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트
- 감독
- 이주아
- 제작년도
- 2012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한국영화 황금기 20년의 역사를 함께 하다 셀은 2003년 6월25일 황효균·곽태용 대표가 설립한 특수분장 업체,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이다. 두 대표는 세포의 기본 단위이자 배터리의 최소 에너지 단위를 뜻하는 의미를 담아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한때 같은 특수분장 회사에 다녔던 동료인 두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 쓰리, 몬스터 > 중 단편 <컷>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 이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김용화, 나홍진 등 한국영화의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이 신뢰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다. 분장 및 더미·애니매트로닉스·특수소품·세트팀 등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특수분장 업체 셀의 현재 인원은 총 20명으로 해마다 약 10여개 이상의 작품에 참여해 지금까지 170여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 친절한 금자씨 > < 도둑들 > < 부산행 > < 신과 함께 > < 기생충 > 등의 주요 미장센을 상상의 영역에서 물리적 실체로 구현해낸 셀의 핵심 가치는 분장과 소품, 애니매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위한 테크니컬 아트의 전천후를 담당하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역량이다. 회화를 전공한 황효균 대표는 분장 및 더미, 공학을 전공한 곽태용 대표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전문 분야다. 두 대표의 진두지휘하에 더미 전문가인 이희은 이사, 실장 3인(박영무, 박신영, 이효응), 팀장 2인(이고운, 박소연) 외 12명의 팀원들이 3개 층으로 구성된 메인 작업동에서 협업하고 있다. 황효균 대표는 24년, 곽태용 대표는 22년 경력의 베테랑이며 이희은 이사를 비롯한 실장급 직원들 모두 1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작업동 디자인실에서 작업중인 팀원들 셀 스튜디오는 설립 당시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행, 현재 주 40시간 일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영화 현장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녁과 휴일을 보장해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병행하며 작업에 섬세히 몰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국내 여타 특수분장 업체와 비교해 직원 수가 많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산행>과 <킹덤>을 거쳐 SF 장르에 도전하다 설립 이후 긴 시간 쉼 없이 성장해온 셀은 김지운 감독의 < 달콤한 인생 >에서 총격 신 더미를, < 인류멸망보고서 > 중 <천상의 피조물>에서 로봇 캐릭터를 구현하면서 역량을 한층 강화했다. 카이스트 로봇업체에서 억대로 책정한 로봇을 셀은 그보다 낮은 비용, 양질의 퀄리티로 결국 완성해냈다.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한 <부산행>에서 보여준 최초의 K좀비는 < 반도 >를 거쳐 넷플릭스 < 킹덤 >에 이르면 백성 출신 좀비와 양반 출신 좀비,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왕 좀비 등으로 조선 좀비의 디테일을 새로이 창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밖에도 <기생충>의 수석과 털이 살아 있는 복숭아, < 옥자 >의 돼지 옥자, < 엑시트 >의 유해가스, < 암살 >에서 나이 든 염석진의 축 처진 뱃살 등이 모두 셀의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속에서 본격적인 업력을 쌓았고, 스릴러 강세 속에서 전에 없이 완성도 높은 액션 신의 원천으로 자리했던 셀은 이제 < 승리호 > < 고요의 바다 > < 더 문 > < 정이 > 등을 통해 SF 장르로 새 무대를 개척하고 있다. 셀의 일원들은 할리우드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실력에 자부하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2019년 이후 OTT 시리즈 작업 의뢰가 급증해 현재 < 커넥트 > <기생수>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OTT 시리즈 < 지옥 >에 쓰인 괴물의 미니어쳐 *CELL의 주요 작업 <쓰리, 몬스터> 중 <컷>의 손가락 <친절한 금자씨>(2005)의 반인반견 백선생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의 말 < 도둑들 >(2012)의 마카오 박(김윤석)이 변장한 얼굴 < 늑대소년 >(2012)의 늑대소년 <인류멸망보고서>(2012) 중 <천상의 피조물> 인명 <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의 이병헌(광해) 더미 < 미스터 고 >(2013)의 고릴라 링링 < 암살 >(2015)의 배우 이정재(염석진) 분장 < 부산행 >(2016)의 좀비 < 대호 >(2016)의 호랑이 < 로봇, 소리 >(2016)의 로봇 소리 <옥자>(2017)의 옥자 <기생충>(2019)의 수석과 복숭아 <반도>(2020)의 좀비 시리즈 < 스위트홈 >(2020) 속 괴물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의 우주복 <정이>, 시리즈 <커넥트>, <기생수> 등 회의동 2층의 회의실 벽면: 그간 CELL에서 작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동선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북부에 자리한 덕이로 172번길 4-72에 위치해 있다. 남측에는 고양종합운동장, 북측에는 운정신도시 아파트단지, 동측으로는 3호선 주엽역과 경의중앙선 탄현역에 접근하기 용이하다. 인접한 건물로는 고양예술고등학교가 있다. 2003년 설립한 셀은 인근의 소규모 스튜디오를 이용하다 2020년 전용 건물 준공을 마쳤다. 1320m² 부지에 2개동으로 구성된 990m²의 건물이 현재의 셀 스튜디오다. 셀 스튜디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전경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평화로운 시골의 풍경으로, 그 아래 마당에는 주위의 목가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거나 피칠갑한 더미들이 햇볕 샤워 중이다. “셀 스튜디오의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향후 1년 내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날 한국영화의 밑그림을 절로 그려보게 된다”(<씨네21>, 2016년, 셀 스튜디오 특집)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더미가 방문객을 반기는 셀의 마당을 지나면 각각 작업동, 회의동으로 불리는 2개 건물이 연결된 채 마주보고 있다. 셀의 직원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작업동이다. 1층은 크게 기계장비실, 용접실, 자재실로 구분된다. 밀링, 선반, 알곤 용접기, 드릴프레스, 절단기 등 중량감 있는 주요 장비들이 모인 공간이다.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주로 곽태용 대표가 관리한다. 1.5층에는 기계작업실, 3D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물질 없이 깔끔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채색실은 환풍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작업동 1층 기계 및 애니매트릭스 작업실 전경 2층은 황효균 대표가 관장한다. 보다 정교한 작업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등으로 쪼개진 공간에는 온갖 팔레트와 실리콘, 붓, 알코올, 접착제, 리무버, 프라이머 등등이 조합된 특수분장 가방이 펼쳐져 있고 더미 채색, 더미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심는 작업, 괴생명체 등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은 주요 작업물 및 조형에 사용하는 몰드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2층 테라스를 따라 회의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그동안 셀이 수상한 주요 상패를 모아둔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등이 있다. 1층은 식당과 휴게실로, 3층은 자료실로 사용된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 172번길 4-72 2. 설립일: 2003년 6월 25일 (2015년 7월 17일 법인 전환) 3. 대표자: 곽태용, 황호균 4. 규모: 부지 1320m² / 건물 990m² (2개동) 5. 조직 구성: 총직원 20명(공동대표 2인 포함) 6. 공간 구성 - 작업동 1층 - 기계장비실, 용정실, 자재실, 남자화장실 1.5층 - 기계작업실, 3D 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 2층 -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3층 -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여자화장실 - 회의동 1층 - 식당 및 휴게실 2층 -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남녀 화장실 3층 - 자료실 인터뷰: 황효균, 곽태용 대표(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CELL)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황효균(우측), 곽태용(좌측) 대표 김소미 _셀의 설립 배경을 들려주세요. 황효균 _2003년도 새해를 둘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한 2년 정도는 하고 싶은 영화를 해보면서, 밥벌이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었고요. 셀을 만들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디님이나 제작실장님이나 조감독님, 이런 분들이 신작 들어갈 때 새로 생겼으니까 일을 한번 맡겨주신 거죠. 김소미 _두 분이 일하신지 총 몇 년이 되신 거지요? 곽태용 _저는 22년차고. 황효균 _저는 24년차이지요. 김소미 _두 분의 첫 인연은 언제 맺어졌나요? 곽태용 _영화 쪽에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업체에서 일을 배우는 기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거예요. 좀 부족하지만 우리 것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의기투합했던 게 시작이었죠. 초반에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둘이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재료도 찾아다니다 운 좋게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게 된 거죠. 황효균 _저희 사이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인 것 같네요. (웃음) 옛날 20년 전 골방에서 시작했어요. 버는 족족 투자해서, 딱 밥 먹을 정도만 남겨놓고 공간을 꾸려갔죠. 저희는 성격도 서로 참 달라요. 저는 좋게 말하면 꼼꼼한 편이고 곽 대표는 통이 커요. 분야도 다른데, 제가 미술과 분장, 더미 쪽이고 곽 대표는 기계 쪽, 로봇, 하드케이스 등을 만듭니다. 김소미 _공식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된 셀의 첫 작품은 무엇인가요? 곽태용 _개별적인 의뢰를 받고 소품이나 특수 제작물을 제작한 경우들이 앞서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처음 작업하게 된 건 박찬욱 감독님의 <쓰리, 몬스터>죠. 그전에 배고픈 시기도 겪은 터라 사실은 굉장히 열심히 작업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엔 ‘어, 저게 뭐지’ 싶은 새로운 효과를 가미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이 박찬욱 감독님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다음 작품도 박찬욱 감독님과 하게 되고 또 그 작품을 함으로써 김지운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의 의뢰를 받게 되었죠. 초창기에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도 참 절실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황효균 _<쓰리, 몬스터>에 저희 역량을 보여줄 요소가 다양하게 많았어요. 손가락을 잘라서 믹서에 갈아버리는 설정이라든가. (웃음)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몸은 개인데 얼굴은 최민식 배우인 반인반수 소품도 있었죠. 박찬욱 감독님 작품엔 항상 저희에게 큰 숙제 같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에 놓인 인체 일부 모형들 김소미 _셀이라는 이름의 작명 배경도 궁금합니다. 황효균 _멋있는 영어 단어로 이름을 짓고 싶었죠. (웃음) 로봇, 더미, 특수분장 쪽으로 의미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셀이라는 단어가 외자라는 게 특히 좋았어요.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곽태용 _또 배터리의 가장 기본 단위 에너지인 그런 의미도 있거든요. 황효균 _처음에는 회사 설립 후 전화 받을 때 ‘셀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요술공주 샐리’ 아니냐는 말도 듣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름 하나 잘 지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김소미 _두 분이 성격과 전문 분야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이루고 계시네요. 곽태용 _이 일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간단한 특수분장에서 시작해, 분장으로 안 되는 건 더미를 만들고, 또 더미를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더 활용하고 싶으면 거기다 애니매트로닉스를 적용하고. 결국 이게 다 섞여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어야 퀄리티 높은 작업물이 나옵니다. 각각의 세분화된 영역을 한데 모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소미 _테크니컬 아트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비전은 설립 초기에도 명확히 갖고 있던 그림인가요? 황효균 _그렇죠. 예를 들면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병헌 배우의 더미가 나오는데요. 그냥 가만히 있는 더미가 아니고, 독에 중독된 채로 숨도 쉬고 고통스러울 땐 미간을 살짝 찌푸리거나 건초를 태워서 코에 갖다 대면 연기가 코로 빨려 들어가는 식의 설정들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럼 저희는 2층에서는 더미 외형을 만들고 1층에서는 안의 기계 장치를 동시에 만들어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상호보완적으로 작업하는 거죠. 지금은 특수분장팀이 많지만 저희는 외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팀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김소미 _황효균 대표는 분장과 더미 전문, 곽태용 대표는 기계 및 애니매트로닉스 전문으로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개척하기까지 두 분 각자의 전공과 최초의 관심 분야느 무엇이었나요. 황효균 _저는 미술, 회화를 전공했는데요.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닐 뿐 결국 입체 위에 그리는 작업으로서 같다고 느낍니다. 결국 좀비 분장도 배우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더미나 괴물 캐릭터를 만든다고 하면 모델링, 채색을 주로 해야 하니까 결국 영화 특수분장 일은 제 전공을 그대로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곽태용 _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거나 분해해서 작동 원리를 연구해보는 성향이 있었어요. 모형 제작을 취미로 계속하기도 했고요. 그걸 계기로 미니어처 작업을 통해 영화 쪽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영화 애니매트로닉스 분야는 정확한 전공이나 커리큘럼이 있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결국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계의 원리를 면밀하게 관찰해서 그걸 응용하는 거거든요. 해외 자료들도 많이 보고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사무실에서 테스트해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가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것들을 연출하길 원하는 감독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 더 커요.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작업동 2층 미술작업실 전경 김소미 _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셀의 매출 및 작업 규모 혹은 기술 수준에 있어서 확실한 성장의 분기점으로 꼽아볼 작품이 있을까요? 곽태용 _특수분장이라는 게 맨 처음에는 배우의 얼굴에 실제로 상처를 낼 수 없으니까 그것을 분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더 심한 상처가 필요하면 더미로 커버를 하고, 나중에는 그 더미가 기계 장치로 움직이면서 점점 더 극적인 효과를 내는 식으로 계속 간 거잖아요. 저희도 초반부터 그런 모든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처음엔 상처 분장, 인조 피부 이런 작업 위주로 했었죠. 그러다 아무래도 한국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죠. 스릴러영화를 하게 되면 더미가 많이 나오니까 한동안 그런 작업 위주로 하게 되었어요. <달콤한 인생>의 경우 총격 신에서 더미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총에 맞은 손가락이 터져 나간다든가 하는 효과들도 저희로선 의욕을 부추기는 데가 있었죠. 또 <부산행>을 기점으로 좀비물 붐이 일지 않았습니까. 덩달아 관련 작업도 늘어났죠. 또 재밌었던 작품 중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데, 움직이는 말을 제작해서 슈팅카에 실었어요. 실제 달리는 말을 대체해 촬영을 했어요. 저희 작업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활용이 되었죠. 황효균 _운이 좋았죠. 그런 작업을 처음 맡을 수 있었다는 게. 셀이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전에는 움직이는 말을 만들어서 촬영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배우들은 항상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액션을 소화하면서 말을 탄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저희의 움직이는 말 소품을 써보고 괜찮아서 이후에 계속 쓰고 싶다고 하면 보람이 있죠. 또 로봇을 직접 제작해 촬영한 영화인 <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 <로봇, 소리>도 중요한 작품이 되겠네요. 게다가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 외계+인 > 1부 같은 작품을 보면 마블의 < 어벤져스 > 시리즈 못지않게 현실감 있게 나오니까 이제 한계점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위해 우주복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곽태용 _최근엔 연상호 감독의 <정이>를 작업했고요. 영화 <대홍수>도 SF고 드라마 쪽에서도 우주 배경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왔던 움직이는 말 기계 모형 김소미 _<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을 위해 제작한 로봇 소품도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직접 로봇을 제작한 경우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황효균 _맞아요. 저 작품을 찍고 7년인가 있다가 개봉을 했거든요. 처음 촬영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게 될까’ 하던 때였거든요. 로봇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움직임들을 다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제작사가 카이스트의 로봇 공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했었는데 그들은 정석대로 접근한 거죠. 이를테면 영화 세트장 바닥은 미끄러워서 작동이 불가능하다, 기간은 1~2년, 비용은 10억~20억원이 든다고 했대요.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사실 영화적으로 이해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카메라가 발 부분을 잡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제로 걷지 않아도 그럴듯한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어찌 보면 편법에 강한 겁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잔머리가 강한 거고, 응용력이 중요하죠. 김소미 _지금의 셀 스튜디오는 언제 완공이 된 건가요. 황효균 _여기 이사 온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네요. 곽태용 _원래 있던 곳도 여기 근처죠. 황효균 _처음 시작한 곳은 지금 스튜디오보다 규모가 약 1:3 정도였습니다. 옛날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거죠. 곽태용 _예전에는 큰 작업물을 만들면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안에 있던 걸 다 빼고 다 치우고 하느라 고생했죠. 아예 외부 창고를 단기 임대해서 그쪽으로 장비를 다 옮기기도 했고요. 황효균 _지금 부지는 총 400평이고요. 3층 건물은 약 80평 정도 됩니다.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선반의 인체 모형, 인체 일부 김소미 _총 3층으로 이루어진 셀 스튜디오의 주요 작업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곽태용 _일단 1층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실 쪽은 무거운 기계와 재료들이 많죠. 밀링 머신. CNC, 드릴, 프레스 등등. 가공 자재들도 기본적으로 쇠파이프 같은 무거운 재료들이니까 아래층에 있는 게 좋겠지요. 그 위에 1.5층이 있는데 프린트, 레이저, 도면 기반의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두었습니다. 1층 기계실은 아무래도 분진이 많이 발생하고 소음이 심해 조금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팅 작업실을 위쪽으로 분리한 거죠. 황효균 _1층은 을지로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웃음) 공구들, 기계 장비들. 안 다루는 부품이 없고 전기, 배선, 라이팅까지 전부 다 하니까요. 2층으로 올라가면 페인트류, 실리콘, 물감, 분장 재료들이 중심이 되지요. 곽태용 _더미의 머리카락, 눈썹을 섬세하게 심고 채색하는 공간도 따로 구분되어 있어요. 화학 약품을 많이 쓰는 도색 작업 공간엔 냄새가 많이 나고 휘발성 페인트가 많기 때문에 환기 시설이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고요. 황효균 _이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설계 사무소와 논의해서 여러모로 저희 입맛에 맞게 건물을 지은 거지요. 냄새가 나는 방은 환기가 중요하니까 맨 뒤쪽, 오른쪽 구석에 가 있게끔 하고 분진이 많이 나는 폴리실은 따로 두고, 청결 유지가 필요한 채색실은 그 반대편에 거리를 두고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죠. 김소미 _개인적으로 가장 애착 가는 공간이 있을까요. 곽태용 _저는 도면실이요. 도면실 겸 취미 활동방이 되었는데요. 개방해놓고 쓰고 있어요. 컴퓨터 옆에 드럼이 세팅되어 있거든요. 퇴근하면 직원들이 거기서 드럼 치고 있어요. 황효균 _곽 대표님은 보통 도면실이 있는 1층과 1.5층에 많이 머무르죠. 저는 아무래도 2층이겠죠.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에 충실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도면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곽태용 대표 김소미 _셀의 현재 직원수는 총 몇 명인가요. 한국영화의 주요 작품들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데, 근무 강도를 어떻게 자평하는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저희가 지금 다 해서 20명인데 보통의 특수분장팀들과 비교하면 3~4배 정도의 규모라고 해요. 많이 듣는 얘기가 ‘셀은 맡은 작품 수가 많으니 야간작업을 자주 하는 거 아니냐’인데 그렇지가 않아요. 저희는 오후 5시 반 되면 다 퇴근해요. 곽태용 _한 8년, 9년 전부터 주 40시간 근무합니다. 황효균 _창립 초기부터 주5일제로 일했고요. 곽태용 _가끔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 때문에 마감이 늦어지면 밤 9시,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1년에 5번도 안 돼요. 촬영이 걸리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저녁 시간을 갖고, 빨간 날은 그냥 쉬는 걸로 해요. 그래서 인원이 좀 많은가 봐요. 이렇게 일하려면 적어도 3~4명은 더 있어야 되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일용직이랑 계약직을 쓰지 않고 정직원만 고용합니다. 일단 고용안정이 돼야지 자기 실력이 발휘가 되니까요. 이 분야는 적어도 1년에서 2년은 배워야지 실력 발휘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러려면 꾸준히 다니면서 할 수가 있어야 하고요. 김소미 _셀 입사를 꿈꾸는 구직자들이 많겠습니다. 지금 젊은 직원들의 성비는 어떻게 되나요. 황효균 _애니매트로닉스 쪽은 남자가 많고요. 미술 파트 쪽은 여자가 많고. 곽태용 _전체로 따지면 여성 직원이 더 많습니다. 입사 희망자들도 여성 비율이 높고요. 황효균 _분장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약간의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곽태용 _그런데 사실 기본적으로는 골조도 넣어야 되고 또 되게 무거운 몰드도 돌려서 스킨을 뽑아내야 되고, 작업의 많은 부분이 중노동에 가깝기도 하지요. 반대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이 일을 희망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성비로만 놓고 보면 포트폴리오 지원자 중 여성들이 월등하게 많습니다. 인체 모형을 작업중인 직원 김소미 _최근의 테크니컬 아트를 위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제작 여건 면엥서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옛날에 직원이 3D 프린터란 게 나왔으니 하나 사달라고 해서 구매했더니, 스프라이트라고 하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다 보이는 수준이어서 ‘아, 이게 될까’ 싶었죠. 초창기에 300만원 주고 하나 사보자고 하는 걸 일단 시험 삼아 들여서 저희들끼리 열쇠고리 같은 것도 뽑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실험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음 버전이 나와요. 지금은 3D 포인트 프린트를 스튜디오에 5~6대 정도 놓고 쓰거든요. 만약 처음 나왔을 때 실험해보지 않았으면 아직도 못 쓰고 있을 거예요. 새로운 장비가 나왔다고 하면 우선 투자를 합니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레이저 각인기를 사달라고 해요. 우주복을 예로 들면 그 위에 NASA라고 새길 수 있는 거죠. 원래는 업체에 외주로 맡겨야 했던 작업을 그 기계를 사면 직접 새길 수 있대요. 2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또 직접 사서 써 봐야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냥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곽태용 _저희는 어떤 기계를 원래 목적 그대로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변형시켜서, 그러니까 작업의 목적에 맞추어 변형해서 쓰는 거죠. 시나리오에 담긴 천차만별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선 편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지 만들 수 있고요. 박람회가 열리면 가서 구경하고 응용할 거리가 있으면 구매해서 테스트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박물관에 주고요. (웃음) 작업동 1.5층 3D 프린팅 및 스캐닝실 전경 김소미 _셀이 새 자리로 이사한 이후, 코로나19가 영화계를 강타한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곽태용 _한국은 팬데믹 기간에도 록다운 없이 영화 촬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에는 계속 투자가 이뤄졌고, 그런 수요를 저희도 느꼈죠. 약간 반전이었죠. 황효균 _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작년, 재작년 엄청 바빴어요. 시리즈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지금 다시 극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서 영화 작업도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요, 저희 욕심만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업체들도 많이 생겨났으니 현업에서 계속 뛰긴 하지만 저희 둘만큼은 전보다는 일에 덜 쫓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몰릴 때 몰리고 또 없을 때 없고 하니까, 뭐 잘 조율해가면서 해야죠. 김소미 _아직까지도 '이것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싶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으신가요? 곽태용 _ 이 일은 전적으로 과제가 주어지는 일인 거잖아요. 연출자들이 새로운 콘셉트를 갖고 오면 최대한 그걸 구현해보고 싶은 거죠. 어렸을 때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항상 꿈꿔왔던 것은 있어요. 예를 들면 <에이리언>이요. 과거에는 이런 작품 해보고 싶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할리우드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작업을 레퍼런스 삼는 나라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효균 _한국 콘텐츠의 질이 엄청 높잖아요. 한국영화를 보고 특수분장을 꿈꾸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요. 제보받은 게 있는데 중국, 싱가포르에서 한국영화 보면서 저희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한다고 해요. <옥자>에 쓰인 기술은 할리우드에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해외에 셀이 소개될 때 <부산행>을 했던 회사라고 하면 다 알아봐 주고요. 그런 게 참 뿌듯합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10월 25일
영화미술은 영화의 시각적인 톤앤매너(Tone&Manner)를 제시하고 구현하는 작업이다. 미술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이 영화의 톤앤매너를 정하면 미술팀은 그 콘셉트에 맞추어 진행하게 된다. 공간의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이며, 공간의 분위기는 어떠해야 하고, 그것에 맞게 사물을 어떻게 배치할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미술팀은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콘셉트 스케치, 세트디자인, 공간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소품의 디자인까지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디자인을 하며, 그 후엔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해 줄 세트팀, 소품팀과 작업을 공유하고 디자인에 맞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감리과정을 진행하게 된다. 프로덕션 기간 중에는 구현된 공간에 콘셉트에 맞는 소품을 배치, 세팅하는 작업 즉, 세트 드레싱을 진행한다. 이렇게 완성된 공간에서 촬영이 시작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촬영 중에도 미술적인 부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며 현장 진행을 한다. 이것이 미술팀의 작업의 대략적인 과정이다. 영화 안의 공간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영화 안의 공간은 스튜디오 세트, 오픈 세트, 로케이션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로케이션의 여건이 여의치 않거나 로케이션에서 구현할 수 없는 공간일 경우 대부분 스튜디오 세트에서 촬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외부 환경에 세트를 만드는 경우를 오픈 세트라고 하며, 이 두 가지는 영화에 맞게 구조를 만들고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맞춤 신발처럼 꼭 맞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정확한 콘셉트의 구현과 외부 방해 요소가 없어 빠른 촬영을 돕기도 한다. 반면 로케이션은 콘셉트에 맞는 장소를 섭외해서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공간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변경이 가능하다면 좀 더 영화에 맞게 덧붙이거나 일부 변경을 해서 공간을 디자인한 후 사용하기도 한다. 로케이션은 실제 공간이기 때문에 구조가 정해져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에 부합하는 로케이션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트디자인이라는 과정이 없이 바로 데코디자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와 같이 로케이션에서 공간을 어떻게 얼마나 변형을 할 것인가, 또는 어떠한 방식으로 데코를 할 것인가, 그로 인해 이 공간이 얼마나 시나리오의 상황에 부합하는가를 설정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시작이다. 결국 스튜디오 세트, 오픈 세트, 로케이션에서 세트디자인의 과정은 부분적으로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지만, 공간의 데코레이팅은 동일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물론 이에 대한 모든 결정은 효율성의 고려에 대한 결과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공간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그 공간에 적합한 가구의 선택, 동선에 알맞은 배치 그리고 어떤 디자인의 소품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 이 모두는 공간 분위기를 판가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 작업을 위해서 미술팀은 큰 가구부터 작은 연필 하나까지도 스타일, 모양, 색상 등을 콘셉트에 맞추어 결정하고 알맞은 위치에 배치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예를 들어 호러 영화의 드라큘라 집에 핑크색 레이스 커튼을 넣었다고 생각하면, 그 커튼으로 인해 호러의 분위기가 깨지고 공간의 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다. 단, 일부러 넣은 설정이라면 다르겠지만. < 걷기왕 >은 예산이 적은 영화였고 한 달 동안 촬영을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여서 세트를 따로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로케이션 헌팅에서 정해진 장소에 디자인과 드레싱 하는 과정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앤매너를 잡았지만 그에 맞는 공간이면서, 촬영에 용이한 환경을 가지는 장소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장 공간 찾기가 어려웠던 곳은 만복의 집과 학교 그리고 육상부실이었다. 만복은 강화도에 사는 여고생이다. 지역의 특성상 아파트나 연립주택보다는 전원주택에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공간은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상황 생활습관 그리고 분위기를 대변하기 때문에 가장 부합한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설정도 가져가면서 인물의 캐릭터와 영화의 콘셉트도 가져가야 하기에, 어쩐지 황량하고 여고생보다는 할머니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우사가 있는 일반 시골집보다는 따뜻한 정서가 묻어나는 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반 미술 콘셉트 회의에 이러한 콘셉트에 부합한 레퍼런스 공간들을 찾아 제시했고 이를 기반으로 제작부에서 여러 장소를 헌팅한 후에 가장 만복이 살 것 같은 장소였던 한옥으로 결정되었다. 만복집 로케이션 만복집 콘셉트 스케치 만복집 결과물 마당 한켠에 자리 잡은 아치형의 창고가 있어 소순이(소)의 집으로 설정했다. 기존의 외양간과는 전혀 다른 형식이었는데, 우선적으로 콘셉트에 부합하기 위해 벽에 작화(설정된 색상을 칠하고 질감을 만들며 생활감과 세월감을 주는 작업)를 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그다음, 공간의 씬에 자연스러운 동선이 만들어지도록 소품 배치를 계획했다. 여기서 필요 없을 물건들은 제거하고 영화에 필요한 요소들을 배치하게 되는데, 그래서 기존에 있던 파라솔과 테이블은 없애고 문과 평상으로의 동선이 바로 이어지게 계획했다. 작화가 공간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첫 번째였다면, 커튼과 같은 패브릭 요소들로 미술세팅(데코레이팅)을 해서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이 두 번째 요소가 된다. 어떤 색감의 어떤 패턴을 쓰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커튼을 설정하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썼다. 백여 개의 원단 샘플 중에서 선택된 것이 주황색의 커튼. 마당 화단의 푸른 녹음의 색감과 반대되는 주황색을 함께 써서 공간에 색감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이 기회에 말하지만 < 걷기왕 >에서는 주황빛의 색감이 많이 보이는데 주황은 활동적인 에너지의 색이며 식욕의(크게 꿈을 향한 열정(욕심)으로 보았다) 색이기도 하고 강화도의 배경과 만복이 걸어 다니는 설정상 푸른 시골길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대비해서 설정한 색이기도 했다. 영화상 배경은 따뜻한 봄부터 초가을이였지만 실제 촬영은 패딩을 입고 촬영에 임해야 할 날씨였기에 푸른 녹음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 마당 곳곳에 풀과 꽃들을 심고 화분을 가져다 놓고 대문의 담과 집에도 담쟁이 넝쿨을 설정해서 하나하나 벽에 붙였다. 추운 날씨 때문에 만복 집뿐만 아니라 이 영화 곳곳에 조화나 화분을 이용하여 계절감을 바꿔서 세팅했다. 그렇게 세팅하고 나니 비로소 생기 있는 분위기를 주는 공간이 완성되었다. 공간을 디자인하고 데코플랜을 세울 때 많이 고려하는 부분은 이 공간에 사는 인물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상을 하는 것이다.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취향, 성격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공간에서 캐릭터가 엿보여야 한다. 인물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요소들이 한데 모여 인물과 공간을 더 견고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집에 어릴 때부터 살았던 만복의 흔적을 넣었다. 어릴 때 그린 낙서나 초등학교 때부터 만복이가 학교 과제로 만든 공작 물품들을 설정으로 집에 곳곳에 배치하고, 만복의 어릴 때 그림이 붙어있는 부분도 설정했다. 더불어 만복의 가족들이 같이 살고 있는 요소들을 배치하려고 했다. 육상부실 로케이션 육상부실 콘셉트 랜더링 육상부실 결과물(1) 육상부실 결과물(2) 육상부실 또한 건물 색감부터 바꾸며 시작했다. 내부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그 안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육상부실 안에 메인 공간으로 훈련하는 곳과 탈의실, 세탁실까지 자연스러운 동선이 이어질 수 있도록 설정하고 디자인에 들어갔다. 우선 시멘트벽과 합판, 샌드위치 패널로 이루어진 이 공간에 색감을 입힐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들을 모색했다. 만복이 육상부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공간과 상대적인 이질감을, 육상부가 되어서는 동질감을 부여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메인색상은 활동적인 에너지의 색감인 주황 색감으로 정해 육상부 내부와 육상부원에게 부여하고, 초록색 체육복을 입고 육상부실에 있는 만복이 상대적 공간과의 이질감을, 육상부가 되었을 때는 주황색 유니폼으로 동질감을 부여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색감을 풍부하게 쓰고자 했다. 공간의 전체적인 색감과 배치, 구체적인 소품의 종류들을 선택한 후 로케이션 드레싱을 들어갔다. 소품을 차례로 위치시키고, 소품도 설정된 색으로 다시 도색했다. 디자인을 진행하면서 색상을 많이 썼기 때문에 색감과 세팅에서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계속 고려하면서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다른 영화에서는 색감이 도드라지지 않게 작업을 하는 편인데, < 걷기왕 >에서는 색감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화면에서는 색감이 풍부하되 산만하지 않도록 조절해야 했다. 이것이 육상부실을 디자인하고 데코하는데 제일 많이 신경 쓴 부분이었다. 실제로도 운동기구들이 눈에 잘 띄기 위해 강한 색을 많이 썼는데, 영화 안에서 그것들만 도드라지지 않고 공간과 인물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보이도록 초점을 두었다. 위의 두 공간에서 계속 언급했듯 < 걷기왕 >은 색감이 풍부한 영화이고 싶었다.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모르는 여러 색이 모여 있는 팔레트처럼 말이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십 대(만복) 같기도 했다. <걷기왕>이 진행되는 방식은 만화 같은 판타지 함이 있지만 이야기는 학창시절 한 번쯤은 겪었을 현실이 있는 두 가지의 접점이었다. 그래서 두 가지가 상대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듯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다. 작은 예산의 영화는 각 파트가 추구한 콘셉트를 실행하고 유지하는 것이 쉽진 않다. < 걷기왕 >에서도 콘셉트를 유지하고 퀄리티를 잃지 않고 구현하기 위해 적은 인원에서 많은 일을 해내야 했고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증대시킬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했다. 다른 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촬영만 한 달 남짓인 촉박한 스케줄임에도 세트팀을 따로 꾸릴 수 없었기 때문에 중요했던 작화도 미술팀 안에서 진행해야 했다. 촬영하는 동안 미술팀의 누군가는 촬영장을 빠져나가 작화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촬영 내내 이어졌지만 연출자를 포함한 촬영조명과 소통이 있었기에 시행착오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두 달여의 짧은 시간 동안 프리프로덕션과 프로덕션을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끝이 났다. 마냥 쉽지만은 않은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도 있지만 짧은 프로젝트 속에서 놓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의 선택과 결정이 후에도 옳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아쉬움도 있지만 앞으로 할 영화들이 많을 것이기에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記憶) 그리고 각인(刻印) :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단편애니메이션 ‘아버지와 딸’ 필자는 일찍부터 감성이 발달해 있었던 모양이다. 감성과 관련한 기억에 관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림과 관련한 기억들이 특별하다. 그래서 이번 추천애니메이션은 ‘기억’으로 화두를 열고자 한다. 아직도 나룻배가 있던 낙동강 하류 을숙도에서의 기억은 정확히 나이 7살 때이다. 쌍둥이 남동생에게 갑자기 찾아온 맹장염으로 우리형제는 남들이 농담으로 얘기하는 ‘유치원을 중퇴’하게 되었고, 퇴원 후 바람도 쏘일 겸해서 부산에서 멀지 않은 갈대밭으로 유명한 을숙도의 연못 딸린 조그만 공원을 찾았다. 공원 가운데는 여러 갈래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분수와 황금빛 능금색 비단잉어들이 여유롭게 노니는 제법 근사하게 가꾼 연못이 있었는데, 그 주변에서 남자 중학생 2명이 야외이젤을 펴고 연못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화판에 그려진 수채화를 처음 본 순간, 투명하게 살아 움직이는 맑은 그림에 현기증을 느꼈고, 밀려오는 감동으로 넋을 잃고 한참동안 자리를 뜨질 못했다. 또한 한 손에 팔레트를 끼고, 다른 한 손에 있는 붓이 움직일 때마다 사진과는 또 다른 생기를 더해가는 사생화 작업 과정은 지금도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감성적, 문화적 충격이었고 내 머리와 가슴에 뚜렷하게 각인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동물학자 데즈몬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이라는 저서에서 ‘기억’들 중에서 강하게 인식되어 오랫동안 남아 있는 기억을 ‘각인(刻印)’이라고 했다. 모리스는 이 책에서 기억과 각인에 대한 내용과 아울러 동물학의 입장서 본 인간의 행태를 여러 가지 예시들로 흥미롭게 풀이하고 있다. 필자는 을숙도 소풍이후 그림을 늘 그렸고, 시간 나는 대로 미술을 접하면서 50십 줄이 되어가는 지금도 디지털 콘텐츠라는 새로운 문화 예술 산업 트렌드에 발맞추면서 어릴 적 좋아했던 그림과 관련된 업(3D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다행(多幸)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러 차례의 해외여행 중에서 ‘프랑스’ 하면 생각나는 것들 중에는 와인에 궁합 잘 맞는 살라미 햄, 느끼한 ‘퐁듀’, 잿빛 대리석 고건축물이 즐비한 파리 시내, 초록바다에 쪽빛 하늘을 담고 있는 피카소 미술관 앞의 앙티브 바닷가와 만개한 웃음들이 넘치는 미술관 뒷골목 재래시장, 멀건 카레국물에 생선살을 발라 만든 값비싼 ‘부이야베스’와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값싸고 신선한 단 맛이 나는 체리가 부둣가 노점상 수레 위에 수북했던 마르세이유 항구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필자에게 찐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프랑스행 비행기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보았던 마이클 두독의 단편애니메이션 ‘아버지와 딸’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프랑스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을 위한 출장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파리 드골공항을 경유, 스위스 제네바공항까지 약 14시간의 긴 여정을 위해 여러 권의 책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준비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작은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받아 노트북 앞에 놓고 마이클 두독 드 비트(Michael Dudok De Wit)의 작품들 중에서 안시와 관련된 작품을 볼까하면서 작가의 세 번째 단편애니메이션인 ‘아버지와 딸(Father and Doughter)’이라는 제목에서 엔터키를 눌렀다. 고공공포에 대한 두려움과 좁은 이코노믹 좌석에 대한 불편함은 사이다 섞은 막걸리 맛과 비슷한 화이트 와인 맛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고, 잔잔히 흐르는 아코디언 음률로 시작되는 오프닝은 작품에 대한 적절한 기대감을 주었다. 이 작품은 2000년 네덜란드 애니메이션페스티벌 대상, 제 73회(2001년) 아카데미상 단편애니메이션상, 2001년 안시 애니메이션페스티벌, 그리고 오타와, 자그레브, 히로시마 애니메이션페스티벌 등 4대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으면서 세계 각국의 주목을 끌었고 우리나라 PISAF에서도 초청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이 그토록 여러 나라의 관심을 가지게 했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대상의 영광을 마이클 두독에게 돌렸을까? 작품의 도입부는 애잔한 기억을 담을 의지로 와트만 수채화용지에 갈색 잉크로 수묵 기법을 적용시켰는데 미루나무가 길게 자란 강변의 너른 들판을 아버지와 딸이 자전거를 타고 가로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강을 건너기 위해 배로 가려다가 언덕위로 올라와 사랑스런 딸을 한동안 다시 보듬고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사라져 간다. 이 장면에서 사랑과 헤어짐에 대한 ‘에피소드’의 영상언어를 풀어가는 작가의 재치, 예리한 관찰과 예민한 감각을 읽을 수 있는데, 강가의 배로 바로 가지 않고 다시 언덕을 올라와 딸을 안아주는 애틋함과 앞날의 비애를 암시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에피소드’에 대한 아이로니컬한 예시가 되겠지만 최근 코미디방송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발레리NO’라는 코너에서 남자의 거시기가 두드러지는 발레복과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관객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발레리노들의 애로(隘路)를 일련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재미있게 연출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어린 딸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의 귀환에 대한 기대와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작가는 자전거에 딸린 기억의 편린들을 엮어 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연애와 결혼, 자녀 양육, 중년기, 노년기에 접어들어 힘없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항상 아버지와 헤어진 강변의 그곳을 자전거로 찾다가, 결국 오지 않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말라버린 강으로 직접 찾아 나서고 마침내 저세상의 아버지를 죽음을 통해 만나게 된다는 내용으로 한 여자의 성장과정과 일대기를 짧고 빠르게 이어가고 있다. 왜 이렇게 짧은 작품이 울음을 견디기 힘들게 하고 필자의 기억에 생생할까? 어린 시절 자전거와 얽힌 아버지에 대한 강한 인상(각인)은 자전거를 동행한 변함없는 딸의 기억과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동경으로 일관하고 있다. 과연 일생을 바쳐 아버지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기다릴 수 있을까? 아버지를 기다리는 애잔한 감정을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자전거와 관련한 에피소드로 연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은 보편적인 이야기 속에 좀 더 몰입하게 되고, 특별한 딸의 감정이 점증적으로 이입 된다. 아버지와 딸과의 사랑, 그리고 아버지의 귀환에 대한 기대와 그리움을 담은 스토리는 1924년 일본 도쿄제국대(지금의 동경대) 우네노 히데사부 교수와 그의 충견 ‘하치’의 변함없는 신뢰와 우정과도 비견하다. 아키다 견 ‘하치’는 주인의 죽음 후에도 10년간 시부야역 앞에서 주인을 기다렸다고 한다(이 실화는 리처드 기어 주연의 ‘하치 이야기’로 각색되어 2009년 개봉되었다). 그리고 군더더기를 덜어낸 작가 마이클 두독 더 비트 특유의 갈색 모노톤 수묵 표현기법과 캘리그라피 필법은 함축적이면서도 스토리의 집중력을 더해준다. 전깃줄도 자동차도 없는 곧게 뻗은 강둑길, 조용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키 큰 미루나무, 낭만과 여유를 함께하는 자전거 타기, 찰랑거리는 잔물결소리가 들려오는 강가, 어두운 밤길에 기러기 알보다 길게 비친 자전거 조명등, 충만한 황혼의 요란한 참새 떼 등 유기농 같은 영상들을 엮은 몽타주 기법을 통해 표현한 영상언어는 작가의 다양한 경험과 기억들의 반영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작가는 천천히 흐르는 어두운 분위기를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변화 있는 화면구도로 긴장과 이완을 유지시키고, 빠른 시간 전개와 정확한 훅업, 매치 컷 등 다양한 연출로 느슨한 분위기의 속도에 대한 완급을 적절하고 조화롭게 맞추어 간다. 특히, 자연과 물리적 현상에 대한 작가의 세밀한 관찰과 묘사, 그리고 정확한 동작과 개성 있는 캐릭터의 움직임에 대한 섬세한 표현은 유럽 문화와 예술인들이 갖는 한끝 차이의 문화적 우위에 대해 ‘모짜르트의 천재성에 대한 살리에르식 보리(Bodhi)’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난 영상자료원의 칼럼 ‘그림 없는 글자 책’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창의적인 생활과 다양한 경험들을 토대로, 필요하다면 0.5Cm의 축석까지도 만들어 쌓는 섬세한 근성들이 모여 문화 대국을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영어와 수학학원이 넘치는 도시에 우리나라 인구의 80%가 모인 이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해 여유와 낭만, 느린 변화와 사색의 패러다임에 대한 욕구불만이 ‘아버지와 딸’을 보던 필자를 더욱 슬프게 했던 것은 아닐까? 8분의 짧은 상영시간 동안 나는 몇 번의 터지는 울음소리를 참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한 잔 와인의 알콜 기운이 사라질 즈음에야 턱에 고인 울음을 감출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감독 마이클 두독 드 비트는 1953년 네덜란드에서 출생하여 스위스와 영국에서 미술을 공부하였고, 1978년 영국 웨스트 서리 예술대 졸업 작품으로 첫 단편애니메이션 ‘인터뷰(The Interview)’를 제작하였다. 1992년 ‘청소부 톰(Tom Sweep)’을 통해 본격적인 독립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1994년 아카데미상 단편애니메이션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수도승과 물고기(The Monk and Fish)’를 제작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나룻배로 강을 건너던 풍경과 낙동강 하류 근처 을숙도의 고즈넉한 작은 연못가의 중학교 형들의 사생 작업에 대한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이 다뉴브 강변의 잔물결(배경음악 ‘사의 찬미’는 원래 루마니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변의 잔물결’의 앞부분이고, 한편 이곡은 요한시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의 영향을 받았다)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함께 타던 자전거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그립게 기다리는 애틋함에 대한 기억들이 교차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과 찐한 감동을 창조한 마이클 두독 드 비트의 ‘아버지와 딸’에 찬사를 보내면서, 성인 독자들에게는 와인 한 잔을 곁들여 감성적으로 한 번 보시고, 관련학과 대학생들이시라면 술이 깬 뒤 아름다운 영상에 대해 차근히 한 번 더 분석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