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키스 3- 포키스의 복수
- 감독
- 제임스 코막
- 제작년도
- 1985
- 출연
- 댄 모나한, 와이어트 나이트
갓 제대하여 고향인 섬으로 돌아가던 도경은 배에서 가인을 만난다. 바다로 뛰어들 것처럼 위태로운 그녀를 잡아주고, 그녀에게 빠져든다. 선배가 데리고 간 술집에서 가인을 만나고, 하룻밤을 보낸다. 그날 밤, 가인은 말한다. 나랑 결혼할래? 놀란 도경에게 농담이라고 말하지만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뭔가 이상하다. 가인은 다시 결혼을 말하고, 놀라 그녀를 피하던 도경을 만나러 그의 집으로 간다. 도경이 확실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자 얼마 뒤 가인은 도경의 아버지를 유혹해 섹스를 하고, 그의 집에 머무른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장르를 한국 분류에 따르자면 에로영화다. 일본에서는 핑크 영화라고 부르는 장르. 하지만 에로영화는 편의상의 분류일 뿐이다. 원칙적으로 본다면 드라마, 로맨스에 포함되고 세부 장르로 가면 에로틱 로맨스 정도로 부를 수 있다. 정사 장면을 어떻게 다루는가, 영화의 주제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차이가 지는 정도이고, 포르노와는 다른 장르다. < 아메리칸 파이 >나 < 포키스 > 등도 섹스 코미디 이전에 코미디인 것처럼. 일본은 AV가 나오기 전까지는 핑크 영화만 존재했다. 포르노가 금지된 한국은 70년대의 호스티스영화와 토속 에로영화에 이어 < 애마부인 > < 매춘 > < 뽕 > < 변강쇠 > 등이 있었고 비디오 시장이 커지면서 < 야시장 > < 젖소부인 바람났네 > <바람꽃> <자유학원> 등 비디오용 에로영화가 양산되었다가 시장 축소와 함께 몰락했다. 근래 IPTV 시장이 확장되면서 다시 에로영화들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조잡한 에로영화들만 양산되는 것은 불만이다. 가끔 볼만한, 저예산이지만 나름의 매력을 가진 에로영화들이 보이지만 극소수다. 아무리 옷을 벗고 나체로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길게 보여준다고 해도 끌리지가 않는다. 저예산의 한계를 지닌 에로영화에서 대단한 스펙터클이나 세트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양으로 본다면 < 투 문 정션 >이나 < 나인 하프 위크 > 정도의 영화가 가끔은 나와 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에로영화를 찾아서, 수많은 에로영화를 보고 또 보다 멈추고는 하지만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 사랑받지 못한 여자 >도 분류상으로 에로영화에 속한다. 이 영화를 고른 대부분이 에로영화를 원하며 보았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감상을 적은 글에서, 에로영화인데 예술을 추구했다, 는 말이 보인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오락과 동시에 예술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많은 에로영화들이 오로지 보여주는 것에만 몰두하며 그 이상의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는 에로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만족을 준다. 그들이 섹스를 하는 장면은 당위성이 있고, 때로 절박하며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있다. 관객이 몰입하게 만든다. 가인을 연기하는 김화연은 아름답다. 세파에 지친 여인이 보여주는 허무와 고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녀의 얼굴과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물론 섹스 씬이 야한 것은 기본이고. 그것만이 아니다. 단지 배우가 야하고 아름답고, 섹스 장면이 흥분되는 것뿐이라면 비교적 세련되게 만든 에로영화일 뿐이다. < 사랑받지 못한 여자 >에는 그 이상이 있다. 가인은 묘한 여자다. 술집에서 적어도 10년은 굴러먹은 여자가 멀리 섬까지 내려온다는 것은 일종의 전락이다. 가인의 미모를 본다면, 아마도 그녀의 어떤 태도나 극적인 상황이 그녀를 이곳까지 끌어내렸을 것이다. 그녀는 늘 말한다. 죽는 것보다 혼자인 것이 더 싫고 무섭다고.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은, 좋아한다고 믿는 도경을 만나자 가인은 집착한다. 같이 있자고, 결혼하자고 무조건 들이댄다. 세간의 상식 같은 것은 애초에 무시하고 가인은 자신의 의지만을 관철시켜 간다. 도경의 아버지와 섹스하고, 함께 살고 그러고도 다시 도경을 유혹한다. 너와 함께 있고 싶어 그런 것뿐이라고. 그녀가 누구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첫 장면에서 가인은 여자아이의 사진을 보고 있다 바다에 날려버린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를 낳았고,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녀는 아이를 잃은 후 상실감으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일까? 어쩌면 모든 것은 망상이 아닐까. 아이를 낳고 잃은 것도, 상실감과 외로움도 모두 그녀의 파괴적인 망상에 비롯된 것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오히려 가인의 이해할 수 없는 모든 행동이 설명 가능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사실일 경우에도 설명은 가능해진다는 것이 난점이다. 애초에 가인의 행동은 비상식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그녀의 이유는 그 무엇이든 가능하고, 그렇기에 그녀의 정체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모호하다. < 사랑받지 못한 여자 >는 영화 속에 보이는, 두 남자에게 결국 사랑받지 못하는 가인의 모습이다. 또한 사랑받지 못하여 자기파괴에 탐닉하는 그녀의 과거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받지 못한 여자>를 일종의 판타지이자 스릴러로 위치하게 한다. 정말로 아이 때문이었다면 가인은 전형적인 신파의 주인공이다. 강박적인 망상에 휘말린 위험한 여자였다면 또한 스릴러 영화의 공식을 따라갔을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인은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가련한 여인일 뿐이다. 섹스의 순간에만은 너무나도 열정적이며 쾌락의 지점이 무엇인지 아는 위험한 여인인 동시에. < 사랑받지 못한 여자 >는 가인의 영화다. 김화연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녀가 매혹적이지 않다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를 보는 순간에 위험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으면 영화를 보는 내내 생경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수 없는 이상하고 위험한 여자. 가인에게는 그런 매혹이 있다. 흐트러진 헤어스타일과 때로 마른 입술까지도 남자를 끌어당긴다. 게에게 물린 도경의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아주는 가인의 얼굴은 아름답고 한없이 야하다. 결혼은 아니지만, 그녀가 끌어당긴다면 아마 바닥까지 그 순간에는 내려갈 것 같다.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고, 마지막까지 그녀를 궁금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랑받지 못한 여자>는 성공적이다. 저예산의 에로영화는 한계가 많다. 메이저에서 만드는 영화들과는 애초에 출발 지점부터가 다르다. 그런 점에서 < 사랑받지 못한 여자 >는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에로영화를 보는 관객의 목적에 충실한 동시에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단지 이야기가 아니라 가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그녀로 인해 굴절되어 가는 도경과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확실성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김화연이라는 배우의 탁월한 연기를 끌어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수 있다. 노진수 감독의 에로영화를 계속 보고 싶다. 그가 만들어내는 더욱 다양한 인간의 성벽 그리고 섹스와 죽음을 보고 싶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F/02184 청춘, 성장, 정체성. 여기까지만 들으면 풋풋하고도 쓰라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시절을 그린 성장영화들이 떠오른다. 구스 반 산트의 < 파라노이드 파크 >나 이와이 슈운지의 <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같은. 그런데 이 단어들 사이에 섹스를 던져 넣으면 방향이 미묘하게 뒤틀린다. 섹스를 통해서 젊은 날의 방황을 진지하게 그리는 영화들도 더러 있지만 청춘과 섹스라면 대개 ‘청춘 섹스 코미디’로 연결된다. 도발적이거나 유희로 풀어내는 정도의 차이가 있고. 청춘 섹스 코미디의 시작이라면 1983년에 개봉한 < 그로잉 업 >을 들 수 있다. 고등학교 남자애들이 성에 눈을 뜨며 벌어지는 갖가지 이야기들. 당시에는 할리우드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후일 알고 보니 이스라엘 영화였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남녀가 함께 입영 훈련을 하는 장면도 있었다. 야하기는 했지만 가슴 뭉클하기도 했는데, 1978년 이스라엘에서 개봉했을 때 인구의 40%가 본 화제의 국민영화였다. 골든글로브 해외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제임스 딘의 < 이유 없는 반항 >(1955)이나 < 폭력교실Blackboard Jungle >(1955)을 비롯하여 이전에도 청춘영화는 있었지만 하나의 장르로서 형성된 것은 1980년대였다. < 그로잉 업 >의 영향을 받아 더욱 선정적이고 머리는 비운 <포키스>가 나온 것이 1981년. 1980년대에는 청춘영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수작도 많았다. 에이미 해커링의 < 리치몬드 연애소동Fast Times at Ridgemont High >(1982), 프랜시스 코폴라의 < 아웃사이더 >(1983), 폴 브릭먼의 < 위험한 청춘Risky Business >(1983) 등등. 한때 청춘영화의 셰익스피어라고 과찬을 받았던 존 휴즈는 1984년부터 <아직은 사랑을 몰라요Sixteen Candles>(1984) < 브렉퍼스트 클럽 >(1985) < 페리스의 해방Ferris Bueller’s Day Off >(1986) 등을 만들었다. 청춘영화에 성적 체험이 빠질 수는 없었지만 두드러지게 섹스를 내세운 영화는 < 리치몬드 연애소동 >과 < 위험한 청춘 >이다. 1995년에 < 클루리스 >를 만들기도 했던 에이미 해커링은 숀 펜, 제니퍼 제이슨 리, 피비 케이츠를 출연시킨 <리치몬드 연애소동>에서 남자의 성적 모험만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그려냈다. <위험한 청춘>은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려던 모범생이 콜걸을 만나 대학을 때려 치고 포주로 나아가는 ‘위험한’ 결말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은 무려 톰 크루즈. ‘청춘 섹스 코미디’는 어느 정도 감동과 후련함을 주지만 그 이상은 결코 쉽지 않다. < 아메리칸 파이 >(1999)는 아주 재미있고, 지나간 시절의 추억과 감동을 함께 주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성적 충동은 때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일상을 보내지는 않으니까. 야한 책과 영화를 보고 자위를 매일 할지라도 나머지 시간에는 다른 무엇인가를 한다.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거나 배신하기도 하고, 왕따를 당하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불안으로 방황하기도 한다. 그런 고뇌와 일상의 풍경을 스쳐 지나면서 섹스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청춘 섹스 코미디는 애초에 한계가 명확하다. < 에브리바디 원츠 썸!! >도 제목만으로는 그랬다. 누구나 ‘썸’을 원해. 일단 이성을 만나고, 연애 이전에 탐색을 하며 섹스를 하고 미래로 나아갈까 말까 하는 단계. 기왕이면 연애 이전에 썸만 수없이 타면 더욱 좋지 않을까? 연애는 아주 아주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 훗날 하면 되는 것이고. 제목만 듣고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가벼운 만남과 섹스를 보여주는 청춘 섹스 코미디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감독이 리차드 링클레이터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감독을 알고는 바로 선입견을 내렸다.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연출한 청춘 섹스 코미디의 방점은 당연히 ‘청춘’일 테니까. 1991년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데뷔작 < 슬래커 >는 다수의 젊은이들을 따라간다. 에피소드마다 이야기가 흐르고,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섞이고 뭉쳐서 커다란 이미지로 남게 한다. 다음 작품인 < 멍하고 혼돈스러운Dazed and Confused >(1993)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다양한 청춘의 풍경을 그려낸다. 스치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후 < 비포 선라이즈 > 3부작과 아카데미 수상작인 < 보이후드 >로 대중의 사랑과 평단의 찬사를 모두 얻은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영화는 순간을 포착하면서, 그 순간들이 어떻게 거대한 흐름으로 수렴하는지를 보여준다. 개별적이고 파편적이면서도 거대한 그림의 조각으로 맞춰지는 영화. < 에브리바디 원츠 썸!! >은 대학 개강을 하기 전, 3일 15시간의 풍경을 보여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이크가 차를 몰고 대학으로 가는 장면에서 낵의 ‘마이 샤로나’가 흘러나온다. 1980년 8월의 풍경이다. 전작인 < 보이후드 >의 마지막 장면이, 성장한 소년이 대학에 입학하여 차를 타고 떠나가는 것임을 생각하면 일종의 연장선이다. 혹은 < 멍하고 혼돈스러운 >이 1976년의 고등학생들 이야기였던 것을 기억한다면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그들이 대학에 들어가 겪는 사흘간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동시에 리차드 링클레이터 자신이 겪었던 1980년의 대학이기도 하고. 명목상의 시간은 <멍하고 혼돈스러운>의 다음이고, 상징적으로는 <보이후드>의 연속선에 놓여 있다. 고등학교에서 투수였던 제이크는 대학에서도 야구부 활동을 한다. 제이크의 동료, 선배들은 모두 개성이 강하다.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사소한 내기에 지는 것도 싫어하고, 후배들을 은근히 경쟁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에서만은 일치단결한다. 여자를 만나는 것. 디스코 클럽, 컨트리 클럽, 펑크록 공연 그리고 코스튬 파티까지 오로지 여자를 만나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목적은 섹스다. 뭐 어떤가. 혈기왕성한 스무 살의 청년인데.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전부가 아니다. 제이크는 말한다. 디스코, 컨트리, 펑크를 오락가락하다 보니 뭐가 진짜이고 뭐가 아닌지 헷갈린다고. 신입생인 뷰터도 말한다. 대학은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프로에 가지 못한다면, 그들의 인생은 확 달라질 것이다. 더 이상 그라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공부를 하거나 직장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오니 주전에 끼기도 쉽지 않다. 제이크가 좋아하게 된 베벌리는 공연 예술 전공이다. 고등학교 때는 다들 주연이었는데 이제는 캐스팅만 되어도 감지덕지다. 사흘 동안, 선배들과 대학이라는 공간을 만나서 알게 된다. 이제부터가 진짜 인생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이가 엄청 많은, 좋았던 시절을 버릴 수 없어 대학을 떠도는 월러비는 말한다. “너희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해. 자신을 찾는 경험을 두려워하지 마.” 하지만 그 역시 진짜 자신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만 있다. 월러비가 쌓아놓은 <환상특급>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제이크가 한 에피소드를 말한다. 어떤 여자가 예뻐지기 위해 성형을 하려고 하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가 아름답고 다른 이들이 엉망이었다고. 그들은 모두, 자신이 별종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때는 대개 그렇다. 나는 왜 이렇지? 나는 누구지? 어디로 가야 하지? 뭐가 맞는 것일까? 아무리 이성을 찾아 하룻밤을 탕진하며 생각을 멈춰도 마음속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월러비는 원소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결합방식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말 많은 핀은 재료가 아니라 재료를 느끼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존재하는 그들 자신이 아니다. 남들이 평가하는 무엇, 나도 알고 있는 나 자신, 그것은 이미 존재한다.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결합해 갈 것인가. 대학은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른이 된다는 역시. 마지막 코스튬 파티에서 그들은 평소의 모습 그대로 간다. 하지만 알고 있다. 지금의 모습 자체도 가면이라고. 우리는 항상 가면을 쓰고 있고, 어쩌면 가장 파티에서의 가면이 자신의 진짜 얼굴이거나 미래인 것일지도 모른다. 투수는 혼자 마운드에 올라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지만, 또한 팀원들의 도움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나를 찾는 것과 동시에 타자를 만나고 어우러져야 한다. 그게 대학이고, 세상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1980년대는 싸워야 하는 대상이 사라진 시대였다. 68혁명의 여파가 이어지던 낙담과 쾌락의 70년대와는 전혀 다른 시대.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부유하는, 텅 빈 세계. 그러나 젊은이들의 존재는 언제나 똑같다. 시대가 변해도, 그들의 불안은, 그들의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 에브리바디 원츠 썸!! >은 결국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경험했던 1980년대의 번들거리는 풍경을 통해 그려낸 청춘의 표상이다.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말해준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를.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청춘 영화들은 언제나 별종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결국은 ‘Freak’ 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여자들과 썸을 타다가 베벌리를 만난 제이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쓴 에세이에 대해서 말한다. 시지프스의 신화를 빗대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의미가 생긴다고. 세상이 뭐라던 내가 할 일을 하고, 좋든 나쁘든 다가올 것을 받아들인다고. 베벌리도 말한다. 어떤 일에 열정을 갖는 것은 아름답지 않아? 그렇기에 바보처럼 보일 배짱을 가지고 예술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선언한다. 아마도 수없이 꺾이고 나뒹굴겠지만 시지프스를 떠올리면서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 에브리바디 원츠 썸!! >은 청춘 섹스 코미디다. 사려 깊고, 원숙한 시선으로 방탕한 청춘의 사흘을 그려낸 섹스 코미디. 하지만 인생은 그보다 길다. 사흘만으로 그들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한순간의 섹스에 대한 욕망과 바보 같은 열정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리차드 링클레이터는 무모하고도 요란한 청춘의 순간을 절묘하게 이어붙이면서 새벽, 아침의 개강 순간으로 관객을 끌어간다. 그건 파티가 끝난 후의 적막이 아니라 일상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의 열정이다. 아침의 열정. 섹스가 끝난 후 남아 있는 미열을 느끼며 미소 짓는 기분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