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연이은 폭염 속 오히려 폭염을 즐기는 시민들
- 제작년도
- 2010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올여름은 1994년의 더위를 넘어설 것이라는 뉴스도 전해진다. 피서 방법과 피서지 추천 또한 다양한 뉴스를 통해 전달된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최우선으로 꼽히는 피서지는 바다이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뉴스는 전국 각지의 해수욕장 개장 소식이다. 1950~1960년대 초반 TV 방송이 활성화되기 전 ‘해수욕장 개장’ 같은 생활뉴스는 극장이나 이동 상영에서 볼 수 있는 정부의 <대한뉴스>나 미 공보원의 <리버티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주 단위로 발행되는 뉴스인지라 지금에 비하면 신속성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볼 수 있다. <대한뉴스>와 <리버티뉴스>는 정치‧사회 뉴스를 중심으로 공보선전에 치중했기 때문에 생활뉴스는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을 차지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철 무더위 소식과 피서지 풍경은 매해 단골로 등장하는 인기 뉴스였다. 이 뉴스들은 주로 바다와 강, 계곡에서 더위를 피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1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단조롭게 스케치하는 것이 전부지만, 피서지 풍경은 서울 중심이 아닌 전국 각 지역의 다양한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영상이다. 다음의 뉴스들에서 1950~1960년대 전국 각지의 피서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영상은 1956년 <리버티뉴스 제169호>에 등장하는 대구 동촌유원지의 모습이다. 이 영상에서는 1950년대 사진작가들의 도시로 유명했던 대구답게 아마추어 사진대회가 열리는 모습과 더위를 피해 보트 놀이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름철을 맞는 대구 시민들의 아름답고 서늘한 놀이터”로 소개되는 1956년의 동촌유원지와 현재의 동촌유원지를 비교하면 더욱 흥미로울 영상이다. 1956년 여름 대구 동촌유원지의 모습: 아마추어 사진대회 1956년 여름 대구 동촌유원지의 모습: 보트를 타는 사람들 1956년 여름 대구 동촌유원지 전경 두 번째로 소개할 영상은 1957년 <대한뉴스 제127호>에 실린 <성하(盛夏)의 메모>로 한여름 더위를 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름철 과일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계곡, 강,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흑백 영상이나마 시원한 여름나기 모습을 전달하고자 하는 뉴스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1957년 여름: 과일 좌판 앞의 상인과 시민 1957년 여름: 야외 간이수영장 세 번째로 소개할 영상은 1960년 <대한뉴스 제274호>의 ‘어린이 풀 개장’ 소식이다. 1960년 서울시는 장충, 탑동, 인현, 사직, 묵정, 삼청, 영등포 등 7개 공원에 어린이 수영장을 마련해 초등학교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개장했다. 개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였으며, 입장료는 초등학생 기준 두 시간 이용에 30환이었다. 1) 당시 국숫값이 30환, 재개봉관의 입장료가 150~250환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입장료는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서울 시내 각지에 대대적으로 어린이 전용 수영장을 개장한 것은 이 시기 어린이의 여가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상에서는 현재 충무로5가에 위치한 묵정 어린이 공원의 과거 모습인 ‘묵정 어린이 풀’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 여름: 묵정공원 어린이수영장 네 번째로 소개할 영상은 1961년 <대한뉴스 제325호>에 실린 <더위 95도 2분>이다. 섭씨 34도를 넘는 최절정의 폭염을 알리는 제목으로 이 영상이 여름철 주요 소재인 피서지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해수욕장과 피서객의 모습을 스케치한 영상이지만 이 뉴스를 선택한 것은 현재는 없어진 인천 송도해수욕장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인천 송도해수욕장은 한국전쟁 후 유엔군 전용으로 운영되다가 1958년 징발 조처가 해제되었지만, 복구공사와 권리자의 내분 등을 이유로 개방되지 않다가 1961년 임시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운영은 송도유원지로 이름을 바꾼 1963년 이후 이루어졌다. 영상에서는 전쟁 후 처음으로 대중에게 개방된 인천 송도해수욕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61년 여름: 인천 송도해수욕장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상은 1964년 <리버티뉴스 제574호>와 1965년 <리버티뉴스 제629호>의 해수욕장 풍경이다. 두 영상 모두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부산 송도해수욕장은 해운대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과 함께 피서지 소식에 단골로 등장하는 해수욕장이었다. 두 영상 모두 송도해수욕장의 전경과 더불어 1964년부터 운행을 시작해 부산의 명물로 이름을 날린 한국 최초의 해상케이블카와 1927년 설치돼 수많은 피서객의 사랑을 받았던 해상다이빙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케이블카, 다이빙대와 더불어 피서객들로 빽빽한 해수욕장은 이 시기 피서지를 상징하는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상다이빙대는 1987년 태풍 셀마로 철거되었다가 2013년에, 케이블카는 1988년 운행 중단되었다가 2017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2 ) 영상을 통해 송도해수욕장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리고 무더위가 이어질 2018년 피서지는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지 상상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1964~1965년 부산 송도해수욕장 전경 1964년 여름: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해상다이빙대 1964년 여름: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해상케이블카 2018년 현재: 복원된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해상케이블카 1) 『경향신문』, 1960년 7월 22일자 2) 『연합뉴스』, 2013년 7월 7일 자.
< 환절기 >는 명필름영화학교 극영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앞으로 함께 제작할 동기이자 주요 스태프(촬영, 미술, 편집, 사운드, 연기 부문)와 2015년 한 해 동안 프리프로덕션의 사전 단계를 느슨하게 거쳤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 준비를 시작해 5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 약 7주 동안 총 28회차로 촬영을 마쳤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에게 처음 선보인 후 연말까지 이어진 개봉 버전의 후반 작업 기간까지 친다면 저예산 학교 졸업영화치고는 꽤 긴 시간 동안 작업을 한 셈이다. 프로덕션 약 1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제작일지를 기록했다. 장편 영화연출은 처음이라 다음 작품 제작 시 참고할만한 정보를 남기고,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제작일지에는 세부 진행 사항과 고민, 그리고 그 해결 과정 등을 후에 복기할 만한 로그북 형태의 파일로 남겼는데, 한창 촬영 중이었던 6월 말 이후로는 기록하지 못했다. 촬영 막바지에 이르자 일지를 쓸 만큼 여유가 없었고, 이후 곧바로 후반 작업에 몰두하느라 미처 끝맺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이 제작기로 < 환절기 > 일지를 마무리 짓는 기분이다. < 환절기 > 시나리오로 운 좋게도 명필름영화학교에 들어온 후, 다시 테이블 위에 시나리오를 놓고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논의를 했다. 실로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결국엔 처음 시나리오의 의도를 그대로 살리면서, 작품 특유의 결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수정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2015년 8월, 일찌감치 최종고를 확정하고 이후에는 진행 상황에 맞추어 일부 장소나 인물, 대사 등 디테일 수정을 했다. 영화 제작 전 동명의 그래픽노블(만화) 작업과 출간을 통해 독자와 만나며 느낀 바지만, 시나리오는 꽤 호오가 갈리는 편이었다. 일부에서는 소재에 대한 우려 섞인 이야기나 작품의 정서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회의적인 반응도 제법 있었다. 그럼에도 고유의 색깔과 작은 미덕을 잃지 않고 제작으로 이어갈 수 있었던 동력은 함께 준비하는 이들의 믿음 때문이었다. 외로운 마음으로 썼던 시나리오라 그런지, 그들의 지지와 응원은 연출자로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촬영과 미술감독은 학교의 다른 1기 극영화 제작에도 참여해야 했다. 일정이 < 환절기 >보다 불과 몇 달 앞에 있었기에 아무래도 프리프로덕션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촬영과 미술 부문은 조금 일찍 서둘러서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촬영감독과는 본격적인 콘티작업에 앞서 러프하게 각 씬에 대해서 촬영 콘셉트와 기조를 정했다. 콘티작업의 기본 뼈대를 구성했던 셈인데, 덕분에 이후 빠듯한 프리프로덕션 일정에서 콘티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큰솔 촬영감독은 우리가 만들 영화를 퀼트에 빗댄 적이 있다. 작고 섬세한 감정, 그것들이 엮이고 쌓여서 주는 먹먹함을 전달했으면 했다. 촬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여백이었다. 일반적인 앵글에서는 다소 벗어나더라도 가급적 빈 여백을 보여주고자 했다. 프레임 속 인물 곁에 있는 공간을 통해서 정서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우리 영화 속에는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이 유독 많다. 카메라 역시 연기하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고통받고 상처받는 다른 인물을 직접적으로 응시하는 것이 아닌 조금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다. 인물의 외로움을 얼굴에 집중해서 그 감정을 보여주기보다는 뒷모습이나 그가 있는 공간을 통해 느껴졌으면 했다. 미술감독과 콘셉트 논의를 할 때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 작품들을 언급했다. 이제는 참고로 삼기에도 너무 흔한 느낌이 드는 에드워드 호퍼. (심지어 그의 그림을 따라 한 TV 광고마저 있으니까.) 하지만 그의 그림은 어떻게 보면 이젠 더 이상 새롭지 않은데도, 아직까지도 늘 회자되고 묘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권하얀 미술감독은 그 이유를 우리가 그의 그림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을 겹쳐보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우리 역시 < 환절기 >가 그러한 영화가 되길 바랐다. 영화 초반에는 어두운 그레이 위주 톤에 직선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다가 끝에 이르러서는 자연의 빛깔과 같은 다양한 색으로 전체적인 톤이 변화한다. 점차 밝고 생동감 있는 색으로 이동하는 것이 작품과 인물의 정서 변화와 비슷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다만 개별공간과 프레임에서의 색의 톤 일치와 조화는 늘 중요하게 염두에 둬서 일정하게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영화 속 가장 특징적인 공간은 요양병원이었다. 미술감독과 함께 경기도 일대의 다양한 요양병원들을 미리 찾아가 보고, 작품 속 요양병원이 과거 모텔이었던 공간인 만큼 색을 많이 드러내고자 했다. (실제로 과거 모텔이나 숙박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용하는 병원을 다녀보니 실내 인테리어 등에서 그 특유의 과감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흥미로웠다.) 영화학교 구성원도 그렇지만, 함께 프로덕션과 후반 작업에 참여한 각 부문 스태프 중에는 이번 현장으로 처음 장편영화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지영 PD는 오래전부터 제작부 일을 시작해 그동안 수많은 현장을 경험한 선배였지만 “모든 영화 현장은 누구에게나 처음일 수밖에 없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작품, 이번 동료들에 한해서만큼은 누구나 처음이다. 처음은 언제나 두려움 섞인 용기와 동시에 설렘 섞인 긴장감을 준다. 돌이켜보면 소위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말은 자기충족적 예언의 성격을 띤 수사 표현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종종 그런 작은 행운에 감사할 일이 많았다. 특히 내게 행운은 역할을 떠나서 작품을 아껴주고 헌신해준 배우와 스태프들을 만난 것이 아닐까.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 그것도 3종류 다 다른 병원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데다, 차량 씬과 바닷가, 산속 야간 씬 등이 적지 않아 촬영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더구나 촬영 기간 동안 때 이른 무더위에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지고, 장마까지 겹쳤다. 각 파트별로는 내가 모르는 다른 곤란들이 더했을 것이다. 촬영 약속을 해두었던 강원도의 한 병원이 크랭크인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촬영 불가 통보를 해서, 촬영 도중 대안을 마련하고 촬영이 없는 날에도 계속 지방 헌팅을 다녔던 것은 그나마 작은 고비에 속한다. 12시간이 넘는 촬영은 기본이고, 한 회차에 도시와 장소를 네 곳 이상 옮겨가며 24시간 촬영 중 ‘정말 이건 무리다’ 느낀 적도 있다. 사실 이런 고생담을 전하는 건 진심으로 부끄럽다.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특히 저예산영화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도 우린 해냈어” 같은 일종의 정신력과 체력을 호기롭게 얘기하거나 서로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는 개인적으로 꺼려진다. 저예산독립영화일수록 더욱더 사람이 중요하다. 시스템이나 자본력으로 보완하기 힘든 한계 여건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개별 참여자의 컨디션과 에너지 관리가 가장 우선돼야 한다. 주5일제와 휴식 보장, 주간에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너도나도 기본이 되기를. 저예산영화라고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스스로 접거나 배척하는 경향은 사라졌으면 한다. 아무튼 힘든 와중에 모두 무사히 안전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고 정말 고마운 일이다. < 환절기 >는 저예산영화라는 일반적인 틀에서 ‘영화학교 1기’라는 첫 시스템과 인력이 만드는 특수한 상황이 공존하는 프로젝트였다. 일반적인 저예산영화가 갖는 인적·물리적 한계점도 분명 있었고, 낯설고 예외적인 제작방식이 갖는 가능성도 동시에 존재했다. 각 파트 스태프와 배우들 사이에는 다양한 경험치의 차이와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었다.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나는 이 특수성 속에 보편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선택과 해결점을 찾는 것이 늘 과제였다. 때로는 이 한계가 일부 대안적인 크리에이티브로 연결되기도 했던 것 같고, 솔직히 어떤 것은 여전히 모르는 채로 아직도 남아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망원동 어느 다락방 같은 곳에서 시나리오 첫 씬을 쓰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제법 흐른 뒤 그림 작가가 자신만의 그림체로 표현해 만화를 완성했다. 이제는 매력적인 배우들과 전문 스태프가 참여해 함께 영화로 만들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내게는 ‘환절기’라는 한 이야기가 세 가지로 존재하고 변화하는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세계. 그리고 만화로 재현된 이미지와 분위기. 마지막으로는 개봉을 앞둔 영화 < 환절기 >의 시공간. 비슷하면서도 각각 다른 인물들과 이야기가 있다. (겸연스럽지만) 그러니 부디 만나주시길 부탁드린다. 영화로도, 또 책으로도.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에 바깥 온도는 38도를 웃돌고 있다. 요즘 같이 잔인한 무더위, 작열하는 폭염에는 올림픽 시청이나 영화 관람이 더위 날리기로 제격이다. 연일 밤을 새운 응원에 승전보를 접하기도 하지만, 몇몇 종목의 불만스런 판정은 마뜩잖은 새벽잠에 불편함을 더한다. 그래도 스웨덴의 전설적인 사격 영웅 오스카 스완이 1920년 앤트워프올림픽에서 72세의 나이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역대 최고령 메달리스트가 된 꿈같은 기록들이나, 영화 속 환상을 실시간 현실로 만들어준 대니 보일 감독( 슬럼독 밀리어네어 , 2009 아카데미 감독상) 연출의 스펙터클한 개막식은 올림픽의 흥미를 더해주는 번외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위 날리기 1순위는 무엇보다도 냉방시설 잘된 영화관에서 시원한 콜라 한 잔과 고소한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 관람을 즐김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틀전날 밤 고1 아들놈과 친구들에게 에어콘 바람이 차가우니 웃옷도 한 벌 챙기라면서 심야시간의 < 다크 나이트 라이즈 >를 함께 보고 왔다. 7월 24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의 집계에 따르면, <배트맨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24일 하루에만 27만 275명의 관객을 동원해 누적 관객 3,003,061명을 기록했다. 이는 19일 개봉 이후 6일만의 기록으로 2012년 개봉영화사상 최단 기간 300만 명 관객 돌파의 기록이다(< 어벤져스 >는 10일 만에 최단 300만 관객 돌파). 한편, 한국 멜로 영화사상 최대(410만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올 상반기 화제작 < 건축학 개론 >은 90년대 감성에 바람을 일으키면서 ‘마이클 런스 투 록` 등 국내에서 관련 음반들이 줄이어 발매되고 있다. 아울러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었네’라는 제목으로 귀에 익숙한 그리스 가수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가 흐르는 < 시라노 연애조작단 > 등 승률이 꽤 높은 명필름의 주력은 특수효과를 애니메이션기법으로 처리하는 메이저급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탄탄한 스토리와 기획에 기반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음악과 캐릭터를 비롯한 몇 가지의 중요한 다른 조건들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영화를 완성하는 요소는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비중이 큰 3가지만을 꼽는다면 스토리, 캐릭터,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2년 시카프 행사를 방문한 픽사의 이민형 TD는 인문학에 관심 갖길 제안하면서, 영화의 중요한 조건으로 캐릭터와 스토리를 꼽았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경우에도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는 1년 반이 걸렸지만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드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5년을 공들였고, 공대 출신 기술 담당 임원들도 예술과 인문학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게 바로 픽사의 큰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번 추천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영화의 구성요소 중에서 <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의 몽상적 스토리 이상의 몽환적인 스토리와 < 어벤져스 >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감각적인 비주얼, < 시라노 연애조작단 >이나 < 건축학 개론 >에서 흐르는 복숭아 같이 향긋한 음악, 그리고 또 다른 재료들을 잘 배합해서 시적 일루전이라는 특별메뉴로 조리해낸 데이브 맥킨(Dave McKean)의 < 미러마스크(MirrorMask) >이다. 꿈같이 공상적이고 만화 같은 상상력이 풍부한 영화로는 팀 버튼의 < 피위의 대모험 >도 만만치 않은 작품이지만 만화적 요소에 애니메이션기법이 강하게 혼재한 데이브 맥킨의 <미러마스크>가 영상자료원의 추천애니메이션이라는 지정된 조건에는 좀 더 적격이라고 판단한다. 팀 버튼 감독의 만화 같이 황당한 설정의 실사영화들은 < 슈퍼맨 > 같이 만화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화영화’나 애니메이션기법이 쓰인 ‘애니메이션영화’에 대해 용어상의 혼용과 학술적 개념의 혼란을 가지게 하지만 < 미러마스크 >는 이러한 만화와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복합적인 개념을 담고 있어, 심화된 만화와 영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새롭고 발전된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이번 작품이 묘한 매력으로 끌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몽환적 이미지로 풀어가는 컬트 성격이 강한 비주얼들이다. 그래서 <미러마스크>를 리뷰하기에 앞서 데이브 맥킨에 대한 일러스트레이션작가로서의 필모그래피를 소개함이 다소 어둡고 무게감 있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데이브 맥킨은 영국의 버크셔 예술디자인대학에서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영화를 전공했다. 25년 전인 1987년, 찰떡궁합인 글 작가 닐 게이먼(Neil Gaiman)과 함께 『폭력 사건들』과 『흑란』(1988)을 발표하면서 만화계에 데뷔했다. 이 두 작품은 1989년 유별난 작가 그랜트 모리슨의 시나리오에 그림 작가로 발표한『배트맨, 아크함 수용소(Batman, Arkham Asylum)』와 더불어 만화의 전형적인 틀을 깨는 창의적 만화 장치를 적용시켜 다수의 수상과 함께 국제적인 명성을 안았다. 1989년 이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을 그린 그래픽노블『새장들(Cages)』(1993)을 출판했는데, 이 책으로 알프 아트 판테라 하비상을 수상하게 된다. 다른 주요 작품으로는 『코랄린』(2003), 『벽 속에 늑대가 있어』(2005),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2006) 등 책의 속지를 펼쳐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독특하고 파격적인 만화책과 그림책들이 여럿 있다. 데이브 맥킨 | 배트맨, 아크함 수용소 | 샌드맨의 `모르페우스` 초상 | Dreaming 코랄린 | 벽 속에 늑대가 있어 |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이와 같은 데이브 맥킨의 그림이 특별히 가지는, 현실과 꿈을 오가는 시공간적 레이어에 놓인 회화, 사진, 오브제, 캘리그라피, 컴퓨터그래픽 등의 중첩 이미지들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정물화에서 느껴지는 유머스런 일루전으로부터 모리츠 C. 에셔의 패턴이 재현하는 메타패턴의 이미지들에 바흐의 푸가 C-샤프 마이너가 절묘히 배합되어 시적 환영의 메타모포시스를 제공함으로서 퇴색하는 벽과 바닥과 천정의 티끌에서도 어렵지 않게 생성되는 신기한 환영들처럼 독자나 관객 스스로가 시적 연상을 통해 감성 넘치는 스토리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채소 기르는 사람 | 모리츠 C. 에셔: 패턴 이미지 데이브 맥킨 감독의 첫 장편 < 미러마스크 >는 글 작가 닐 게이먼의 『미러마스크』를 초안으로 2005년 짐 헨슨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다. 간단한 줄거리는 가족 서커스단인 주인공 헬레나와 부모님의 떠돌이 생활의 지겨움에 대한 사춘기의 갈등과 해소에 관한 내용이다. 헬레나와 그녀의 어머니가 심하게 다툰 후 갑자기 어머니가 병으로 수술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루한 일상에 대한 반항, 사춘기의 도발적 방황, 부모님과의 갈등 등 트라우마 유형의 스트레스를 현실과 혼돈되는 꿈속에서 몽환적으로 풀어나간다. 감독은 헬레나의 병든 어머니를 상징하는 백색여왕의 병을 고쳐줄 미러 마스크를 찾아 얽힌 실타래를 풀듯 이야기를 엮어가는 과정에서 데이브 맥킨 특유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한 이미지와 철학적 관념이 흐르는 스타일리시한 반투명 메타모포시스 기법을 중첩시켜 감성 넘치는 101분 상영시간의 인상 깊은 장편애니메이션영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묘사가 섬세하고 스토리라인의 조리가 분명한 팀 버튼 감독의 몰입감 강한 미국스타일 작품들에 비해 호불호 엘리트 예술가로서 또는 회화작가로서 데이브 맥킨이 표현하기 좋아하는 지나치게 복잡한 철학적, 관념적 유럽식 예술품격을 녹인 『배트맨, 아크함 수용소(Batman Arkham Asylum)』그래픽 노블에서 칸(패널) 사이에 놓인 스토리 완급에 대한 긴장감을 독자들 스스로가 유지하기를 요구하듯이, < 미러마스크 >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집중력과 인내 역시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관객의 호흡을 무시하는 형이상학적 지루함을 못내 답답하고 씁쓸한 옥의 티라고 조롱하고 싶다. -혼자 너무 잘 났어!- 혹자는 그러시겠지 “이게 도대체 만화야? 영화야?” 필자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글쎄, 요새 영화들은 도대체 애니메이션이야? 영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