영화를 제작했고, 이 대담을 준비하며 다시 보게 된 그의 전 작품들과 최신작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에 대한 나의 단상을 기술하려한다. 수년 전, 외국의 여러 감독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하라 카즈오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중 한 감독이 그의 영화 <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의 주인공 오쿠자키 겐조를 이야기하면서, “아마도 하라 감독은 여전히 오쿠자키 겐조 같은 사람을 수년째 찾고 있을 것이라고” 했고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음으로 이 말에 반응했다. 추측컨대 당시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인물 중심의 영화만을 제작하는 하라 카즈오 감독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등장인물에 큰 비중을 두거나 혹은 이에 크게 의존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듯했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배경으로, 주체적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 극사적 에로스 >(1974)의 주인공 미유키가 그랬다. 전쟁의 피해자로서 천황제 폐지를 요구하며 천황에게 파친코 알을 던지는가 하면, 전쟁의 굶주림 당시 인육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를 처벌한 상관을 찾아가는 <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1987)의 오쿠자키 겐조는 다큐멘터리영화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주인공일 것이다. 요즘은, 같은 인물을 보인다 하더라도 마치 제작자가 그 사람을 다 알고 있다는 전제, 혹은 그러한 태도를 견지한 채 시적인 혹은 에세이 방식으로 이야기를 직조하고 이를 통해 어떤 정서를 전달하려는 영화들이 다수를 이룬다. 특정 등장인물을 통한 이야기의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형태의 영화들이 다수이다. 그리고 이 폐쇄적인 혹은 경직됨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시간의 묘사가 그 인물과 분리된 채 영화적 장치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흐름이라면 하라 카즈오 감독의 인물들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과한 이야기가 되기 쉽다. 더불어 그가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은 촌스럽거나 혹은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서사구조로 읽히기 쉽다. 그래서인지 주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온 나에게 하라 카즈오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큰 질문이었다. 그의 영화들은 대상의 이야기를 위해서 대상을 대상화하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방식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어떤 식으로 영화의 대상들과 관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물론 이야기의 소재나, 문제의식,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재현방식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과연 내 이야기를 위해 대상들과 대등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대변자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 기록영화 감독은 결국 인물들의 이야기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는가?’ 등의 고민들은 끝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등장인물의 대상화 문제는 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제작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하고 싶은 문제일 것이다. “일본이라는 사회는 지루하고 재미없다. 나는 그 지루함을 날려버릴 만한 인물을 찍고 싶다” 재미없는 일본에는 뭔가 충격이 필요하다, 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 하라 카즈오 감독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을 선택하고 그려낸다. 먼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의 카메라, 카메라 뒤의 그, 그리고 카메라가 가지는 권위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찍고 찍히는 사이의 대등한 관계, 혹은 찍고 찍힌다는 계약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동지적 관계가 아닌 계약관계에 있는 이들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 채 탐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하라 카즈오 감독은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일본 사회, 혹은 이를 지탱하고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폭력적인 상황들과 부조리함을 영화의 모티브로 삼는다. 하지만 보여주고 들려주는 영화는 이 주적을 정면으로 향해있지 않다. 오히려 이 주적과 치열한 갈등 관계에 있는 등장인물들을 대면한 채 제작자와 계약관계에 있는 그들의 내부 모순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누구나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들을 부정하고 불확실한 무엇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부 모순의 실체를 추적해가는 과정에, 인물들과의 긴장감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결국 감독의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불확정적이고 심지어 모호하기까지 한 하라 카즈오의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을 정의하는 공간과 시간의 현재화된 사회적 문제가 큰 질문으로 다가오게 된다. 영화를 제작하다 보면 여러 질문들과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메시지를 잘(?) 숨겨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긴다. 나에게 창작이란 바로 이 구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등장인물이나 사건/상황을 정면 돌파해야 하는 순간이 생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매우 수줍거나 수동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 <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는다. 러닝타임인 3시간 30분 내내 시종일관 과감하게 정면 돌파다. 영화는 고도의 국가 경제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석면의 유해함을 숨기고 무책임함으로 일관했던 일본 정부와, 이에 저항하는 오사카 센난 지역 석면 피해자들에 대한 11년의 투쟁기록이다. 보통이라면 피해자들의 아픔과 현실을 그리고 이 싸움의 절심함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국가권력의 폭력을 논리적으로 추적/고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는 최전선에서 투쟁하고 있는 각각의 인물들에 집요하게 집중한다. 처음으로는 이 싸움을 대하는 각 개인의 생애사가 들려진다. 이어서 이 싸움을 대하는 피해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을 한다.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소송의 필요성을 부정하는가 하면, 석면 피해 당사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던 가해자이기도 하며, 다소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투쟁지도부의 모습, 과격시위를 반대하며 법과 원칙을 지키자는 변호사들, 형식적인 정부의 사과를 눈물로 받아들이는 인물들까지,,, 생동하며 충돌하는 내부의 이야기가 긴 투쟁의 역사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이는 11년의 투쟁과정을 성실하게 기록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을 자극하고 운동의 방향에 대해 논쟁을 불사하는가 하면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논쟁유발자로서의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관객들은 이런 영화적 장치를 통해 고통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왜 이러한 내, 외부의 갈등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지,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문제인지 등, 그 근원의 질문을 갖게 되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었던 일본의 석면 기계들이 한국에 들어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었고 현재 인도네시아로 넘어가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자본과 국가 시스템의 역겨움에 분노하게 된다. 인물 중심의 영화가 지엽적이고 뻔할 것이라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그 영화가 인물 중심의 영화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인물의 깊이에 다가갈 용기, 다시 말해 세상을 논쟁하고 대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주류질서를 부정하며 절대 진리라 여겨지는 세상의 많은 현상과 사유방식을 부정했을 때 만들어지는 존재의 모호함, 이는 새로운 질문들의 시작이 된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과 그 다양함, 그리고 그 심연의 ‘희,노.애.락’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그려낸 하라 카즈오 감독의 영화가 이를 증명해줬다. 부산국제영화제 대담을 준비하면서 큰 기대를 가지고 20여 가지 이상의 질문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도 제대로 물어보지 못한 채 1시간가량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청년의 에너지를 넘어서는 기운이자 자신감이었다. 자신의 영화제작 스타일을 신뢰하고 강하게 애정하는 하라 카즈오 감독과의 만남은, 현실 제작환경의 어려움과 삶의 비루함 앞에서 언제나 모종의 타협을 생각하는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인지 12년째 기록하고 있다는 감독님의 ‘미나마타’병 피해자들에 대한 다음 이야기가 더더욱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