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형표제
- 감독
- 유국권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주리경, 상술
셀린 시아마의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은 두 여인의 짧은 기간 동안의 사랑과 그 기억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는 화실에서 초상화 수업을 하던 마리안느가 ‘치맛단에 불이 붙은 한 여인’을 묘사한 그림을 발견하고, 그림이 환기시키는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리안느는 정혼자에게 보낼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청탁받고 외딴 섬에 도착한다. 레즈비언 로맨스로서, 이야기의 중심은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사랑과 이별의 과정에 있지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동성애적 관계의 서사적 진전은 더디게 진행되고 지연된다. 이전에 초상화 모델이 되기를 거부했던 엘로이즈와 ‘산책 친구’로 가장하여 몰래 초상화를 그려야 하는 마리안느 사이의 긴장과 서로를 향한 관심이 서서히 차곡차곡 화면을 채워가지만, 영화는 하녀 소피를 포함한 세 여자의 유대내지는 연대적 관계 묘사에 집중한다. 애당초 여자들만 있는 공간이었지만, 가부장제의 대리인인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잠시 집을 비운 후, ‘집’은 다른 공간으로 전환된다. 그 곳은 신분도 계급도 ‘아버지’도 없는 해방의 공간이 된다. ‘아가씨’, ‘화가’, ‘하녀’는 서로에게 살가운 친구가 된다. 하녀는 수를 놓고 아가씨는 음식을 장만한다. 하녀는 앉아 있고 아가씨는 서서 가사 노동을 한다. 셋이서 나란히 식탁에 앉아 음식을 장만할 때, 삼각대형으로 둘러앉아 카드놀이를 할 때, 바닷가로 산책을 나갈 때, 잘 짜인 화면 구도와 카메라 움직임은 그들의 수평성을 강조한다. 이 해방의 공간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세 여자가 함께 책을 읽는 부분이다. 셋은 오르페우스신화를 읽고 있다. 이야기의 절정 부분, 에우리디케가 하데스의 세계, 지하의 세계로 다시 끌려 들어가는 장면에서, 세 여성은 각자의 해석과 의견을 제시한다. 예컨대, 소피는 지상의 입구에 도달하기까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어긴 오르페우스의 행동에 분노한다. 엘로이즈는 에우리디케가 운명에 순응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오르페우스를 불러 뒤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그녀의 의지로 지하세계로 돌아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엘로이즈의 해석은 영화의 의미화 층위에서 그녀가 마리안느와의 관계에서 행할 선택에 반향하며, 이후 마리안느의 그림으로 재차 반영된다. 그러나 이 장면이 진정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여성관객성’에 대한 영화의 자기반영적 성찰로서 가지는 울림 때문이다. 텍스트에 저항하고, 결을 거슬러가며 독해하고, 행간을 채우고, 의미를 전유하는 과정은, 압도적으로 가부장적인 텍스트들에 둘러싸여 있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분노, 지성을 이용하여 쾌락을 만들어 가는 여성관객성의 핵심을 관통한다. 또한 “결국 서사적 해결은 이야기를 만든 자의 선택”이라는 말을 통해, 스토리텔링 장치의 남성중심적 위치와 그 이데올로기적 지지대를 소환한다. 이러한 세 사람의 유대는 소피의 임신중절 과정을 함께 히는 것으로 확장된다. 원치 않은 임신에, 세 여성은 여성들 사이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간요법에 대한 지혜를 모아 시행하지만 실패한다. 영화의 표제가 된 미술 작품이 탄생하는 밤의 해변 장면은 고혹적이고도 아름답다. 밤에 여성들이 해변에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하는 장면은 신비로운 비의적 아우라에 쌓여 있다. 아마도 이곳에서 여성들은 그녀들만의 비밀스런 정보를 알음알음 교환하고 고통을 나누는 듯하다. 셀린 시아마는 여성들의 모임의 비의적 하모니 속에 관객들을 참여시킨다. 그리고 바로 그곳, 여성들만의 비밀의 세계에서 엘로이즈의 치마에 불이 붙는다. 즉 그녀의 욕망이 타오른다. 소파시술 장면은 지금의 관점에서도 놀라움을 주는 것으로서 여성 이슈에 대한 시아마의 깊은 탐구심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지금이나 두 세기 전이나 여성들은 때로는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며 아이를 유산한다. 가려지고, 기록되지 않고, 재현되지 않은 여성의 역사에 대한 시아마의 소명 의식은, 집에서 엘로이즈가 소파시술 장면을 재연하고 마리안느에게 그리라고 할 때, 자기반영적으로 드러난다. 무엇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시선 그 자체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는 질문한다. 여자가 여자를 그린다면, 여자가 여자를 응시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성될까. 셀린 시아마가 한 인터뷰에 밝혔듯이, 1770년대 당시 여성 화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마리안느처럼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림을 발표하였다. 여성 화가들에게 초상화는 배타적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한에서 허용되었다. 역사적으로 초상화는 남성 화가의 전유물이었다. 초상화에는 초상화가의 시선이 구조적인 형태로 자리 잡게 되고, ‘결혼을 위한 초상화’라는 분명한 목적은, 보는 자(화가와 관객)의 위치를 남성으로 못 박는다. 이 때 포즈를 잡는 여성은, 남성의 시선을 경유하여 자신을 바라본다. 정혼자의 마음에 들만큼 예쁘게, 정혼자의 성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에로틱하게, 몸을 비틀고 ‘적당히’ 노출하도록 요구받는다. 남성 화가는 바라보고 행위하고, 여성 대상은 자신(의 이미지)를 바라본다. 그녀는 남성의 응시를 내면화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구성한다. ‘포즈’란 시선이 오고가고 부딪히는 과정이며 포즈를 체화하는 몸은 시선의 전쟁터이다. 엘로이즈가 이전 화가에게 포즈를 거부했던 것, 그리고 화가가 엘로이즈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고 뭉개놓았던 것이 엘로이즈가 남성 화가의 일방향적 응시에 저항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화가는 자신의 응시의 좌절과 그 분노감을 그림의 구조 속에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작업은 응시를 주고받음의 상호작용과정으로 전화시킨다. 마리안느의 시선 뿐 아니라, 엘로이즈의 시선이 카메라와 대사를 통해 명료화된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응시를 통해 서로의 미세한 표정의 움직임과 버릇, 그리고 사랑의 기미를 포착한다. 이때 셀린 시아마가 전경화하고 있는 것은 시각문화예술 전반에서의 시선의 문제 그 자체이다. 그것은 시선의 구조화를 둘러싼 영화 장치의 젠더 관계를 질문하고 드러내고 새롭게 구조화하는 것이다. 여자가 여자를 바라보고, 사랑의 눈으로 응시하고, 상호적으로 주고받는 과정은, 엘로이즈의 몸에 마리안느의 얼굴이 겹쳐지는 누드화로 인장된다. 이는 서구의 회화 역사에서 보기 방식의 양식화를 통해 남성 관객 위치를 새겨 넣는 지배적 형식으로서의 누드화를 레즈비언의 에로틱한 시선으로 일순간에 전복시키는 순간이다. 귀족 가문의 거실에 엘로이즈의 초상화가 놓일 것이라면, 그 누드화는 공적 초상화 밑면의 ‘네가 이미지’, 즉 음화(陰畫)이자 레즈비언 음화(淫畫)인 것이다. 시각화와 관련하여,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비전은, 초상화같이 포착된 결혼식 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의 이미지이다. 그 비전은 모순적 상황과 내적 갈등이 깊어지는 순간들에 마리안느에게 출몰한다. 검은 어둠을 배경삼아 정면에 시선을 둔 채 서있는, 엘로이즈의 전신을 담은 그 ‘초상’은 흡사 유령 같다. 깊은 어둠이 엘로이즈의 형상을 허공에 매단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비전은 마지막 장면에서 이야기의 실제 안으로 봉합됨으로써 일종의 플래시포워드로 재위치화 되는데, 이 이미지 역시 결혼 초상화의 밑면에 자리한 네거티브 이미지이다. 이 유령 신부의 이미지는 여성들의 생기, 여성들의 성애적 관계의 죽음으로서의 결혼의 의미를 드러낸다.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결혼 제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는 유령으로서의 삶이다. 꽤나 긴 길이의, 내레이션이 동반된 에필로그는 십중팔구 진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에필로그는 떨리는 화표면의 진동을 통해 보기 드물게 감동적인 영화적 순간을 만들어 낸다. 두 사람의 이별 후 다른 화가의 시선과 손으로 그려졌을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보며 관객들은 그 시각화의 과정을 예측하게 된다. 엘로이즈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정의 내리고, 어떻게 재현되기를 원하였으며, 초상화가와 어떤 시선의 협상을 하였는지를. 아울러 그것은 여성 섹슈얼리티의 한 측면을 강력한 힘으로 증언하는데, 이성애 실천 가운데 말소 되지 않는 동성애적 욕망의 존재이다. 그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전달된다. 비발디의 음악을 매개로 한 엘로이즈의 얼굴 클로즈업은 기억의 한 챕터에 넣어두었던 여성 성애의 주이상스의 현현이다.
2015년 KMDb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는 제목 가나다 순서대로 꼽았다. 보고 나서 잠을 설쳤지만 명단에 넣지 못한 영화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고, 보고 싶었지만 놓친 작품들이 아쉽다. 무엇보다, 가장 기대했던 두 여성 감독의 신작을 보지 못했다. 쿠웨이트 태생 팔레스타인계 작가 바스마 알샤리프의 작품을 기회가 닿는 대로 챙겨보았지만, 신작 <깊은 잠Deep Sleep>(2014) 상영을 놓쳤다. 그런가 하면 샹탈 아커만의 < 노 홈 무비No Home Movie >(2015)는 학수고대했지만 국내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 뉴스 프롬 홈News from Home >(1977) 이나 <레터스 홈Letters Home>(1986) 등을 잊을 수 없기에, 그녀의 영화는 늘 ‘집에서 온 소식’과 같았다. 한데, 최근작이 유작이 되고 그 제목이 ‘집이 없는 영화’라니.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금은 폐간된 영화잡지 「키노」에 기고한 인터뷰를 위해 2003년에 방문했던 파리 서쪽 끝 그녀의 작은 집을 기억하며, 새해에는 <노 홈 무비>를 꼭 보려 한다. 2015년 영화관에서 가장 황홀했던 순간은 오쿠야마 준이치의 < 휴먼 플릭커 >를 본 날이었다. 1975년 야스다 홀에서 초연했다는 이 작품은, 각각 뜬 눈과 감은 눈 이미지를 스크린에 투사하는 두 대의 영사기 앞에 양손에 부채를 든 감독이 서서 왼쪽과 오른쪽의 영사기 렌즈를 번갈아 가리며 영화의 광학적 원리를 일깨우는 필름 퍼포먼스다. 깜빡이는 눈이 영사되고 있는 스크린 위에서 ‘인간 셔터’가 된 오쿠야마 감독의 그림자가 나비처럼 춤추는 광경을 체험하는 찰나, 빛과 그림자가 직조하는 이미지의 비의에 가닿는 듯했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는 많은 평자들이 다룬 바 있다. 그중 사막에 숨어있는 샘 같은 영화의 어떤 기원source을 더듬어 찾는 유운성 평론가의 글(‘사막은 보이지 않는다: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인문예술잡지 F」 18호)을 읽으시길 권한다. 고전과 현대 영화의 아름다움이 한 몸에 거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 스파이 브릿지 >도 적잖이 놀라웠다. 이러니 올해도 할리우드에 경배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스위스 연방이 주는 영화상을 받게 된 장 뤽 고다르는, 수상 소감을 대신하여 만든 단편 < 인사말: 스위스상(賞) / 나의 사의(謝意) / 생사를 막론하고 >(mubi.com에서 불어·영역 대본과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다.)에서 스위스 영화는 필름일 뿐 시네마가 없고, 미국 영화는 시네마라고 말한다(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다니엘 슈미트, 알랭 타네 등이 버티는 스위스 영화의 무게를 상기하노라면, 이 질문을 피할 도리가 없다). 시상식 불참 사유로 건강 핑계를 대면서도 <오른쪽에 주의하라Soigne ta droite>(1987)에서 필름 통을 안고 바닥을 굴렀던 자신의 연기를 온몸을 던져 재연하는 노 거장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한편으로 스위스 역사가 흘린 피를 머금고 있다. 또 하나의 ‘만년의 양식’은, 고다르보다 세 살 적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근작 < 코뮤니스텐 >이다. 지금은 지구 위에서 사라진 독일민주공화국 국가였던 노래, 한스 아이슬러가 작곡하고 요하네스 로베르트 베허가 가사를 쓴 ‘폐허로부터 부활한Auferstanden aus Ruinen’이 흐르는 검은 화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두 독일 공산주의자가 나치에게 고문을 당하고 귀향하는 1934년을 담은 앙드레 말로 작 「모멸의 시간Le temps du mepris」의 일부를 2014년에 연출한 장면과 더불어, 다니엘 위예와 공동 연출한 과거 작품 <노동자, 농민>(2001) < 너무 일찍, 너무 늦게 >(1981) <포르티니/시나이의 개들>(1976) <엠페도클레스의 죽음>(1986) <검은 죄>(1988) 일부 장면을 발췌 편집했다. 해방 전후의 이탈리아, 공장을 나서는 이집트 노동자들의 식민해방투쟁, 나치가 민간인을 학살한 아푸아네스 산맥의 1967년 풍경들 사이에 존재하는 검은 화면의 심연은 ‘폭력의 예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횔덜린의 ‘새로운 세계’를 말하는 고(故) 다니엘 위예의 출현과 함께 ‘겨우 선 결심’이라는 표제가 붙은(‘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라는 악보의 부기로도 유명한)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16번 Op.135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스트라우브는 아직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감독의 뜻대로, 2분 길이의 단편 < 알제리 전쟁La guerre d’Algerie >(2014)와 함께 상영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파트리시오 구즈만도 여전하다. 아타카마 사막 천문대를 배경 삼았던 전작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2010)에 이어, < 자개 단추 >에서는 카웨스카 족과 함께 물길을 타고 파타고니아까지 내려와 깊은 바닷속에 잠겼던 궤조강軌條鋼에 붙어있는 자개 단추를 건져 올린다. 이 단추는 먼 은하계의 소용돌이를 거쳐, 이를테면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창 어느 골짜기에서 발굴된 양복 단추와도 공명한다. 그들보다 젊은 왕빙도 한결같다. < 세 자매 >(2012)를 찍으며 감독이 알게 된 또 한 사람의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 숙소에서 지내는 ‘아들’들의 2014년 2월 2일 일과를 기록하며 시작된 < 아버지와 아들 >은, 나흘 뒤 공장주가 촬영을 중단시키며 마무리되었다. 세간이라곤 화덕과 침상 하나뿐인 거처에서 오락기와 TV를 유일한 낙으로 삼는 일가의 생활을, 카메라는 꼼짝 않고 종일 함께한다. 북경영화아카데미에서 촬영을 전공하기 전에 미술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던 왕빙은,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과 공간을 사진으로도 기록하고 전시했다. 비디오 아트 페스티벌 ‘비디오릴레이 탄산’ 프로그래머로도 활동하는 강정석의 < 시뮬레이팅 서페이스 A >(작가의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에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 처음 취업한 친구의 출근길을 아침마다 배웅한 7개월 동안의 영상 기록을 편집한 이 작품은, 친구가 해고당하면서 촬영이 종료됐다 한다. 친구의 삶과 노동에 보내는 우정과 지지의 정동은,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작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서울 풍경의 표면 위로 미끄러져 내린다(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상영할 때엔, ‘서페이스’의 더욱 본격적인 ‘시뮬레이션’인 B면 <시뮬레이팅 서페이스 B>와 출판 작업 ‘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가 함께 보여졌다). (태국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따이끼 삭삐싯이라 표기해야 할) 타이기 삭피싯의 < 불안의 시기 >는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무시무시한 작품이었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을 여전히 상상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원념이 플리커로 번뜩이는데, 궁중사극 호러 장르가 리얼리즘이 되어가는 상황은 아시아에선 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시나무처럼 떨며 볼 수밖에 없었다. 동병상련의 상념은, 국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라브 디아즈의 < 에레미아스, 1권: 도마뱀 공주의 전설 > 말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풀들을 보며 되살아났다. 감독의 신작 < 아 프리오리 >에서 목도하듯, 살육에 맞서 고개 드는 인간의 오연함이 더욱 긴급한 시절일 테지만, 그저 바람 속을 걸어 사라져 간 에레미아스의 ‘두 번째 책’이 전할 이야기가 하릴없이 기다려졌다. 이 기다림에 응해준 작품이 미겔 고미쉬의 < 천일야화 >였다. 특히 3부 ‘마법에 걸린 자’의 마지막 장면은 <에레미아스, 1권> 대단원 롱숏에 담겨있던 바람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천일야화> vol 1, vol 2, vol 3 미겔 고미쉬는 해직자를 포함한 기자들로 팀을 만들어, 경제 위기가 깊어진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근년의 사건을 모아 현장 조사를 마치고 < 천일야화 > 시나리오를 사건별로 나누어 개발했다 한다. 현실의 불투명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는 하나, 완결된 시나리오가 없어 이야기 전개를 알지 못한 채 장면을 나누어 촬영을 진행하며 배우와 제작진이 불안해 할까 봐 현장에서의 부담도 늘어갔다고 고미쉬는 여러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급기야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버리는 감독으로 직접 분한 그는, 셰에라자드가 아버지와 관람차를 타는 놀이공원 장면에서 옛 아라비아 의상을 입고 다시 등장하지만 여전히 담배만 피울 뿐이다. 줄행랑을 놨다가도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그는 이야기하는 자의 숙명을 사는 것일 테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천일하고도 하룻밤 동안 이야기를 계속하는 셰에라자드를 자신의 영화를 위한 복화술사로 불러들여, 고미쉬는 포르투갈의 현재라는 ‘사태’와 「천일야화」라는 ‘픽션’을 섞는다. 셰에라자드는, 이야기가 인간의 욕망과 공포에서, 죽은 자들과 도래할 자들에게서 온다고 말한다. 때로 거짓말이기도 한 이야기가 진정 우리를 생존하게 해준다고 여기는 그녀는, 고미쉬의 전작 <타부>(2012)의 벤투라처럼 이야기 속 이야기, 영화 속 영화를 짓는다. 「천일야화」원작에서 셰에라자드는 밤마다 새로운 화자를 새워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그러니까 두 번째 탁발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리하여 영화 <천일야화>에도 많은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벌을 치는 양봉업자,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도주 중인 탈주범, 딸의 가정생활을 보살피는 판관에게 진술하는 소, 새를 길들여 노래를 가르치는 남자와 마주친 그물에 갇힌 사내, 여행을 왔다가 경찰을 만나 임신한 중국 여인, 법정에 서는 닭…. 이야기는 인간에게서 동물에게까지 뻗어 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낳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이미지 속에서는 다른 영화가 태어난다. 미겔 고미쉬는 세 편인 동시에 한 편인 < 천일야화 >의 이야기가 성부-성령-성자의 삼위일체와 같다고 칸 영화제 때 수차례 밝혔다. 돌이켜보면 고미쉬의 장편 영화들은 늘 둘 이상의 이야기를 안고 있었다. <천일야화>도 각기 고유한 리듬과 소제목을 지닌 세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이 작품인 공동제작국인 프랑스에서는, 칸 영화제가 끝난 뒤 세 편을 나누어 약 한 달 간격으로 순차 개봉했다. 1부는 2015년 6월 24일, 2부는 7월 29일, 3부는 8월 26일에). 1부 ‘불안해하는 자’는 포르투갈 중공업을 대표하던 비아나두카스텔루 조선소 폐업 때 촬영했다. 작금의 포르투갈이 처한 위기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들이 물질과 연결되어 있는 양상은 경제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민주주의’를 다시 묻고 역사를 되새긴다. 고미쉬에 따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개별자들만이 아니라 ‘공동체’이기도 하다. 2부 ‘비탄에 잠긴 자’는 법정, 아파트 등 실내를 주 무대로 삼는데, 연극적 장치와 조명을 채용하여 야외 촬영이 많은 1부보다 어둡다. 이야기도 그렇다. 원형극장에 세워진 법정은 조정하는 힘을 잃었고, 저소득 임대 아파트 주민은 돈이 없어 죽음을 택한다. 한데, 주인과 거처가 잇달아 바뀌어도 개 딕시만은 근심이 없다. 3부 ‘마법에 걸린 자’에는 변두리에서 되새를 길들여 노래를 가르치며 소일하는 남자들이 나온다.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일상의 매끈한 표면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내레이터가 들려주는 그들의 사연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우화인지 실화인지 알 도리는 없다. 한데 무슨 영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바그다드가 바다에 면했던 시절을 살며 사막화를 근심하는 셰에라자드의 옛이야기보다 현대 포르투갈 교외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지내는 이들의 일상이 지극히 초현실적으로 여겨지고, 새 노래 경연 대회가 종교나 정치 결사체의 비밀 회합처럼 보인다. 35mm와 16mm 필름으로 이 영화를 촬영한 사욤부 묵디쁘롬은, < 징후와 세기 >(2006) <나부아의 유령들>(2009) < 엉클 분미 >(2010) 등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대표작을 찍었던 태국 촬영감독으로, < 천일야화 > 제작을 위해 리스본에 1년 정도 살았다 한다(그와 고미쉬는 70mm로 촬영할 것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예산과 기동성 등 몇 가지 문제로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부산영화제에서 러닝타임이 381분인 <천일야화>를 본 날, 이웃한 상영관에서 연이어 < 찬란함의 무덤 >을 보았다. 사욤부 묵디쁘롬이 <천일야화>를 찍은 것도 <찬란함의 무덤>을 디에고 가르시아가 촬영한 것도 모른 채, 같은 날 상영하는 두 영화의 표를 우연히 구했다. 역시 우연이겠지만, 두 작품에는 모두 동물이 여럿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종들 외에, <천일야화> 1부에는 고래도 나온다. 해고자 루이스는 고래 뱃속에서 심장을 치료받고, 바닷가에서는 고래 심장이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고래가 해변으로 나오는 건 실수가 아니라 아파서인 경우가 많은데, 바다로 밀어 넣어도 대개 다시 나와 죽는단다. 인간이 바다에 버린 쓰레기를 먹은 고래 몸속에는 중금속이 쌓이는데, 보통은 지방층에만 축적되어 문제가 없지만 먹이를 제대로 못 먹는 상황에서는 지방을 에너지로 쓰는 대사가 일어나 온몸에 독이 퍼진다. 물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피하지방을 유지해온 고래가 빈사 상태로 물 밖에 나오면, 온 몸이 열로 펄펄 끓다 급기야 내장이 밖으로 터져 나온단다. 뱃속 같은 이야기의 심층에서 불안으로 윙윙대기만 하던 ‘사태’들의 소음도, 임계점을 넘으면 표면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 ‘사건’이 된다. <천일야화>가 전하는 이야기의 표면에는 포르투갈의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 인류의 수런거림이 모이고, 의미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들·인물들·동물들이 공존하는 셰에라자드의 시공은 무한히 나뉜다. 이들이 모여 내는 목소리는, 인간의 언어보다는 되새의 노래에 가깝다. 들풀을 흔드는 바람 속에 새들의 노래가 들리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극장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1970년대는 한국영화사의 암흑기로 알려져 있다. 유신 치하에서 검열의 서슬이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국가주도형 철권통치가 예술의 자율성마저 말살했던 프로파간다의 시대. 그러나 문화가 권력의 발아래 있었던 이 시기를 야만의 기억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손쉬운 일반화이다. 그렇다면 암울하기 그지없었다던 1970년대 한국영화사를 무언가 새로운 상상력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동서고금의 영화사를 훑어보면 이데올로기를 강제 주입하려 했던 프로파간다가 부정적인 기능만 한 것은 아니다. 국책영화, 반공영화, 새마을영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1970년대 영화도 재조명될 여지가 있다. 임권택 감독의 1976년 영화 < 낙동강은 흐르는가 >는 이러한 심증을 확증으로 되돌릴만한 작품이다. 물론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근대사의 부침 속에서 만들어진 반공영화이다. 당대 충무로 유력 제작자 중 하나였던 우진필름의 정진우 가 제작하고,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소년 진유영 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국책을 지지하는 작품에 호의적이었던 당대의 분위기에서 원색적인 반공의 함의를 띈 이 영화는 13회 백상예술대상 감독상, 신인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 낙동강은 흐르는가 >의 최초 제목은 <작은 병사>였는데 가열했던 낙동강 전투의 유장함이 서린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시나리오 집에는 ‘육탄십용사’라는 부제가 적혀 있는데, 이는 작사가 이영순이 만든 군가의 제목이기도 하다.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그 표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전쟁의 끄트머리에 놓인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를 제재로 한 이야기이다. 길고 무더웠던 여름 석 달간 지속된 생사의 전장에서 남한의 열일곱 살 소년 병사 천 이병( 진유영 )이 치른 전쟁 체험을 요체로 한다. 대구를 목전에 두고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던 남한군이 죽음을 불사하고 육탄으로 교량사수에 목숨을 바치는 과정이 장렬하게 묘사된다. 국책, 반공의 색채가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의 흐르는가>가 인상적인 대목은 예술과 프로파간다의 관계, 1970년대 한국영화계가 감당할 수 없었던 프로덕션의 완력이 곳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천 이병은 남한 병사이지만 좌우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은 앳된 소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가친지들의 좌익운동 가담으로 식솔들이 험난한 고초를 당했던 임권택 은 소년의 시점을 도입함으로써 이념을 갈등의 축으로 설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전쟁의 원인을 초점화하기보다는 전쟁이라고 하는 사태로 말미암은 참상을 무구한 소년병의 시점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 낙동강은 흐르는가 >에서 주목할 것은 1970년대 한국영화 산업의 현실과 괴리가 느껴질 만큼의 압도적인 스케일이다. 국책을 지지한다는 미명 하에 이 영화는 국방부로부터 전폭적인 제작지원을 받게 된다.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전쟁 장면에서 프로파간다가 예술에 육화되는 과정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직업 감독으로 10여 년간 경험을 쌓았던 임권택은 영화 안에서 제작의 호조건을 십분 활용하는 능란한 기능공의 면모를 보여준다. 국방부의 지원을 받은 실제 탱크는 물론 전투 장비와 군중 신에 동원된 엑스트라는 요즘 한국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규모이다. 군으로부터 받은 장비 지원은 ‘리얼리티’의 충실함을 살려내는데 크게 한 몫하고 있다. 포탄이 빗발치는 한 전투 장면에서 진유영 은 전후방으로 오락가락하는 실제 탱크의 밑을 오가며 곡예와 같은 액션을 수행한다. 후일 증언에 따르면 죽음을 각오하고 했다는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프로파간다 예술의 불가사의한 힘이 절감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기술적 트릭에 의존하지 않고 전투 장면의 리얼리티를 창조하는데 있어서 < 낙동강은 흐르는가 > 만큼의 성취를 보인 영화는 많지 않다. 일사불란한 군중 액션 연출은 예술적 자의식을 각성한 뒤 임권택 이 만든 < 개벽 >이나 < 태백산맥 > < 춘향뎐 > 같은 영화의 고난이도 군중 신을 예고하고 있다.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임권택이 먹고살기 위해 영화를 찍었던 직업 감독의 노선을 변경한 마지막 시기 작품이기도 하다. 경멸의 시대가 남긴 한 유산으로 남은 이 영화는 선전선동의 프로파간다도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